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피 막 - 4

살인교수200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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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막

 

피막(避幕) : 예전에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안치해 두는 마을에서 떨어진 외딴집

 

황사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 하나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황사장의 물음에 처녀 보살은 눈을 감았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허공을 살피는 듯했다.
"그 하나는……."
보살이 주문을 외우듯이 들릴까 말까한 소리로 말했다.
"인간이 아냐."
"옛?!"
"공포와 두려움의 존재야. 인간들의 의식을 위협하고 갉아먹는 끔찍한 녀석이야. 그 녀석 때
문에 결국,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야! 차례차례 다!"
황사장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정말로 자신의 이성이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갉아 먹히
고 있는 듯했다. 검고 무거운 어떤 것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뇌를 엉망으로 망쳐놓는
기분이었다.
그는 뭔가 하소연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장을 바라보았다.
이장은 마치 보살의 심중을 간파했다는 듯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이내 황사장과 눈을 맞추며 조용히 말했다.
"이보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귀신을 불러내는 일 따윈 그만두는 게 좋을 걸세. 처녀
보살님은 지금 우리에게 최후의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일세."
이장의 눈에는 마을 전체의 안위부터 한 사람의 생명까지 모두 걱정하고 있는 진심이 담
겨 있었다.
황사장은 난감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장이 그저 훼방이나 놓으려고 찾아온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장과 처녀 보살이 경고하듯 내뱉는 말들에 강한 호소력이 내포되
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미 그의 마음은 반 이상 그들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자신의 그런 마음이 바로 문제였다.
지금 와서 귀신이 우리 모두를 죽인다고 하니 다 그만 둡시다, 라고 말할 처지가 그는 못
되었다. 강회장과의 이번 사업 건은 그에게 굉장히 중요했다. 잘만 성사되면 엄청난 돈을 벌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 내야만 했다. 그에겐 그럴 만한 절실한 사정이 있었다.
나이 서른 다섯이 넘어서 결혼한 그는 자기 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아내를 맞이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었다고 믿었다.
아내에게선 늘 은은한 라벤더 향이 났다. 특히 그녀는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근사했다. 그녀가
웃을 때면 그 자체로 그녀는 라벤더 꽃이 되었다. 황사장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너무나 사
랑했다. 그녀가 보석으로 몸을 치장하거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고급 음식을 먹을 때마다 라
벤더처럼 화려하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녀를 계속해서 그렇게 웃게 해 주고 싶었다.
그는 라벤더 향에 취하듯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
황사장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경제적으로 중산 가구이상이 누리는 것들은 다 누리고 살았다.
그러기에 항상 남부러울 게 없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그와 생각하는 바가 틀렸
다. 그녀는 욕심이 많고 물질주의를 은근히 지향하는 여인이었다. 그 문제로 시간이 흐를수
록 그와 그녀 사이에 골이 생겨갔다. 그녀는 항상 자신의 화병에 한 송이의 꽃이 더 필요하
다고 말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그 한 송이는 황사장의 일년 치 수입을 모두 털어 부어도 채
울 수 없는 한 송이였다.
마침내 아내는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황사장은 그녀의 화병에 모자라는 한 송이
의 꽃을 채워주고자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능력으론 더 이상 아내를 만족
시켜 줄 수 없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자각하기에 이르렀
다. 경제적 박탈감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도 느꼈다. 그의 아내가 그런 것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는 웃음을 잃은 아내의 얼굴에서 자, 보세요, 당신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죠, 결국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어요, 라고 질책하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황사장은 도박과 복권에 빠져들었다. 한 달 수입 모두를 복권이나 마권을 사는데 탕
진했다. 빠찡코와 카지노를 제 집 드나들 듯 했으며 거액의 고스톱판을 벌이기도 했다. 아내
가 원하는 부족한 한 송이를 위해 그는 거의 전 재산을 도박으로 날려버렸다. 그에게 남은
것은 엄청난 빚과 차압 딱지뿐이었다.
그 즈음 아내는 황사장에게 얼음처럼 차가워져 있었고 밖으로만 나돌았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황사장의 거래처 사람 중 한 명인 김승표에게 노골적인 호감을 보였다.
김승표는 총명한 벤처 사업가로 IP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젊은 재벌이었다. 황사장의 아내
는 김승표의 궁궐 같은 집에서 그와 함께 수영과, 승마, 골프를 즐겼다. 와인도 마셨다. 그녀
는 김승표에게서 모자란 한 송이를 채우려는 듯했다. 적어도 그녀의 화병이 더 커지지만 않
는다면.
황사장은 날로 피폐해져 가는 자신이 싫었다. 그의 머릿속에 아직 남아 있는 이성이 답을
말해주었다. 뒤를 돌아보면 된다고. 그는 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할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본다면 자기보다 훨씬 가지지 못한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러기에는 자신의 의지가 너무 많이 감정에 지배당해 있었다. 그는 아내를 되
찾아 와야만 했다. 그녀의 라벤더 향에 흠뻑 취해버린 그는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
려면 뒤를 보아서는 안 되었다. 자기 보다 가난하고 돈이 없는 자들을 보며 위안이나 하고
있어서는 아내를 찾아올 수 없었다. 자신이 절대로 도달 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을 바라보아
야 했다. 아무리 자신의 손으로 허우적댄들 결코 붙잡을 수 없는 먼 곳, 그 곳에 아내가 원
하는 한 송이의 꽃이 있기 때문이다.
"이보게 황사장. 어서 중지하도록 하게."
이장의 나직한 음성이 황사장의 귓가에 속삭이듯 울렸다. 긴 생각에서 돌아온 황사장은 잠
시 이장을 바라보다 다시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강주민의 골프장 건설 계획의 중개를 맡은 황사장은 우선 이렇다 할 근거도 없이 떠도는 피
막 전설의 진위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강령술로 명성이 자자한 조진선을 어렵
게 초빙했다. 그는 그녀가 귀신이나 저주의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만약 정말로 귀신이 있다
면 위령제를 통해 귀신의 원한을 달래주고 어떤 저주도 남아 있지 않게끔 해주길 바랬다.
피막만 헐린다면 곧바로 골프장 건설에 들어갈 수 있을 테고 차질 없이 일만 잘 마무리되면
그에게 떨어지는 보수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빚도 갚을 수 있고 김승표에게로 간
아내도 찾아 올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황사장으로선 이번 일에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황사장은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이장을 똑바로 보았다.
"이장님……."
그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얘기했다.
"이번 일은 저에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제 인생이 걸린 문제입니다. 골프
장 건설을 성황리에 성사시키지 못하면 저는 길바닥에 나앉아야 합니다. 제발 그만 두라니
그런 말씀은 말아 주세요."
말을 하는 그의 눈빛에 다부진 각오가 느껴졌다.
"여기에 골프장을 짓자면 우선 이 피막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 피막을 그대로 두고는 골
프장을 지을 수 없습니다. 저 역시 피막에 오랜 저주와 원한이 전해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
습니다. 그 동안 사람들이 꽤 죽거나 다쳤다는 것도 압니다. 그것이 우연한 사고였는지 피막
의 저주였는지는 모르는 일 입니다만, 불길한 장소인 것만은 사실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전
문가를 불러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하는 겁니다. 여기 계신 보살님의 말씀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저희들 입장도 고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교수님은 심령학 분야에 최고
권위자십니다. 그건 이미 학계에서 인정받은 사실입니다. 섣부른 치기가 아닙니다. 지켜봐 주세요, 제발. 제가 두 분께 진심으로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이장과 처녀 보살은 거의 동시에 한탄 어린 탄식을 지었다.
이장은 황사장에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씁쓸한 표정으로 황사장의 어깨를 몇
번 두드린 후 그에게서 멀어졌다.
처녀 보살은 별안간 바닥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하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황사장은 처녀 보살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짧게 덧붙였다
"솔직히, 보살님께서 친히 와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냥 계시기만 해 주셔
도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경의를 표했지만 보살은 여전히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뭔가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
고 있었다. 황사장은 이미 축축해진 손수건으로 이마와 코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참 힘들다,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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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장이 발걸음을 몇 걸음 옮겼을 때 조진선이 나타났다. 조진선의 갑작스런 등장에 황사
장은 흠칫 놀라며 멀거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의 놀라는 반응이 재미있었던지 조진선은
보기 좋은 미소를 지었다. 황사장은 문득 그 미소가 아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래요? 저들?"
조진선은 황사장에게 몸을 가까이 접근한 후 속삭이듯 물었다. 그녀에게서 향긋한 과일 향
수 냄새가 났다. 기분 좋은 냄새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미세하게 니코틴 냄새가 났
다. 그 냄새는 싫었다.
"왜 저렇고 있는 거예요?"
그녀가 더 가까이서 얘기하자 니코틴 냄새는 더 심해졌다. 조진선은 자신의 입에서 니코틴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담배를 못 피우는 황사장은 니코틴 냄새가
몹시 싫었다.
그가 우유한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리자 조진선은 대충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는 논쟁거리에서 승리한 자의 거만한 도취감 같은 게 엿보였다.
"척 보기에 좀 이상한 사람 같았어요. 저 처녀 보살이라는 여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약간 실
성한 사람 같아요. 정말 저 여자가 그렇게 신통한 무당인가요?"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황사장이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녀는 멋대로 떠들어댔다.
"그렇죠? 제가 보기에도 좀 사이비 같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물정에 어두운 아주머니들이나
등쳐먹으며 비싼 부적이나 팔아먹을 여자로 보였어요. 제가 관상도 좀 볼 줄 알거든요. 저
여자 인상을 보면 딱 사기꾼 상이에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우선 이마
가……."
"저, 교수님!"
황사장은 그녀의 말을 자르며 화제를 돌렸다.
"강신술은 언제쯤 하시는 게 좋겠습니까?"  
"예?! 강신술요?"
그녀는 허를 찔린 사람처럼 급격히 바뀌어 버린 화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황사장
의 얼굴만 멀거니 바라보다가 이내 정리가 된 듯 차분하게 얘기했다.
"조금 후에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원래 밤에 해야 하는데 비가 이렇게 내리니 밤이나 다름
없네요."
그녀는 황사장이 어째서 자신에게 미미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
전 대화에서 분명 황사장은 자신이 그에게 보인 호의에 못 미치는 태도를 보였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특별히 필요한 준비물은 없나요?"
"뭐,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것은 없어요. 촛불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렇게 사방에 늘려있으니
됐고. 제가 집중 할 수 있도록 모두들 조용히 해주기만 하면 되겠네요."
그녀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 채 차갑게 말했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역시 강주민이었다.
자신이 황사장과 얘기하는 동안 강주민은 장기사와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뭐야? 당장 돌아가겠다고?"
강주민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턱을 거칠게 어루만졌다. 그것은 자신이 상대에게 굉장히
못마땅해 있음을 알릴 때 하는 동작이었다. 그것을 장건영은 알고 있었다. 뻔히 알고 있으면
서도 완강한 고집을 피우는 장건영의 태도가 강주민은 몹시 거슬리고 불쾌했다.
"그래서 지금 다들 고생하는데 혼자만 빠지겠다 이거야?"
"전 설계사입니다. 제가 이 곳에서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강주민은 장건영의 지나치게 깔아 앉은 목소리도 기분 나빴다. 그의 얼굴은 촛불의 역광 때
문에 검게 보여 표정을 잘 읽을 수가 없었다.
강주민은 짜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할 게 왜 없어, 이 사람아. 이제 조금 있으면 교수님께서 강령술을 할 텐데 이 것 저 것 준
비해야 할 게 있단 말야! 그리고 일 이란 건 찾으면 얼마든지……."
"정확히 제가 할 일이 뭡니까?"
강주민은 장건영이 자신의 말을 자른 것이 대단히 기분 나빴다.
"자네 지금 내 말을 자르고……."
"커피 심부름 따위 말고 제가 할 일이 뭡니까? 말해 보십시오."
장건영은 재차 강주민의 말을 잘라버렸다.
"뭐?! 아니 이 사람이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계속 내 말을……."
"시키실 일, 없으신 거 같은데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이 아들 생일이라 저녁 시간만큼은
즐겁게 보내야겠습니다! 헛되이 보내버린 오전 오후 시간을 아들에게 보상해 주어야 하니까
요!"
"아니 근데 이 사람이 뭘 잘못 먹은 거 아냐? 감히 누구한테 대드는 거야 지금! 모가지 잘
리고 싶어!"
강주민은 차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피막 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장인하의 시선도 아버지와 고함을 지르는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가와 싸우
고 있다는 사실이 치가 떨리도록 무서웠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 이렇게 낯선 장소에 갇
힌 듯이 있는 것도 무서웠다. 천장 밑에 걸린 이상한 인물화들도 자꾸 무서웠고 어둠 속에
서 흔들거리는 촛불의 움직임도 무서웠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서운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년은 구석으로 가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에게 늙은 이장이 다가왔다. 이장은 소년의 심정
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어깨를 감싸주었다. 낯선 이의 손길이었지만 소년은 그의 손이 무척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무서운 감정이 한결 가시는 듯했다. 소년은 이장에게서 자신의 외할아
버지를 연상시켰다. 유난히 소년을 귀여워하고 소중히 보살펴 주셨던 외할아버지는 삼 년
전 트럭에 깔려 돌아가셨다. 공을 잡으러 차도로 뛰어든 소년을 구해내고 대신 희생된 것이
다. 소년은 고개를 들어 이장을 쳐다보았다. 뭔지 모를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소년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나직이 중얼거리는 이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리석은 어른들 때문에 어린것만 고생하는 구나."
그 때 강주민의 벼락같은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 자식이 지금 누구한테 까부는 거야. 우리 아버지한테 그 동안 잘 보였다 그거지? 그래
서 눈에 뵈는 게 없다? 좋아, 두고 봐! 네가 우리 아버지 덕을 계속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말야! 너 지금 나가면, 내가 책임지고 잘라버릴 거야! 알겠어? 어디 나가봐! 네 그 잘난 아
들 녀석하고 가서 케이크나 실컷 처 먹어봐, 어디!"
그의 말이 점점 더 과격해졌다.
장건영은 강주민이 자신의 아들을 들먹인 데 대해 겉잡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의 팔
뚝이 목석처럼 단단해졌다. 그의 두 눈에서 파란 불꽃같은 것이 이글거렸다. 그 눈빛은 믿어
지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강주민은 그런 장건영에게서 새삼 오싹한 공포를 체감했다. 그가 자신에게 저토록 분개한
모습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금방이라도 거대한 주먹이 날아와 자신을 피투성이로 만들 것
같아 두려웠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하찮게 여긴 별 볼일 없는 녀석에게서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는 사실
이 치욕스러웠다. 폭발할 듯한 폭력의 위압감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고는 있지만 자신에게
이토록 비참한 감정을 맛보게 한 장건영이 이루 말 할 수 없이 괘씸하고 저주스러웠다. 그
는 늘 자신의 발 밑에서 허리를 굽혀야만 하는 존재인데 저토록 악마 같은 모습을 보이니
속에서 뜨거운 용광로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분위기가 더 험악해지기 전에 황사장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황사장은 우선 강주민을 진정시켰다. 그를 조진선 곁으로 보내어 그녀에게 맡긴 후 다시 장
건영에게로 갔다. 그는 장건영의 팔을 잡으며 애원하듯 달랬다.
"장기사님, 제발 진정하시고 참아주세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 지금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보
십시오, 완전 폭우지 않습니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데 운전하다가 사고라도 나시면 어떡
하시려고요. 그러니 가시더라도 조금만 더 계시다가 가세요. 그리고 강령술이니 하는 거 그
저 형식적인 의례에 불과합니다. 삼 십분도 안 돼서 끝날 겁니다. 아니, 이 십분도 안 걸릴
겁니다. 그쯤 되면 비도 지금 보다는 좀 누그러져 있겠지요. 부탁드립니다. 이번 사업 건이
제게는 아주 중대합니다. 불화가 생겨서는 안됩니다."
황사장은 자신에게 처한 급박한 사정까지 애절하게 실어 사태가 악화되지 않길 간청했다.
피막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비와 바람이 만드는 위력적인 이중주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지붕과 벽을 때리는 빗줄기는 커다란 자갈들이 떨어지며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언뜻 이 세상이 멸망하고 있는 듯한 암울함 마저 들었다.
이윽고 침묵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저기…… 여기 좀 보세요!"
가느다랗게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곧바로 시선이 모아졌다.
이유미였다.
"여기…… 이 방에 누군가 있나 봐요."
촛불의 빛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어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만으로 그녀
가 굉장히 다급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둠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 얼굴
은 분명 파랗게 질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빠…… 무서워…… 저 방에 분명히 누군가가 있어……!"
유미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간신히 움직여 박철준의 품으로 달려갔다.
얼떨결에 유미를 안아버린 철준은 몹시 당혹스러웠다. 바로 뒤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조교수를 생각하니 뒤통수가 따가웠다.
철준은 황급하게 유미를 떼어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저 방에 누가 있다는 거야?"
유미가 다시 그에게 안기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이야, 오빠! 분명히 문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금이 그런 시시한 장난이나 칠 때야! 너 왜 괜히 따라와선
말도 안돼는 헛소리나 지껄이는 거야!"
철준은 유미의 긴박해 보이는 얼굴과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일부러 단호하게 호통쳤다.
"정말이라니까!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저 문을 열어봐! 열어보면 되잖아!"
그녀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에 피막 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가 가리킨 방 쪽으로 모아
졌다.
방은 여전히 밖으로 관건 된 상태 그대로였다.
철준은 유미를 밀쳐내고 방을 향해 다가갔다.
방 위에 붙은 인물화 속의 얼굴들이 귀신처럼 그를 응시했다. 밖에서는 연이어 번개가 번쩍
였다. 지구를 조각 내는 듯한 엄청난 천둥소리도 뒤를 이었다.
조금씩 다리가 떨려왔으나 철준은 용기를 내어 손을 뻗었다. 한 손에 든 촛불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피막 5에서 계속... by 살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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