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필라델피아의 구두수산업자 조셉 캘링거는 끔직한 일련의 범행에 자신의 아들을 공범으로 삼았다.
1936년에 태어난 캘링거는 갓난아기 때 버려져, 18개월일 무렵 오스트리엘리아 출신의 부부에게 입양되어 가혹하게 매질을 당했다. 그는 망치로도 맞았으며, 6세때는 탈장 수술을 받은 뒤 장차 성기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거라는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2년 후 그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소년들에게 칼로 위협을 받았고, 윤간을 당했다.
그가 자라면서 불안한 정서를 지닌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춘기때 캘링거는 칼을 손에 쥐고 포르노 사진을 찌르며 자위를 했다. 평생 방화광이었던 그는 쾌락과 이익을 얻기 위해 불을 질렀따. 건물이 불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광적인 기쁨에 빠져들기도 했으며, 또 보험금을 타기위해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두 차톄 짧은 기간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졌던 캘링거는 여성을 극도로 증오하는 정신분열적 사디스트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만 대체로 그는 정상인처럼 행세를 할수있었다. 두 차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둔 캘링거는 필라델피아 켄싱턴 지역에서 구두 수선 가게를 열었으며, 겈보기에 신망있는 자영업자처럼 행세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그의 가학적인 폭력성이 여지없이 드러났으며, 그의 자녀들이 주로 대상이었다. 1972년 초, 아이들 셋이 그를 학대죄로 고소했다. 그중 한명인 13세의 딸 메리조는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서 빨갛게 달군 주걱으로 허벅지에 낙인을 찍혔다고 주장했다. 캘링거는 유죄가 확정되어 철장신세를 지었지만, 몇달후 집행유해로 풀려났다.
1974년애 그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여러 증상이 나타났고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 특히 보이지 않게 떠다니는 '찰리'라는 이름의 어린 소년들을 죽이고 거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13세였던 아들 마이클에게 그 미친 명령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청했고 소년은 아버지의 뜻을 기꺼이 따랐다. 1974년 7월 7일, 그들은 한 푸에르토리코 소년을 버려진 공장으로 유인해 옷을 벗기고 양말을 입에 물린다음 음경을 잘라냈다.
그 다음 희생자는 캘링거의 12살짜리 아들 조이였다. 캘링거는 마이클이 지켜보는 가운데 버려진 양탄자 공장의 지하실에 괴어있는 웅덩이에 어린 아들을 익사시켰다.
1974년 11월부터 캘링거와 그의 아들은 광범위한 강간과 강도 행각을 벌였고, 뉴저지와 펜실베니아, 네릴렌드의 주택에 침입해 여자들을 강간하고 돈과 보석을 빼앗았다. 9개월간의 범행이 최고조에 댈했을때 다음과 같은 끔찍한 일화가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뉴저지 주의 레오니아에 있는 주택에 침입하여 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해 8명의 묶었다. 이째 캘링거는 21세의 여인의 목을 째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여인에게 다른 남자의 희생자의 음경을 물어뜯으라고 시켰는데 그녀가 거절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2주뒤 캘링거와 아들은 체포되었다.
마이클은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져 감화원에 보내졌고,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이후 석방 되었다. 캘링거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그는 급격한 신경쇠약 증세를 나타냈고, 자신을 신이라 주장 아며 세상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배설물에 강박적으로 집착해 변소에서 식사를 했고, 오물을 몸에 칠하는가하면, 떠 편지에 담아 부치기까지 하였다. 그는 1996년 3월 26일 57세의 나이에 노졸증으로 죽었다..
살인자 가족 (캘링거 가족)
1970년대 초, 필라델피아의 구두수산업자 조셉 캘링거는 끔직한 일련의 범행에 자신의 아들을 공범으로 삼았다.
1936년에 태어난 캘링거는 갓난아기 때 버려져, 18개월일 무렵 오스트리엘리아 출신의 부부에게 입양되어 가혹하게 매질을 당했다. 그는 망치로도 맞았으며, 6세때는 탈장 수술을 받은 뒤 장차 성기가 영원히 자라지 않을 거라는 조롱에 시달려야 했다. 2년 후 그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소년들에게 칼로 위협을 받았고, 윤간을 당했다.
그가 자라면서 불안한 정서를 지닌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춘기때 캘링거는 칼을 손에 쥐고 포르노 사진을 찌르며 자위를 했다. 평생 방화광이었던 그는 쾌락과 이익을 얻기 위해 불을 질렀따. 건물이 불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광적인 기쁨에 빠져들기도 했으며, 또 보험금을 타기위해 집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두 차톄 짧은 기간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졌던 캘링거는 여성을 극도로 증오하는 정신분열적 사디스트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만 대체로 그는 정상인처럼 행세를 할수있었다. 두 차례 결혼을 해서 자식을 둔 캘링거는 필라델피아 켄싱턴 지역에서 구두 수선 가게를 열었으며, 겈보기에 신망있는 자영업자처럼 행세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그의 가학적인 폭력성이 여지없이 드러났으며, 그의 자녀들이 주로 대상이었다. 1972년 초, 아이들 셋이 그를 학대죄로 고소했다. 그중 한명인 13세의 딸 메리조는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서 빨갛게 달군 주걱으로 허벅지에 낙인을 찍혔다고 주장했다. 캘링거는 유죄가 확정되어 철장신세를 지었지만, 몇달후 집행유해로 풀려났다.
1974년애 그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여러 증상이 나타났고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 특히 보이지 않게 떠다니는 '찰리'라는 이름의 어린 소년들을 죽이고 거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13세였던 아들 마이클에게 그 미친 명령을 수행하는데 도움을 청했고 소년은 아버지의 뜻을 기꺼이 따랐다. 1974년 7월 7일, 그들은 한 푸에르토리코 소년을 버려진 공장으로 유인해 옷을 벗기고 양말을 입에 물린다음 음경을 잘라냈다.
그 다음 희생자는 캘링거의 12살짜리 아들 조이였다. 캘링거는 마이클이 지켜보는 가운데 버려진 양탄자 공장의 지하실에 괴어있는 웅덩이에 어린 아들을 익사시켰다.
1974년 11월부터 캘링거와 그의 아들은 광범위한 강간과 강도 행각을 벌였고, 뉴저지와 펜실베니아, 네릴렌드의 주택에 침입해 여자들을 강간하고 돈과 보석을 빼앗았다. 9개월간의 범행이 최고조에 댈했을때 다음과 같은 끔찍한 일화가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뉴저지 주의 레오니아에 있는 주택에 침입하여 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해 8명의 묶었다. 이째 캘링거는 21세의 여인의 목을 째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여인에게 다른 남자의 희생자의 음경을 물어뜯으라고 시켰는데 그녀가 거절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2주뒤 캘링거와 아들은 체포되었다.
마이클은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져 감화원에 보내졌고,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이후 석방 되었다. 캘링거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그는 급격한 신경쇠약 증세를 나타냈고, 자신을 신이라 주장 아며 세상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배설물에 강박적으로 집착해 변소에서 식사를 했고, 오물을 몸에 칠하는가하면, 떠 편지에 담아 부치기까지 하였다. 그는 1996년 3월 26일 57세의 나이에 노졸증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