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의눈으로 북미를 보다 제10일

황소의눈2003.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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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9. 15(일)

  일찍 호텔 부근에 있는 Doval Montreal International Airport에 들어가 그 친절한 운전사와 작별하고 Boston 행 수속을 밟는 데 진척이 안되더니 뭔가 잘못 되었다. AIR CANADA 항공사에서 초과 예약을 받아 항공권이 모자라 탈 수가 없단다. 이럴 수가... 가이드가 열심히 교섭을 하더니 Toronto에 가서 바꿔 타야 한다니... 화를 내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간 애쓴 그를 생각해서 그리고 여행에 흔히 있는 일이라 하며 받아들였다. Toronto행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은 또 오른 쪽 창가 자리다. 버스로 지나 온 먼 길을 비행기로 지난다. 구름이 다소 낀 날씨지만 광대한 대지와 호수 위를 날아 Toronto 공항에 내렸다. 벌써 두 번째 Toronto 공항이다.       

  Toronto 공항에는 미국 이민귀화국 사무소가 나와 있었는데 까다로우리라는 예상과 달리 몇 가지 질문 후 간단히 통과시켰다. Boston행 비행기는 비행시간이 짧아 식사를 안 준다 하므로 총무가 탑승 직전 샌드위치 봉지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난 우리 일행과 떨어져 비행기 앞쪽 우측 좌석군에 앉았다. 창문 쪽부터 3자리에 나, 동양계, 백인 순으로 남자들이 앉았다. 먹어야 할 시간이 됐다 싶을 때 여승무원이 주스를 주길래 용감하게(?) 물었다. “Can I eat sandwich with me?" "Yes, sir." 다시 옆 동양계에게 샌드위치를 보이니 웃으며 No!란다. 다시 그 옆의 백인에게 보이니 그도 마찬가지. 겨우 절차를 마쳤다. 별로 맛이 없는 샌드위치를 우적우적 씹어 넘기고 주스를 마셨는데 한 개 먹고 나니 양도 많고 맛도 없어 남은 한 개를 배낭에 넣었다. 미국, 캐나다 음식은 예상과 달리 짜다.

  지도를 꺼내어 보고 있으니까 백인이 뭐라고 묻는데 버스통인지 뽀스통인지 모르겠다. 난감해하니 옆의 아마 화교로 보이는 동양계가 영어를 영어로 통역하니 내가 알아 듣겠다. 말인 즉, “Boston은 왜 가느냐? 휴가냐, 비즈니스냐?” “연수다.” “이 지도는 어디서 샀느냐?” “슈퍼마켓에서” “얼마냐” 가격을 보여 주었다. 미화 12달러. 지도를 빌려 달래서 한참 빌려 주었는데 자기는 Boston 및 인근 휴양지 Cape Cod(대구 곶)에서 사이클 여행을 할 것이란다.      

  Boston 공항에서는 전혀 입국 절차 없이 막바로 공항을 나가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탔다. 토론토에서 미리 한 입국 절차가 아주 간단해서 Boston에서또 하리라 예상했는데.. 가이드가 Boston 중심가는 교통이 무척 밀리는데 오늘은 휴일이라 좋단다. Quincy Market에서 내리니 햇볕이 따가워 자켓을 벗고 하얀 반팔 티 차림으로 나선다. 기후가 다르다.

  가이드에 의하면 Quincy Market는 우리나라의 재래 시장 같이 식당과 옷가게, 그리고 서커스 같은 공연이 계속되는 가장 재미있는 곳이란다. 이 말은 남편과 Cape Cod 부근에서 산 적이 있는 ㄴㅅ이 확인해 주었다. 그녀는 여기에서의 아이 학교 교육 경험, 자신의 대학원 교육 경험을 통역에 활용, 우리의 시찰에 일조했는데, 유창한 영어와 달리 우리말은 무척 서두른다. 

  석조 건물 안에 들어가자 음식 냄새가 약간 역겨운데 수많은 음식점 중에는 뜻밖에 백인이 파는 간이 일식집도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있고 벽에는 이 건물의 역사를 담은 그림들이 붙어 있다. 1826년 8월에 Boston 상인회에 의해 헌정되었는데 원래 바로 바닷가에 세워져 화물을 싣고 내리기 편리했으나 매립으로 지금은 바다에서 멀어진 채 재래시장 관광명물이 되어 버렸다.

  건물을 돌아가자 광장에서 1인 서커스가 웃음과 갈채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공연이 끝나자 아이들이 우르르 광대에게 몰려들어 함 속에 달러를 떨어 뜨린다. 나중의 어른들까지 합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팁을 주는 것으로 봐, 서비스를 받았으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미국의 문화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팁을 총무가 일괄 지불해 호텔 방을 나설 때 1달러를 놓는 것을 빼놓고는 팁 문화를 실습할 수 없는 게 아쉽다면 아쉽다.

  1623년 May Flower호 등 2척의 범선에 탄 청교도 200여 명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의 Plymouth항을 떠나 아메리카 해안에 도착, Plymouth라 이름짓고 살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정착, Boston이라 하였다. 정부 주도 아닌 민간 주도의 첫 번째 이민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세우고 자유와 평등을 내세워 대표를 뽑아 자치를 실현하며 2세를 교육하고, 인디언과 싸우면서 내륙으로 개척해 들어가 오늘날 미국의 기초를 이루었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Boston Tea Party의 영국 상선 습격 사건을 일으키고 버지니아와 함께 독립군의 주 근거지로서 렉싱턴, 벙커힐 전투를 치르낸 지원병들의 주 출신주가 바로 Boston이 있는 Massachusetts주였다. 그 후 노예무역을 맨 먼저 금지하고 남북전쟁 때 북부 공화당의 중심이 되는 등 ‘자유’하면 늘 앞장섰다. 이 주의 별칭은 the Bay State, 이 주, 이 국가의 시발점 보스턴 만(Bay)을 뜻하는 것 같다. 

  이런 영광을 상징하는 황금 빛 옛 주 의사당의 둥근 지붕, King's chapel을 차창으로 보고 현재 주 의사당 앞 광장에서 사진을 찍은 후, 찰스 강 건너 Cambridge로 향했다. Cambridge 대학 출신이 여러 명 있었던 탓에 2세 교육을 시킬 수 있었던 Massachusetts 초기 개척자들의 교육 전통은 상륙한지 불과 12년만인 1635년에 최초의 퍼블릭 스쿨을 만들었는데 그 학교가 있었던 거리를 School Street라 한다. 다음 해인 1636년 Harvard 대학을 창설하였으며, 이  지역을 Cambridge라 명명하였다. 오늘날 Cambridge 주변에는 무려 80여 개 대학이 있는데 Harvard대학, MIT대학, Radcliff여자대학이 유명하다. 그리고 많은 대학으로 인해 미국에서 가장 젊은 주민이 살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먼저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약칭 MIT는 공과대학의 전설 같은 존재로 공부를 잘 해서만이 아니라 공부가 좋아서 들어 온 수재들 집합소다. 선박 모형 전시실에 들어가 고대 이집트의 삼각돛배, 그리스?로마의 갤리선, 컬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 May Flower호에서 현대에 이르는 각종 선박을 보았는데 노란 나무로 만든 거북선 모형도 볼 수 있었다.

  옆 교실에 들어가니 2인 1조의 노란 나무 책상에 의자가 따로 있고 창문을 제외한 세 벽은 칠판으로 되어 있다. 가이드가 칠판에 ?MIT University 2002. 9. 15?라고 쓰고 MIT 2002 입학 동기생이라면서 축하 인사와 기념 촬영을 했다. 물론 우리는 옆문으로 들어 왔다나. 그러나 실은 정문도 울타리도 없다. 나오면서 보니 고액 기부자 사진이 붙어 있는데 8명 중 2명이 한국인이다. 그 중 한 명은 전 대우 그룹 김우중 회장으로 이 대학 4학년 재학 중 사망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여 기부한 것으로 전해지며, 다른 한 명은 재미 의사라고만 알려져 있다.

  가까운 Harvard 대학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옆문으로... “VERITAS"(진리)란 교훈이 보인다. ‘Harvard의 공부 벌레’로 알려졌지만 나는 오래 전의 ‘Love Story’를 기억하고 있다. ‘Love Story’! 영어로, 한글로, 영화로 보아 줄줄이 꿰 초임 시절 아이들에게 열심히 예기해주던 그 ‘Love Story’의 첫 장면은 사립고 출신 Harvard 남대생 Hart가 인접 제휴 대학인 Radcliff여대 도서관에 가서 도서대출 아르바이트를 하는 똑똑하고 자존심 강한 여대생 Jennifer한테 책을 빌리는데서 시작된다. 제니퍼는 부유한 사립고 출신인 하트를 실력 없고 부모 백으로 하바드에 들어와 연애나 스포츠에 몰두하는 건달 Preppie라고 부르며 경멸한다.

  그러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제니퍼는 아이스하키 선수인 하트가 시합하는 날 경기장에서 열렬히 응원한다. 눈오는 하바드의 교정에서 두 연인은 눈장난으로 사랑을 만끽한다. Snow Frolic 멜로디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잠깐! 그 현장에서 나는 그들의 사랑 놀이를 remember한다. 그러나 하바드에 바레트 홀을 기증할 만큼 막대한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가문은 이탈리아계 빵집 딸을 거부한다.

  신랑가의 불참 속에 결혼식이 거행되고, 신랑 아버지의 재정 지원 단절로 뒷골목의 허름한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law school 진학과 학비 조달의 어려움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 제니퍼의 파리 유학과 피아노 교수라는 장래의 포기... Hart 부자의 갈등과 Jennifer부녀의 다정함이라는 대조. 드디어 졸업과 지방 검사 임용! 고생 끝! 행복 시작!

  그러나 맬로는 반전한다. 연이은 임신 실패의 원인은 천만뜻밖에도 백혈병... 죽어가는 제니퍼는 하트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하트는 오열을 참으며  그녀를 끌어 안은채 한마디 ‘I am sorry.' 이에 대해 제니퍼는 하트의 입술에 손을 갖다대며 마지막 말 :

                  ?Love means never saying you're sorry?

  실은 설립자가 아니라지만 John Harvard 동상의 발가락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자신이나 직계 후손이 Harvard 대학에 들어가리란 말을 믿어 보면서...그 덕에 발가락은 반짝거린다. 큰 건물은 석회암으로, 일반 강의실 건물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졌다. 둔중하기까지 한 영국식 붉은 벽돌 건물에서 내실과 견고, 왠지 ‘진정한 보수’가 느껴진다. 이제 자동차 번호판의 주 별칭에 관심을 갖게되어 지나가는 자동차를 살피니,

                     New Hampshire : ?Live Free or Die?.

  연일 맑던 날씨가 잔뜩 흐리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더니 대학을 나올 때는 벌써 멈추었다. 한식당 아리랑의 식사는 어느 한식당보다 우리 입에 맞다. 이미 어두워진 길을 한참 달려 남서쪽 근교에 위치한 Radisson Hotel에 닿으니 21:00 무렵. 총무가 쫑 파티를 위해 아래 카페로 21:30까지 모이란다. Samuel Adams 맥주를 마시면서 공동회비 결산 내역을 듣고 박수로 동의한다. Samuel Adams 그는 Boston Tea Party의 주동자다.

  총무를 맡은 ㅇㄱ의 고생은 여권 발급부터 시작하여 방문 기관 선물 마련, 공동 회비 관리, 공동 팁 지불, 보고서 분담, 가이드와의 협의 등 끝이 없다. 이 여행을 remember하는 자, 그를 remember할 것이다. 그런 그가 ㅇㅈ 언니를 내세워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는 옆방에 가자고 꼬였으나 다들 고단한지 움직이지 않는다.

‘여행이란 마음은 즐거워도 몸은 고달프다’ <필자 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