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

김명수200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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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정원




모네의 정원

Monet's Garden at Argenteuil
1873; Oil on canvas, 61 x 82 cm; Private collection


모네가 살아 생전 열과 성을 다해 꾸며놓은 화단과 연못은
모네의 가장 이상적인 작품
혹은 가장 이상적인 팔레트라 할 수 있다.
많은 화가들이 유품으로 화구와 팔레트를 남겨놓지만
모네의 이 팔레트만큼 크고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모네의 정원

Japanese bridge
1899; Oil on canvas, 89 x 93.5 cm
Paris, Musee d'Orsay

모네의 정원은 모네의 남다른 빛과 색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화려하고 멋진
화가의 팔레트인 것이다.
그 어떤 물감이 이곳의 수많은 꽃들
그 이름조차 헤아리기 어려운
각양각색의 꽃들보다 아름다울까.
모네도 생전에 이 팔레트를 자랑하느라
많은 사람들을 일부러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모네의 정원

Japanese bridge
1900; Oil on canvas, 89 x 93 cm
Boston, Museum of Fine Arts


"이곳 전원은 무척 아름답습니다.
여기 와서 이 정원을 구경하라고 편지에 쓰고 싶었답니다.
정원은 지금이 한창때이니 한 번 와볼 만할겁니다.
보름 정도만 지나면 다 시들어 버리니까요."
(1900년 5월 모네가 귀스타브 젤프루아에게 쓴 편지)

모네의 정원
Haystack at Giverny
1886; Oil on canvas, 60.5 x 81.5 cm
State Museum of New Western Art, Moscow


한 미대 여학생에게 이곳을 꼭 가보라고 권했더니
급기야는 이틀을 연속해서 방문했단다.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도저히 단 하루만 보고
돌아설 수 없는 정원이었다고 한다.
여행객한테는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도 금쪽 같은 것인데
이틀이라는 시간을 온통 이 아담한 크기의 정원에 쏟았다는 것은
모네의 정원이 갖는 매력이 어떤 것인지를
생생히 전해주는 사례이다.

모네의 정원

Monet's Garden at Giverny
1895; Oil on canvas, 81.5 x 92 cm

그래서 반 데어 켐프라는 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네를 깊이 이해하고자 한다면
꽃으로 뒤덮인 지베르니의 성소를
순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면 그의 영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고
심지어 모네가 우리 가운데 살아 있는 듯한
상상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모네의 정원

Magpie
1868-69; Musee d'Orsay, Paris


모네 역시 살아 생전 정원에 나오면 때로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연못을 감상하곤 했다고 한다.

모네의 정원

Water Lilies
1906; Oil on canvas, 87.6 x 92.7 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수련 (1906년)

나도 그렇게 자꾸 정원의 풍경 속으로 이끌리는 경험을 하면서
이 다음에 혹시 전원주택을 짓고 살 수 있는 행운이
나에게도 찾아온다면, 집은 대충 짓고 살아도
정원만큼은 아름답게 꾸며 보리라 꿈꾸어 보았다.

모네의 정원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모네의 정원

모네는 인상주의의 효시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인상주의라는 말 자체가 모네의
걸작<인상, 해돋이>(1873)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네의 정원

Impression, soleil levant (Impression, Sunrise)
1873; Oil on canvas, 48 x 63 cm; Musee Marmottan, Paris

인상, 해뜨는 광경 (1873년)


"예술의 본질은 추구하지 않고 인상 같이
표피적인 부분만 추구한다'는 비아냥으로
루이 루르아라는 비평가가 지어준 이름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독한 편견이다.

모네의 정원

London: Houses of Parliament at Sunset
1903;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찰나의 빛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인상주의의 추구는
이를테면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유한성과 무한성의
경계를 동시에 넘나드는 추구이다.
그것은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계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모네의 개인적 경험에서도 우리는 그 같은 지향을
뚜렷이 읽을 수 있다.


모네의 정원

The Stroll, Camille Monet and Her Son Jean (Woman with a Parasol)
1875; Oil on canvas, 100 x 81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1879년 9월 5일 모네는 아내 카미유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그로서는 너무도 견디기 힘든 괴롭고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조강지처였던 아내 카미유

모네의 정원

Coquelicots (Poppies, Near Argenteuil)
1873; Musee d'Orsay, Paris


그 아내를 제대로 호강 한번 시켜주지 못한 남편 모네
그 날 그가 한 지인에게 편지를 보내
"마지막으로 아내의 목에 걸어주게 저당잡힌 아내의
메달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보노라면
어려운 시절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남자의
비통함과 쓸쓸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때 그는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매우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끌로드 모네 ( Claude Monet : 1840.11.14~1926.12.5 )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파리 출생. 소년시절 르 아브르에서 보냈으며, 18세 때 그곳에서 화가 로댕을 만나, 외광(外光)묘사에 대한 초보적인 화법을 배웠다. 19세 때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스위스에 들어가, 피사로와 사귀었다. 2년간 병역을 치르고 1862년 파리로 귀환, 글레르 밑에서 A.르누아르, A.시슬레, F.바질 등과 사귀며 공부하였다. 초기에는 G.쿠르베나, E.마네의 영향을 받아 인물화를 그렸으나 점차 밝은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렸다. 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때 런던으로 피신, 이때 J.터너, J.콘스터블 등의 영국 풍경화파의 작품들에 접했다. 이것은 명쾌한 색채표현이란 점에서 커다란 기술적 향상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72년 귀국,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살면서 센 강변의 밝은 풍경을 그려, 인상파양식을 개척하였다. 74년 파리에서 ‘화가·조각가·판화가·무명예술가 협회전’을 개최하고 여기에 12점의 작품을 출품하였는데, 출품된 작품 《인상·일출(日出)》이란 작품 제명에서 인상파란 이름이 모네를 중심으로 한 화가집단에 붙여졌다. 이후 86년까지 8회 계속된 인상파전에 5회에 걸쳐 많은 작품을 출품하여 대표적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편 78년에는 센 강변의 베퇴유, 83년에는 지베르니로 주거를 옮겨 작품을 제작하였고, 만년에는 저택 내 넓은 연못에 떠 있는 연꽃을 그리는 데 몰두하였다. 작품은 외광(外光)을 받은 자연의 표정을 따라 밝은색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는 대신 ‘색조의 분할’이나 ‘원색의 병치(倂置)’를 이행하는 등, 인상파기법의 한 전형을 개척하였다. 자연 속에서 광선의 변화를 정확하게 포착하려고 시신경을 집중시키면 시킬수록 태양의 광선은 다채로운 신기루처럼 가일층 찰나적인 변화를 거듭한다. 따라서 모네는 그러한 순간적인 변화를 순식간에 그리고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예리한 눈과 그것을 재빨리 정착시키는 수법이 필요로 했다. 모네의 인상주의는 그렇게 눈에 비쳐지는 '순간성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였던 것이다. 따라서 순간에 거는 그의 창조적 에너지는 생생하면서도 베일 속에 잠긴듯한 색채진동 그 자체가 순간을 사는 듯한 필치의 날쌤 속에서 약동한다. 그 결과 모네의 자연은 우리의 눈에 익혀온 자연이 아니라 둔감해진 우리의 망막에 강렬하고 생신한 햇살을 던져 주는 생동감 그 자체인 것이다. 1874년을 전후한 인상파 그룹의 동향은 그대로 모네의 예술적 전개 과정과 병행한다. 인상파 동료들이 채택한 순색과, 그 순색을 분할된 필촉으로 병치함으로써 광선을 하늘거림을 나타내는 기법, 즉 색채분할에 의한 색조의 시각혼합이 사용된다. 자연을 감싼 미묘한 대기의 뉘앙스나 빛을 받고 변화하는 풍경의 순간적 양상을 묘사하려는 그의 작화(作畵)의도는 《루앙대성당》 《수련(睡蓮)》 등에서 보듯이 동일주제를 아침·낮·저녁으로 시간에 따라 연작한 태도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소풍:The Picnic》 《강:The River》 등의 작품도 유명하며 만년에는 눈병을 앓다가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모네의 대표작


a. 아르쟝퇴이유 시대(1872-78)- 아르쟝퇴이유는 인상주의의 가장 활발한 활동 무대가 됨.

<아르쟝퇴이유의 범선>(1872), <아르쟝퇴이유의 다리>(1874)등 - 참신한 시각, 미묘한 분위기의 묘사, 강렬한 빛, 물 위에 어른거리는 햇빛과 반사광선의 사실적이면서도 시적인 묘사, 순수한 색채의 하모니라는 점에 있어서 특징지어진다. 터치는 점차 세분화되어 시각적 색채 혼합의 원리에 따라서 덧포개어진 작은 작은 쉼표부호들과 비슷한 것으로 되면서 인상주의 기법이 가장 완벽히 구사된다.
<생 라자르 역>(1876-77)-첫번째 연작이며 도시의 생활에서 주제를 빌어 왔다는 데에 또 다른 의의가 있다 할 것이며 동시에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끊임없이 다시 새로 생겨나는, 가장 미묘한 뉘앙스로 물들여졌다가는 이내 대기 속에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기차 연기 테마는 그 후 낟가리, 포플라길, 루앙 대성당, 수련 등의 연작에서도 추구된다. 즉 변모하는 순간의 모습을 동일 모티프를 통해 정착시키려는 시도와 직접 연계되는 것이다.


b. 베떼이유 시대(1878-81)

<베떼이유 풍경>-나란히 포갠 잘게 분할된 작은 터치로써 풀밭을 물결치게 하고, 나뭇잎을 뒤흔들며 물 표면에 주름을 일게 하는 바 람의 감각을 전하려 함.
<베떼이유 세느 강의 해빙>(1880)-사실주의적 인상으로써 그의 예민한 시 각은 이 움직이는 미묘한 순간들을 즉각 포착하며 동시에 그대로 화면에 정착시키는데 성공함.


c. 지베르니 시대(1883-1926)

<루앙 대성당>(1892-94)-모네의 눈에 비쳐지는 이 대성당은 새벽 햇빛에 장미빛과 진주빛 그리고 우유빛으로 반짝이고 또 대낮에는 백열하는 듯한 열기를 뿜어대는가 하면 해질 무렵에는 자색이 낀 푸르른 회색 속에 잠겨 든다. 이처럼 하루의 시간과 햇살에 따라 육중한 석조 건물은 거의 꿈결 같은 광선을 크고 작은, 분할되고 나란히 포개지고, 뒤엉클어지고, 두텁게 처리된, 또는 여기저기 응어리진, 얼룩진, 재료 그 자체를 암시하는 터치와 반점으로 뒤범벅된 일종의 암장과 같은 매개체에 의해 표현한다.
<수련>(1899-1926)-모네는 못의 수면과 그 위에 잠자듯 떠 있는 수련으로 광선과 색채를 전개시킨다. 못가의 버드나무의 그림자와 함께 하늘과 구름이 못 위에 내려 앉고 그것이 수면의 잎과 꽃과 어울려 허상과 실상이 혼연한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 하나의 상징적인 세계를 형성하며 번져 나간다. 그리하여 눈앞에 벌어진 대상은 차츰 그 구상적인 양상을 잃어 가며 마침내 풍성하고도 세련된 색채의 진동으로 빚어지는 광채로 물들여진 추상의 세계로 이행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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