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의 국경 요새인 영주성(營州城) 앞에는 고구려 최고의 정예군인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이 진을 치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수나라 군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韋沖)은 성루에서 며칠 동안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성 쪽을 주시하고 있는 고구려군의 진영을 살펴보았다.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 5천여명을 지휘하는 장수는 선봉장으로 나선 병마원수(兵馬元帥) 강이식(姜以式)과 호어사대(扈御使隊) 대장 온준(溫俊)이었다. 온준이 저 멀리 성루를 바라보며 강이식에게 말을 건넸다.
"원수님, 어제 저녁부터 진을 벌였으나 도무지 공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강이식은 태연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온준의 말을 받았다.
"허허허... 좀 더 기다려 보세."
"무얼 말이옵니까? 곧 저쪽에는 수나라 조정에서 보낸 지원군이 도착할 것입니다."
"알고 있네. 지금까지는 나와 대장군, 그리고 폐하 외에는 군략을 알 수 없게 하였네. 그러나 이제는 자네도 알아야 할 것 같군. 우리는 성을 함락시키러 온 것이 아닐세."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의 목표는 애송이 양량(楊諒)이 이끄는 수나라의 본대일세. 그들을 요하(遼河)로 유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야. 본격적인 전투는 요하에서 벌어질 걸세."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럼 이 모든 군략이 다 대장군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는 겁니까?"
온준이 경이롭다는 표정을 짓자, 강이식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어두워지는 대로 퇴각 준비를 하게. 우리는 적군과 싸우다가 패퇴하는 척 하며 요하까지 도망쳐야 하네."
"알겠습니다."
고구려군 진영에서 강이식이 온준에게 군략을 일러주는 동안, 영주성 후문에서는 치루산(置樓山)에서 조의들의 기습 공격으로 혼쭐이 난 한왕(漢王) 양량(楊諒)의 대군이 도착해 있었다.
양량이 영주성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위충이 후문까지 나가 양량을 영접했다.
"어서 오십시오, 한왕(漢王) 전하(殿下)! 소신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韋沖)..."
양량은 위충의 군례를 무시하고 성루로 올랐다. 제장들 역시 양량을 따라 성루로 올라가 멀리 고구려군 진영을 주시하였다.
양량이 손을 들어 전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이 고구려 놈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본진은 요택 가운데 세워놓고 선봉군이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고구려왕(高句麗王)이 직접 왔다고 들었는데, 그 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아직 보이지 않사옵니다."
"총관은 영주성에 부임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
"이제 막 오년이 조금 넘었사옵니다."
양량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을 흘기며 질책했다.
"우리 본군이 영주에 오다가 치루산에서 매복에 걸려 큰 곤욕을 치뤘다. 대체 변방의 관리를 어떻게 해 온 것인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쨌든 적병들은 우리가 다 해결했어. 그리고 적병이 저기 눈앞에 와 있는데 무얼 망설이고 있는 건가?"
"예, 전하! 부장들은 나를 따르라."
위충은 부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루 계단을 내려가 말에 올랐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출정 준비를 갖추게 하고는 성문을 열어 고구려군 진영으로 나아갔다.
"원수님, 적군이 성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온준이 성문을 열고 벌판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나라 군사들을 보고 소리쳤다.
강이식은 엷은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이제 우리의 군략을 펼칠 때가 되었다. 온준 장군은 우리 병사들에게 세를 벌이되 바로 후퇴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명령하게. 적장은 내가 직접 상대하겠네."
위충이 부하 장수들의 시립을 받으며 고구려군 쪽을 향해 장검(長劍)을 내뻗었다.
"나는 영주총관 위충이다. 고구려왕은 어디 있느냐?"
강이식이 미첨도(眉尖刀)를 비껴 들고 위세를 보이며 외쳤다.
"작은 싸움에 어찌 폐하까지 납시겠느냐? 폐하께서는 본진에 계시느니라. 보아하니 우리 둘 다 머리가 백발이구나. 가히 적수가 되겠다. 어떤까? 우리 둘이 먼저 시전(始戰)을 벌여보는 것이..."
"허허허... 나도 비록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너보다는 젊고 체력이 왕성하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앞으로 나서라."
"좋다. 자, 간다!"
양편 군사들이 마주 선 상태에서 두 장수는 말을 몰아 서로 어울려 맹렬한 접전(接戰)을 벌였다. 위충(韋沖)의 장검(長劍)과 강이식(姜以式)의 미첨도(眉尖刀)가 허공에서 난무하며 수를 놓았고, 두 마리의 군마(軍馬)가 서로 엇갈릴 때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우렁한 고함 소리가 울렸다. 두 장수의 결투는 어느덧 40여합을 넘어섰고, 접전을 지켜보는 양편 군사들은 손에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성루에서 결투를 보고 있던 양량은 벌컥 화를 내었다.
"저 늙은이들이 도대체 뭐하는 게야? 싸우라고 내보냈더니 둘이 장난질만 하고 있지 않은가?"
고경(高經)이 말했다.
"양군이 서로의 적정을 탐색하는 것이옵니다. 영주총관 위충은 무예가 뛰어난 노장이옵니다. 잠시, 두고 보심이....."
"그 무슨 한가한 소리요? 저렇게 꾸물거릴 게 무어 있나? 상대는 고작 수천의 군사야. 한꺼번에 대군을 내게. 일거에 요택까지 파도처럼 쓸면서 들어갈 필요가 있어."
"하오나, 전하..."
양량은 고경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 시끄럽소. 내가 앞설 것이야. 성문을 열라고 하게."
"예, 전하. 성문을 열어라! 전군은 대오를 갖추어라!"
왕세적(王世績)이 양량의 지시에 따라 군사들을 정비하고 성문을 열었다.
한참을 싸우던 두 장수는 성문에서 들리는 함성을 듣고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수십만의 병사들이 성문에서 쏟아져 나와 고구려군 진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강이식이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위충에게 말했다.
"대장부의 약속이 허망하구나. 우리의 비무(比武)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군사를 낸단 말인가? 다음에 보자."
강이식은 자신의 병장기(兵仗器)를 거두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위충은 강이식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밀려오는 양량의 군사들을 돌아보았다.
"전하, 아직 승부를 못 보았습니다. 전장에서는 약속이 중요한 법인데, 이리 하시면 소장이나 우리 군사가 형편없는 군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위충이 자신에게 불만을 터뜨리자 양량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약속은 무슨 얼어죽을 약속...? 전장이 무슨 늙은이들의 놀이터인 줄 아는가? 저리 비켜라. 적군을 몰아 붙여라!"
"진격하라!"
양량과 왕세적의 지휘에 따라 수나라 군사들이 새까맣게 몰려나갔다. 고구려군은 강이식이 진 안으로 들어오자 일제히 화살을 날리며 수나라 군사들의 접근을 저지했다.
"쏴라!"
온준이 소리치자 숱한 화살들이 비오듯 날아갔고, 수나라의 기병들이 무수히 거꾸러졌다.
"여기는 이만하면 되었다. 온 장군, 기마 궁수로 하여금 엄호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퇴각시키게."
"알겠습니다. 기마 궁수들은 저들을 막으라! 전군, 퇴각하라!"
강이식과 온준의 신속한 통솔에 힘입어 고구려의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은 일제히 뒤로 물러나며 적병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고구려 놈들이 도망친다. 어서 뒤쫓아라!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아니 된다."
양량은 군사들을 몰아 고구려군을 향해 거센 추격을 시도하였다. 온준은 궁수들과 함께 도망치면서 마상(馬上)에서 상체를 돌려 궁시(弓矢)를 쏘았다. 앞서 달리던 기병 수십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수나라 군사들은 추격 속도를 늦추었다. 양량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도대체 저것들이 사람이란 말인가? 어떻게 달리는 말 위에서 돌아서서 활을 쏠 수 있지? 그리고 쏘는 족족 백발백중(百發百中)이지 않은가? 참으로 귀신 같은 놈들이로다!"
멍청하게 서 있는 양량의 눈 앞으로 고구려의 개마기사단은 이미 저만큼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고구려군이 달아난 쪽으로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영주성 근처에서 고구려군과 초전(初戰)을 치른 수나라 군사들은 곳곳에 화톳불을 피워 놓고 휴식을 취했다. 추위로 인해 사람과 말들이 흰 김을 내뿜고 있었다. 양량은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제장들에게 말했다.
"공격을 계속 해야 하지 않는가?"
왕세적이 양량의 말에 동감하며 나섰다.
"명령을 내려 주시옵소서. 놈들은 이미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습니다."
신중한 고경이 주변의 지형을 살피며 말했다.
"이곳부터는 요택 지역에 속합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늪과 갈대 숲입니다. 늪이야 다 얼어있어서 괜찮지만 잘못하면 곳곳에 퍼져있는 갈대밭 때문에 화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양량이 다시 짜증을 내며 반박했다.
"이보시오, 지금 화공 따위가 두려워서 추격을 멈춘단 말이오? 바람이 어디로 불고 있소? 고구려군 쪽으로 불고 있어요. 불이 나면 제 놈들이 타죽을 터인데,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위충이 걱정하면서 고경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우리 군대가 지난 뒤에 불이 붙으면 역시 우리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소이다. 천지가 우리 군대인데 누가 뒤에서 불을 낸단 말이오? 전투란 승기를 잡았을 때 몰아붙이는 법이오. 왕 총관..."
"예, 전하!"
왕세적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고구려군 본진으로 가는 길이 두 곳이라 하니 군사를 둘로 나눌 것일세. 나는 곧장 적이 도망친 이 길을 맡을 것이니 왕 총관은 위충 장군과 우회하여 나를 돕도록 하게."
"예, 전하!"
양량은 군사들에게 휴식을 끝내고 다시 행군 준비를 하도록 명령했다.
"고구려왕을 사로잡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다. 모두 진군하라!"
고경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그들 앞으로 드넓은 갈대밭이 바다처럼 펼쳐졌다.
한편, 이러한 수나라 군사들의 움직임은 고구려군 척후병에 의해 본진에 있는 영양태왕(嬰陽太王)과 을지문덕(乙支文德)에게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부장들과 함께 잠시 작전을 의논하던 을지문덕은 전령의 보고를 받고 곧장 영양태왕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폐하, 지금 양량의 군대가 순조롭게 우리의 전략대로 움직여 주고 있다 하옵니다. 군대를 둘로 나누어 각기 두번째 지점을 지난다고 하옵니다."
영양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조의군도 치루산에서 취한 적군의 화살 십여만발을 샛길을 이용하여 요하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들었는데..."
"예, 그렇습니다. 또한 욕사(褥奢) 연태조(淵太祚)가 장인(匠人)들을 요하로 이동시켜 준비된 발석기(發石器)를 조립하게 해서 적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래, 만약 저 조의선인들이 없었다면 우리 고구려는 어찌 되었을꼬? 짐은 그 생각만 해도 아찔하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진정한 무사들이옵니다."
"그리고 짐은 그대를 만나게 된 것을 하늘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 저 서토(西土)에서 존경받고 있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다시 살아 나온다 해도 을지 장군만큼은 아니 될 것이오. 지금까지 모든 일들이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소. 마치 적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앞을 내다보고 이런 전략을 세운 것 같은데, 참으로 감탄스럽소."
영양태왕의 칭찬에 을지문덕은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폐하, 과찬이시옵니다. 아직 전투의 결과는 끝맺지 않았사옵니다. 이제 요하로 가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곧 양량의 군대가 도착할 것이옵니다."
전쟁역사소설「장군과 제왕」5.요하(遼河)의 싸움 (6)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 5천여명을 지휘하는 장수는 선봉장으로 나선 병마원수(兵馬元帥) 강이식(姜以式)과 호어사대(扈御使隊) 대장 온준(溫俊)이었다. 온준이 저 멀리 성루를 바라보며 강이식에게 말을 건넸다.
"원수님, 어제 저녁부터 진을 벌였으나 도무지 공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 된 일입니까?"
강이식은 태연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온준의 말을 받았다.
"허허허... 좀 더 기다려 보세."
"무얼 말이옵니까? 곧 저쪽에는 수나라 조정에서 보낸 지원군이 도착할 것입니다."
"알고 있네. 지금까지는 나와 대장군, 그리고 폐하 외에는 군략을 알 수 없게 하였네. 그러나 이제는 자네도 알아야 할 것 같군. 우리는 성을 함락시키러 온 것이 아닐세."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의 목표는 애송이 양량(楊諒)이 이끄는 수나라의 본대일세. 그들을 요하(遼河)로 유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야. 본격적인 전투는 요하에서 벌어질 걸세."
"그런 것이었습니까? 그럼 이 모든 군략이 다 대장군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는 겁니까?"
온준이 경이롭다는 표정을 짓자, 강이식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어두워지는 대로 퇴각 준비를 하게. 우리는 적군과 싸우다가 패퇴하는 척 하며 요하까지 도망쳐야 하네."
"알겠습니다."
고구려군 진영에서 강이식이 온준에게 군략을 일러주는 동안, 영주성 후문에서는 치루산(置樓山)에서 조의들의 기습 공격으로 혼쭐이 난 한왕(漢王) 양량(楊諒)의 대군이 도착해 있었다.
양량이 영주성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위충이 후문까지 나가 양량을 영접했다.
"어서 오십시오, 한왕(漢王) 전하(殿下)! 소신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韋沖)..."
양량은 위충의 군례를 무시하고 성루로 올랐다. 제장들 역시 양량을 따라 성루로 올라가 멀리 고구려군 진영을 주시하였다.
양량이 손을 들어 전면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이 고구려 놈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본진은 요택 가운데 세워놓고 선봉군이 나와 있는 것 같습니다."
"고구려왕(高句麗王)이 직접 왔다고 들었는데, 그 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아직 보이지 않사옵니다."
"총관은 영주성에 부임한 지 얼마나 되었는가?"
"이제 막 오년이 조금 넘었사옵니다."
양량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눈을 흘기며 질책했다.
"우리 본군이 영주에 오다가 치루산에서 매복에 걸려 큰 곤욕을 치뤘다. 대체 변방의 관리를 어떻게 해 온 것인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쨌든 적병들은 우리가 다 해결했어. 그리고 적병이 저기 눈앞에 와 있는데 무얼 망설이고 있는 건가?"
"예, 전하! 부장들은 나를 따르라."
위충은 부하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루 계단을 내려가 말에 올랐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출정 준비를 갖추게 하고는 성문을 열어 고구려군 진영으로 나아갔다.
"원수님, 적군이 성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온준이 성문을 열고 벌판으로 쏟아져 나오는 수나라 군사들을 보고 소리쳤다.
강이식은 엷은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이제 우리의 군략을 펼칠 때가 되었다. 온준 장군은 우리 병사들에게 세를 벌이되 바로 후퇴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명령하게. 적장은 내가 직접 상대하겠네."
위충이 부하 장수들의 시립을 받으며 고구려군 쪽을 향해 장검(長劍)을 내뻗었다.
"나는 영주총관 위충이다. 고구려왕은 어디 있느냐?"
강이식이 미첨도(眉尖刀)를 비껴 들고 위세를 보이며 외쳤다.
"작은 싸움에 어찌 폐하까지 납시겠느냐? 폐하께서는 본진에 계시느니라. 보아하니 우리 둘 다 머리가 백발이구나. 가히 적수가 되겠다. 어떤까? 우리 둘이 먼저 시전(始戰)을 벌여보는 것이..."
"허허허... 나도 비록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너보다는 젊고 체력이 왕성하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앞으로 나서라."
"좋다. 자, 간다!"
양편 군사들이 마주 선 상태에서 두 장수는 말을 몰아 서로 어울려 맹렬한 접전(接戰)을 벌였다. 위충(韋沖)의 장검(長劍)과 강이식(姜以式)의 미첨도(眉尖刀)가 허공에서 난무하며 수를 놓았고, 두 마리의 군마(軍馬)가 서로 엇갈릴 때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우렁한 고함 소리가 울렸다. 두 장수의 결투는 어느덧 40여합을 넘어섰고, 접전을 지켜보는 양편 군사들은 손에 진땀을 흘렸다.
그러나 성루에서 결투를 보고 있던 양량은 벌컥 화를 내었다.
"저 늙은이들이 도대체 뭐하는 게야? 싸우라고 내보냈더니 둘이 장난질만 하고 있지 않은가?"
고경(高經)이 말했다.
"양군이 서로의 적정을 탐색하는 것이옵니다. 영주총관 위충은 무예가 뛰어난 노장이옵니다. 잠시, 두고 보심이....."
"그 무슨 한가한 소리요? 저렇게 꾸물거릴 게 무어 있나? 상대는 고작 수천의 군사야. 한꺼번에 대군을 내게. 일거에 요택까지 파도처럼 쓸면서 들어갈 필요가 있어."
"하오나, 전하..."
양량은 고경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 시끄럽소. 내가 앞설 것이야. 성문을 열라고 하게."
"예, 전하. 성문을 열어라! 전군은 대오를 갖추어라!"
왕세적(王世績)이 양량의 지시에 따라 군사들을 정비하고 성문을 열었다.
한참을 싸우던 두 장수는 성문에서 들리는 함성을 듣고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수십만의 병사들이 성문에서 쏟아져 나와 고구려군 진영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강이식이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위충에게 말했다.
"대장부의 약속이 허망하구나. 우리의 비무(比武)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군사를 낸단 말인가? 다음에 보자."
강이식은 자신의 병장기(兵仗器)를 거두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위충은 강이식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다가 밀려오는 양량의 군사들을 돌아보았다.
"전하, 아직 승부를 못 보았습니다. 전장에서는 약속이 중요한 법인데, 이리 하시면 소장이나 우리 군사가 형편없는 군대로 보일 수 있습니다."
위충이 자신에게 불만을 터뜨리자 양량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약속은 무슨 얼어죽을 약속...? 전장이 무슨 늙은이들의 놀이터인 줄 아는가? 저리 비켜라. 적군을 몰아 붙여라!"
"진격하라!"
양량과 왕세적의 지휘에 따라 수나라 군사들이 새까맣게 몰려나갔다. 고구려군은 강이식이 진 안으로 들어오자 일제히 화살을 날리며 수나라 군사들의 접근을 저지했다.
"쏴라!"
온준이 소리치자 숱한 화살들이 비오듯 날아갔고, 수나라의 기병들이 무수히 거꾸러졌다.
"여기는 이만하면 되었다. 온 장군, 기마 궁수로 하여금 엄호하게 하고 나머지는 모두 퇴각시키게."
"알겠습니다. 기마 궁수들은 저들을 막으라! 전군, 퇴각하라!"
강이식과 온준의 신속한 통솔에 힘입어 고구려의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은 일제히 뒤로 물러나며 적병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고구려 놈들이 도망친다. 어서 뒤쫓아라! 한 놈도 살려 보내서는 아니 된다."
양량은 군사들을 몰아 고구려군을 향해 거센 추격을 시도하였다. 온준은 궁수들과 함께 도망치면서 마상(馬上)에서 상체를 돌려 궁시(弓矢)를 쏘았다. 앞서 달리던 기병 수십명이 화살에 맞아 쓰러지자, 수나라 군사들은 추격 속도를 늦추었다. 양량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도대체 저것들이 사람이란 말인가? 어떻게 달리는 말 위에서 돌아서서 활을 쏠 수 있지? 그리고 쏘는 족족 백발백중(百發百中)이지 않은가? 참으로 귀신 같은 놈들이로다!"
멍청하게 서 있는 양량의 눈 앞으로 고구려의 개마기사단은 이미 저만큼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고구려군이 달아난 쪽으로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영주성 근처에서 고구려군과 초전(初戰)을 치른 수나라 군사들은 곳곳에 화톳불을 피워 놓고 휴식을 취했다. 추위로 인해 사람과 말들이 흰 김을 내뿜고 있었다. 양량은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제장들에게 말했다.
"공격을 계속 해야 하지 않는가?"
왕세적이 양량의 말에 동감하며 나섰다.
"명령을 내려 주시옵소서. 놈들은 이미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습니다."
신중한 고경이 주변의 지형을 살피며 말했다.
"이곳부터는 요택 지역에 속합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늪과 갈대 숲입니다. 늪이야 다 얼어있어서 괜찮지만 잘못하면 곳곳에 퍼져있는 갈대밭 때문에 화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양량이 다시 짜증을 내며 반박했다.
"이보시오, 지금 화공 따위가 두려워서 추격을 멈춘단 말이오? 바람이 어디로 불고 있소? 고구려군 쪽으로 불고 있어요. 불이 나면 제 놈들이 타죽을 터인데,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위충이 걱정하면서 고경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나 우리 군대가 지난 뒤에 불이 붙으면 역시 우리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소이다. 천지가 우리 군대인데 누가 뒤에서 불을 낸단 말이오? 전투란 승기를 잡았을 때 몰아붙이는 법이오. 왕 총관..."
"예, 전하!"
왕세적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고구려군 본진으로 가는 길이 두 곳이라 하니 군사를 둘로 나눌 것일세. 나는 곧장 적이 도망친 이 길을 맡을 것이니 왕 총관은 위충 장군과 우회하여 나를 돕도록 하게."
"예, 전하!"
양량은 군사들에게 휴식을 끝내고 다시 행군 준비를 하도록 명령했다.
"고구려왕을 사로잡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다. 모두 진군하라!"
고경은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다가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그들 앞으로 드넓은 갈대밭이 바다처럼 펼쳐졌다.
한편, 이러한 수나라 군사들의 움직임은 고구려군 척후병에 의해 본진에 있는 영양태왕(嬰陽太王)과 을지문덕(乙支文德)에게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부장들과 함께 잠시 작전을 의논하던 을지문덕은 전령의 보고를 받고 곧장 영양태왕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폐하, 지금 양량의 군대가 순조롭게 우리의 전략대로 움직여 주고 있다 하옵니다. 군대를 둘로 나누어 각기 두번째 지점을 지난다고 하옵니다."
영양태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조의군도 치루산에서 취한 적군의 화살 십여만발을 샛길을 이용하여 요하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들었는데..."
"예, 그렇습니다. 또한 욕사(褥奢) 연태조(淵太祚)가 장인(匠人)들을 요하로 이동시켜 준비된 발석기(發石器)를 조립하게 해서 적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래, 만약 저 조의선인들이 없었다면 우리 고구려는 어찌 되었을꼬? 짐은 그 생각만 해도 아찔하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진정한 무사들이옵니다."
"그리고 짐은 그대를 만나게 된 것을 하늘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 저 서토(西土)에서 존경받고 있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다시 살아 나온다 해도 을지 장군만큼은 아니 될 것이오. 지금까지 모든 일들이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소. 마치 적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앞을 내다보고 이런 전략을 세운 것 같은데, 참으로 감탄스럽소."
영양태왕의 칭찬에 을지문덕은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폐하, 과찬이시옵니다. 아직 전투의 결과는 끝맺지 않았사옵니다. 이제 요하로 가셔야 할 것 같사옵니다. 곧 양량의 군대가 도착할 것이옵니다."
"그리하세."
영양태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 위에 오르자 을지문덕은 부장들과 장졸들에게 외쳤다.
"이제 요하로 간다. 군영을 거두어라."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김병호 著「고구려를 위하여」하서출판사編(1998년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