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의 추억

팔랑팔랑2008.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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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야 의리번쩍한 대형 찜질방등에 밀려서 동네에 있는 목욕탕들이 거의 고사 직전이지만 한때는 집집마다 변변한 욕실시설하나 없었던 내가 아직 코 찔찔 흘리고 다니던 국딩시절에는 동네 목욕탕이야말로 지역주민의 위생상태 개선의 첨병이었던 거랬따! 뭐 위생상태 개선의 첨병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우리 알뜰한 어머니들은 목욕가방속에 바리 바리 빨래감도 들고 오셔셔 콸콸 나오는 더운물에 빨래도 은근슬쩍 하곤 하셔서 목욕탕마다 다들 "빨래하지 마시오!"내지는 "빨래금지"같은 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이기도 한 경고문구가 안붙어 있는 곳이 없었더랬따.

 

목욕탕의 추억
순도 100프로의 수도물을 자랑했던 동네 목욕탕들

 

그러나 당시 위생 개념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장착하지 않고 있던 국딩에게 있어서 목욕탕은 숨이 막히게 더운데다가 살갖이 홀라당 데일만큼 뜨거운 탕이 펄펄 끓고 있는 데다가 이태리타월이라는 궁극의 고문병기가 대기하고 있는 인생에 있어서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곳 베스트3위안에 랭크될만한 곳이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항상 목욕탕 가는 날이 되면 어느 집에서나 소소한 실랑이들이 벌어지게 마련이고 부모님들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목욕후 주전부리라는 필살의 협상카드를 제시하시곤 했고 달콤한주전부리의 유혹에  눈이 먼 우리 국딩들은 펄펄끓는 탕도 이태리타월의 가공할 위력도 감수하는 길을 선택하고는 했따.

 

재미난 것은 들어가지 전에는 그렇게 가기 싫은 목욕탕이었지만 막상 시원하게 때를 밀고 나오면 위생개념이라고는 전혀 없는 국딩입장에서도 정말 몸이 개운하다는 느낌은 확실히 느낄수가 있었고 가끔씩은 금단의 영역! 어른들만의 공간! 사우나에도 얼굴전체에 찬물적신 수건을 동동 감고서 입장해보는 호기를 부려보기도 했더랬따.

 

그러나 역시 목욕탕에서의 하일라이트는 목욕이 끝난 후 이 고통의 댓가로 주어지는 주전부리의 시간이었따. 가끔씩 아버님이 기분이 동하실때는 목욕후 근처 중국집으로 데리고 가서 천상의 맛! 짜장면이라는 궁극의 아이템을 제공해주실때도 있었지만 이건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하는 일이었고 거의 대부분 목욕후 주전부리의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각종 드링크류와 탄산음료등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언제나 내가 선택했던 단 하나의 공식 목욕탕 지정 음료는 바로 바나나 우유였다.

 

목욕탕의 추억
국딩 지정 공식 목욕탕 드링크 바나나 우유 

사진출처:빙바사이트(http://www.bingba.co.kr/)

 

국딩의 얄팍한 계산에도 바나나 우유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바나나맛이다! 다른 거 다 필요없다. 우유라고 해봐야 학교에서 우유 급식으로 나오는 흰우유만 먹어보던 국딩에게 환상의 과일 바나나의 향은 거의 마약 수준의 유혹에 다름 아니었따. 두번째는 동생이랑 나눠 먹어도 될 만큼의 넉넉한 양이었따. 얼마나 고생해서 얻어먹게 된 주전부리인데 잠깐 먹고 말쏘냐 가급적이면 용량이 큰 넘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따. 세번쨰로 요런 기회가 아니면 사먹기가 여의치 않을 만큼 상대적으로 다른 우유류에 비해서는 고가였다.

 

이런 여러 제반사항을 고려했을때 짧은 초딩의 생각으로도 바나나우유야말로 가장 안정적이며 탁월한 선택이었고 다들 잘 아시겠지만 목욕 후 시원하게 목을 넘어가는 바나나우유의 맛이란 캬아~ 땡볕에서 3시간 동안 일하다 정신이 번쩍 날 정도로 냉각된 섭씨3도짜리 맥주캔을 원샷하는 그 맛에 필적하리라!! 워낙에 맛있는 바나나 우유였지만 목욕 후에 오는 미묘한 공복감을 해소하기에는 2프로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요새처럼 목욕탕에서 맥반석 계란같은 걸 팔기 전의 일이라 이때 이 부족한 2프로를 해소시키기 위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요놈이었따 두둥!

 

목욕탕의 추억
부드러운 카스테라 사이에 왔따 달콤한 크림이 가득!!...하다고 광고 했었더랬따.

 

잘보시라 보름달도 그냥 보름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그만치 영양보름달!! 얼마나 영양이 넘처흘렀으면 저렇게 당당하게 영양이라는 타이틀을 떠억하고 걸었단 말인가. 그러나 어린 국딩의 입에 영양은 둘째문제였고 보들보들한 카스테라사이에 달콤한 크림이 매복(이 크림의 매복량이 묘하게 포장마다 달라서 당시 국딩들이 제일 먼저 하던 일은 가운데를 열어봐서 크림양을 확인하는 것이였따.) 하고 있었던 이 다소 퍽퍽하면서 달콤한 맛이 바나나 우유의 부드러우면서 달달한 맛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바나나우유와는 역시나 크림이 없는 정통카스테라와 잘 어울린다는 정통파와 나처럼 카스테라사이에 크림이 들어간 보름달류를 선호하는 변종파가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맨송맨송한 카스테라 보다는 크림이 함유된 쪽이 좀 더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는 듯 해서 좋았따.

 

그렇게 바나나우유와 보름달빵 하나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한껏 기뻐했던 일도 벌써 30여년이 다 될정도로 시간이 지났으니  생각해보면 정말 어른들 말씀대로 세월이 빠르기는 하다. 이렇게 옛추억을 열변을 토하며 떠드는 나 역시 어느새 목욕후에는 나도 모르게 역시 맥주가 제격이지 하며 캔맥주에 맥반석 계란을 입에 물고는 하는데 이번에 목욕 다녀오실때에는 다들 추억을 뽀골뽀골 되새기며 바나나우유에 보름달 빵이라도 드셔보시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또 어떨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