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년과의 이별 > 내무반 한가운데 길게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옆에선 제대통보를 받아 특명고참이 된 박강진 병장이 갓 들어온 신병을 앉혀놓고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가며 장난을 치고있고 저 건너 침상쪽엔 이등병 3명이 딱딱하게 굳어 허공을 응시하며 앉아있다. 24개월.. 앞으로 두 달 후면 이곳을 떠난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사람들은 장비점검을 하거나 빨래를 하며 한주간의 흔적을 치료한다. 옆을보니 입대한지 두달 된 최이병이 나의 총을 닦고있다. 무척 빠른 손놀림으로, 허리는 꼿꼿히 펴고. 슬쩍 손을 뻗어 녀석의 무릎을 스쳐가며 빈 탄창을 줍는척했다. "이병! 최! 근! 욱!" 너무 심각한 녀석의 옆얼굴을 보니 미안해진다. 수시로 가해지는 폭력에 잔뜩 움츠러있을 최이병. ............너 뿐 아니라 나 역시 어느날 갑자기 이곳에 던져졌어 우리가 선택한 곳이 아니지. 하지만 도망치진 마. 내가 견뎌냈 듯 너도 잘 견뎌내길 바래. 인생을 살며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다가온 힘겨운 시간이 우리를 붙잡아 인내까지 요구할 때, 어른이 되고있는거라 생각하자. 편하고 즐거웠던 유년이, 떠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자. 손에 들고있던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가자 누군가 대신 불을 끄고 재떨이에 버린다. 이등병.. 두달 전만 해도 집안의 사랑스런 아들, 지금은 담배 심부름 꾼. 관물대(개인 사물함)를 열자 저 깊은 구석으로 소포상자가 보인다. 가만히 꺼내들고 뚜껑을 열었다. 하얀 목도리, 벙어리 장갑. 은영이의 손길이 가득한 물건. 목도리를 감고 손엔 벙어리 장갑을 끼고 아직추운 3월의 산속으로 걸어갔다. 녹색 전투복만 가득한 군부대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목도리와장갑을 낀 내모습이 어색하다. 장갑을 코에대고 힘껏 숨을 들이쉰다. 미약하게 스며있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려.. 또 다시 힘껏. 그리고 또 힘껏.. 하지만 오랜시간 향이 날아가버린 목도리와 장갑엔 눅눅한 관물대의 냄새만 났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내 인생에 스며와 물처럼 감싸주던 그녀는 어디로 간걸까? ..........은영아 어디있니? 어디서부터 너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는지 생각이 안나. 정말 알 수 없었다. 어디서 부터 어긋난 건지.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더 답답한 건.. 정말 그녀가 내게서 떠나려하는건지조차 모른다는 것. 그녀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직접 만나 꼭 안을 수 있다면.. ............................ "단결! 이병 최근욱! 김영민 병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야?" "면횝니다! 복장 갖추고 행정반으로 내려오시랍니다!" "뭐? 누구래?" "여자랍니다!" 은영이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순간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그녀가 이곳까지 찾아와 주었다.. 잠시 서있는 내 눈에 최이병의 얼굴표정이 묘하게 다가왔다. 녀석의 관물대에 붙어있던 애인사진. 분명 녀석은 날 부러워하고 있겠지. 내가 마주바라보자 녀석도 가만히 서 있다가는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애..애인분이십니까?" 이등병은 개인적인 질문을 할 수 없다. "군기 빠져가지고.." "아..아닙니다! 이병! 최근욱!"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긴장한 얼굴로 차렷하고있는 녀석의 전투복 주머니에 담배 한갑을 찔러주었다. 늘 모자라는 이등병의 담배, 그리고 굶주렸을 정. "이병! 최근욱! 감사합니다!" 서둘러 냇가로 뛰어가 차디찬 3월의 물로 다시 세수를 하고 일회용 면도기로 꼼꼼히 면도를 했다. 문득 오래 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낀것이 떠오른다. 온수가 나오지 않던 자취방의 샤워기. 한껏 떨리는 맘을 진정시키며 꼼꼼하게 깎아내던 수염. 그녀와 첫 약속을 했던 신학기의 어느날. 새 전투복을 꺼내입는데 최이병이 정성 껏 닦아놓은 군화를 내민다. ................너도 조금 후면 누군가가 닦아 줄꺼야. "고맙다" "아닙니다!" 이녀석..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다. 하긴.. 내가먼저 고맙다고 했으니.. 부대를 벗어나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흙길을 따라 은영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내게먼저 손을 내밀어준 은영이. 서로의 알 수 없는 오랜 침묵을 먼저 깨뜨려준 그녀. ....그녀를 보면 아무 말 하지않고 꼭 끌어안아야지 ....그리고 사랑한다 말해야지. ....쉬지않고, 사랑한다고.. ....한시간 동안 말해야지. ....아니, 두시간.. ....아니..세시간.. ....밤새 그녀에게 사랑한다고만 말해야지.. 아아..쉼없이 달려 민통선을 지나 민간인 거주지역으로 들어서기까지 나는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끝없는 폭격을 하고, 달 밝던 밤 노루를 죽여가며 한없이 딱딱해져버린 내 영혼이 다시 생기를 찾을 곳은 은영이 뿐이라고. 이제 정말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면회소에 들어서서는 그녀를 찾았다. 하얀 얼굴을, 하얀 미소를.. "영민아!" "어.." 짙은 화장과 짙은 미소.. 그녀는 혜민이었다. ...................................................... 이미 우린 많이 취했다. 자정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우리 둘. 혜민의 붉고도 긴 손톱을 보자 은영이의 생일날이 떠올랐다. 내가 잊었던 그녀의 생일. "와우..영민이 정말 남자다워졌다.." "남자는 무슨.." "후훗..알긴 아는군....사실 아직 내 눈엔 귀여워 보여" "뭐야? 이.." "뭘? 뭘? 때려! 때려!" 야릇한 향기가 나는 머릿결을 내게로 숙이며 혜민이 킥킥거렸다. 그 작고 아담한 이마위에 살짝 꿀밤을 먹이자 아픈 척 엄살을 떤다. "아야...숙녀를...." 면회소에서 혜민을 보았을 때 은영이의 모습을 상상하던 난 무척 실망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아름답던 그 시절, 함께했던 친구니까. "석훈이는 잘지내?" "말도마라, 요즘은 팔자가 펴서 가만히 앉아서 놀고먹는다." 은영이와 내가 휴학하던 해 그 둘도 휴학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제외한 셋은 왜 휴학을 한건지도 불분명했다. 은영이도, 석훈이도, 혜민이도. 술을 마시는 혜민의 입 언저리에 긴 흉터가 보였다. "입은 왜그런거야?" "...." 나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더니 별 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술먹고 넘어졌다 왜?" "자랑이다." 밤 1시를 넘기고야 우린 거리로 나왔다. 어두운 길을 걷는 내게 혜민이 깊게 팔짱을 껴온다. "영민아 방잡아야지" "응" 정말 아무런 감정없이 대답을하고 작은 모텔로 들어갔다. 그녀가 먼저 샤워하러 들어간 후 침대에 걸터앉아 TV를 켜자 국산 애로영화가 방송된다. 어색한 연기, 어색한 몸짓, 어색한 신음. 채널을 돌려 재방송 드라마를 틀어놓고 멍하니 응시한다. 여주인공이 울고있다. 남자친구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겨서.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고있다. 양 뺨으로 눈물도 막 흘리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여주인공의 울음, 마구 흐르는 눈물.....은영아.. "영민아 씻어" "응" 혜민이 욕실에 들어갈 때 차림 그대로 다시 나왔다. 몸에 꼭 끼는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바지 갑갑해서 벗고나오려다 너 기절할까봐 다시 입었더니 불편해 죽겠네." "벗고싶음 벗어라" "응? 오..영민이 많이 쎄졌는데." 피식 웃으며 수건을 챙겨 들어온 욕실 안엔 수증기와 비누향이 가득하다. .................................... 다 씻고나오자 혜민이 침대위에서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에로영화를 보고있다. "나 바지 벗고있다." 약올리는 듯 생글거리는 얼굴. 기절하고 싶지 않으면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 "응" 이불 위 보이는 맨 어께를 보니 스웨터까지 벗었으면서.. 구석에서 담요를 가져와 펴곤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영민아 TV좀 꺼줘" "응" 이윽고 방안은 조용해졌다. 오늘 날 찾아온게 은영이였다면.. 은영이였다면.. 은영이였다면.. 정말 그녀는 내게서 떠난걸까?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새삼 한없이 딱딱해지고 매말라 버린 나의 영혼과 모습이 슬퍼졌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녀의 위로가, 그녀의 사랑이 그리웠다. 따뜻한 그녀의 품 속에선 다시 꿈을 꿀 수 있을텐데.. 호기심 가득 세상을 동경하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닥은 따뜻했지만 난 자꾸 추워졌다. ............정말 그녀가 떠나버린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 그녀의 텅 빈 공허를 가득 채워주지 못한 후회. ........... 막연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편지하지 않았던 나. ...지난 가을 내가 죽였던 노루의 얼굴. ...입을 벌리고 혀를 길게 내민 체 옆으로 누워있던 모습. ...수류탄에 찢겼는지 어디론가 없어졌던 다리. ...그리고 사방에 가득했던 피.. 피.. 피.. 위로받고싶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부드러움 속에서 실컷 울고싶기도 했다. <어.딘.가. 따뜻하고 포근한 곳에서 쉬고싶다.> <미치도록> .. "영민아" "응?" "자?" "아니" "무슨생각해?" "...." "오늘 내가 왜 면회왔는지 안궁금해?" 그녀의 질문을 받고나자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어쩐일이야?" 잠시, 아주 잠시 뜸을 들이고 혜민이 말했다. "나..팔베게좀 해줄래? 그럼 말해줄께."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자 혜민이 이불을 들추고 날 맞아줬고 언뜻 보이는 그녀의 하얀 몸이 몹시 부드러워 보였다. 손을 뻗자 혜민이 깊게 기대며 안겨온다. 온 몸 가득 퍼지는 따뜻함. 부드러움. 그리고 여인의 향기 순간 그녀를 양팔로 꼭 껴안으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꾸 몸을 웅크리며 혜민에게 다가갔다. 쉼을 찾아서, 위로를 찾아서. 혜민의 살결은 향긋했다. 그리고 부드러웠으며 따뜻했다. 그 은은한 감촉에 지난 2년간 한껏 매말라버린 나의 마음이 촉촉해지는게 느껴졌으며 어쩌면 울음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너..안고싶어" ............................................... 첫경험은. 달콤하지도, 짜릿하지도 않았다. 나는 깊은 바다에 빠진 아이처럼 어딘가 불안정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고 혜민은 그런 날 꼭 안아 다독거려주었다. 따스한 혜민의 체온이 자꾸 어디론가 멀어지는 것 같은 갈증에 다급해 했고 그런 나의 마음쯤은 다 안다는 듯 그녀는 나의 이마위에 끝없이 입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지금도 아득하게만 남아있는 그 날의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마주껴안고 차츰 호흡이 가라앉을 무렵 혜민이 몸을 일으켜 핸드백에서 무언가 꺼내 내게 건내줬다. "이거 받아" "..?" 혜민이 내게 준 것은 <석훈의 오토바이 키였다> "석훈이가 너 주라고 했어" "...." "그거 주려고 온거야" "...." 혜민이가 다시 내 품으로 깊게 안겨온다. "그리고..네게 위로받고 싶었어" 이상했다. 그녀와 첫경험을 나누고, 내게 위로받고 싶었다는 혜민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나의 유년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잠시의 침묵 후 그녀가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우리 거제도 갔던거 기억나?" 그 아름답던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거제도 조금 못가서 <통영> 이란 곳 지나간것도 기억나?" 지금 껏 이렇게 기운없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혜민을 본 적이 없다. 전혀 몰랐던 그녀의 연약한 모습에 자그마한 머리를 꼭 끌어안아주며 대답했다. "응..기억나" "거기가..석훈이랑 내가 어릴 적 부터 자란곳이야" "...." "기억에도 없는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 부터" "...."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쌍둥이 남매였을거라고도 했어" "...." "하지만 엄연히 난 '윤' 씨 이고 석훈이는 '강' 씨 이니까 그냥 하는 얘기였겠지" "...." "우린 보육원에서 자랐어" 점점 춥기만 한 세계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너고 싶지 않은 유년의 강을 지나고 있는 내 모습도. "우린 아무런 흔적이 없어. 부모가 누군지..어떻게 버려졌는지..아무것도." "...."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나이의 아기 둘이 만난거지. 같은 고아원에서" "...." "원장선생님이 우리들 성과 이름을 붙여줬고 그렇게 우린 같이 자랐어" 등을 쓰다듬는 혜민의 손길이 느껴진다. 내가 그녀에게 위로받고싶어 했던 것 처럼 지금 혜민도 내게서 위로를 찾고있다. "혹시 같은 날, 같은장소에 버려졌다면 남매가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누구도 확실히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우리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 그냥 가까운 고아원 친구였을 뿐이지. 그치만.. 나나 석훈이..서로를 <가족처럼 의지하기도 해>" 지금 건너고 있는 강은 무척 깊다고 느낀다. 건너오기 시작한 유년의 숲엔 따사로운 햇살이 비취고 있고 달빛 가득한 바다가 일렁이고 있지만 나는 어떻게 배에 오른지도 모른 체 희미한 어둠에 쌓여있는 저 곳,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자꾸만 다가가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땐 석훈이 아이를 가지기도 했어 원장 선생님에게 끌려가 아이를 지웠고 그 일 때문에 석훈이는 짐승처럼 맞았지. 얼마나 맞았던지..애가 몇 일을 멍한거야..밥도 안먹고, 물도안먹고, 고아원 예배당에 몇일이고 앉아만 있는거야... 얼마나 맘이 아팠던지.. 어느 날인가 내가그랬어 도망가자고, 어디든 떠나버리자고. 그런데 갑자기 내 어께를 꽉 잡고는 뭐랬는 줄 알아? <혜민아 우리 공부하자> 이러는 거야..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땐 정말 절박해졌지 뭐야. 그 후로 우린 정말 미친 것처럼 공부를 했어 공부만 잘하면 행복해 질 거라고 상상했지 ....그거 알아? 석훈이는 고등학교 3년동안 전교 6등 밖으로 나간 적 없고 난 8등안에 항상 들었단 거... 그리고 또 어느 날은 합창단엘 가자는 거야. 교양도 쌓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우리도 남 들 처럼 살 수 있을거라면서. 그래서 또 우린 고등학교 3년 동안 시간을 쪼게가며 합창단 활동을 했지... 우습게도 난 성악가가 되고 싶은 꿈도 꾸게됐어. 하지만 결국 공부만 했어..뻔하잖니.. 고아가 그 시골에서 성악 레슨받기가 쉬운 일인지.. 거기에 비싼 음대 학비는 어떻게 하구.. 그 후엔..너도 아는 것 처럼..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했고 나란히 붙은거야. ..사람들은 참 웃겨.. 우리가 등록금이랑 생활비가 없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다니니까 슬슬 피하더라구.. 솔직하게 형편이 어렵다..미안하다..이런 것도 아니었어. 그냥 우릴 피해다니는거야. 마치 더러운 거지보듯이 말이야. 등록 얼마 전에 우린 그곳을 떠났지. 영원히.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 낸 건 <도둑질> 이었어. 서울로 오기 전 우리 둘은 남쪽의 도시들을 돌며 예배당 헌금함을 털었어 음...한 70군데정도?..정말 교회 많더라... 아마 우리 둘은 확실히 지옥에 갈거야 그 돈으로 등록하고..방 구하고.. 영민아..우리 처음 만날 무렵..석훈이랑 나랑 뭐하고 있었는 줄 알아?.. 학교 끝나면 석훈이는 <도둑질> 하러 다녔고 난 <술집>에 다녔어..후훗..꿈에도 몰랐지? 그렇게 서로 번 돈은 각자가 가졌고..가끔 석훈이가 건수 큰 것 찾으면 같이 훔치기도 했어. 물론 반반씩 나눴지..그 돈은.. 하지만..일년이 지날무렵 우린 지치고 말았어. 학교생활도, 끝없이 훔치고 술을 따라야 하는 우리 모습도. 그래서 우린 일년 휴학하고 정당하게 일을해서 돈을 모으기로 했어..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자고.. 하지만 모이지 않는 돈 때문에 또 휴학을 했고 거의 2년동안 우린 정말 열심히 일을했어, 정당한 일, 사람들이 알아도 칭찬할 일. 그런데..얼마전에..내가 석훈이더러 그랬지. 난 다시 술집에 가겠다고..아무리 일해도 모이지 않는 돈 때문에 화가난다고.. 내 말을 듣더니 그냥 <맘대로 해> 하더군. 석훈이는 내게 절대 간섭하지 않아. 나도 그렇고 결국 난 다시 옛날에 나갔던 사무실을 찾아갔고 룸살롱엘 갔어... 그런데..새벽에 일 끝내고 사무실을 나서면 꼭 오토바이를 타고 날 데리러온 석훈이가 있는거야.. 막 남자를받고, 술에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는 나를 데리러.." 내 가슴위로 혜민이의 따스한 눈물이 번져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가녀린 어께도 조금씩 흔들린다. 더 힘을주어 꼭 그녀를 껴안았다. "한달 전쯤에도..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여전히 석훈이가 와 있는거야.. 자기도 힘들게 일하고 잠깐 자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나오는게 쉽겠니? 몇번은 막 욕도하면서 오지말라고 화도 냈는데. 그 녀석 그냥 나오는거야. 매일. 그런데 그 날은 많이 피곤했는지..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핸들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더라..그 추운데, 잔뜩 웅크리고.." 눈물에 젖은 혜민이의 숨결이 자꾸만 가슴에 부딪힌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함께 울고있다. 우린 서로를 놓치면 끝없는 곳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는 듯 서로를 꼭 껴안고 있다. 그리고 나처럼 혜민이도, 석훈이도, 그리고 은영이도 우리 모두는 지독히 추워하고 있다는 걸 아프게 깨닫는다. "석훈이도 경험한 여자가 4-50명은 될거야.. 난 말할 것도 없고.. 우린 서로..그런 것 뭐라하진 않았어..하지만..하지만.. 돈에 몸을 파는 내 모습이 자꾸 그녀석에게 미안해 지는거야.. 내가 좋아서 즐기는 것도 아니고..돈에 팔리는 내가.. .... 그 날 그 모습을 보면서 사무실로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었어, 사장도, 다른 아가씨 들도.. 그리고 사장 금고안에 돈이 보였지. 나도 잘 모르겠어..워낙 순간적인 행동이었으니까.. 휴지통에 버려진 쇼핑백을 주워들곤 정신없이 담기 시작했어.. 한뭉치..두뭉치..석훈이가, 내가.. 수 없는 날을 일하고 술을따르고 몸을 팔아야 모이는 돈.. 그리고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내려왔어..정말 끝이란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마침 계단을 오르던 사장이랑 부딪힌거야.. 그 좁은 계단에서..쇼핑백이 터지고..계단 가득 돈들이 쏟아졌지.. 사장은 내 머릿채를 휘어잡고 거리로 끌고 나왔어..개처럼. 그리고 힘껏 날 땅에 쓰러트리고는 구둣발로 사정없이 얼굴을 짓이기기 시작했어.." 손을 뻗어 그녀 입술의 흉터를 어루만졌다. 마구 울고있는 그녀의 눈물이 손 안 가득 묻어난다. "...결국 석훈이가 달려왔어. 구둣발에 내 얼굴이 짓이겨지는 걸 본 석훈이가... 어디서 주웠는지 유리병도 들고 말이야.. 그리고 힘껏 사장의 머리를 내리쳤지..힘 껏..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버렸으니까.. 그리고 사장은 즉사했어.. 그 자리에서 바로.." 마주 닿은 우리의 온 몸이 땀에 젖어 축축했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도 눈물로 가득 젖어있다. "사람들이 하나..둘..몰려들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 석훈이가 끌려가고.. 그런데 그자식이..경찰서에서 ...그자식이 그러는거야 자기가 훔친거라고..자기가 훔치다가 실수로 죽인거라고.. 내가 놀라서 아니라고 말하려 입을여니까..그 자식이 뭐랬는 줄 알아? 경찰서가 떠나갈 만큼 큰소리로..뭐랬는줄 알아..? < 썅.년.아. 넌.누.구.야 > .. " 석훈은 20년 형을 언도받고 수감중이라고 했다. ................................................... 그 날 우린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무척 오래동안 가만히 있으면서 서로를 쓰다듬다가 겨우 우리의 울음이 그치고 호흡이 안정될 무렵 혜민이가 말했었다. 이런 슬픈 이야기는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바지를 벗고 나오면 내가 기절할거라 말하던 장난스런 음성으로 "에이..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남잔 줄 알았으면 우리 병원 갔던 날 확 덮쳐버릴 걸..그 땐 숫총각 이었을 텐데.." "...." "후우..아니다. 그래도 더러운 나보다는 은영이가 백배 낫지." 손가락을 세워 내 등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대답했다. "혜민아' "왜" "나..니가 첨이야" "...." "그리고 병원 갔던 그 날. 너랑 한 입맞춤도 니가 첨이구." "....' "내 첫키스랑 첫경험..다 니가 첨이야" 그리고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를 꼭 껴안았다. 아무말 없는 혜민이.. 잠시 후 짧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왠지 미안해.." "아니야..나..정말 네가 고마워" 창문으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그 희미한 불및에 혜민이의 속눈썹이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혜민아..부탁이 있어" "뭔데..?" "나..네 노래 듣고 싶어 Lascia ch'io pianga.." 아주 잠시 가만히 있던 혜민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품안에 꼭 안으며 나즉히 노래를 불렀다. 엄마처럼. 잃어버린 아가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처럼.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 l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 de miei martiri sol per piet.........." <울게 하소서.> 가혹한 운명과 자유의 탄식 가운데 울게 하소서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운명은 나의 영혼을 영원한 고통속에 울게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나를 버려두오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오직 자비로서 나의 번뇌를 부수고 슬픔이 사라지게 해주오 오직 자비로서 나의 번뇌를.. 내 영혼의 고뇌를 부수고 안식을 주오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가혹한 운명과 자유를 향한 탄식 가운데 울도록, 나를 버려두오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헨델의 오페라 Rinaldo 중 Almirena의 아리아. ......................................................................... 다음 날 터미널에서 막 버스에 오르던 혜민이가 다시 몸을 돌려 날 끌어안고는 긴 입맞춤을 건냈다. 줄 서있는 사람들 앞에서. 무척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입맞춤을 끝내고 환한 얼굴로 그녀는 말했었다. "만약 남자와 여자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우릴 두고 하는 말일거야" 버스가 출발하고 보이지 않게 될 때 까지 난 그녀를 배웅했다. 주머니엔 석훈의 오토바이 열쇠가 단단한 감촉을 허벅지에 전해주었고 막 교차로를 돌아 사라지는 버스를 보며 길고 긴 시간동안 석훈을 기다릴 혜민을 생각했다. 그리고 부대로 복귀하는 긴 길을 걸어오며 이젠 완전히 건너와버린 검은 강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 설레임 가득한 따사로운 유년의세계로 돌아 갈 수 없다는 걸 아프도록 떠올렸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처럼 홀로 그 강을 건너고 있을 은영이를 기억하며 반드시 그녀를 되찾을거라 다짐하기도 했다.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그 날의 기억을 함께 간직한 그녀라면 이 추운 세계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그리고 다시는 그녀가 춥지 않도록 하리라 다짐하면서. .... 내 유년이 끝나던 그 어느 날에. *****************************************************
나를 스쳐간 스무살, 그리고 봄 < 14 > 유년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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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과의 이별 >
내무반 한가운데 길게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옆에선 제대통보를 받아 특명고참이 된 박강진 병장이
갓 들어온 신병을 앉혀놓고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가며 장난을 치고있고
저 건너 침상쪽엔 이등병 3명이 딱딱하게 굳어 허공을 응시하며 앉아있다.
24개월..
앞으로 두 달 후면 이곳을 떠난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사람들은 장비점검을 하거나 빨래를 하며
한주간의 흔적을 치료한다.
옆을보니 입대한지 두달 된 최이병이 나의 총을 닦고있다.
무척 빠른 손놀림으로,
허리는 꼿꼿히 펴고.
슬쩍 손을 뻗어 녀석의 무릎을 스쳐가며 빈 탄창을 줍는척했다.
"이병! 최! 근! 욱!"
너무 심각한 녀석의 옆얼굴을 보니 미안해진다.
수시로 가해지는 폭력에 잔뜩 움츠러있을 최이병.
............너 뿐 아니라 나 역시 어느날 갑자기 이곳에 던져졌어
우리가 선택한 곳이 아니지.
하지만 도망치진 마.
내가 견뎌냈 듯 너도 잘 견뎌내길 바래.
인생을 살며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삶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다가온 힘겨운 시간이 우리를 붙잡아 인내까지 요구할 때,
어른이 되고있는거라 생각하자.
편하고 즐거웠던 유년이, 떠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자.
손에 들고있던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가자 누군가 대신 불을 끄고 재떨이에 버린다.
이등병..
두달 전만 해도 집안의 사랑스런 아들, 지금은 담배 심부름 꾼.
관물대(개인 사물함)를 열자 저 깊은 구석으로 소포상자가 보인다.
가만히 꺼내들고 뚜껑을 열었다.
하얀 목도리, 벙어리 장갑.
은영이의 손길이 가득한 물건.
목도리를 감고 손엔 벙어리 장갑을 끼고
아직추운 3월의 산속으로 걸어갔다.
녹색 전투복만 가득한 군부대에 눈이 부시도록 하얀 목도리와장갑을 낀 내모습이
어색하다.
장갑을 코에대고 힘껏 숨을 들이쉰다.
미약하게 스며있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려..
또 다시 힘껏.
그리고 또 힘껏..
하지만 오랜시간 향이 날아가버린 목도리와 장갑엔
눅눅한 관물대의 냄새만 났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내 인생에 스며와 물처럼 감싸주던 그녀는 어디로 간걸까?
..........은영아 어디있니?
어디서부터 너에게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는지 생각이 안나.
정말 알 수 없었다.
어디서 부터 어긋난 건지.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더 답답한 건..
정말 그녀가 내게서 떠나려하는건지조차 모른다는 것.
그녀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직접 만나 꼭 안을 수 있다면..
............................
"단결! 이병 최근욱! 김영민 병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야?"
"면횝니다! 복장 갖추고 행정반으로 내려오시랍니다!"
"뭐? 누구래?"
"여자랍니다!"
은영이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순간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서고 말았다.
그녀가 이곳까지 찾아와 주었다..
잠시 서있는 내 눈에 최이병의 얼굴표정이 묘하게 다가왔다.
녀석의 관물대에 붙어있던 애인사진.
분명 녀석은 날 부러워하고 있겠지.
내가 마주바라보자 녀석도 가만히 서 있다가는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애..애인분이십니까?"
이등병은 개인적인 질문을 할 수 없다.
"군기 빠져가지고.."
"아..아닙니다! 이병! 최근욱!"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긴장한 얼굴로 차렷하고있는 녀석의 전투복 주머니에
담배 한갑을 찔러주었다.
늘 모자라는 이등병의 담배, 그리고 굶주렸을 정.
"이병! 최근욱! 감사합니다!"
서둘러 냇가로 뛰어가 차디찬 3월의 물로 다시 세수를 하고
일회용 면도기로 꼼꼼히 면도를 했다.
문득 오래 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낀것이 떠오른다.
온수가 나오지 않던 자취방의 샤워기.
한껏 떨리는 맘을 진정시키며 꼼꼼하게 깎아내던 수염.
그녀와 첫 약속을 했던 신학기의 어느날.
새 전투복을 꺼내입는데 최이병이 정성 껏 닦아놓은 군화를 내민다.
................너도 조금 후면 누군가가 닦아 줄꺼야.
"고맙다"
"아닙니다!"
이녀석..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다. 하긴.. 내가먼저 고맙다고 했으니..
부대를 벗어나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흙길을 따라
은영이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내게먼저 손을 내밀어준 은영이.
서로의 알 수 없는 오랜 침묵을 먼저 깨뜨려준 그녀.
....그녀를 보면 아무 말 하지않고 꼭 끌어안아야지
....그리고 사랑한다 말해야지.
....쉬지않고,
사랑한다고..
....한시간 동안 말해야지.
....아니, 두시간..
....아니..세시간..
....밤새 그녀에게 사랑한다고만 말해야지..
아아..쉼없이 달려 민통선을 지나 민간인 거주지역으로 들어서기까지
나는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끝없는 폭격을 하고,
달 밝던 밤 노루를 죽여가며 한없이 딱딱해져버린 내 영혼이
다시 생기를 찾을 곳은 은영이 뿐이라고.
이제 정말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면회소에 들어서서는 그녀를 찾았다.
하얀 얼굴을,
하얀 미소를..
"영민아!"
"어.."
짙은 화장과 짙은 미소..
그녀는 혜민이었다.
......................................................
이미 우린 많이 취했다.
자정이 넘도록 술잔을 기울이는 우리 둘.
혜민의 붉고도 긴 손톱을 보자 은영이의 생일날이 떠올랐다.
내가 잊었던 그녀의 생일.
"와우..영민이 정말 남자다워졌다.."
"남자는 무슨.."
"후훗..알긴 아는군....사실 아직 내 눈엔 귀여워 보여"
"뭐야? 이.."
"뭘? 뭘? 때려! 때려!"
야릇한 향기가 나는 머릿결을 내게로 숙이며 혜민이 킥킥거렸다.
그 작고 아담한 이마위에 살짝 꿀밤을 먹이자 아픈 척 엄살을 떤다.
"아야...숙녀를...."
면회소에서 혜민을 보았을 때
은영이의 모습을 상상하던 난 무척 실망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아름답던 그 시절, 함께했던 친구니까.
"석훈이는 잘지내?"
"말도마라, 요즘은 팔자가 펴서 가만히 앉아서 놀고먹는다."
은영이와 내가 휴학하던 해 그 둘도 휴학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나를 제외한 셋은 왜 휴학을 한건지도 불분명했다.
은영이도, 석훈이도, 혜민이도.
술을 마시는 혜민의 입 언저리에 긴 흉터가 보였다.
"입은 왜그런거야?"
"...."
나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더니 별 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술먹고 넘어졌다 왜?"
"자랑이다."
밤 1시를 넘기고야 우린 거리로 나왔다.
어두운 길을 걷는 내게 혜민이 깊게 팔짱을 껴온다.
"영민아 방잡아야지"
"응"
정말 아무런 감정없이 대답을하고 작은 모텔로 들어갔다.
그녀가 먼저 샤워하러 들어간 후 침대에 걸터앉아 TV를 켜자 국산 애로영화가 방송된다.
어색한 연기, 어색한 몸짓, 어색한 신음.
채널을 돌려 재방송 드라마를 틀어놓고 멍하니 응시한다.
여주인공이 울고있다. 남자친구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겨서.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서럽게 울고있다. 양 뺨으로 눈물도 막 흘리면서.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여주인공의 울음, 마구 흐르는 눈물.....은영아..
"영민아 씻어"
"응"
혜민이 욕실에 들어갈 때 차림 그대로 다시 나왔다.
몸에 꼭 끼는 청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바지 갑갑해서 벗고나오려다 너 기절할까봐 다시 입었더니 불편해 죽겠네."
"벗고싶음 벗어라"
"응? 오..영민이 많이 쎄졌는데."
피식 웃으며 수건을 챙겨 들어온 욕실 안엔 수증기와 비누향이 가득하다.
....................................
다 씻고나오자 혜민이 침대위에서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에로영화를 보고있다.
"나 바지 벗고있다."
약올리는 듯 생글거리는 얼굴.
기절하고 싶지 않으면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
"응"
이불 위 보이는 맨 어께를 보니 스웨터까지 벗었으면서..
구석에서 담요를 가져와 펴곤 맨바닥에 드러누웠다.
"영민아 TV좀 꺼줘"
"응"
이윽고 방안은 조용해졌다.
오늘 날 찾아온게 은영이였다면..
은영이였다면..
은영이였다면..
정말 그녀는 내게서 떠난걸까?
안되는데..
그러면 안되는데..
새삼 한없이 딱딱해지고 매말라 버린 나의 영혼과 모습이 슬퍼졌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녀의 위로가, 그녀의 사랑이 그리웠다.
따뜻한 그녀의 품 속에선 다시 꿈을 꿀 수 있을텐데..
호기심 가득 세상을 동경하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닥은 따뜻했지만 난 자꾸 추워졌다.
............정말 그녀가 떠나버린건지도 모른다는 생각.
........... 그녀의 텅 빈 공허를 가득 채워주지 못한 후회.
........... 막연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편지하지 않았던 나.
...지난 가을 내가 죽였던 노루의 얼굴.
...입을 벌리고 혀를 길게 내민 체 옆으로 누워있던 모습.
...수류탄에 찢겼는지 어디론가 없어졌던 다리.
...그리고 사방에 가득했던 피..
피..
피..
위로받고싶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부드러움 속에서 실컷 울고싶기도 했다.
<어.딘.가. 따뜻하고 포근한 곳에서 쉬고싶다.>
<미치도록>
..
"영민아"
"응?"
"자?"
"아니"
"무슨생각해?"
"...."
"오늘 내가 왜 면회왔는지 안궁금해?"
그녀의 질문을 받고나자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어쩐일이야?"
잠시, 아주 잠시 뜸을 들이고 혜민이 말했다.
"나..팔베게좀 해줄래? 그럼 말해줄께."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자 혜민이 이불을 들추고 날 맞아줬고
언뜻 보이는 그녀의 하얀 몸이 몹시 부드러워 보였다.
손을 뻗자 혜민이 깊게 기대며 안겨온다.
온 몸 가득 퍼지는 따뜻함.
부드러움.
그리고 여인의 향기
순간 그녀를 양팔로 꼭 껴안으며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꾸 몸을 웅크리며 혜민에게 다가갔다.
쉼을 찾아서, 위로를 찾아서.
혜민의 살결은 향긋했다.
그리고 부드러웠으며 따뜻했다.
그 은은한 감촉에 지난 2년간 한껏 매말라버린 나의 마음이 촉촉해지는게 느껴졌으며
어쩌면 울음이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나..너..안고싶어"
...............................................
첫경험은.
달콤하지도, 짜릿하지도 않았다.
나는 깊은 바다에 빠진 아이처럼 어딘가 불안정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고
혜민은 그런 날 꼭 안아 다독거려주었다.
따스한 혜민의 체온이 자꾸 어디론가 멀어지는 것 같은 갈증에
다급해 했고
그런 나의 마음쯤은 다 안다는 듯
그녀는 나의 이마위에 끝없이 입을 맞춰주었다.
그렇게
지금도 아득하게만 남아있는 그 날의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마주껴안고 차츰 호흡이 가라앉을 무렵
혜민이 몸을 일으켜 핸드백에서 무언가 꺼내 내게 건내줬다.
"이거 받아"
"..?"
혜민이 내게 준 것은
<석훈의 오토바이 키였다>
"석훈이가 너 주라고 했어"
"...."
"그거 주려고 온거야"
"...."
혜민이가 다시 내 품으로 깊게 안겨온다.
"그리고..네게 위로받고 싶었어"
이상했다.
그녀와 첫경험을 나누고, 내게 위로받고 싶었다는 혜민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나의 유년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잠시의 침묵 후 그녀가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우리 거제도 갔던거 기억나?"
그 아름답던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거제도 조금 못가서 <통영> 이란 곳 지나간것도 기억나?"
지금 껏 이렇게 기운없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혜민을 본 적이 없다.
전혀 몰랐던 그녀의 연약한 모습에 자그마한 머리를 꼭 끌어안아주며 대답했다.
"응..기억나"
"거기가..석훈이랑 내가 어릴 적 부터 자란곳이야"
"...."
"기억에도 없는 아주 어린 아기였을 때 부터"
"...."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쌍둥이 남매였을거라고도 했어"
"...."
"하지만 엄연히 난 '윤' 씨 이고 석훈이는 '강' 씨 이니까 그냥 하는 얘기였겠지"
"...."
"우린 보육원에서 자랐어"
점점 춥기만 한 세계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너고 싶지 않은 유년의 강을 지나고 있는 내 모습도.
"우린 아무런 흔적이 없어. 부모가 누군지..어떻게 버려졌는지..아무것도."
"...."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나이의 아기 둘이 만난거지.
같은 고아원에서"
"...."
"원장선생님이 우리들 성과 이름을 붙여줬고 그렇게 우린 같이 자랐어"
등을 쓰다듬는 혜민의 손길이 느껴진다.
내가 그녀에게 위로받고싶어 했던 것 처럼
지금 혜민도 내게서 위로를 찾고있다.
"혹시 같은 날, 같은장소에 버려졌다면 남매가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누구도 확실히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고..우리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
그냥 가까운 고아원 친구였을 뿐이지.
그치만..
나나 석훈이..서로를 <가족처럼 의지하기도 해>"
지금 건너고 있는 강은 무척 깊다고 느낀다.
건너오기 시작한 유년의 숲엔 따사로운 햇살이 비취고 있고
달빛 가득한 바다가 일렁이고 있지만
나는 어떻게 배에 오른지도 모른 체 희미한 어둠에 쌓여있는 저 곳,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자꾸만 다가가고 있다.
"....중학교 3학년 땐 석훈이 아이를 가지기도 했어
원장 선생님에게 끌려가 아이를 지웠고 그 일 때문에 석훈이는 짐승처럼 맞았지.
얼마나 맞았던지..애가 몇 일을 멍한거야..밥도 안먹고, 물도안먹고,
고아원 예배당에 몇일이고 앉아만 있는거야...
얼마나 맘이 아팠던지..
어느 날인가 내가그랬어 도망가자고, 어디든 떠나버리자고.
그런데 갑자기 내 어께를 꽉 잡고는 뭐랬는 줄 알아?
<혜민아 우리 공부하자> 이러는 거야..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땐 정말 절박해졌지 뭐야.
그 후로 우린 정말 미친 것처럼 공부를 했어 공부만 잘하면 행복해 질 거라고 상상했지
....그거 알아?
석훈이는 고등학교 3년동안 전교 6등 밖으로 나간 적 없고
난 8등안에 항상 들었단 거...
그리고 또 어느 날은 합창단엘 가자는 거야.
교양도 쌓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우리도 남 들 처럼 살 수 있을거라면서.
그래서 또 우린 고등학교 3년 동안 시간을 쪼게가며 합창단 활동을 했지...
우습게도 난 성악가가 되고 싶은 꿈도 꾸게됐어.
하지만 결국 공부만 했어..뻔하잖니.. 고아가 그 시골에서 성악 레슨받기가 쉬운 일인지..
거기에 비싼 음대 학비는 어떻게 하구..
그 후엔..너도 아는 것 처럼..같은 대학, 같은 과를 지원했고
나란히 붙은거야.
..사람들은 참 웃겨..
우리가 등록금이랑 생활비가 없어서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다니니까 슬슬 피하더라구..
솔직하게 형편이 어렵다..미안하다..이런 것도 아니었어.
그냥 우릴 피해다니는거야. 마치 더러운 거지보듯이 말이야.
등록 얼마 전에 우린 그곳을 떠났지.
영원히.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 낸 건 <도둑질> 이었어.
서울로 오기 전 우리 둘은 남쪽의 도시들을 돌며 예배당 헌금함을 털었어
음...한 70군데정도?..정말 교회 많더라... 아마 우리 둘은 확실히 지옥에 갈거야
그 돈으로 등록하고..방 구하고..
영민아..우리 처음 만날 무렵..석훈이랑 나랑 뭐하고 있었는 줄 알아?..
학교 끝나면 석훈이는 <도둑질> 하러 다녔고 난 <술집>에 다녔어..후훗..꿈에도 몰랐지?
그렇게 서로 번 돈은 각자가 가졌고..가끔 석훈이가 건수 큰 것 찾으면 같이 훔치기도 했어.
물론 반반씩 나눴지..그 돈은..
하지만..일년이 지날무렵 우린 지치고 말았어.
학교생활도, 끝없이 훔치고 술을 따라야 하는 우리 모습도.
그래서 우린 일년 휴학하고 정당하게 일을해서 돈을 모으기로 했어..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자고..
하지만 모이지 않는 돈 때문에 또 휴학을 했고
거의 2년동안 우린 정말 열심히 일을했어, 정당한 일, 사람들이 알아도 칭찬할 일.
그런데..얼마전에..내가 석훈이더러 그랬지.
난 다시 술집에 가겠다고..아무리 일해도 모이지 않는 돈 때문에 화가난다고..
내 말을 듣더니 그냥 <맘대로 해> 하더군.
석훈이는 내게 절대 간섭하지 않아. 나도 그렇고
결국 난 다시 옛날에 나갔던 사무실을 찾아갔고 룸살롱엘 갔어...
그런데..새벽에 일 끝내고 사무실을 나서면 꼭 오토바이를 타고 날 데리러온 석훈이가 있는거야..
막 남자를받고, 술에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는 나를 데리러.."
내 가슴위로 혜민이의 따스한 눈물이 번져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가녀린 어께도 조금씩 흔들린다.
더 힘을주어 꼭 그녀를 껴안았다.
"한달 전쯤에도..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여전히 석훈이가 와 있는거야..
자기도 힘들게 일하고 잠깐 자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나오는게 쉽겠니?
몇번은 막 욕도하면서 오지말라고 화도 냈는데. 그 녀석 그냥 나오는거야. 매일.
그런데 그 날은 많이 피곤했는지..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핸들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있더라..그 추운데, 잔뜩 웅크리고.."
눈물에 젖은 혜민이의 숨결이 자꾸만 가슴에 부딪힌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함께 울고있다.
우린 서로를 놓치면 끝없는 곳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는 듯
서로를 꼭 껴안고 있다.
그리고 나처럼
혜민이도,
석훈이도,
그리고 은영이도
우리 모두는 지독히 추워하고 있다는 걸 아프게 깨닫는다.
"석훈이도 경험한 여자가 4-50명은 될거야.. 난 말할 것도 없고..
우린 서로..그런 것 뭐라하진 않았어..하지만..하지만..
돈에 몸을 파는 내 모습이 자꾸 그녀석에게 미안해 지는거야..
내가 좋아서 즐기는 것도 아니고..돈에 팔리는 내가..
.... 그 날 그 모습을 보면서 사무실로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었어, 사장도, 다른 아가씨 들도..
그리고 사장 금고안에 돈이 보였지.
나도 잘 모르겠어..워낙 순간적인 행동이었으니까..
휴지통에 버려진 쇼핑백을 주워들곤 정신없이 담기 시작했어..
한뭉치..두뭉치..석훈이가, 내가.. 수 없는 날을 일하고 술을따르고 몸을 팔아야 모이는 돈..
그리고 정신없이 계단을 뛰어내려왔어..정말 끝이란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마침 계단을 오르던 사장이랑 부딪힌거야..
그 좁은 계단에서..쇼핑백이 터지고..계단 가득 돈들이 쏟아졌지..
사장은 내 머릿채를 휘어잡고 거리로 끌고 나왔어..개처럼.
그리고 힘껏 날 땅에 쓰러트리고는 구둣발로 사정없이 얼굴을 짓이기기 시작했어.."
손을 뻗어 그녀 입술의 흉터를 어루만졌다.
마구 울고있는 그녀의 눈물이 손 안 가득 묻어난다.
"...결국 석훈이가 달려왔어. 구둣발에 내 얼굴이 짓이겨지는 걸 본 석훈이가...
어디서 주웠는지 유리병도 들고 말이야..
그리고 힘껏 사장의 머리를 내리쳤지..힘 껏..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 유리병이 산산조각 나버렸으니까..
그리고 사장은 즉사했어.. 그 자리에서 바로.."
마주 닿은 우리의 온 몸이 땀에 젖어 축축했다.
그리고 우리의 얼굴도 눈물로 가득 젖어있다.
"사람들이 하나..둘..몰려들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 석훈이가 끌려가고..
그런데 그자식이..경찰서에서 ...그자식이 그러는거야
자기가 훔친거라고..자기가 훔치다가 실수로 죽인거라고..
내가 놀라서 아니라고 말하려 입을여니까..그 자식이 뭐랬는 줄 알아?
경찰서가 떠나갈 만큼 큰소리로..뭐랬는줄 알아..?
< 썅.년.아. 넌.누.구.야 > .. "
석훈은 20년 형을 언도받고 수감중이라고 했다.
...................................................
그 날 우린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무척 오래동안 가만히 있으면서 서로를 쓰다듬다가
겨우 우리의 울음이 그치고 호흡이 안정될 무렵
혜민이가 말했었다.
이런 슬픈 이야기는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바지를 벗고 나오면 내가 기절할거라 말하던 장난스런 음성으로
"에이..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남잔 줄 알았으면 우리 병원 갔던 날
확 덮쳐버릴 걸..그 땐 숫총각 이었을 텐데.."
"...."
"후우..아니다. 그래도 더러운 나보다는 은영이가 백배 낫지."
손가락을 세워 내 등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길을 느끼며 대답했다.
"혜민아'
"왜"
"나..니가 첨이야"
"...."
"그리고 병원 갔던 그 날. 너랑 한 입맞춤도 니가 첨이구."
"....'
"내 첫키스랑 첫경험..다 니가 첨이야"
그리고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를 꼭 껴안았다.
아무말 없는 혜민이..
잠시 후 짧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왠지 미안해.."
"아니야..나..정말 네가 고마워"
창문으로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고
그 희미한 불및에 혜민이의 속눈썹이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혜민아..부탁이 있어"
"뭔데..?"
"나..네 노래 듣고 싶어 Lascia ch'io pianga.."
아주 잠시 가만히 있던 혜민이가 몸을 일으키더니
내 얼굴을 품안에 꼭 안으며
나즉히 노래를 불렀다.
엄마처럼.
잃어버린 아가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처럼.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
l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
de miei martiri sol per piet.........."
<울게 하소서.>
가혹한 운명과 자유의 탄식 가운데
울게 하소서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운명은
나의 영혼을
영원한 고통속에 울게하지만
사랑하는 이여
나를 버려두오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오직 자비로서 나의 번뇌를 부수고
슬픔이 사라지게 해주오
오직 자비로서 나의 번뇌를..
내 영혼의 고뇌를 부수고 안식을 주오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가혹한 운명과 자유를 향한 탄식 가운데
울도록,
나를 버려두오
탄식, 자유의 탄식 가운데..
헨델의 오페라 Rinaldo 중 Almirena의 아리아.
.........................................................................
다음 날 터미널에서 막 버스에 오르던 혜민이가 다시 몸을 돌려 날 끌어안고는
긴 입맞춤을 건냈다.
줄 서있는 사람들 앞에서.
무척 따뜻하고 정성이 담긴 입맞춤을 끝내고
환한 얼굴로 그녀는 말했었다.
"만약 남자와 여자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건 우릴 두고 하는 말일거야"
버스가 출발하고
보이지 않게 될 때 까지
난 그녀를 배웅했다.
주머니엔 석훈의 오토바이 열쇠가 단단한 감촉을 허벅지에 전해주었고
막 교차로를 돌아 사라지는 버스를 보며
길고 긴 시간동안 석훈을 기다릴 혜민을 생각했다.
그리고
부대로 복귀하는 긴 길을 걸어오며
이젠 완전히 건너와버린 검은 강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 설레임 가득한 따사로운 유년의세계로 돌아 갈 수 없다는 걸
아프도록 떠올렸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처럼 홀로 그 강을 건너고 있을 은영이를 기억하며
반드시 그녀를 되찾을거라 다짐하기도 했다.
행복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더라도
그 날의 기억을 함께 간직한 그녀라면 이 추운 세계에서 위로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그리고 다시는 그녀가 춥지 않도록 하리라 다짐하면서.
....
내 유년이 끝나던 그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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