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등꽃나무 그늘 아래

럽이200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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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등꽃나무 그늘 아래
- 김명인

 

오늘은 급식이 끝났다고, 밥이 모자라서

대신 컵라면을 나눠주겠다고,

어느새 수북하게 쌓이는

벌건 수프 국물 번진 스티로폼 그릇 수만큼

너저분한 궁기는 이 골목에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부르면 금방 엎어질 자세로

덕지덕지 그을음을 껴입고

목을 길게 빼고 늘어선 앞 건물도 허기져 있네

나는, 우리네 삶의 자취가 저렇게 굶주림의 기록임을

새삼스럽게 배운다, 빈자여,

등꽃나무 그늘 아래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우리가 무엇을 이 지상에서

배불리 먹었다 하고 잠깐 등나무 둥치에 기대서서

먹을 내일을 걱정하고, 먹는 것이

슬퍼지게 하는가

등꽃 서러움은 풍성한 꽃송이 그 화려함만큼이나

덧없이 지고 있는 꽃 그늘뿐이어서

다시 꽃 필 내년을 기약하지만

우리가 등나무 아랫길 사람으로 어느 후생이

윤회를 이끌지라도 무료급식소 앞 이승,

저렇게 줄지어 늘어선 행렬에 끼고 보면

다음 생의 세상

있고 싶지 않아라, 다음 생은

차라리 등꽃 보라나 되어 화라락 지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