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고 어둠이 낮게 깔리는 저녁이 되면 베란두르 마을의 풍광은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정복왕 폴크스겐이 다스리던 아스가르드 왕국의 변방에 위치한 베란두르는 폴크스겐이 죽고 나서 비록 외세의 오랜 침략에 노출되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따뜻한 인심이 남아있는 도시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베란두르 지역은 아스가르드의 전략적 요충지로도 매우 중요하여 넓다란 성지 안으로 수도 바이자르에서 파병된 군인들이 정착하여 생겨난 도시였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의 분위기는 언제나 패기 넘치고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도로시 선술집엔 특히나 더 패기넘치고 열정적인 게다가 아리땁고 서글서글한데다 새침하기까지 한 방년 18세의 처녀 아이리스가 있었다.
아이리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의 나이 15세때부터 이미 동네총각들은 그녀가 저잣거리에만 나타나면 괜히 졸졸 따라다녔으며 그녀의 나이 17세가 되자 할아버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그녀를 보면 모두 넋이 나갔다. 한번은 정말로 백발이 성성한 이웃 성의 성주가 몸소 찾아와 얼굴을 붉게 물들인채 그녀에게 사모의 정을 고백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보기 좋게 차이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기이하고 흥미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게 그런 엄청난 관심들을 한 몸에 받으면 짐짓 교만해질 수도 있으련만 이 새침한 아가씨는 되려 털털하고 상냥하고 서글서글하여 어느새 베란두르 성 안 모든 사람들에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우상이 되어 있었다.
남쪽 성문의 문지기 레오르도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같이 보초를 서는 버나드가 말을 건넸다.
"이보게 왜 그리 얼굴빛이 안 좋은가? 여전히 아이리스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겐가?"
레오르도는 요사이 근방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심기가 편치 않았다.
아스가르드의 진정한 주인이던 정복왕 폴크스겐이 타계하고 니시마루 교황이 왕권을 잡은지 십오년. 국왕에게 바치는 세금은 갖가지 명목으로 점점 불어만 가고 흉년이 계속되어 민심은 흉흉해졌다. 게다가 요근래에는 왕국의 젊은 처녀들을 데려다가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게 하는데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그것이 말이 세례이지 실지로는 교황의 욕정을 해소시키는 일이라고 하니 정말 상상도 못할 해괴망칙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처녀들을 뽑는 왕궁의 기사단이 레오르도가 살고있는 이 베란두르 마을까지 온다고 하는데 레오르도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보게 레오르도. 자네 걱정은 알겠네만 확실한 게 아니지 않는가? 또 만약 그 기사단이 정말 온다고 해도 며칠 동안 아이리스를 성 밖으로 피신시키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너무 걱정말게나."
버나드가 이렇게 위로했지만 레오르도의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다. 왕궁의 그 정신 나간 기사단이 오면 마을에서 제일 가는 처녀로 손꼽히는 자신의 딸 아이리스는 분명 그 구역질 나는 교황에게로 끌려가 능멸당할 것이 뻔했다. 또 아이리스가 끌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대신 마을의 다른 처녀들이 끌려가 능멸당할테니 그 또한 마찬가지로 분노할 일이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베란두르는 어둠에 휩싸였다. 버나드는 망루에 앉아 긴 담뱃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불이려 하다가 성 밖 숲 저쪽 어귀에서 한 무리의 희끄무레한 빛을 발견했다. 버나드가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백마를 탄 한 무리의 기사들이었다.
'뭣이여~ 저건'
버나드는 속이 뒤틀렸다. 모두 백마라니 왕궁의 기사단임이 틀림없다. 말과 검에는 분명 온갖 보석과 장신구로 치장을 했을 것이다. 누구네들은 변방에서 외적과 맞서느라 초췌한 몰골인데 누구네들은 갖은 악세라리로 치장을 하고는 귀하디귀한 백마를 타고 떼거지로 돌아다니며 처녀들이나 잡아올리다니 참 속 뒤집힐 일이다.
성문앞에 다다르자 앞장선 기사가 품에서 황금으로 된 문장을 꺼내들어 성문의 작은 여닫이창으로 갖다댔다.
"그러면 그렇지"
기사들이 오는 것을 보고 진작 망루에서 내려온 버나드는 자기 짐작이 맞은 것에 혀를 내차며 여닫이 창으로 왕국의 문장을 확인하곤 몇가지를 물어본후 성문을 열어주었다.
기사들은 모두 날렵하게 차려입고 백마를 탔는데 머리를 길게 기른데다 면상이 곱상한 것이 고생이라곤 전혀 모르고 자라온 듯 했다. 기사단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서자 앞장섰던 건장한 기사가 버나드에게 묻는다. 기사는 수염을 깍은지 좀 됐는지 턱과 입주위가 까끌하다.
"혹시 도로시라는 선술집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글쎄요 전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지라... 잘 모르겠는뎁쇼."
병사가 술을 즐기지 않는다라는 뻔한 거짓말을 절대 믿을 리는 없겠지만 기사단은 두 말 없이 총총히 말을 몰아갔다.
잠시 화장실에 갔던 레오르도가 돌아오자 기사들이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성문 옆에 멀건히 섰던 버나드가 바로 소식을 전했다.
"기사들이 왔네. 도로시네 선술집을 찾더군"
"뭐... 뭐야!"
막 배설을 마치고 후련한 표정이었던 레오르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휘엉청 밝은 보름달은 떴는데 아까부터 한참을 안절부절하던 레오르도가 뭔가를 결심했는지 벌떡 일어났다. 꾸벅꾸벅 졸던 버나드가 흠칫 놀라 깼다.
"미안하네 버나드 오늘은 혼자 보초를 서셔야겠네"
짐짓 레오르도가 굵은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진지하게 말하자 버나드는 조금 어색했다.
"그...그러게"
레오르도의 생각을 읽은 듯 버나드도 동의했다.
레오르도가 총총히 저쪽으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누군가 성문을 쾅쾅 두드린다.
여닫이창을 연 버나드는 눈을 크게 떴다.
'젠장 이건 또 뭐야 !'
버나드는 오늘 참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여닫이창너머로는 황금색 문장을 들고 말과 검집에 온갖 장신구로 치장을 한채 도도하게 선 한무리의 기사단이 있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모두 흑마만 열 세 마리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오?"
버나드가 퉁명스레 묻자 황금 문장을 들이댄 기사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갔다.
"왕궁의 성스런 기사단이다 냉큼 문을 열거라"
불쾌한 듯 상기된 목소리로 기사가 말했다. 버나드는 이 밤중에 왕궁의 기사단이 갑자기 둘씩이나 찾아온 것이 의아스러웠으나 왕궁에서 왔음을 나타내는 황금 문장이 틀림없었으므로 몇가지 질문을 하고 바로 성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문장을 들고 있던 기사가 채찍으로 버나드를 후려쳤다.
"어이쿠~!"
버나드가 낮은 신음을 내며 성벽으로 물러섰다.
"앞으론 조심해라!"
"예 예~!"
기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버나드가 대답했다.
버나드가 땅바닥에 엎드려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대는 동안 기사단은 마을로 향했다. 그들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버나드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며 가래침을 끌어 모아 욕지거리와 함께 내뱉았다.
"캬악~! 퉤~! 이런 개자식들~!"
도로시 선술집을 찾은 베르베르 십이지장이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었다. 십이지장의 행동에 약속이나 한듯 나머지 기사들도 모두 일사분란하게 말을 멈추었다.
"흐음 이곳이군"
베르베르는 말에서 내리고는 십이대에게 명령했다.
"루씨는 나를 따라오도록 하고 나머지는 여기서 기다려라"
우렁찬 대답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루씨라고 불리운 앳된 얼굴의 소년 하나가 달빛에 비단처럼 빛나는 길다란 흑색 머리카락을 질끈 뒤로 동여맨 채 말에서 뛰어내렸다. 소년의 눈도 그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흑색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치 빛나고 있었다.
베르베르는 루씨와 함께 망토자락을 날리며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꽤 넓었다. 어두침침한 램프 불빛들 사이로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이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앉아 술을 즐기고 있었다. 베르베르는 바 안쪽에서 접시를 닦고 있는 풍만한 몸매의 여주인을 발견하곤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곤 그 특유의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 곳에 아이리스라는 아가씨가 일하지 않소?"
베르베르가 여주인에게 이렇게 묻자 순간 왁자지껄하던 술집안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자신들을 응시하는 묘한 눈초리들을 느끼며 베르베르와 루씨가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풍만한 몸매의 여주인이 바 위에 팔꿈치를 괴더니만 베르베르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 채 걸쭉한 입냄새를 풍기며 대답했다.
"내가 바로 아이리스외다."
술집안에 사내들은 여주인의 넉살 좋은 대답에 한바탕 크게 웃어대더니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부산하게 짐을 꾸리며 상황을 설명하는 아버지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이리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
나지막히 아이리스가 불렀으나 레오르도는 짐을 꾸리느라 여전히 정신이 없다.
"아버지~!"
아이리스는 힘주어 크게 레오르도를 불렀다. 그제서야 레오르도는 손을 멈추고 아이리스를 돌아봤다.
"어... 엉? 왜 그러느냐?"
"아버지 전 도망가지 않겠어요"
"무... 무슨 소리냐 그게?"
레오르도는 정신이 번쩍 들어 펄쩍 뛰며 되물었다.
"제가 끌려가지 않아도 다른 처녀들을 끌고 갈거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잖아요."
"그... 그랬지"
"그 걸 알면서도 도망칠 순 없어요 . 정말 비겁한 짓이라구요"
"그 ... 그렇긴 하지만..."
평소 자기 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레오르도의 목소리가 당돌한 아이리스의 주장에 잦아들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니까 전 가지 않겠어요. 아셨죠? 아버지! 전 그럼 일하러 갑니다!"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아이리스는 선술집을 향해 씩씩하게 문을 나섰다.
"자 ... 잠깐만 아이리스~!"
레오르도는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짐가방을 등에 매고 아이리스를 쫓아 뛰어나갔다.
아버지가 말릴 새라 달빛에 어스름한 골목길을 치마를 걷어올린채 성큼성큼 뛰어가던 아이리스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마주친 한 무리의 기사들을 보고 주춤했다. 검은 색 말을 탄 열세명의 기사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왕궁 기사단 단장 그롬웰은 자신의 말을 몰아 그녀의 주위를 뱅뱅 맴돌았다. 삐적 마른 얼굴에 그롬웰은 볼썽 사납게 기른 수염과 매부리코 때문인지 묘하게 불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까 버나드를 후려치던 채찍이 안장에 걸려있다. 아이리스의 커다란 눈이 경계심으로 어둠속에서 반짝이자 그롬웰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그롬웰은 허리를 숙여 자신의 외눈박이 안경을 꺼내 눈에 대고는 아이리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는 아이리스의 몸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감탄사를 내뱉았다.
"호~오 ! 굉장한 걸"
그롬웰의 입안엔 군침이 가득 고였다. 불결하고 음습한 표정이 그의 얼굴 전체에 그려졌다.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이리스~!"
레오르도가 아이리스를 크게 부르며 모퉁이를 돌았다. 숨을 헐떡이던 레오르도는 그롬웰과 눈이 마주쳤다. 레오르도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마계건국기 1부- 1편: 왕궁에서 온 기사단
'마계건국기-프롤로그'부터 읽고 나서 보시면 아마도 엄청나게 더 재밌을껄요.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낮게 깔리는 저녁이 되면 베란두르 마을의 풍광은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정복왕 폴크스겐이 다스리던 아스가르드 왕국의 변방에 위치한 베란두르는 폴크스겐이 죽고 나서 비록 외세의 오랜 침략에 노출되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따뜻한 인심이 남아있는 도시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의 베란두르 지역은 아스가르드의 전략적 요충지로도 매우 중요하여 넓다란 성지 안으로 수도 바이자르에서 파병된 군인들이 정착하여 생겨난 도시였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의 분위기는 언제나 패기 넘치고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도로시 선술집엔 특히나 더 패기넘치고 열정적인 게다가 아리땁고 서글서글한데다 새침하기까지 한 방년 18세의 처녀 아이리스가 있었다.
아이리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의 나이 15세때부터 이미 동네총각들은 그녀가 저잣거리에만 나타나면 괜히 졸졸 따라다녔으며 그녀의 나이 17세가 되자 할아버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그녀를 보면 모두 넋이 나갔다.
한번은 정말로 백발이 성성한 이웃 성의 성주가 몸소 찾아와 얼굴을 붉게 물들인채 그녀에게 사모의 정을 고백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보기 좋게 차이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기이하고 흥미 있는 것은 사람이라는게 그런 엄청난 관심들을 한 몸에 받으면 짐짓 교만해질 수도 있으련만 이 새침한 아가씨는 되려 털털하고 상냥하고 서글서글하여 어느새 베란두르 성 안 모든 사람들에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우상이 되어 있었다.
남쪽 성문의 문지기 레오르도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같이 보초를 서는 버나드가 말을 건넸다.
"이보게 왜 그리 얼굴빛이 안 좋은가? 여전히 아이리스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겐가?"
레오르도는 요사이 근방에 떠도는 소문 때문에 심기가 편치 않았다.
아스가르드의 진정한 주인이던 정복왕 폴크스겐이 타계하고 니시마루 교황이 왕권을 잡은지 십오년.
국왕에게 바치는 세금은 갖가지 명목으로 점점 불어만 가고 흉년이 계속되어 민심은 흉흉해졌다. 게다가 요근래에는 왕국의 젊은 처녀들을 데려다가 교황에게 직접 세례를 받게 하는데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그것이 말이 세례이지 실지로는 교황의 욕정을 해소시키는 일이라고 하니 정말 상상도 못할 해괴망칙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처녀들을 뽑는 왕궁의 기사단이 레오르도가 살고있는 이 베란두르 마을까지 온다고 하는데 레오르도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보게 레오르도. 자네 걱정은 알겠네만 확실한 게 아니지 않는가?
또 만약 그 기사단이 정말 온다고 해도 며칠 동안 아이리스를 성 밖으로 피신시키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너무 걱정말게나."
버나드가 이렇게 위로했지만 레오르도의 기분이 나아질 리가 없다.
왕궁의 그 정신 나간 기사단이 오면 마을에서 제일 가는 처녀로 손꼽히는 자신의 딸 아이리스는 분명 그 구역질 나는 교황에게로 끌려가 능멸당할 것이 뻔했다.
또 아이리스가 끌려가지 않는다고 해도 대신 마을의 다른 처녀들이 끌려가 능멸당할테니 그 또한 마찬가지로 분노할 일이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베란두르는 어둠에 휩싸였다.
버나드는 망루에 앉아 긴 담뱃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불이려 하다가 성 밖 숲 저쪽 어귀에서 한 무리의 희끄무레한 빛을 발견했다.
버나드가 눈을 비비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백마를 탄 한 무리의 기사들이었다.
'뭣이여~ 저건'
버나드는 속이 뒤틀렸다.
모두 백마라니 왕궁의 기사단임이 틀림없다.
말과 검에는 분명 온갖 보석과 장신구로 치장을 했을 것이다.
누구네들은 변방에서 외적과 맞서느라 초췌한 몰골인데 누구네들은 갖은 악세라리로 치장을 하고는 귀하디귀한 백마를 타고 떼거지로 돌아다니며 처녀들이나 잡아올리다니 참 속 뒤집힐 일이다.
성문앞에 다다르자 앞장선 기사가 품에서 황금으로 된 문장을 꺼내들어 성문의 작은 여닫이창으로 갖다댔다.
"그러면 그렇지"
기사들이 오는 것을 보고 진작 망루에서 내려온 버나드는 자기 짐작이 맞은 것에 혀를 내차며 여닫이 창으로 왕국의 문장을 확인하곤 몇가지를 물어본후 성문을 열어주었다.
기사들은 모두 날렵하게 차려입고 백마를 탔는데 머리를 길게 기른데다 면상이 곱상한 것이 고생이라곤 전혀 모르고 자라온 듯 했다.
기사단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서자 앞장섰던 건장한 기사가 버나드에게 묻는다.
기사는 수염을 깍은지 좀 됐는지 턱과 입주위가 까끌하다.
"혹시 도로시라는 선술집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글쎄요 전 술을 그리 즐기지 않는지라... 잘 모르겠는뎁쇼."
병사가 술을 즐기지 않는다라는 뻔한 거짓말을 절대 믿을 리는 없겠지만 기사단은 두 말 없이 총총히 말을 몰아갔다.
잠시 화장실에 갔던 레오르도가 돌아오자 기사들이 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성문 옆에 멀건히 섰던 버나드가 바로 소식을 전했다.
"기사들이 왔네. 도로시네 선술집을 찾더군"
"뭐... 뭐야!"
막 배설을 마치고 후련한 표정이었던 레오르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휘엉청 밝은 보름달은 떴는데 아까부터 한참을 안절부절하던 레오르도가 뭔가를 결심했는지 벌떡 일어났다.
꾸벅꾸벅 졸던 버나드가 흠칫 놀라 깼다.
"미안하네 버나드 오늘은 혼자 보초를 서셔야겠네"
짐짓 레오르도가 굵은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진지하게 말하자 버나드는 조금 어색했다.
"그...그러게"
레오르도의 생각을 읽은 듯 버나드도 동의했다.
레오르도가 총총히 저쪽으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누군가 성문을 쾅쾅 두드린다.
여닫이창을 연 버나드는 눈을 크게 떴다.
'젠장 이건 또 뭐야 !'
버나드는 오늘 참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여닫이창너머로는 황금색 문장을 들고 말과 검집에 온갖 장신구로 치장을 한채 도도하게 선 한무리의 기사단이 있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모두 흑마만 열 세 마리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오?"
버나드가 퉁명스레 묻자 황금 문장을 들이댄 기사의 눈꼬리가 치켜올라갔다.
"왕궁의 성스런 기사단이다 냉큼 문을 열거라"
불쾌한 듯 상기된 목소리로 기사가 말했다.
버나드는 이 밤중에 왕궁의 기사단이 갑자기 둘씩이나 찾아온 것이 의아스러웠으나 왕궁에서 왔음을 나타내는 황금 문장이 틀림없었으므로 몇가지 질문을 하고 바로 성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문장을 들고 있던 기사가 채찍으로 버나드를 후려쳤다.
"어이쿠~!"
버나드가 낮은 신음을 내며 성벽으로 물러섰다.
"앞으론 조심해라!"
"예 예~!"
기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버나드가 대답했다.
버나드가 땅바닥에 엎드려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대는 동안 기사단은 마을로 향했다.
그들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버나드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며 가래침을 끌어 모아 욕지거리와 함께 내뱉았다.
"캬악~! 퉤~! 이런 개자식들~!"
도로시 선술집을 찾은 베르베르 십이지장이 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추었다.
십이지장의 행동에 약속이나 한듯 나머지 기사들도 모두 일사분란하게 말을 멈추었다.
"흐음 이곳이군"
베르베르는 말에서 내리고는 십이대에게 명령했다.
"루씨는 나를 따라오도록 하고 나머지는 여기서 기다려라"
우렁찬 대답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루씨라고 불리운 앳된 얼굴의 소년 하나가 달빛에 비단처럼 빛나는 길다란 흑색 머리카락을 질끈 뒤로 동여맨 채 말에서 뛰어내렸다. 소년의 눈도 그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흑색으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치 빛나고 있었다.
베르베르는 루씨와 함께 망토자락을 날리며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꽤 넓었다. 어두침침한 램프 불빛들 사이로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들이 삼삼오오 테이블에 모여앉아 술을 즐기고 있었다.
베르베르는 바 안쪽에서 접시를 닦고 있는 풍만한 몸매의 여주인을 발견하곤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곤 그 특유의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 곳에 아이리스라는 아가씨가 일하지 않소?"
베르베르가 여주인에게 이렇게 묻자 순간 왁자지껄하던 술집안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자신들을 응시하는 묘한 눈초리들을 느끼며 베르베르와 루씨가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보았다.
풍만한 몸매의 여주인이 바 위에 팔꿈치를 괴더니만 베르베르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 채 걸쭉한 입냄새를 풍기며 대답했다.
"내가 바로 아이리스외다."
술집안에 사내들은 여주인의 넉살 좋은 대답에 한바탕 크게 웃어대더니 다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부산하게 짐을 꾸리며 상황을 설명하는 아버지를 지긋이 바라보던 아이리스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
나지막히 아이리스가 불렀으나 레오르도는 짐을 꾸리느라 여전히 정신이 없다.
"아버지~!"
아이리스는 힘주어 크게 레오르도를 불렀다.
그제서야 레오르도는 손을 멈추고 아이리스를 돌아봤다.
"어... 엉? 왜 그러느냐?"
"아버지 전 도망가지 않겠어요"
"무... 무슨 소리냐 그게?"
레오르도는 정신이 번쩍 들어 펄쩍 뛰며 되물었다.
"제가 끌려가지 않아도 다른 처녀들을 끌고 갈거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잖아요."
"그... 그랬지"
"그 걸 알면서도 도망칠 순 없어요 . 정말 비겁한 짓이라구요"
"그 ... 그렇긴 하지만..."
평소 자기 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레오르도의 목소리가 당돌한 아이리스의 주장에 잦아들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니까 전 가지 않겠어요. 아셨죠? 아버지! 전 그럼 일하러 갑니다!"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아이리스는 선술집을 향해 씩씩하게 문을 나섰다.
"자 ... 잠깐만 아이리스~!"
레오르도는 잠시 멍해 있다가 얼른 짐가방을 등에 매고 아이리스를 쫓아 뛰어나갔다.
아버지가 말릴 새라 달빛에 어스름한 골목길을 치마를 걷어올린채 성큼성큼 뛰어가던 아이리스는 모퉁이를 돌자마자 마주친 한 무리의 기사들을 보고 주춤했다.
검은 색 말을 탄 열세명의 기사가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왕궁 기사단 단장 그롬웰은 자신의 말을 몰아 그녀의 주위를 뱅뱅 맴돌았다.
삐적 마른 얼굴에 그롬웰은 볼썽 사납게 기른 수염과 매부리코 때문인지 묘하게 불안한 느낌을 주었다. 아까 버나드를 후려치던 채찍이 안장에 걸려있다.
아이리스의 커다란 눈이 경계심으로 어둠속에서 반짝이자 그롬웰의 눈도 덩달아 커졌다.
그롬웰은 허리를 숙여 자신의 외눈박이 안경을 꺼내 눈에 대고는 아이리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는 아이리스의 몸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감탄사를 내뱉았다.
"호~오 ! 굉장한 걸"
그롬웰의 입안엔 군침이 가득 고였다. 불결하고 음습한 표정이 그의 얼굴 전체에 그려졌다.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이리스~!"
레오르도가 아이리스를 크게 부르며 모퉁이를 돌았다. 숨을 헐떡이던 레오르도는 그롬웰과 눈이 마주쳤다. 레오르도는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롬웰은 미소를 머금으며 안경을 윗주머니에 쑤셔넣고 다시 아이리스를 응시하며 씨익 웃었다.
"하~아! 네가 바로 그 아이리스로구나... 베란두르 최고에 미녀라는 아이리스. 크크.. 직접 보니 베란두르가 아니라 아스가르드 최고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겠는걸"
그롬웰의 구역질 나는 미소를 보며 레오르도는 아이리스의 손을 끌어 자신의 등뒤로 숨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