조양전(朝陽殿)에서는 많은 문무백관이 자리한 가운데 수황(隨皇) 문제(文帝)가 새 왕조를 창업한 뒤 가장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수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한 양(梁)의 군주 소종(蕭琮)이 문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하며 복속을 맹세하는 의식이었다. 이것은 양나라의 국체(國體)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즉, 수나라가 양나라를 병합한 것이었다.
"신(臣) 양왕(梁王) 소종(蕭琮)은 이제부터 사직(社稷)과 백성을 대수국(大隨國) 황상(皇上) 폐하(陛下)께 맡기옵니다. 신은 오직 폐하의 백성으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노니, 폐하께서는 넓은 아량으로 신을 받아주시기 바라나이다."
소종이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휘하에 거두어줄 것을 청하자 문제는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참으로 가상하도다. 짐(朕)은 그대의 충정을 믿고 그대의 영토와 그대의 백성을 모두 우리 수나라에 편입시키도록 하겠노라. 그리고 그대를 거국공(据國公)으로 삼아 장안에 거주하게 할 것이다."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이제 양나라가 병합되었으니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기 위해 남은 일은 진(陳)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소종이 물러난 뒤에 문제는 문무백관과 더불어 진나라를 침공하는 작전을 의논했다.
"이제 나라의 기틀이 충분히 다져졌고 법제의 완성도 이루어졌으며 안민(安民)도 어느 정도 충실해진 듯하니 진을 평정해 중원을 일통해야겠소. 경들은 군사를 소집하여 출정 준비를 서두르도록 하시오."
예부상서(禮府尙書) 사마순의(司馬巡意)가 나섰다.
"폐하, 군사의 숫자가 모자라기도 하거니와, 이제야 겨우 편하게 생업에 힘쓰는 백성들을 전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나라의 안정을 해치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백성들은 지금 복에 겨워 나라를 축원하고 황실에 충성하고 있사옵니다. 새로 일어난 나라의 밝음과 민심을 부디 잃지 마시옵소서."
"폐하, 상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오나, 백성의 홍복은 나라에 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또한 헤아리셔야 합니다. 비록 화평을 내세웠으나 진은 분명 아직까지 강한 적이옵니다. 게다가 저 동쪽의 고구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옵니다. 만일 두 적이 손을 잡고 한낱한시에 침략을 가한다면 어찌하시겠사옵니까? 한시바삐 진을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해 위엄을 보이셔야 할 것으로 아뢰옵니다."
우복야(右僕射) 양소(楊素)의 말이었다. 그러자 병부상서(兵府尙書) 왕민(王玟)이 반발하며 외쳤다.
"진과 고구려가 손을 잡다니! 되지도 않는 소리는 집어치우시오! 고구려는 우리와 대립하려 하지 않을 터, 억측에 불과하오."
"그들이 진과 심상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시오!"
"진왕(陳王) 진숙보(陳淑寶)는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조정에는 간신들이 들끓고 백성들은 탐관오리에게 시달려 나날이 썩어가고 있는 진이오.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 할 것이 대체 무엇이오? 동북의 고구려 또한 약졸에 불과하오. 이제 진을 정벌하면 그들은 스스로 놀라 조공을 해올 것이 분명하오."
"폐하, 그러나 아직은 시기가 아니옵니다. 진(陳)은 무너져가고 우리는 강성해지고 있사옵니다. 조금만 더 놓아두시면 자연스레 우리에게 복속될 것이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마순의는 끝까지 화평론(和平論)을 주장했다. 문제(文帝)는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예부상서는 진을 그대로 두면 저절로 우리에게 복속될 것이라 말했는가?"
"그렇사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어느 누가 자기 나라의 국체(國體)를 이웃 나라에 그냥 바치려 하겠는가? 경은 자신의 태도가 너무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마순의는 황제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문제는 그를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태자 양용(楊勇)에게 눈길을 돌렸다.
"태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을 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기탄없이 말해보라."
양용은 잠시 부황의 눈치를 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진에 대한 정벌은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옵니다."
"그렇지. 너는 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올해는 전쟁을 하기에 좋지 않은 시기입니다. 얼마 전에 천문점을 잘 본다는 이름난 자에게 물었는데, 올해는 수나라의 천기가 약하여 좋지 않다고 하옵니다."
"무엇이라...?"
불만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문제의 얼굴이 노기로 붉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성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시기라는 것이 대체 언제 온단 말이냐! 모두들 시기라는 말만 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대체 내 생전에 오기는 온단 말이냐! 게다가 너는 이 나라의 황태자일진대 어찌하여 요망한 것을 불러다가 국사(國事)를 논하느냐! 나는 황제의 말을 하고 있건만 너는 백정의 말을 하고 있구나."
"폐하..."
태자 양용은 물론 조정의 중신들도 모두 놀란 얼굴로 문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황제가 그토록 노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이 나라 대수제국(大隨帝國)의 황제다. 그 썩어빠진 주(周) 황실을 대신해 천하를 짊어진 진정한 천자(天子)란 말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짐은 태자에게 군사 50만을 주겠다. 그 병력으로 진을 무너뜨려라. 할 수 있겠는가?"
"그, 그것은... 소자 홀로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이런 못난 놈 같으니...!"
양용의 머리 위로 문제의 무서운 호통이 날아들었다.
"모두 다 물러가라! 어리석고 무능한 자식놈이나 지략이 없고 용기도 없는 신료들 모두 형편없는 무리로다. 어서 물러가라!"
양견의 벼락같은 호통에 태자와 신하들은 모두 당황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고개를 깊이 숙이고 어전(御殿)을 빠져나갔다.
"내 천하를 얻었건만....."
한참 동안 분을 삭이지 못해 숨을 고르고 있는 문제의 귀로 밖에 시립해 있던 시위의 말이 들려왔다.
"폐하, 이황자(二皇子)께서 들고자 하십니다."
"광(廣)이가...?"
양견이 새 황실을 연 이후 양광이 그를 찾아오는 일은 그동안 무척 드물었다. 사실 양견으로서도 둘째 아들 양광이 그리 마음에 드는 자식은 아니었기에 차라리 잘된 일이라 여기며 그와는 거의 부자의 정을 나누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인 황후 독고씨(獨孤氏)는 양견과는 달리 다섯 아들 가운데 유달리 양광을 아끼고 신임했다. 독고황후는 그동안 여러차례 문제에게 둘째 황자에 대한 애정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 자식에게 마음을 주는 일은 하기가 싫었기에 애써 모른척 하고 지내왔다. 돌려보낼까 잠시 생각하던 문제는 곧 심드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들라 하라."
양광이 천천히 황제 앞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
"광이로구나. 늦은 밤에 무슨 일이냐?"
"병사 10만명을 주십시오."
다짜고짜 튀어나온 양광의 말에 양견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그것이 무슨 말이더냐? 병사 10만명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진을 정벌하는 것, 10만의 병력이면 족합니다."
"무엇이!"
양견은 비웃음을 담은 탁한 눈빛으로 양광을 쳐다보았다.
"비록 나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 수는 없다. 게다가 겨우 10만의 병력이라니... 온 신하들이 다 주저하고 태자마저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마당에 무슨 힘으로 진을 공략하겠느냐?"
"가능합니다."
문제는 양광의 얼굴을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비록 호감은 가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무게가 있는 아들이었다. 게다가 지략과 무예로 이름난 그이니,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이러한 말을 내뱉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겨우 병사 10만명으로 십수배에 달하는 진의 군세를 어떻게 꺾겠다는 말인가?
"불허한다. 자식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부모가 할 짓이 아니니라."
"폐하, 지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까?"
".....?"
"지금 폐하께서 앉으신 자리는 사사로운 가족의 일을 말씀하실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으로 아옵니다."
"이놈이...!"
"저는 폐하께서 백성의 홍복을 위해 얼마만한 희생을 감수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백성을 위해 내리신 용단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록 작으나마 저의 희생도 있었다는 것을 폐하께서는 인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희생한 것을 제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윤허해주소서. 간절히 바라나이다."
"네 이놈...!"
문제는 양광의 말에 몸을 떨었다. 양광은 흔들리는 황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굳은 의지와 신념이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문제는 비록 분노가 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광의 호언장담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우 10만 군사를 얻어내려고 자신을 도발하는 양광의 모습이 50만 군사에도 고개를 내젓는 양용과 겹쳐왔다.
그대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문제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내뱉었다.
"그래! 그렇다면 네게 50만 군사를 주겠다. 어디 한번 네 실력을 보여보아라."
그로부터 3일 후, 조정에서는 진황(陳皇) 후주(後主) 진숙보(陳淑寶)의 스물네가지 방탕한 죄를 꾸짖는 양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어느 신하도 양견의 정벌령에 반발하지 않았으나, 그 어느 신하도 부장의 자리를 청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 신하들 사이로 걸어나간 양광은 무릎을 꿇고 양견이 건네는 상방검(尙方劍)을 받았다.
"이황자 양광을 정진원수(征陳元帥)에 임명한다. 각 군의 편제와 지휘관에 대한 인사권은 역시 원수인 양광에게 맡긴다. 가서 진을 평정하라!"
양광이 황제로부터 칼을 건네받는 순간, 대전에는 까닭 모를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았고, 뒤돌아선 양광의 무표정한 얼굴은 섬뜩한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신하들은 굳어진 얼굴로 대전을 걸어나가는 양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허름한 무복을 걸친 양광은 수많은 군사들의 갑주가 뿜어내는 광채 속에서 말을 몰고 있었다.
전쟁역사소설「장군과 제왕」3.중원에 부는 신풍(新風) (1)
조양전(朝陽殿)에서는 많은 문무백관이 자리한 가운데 수황(隨皇) 문제(文帝)가 새 왕조를 창업한 뒤 가장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수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한 양(梁)의 군주 소종(蕭琮)이 문제에게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를 하며 복속을 맹세하는 의식이었다. 이것은 양나라의 국체(國體)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즉, 수나라가 양나라를 병합한 것이었다.
"신(臣) 양왕(梁王) 소종(蕭琮)은 이제부터 사직(社稷)과 백성을 대수국(大隨國) 황상(皇上) 폐하(陛下)께 맡기옵니다. 신은 오직 폐하의 백성으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노니, 폐하께서는 넓은 아량으로 신을 받아주시기 바라나이다."
소종이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휘하에 거두어줄 것을 청하자 문제는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참으로 가상하도다. 짐(朕)은 그대의 충정을 믿고 그대의 영토와 그대의 백성을 모두 우리 수나라에 편입시키도록 하겠노라. 그리고 그대를 거국공(据國公)으로 삼아 장안에 거주하게 할 것이다."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이제 양나라가 병합되었으니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하기 위해 남은 일은 진(陳)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소종이 물러난 뒤에 문제는 문무백관과 더불어 진나라를 침공하는 작전을 의논했다.
"이제 나라의 기틀이 충분히 다져졌고 법제의 완성도 이루어졌으며 안민(安民)도 어느 정도 충실해진 듯하니 진을 평정해 중원을 일통해야겠소. 경들은 군사를 소집하여 출정 준비를 서두르도록 하시오."
예부상서(禮府尙書) 사마순의(司馬巡意)가 나섰다.
"폐하, 군사의 숫자가 모자라기도 하거니와, 이제야 겨우 편하게 생업에 힘쓰는 백성들을 전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나라의 안정을 해치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백성들은 지금 복에 겨워 나라를 축원하고 황실에 충성하고 있사옵니다. 새로 일어난 나라의 밝음과 민심을 부디 잃지 마시옵소서."
"폐하, 상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오나, 백성의 홍복은 나라에 힘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또한 헤아리셔야 합니다. 비록 화평을 내세웠으나 진은 분명 아직까지 강한 적이옵니다. 게다가 저 동쪽의 고구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강국이옵니다. 만일 두 적이 손을 잡고 한낱한시에 침략을 가한다면 어찌하시겠사옵니까? 한시바삐 진을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해 위엄을 보이셔야 할 것으로 아뢰옵니다."
우복야(右僕射) 양소(楊素)의 말이었다. 그러자 병부상서(兵府尙書) 왕민(王玟)이 반발하며 외쳤다.
"진과 고구려가 손을 잡다니! 되지도 않는 소리는 집어치우시오! 고구려는 우리와 대립하려 하지 않을 터, 억측에 불과하오."
"그들이 진과 심상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시오!"
"진왕(陳王) 진숙보(陳淑寶)는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고 술과 여자에 빠져 조정에는 간신들이 들끓고 백성들은 탐관오리에게 시달려 나날이 썩어가고 있는 진이오.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 할 것이 대체 무엇이오? 동북의 고구려 또한 약졸에 불과하오. 이제 진을 정벌하면 그들은 스스로 놀라 조공을 해올 것이 분명하오."
"폐하, 그러나 아직은 시기가 아니옵니다. 진(陳)은 무너져가고 우리는 강성해지고 있사옵니다. 조금만 더 놓아두시면 자연스레 우리에게 복속될 것이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사마순의는 끝까지 화평론(和平論)을 주장했다. 문제(文帝)는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예부상서는 진을 그대로 두면 저절로 우리에게 복속될 것이라 말했는가?"
"그렇사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어느 누가 자기 나라의 국체(國體)를 이웃 나라에 그냥 바치려 하겠는가? 경은 자신의 태도가 너무 우유부단(優柔不斷)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사마순의는 황제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문제는 그를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태자 양용(楊勇)에게 눈길을 돌렸다.
"태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을 치는 일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기탄없이 말해보라."
양용은 잠시 부황의 눈치를 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진에 대한 정벌은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옵니다."
"그렇지. 너는 그 때가 언제라고 생각하느냐?"
"하지만 올해는 전쟁을 하기에 좋지 않은 시기입니다. 얼마 전에 천문점을 잘 본다는 이름난 자에게 물었는데, 올해는 수나라의 천기가 약하여 좋지 않다고 하옵니다."
"무엇이라...?"
불만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문제의 얼굴이 노기로 붉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성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 시기라는 것이 대체 언제 온단 말이냐! 모두들 시기라는 말만 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대체 내 생전에 오기는 온단 말이냐! 게다가 너는 이 나라의 황태자일진대 어찌하여 요망한 것을 불러다가 국사(國事)를 논하느냐! 나는 황제의 말을 하고 있건만 너는 백정의 말을 하고 있구나."
"폐하..."
태자 양용은 물론 조정의 중신들도 모두 놀란 얼굴로 문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황제가 그토록 노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이 나라 대수제국(大隨帝國)의 황제다. 그 썩어빠진 주(周) 황실을 대신해 천하를 짊어진 진정한 천자(天子)란 말이다."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짐은 태자에게 군사 50만을 주겠다. 그 병력으로 진을 무너뜨려라. 할 수 있겠는가?"
"그, 그것은... 소자 홀로 말씀드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이런 못난 놈 같으니...!"
양용의 머리 위로 문제의 무서운 호통이 날아들었다.
"모두 다 물러가라! 어리석고 무능한 자식놈이나 지략이 없고 용기도 없는 신료들 모두 형편없는 무리로다. 어서 물러가라!"
양견의 벼락같은 호통에 태자와 신하들은 모두 당황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고개를 깊이 숙이고 어전(御殿)을 빠져나갔다.
"내 천하를 얻었건만....."
한참 동안 분을 삭이지 못해 숨을 고르고 있는 문제의 귀로 밖에 시립해 있던 시위의 말이 들려왔다.
"폐하, 이황자(二皇子)께서 들고자 하십니다."
"광(廣)이가...?"
양견이 새 황실을 연 이후 양광이 그를 찾아오는 일은 그동안 무척 드물었다. 사실 양견으로서도 둘째 아들 양광이 그리 마음에 드는 자식은 아니었기에 차라리 잘된 일이라 여기며 그와는 거의 부자의 정을 나누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부인인 황후 독고씨(獨孤氏)는 양견과는 달리 다섯 아들 가운데 유달리 양광을 아끼고 신임했다. 독고황후는 그동안 여러차례 문제에게 둘째 황자에 대한 애정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 자식에게 마음을 주는 일은 하기가 싫었기에 애써 모른척 하고 지내왔다. 돌려보낼까 잠시 생각하던 문제는 곧 심드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들라 하라."
양광이 천천히 황제 앞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폐하."
"광이로구나. 늦은 밤에 무슨 일이냐?"
"병사 10만명을 주십시오."
다짜고짜 튀어나온 양광의 말에 양견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그것이 무슨 말이더냐? 병사 10만명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진을 정벌하는 것, 10만의 병력이면 족합니다."
"무엇이!"
양견은 비웃음을 담은 탁한 눈빛으로 양광을 쳐다보았다.
"비록 나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군사를 움직일 수는 없다. 게다가 겨우 10만의 병력이라니... 온 신하들이 다 주저하고 태자마저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마당에 무슨 힘으로 진을 공략하겠느냐?"
"가능합니다."
문제는 양광의 얼굴을 뚫어질 듯 노려보았다. 비록 호감은 가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무게가 있는 아들이었다. 게다가 지략과 무예로 이름난 그이니,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이러한 말을 내뱉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겨우 병사 10만명으로 십수배에 달하는 진의 군세를 어떻게 꺾겠다는 말인가?
"불허한다. 자식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은 부모가 할 짓이 아니니라."
"폐하, 지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말씀하셨습니까?"
".....?"
"지금 폐하께서 앉으신 자리는 사사로운 가족의 일을 말씀하실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으로 아옵니다."
"이놈이...!"
"저는 폐하께서 백성의 홍복을 위해 얼마만한 희생을 감수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백성을 위해 내리신 용단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록 작으나마 저의 희생도 있었다는 것을 폐하께서는 인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희생한 것을 제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윤허해주소서. 간절히 바라나이다."
"네 이놈...!"
문제는 양광의 말에 몸을 떨었다. 양광은 흔들리는 황제의 눈을 마주 보았다. 굳은 의지와 신념이 무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문제는 비록 분노가 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양광의 호언장담에 대한 믿음으로 마음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우 10만 군사를 얻어내려고 자신을 도발하는 양광의 모습이 50만 군사에도 고개를 내젓는 양용과 겹쳐왔다.
그대로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문제는 표정을 풀지 않은 채 내뱉었다.
"그래! 그렇다면 네게 50만 군사를 주겠다. 어디 한번 네 실력을 보여보아라."
그로부터 3일 후, 조정에서는 진황(陳皇) 후주(後主) 진숙보(陳淑寶)의 스물네가지 방탕한 죄를 꾸짖는 양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어느 신하도 양견의 정벌령에 반발하지 않았으나, 그 어느 신하도 부장의 자리를 청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 신하들 사이로 걸어나간 양광은 무릎을 꿇고 양견이 건네는 상방검(尙方劍)을 받았다.
"이황자 양광을 정진원수(征陳元帥)에 임명한다. 각 군의 편제와 지휘관에 대한 인사권은 역시 원수인 양광에게 맡긴다. 가서 진을 평정하라!"
양광이 황제로부터 칼을 건네받는 순간, 대전에는 까닭 모를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았고, 뒤돌아선 양광의 무표정한 얼굴은 섬뜩한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켰다. 신하들은 굳어진 얼굴로 대전을 걸어나가는 양광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허름한 무복을 걸친 양광은 수많은 군사들의 갑주가 뿜어내는 광채 속에서 말을 몰고 있었다.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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