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 국악인 집안 ‘가야금 쌍둥이’ 일냈다

동화속으로200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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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집안 ‘가야금 쌍둥이’ 일냈다

우리나라 대표 국악인 집안 ‘가야금 쌍둥이’ 일냈다

트로트 음반 낸 이예랑.사랑 자매

“가야금 강요한적 없지만 자연스레 대이어
제가 못이룬 꿈들 두 딸이 이어 뿌듯”

“가야금 스승 우리엄마 10년전부터 열린교육
공연있는 날이면 수업빠지고 콘서트장으로…”

“우연히 만난 정의송 선생 덕분에 가요계 입문
데뷔 반대했던 엄마가 이젠 가장 큰 조력자”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있다. ‘외부의 자극을 받아 마음에 감동이 인다’는 것인데 마음(心) 속에 현악기(琴)가 있어 그 줄이 공명(共鳴)한다는 비유이니 그럴 듯하다. 이 모녀, 특별하다. 심금을 한 핏줄 안에 나눠 가졌다. 예향 전주에서 가야금 하는 어머니와 이모들에게 둘러싸여 자란 쌍둥이 자매가 다시 나란히 가야금을 들었다.

전주에서 태어난 이예랑, 이사랑(26)은 국악과 가야금으로 뭉친 쌍둥이 자매다. 어머니 변영숙 씨 역시 가야금 지도자.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야금을 시작했다. 호는 옥계인데 가야금 소리가 맑은 옥과 시냇물 소리 같다며 은사가 지어줬다. 일명 옥계 선생이다. ‘선생’은 날씨가 덥거나 추우면 학교에 보내지 않을 만큼 딸을 애지중지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학교 안 가는 날엔 김치 담그고, 밥 짓고, 바느질 하는 걸 배워 좋았다는 옥계 선생은 호탕한 성격과 달리 딸들로부터 ‘시대착오적’이라 불리는 보수적인 어머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가야금을 든 모녀는 아름다웠다. 국악 집안에서 나온 국악 트로트 듀엣 가야랑과 그 어머니를 함께 만나봤다.

▶3초 만에 태어난 언니-동생 국악 신동과 엽기 어머니

듀엣 가야랑의 두 멤버, 예랑과 사랑은 3초 터울 자매다. “언니가 숨을 안 쉬어서 급히 제왕절개로 꺼내는 바람에 일곱 달 만에 함께 세상 빛을 봤죠. 저를 제치고 밑에 있던 언니를 서둘러 먼저 꺼내서 우리 언니가 된 거고요. 재밌죠?”

언니 예랑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주름잡던 차세대 가야금 주자. 대학생 최초로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여는가 하면 2005년 전국가야금대회에서 최연소 대통령상을 수상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동대학원에서 예술전문사 과정까지 마쳤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이수자로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동생 사랑 역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한국예술을 전공한 뒤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매는 단연 학교의 명물이었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외모도 출중한 데다 가야금도 잘 켜고 공부도 잘했으니…. 결정타는 어머니였다. 전주나 인근에 볼 만한 공연이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수업보다 체험이 중요하니 딸들을 데려가야겠다”며 다짜고짜 딸의 학교를 찾았다. 당연히 국악 명인이나 우아한 클래식 공연들이려니 했더니 그게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때 광주까지 저희를 데려갔고요. 김경호, 김종서 공연도 엄마 손에 이끌려 갔죠. 물론 국악이나 클래식 공연도 많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난데없이 자매의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발라주더니 갈 데가 있다며 길을 재촉했다. 지역 나이트클럽이었다. 플로어로 가서 듬직한 청년들에게 속삭였다. “저기 쟤들하고 좀 놀아줘. 우리 딸들인데. 공부밖에 모르는 범생이들이야. 재밌게 놀아줘.”

대물림을 위해 가야금을 강요했던 것도 아니다. 예랑은 고1 가을에야 가야금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나갔던 한밭전국가야금대회가 전환점이었다. 나가서 종일 가야금 소리를 듣고 있자니 푹 빠져들었다. 바로 그날 그 대회에서 1위를 했다. 그것도 대학 입학 특전을 주는 전국 1등이었다.

예랑은 자신이 가야금을, 동생 사랑이 국악 이론을 공부하면 최강의 국악 자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호주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동생에게 한국음악통사를 건넸다. 자매는 결국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나란히 입학했다. 예랑은 가야금, 사랑은 한국예술학과 음악학 전공으로. 음악인류학에 빠진 사랑은 졸업 후 서울대 인류학 대학원에 들어갔다.

▶국악계 슈퍼 엘리트 쌍둥이, 사고치다

촉망받는 국악계 인재들이 난데없이 가요계에 진출하겠다니 전주 토박이 옥계 선생의 심정은 어땠을까. 둘이 대중가요에 몸 담게 된 계기는 우연같이 찾아왔다. 대중가수의 연주를 도우러 TV 공개 방송에 나갔다가 한 작곡가의 눈에 띈 것. 작곡가는 연주가 끝나자마자 둘을 찾아와 가요계 진출을 제안했다. 예랑은 ‘사기꾼 아니냐’는 생각에 불쾌해하며 급히 자리를 피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트로트를 좋아했던 사랑은 ‘작곡가라면 무슨 곡을 만들었느냐’고 물었다. “글쎄, 제가 좋아하는 곡이 다 나오더라고요.” 김혜연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간 큰 남자’, 장윤정의 ‘첫사랑’ ‘어부바’, 박현빈의 ‘빠라빠빠’ 등을 만든 그는 21세기 트로트계 최고의 히트메이커 정의송이었다. 사랑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언니 예랑은 단호했다.

예랑까지 트로트 프로젝트에 합류한 계기는 2006년 월드컵이었다. 박현빈의 ‘빠라빠빠’를 들은 예랑은 마음이 누그러졌다. “대중의 코드를 정확히 읽어내는 면이 작곡가에 부러웠죠.” 1년 만에 찾아간 작곡가는 “언젠간 올 줄 알고 만들어왔습니데이”라며 타이틀 곡 ‘수리수리마수리’를 피아노로 연주했다. ‘딸들의 하얀 도화지에 어떤 먹물이 튈지 모른다’며 극구 반대하던 어머니도 연주 동영상을 보더니 막춤을 춰댔다. 신나는 세미트로트곡에 가야금 소리를 전방위에 배치해 독특한 국악 트로트를 들려준 것이 어머니를 사로잡은 이유였다.

▶가야금 집안, 괴짜 자매에게 희망을 걸다

이들은 지독한 국악 집안 출신이다. 시작은 자매의 어머니이자 집안의 장녀인 옥계 선생. 고 3 때 가야금 하는 친구의 영향으로 악기를 잡은 그는 여동생들도 모조리 국악의 길로 이끌었다. 동생 진심 씨는 클래식 소프라노를 전공한 뒤 국악으로 전향해 정가의 최고 권위자가 됐다. 성금 씨도 서양화를 전공하다 큰언니의 권유로 국악을 시작해 지금은 한양대 국악과 교수로 있다. 막내여동생 종혁 씨도 해금을 전공하고 현재 추계예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머니는 이제 조금은 독특한 쌍둥이에게 국악 집안의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가요계 진출에 반대했던 어머니가 지금은 최고의 조력자다. 2주 전부터는 아버지를 남겨 두고 상경해 세 모녀가 한 집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전국노래자랑을 비롯해 온갖 지역 축제와 공개방송의 노래대회에 다 나가서 1등상을 쓸어오는 아버지는 “우리 딸들 이제 전국노래자랑에서 보게 되는 거냐”며 싱글벙글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식사자리에서 딸들이 나온 TV 프로그램을 반짝이는 눈으로 보던 어머니가 말한다. “어쩜 제가 인간문화재도, 대학 교수도 아닌 그냥 평범한 가야금 선생이었기에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딸들이 엄마가 못한 걸 해주잖아요. 얘들이 제 자랑이에요.” 늘 자매와 티격태격하는 ‘엽기엄마’가 입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사랑도 귀띔한다. 요즘 대학원 졸업 논문 주제로 ‘개비로서의 정체성 형성 과정’을 잡았다고. 개비는 다름 아닌 국악계에서 대물림한 연주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임희윤 기자(imi@heraldm.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