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자기 본가로 들어가면 부인과 이혼하고 호적을 정리헤주겠다며 본가로 들어갈 것을 종용한 남편의 말을 믿고 그동안 생활하던 시누이의 집을 떠나 아이와 함께 남편의 보모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갔으나 남편은 전혀 부인과 이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호프집을 운영하는 여인과 동거를 하는 등 저와 부인을 비롯해 호프집 여인까지 동시에 3 명의 여인과 동거하는 기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부인이 키우던 아이가 사고로 죽고 부인도 부상이 심해 병원에거 2 년을 보냈는데 남편은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고 병원에 있는 부인을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습니다. 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혹시 오늘은 남편이 들어오지 않을까 다시 다음날은 오늘은 혹시 남편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다림으로 그렇게 지루한 기다림속에 2 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잘못한 일도 없이 심하게 가슴을 조이는 압박감에 짓눌린채 혼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마치 죄인이라도 된듯한 심정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제 의사를 하나도 표현하지 못한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며느리나 아내의 역할을 잃어버린채 그저 살림이나 해주는 가정부와 같은 생활를 해나갔습니다. 15년의 세월을 부인과 이혼도 하지 않고 따라서 저와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사는 사이 다시 작은 아들이 태어나 중학교를 마칠 때 까지도 저는 아들을 낳아주고 살림이나 해주는 가정주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큰아들을 임신했을 때 아이를 낳아 시댁으로 들어가면 아들을 부인과 이혼시키 호적을 정리한 후 아들과 정식으로 혼인식을 올려주겠다던 시아버지의 약속도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듯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변명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남편의 본처는 남편이 그동안 저 말고도 숱하게 많은 여인들을 만나 살림을 차리기도 햇으나 오래 않아 남편과 살림하던 여인들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떨어져나갔는지라 저도 그 여인들 같이 지치고 힘들면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자 결국은 자기가 견디지못해 1995.5 월에 이혼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 때는 시어머니께서 사고로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대소변을 모두 받아내야 했는데 자기로서는 그런 시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남편과 헤어지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이 이혼하고 떠난 후에도 남편은 저와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고 이미 언급한 호프집을 하는 여인과 부부 행세를 하며 살았고 식당을 하는 여인과도 수 년을 동거했으며 그 외에도 수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갖는 등 애정행각을 그칠줄 몰랐습니다. 나아가 호프집 여인과는 18 년이 넘도록 부부 행세를 하며 살아 이제는 그 여인과 헤어질 수 없다며 끊임 없이 저를 괴롭혔으며 그 여인과는 노후 준비까지 다 세워놓고 2004 년에 명예퇴직을 한 후 깊은 산골에 들어가 함께 농장을 하며 사는 것이 꿈이라며 모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습니다.
" 사랑인가 불륜인가?. 제 2부 "
아이를 낳고 자기 본가로 들어가면 부인과 이혼하고
호적을 정리헤주겠다며 본가로 들어갈 것을 종용한 남편의 말을 믿고
그동안 생활하던 시누이의 집을 떠나
아이와 함께 남편의 보모님이 계신 집으로 들어갔으나
남편은 전혀 부인과 이혼할 생각을 하지 않고
호프집을 운영하는 여인과 동거를 하는 등
저와 부인을 비롯해 호프집 여인까지
동시에 3 명의 여인과 동거하는 기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부인이 키우던 아이가 사고로 죽고
부인도 부상이 심해 병원에거 2 년을 보냈는데
남편은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고
병원에 있는 부인을 정성을 다해 간호하였습니다.
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혹시 오늘은 남편이 들어오지 않을까
다시 다음날은
오늘은 혹시 남편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기다림으로
그렇게 지루한 기다림속에 2 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저는 잘못한 일도 없이 심하게 가슴을 조이는 압박감에 짓눌린채
혼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마치 죄인이라도 된듯한 심정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남편이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제 의사를 하나도 표현하지 못한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며느리나 아내의 역할을 잃어버린채
그저 살림이나 해주는 가정부와 같은 생활를 해나갔습니다.
15년의 세월을 부인과 이혼도 하지 않고
따라서 저와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으며
그렇게 사는 사이 다시 작은 아들이 태어나 중학교를 마칠 때 까지도
저는 아들을 낳아주고 살림이나 해주는 가정주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큰아들을 임신했을 때
아이를 낳아 시댁으로 들어가면
아들을 부인과 이혼시키 호적을 정리한 후
아들과 정식으로 혼인식을 올려주겠다던 시아버지의 약속도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듯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변명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남편의 본처는
남편이 그동안 저 말고도 숱하게 많은 여인들을 만나 살림을 차리기도 햇으나
오래 않아 남편과 살림하던 여인들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떨어져나갔는지라
저도 그 여인들 같이 지치고 힘들면 물러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자
결국은 자기가 견디지못해 1995.5 월에 이혼을 하고 떠났습니다.
그 때는 시어머니께서 사고로 전신에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대소변을 모두 받아내야 했는데
자기로서는 그런 시어머니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남편과 헤어지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이 이혼하고 떠난 후에도 남편은 저와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고
이미 언급한 호프집을 하는 여인과 부부 행세를 하며 살았고
식당을 하는 여인과도 수 년을 동거했으며
그 외에도 수 많은 여인들과 관계를 갖는 등 애정행각을 그칠줄 몰랐습니다.
나아가 호프집 여인과는 18 년이 넘도록 부부 행세를 하며 살아
이제는 그 여인과 헤어질 수 없다며 끊임 없이 저를 괴롭혔으며
그 여인과는 노후 준비까지 다 세워놓고 2004 년에 명예퇴직을 한 후
깊은 산골에 들어가 함께 농장을 하며 사는 것이 꿈이라며
모든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