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역사소설「장군과 제왕」3.중원에 부는 신풍(新風) (3)

조의선인2008.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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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역사소설「장군과 제왕」3.중원에 부는 신풍(新風) (3)

 

맥철장은 눈을 떴다. 이상했다. 적진 한가운데 쓰러진 자신이 살아 있다니. 손발을 움직여보았다. 자유로웠다. 시끄러운 전장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뒤에서 묵직한 음성 하나가 들렸다.

"맥 장군, 용서하시오. 조금 늦었소."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쳐다보았지만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던 터라 눈이 부셔 주위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아, 무리하게 움직이진 마시오. 많이 다쳤으니."

"누구요?"

맥철장의 눈이 슬슬 태양빛에 적응되면서 자신을 향해 말하고 있는 자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우문술(宇文述)이오."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기습공격으로 무수관을 격파한 우문술은 맥철장이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물려 신양성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양광 장군은?"

"이곳에 계시지 않소. 허어! 그나저나 참으로 대단하시오. 도대체 얼마나 되는 적군의 장수와 병사를 베어넘긴 거요."

"양광 장군은 어디 계시오?"

"아마 지금쯤은 진의 도성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고 계실 것이오."

맥철장은 도로 눈을 감았다.

우문술은 막사를 나오면서 종군사관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번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적으라. 선봉장 맥철장이 휘하 1천기의 기병과 함께 진의 군사 3만 5천 중 보졸 4천과 장수 18명을 죽였노라고. 알겠는가?"

"폐하, 큰일이옵니다. 수나라의 대군이 북안(北岸)에 이르렀다고 하옵니다. 빨리 대책을 세우셔야 할 것이옵니다."

건강(建康)에 도착한 전령의 다급한 보고는 남진의 조정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진황(陳皇) 후주(後主) 진숙보(陳淑寶)는 신료들을 모아 놓고 적을 막을 방책을 의논했다.

"수나라 군사들이 무척 빠른 속도로 진격해 오고 있다 하오. 지금 수나라 군대의 총지휘를 맡고 있는 자는 양견(楊堅)의 둘째 아들 양광(楊廣)이라 하오. 그 자는 주(周) 왕조 때부터 변방에 일어난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으며 한번도 진 일이 없다고 하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도관상서(都官尙書) 공범(孔范)이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양자강은 예로부터 천연요새로 알려져 있으므로 날개가 돋치지 않는 한 수나라 군사가 그 강을 건널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변방을 지키고 있는 장령들이 모두 공훈을 쌓으려고 적의 정세를 거짓으로 보고한 것이니, 그 몇놈의 목을 잘라 버린다면 다시는 거짓말을 꾸며대지 못할 것입니다."

미련한 진숙보는 공범의 말에 기가 살아나서 가슴을 쑥 내밀며 머리를 쳐들고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일리가 있구나. 건강은 자고로 제왕의 도읍이었으니 하늘의 명을 받고 황제가 된 짐은 두려울 게 없다. 이전에 제(齊)가 세번이나 쳐들어왔으나 메번 패배했고, 주(周)도 두번이나 침입했으나 두번 모두 실패했거늘 오늘 하잘것없는 수(隨)가 다 무엇일꼬!"

임금과 신하가 이런 지경까지 무능하고 무사 안일했으니 진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양광의 원정군은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싸우는 족족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요충지마다 양광과 맞선 남진의 군사들은 후퇴하기에 바빴고 결국 패잔병들은 모두 대원수인 원회(元誨)의 수하로 모여들었다,

원회가 모은 병력은 양광의 군대에 비해 두배가 넘는 60만 대군이었으나 양광의 기발하기 이를 데 없는 계책과 날카로운 기세에 압도당한 원회의 군사들은 결국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말았다. 애초에 향락에 젖은 진나라의 장수와 무딘 병사들 따위가 양광과 그의 정예병들의 적수가 될 리 만무했다. 패배를 거듭한 원회는 성의 험준함에 힘입어 수일간을 버티었지만 사기는 점점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우문술의 10만 군사가 합류하고 치열한 전투가 있던 날 저녁, 항복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나타난 원회의 사자는 입을 채 열기도 전에 양광의 칼에 맞아 목이 떨어져 나갔다.

적의 항복 따위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사자의 죽음으로 공표한 양광은 마지막 총공세를 벌였고 결국 이날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성문은 활짝 열렸다. 원회의 머리가 성벽 높이 효시되고 그로써 남진의 마지막 공세는 무너지고 말았다.

개황(開皇) 9년(서기 589년) 정월 초하루 새벽에 양광은 하약필(賀若弼)과 한금호(韓擒虎)를 보내어 건강성을 포위 공격하도록 했다. 진나라의 표기장군(驃騎將軍) 소마가(蕭摩訶)가 중랑장(中郎將) 임충(任忠)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나와 수군(隨軍)과 맞서 싸웠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임충은 진나라의 국운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적장 한금호에게 투항하여 수나라 군사들이 주작문(朱雀門)을 통과하는데 협조해 주었다.

후주는 궁녀 몇명을 데리고 황급히 경양전(景陽殿)으로 달아났다가 수나라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장귀비(張貴妃), 공귀빈(孔貴嬪)과 함께 생포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신속한 정벌이었다.

수나라가 군사력을 동원해 진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할 때부터 진나라가 멸망하기까지는 불과 넉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나라의 궁궐 안으로 들어선 양광은 용상(龍象)에 앉아 후주를 비롯해 포박된 채 꿇어앉혀진 진나라의 황족들을 내려다보았다.

"저 자가 진숙보인가?"

"그렇습니다."

양광의 질문에 우중문이 나서서 대답했다.

"저렇게 한심하고 무능한 자가 한 나라의 제왕 자리에 있었다니, 참을 수 없는 일이로다. 당장 저 자를 끌고 나가 斬首하라!"

"살려주시오! 원하는 것은 뭐든 다 들어주겠으니 부디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주시오."

후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숙이고 애원했다.

우중문이 양광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장군, 비록 전쟁 포로이지만 적국의 군주를 잡은 것이니 일단 장안으로 끌고 가서 황상(皇上)의 재가(裁可)를 받고 처형해야 합니다. 대장군께서 독단대로 진숙보를 죽이신다면 틀림없이 조정에서 나쁜 말이 나올 것입니다."

양광은 우중문의 말이 옳다고 여겨 일단 진숙보를 장안으로 압송하기로 하고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꼴도 보기 싫다. 당장 저 자를 하옥시켜라. 장안으로 압송할 수 있게 수레를 준비하도록 하라."

병사들이 후주를 잡아 일으켜 밖으로 나가는데, 양광의 눈이 번쩍 떠졌다. 후주의 뒤에 꿇어앉아 있던 여인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가만... 저 계집을 가까이 데려오너라."

병사들에 의해 양광의 면전으로 끌려온 여인은 곱지 않은 눈빛으로 양광을 노려보고 있었다.

"참으로 곱고 예쁜 계집이로구나. 너는 누구냐?"

"진숙보의 사촌누이인 진초(陳硝)라는 계집입니다."

옆에 있던 우중문이 대신 대답했다.

"내가 한때 사랑했던 주령이란 여인도 너처럼 이렇게 아름다웠다. 오늘 너를 보니 죽은 주령이 생각나는구나. 너는 내 여자가 될 생각이 없느냐?"

진초는 가증스럽다는 투로 양광에게 쏘아붙였다.

"그대는 내 나라를 멸망시킨 원수가 아니오? 내 어찌 원수를 모시는 천녀(賤女)가 될 수 있겠소? 나를 더는 욕보이지 말고 어서 죽여 주시오!"

"대장군, 일단 포로가 된 진의 황족들은 장안으로 압송해서 폐하의 처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폐하께서 대장군의 공을 치하하신다면 이 계집도 장군의 차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중문은 원칙대로 포로가 된 진의 황실 사람들을 일단 장안으로 압송할 것을 주장했다. 양광은 우중문의 말이 귀에 거슬렸지만 자신의 독단대로 처리했다가는 부황의 눈밖에 날 수 있으므로 우중문의 말대로 포로들을 장안으로 압송한 이후 황제의 명령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양광이 개선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온 이후 문제는 양광의 마음과는 다르게 포로들을 처분했다. 문제는 후주가 무능하고 아무런 야심도 없다는 것을 알고 그를 살려주기로 하여 낙양에 연금시켰다. 또 양광이 자신의 여자로 삼기를 원했던 후주의 사촌누이 진초는 문제(文帝)의 후비(後妃)가 되었다. 문제는 진나라를 정복한 공을 치하한다는 의미로 양광을 진왕(晉王)에 책봉했다. 그러나 그까짓 왕호(王號) 따위는 양광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빌어먹을 늙은이 같으니... 주책없이 그 나이에 여색(女色)을 밝히다니!"

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빼앗아 간 부황에 대한 원망은 양광의 심성을 더욱 비틀어놓고 있었다. 양광은 상식적으로 아들인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진숙보의 사촌누이를 자기 여자로 삼은 아버지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처소에서 술을 마시며 분기를 달래었다.

"두고봐라. 내 반드시 진부인(陳夫人)을 되찾을 것이다!"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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