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것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련하고 맘 아픈 사연을 적어보고자 해서입니다. *^^* 저희 아버지 제가 중학교 3학년때 재혼을 하시어 지금의 새엄마와 7년을 살고 계십니다. 제가 어린맘에 아버지 속을 썩힌 적도 많지만 ...........ㅠ.ㅜ 이번에도 아버지의 속을 썩혀 대학이란걸 가게된 저 정말 지금의 내자리가 사치라는걸 알지만 그래두 기쁜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저희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 저희 새어머니는 맘은 따뜻하시지만 가끔 맘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시곤 합니다. 저와 남동생 친엄마와 만남이 잦았거든요... 어릴때는 새엄마에게 그런 모진 말들이 듣는게 너무 싫어 저희 친엄마 정말 맘아프게 해드렸어요. 정작 모든 이에게 상처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나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두 지쳐하고 힘들어 하는걸 보면요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닌가 봅니다. 2000년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너무나 행복했었습니다. 아버지 저 미용기술이 아니면 공장에 보내려 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너무 못한것도 있었지만 그래두 나보다 못하는 애들도 대학을 다 가는데 그렇게 맘을 생각하다 보니 정말 사는게 괴롭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생각 전혀 해보지도 않고 아버지라고 저 대학보내기 싫은건 아니였겠죠. 제가 그렇게 속썩힐때 아버지 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저도 모진 딸이였나 봅니다. 2001년 사회생활이란게 너무나 내맘같지 않다는걸 알았습니다. 아직도 철부지인데 맘이 너무 힘들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잘 적응하지 못한점도 있겠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왜그렇게도 싫어지던지 ..ㅠ.ㅜ 그러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아버지께 공부한다고 하고 그렇게 싫어하는 친엄마와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랑 저랑 성격이 안맞는지 보기만 하면 자주 다투곤 했죠. 어렸을때 엄마한테 받은 상처도 많았었기에 그것두 한이 됐나 봅니다. 2003년 대학이란걸 왔습니다. 내가원하는 곳이 아니라 첨에는 너무 거부반응이였는데 지내다 보니 내가 어떻게 맘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가 바라는 열심히 하는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 그때는 왜 그렇게 아버지 걱정을 덜어 드리고만 싶던지 2003년 추석day 아버지께 속을 썩혀 드렸습니다. 파다듬는걸 도와드리다가 하시는 말씀 아버지께" 전화를 병신같이 받어",,,하시는 말씀에 저 그동안 싸인거와 함께 너무 화가났지만 한말씀 드리면 아버지가 넘 맘아프실것 같아. 감히 그렇게 하질 못했어요. 단 한마디밖에는 "아버지께 그러지 말아요." 저요. 저희에게 그렇게 욕해도 좋은데요. 저희 아버지 저희때문에 그렇게 욕먹고 사는거 정말 죽기보다 싫거든요. 그때는 차라리 내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아 졌답니다. 근데 엄마 하시는 말씀 " 니가 무얼 안다고 그러냐고 내가 내남편에게 병신 머저리같이 전화받는게 싫어서 그러는건데 니가 몬 참견이냐고?" 저요 그때 제가 왜 그렇게 주워온 자식같이 느껴지던지 저에 대해서 참 못마땅한게 많았나봐요. 제가 중학교때 끝까지 반대만 했어도 지금의 저희 아버지 그렇게 새어머니께 기죽어 지내지는 않을텐데.. 저희들이 새엄마께 잘못한게 그리도 많은건가요? 저 그래도 잘해드릴려구 노력했었는데 그런건 한줌 부질없더군요..항상 한때 뿐이였으니깐요. 정 그러면 그렇게 잘난 니엄마한테나 가라고 맘이 상당히 아프더군요. 저 그렇게 방에 들어가 짐싸고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너무억울해서요 ..그러면서 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죠. 지금은 저의 그 맹세의 일부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그집에 가면 아버지만 더 난처해지시고 제가 그렇게 도망치듯 가도 난처해지시는건 마찬가지 였지만 그래두 전 후자를 택했습니다. 안보면 그래두 아버지께 더 잘하겠지 싶은 맘에 2003년 추석지난 어느 일요일 저 대학에서 부족한건 많지만 대만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 전화 한통화 드렸죠 그런데 정작 받으시는건 자주 놀려오시는 내가 친분이 있는 언니의 아버지 새엄마 또 저목소리 들으면 한소리 하실것 같아 아버지께 저 연수간다고말씀 해달랬더니 엿듯고 계셨나봐요. 저희 새엄마 참으로 기가 막히더군요. 그럴거라곤 상상을 안했었는데 그때부터 쏟아지는 욕세레들.... 그래두 맘은 편했어요... 다신 그분 얼굴 보지 않아도 됀다고 생각하니 연수갈때두 아버지 편에 신세지는게 싫어 친엄마께 돈받아 연수갔습니다. 제가 모질게 나온건 있지만 그래두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 한사람이니깐 .....~^^ 지금은 이렇게 맘비우고 ...아버지 생각 조금하며 삽니다. 가장 외로울때 기억나는게 아버지니까요. 제 맘속에 비밀은 한움큼 돼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걷보기에는 번지르하니 속사정을 잘 모르겠죠. 그냥 허수아비처럼 웃고만 사니.. 그게 저또한 편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그편이 속편하니까요. 저 가끔 친엄마한테 그런 소리를 한답니다. 제가 조건은 안좋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결혼 안할지도 모르겠다고 ... 저희 엄마 그러지 말라고는 하는데 .........아마두 제맘속에 벽을 치고 살아야 할것 같습니다. 그편이 모든사람들이 행복해 할테니까요....그래서 지금도 그한사람이 친구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냥친구하자고 했거든요. ~~^^ 나중에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서 .....................그편이 좋은거겠죠. ..아직 저에게는 ..
맘속에 내리는 비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것은 마음 한구석으로 아련하고 맘 아픈 사연을 적어보고자 해서입니다.
저희 아버지 제가 중학교 3학년때 재혼을 하시어 지금의 새엄마와 7년을 살고 계십니다.
제가 어린맘에 아버지 속을 썩힌 적도 많지만 ...........ㅠ.ㅜ
이번에도 아버지의 속을 썩혀 대학이란걸 가게된 저 정말 지금의 내자리가 사치라는걸 알지만
그래두 기쁜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
저희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
저희 새어머니는 맘은 따뜻하시지만 가끔 맘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시곤 합니다.
저와 남동생 친엄마와 만남이 잦았거든요...
어릴때는 새엄마에게 그런 모진 말들이 듣는게 너무 싫어 저희 친엄마 정말 맘아프게 해드렸어요.
정작 모든 이에게 상처주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것 같습니다.
나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두 지쳐하고 힘들어 하는걸 보면요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닌가 봅니다.
2000년 고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너무나 행복했었습니다. 아버지 저 미용기술이 아니면 공장에 보내려 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너무 못한것도 있었지만 그래두 나보다 못하는 애들도 대학을 다 가는데
그렇게 맘을 생각하다 보니 정말 사는게 괴롭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생각 전혀 해보지도 않고 아버지라고 저 대학보내기 싫은건 아니였겠죠.
제가 그렇게 속썩힐때 아버지 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저도 모진 딸이였나 봅니다.
2001년
사회생활이란게 너무나 내맘같지 않다는걸 알았습니다.
아직도 철부지인데 맘이 너무 힘들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잘 적응하지 못한점도 있겠지만 그때는 사람들이 왜그렇게도 싫어지던지 ..ㅠ.ㅜ
그러면 안되는걸 알면서도 아버지께 공부한다고 하고 그렇게 싫어하는 친엄마와
같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랑 저랑 성격이 안맞는지 보기만 하면 자주 다투곤 했죠.
어렸을때 엄마한테 받은 상처도 많았었기에 그것두 한이 됐나 봅니다.
2003년
대학이란걸 왔습니다.
내가원하는 곳이 아니라 첨에는 너무 거부반응이였는데
지내다 보니 내가 어떻게 맘먹느냐에 따라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아버지가 바라는 열심히 하는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
그때는 왜 그렇게 아버지 걱정을 덜어 드리고만 싶던지
2003년 추석day
아버지께 속을 썩혀 드렸습니다.
파다듬는걸 도와드리다가 하시는 말씀 아버지께" 전화를 병신같이 받어",,,하시는 말씀에
저 그동안 싸인거와 함께 너무 화가났지만 한말씀 드리면 아버지가 넘 맘아프실것 같아.
감히 그렇게 하질 못했어요. 단 한마디밖에는 "아버지께 그러지 말아요."
저요. 저희에게 그렇게 욕해도 좋은데요. 저희 아버지 저희때문에 그렇게 욕먹고 사는거 정말 죽기보다 싫거든요. 그때는 차라리 내가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아 졌답니다.
근데 엄마 하시는 말씀 " 니가 무얼 안다고 그러냐고 내가 내남편에게 병신 머저리같이 전화받는게 싫어서 그러는건데 니가 몬 참견이냐고?" 저요 그때 제가 왜 그렇게 주워온 자식같이 느껴지던지
저에 대해서 참 못마땅한게 많았나봐요. 제가 중학교때 끝까지 반대만 했어도 지금의 저희 아버지 그렇게 새어머니께 기죽어 지내지는 않을텐데..
저희들이 새엄마께 잘못한게 그리도 많은건가요?
저 그래도 잘해드릴려구 노력했었는데 그런건 한줌 부질없더군요..항상 한때 뿐이였으니깐요.
정 그러면 그렇게 잘난 니엄마한테나 가라고 맘이 상당히 아프더군요.
저 그렇게 방에 들어가 짐싸고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너무억울해서요 ..그러면서 저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죠.
지금은 저의 그 맹세의 일부를 지키고 있습니다.
제가 그집에 가면 아버지만 더 난처해지시고 제가 그렇게 도망치듯 가도 난처해지시는건 마찬가지 였지만 그래두 전 후자를 택했습니다. 안보면 그래두 아버지께 더 잘하겠지 싶은 맘에
2003년 추석지난 어느 일요일
저 대학에서 부족한건 많지만 대만 연수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 전화 한통화 드렸죠 그런데 정작 받으시는건 자주 놀려오시는 내가 친분이 있는 언니의 아버지
새엄마 또 저목소리 들으면 한소리 하실것 같아 아버지께 저 연수간다고말씀 해달랬더니
엿듯고 계셨나봐요. 저희 새엄마 참으로 기가 막히더군요. 그럴거라곤 상상을 안했었는데
그때부터 쏟아지는 욕세레들....
그래두 맘은 편했어요... 다신 그분 얼굴 보지 않아도 됀다고 생각하니
연수갈때두 아버지 편에 신세지는게 싫어 친엄마께 돈받아 연수갔습니다.
제가 모질게 나온건 있지만 그래두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 한사람이니깐 .....~^^
지금은 이렇게 맘비우고 ...아버지 생각 조금하며 삽니다. 가장 외로울때 기억나는게 아버지니까요.
제 맘속에 비밀은 한움큼 돼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걷보기에는 번지르하니 속사정을 잘 모르겠죠. 그냥 허수아비처럼 웃고만 사니..
그게 저또한 편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그편이 속편하니까요.
저 가끔 친엄마한테 그런 소리를 한답니다.
제가 조건은 안좋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결혼 안할지도 모르겠다고 ...
저희 엄마 그러지 말라고는 하는데 .........아마두 제맘속에 벽을 치고 살아야 할것 같습니다.
그편이 모든사람들이 행복해 할테니까요....그래서 지금도 그한사람이 친구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냥친구하자고 했거든요. ~~^^
나중에 좋은 친구로 남고 싶어서 .....................그편이 좋은거겠죠. ..아직 저에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