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85년생입니다.작년 11월 9일,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의 부푼 꿈을 안고 전역을 한 후현재는 서울 노량진에 자취하고 있지요.(원래 집은 부천입니다) 저희 가족은 아버지,어머니,남동생과 저 이렇게 4명입니다.아버지는 일찌감치 전자제품 관련한 공장을 운영하시다가IMF + 보증 잘못서는 바람에 파산하시고,그 당시 아직 블루오션이었던 중국으로 사업하러 떠나셨죠. 아버지 당시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본디 자립심이 강하셔서 그런지 중국이라는 타국에 발 닿고 1년 동안외부와의(심지어 가족조차) 접촉을 일절 끊은 채,하루에 12시간씩 중국어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공부하셔서1년만에 중국어를 마스터하시고,근 3년안에 시내 최대 규모 공장 건설,지역 한인상회 부회장,지역 정부 인사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으로 꼽히셨습니다. 아버지이기 전에 대단하신 분입니다.가족이라 자화자찬하는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로부터 11년.. 그 오랜 기간동안 남편과 떨어져 부부간의 정은 고사하고,경제관념이 늘 90년대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시는 아버지덕에쥐꼬리만한 생활비로 1년에 한번씩 홀몸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월세방을 이사다니시던 어머니는 괴로움의 나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성격상 자상한 남편,자상한 아버지이기 보단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의 야망만 가득했기에,그렇다고 맨날 술쳐먹고 가족한테 행패부리는 그런 막장 아버지는 절대 아니었지만자연스레 가족을 등한시 하게 되셨고, 철 없는 사춘기들 보낸 두 아들을 힘들게 뒷바라지 하시며나이 40에 우울증까지 걸리셨던 어머니.. 여자친구에 빠져 철없는 나날을 보냈던 20대 초반의 저는 그런 어머니 마음도 모른채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결국 군대에 갔고,여느 현역들이 그러하듯이 조금씩 철이 들어가서어머니에게 연락도 자주드리게 되고,집안에서 형으로서 동생에게도 많이 신경 쓰게 되더군요. 그리고 2년이 지나 전역을 했고,그동안 무던히도 주로 돈 문제 때문에 아버지와 다투셨던 어머니가나이 51세만에 꿈에 그리던 창업을 하셨습니다. 네일아트 가게인데,뭐 아직 직원을 못구해서 오픈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지방으로 대학 합격한 동생이 지방 자취살이를 하게 되고,어머니는 본래 살던 곳인 부천에서 복층 가게의 2층을 개조하여 혼자 살게 되시고,저는 편입 준비중이라 본래 동생이 재수하면서 살던 노량진의 집을 이어받아 자취하게 됬습니다. 이 말인 즉슨, 네 가족 모두 따로따로 살게 되는 비극(?)이 초래된 것이죠.. 저, 솔직히 군대도 갔다왔는데 아직 철이 덜 든거 같습니다.자취생활하면서 나름 생활력도 늘었고 경제관념도 강해졌습니다만,하던 알바도 지루하다고 관두고 공부 핑계로 알바도 안구하고 지내다가 드디어 오늘.결정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실은,올 1월에한국에서 신용불량으로 금융활동을 할 수 없으신 아버지가여유자금 1,000만원으로 장남인 제게 대신 주식투자를 부탁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 기업과의 커넥션이 돈독하셨던 아버지였던 터라일반 주주들이 가질 수 없는 내부 정보를 많이 아셨기 때문에이런 금송아지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들인 제게 대신 부탁하신 거죠. 예.저는 그 돈을 그대로 받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주식 투자를 했었다가한달만에 너무 떨어지는 바람에 이 돈 까먹기 싫어서 환매를 하고 보관하던 찰라, 어머니 가게 오픈과 제 자취방 보증금으로 많은 돈이 필요했기에부득이하게 이 돈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돈의 행방에 대한 것을 직접 말씀 드린다고 하셨기에,저는 어머니를 믿고 그 돈을 썼습니다. 그리고 4개월 뒤.. 가게 오픈준비에 너무도 바쁘셨던 어머니는 깜빡 잊고 그 얘기를 못하셨고,그 돈이 아직 제 손에 있다고 철썩같이 믿으시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는데저는 의아해 하며 그 돈 없다고 말씀을 드리니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그동안 경제권으로 자격지심을 가지고 계시던 아버지란건 알고 있었지만이렇게 다이렉트로 돈에 관해 꾸지람을 듣고 나니 기분이 새롭더군요. 결국 전화를 바꾼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이제 10원 한푼도 지원 할 수 없다"는불호령을 남긴채 전화가 끊겼고, 그리고 오늘 올 것이 왔네요. 이번 달 말에 한국 오셔서 도장 찍으신답니다. 아들인 저와 남동생에게는 최소한의 생활비는 지원하되어머니에게는 단 한푼도 지원할 수 없답니다. 근 20년 넘게 경제권으로 시달리시던 어머니도이제 가게도 있겠다,꿀릴 것도 없으니 맘대로 하라고 말씀하시고 한국와서 도장찍으라고 하시니알겠다고 이번 달 말에 오시겠답니다. 차라리 잘 됐지 싶습니다.지난 24년간 어머니가 겪어온 고통을 곁에서 늘 지켜봤기에차라리 정말 이게 나은 결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늘 저희 형제가 이 상황을 예상 못한것도 아니고 오히려 바래왔는데..이 기분은 뭘까요..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였는데,이제 뭔가 아버지가 아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20년 넘게 남편 없이 아들 둘 뒷바라지 하시며 한 개인의 인생마저 포기하셨던불쌍하신 어머니의 인생의 결과가 겨우 이건가... 하는 그런 뭔가 안타까운 마음.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머니로부터 직접 듣고 나니 참 장남으로서 기분이... 늘 이런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했지만오늘은 너무도 힘드네요..제 나이대의 친구들은 다 대학공부에 바쁘거나 사회인이라 맘대로 시간도 못내니저 하나 힘들다고 술 한잔하자고 말하지도 못하고..자취생활을 하고 있으니 동네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호강 시켜드리고 싶고 큰 뜻 품고 편입 공부 하고 있는데사실 이마저도 금전적인 문제로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합니다.. 아.. 군대 전역하면서 저는 24살 2008년 한 해는 정말 멋진 한 해를 만들자라고그렇게 다짐하면서 돌아왔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네요. 제 나이가 무슨 사춘이 10대도 아니고군대도 안갔다온 20대 초반도 아니고,이 쯤이면 그동안 집안사를 봤을때 적절한 시기가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이혼"을 언급하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습니다. 너무 힘듭니다...;;아버지로부터 오게 될(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생활비 기대도 안합니다. 형이라서 동생한테 내색도 못하고장남이라서 어머니한테 슬프다는 내색도 못하고힘든데 술 한잔 할 친구도 없고 이래저래 고달픈 밤입니다.. 뭐.. 내일부터는 좋은 일이 생기겠죠..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입니다..
24살에 찾아온 시련..인생의 선배님들 조언 부탁드립니다.
24살 85년생입니다.
작년 11월 9일,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의 부푼 꿈을 안고 전역을 한 후
현재는 서울 노량진에 자취하고 있지요.(원래 집은 부천입니다)
저희 가족은 아버지,어머니,남동생과 저 이렇게 4명입니다.
아버지는 일찌감치 전자제품 관련한 공장을 운영하시다가
IMF + 보증 잘못서는 바람에 파산하시고,
그 당시 아직 블루오션이었던 중국으로 사업하러 떠나셨죠.
아버지 당시 나이가 40대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본디 자립심이 강하셔서 그런지 중국이라는 타국에 발 닿고 1년 동안
외부와의(심지어 가족조차) 접촉을 일절 끊은 채,
하루에 12시간씩 중국어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공부하셔서
1년만에 중국어를 마스터하시고,
근 3년안에 시내 최대 규모 공장 건설,지역 한인상회 부회장,
지역 정부 인사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으로 꼽히셨습니다.
아버지이기 전에 대단하신 분입니다.
가족이라 자화자찬하는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그로부터 11년..
그 오랜 기간동안 남편과 떨어져 부부간의 정은 고사하고,
경제관념이 늘 90년대 한국 기준으로 생각하시는 아버지덕에
쥐꼬리만한 생활비로 1년에 한번씩 홀몸으로 두 아들을 데리고
월세방을 이사다니시던 어머니는 괴로움의 나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성격상 자상한 남편,자상한 아버지이기 보단
자수성가한 사업가로서의 야망만 가득했기에,
그렇다고 맨날 술쳐먹고 가족한테 행패부리는 그런 막장 아버지는 절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가족을 등한시 하게 되셨고,
철 없는 사춘기들 보낸 두 아들을 힘들게 뒷바라지 하시며
나이 40에 우울증까지 걸리셨던 어머니..
여자친구에 빠져 철없는 나날을 보냈던 20대 초반의 저는
그런 어머니 마음도 모른채 방탕한 생활을 보내다
결국 군대에 갔고,
여느 현역들이 그러하듯이 조금씩 철이 들어가서
어머니에게 연락도 자주드리게 되고,
집안에서 형으로서 동생에게도 많이 신경 쓰게 되더군요.
그리고 2년이 지나 전역을 했고,
그동안 무던히도 주로 돈 문제 때문에 아버지와 다투셨던 어머니가
나이 51세만에 꿈에 그리던 창업을 하셨습니다.
네일아트 가게인데,
뭐 아직 직원을 못구해서 오픈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 과정에서 지방으로 대학 합격한 동생이 지방 자취살이를 하게 되고,
어머니는 본래 살던 곳인 부천에서 복층 가게의 2층을 개조하여 혼자 살게 되시고,
저는 편입 준비중이라 본래 동생이 재수하면서 살던 노량진의 집을 이어받아 자취하게 됬습니다.
이 말인 즉슨, 네 가족 모두 따로따로 살게 되는 비극(?)이 초래된 것이죠..
저, 솔직히 군대도 갔다왔는데 아직 철이 덜 든거 같습니다.
자취생활하면서 나름 생활력도 늘었고 경제관념도 강해졌습니다만,
하던 알바도 지루하다고 관두고 공부 핑계로 알바도 안구하고 지내다가
드디어 오늘.
결정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실은,올 1월에
한국에서 신용불량으로 금융활동을 할 수 없으신 아버지가
여유자금 1,000만원으로 장남인 제게 대신 주식투자를 부탁하셨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인 기업과의 커넥션이 돈독하셨던 아버지였던 터라
일반 주주들이 가질 수 없는 내부 정보를 많이 아셨기 때문에
이런 금송아지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아들인 제게 대신 부탁하신 거죠.
예.
저는 그 돈을 그대로 받고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주식 투자를 했었다가
한달만에 너무 떨어지는 바람에 이 돈 까먹기 싫어서 환매를 하고 보관하던 찰라,
어머니 가게 오픈과 제 자취방 보증금으로 많은 돈이 필요했기에
부득이하게 이 돈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돈의 행방에 대한 것을 직접 말씀 드린다고 하셨기에,
저는 어머니를 믿고 그 돈을 썼습니다.
그리고 4개월 뒤..
가게 오픈준비에 너무도 바쁘셨던 어머니는 깜빡 잊고 그 얘기를 못하셨고,
그 돈이 아직 제 손에 있다고 철썩같이 믿으시던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는데
저는 의아해 하며 그 돈 없다고 말씀을 드리니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그동안 경제권으로 자격지심을 가지고 계시던 아버지란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이렉트로 돈에 관해 꾸지람을 듣고 나니 기분이 새롭더군요.
결국 전화를 바꾼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이제 10원 한푼도 지원 할 수 없다"는
불호령을 남긴채 전화가 끊겼고,
그리고 오늘 올 것이 왔네요.
이번 달 말에 한국 오셔서 도장 찍으신답니다.
아들인 저와 남동생에게는 최소한의 생활비는 지원하되
어머니에게는 단 한푼도 지원할 수 없답니다.
근 20년 넘게 경제권으로 시달리시던 어머니도
이제 가게도 있겠다,꿀릴 것도 없으니 맘대로 하라고 말씀하시고 한국와서 도장찍으라고 하시니
알겠다고 이번 달 말에 오시겠답니다.
차라리 잘 됐지 싶습니다.
지난 24년간 어머니가 겪어온 고통을 곁에서 늘 지켜봤기에
차라리 정말 이게 나은 결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늘 저희 형제가 이 상황을 예상 못한것도 아니고 오히려 바래왔는데..
이 기분은 뭘까요..
미우나 고우나 아버지였는데,
이제 뭔가 아버지가 아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20년 넘게 남편 없이 아들 둘 뒷바라지 하시며 한 개인의 인생마저 포기하셨던
불쌍하신 어머니의 인생의 결과가 겨우 이건가...
하는 그런 뭔가 안타까운 마음.
이러한 이야기들을 어머니로부터 직접 듣고 나니 참 장남으로서 기분이...
늘 이런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했지만
오늘은 너무도 힘드네요..
제 나이대의 친구들은 다 대학공부에 바쁘거나 사회인이라 맘대로 시간도 못내니
저 하나 힘들다고 술 한잔하자고 말하지도 못하고..
자취생활을 하고 있으니 동네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머니 호강 시켜드리고 싶고 큰 뜻 품고 편입 공부 하고 있는데
사실 이마저도 금전적인 문제로 지속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합니다..
아..
군대 전역하면서 저는 24살 2008년 한 해는 정말 멋진 한 해를 만들자라고
그렇게 다짐하면서 돌아왔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네요.
제 나이가 무슨 사춘이 10대도 아니고
군대도 안갔다온 20대 초반도 아니고,
이 쯤이면 그동안 집안사를 봤을때 적절한 시기가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이혼"을 언급하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지 몰랐습니다.
너무 힘듭니다...;;
아버지로부터 오게 될(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생활비 기대도 안합니다.
형이라서 동생한테 내색도 못하고
장남이라서 어머니한테 슬프다는 내색도 못하고
힘든데 술 한잔 할 친구도 없고
이래저래 고달픈 밤입니다..
뭐..
내일부터는 좋은 일이 생기겠죠..
그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