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휠체어 바퀴에 행복을 싣고...

나그네2003.11.20
조회29,052

난 물질적으로 가진 건 없어도 너무 행복합니다.

내 곁엔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죠.

지금 내게 무엇 하나 해주진 못해도 곁에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내를 바라보면 자꾸만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우린 비록 가진 건 없었지만 사랑이라는 믿음하나로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난 아내가 내게 해준 건 없어도 행복해했고, 아낸 제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처럼 아이 둘 낳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행복해 했구요.


그러던 중 친지들에게 부탁해 돈을 마련하여 조그마한 개인사업을 시작했죠.

열심히 일한 덕분인지 그런대로 순탄했습니다.

IMF가 터지던 그 해, 나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자금압박을 견디다 못해 사채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자는 자꾸 불어나고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부도를 내고 쫒기는 몸이 되었죠.

한달여 동안 계속되는 도피생활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도피생활 중 제일 힘들게 한건

지친 심신을 달래는 것보다 사람 없는 공허함을 달래기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잘 해결되었으니 집에 돌아오라고...

돌아와 보니 돈 되는 건 모두 다 경매처분 되고 아내와 자식들은 부모님과 같이 있더군요.

물론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집도 처분한 상태 였구요.

눈물이 나더군요.

그토록 보고 싶던 아내와 자식들을 오랜만에 보는 감격의 눈물이 아니라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에 눈물이 났습니다.

아니, 내 가정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대한 눈물이었는지 모릅니다.


집에 돌아온 난 며칠간 술로 생활을 했었죠.

견디기 힘들더군요.

정말 막막했습니다.

다시 일어서야 되겠다는 용기도 서질 않고....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그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밤, 난 그날도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현실과 미래에 대한 자괴심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오더군요.

내 뒤에서 두 어깨를 감싸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여보, 힘 내세요. 이게 어디 당신만의 잘 못인가요? 용기를 내서 보란 듯이 일어서세요.

난 괜찮으니 아이들을 봐서라도 힘을 내세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자신도 힘든 이런 상황에 날 위로해 주는 아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난 아무 말 없이 아내를 안아주었습니다.

무슨 말이 필요했겠습니까?

그렇게 난 소리 없이 마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날은 내 생에 잊지 못할 가슴 벅찬 날이었습니다.


이런 아내가 내 곁에 있는 한 아무리 힘든 고통과 시련이 따른다 해도 이겨낼 자신이 생겼습니다.

열심히 닥치는 대로 일하며 재기의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기를 3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비록 전세방 생활이었지만 우리들만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아이들 또한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물론 내가 노력한 결과도 있었겠지만 헌신적인 아내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죠.

내게 있어서 너무도 소중한 아내요, 버팀목 이었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가며 쓰러지는 절 지탱해 주었습니다.

같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날 더 걱정해 주었고

진정한 삶이 무엇인 지...

고귀한 사랑이 무엇인 지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의 일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아내는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날, 화장실에 가던 중 옆에 적재해 둔 물건이 갑자기 넘어오는 바람에

그만 척추를 다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보니 아내는 아픔에 못 이겨 거의 실신 상태였죠.

진찰결과 하반신 마비에다...언어장애까지...

언어장애는 지속적인 물리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돌아오지만

하반신은 체념하는 게 좋을 거라 하더군요.

눈 앞이 캄캄해 지더군요.

모든 것을 다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힘든 수술이 끝나고 아낸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의식을 되찾은 아내는 의미 없는 눈물만 흘리며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 지 자신만이 알고 있는 듯 계속 눈물만 흘리더군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왔습니다.


6개월의 병원생활을 끝내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자신의 운명...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인 지

집에 와서도 한동안 눈물만 흘리더군요.

그렇게 집 안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좀처럼 가시질 않았습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하고 전 더 밝은 얼굴로 아낼 대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아내에게 쏟았습니다.

낮엔 밖에서 일하고, 밤엔 집에 와서 집안 일 하고, 애들 돌보고....

심신은 극도로 피로해 갔지만 힘들다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아내 앞에서는...)


점점 야위어만 가는 아내를 쳐다보면서 뒤돌아서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아내 앞에서만큼은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의 이런 당당함이 아내의 어두운 얼굴을 점점 밝게 만들더군요.

비록,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이지만

손으로써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할려고 애쓰는 모습이었고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어눌한 말투로 고맙다는 말까지 해주는 아내를 보며

행복해 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시간...

이보다 더한 고통이 따른다 해도 전 아내를 사랑하렵니다.

아직 아내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내의 눈을 바라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힘든 세파에 찌들고 병마와 싸우는 세월동안 많이 꺼칠해진

아내의 손을 잡아보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젠 아내를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이내 눈엔 눈물이 글썽이고 대답은 없었지만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힘들어할 때 아무 말없이 버팀목처럼 지탱해 주던 아내...

이젠 제가 움직일 수 없는 아내의 지팡이가 되어 열심히 행복하게 살아가려 합니다.

상대방이 힘들어할 때 버팀목이 되어주고

사랑으로써 모든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게 부부가 아니던가요?


진정한 삶이...

행복이...

사랑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이 시간 조그마한 갈등으로 인해 등 돌리고 계신 부부들...

서로가 조금만 이해해 주시고 상대편에서서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갈등은 순간이고 행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아내는 남편을 가장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껏 한 번 안아주세요.

그러면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난 오늘도 아내의 외출을 위해 휠체어의 바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닦고 있습니다.

내가 닦은 그 바퀴로 그동안 아내가 겪어왔던 그 많은 고통과 아픔의 잔재들을

모두 밟고 지나가도록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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