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추억하고 기억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시골의 농사꾼이셨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셧죠.. 아주 어렷을때부터 나무를해서 팔고 중학생때는 홀로 서울에 올라가 찹쌀떡 장사를 하셧다고 하십니다.. 생전에 가끔 참쌀떡 장사꾼이 오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아버지와 어떻게 보면 너무나 힘들었던 그시절 이야기로 말벚이 되어드리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착실하게 살아오신 분인데.. 제가 6살때 갑작스레 간이 안좋아 지셧습니다.. 만성신부전증.. 이런병이 걸리셨습니다.. 그리고 불효하게도 아버지의병명을 안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였습니다.. 10년이 다되가는 세월동안 아버지 병명도 모르고 살았었다니.. 다행히도 병에 걸리시고 얼마후에 고모의 신장을 이식받으셧습니다.. 그치만.. 그당시는 imf가 터지기 얼마전이라 경제가 많이 안좋았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수술하시고 퇴원하신 직후부터 집에와서 일만 하셧습니다. 수술후 최소한 1년은 쉬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그리고는 병이 다시 재발하셧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희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제게 하소연하십니다.. 니 아버지는 왜그렇게 일만해서 아파서 이렇게 죽었느냐 하시면서.. 그런때마다 저는 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내가 일을안하면 가족이 다 굶어 죽는데.. 어떻게 쉬고만 있을 수 있냐고..." 저도 어렸을땐 몰랐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신후 개장사를 하시는 아버지가 너무 창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일이 누구를 위한 일이었고. 아버지께서도 창피하시고 힘드셧을거란걸 이제야 알아갑니다.... 그때는 왜 몰랐는지.. 그저 눈물만 흐르네요... 생각해보면 저만한 불효자는 없나 봅니다... 아버지가 병이 다시 심해지시고.. 그때부터 조금씩 쇠약해 지시기 시작하셧습니다.. 결국 장애 판정을 받으시고.. 우리가족은 정부에서 생계지원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도 받고 있구요.. 1년. 2년.. 느낄듯 말뜻 조금씩 쇠약해 지셧습니다.. 뛸 수 없게되시고,걸을 수 없게 되시고, 기어다니실 수 조차 없게 되시고,, 그렇게 누워만 있게 되셧습니다.. 아주조금씩 병이 진행 되어 가셔서 항상 그대로 이신줄 알았는데.. 어느날 보니 정말..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온몸은 뼈만남고 얼굴을 약때문에 새까매 지셧습니다.. 그리고 우리 엄마..생각하면 화만 나는 우리 엄마.. 제가 4학년때.. 아직은 우리아버지께서 화장실은 혼자힘으로 다니실 수 있으셧을때.. 우리 모두를 버리고 다른남자와 도망가 버리셧습니다.. 집에있는 돈을 모두.. 아버지의 병원비를 모두.. 그리고 카드빚.. 정말 참을 수 없는건.. 그남자와 우리집에서 서로 손을 잡고 손금을 보고 웃고 떠들고.. 병드신 아버지 앞에서.... 그땐 몰랐습니다.. 그 상황이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이제 알았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서러움을.. 그렇게 도망간 엄만 얼마후 잡히고.. 간통죄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얼마후 아버지는 제게 부탁을 하셧습니다. 날좀 데리고 교도소에 가달라고.. 이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창피 했습니다.. 병드신 아버지를 데리고 엄마가 붙잡혀 있는 교도소로 간다는게.. 그치만 갔습니다. 가서 엄마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후 엄만 풀려나셔서 집으로 돌아오셧습니다 아버지께서 용서해 주셧다고 합니다.. 화가나지만.. 우리 3형제를 위해서.. 그땐 앞도 뒤도 안보고 가족이 다시 모였다는게 너무좋아서 몇일간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3일후.. 또한번의 배신.. 또 떠났습니다 그남자와.. 집에잇는 모든 돈을 들고.. 너무 서러웠습니다. 아버지가 불쌍했습니다... 그이후 다신 엄마를 만난적이 없습니다. 물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있습니다 한가지만 확실히 할것입니다. 나중에 꼭 찾아가 묻겠습니다 모두를 버리고 떠나야 할 만큼 힘들었냐고.. 엄마가 떠났습니다.. 그때이후로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셧 습니다.. 4학년 때였습니다. 1년만에.. 기어다니실 수 없게 되셧습니다... 그리곤 점차 아마무것도 할 수 없게되셧습니다.. 화상실을 가는 것 도.. 밥을 먹는것도.. 옆으로 돌아 눕는 것도.. 약 80세의 할머니께서 제가 학교에 갔을때는.. 대소변,식사 등 모든걸 책임지셧습니다.. 하루에 4~5번씩 기저귀를 갈아내고.. 간식에 식사까지.. 모든걸.. 학교에 다녀 온 후로 제가 한다고 했지만.... 네. 솔직히 귀찮았습니다. 저렇게 계신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소홀히 했었습니다.. 제가 어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쳤었기 때문입니다.. 미쳤었죠.. 그때는.. 아버지 산책은 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나가는걸 좋아하시는 걸 알면서도.. 자주 산책시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가끔 나가고.. 최대한 빨리.. 그리고.. 구석진곳을 다녔습니다.. 그만큼 나이를 먹고도.. 창피해서.... 그마저도 2년 동안 이었습니다.. 4년간은 제 힘으론 한번도 바깓구경을 시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사춘기에.. 이런저런 핑게였습니다.. 그 나이 먹어서도 창피했습니다.. 이렇게 저때문에.. 빛도 제대로 못 보시고.. 6년동안 지금 제가잇는 이방에서 천정만 보다가 돌아 가셧습니다.. 언젠가 보니.. 몸엔 이미 뼈만 남고.. 살은 희다못해 창백해 지셧습니다... 제가 조금만 마음만 고쳐먹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이 창백한 살에 햍빛으로 그을려 드릴 수 있었을텐데.. 가끔은.. 아버지가 6년간 누워계셧던 자리에 누워 천정만 바라봅니다.. 이천정만 바라보시면서 6년을 버티셧을 테지요?.. 난 이렇게 10분도 버티기 힘든데.. 6년을.. 이렇게.. 저때문에 지내셧을걸 생각하니.. 제앞에 걸려잇는 아버지 사진을 볼 수가 없네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날 전 집에 없었습니다.. 하필이면.. 돌아가시기 전전날.. 그날저녁은 아버지 담배때문에 아버지께 상처드리는 말까지 해가면서 싸웠습니다.. 그날따라 담배를 너무 찾으시는 거에요... 그래서.. 화가나서.. 담배를 다 부러트리고.. 아버지 속을 박박긁었습니다.. 나중엔.. 담배피는 아버지가 걱정 되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싫었기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거구나.. 하고 느낄 수 도 있었습니다.. 담배조차 제손으로 못피우시는데.. 그래서.. 내가 안피워 드리면 그만이라고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자정이 넘어서까지 담배 담배.. 때를 쓰시다 잠드셧습니다.. 병을 너무 오래 앓다 보시니 아이처럼 변하셧습니다.. 어쩌면 그조차 나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싸우고.. 다음날.. 난생처음으로 아버지께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몸이 행동했습니다.. 평소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딱딱하게 말하고 나갔지만.. 그리고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지막 인사라도 웃으며 해드린게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집에서 아침에 동생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겁에질려서 그런지.. 그냥.. 아빠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믿기지 않았습니다.. 잠결에 들은 내용이랑 꿈같았습니다.. 그리곤 눈으로 직접 확인 하겠다고 마음먹고... 동생에게 괜히 욕을하며 전화를 끊고..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아직은 믿지 않았지만.. 터미널까지 20분동안.. 하염없이 펑펑울었습니다.. 그리고..... 집에도착하니.. 항상 아버지가 누워계시던 자리엔 아무 것 도 없었습니다.. 다만 할머니께서 땅을치며 울고 계시더군요.. 그리고.. 저도 같이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참웃긴게... 울면서 드는 생각이 몰래카메라 아닌가 하는 생각?..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믿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까요?.. 나중에 들으니.. 주무시다 피를토하셧는데 옆으로 돌아누울 힘도 없으셧기 때문에.. 숨이막혀 돌아가셧다고 합니다.. 하필 그날 동생이 아빠 코고는 소리가 듣기싫다고 문을 닫고자서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옆집 할머니께서 말하시길 새벽에 아버지께서 한참을 소리치셧다고 합니다.. 가족은 듣지 못한걸 이웃은 듣다니.. 문을 닫고 잠을잔 동생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날 제가 없었단게.. 아버지 임종을 아무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게.. 너무도 한이 됩니다.. 그날 제가 집에 있엇다면 아버지 아직도 살아계셧을 수 있는거겟죠?.. 요즘 두렵습니다.. 돌아가신후 1년동안은.. 돌아가셧다는걸 잊어버렸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집에가면 계실것 같은 느낌.. 근데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냥 잊혀저 가신다는 느낌?.. 그래서 글로써 추억해보려고 이렇게 혼자서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버렸습니다.. 글을 다 쓰고나서 아버지 사진을 처다 볼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긴 죄인인가 봅니다.. 자기 아버지 사진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한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미운부모님이라도 아무리 무능력 하셔도... 언젠가는.. 그미움도 그리움이 되어서 남습니다... 제발 효도하라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습니다... 어렸을쩍 건강하셧던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죽도록 맞아도 좋으니.. 살아돌아와 절 좀 때려주셧으면 좋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아버지..
6년동안 천정만 바라보신 우리아버지..
아버지를 추억하고 기억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시골의 농사꾼이셨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셧죠..
아주 어렷을때부터 나무를해서 팔고 중학생때는 홀로 서울에 올라가
찹쌀떡 장사를 하셧다고 하십니다.. 생전에 가끔 참쌀떡 장사꾼이 오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아버지와 어떻게 보면 너무나 힘들었던 그시절 이야기로
말벚이 되어드리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착실하게 살아오신 분인데.. 제가 6살때 갑작스레 간이 안좋아 지셧습니다..
만성신부전증.. 이런병이 걸리셨습니다.. 그리고 불효하게도 아버지의병명을 안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였습니다.. 10년이 다되가는 세월동안 아버지 병명도 모르고 살았었다니..
다행히도 병에 걸리시고 얼마후에 고모의 신장을 이식받으셧습니다..
그치만.. 그당시는 imf가 터지기 얼마전이라 경제가 많이 안좋았었나 봅니다..
아버지는 수술하시고 퇴원하신 직후부터 집에와서 일만 하셧습니다.
수술후 최소한 1년은 쉬어야 한다고 하였지만.... 그리고는 병이 다시 재발하셧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희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제게
하소연하십니다.. 니 아버지는 왜그렇게 일만해서 아파서 이렇게 죽었느냐 하시면서..
그런때마다 저는 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내가 일을안하면 가족이 다
굶어 죽는데.. 어떻게 쉬고만 있을 수 있냐고..." 저도 어렸을땐 몰랐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신후 개장사를 하시는 아버지가 너무 창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일이 누구를 위한 일이었고. 아버지께서도 창피하시고 힘드셧을거란걸
이제야 알아갑니다.... 그때는 왜 몰랐는지.. 그저 눈물만 흐르네요...
생각해보면 저만한 불효자는 없나 봅니다...
아버지가 병이 다시 심해지시고.. 그때부터 조금씩 쇠약해 지시기 시작하셧습니다..
결국 장애 판정을 받으시고.. 우리가족은 정부에서 생계지원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도 받고 있구요.. 1년. 2년.. 느낄듯 말뜻 조금씩 쇠약해 지셧습니다..
뛸 수 없게되시고,걸을 수 없게 되시고, 기어다니실 수 조차 없게 되시고,, 그렇게 누워만
있게 되셧습니다.. 아주조금씩 병이 진행 되어 가셔서 항상 그대로 이신줄 알았는데..
어느날 보니 정말.. 이전과 비교도 안되게.. 온몸은 뼈만남고 얼굴을 약때문에
새까매 지셧습니다..
그리고 우리 엄마..생각하면 화만 나는 우리 엄마.. 제가 4학년때..
아직은 우리아버지께서 화장실은 혼자힘으로 다니실 수 있으셧을때.. 우리 모두를 버리고
다른남자와 도망가 버리셧습니다.. 집에있는 돈을 모두.. 아버지의 병원비를 모두..
그리고 카드빚.. 정말 참을 수 없는건.. 그남자와 우리집에서 서로 손을 잡고 손금을 보고
웃고 떠들고.. 병드신 아버지 앞에서.... 그땐 몰랐습니다.. 그 상황이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이제 알았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서러움을.. 그렇게 도망간 엄만 얼마후 잡히고..
간통죄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얼마후 아버지는 제게 부탁을 하셧습니다.
날좀 데리고 교도소에 가달라고.. 이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창피 했습니다.. 병드신 아버지를 데리고 엄마가 붙잡혀 있는 교도소로 간다는게..
그치만 갔습니다. 가서 엄마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후 엄만 풀려나셔서 집으로 돌아오셧습니다 아버지께서
용서해 주셧다고 합니다.. 화가나지만.. 우리 3형제를 위해서..
그땐 앞도 뒤도 안보고 가족이 다시 모였다는게 너무좋아서 몇일간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3일후.. 또한번의 배신.. 또 떠났습니다 그남자와.. 집에잇는 모든 돈을 들고..
너무 서러웠습니다. 아버지가 불쌍했습니다...
그이후 다신 엄마를 만난적이 없습니다. 물론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있습니다
한가지만 확실히 할것입니다. 나중에 꼭 찾아가 묻겠습니다
모두를 버리고 떠나야 할 만큼 힘들었냐고..
엄마가 떠났습니다.. 그때이후로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셧 습니다.. 4학년 때였습니다.
1년만에.. 기어다니실 수 없게 되셧습니다... 그리곤 점차 아마무것도 할 수 없게되셧습니다..
화상실을 가는 것 도.. 밥을 먹는것도.. 옆으로 돌아 눕는 것도..
약 80세의 할머니께서 제가 학교에 갔을때는.. 대소변,식사 등 모든걸 책임지셧습니다..
하루에 4~5번씩 기저귀를 갈아내고.. 간식에 식사까지.. 모든걸..
학교에 다녀 온 후로 제가 한다고 했지만....
네. 솔직히 귀찮았습니다. 저렇게 계신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그래서 소홀히 했었습니다.. 제가 어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미쳤었기 때문입니다.. 미쳤었죠.. 그때는..
아버지 산책은 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나가는걸 좋아하시는 걸 알면서도.. 자주 산책시켜 드리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가끔 나가고.. 최대한 빨리.. 그리고.. 구석진곳을 다녔습니다..
그만큼 나이를 먹고도.. 창피해서.... 그마저도 2년 동안 이었습니다..
4년간은 제 힘으론 한번도 바깓구경을 시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사춘기에.. 이런저런 핑게였습니다.. 그 나이 먹어서도 창피했습니다..
이렇게 저때문에.. 빛도 제대로 못 보시고.. 6년동안 지금 제가잇는 이방에서
천정만 보다가 돌아 가셧습니다.. 언젠가 보니.. 몸엔 이미 뼈만 남고..
살은 희다못해 창백해 지셧습니다... 제가 조금만 마음만 고쳐먹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이 창백한 살에 햍빛으로 그을려 드릴 수 있었을텐데..
가끔은.. 아버지가 6년간 누워계셧던 자리에 누워 천정만 바라봅니다..
이천정만 바라보시면서 6년을 버티셧을 테지요?.. 난 이렇게 10분도 버티기 힘든데..
6년을.. 이렇게.. 저때문에 지내셧을걸 생각하니.. 제앞에 걸려잇는
아버지 사진을 볼 수가 없네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날 전 집에 없었습니다.. 하필이면..
돌아가시기 전전날.. 그날저녁은 아버지 담배때문에 아버지께 상처드리는 말까지
해가면서 싸웠습니다.. 그날따라 담배를 너무 찾으시는 거에요...
그래서.. 화가나서.. 담배를 다 부러트리고.. 아버지 속을 박박긁었습니다..
나중엔.. 담배피는 아버지가 걱정 되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싫었기 때문에 이렇게 싸우는 거구나.. 하고 느낄 수 도 있었습니다..
담배조차 제손으로 못피우시는데.. 그래서.. 내가 안피워 드리면 그만이라고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자정이 넘어서까지 담배 담배.. 때를 쓰시다 잠드셧습니다..
병을 너무 오래 앓다 보시니 아이처럼 변하셧습니다.. 어쩌면 그조차 나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싸우고.. 다음날.. 난생처음으로 아버지께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몸이 행동했습니다.. 평소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딱딱하게 말하고 나갔지만..
그리고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지막 인사라도 웃으며 해드린게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친구집에서 아침에 동생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겁에질려서 그런지.. 그냥.. 아빠가 죽었다고 하더군요..
믿기지 않았습니다.. 잠결에 들은 내용이랑 꿈같았습니다..
그리곤 눈으로 직접 확인 하겠다고 마음먹고... 동생에게 괜히 욕을하며
전화를 끊고..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갔습니다..
아직은 믿지 않았지만.. 터미널까지 20분동안.. 하염없이 펑펑울었습니다..
그리고..... 집에도착하니.. 항상 아버지가 누워계시던 자리엔 아무 것 도 없었습니다..
다만 할머니께서 땅을치며 울고 계시더군요.. 그리고.. 저도 같이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참웃긴게... 울면서 드는 생각이 몰래카메라 아닌가 하는 생각?..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믿고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까요?..
나중에 들으니.. 주무시다 피를토하셧는데 옆으로 돌아누울 힘도 없으셧기 때문에..
숨이막혀 돌아가셧다고 합니다.. 하필 그날 동생이 아빠 코고는 소리가 듣기싫다고
문을 닫고자서 아무도 듣지 못했습니다.. 옆집 할머니께서 말하시길 새벽에
아버지께서 한참을 소리치셧다고 합니다.. 가족은 듣지 못한걸 이웃은 듣다니..
문을 닫고 잠을잔 동생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날 제가 없었단게..
아버지 임종을 아무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게.. 너무도 한이 됩니다..
그날 제가 집에 있엇다면 아버지 아직도 살아계셧을 수 있는거겟죠?..
요즘 두렵습니다.. 돌아가신후 1년동안은.. 돌아가셧다는걸 잊어버렸습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집에가면 계실것 같은 느낌..
근데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냥 잊혀저 가신다는 느낌?..
그래서 글로써 추억해보려고 이렇게 혼자서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 버렸습니다..
글을 다 쓰고나서 아버지 사진을 처다 볼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긴 죄인인가 봅니다.. 자기 아버지 사진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한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리 미운부모님이라도 아무리 무능력 하셔도...
언젠가는.. 그미움도 그리움이 되어서 남습니다...
제발 효도하라는 말씀밖에 못 드리겠습니다...
어렸을쩍 건강하셧던 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죽도록 맞아도 좋으니.. 살아돌아와 절 좀 때려주셧으면 좋겠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