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에게 (2004년 10월 18일)
25원짜리 힘은 나중에 말을 해주고 오늘은 잠시동안 내가 미국에 있을 때에 대학교 내에서 있었던 일들을 말을 해줄께요.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에 아무도 없는 미국의 대학교 내에서 몇몇 학생들만이 그저 식당 내에 휴계소에서 있었답니다. 나는 무슨 일을 도와주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바람이 몹시 불어서 그런지 모두 우울 하더군요. 그런데 아무도 자동 판매기에서 따뜻한 커피나 기타 차를 빼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거에요. 그런데 나도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나는 나를 데리러 오는 자동차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25센트짜리 몇개가 있었는데 혼자 핫 초코렛을 자동 판매기에서 빼서 먹기가 조금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핫 초코렛이 먹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자 자동 판매기 앞에 가서 25센트짜리 동전을 집어 넣었는데 핫 초코렛이 나오고 동전은 그냥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계속해서 동전을 판매기에 집어 넣고 먼저 동전을 회수한 다음에 핫 초코렛을 또 빼고 그랬지요. 대학교 내에 있는 학생들이 있는 숫자대로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동전을 넣지 않아도 그냥 스위치만 누르면 다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평상시에 동전만 먹었던 판매기에게 그동안 나의 동전을 먹은 액수대로 다 뺀다고 하고 더 많이 뺐어요. 그리고 그날 대학교 내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핫 초코렛과 커피 타임을 즐기게 해 주었지요. 그런데 그 판매기가 계속해서 무료로 나온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어요. 나도 내가 기억한 만큼에 나의 동전에 액수 만큼만 커피와 핫 초코렛을 가져 왔구요.
조금 더 뽑은 것이 있다면 추운 겨울 저녁에 옆에서 고생하는 청소부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옆에서 마무리 청소 작업을 하고 있기에 몇잔 더 뽑아서 주었지요. 그랬더니, 생큐 하더라구요.
그래서 사실대로 말을 했지요. 자동 판매기 주인인 학교에서 주는 따뜻한 커피이고 우정이라고
말이에요. 한번은 미국에서 공중전화를 거는데 (25센트)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콜렉트 콜로 전화를 하려고 하고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었는데 갑자기 공중 전화에서 25센트 짜리가 우르르 떨어지는 거에요. 근데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는데 마구 주위를 살피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일단은 25센트 짜리를 마구 주었지요. 그리고 아무리 둘러 보아도 누구에게 이 돈을 전달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일단 전화를 걸려고 다시 공중 전화에게 25센트 하나를 돌려 주었지요.
그랬더니 통화가 끝난 다음에 수화기를 내려 놓았더니, 또 25센트 짜리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주위를 살피지 않고 그냥 마구 줏었지요. 그래서 이 공중 전화가 배가 너무 나와서 소화 불량인가 싶더라구요. 그래서 소화를 시키기 위해서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가 내려 놓았더니, 또 와르르 나오는 거에요. 그래서 그 공중 전화를 완전히 소화불량에서 해방되게 만들어 주고 소화를 완전히 시켜 주었어요. 그리고 이 동전들을 어떻게 반환하냐고 옆에 있는 편의점에 다가 물어 보았더니, 갑자기 얼굴 색깔과 표정이 달라지더니, 눈치를 살피더라구요.
아마도 그 동전들을 자신의 편의점에 맡긴다는 나의 말을 기다린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한참 있다가 나의 전화번호를 남겨주고 공중 전화에 동전을 회수하러 오면 연락을 달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표정이 참으로 독특하더군요. 연락이 오지 않기에 나중에 그 편의점을 다시 들려서 물어 보았더니, 이야기를 했는데 그 사람이 웃으면서 말을 하기를 그 동전들은 그 사람이 임자라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데요.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더 많은 피해를 볼뻔했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25센트짜리 추억이 있답니다. 미국에서요.
다음에는 25원에 우표의 힘에 대해서 다시 말을 해 줄께요.
가까운 친구들이 떠났으니, 몹시도 그립겠군요. 사실 전화나 인터넷이 있어서 가까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떠난다는 말과 생각으로 몹시도 우울해 하고 다시는 못 볼것 같은 표정과 마음을 순간적으로 갖게 되지요. 근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지겹다고 할 정도로 앵앵 거리는 소리가 들릴 거에요. 아마도 미국에서 많이 힘들테니까, 무조건 힘들다고 투덜투덜 될거에요.
그러니 너무 우울해 하지 말아요. 곧 여자 친구가 피앙새가 되는 군요. 약혼자를 피앙새라고 하지요. 나는 피앙새라는 단어가 웬지 몹시도 좋아요. 그저 단어도 예쁘고 약혼자라는 단어에 많은 뜻들이 마음을 설레게 하죠. 내가 기댈 곳이 있고 책임을 져야 할 곳도 있고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며 그 속에 구속이 되었다는 포근함까지 모두 포함 되어 있으니까요.
내가 군대에 있을 때에 이야기를 해주죠. 나는 미군들과 함께 있었어요. 카츄사는 아니고 미군들과 협조하는 한미 연합사라는 곳에 있었지요. 그래서 동두천에 있는 캠프케이시 미군 부대에
MID 라는 특수 부대에 (보안,정보 부대에) 따로 있었답니다. 많은 미군들과 접척을 할 수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스페인 출신에 미군을 가끔씩 생각을 한답니다. 대개 미군이 한국에 오는 것은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원을 해서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전쟁터와 똑 같은 월급과 생명 수당과 같은 특수 급여를 받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미군은 아내와 어린 아들을 미국에 놔두고 온 사람이었어요. 우연히 같은 막사와 장소에서 근무를 하다가 보니, 휴일 같은 때에 같이 앉아서 맥주나 기타 과자 같은 것을 막사 밖에서 즐기다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나의 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지 몇 마디 나누다가 금방 자신의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보여 주더군요. 그리고 많이 가까워 졌어요. 그 곳에서 장교를 비롯한 나이가 많은 군인부터 젊은 미군까지 나와 많이 친했어요. 무엇이 그렇게 그 군인들로 하여금 나와 가깝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몹시도 정중하게 대해 주었답니다. 물론 나도 그러했지만 말이에요. 근데 그 스페인 출신에 미군이 어느 날인가 저녁 때에 웬 한국 여자들과 (이상한 여자들) 함께 막사에 (잠자는 곳) 들어가는 거에요. 술이 잔뜩 취해서 몇몇 미군들과 함께요.
그 다음부터 나는 그 친구랑은 말을 하지 않고 무시를 했었지요. 몇달이 흐른 후에 그 친구가 나 보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느냐고 묻길레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 하다가 의자에 앉으라 고 하고 같이 앉아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내가 가장 아끼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가 죽었다구요. 그랬더니, 놀래면서 주가 죽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계속 말을 했지요. 그 친구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또한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식들과 아내를 내버려 두고 죽었다구요. 그랬더니 그 스페인 출신에 미군이 깜짝 놀라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두번 다시는 그 스페인 출신에 군인은 다른 미군들과 함께 술을 먹으며 이상한 짓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오는 모든 월급과 돈은 군에서 바로 바로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으로 보내게 했데요. 그런데 이 친구가 자신이 먹을 음식 값만 (식사 값만) 남겨 두고 모조리 자신의 가족이 있는 집으로 월급을 보내라고 해서 몹시도 부족하게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되니 같이 군무하는 군인이 술을 한번 사면 자신도 사야만 하는데 사줄 수가 없는 거에요. 그렇다고 거지처럼 얻어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가 먹는 음식을 줄였어요. 나도 미군들과 함께 같은 카페테리아 (미군 식당) 에서 쿠폰을 가지고 식사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한끼나 두끼는 그 친구가 먹게 했지요. 그리고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라면이나 기타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었구요. 그래도 서로 웃으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답니다. 그리고 그 스페인 친구의 아들이 생활에 변화가 있으면 제일 먼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곤 했지요. 마치 나의 아들과 같았어요.
그리고 그 친구가 군대 임기를 마치고 미군 비행기로 미국으로 돌아갈 때에 자그마한 파티가 있었나 본데, 우연스럽게도 나는 한국군 부대에 비상이 걸려서 아무대도 나가지를 못했어요.
새벽이 되어서야 비상이 풀려서 나가 보았더니, 그
그 친구가 떠날 준비를 다 해가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거에요. 그것도 쿠킹 호일에 자신의 파티 때 준비했던 음식들을 조금씩 담아서 말이에요. 그리고 눈물을 글썽 거리면서 말을 하더군요.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친구라고 그리고 많이 그리워 할거라고 말이에요. 마침 새벽에 미군 군용기가 떠나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랬죠. 나도 곧 제대를 하고 미국에 갈 것이니, 그 때 보면 된다구요. 그랬더니, 서운했는지 홧, 홧 하더라구요. 참으로 어린 아이같은 마음을 가진 좋은 친구였어요. 저질에 미군 친구들만 없으면 잘 될 수가 있는 그런 친구였지요. 그런데 얼마나 급하게 떠났는지, 미국에 자신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기 않고 그냥 갔어요. 그래서 내가 미국에 갔을 때에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 친구 얼굴은 잊혀지지 않아요. 그 친구에 부인과 사랑스러운 아들도 말이에요. 가끔씩 그 친구 부인이 남편에게 편지를 쓰면서 나의 안부도 적어 보내고 그리고 고맙다는 글도 적어서 함께 보내 주었는데 말이에요. 여하튼 멀리 떠난다고 조바심 내고 우울하면 친구 주소나 전화번호도 못 받아요. 그러니까 우울해 하지 말고 조바심도 내지 말아요. 아마도 내가 부대에 있을 때에 분명히 편지가 왔을텐데 그 미군들이 모조리 바뀌어서 나에게 제대로 오지 못한 것 같아요. 그리고 몇몇 장교들과 미군들을 빼고는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군이지요. 그래서 내가 미군 부대에 있을때에 미군들도 못들어가는 비밀에 사무실도 나는 편안하게 ''하이'' 하면서 드나 들었어요. 나와 서로 존중하면서 사귀었던 친구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다 장교들이고 그리고 군에서 계급으로도 상대를 할 수가 없는 특수 부대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모든 미군들이 나에게는 특별 대우를 했답니다. 카츄사 아이들은 맨날 나한테 와서 부탁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카츄사들도 많이 편하게 해주었지요. 그러나 카츄사들이 잘못하는 것은 내가 먼저 야단을 쳤으니까 별로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에요. 그 사람들 인생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겠지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내가 미군들에게 부탁해서 배려해 주었으니까요. 그대신 더 많은 청소와 일들을 하게 했지요.
그것도 카츄사들에게는 공부가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미군 부대에 서류 일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다 특수 영어이고 생활 영어 이니까요. 그리고 중요한 문서나 비밀 문서는 미군들이 카츄사들이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해요. 만일 카츄사들이 서류 근처에만 가면 바로 헌병이 와요. 그것도 특수 부대 헌병이요. 그러니 부담 가질 이유도 없이 얼마나 편안하게 영어 공부들을 했겠어요. 한번은 한국군이 군용 물품을 뻬돌리다가 군부대에 비상이 걸리자 들통이 났어요.
그래서 구경만 하다가 훈련은 해야만 하니까, 나중에 미군 장교들에게 부탁을 해서 얻어다가 훈련을 하게 했지요. 그것도 아주 생소하고 불가능한 일이었답니다. 그래서 그 나이 많았던 미군 장교 친구도 잊지 못한답니다. 그 친구가 언제나 즐겨 마셨던 것이 ''스카치 앤드 워터'' 였어요.
나도 먹어 보았더니, 거의 물이고 스카치는 몇방울 떨어트린 것이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나도 스카치 앤드 워터를 많이 찾았지요. 그런데 체질상 술은 거의 마시지 않는답니다. 미국에 5년 동안 있을 때에는 거의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조금 우울하고 허전한 것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네요. 다음에는 진짜 25원짜리 우표에 파워에 대해서 말을 해 줄께요.
조금 야해서 올리기는 그렇지만 내가 군대에서 일을 했을 때에 찍은 사진을 함께 올려 놓을께요. 1986년도니까, 우리 딸이 몇살 때인가, 모르겠네.
이웃에게 (2004년 10월 18일)
출처 : Tong - aloan님의 이웃에게 (딸에게)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