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이야기..

에필로그2003.11.27
조회546

잠을 자던 휴대폰이 울렸다. 사촌오빠였다.

큰이모님의 둘째아들인 그는 호적상 나이로 나와 띠동갑이다.

(아, 난 실제나이보다 호적상에 1살 더 많게 기재돼 있다. --;;)

그러잖아도 남자형제가 없어(하긴, 여자형제도 없지만.... 쩝) '오빠'라는 호칭에 익숙지 못한 나는

딱 둘뿐인 사촌오빠들과 나이차까지 벌어져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오빠'라고 불러본 게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늘 어정쩡하게 내 마음을 전하곤 했던 게 마음에 남는다.

 

그런 그가 요즘 부쩍 자주 전화를 한다.

오빠로서 책임(?)을 못져준 거 같아 마음이 편치않다는 거다.

하긴,, 오빠는 얼마전에 두번째 결혼을 했다. 나보다 한살 많은 노처녀와.... --;;;

땡땡이로 학창시절을 주관있게 밀고나가던 오빠는 언더그라운드 가수가 됐고,

지금은 꽤 큰 레스토랑 주인이 됐다.

유익종의 노래를 그보다 더 유익종스럽게 부르는 그는 10대부터 아줌마 팬까지 줄줄이 따랐으니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누군 한번도 못하고 있는데 두번씩이나 하는 건 너무 욕심이 많은 게 아니냐'는 내 장난스런 시비(?)에

오빠는 생각보다 몇배 미안해 해 날 당황시켰던 기억이 있다.

난 그냥 한번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

그리고 그 이후부터 오빠는 전화를 걸어 노할머니 안부를 챙기듯 내 안부를 챙긴다.

"요즘은 어떠냐..?" "재미있는 일 없어?..." "여행 좀 갔다오지....." 등등 레파토리도 그때그때마다

바뀌는 걸 보면 나름대로 꽤 연구한(?) 멘트를 머릿속에 넣고 전화기를 드는 모양이다.

 

사실 해결안된(?) 노처녀는 우리집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작은 이모님댁엔 골치아픈 노처녀가 둘씩이나 있다.

그것도 서른 갓 넘은 햇병아리 노처녀도 아니고, 나와 동갑짜리 하나와 세살 위 언니....

이렇게 둘이고 보니 이모님들과 엄마가 함께 모이시기라도 하면 우린 슬금슬금 꽁지를 내리고

자리를 피해야지 눈치없이 그 자리에 있다간 불똥이 연발식 폭죽으로, 폭죽이 폭탄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물론 우린(그 세명의 노처녀들) 한결같이 논리정연한 이론을 갖고 있다.

노처녀가 되고 싶어 되진 않았다는 거다.

다들 하고싶은 일들이 너무 강했고 그 일들을 하다보니 그만큼 시간이 걸렸을 뿐이라고.....

물론 우리의 맹점은 연애와 일을 한꺼번에 하지 못한다는 단순함에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어디 세상살기가 그리 마음대로 호락호락하던가?

우리가 택한 '최선'엔 차선책이 없었다.

 

세살 위 언니는 대기업 광고회사에서 잘 나가는 이사로,

나와 동갑인(그랬다,,, 그 옛날 작은 이모와 우리 엄만 둘다 배를 남산만하게 내밀고 다니다가

이모는 9월에, 엄마는 10월에 순서를 지켜 아기를 낳았다.^^) 美는 대입학원 강사로,

나는 요렇게(창피하니까 생략,,) 가는 세월을 벗삼아 언젠가 <노처녀 방랑기>나 쓸 작정이다.

 

암튼, 그런데 오빠가 왜 내게 제일 미안해 하는 걸까?

광고쟁이 언니만큼 돈을 잘 못벌고 있어선가? (그래두 한때 나도 잘 나갔는데....^^;;)

아님, 내가 가장 먼 표류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했을까?

그의 음성이 귀에 남는다.....

"에필로그야, 넌 너무 소리가 없어. 가끔은 술도 마시고 지구를 벗어나 보렴.

이젠 둥글둥글.... 살지 말고 모나게 살아봐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혹시 아니?

삐죽삐죽한 성격이면 망치들고 쫓아오는 녀석이 있을지.................?"

 

얼마 남지않은 11월의 끝자락에서 물론 그럴듯한 일탈도 하지 못한 채이지만 

이제 그만 나의 표류를 끝내기로 했다.

표류는 언제까지나 흔들흔들한 부표를 따라가는 표류일 뿐이지, 정박한 새우잡이 배가 될 수

없었으므로......

내년엔 좀더 프로다운 싱글을 꿈꾸기에 아직은 행복하다.에필로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