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없는 난 책읽고 비디오 보고 아줌마들 가끔 만나고, 남편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과였죠.
남편은 4살 연하, 어느날 아기가 계속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남편의 y염색체 이상으로 우린 자연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판결. 그래도 시어머니는 받아들이질 않고 시아버지도 옛날 5년만에 남편은 갖었다구 너희도 기다리다 보면 애기가 생길텐데, 문제는 내 아니가 많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내 나이 37세,
시어머니에게 있어 남편은 젖먹이 아기입니다. 위로 형도 누나도 여동생도 있지만 유독히 신랑에게 만은 다르죠.
밥상 드는것 조차 못들게 하고, 한번은 제가 몸이 아파 시엄 목욕 간 틈을 타 설겆이 하라고 했던것이 들통이 나 그 자리에서 호령이 떨어졌죠.
전 지금 6월에 사고로 친정어마를 하늘에 보내드리고 시댁에서 지금까지 혼지 지내고 있다가 보름전 남편이 나왔습니다. 베트남 상황이 안좋아 퇴사를 한것이죠.
전 자억자득이라 했습니다. 매일 술로 생활하며 어울이는 사람들이 모두 양아치 같은 인간들이니 어느 상사가 술냄새 풀풀 풍기며 눈도 시뻘개 가지고 출근하는 사원 좋다고 하겠어요?
베느남에서 맘 고생 생각도 하기 싫어요.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보단 엄마에 생각에 하루에도 멏번씩 눈물을 흘리고 밤이면 밤마다 베개잎이 젖을 정도로 운답니다. 그럴땐 남편은 왜 청승맞게 우느냐고 돌아눕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게 마련,
요즘 점점 더 예민해 지는 제자신을 발견합니다.
결혼전 남편은 저에게 고백할게 있다고 하며, 한 말이 방 두개인데 안방에서 30살 먹은 여동생과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이렇게 함께 자고, 목욕할때 등도 시어머니가 밀어주고, 샤워할때 속옷, 수건 모도 시어머니가 갖다준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순간 뒤통수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였죠.
그렇담 벌거벗고 있는 상태에서 문을 벌컥 열고 갖다 주는 그 장면이 계속 뇌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전 이 결혼 안한다고 발악을 했어요. 입장 바꿔 내가 샤워할때 우리 아버지가 들어와 씻겨 준다면 그것 이해할 수 있냐고 했더니,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똑같냐는 거예요.
남편도 문제려니와 시엄이 문제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잠자리를 분리해주고 자기방 갖길 원하는데, 도저히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가 없었죠.
결혼후 베트남으로 바로 발령받아 떠났다가 친정엄마의 사고로 6월에 제가 한국에 들어와 있으며 시댁에 머물러 있으며 그동안 발견 못한 하나하나가 들어오게 되더라구요.
참을 수 없는 것은 저에겐 내색안다가 뒤에서 시누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행위를 전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용납을 할 수 가 없어요. 제가 아무리 잘해도 시어머니 눈에 만족할 리 있겠어요. 저또한 잘한거 없다는 것 잘 압니다. 하지만 불만 있거나 할말 있으면 당사지인 저에게 얘기 하지 뒤에 흉보며.... 왜 여자의 삶이 이래야 하는지, 남편이 귀국하고 그동안의 저에대해 모두 일러바쳐 역으로 남편이 저에게 화를 내더라구요.
아! 이제는 시어머니라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얼굴도 보기 싫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다음주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데, 돌아가서 엄마생각 않고 살아갈 자신이 점 솔직히 없네오.
그렇다고 남편이 일찍 들어와 함께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가정보다는 친구를 와이프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는 남자, 게으르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남자.
여자라는 것!
결혼 3년차.
결혼 6개월 후 베트남으로 남편이 발령을 받아 가게 되어 그곳에 살고 있답니다.
남편은 매일 술에 젖어 새벽 2시 3시는 기본.
아이가 없는 난 책읽고 비디오 보고 아줌마들 가끔 만나고, 남편 기다리는 것이 하루 일과였죠.
남편은 4살 연하, 어느날 아기가 계속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남편의 y염색체 이상으로 우린 자연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판결. 그래도 시어머니는 받아들이질 않고 시아버지도 옛날 5년만에 남편은 갖었다구 너희도 기다리다 보면 애기가 생길텐데, 문제는 내 아니가 많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내 나이 37세,
시어머니에게 있어 남편은 젖먹이 아기입니다. 위로 형도 누나도 여동생도 있지만 유독히 신랑에게 만은 다르죠.
밥상 드는것 조차 못들게 하고, 한번은 제가 몸이 아파 시엄 목욕 간 틈을 타 설겆이 하라고 했던것이 들통이 나 그 자리에서 호령이 떨어졌죠.
전 지금 6월에 사고로 친정어마를 하늘에 보내드리고 시댁에서 지금까지 혼지 지내고 있다가 보름전 남편이 나왔습니다. 베트남 상황이 안좋아 퇴사를 한것이죠.
전 자억자득이라 했습니다. 매일 술로 생활하며 어울이는 사람들이 모두 양아치 같은 인간들이니 어느 상사가 술냄새 풀풀 풍기며 눈도 시뻘개 가지고 출근하는 사원 좋다고 하겠어요?
베느남에서 맘 고생 생각도 하기 싫어요.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보단 엄마에 생각에 하루에도 멏번씩 눈물을 흘리고 밤이면 밤마다 베개잎이 젖을 정도로 운답니다. 그럴땐 남편은 왜 청승맞게 우느냐고 돌아눕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게 마련,
요즘 점점 더 예민해 지는 제자신을 발견합니다.
결혼전 남편은 저에게 고백할게 있다고 하며, 한 말이 방 두개인데 안방에서 30살 먹은 여동생과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이렇게 함께 자고, 목욕할때 등도 시어머니가 밀어주고, 샤워할때 속옷, 수건 모도 시어머니가 갖다준다고 합니다. 처음 듣는 순간 뒤통수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였죠.
그렇담 벌거벗고 있는 상태에서 문을 벌컥 열고 갖다 주는 그 장면이 계속 뇌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예요. 전 이 결혼 안한다고 발악을 했어요. 입장 바꿔 내가 샤워할때 우리 아버지가 들어와 씻겨 준다면 그것 이해할 수 있냐고 했더니, 어떻게 남자와 여자가 똑같냐는 거예요.
남편도 문제려니와 시엄이 문제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잠자리를 분리해주고 자기방 갖길 원하는데, 도저히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가 없었죠.
결혼후 베트남으로 바로 발령받아 떠났다가 친정엄마의 사고로 6월에 제가 한국에 들어와 있으며 시댁에 머물러 있으며 그동안 발견 못한 하나하나가 들어오게 되더라구요.
참을 수 없는 것은 저에겐 내색안다가 뒤에서 시누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는 행위를 전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용납을 할 수 가 없어요. 제가 아무리 잘해도 시어머니 눈에 만족할 리 있겠어요. 저또한 잘한거 없다는 것 잘 압니다. 하지만 불만 있거나 할말 있으면 당사지인 저에게 얘기 하지 뒤에 흉보며.... 왜 여자의 삶이 이래야 하는지, 남편이 귀국하고 그동안의 저에대해 모두 일러바쳐 역으로 남편이 저에게 화를 내더라구요.
아! 이제는 시어머니라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 얼굴도 보기 싫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다음주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는데, 돌아가서 엄마생각 않고 살아갈 자신이 점 솔직히 없네오.
그렇다고 남편이 일찍 들어와 함께 해주는 것도 아니고, 가정보다는 친구를 와이프보다는 술을 더 좋아하는 남자, 게으르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남자.
어제는 드디어 소주 한병 다마시고 이혼을 신중히 생각했답니다.
여자의 삶이 어차피 이런거라면 결혼이란건 왜 있는지...
그렇게 귀한 아들 천년 만년 옆에 끼고 살게 할까요.
오늘은 비도 오고 , 낙엽 밟으며 걸었지만 갈곳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