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려 마음 먹었지만, 버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버섯돌이200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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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난 건 지난 5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거래처 사장님의 딸입니다.

4월에 처음 보고 무작정 빠져들어, 가슴앓이만 하다가 결국엔 전화해서 만남에 성공했습니다.

처음 본 순간부터 무척 친하게 대해 주더군요.

거의 매주 만나다시피 하면서 난 가까워진 줄 알았습니다. 그녀 역시 나에게 맘이 있는 걸로...

하지만, 중요한 얘기만 하려 하면 기회조차 주질 않았습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고, 아무런 내색 않고 계속해서 만남에 응해 주었죠.

그러다가 메신져로 사랑한다는 말을 보냈습니다.

그 이 후로 한 달 동안 그녀와의 연락은 끊겼습니다.

내가 부담으로 느껴진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술로 몇 주를 보내던 중에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회사에 컴퓨터가 고장났다고...

그런 일을 핑계 삼아서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녀의 회사에 가서 컴퓨터 수리공 마냥 몇 일을 작업했습니다.

덕분에 같이 영화보고, 식사하고 하는 기회들이 많이 생겼죠.

기쁨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번달에 생일이라고 회사에서 문화상품권이 나왔습니다.

지난 주에 그녀와 만날 때, 수요일엔 상품권으로 같이 영화나 보자고 했습니다.

약속 있다고 나중에 보자더군요. 저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헌데...

어제 업무상 그녀 회사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다녀와서 "나 거기 갔다 왔어"하고 메세지를 보냈죠.

한참 업무랑 관련 된 얘기 좀 하다가 다음 주 수요일엔 시간 꼭 비워 놓으라고 했습니다.

싫다더군요.

딴 맘 먹지 않는다면 같이 보러 가겠데요.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역시나 거리를 두고 있던거였죠.

저도 역시 그녀가 그런 말 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색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 썼습니다. 헌데, 어제는 그녀가 대뜸 먼저 꺼낸거죠.

한참을 실갱이 했습니다.

그저 편해서 만나는 것 뿐이랍니다.

그 동안 하고 싶은 얘기들, 많이도 참아왔습니다.

선을 긋고 만나겠다는 말에 저도 화가 났습니다.

"너 편하면 만나고, 아니면 또 갑자기 연락 끊고 그럴래", "너무 이기적인 거 아냐" 라는 말에...

남들이 보면 자기가 나쁜년 된다고 원한다면 연락 안 해 주겠답니다.

그럼 그 동안 전 애걸복걸하면서 그녀를 만나온 거네요...

"드디어 이기적이란 말을 하시는 군"  이러더군요.

이쯤해서 포기하랍니다. 난 포기할 수도 없고 하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제 자존심의 끝을 보이기 싫어서 모니터 전원을 내리고 일단 밥을 먹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영화보러 가자고 메세지가 와 있더군요.

좋아하는 맘 어쩔 수 없는지라 결국엔 같이 영화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영화관 앞에서 기다리면서,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동안 지쳤고, 너무나도 상처 받았습니다.

 

하필이면, 영화는 "...ing"였습니다.

옆에서 같이 팝콘 먹고, 영화 보면서 수다도 좀 떨고 했지만...

마지막을 앞 둔 저는 편치 않았습니다.

 

여하튼.

영화는 끝났고, 그녀 차 있는데로 같이 가면서 마지막으로 손 한 번 잡아봤습니다.

마지막 질문도 했죠.

"오늘도 느낌이 달라?"

"당연하지"

제가 만날 때 마다 느낌이 다르답니다.

자긴 변함없는 게 좋다고...

그 부분에 있어선 뭐가 뭔지 모르겠구요.

그녀를 보내고 시동 걸고 돌아가는 길에 명치 끝이 뭘로 꾹 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정말 이상한걸까요?

제 친구들은 그녀가 너무 이상하다고들 말합니다.

아니라고 끝까지 우겨왔지만 저 역시 그녀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에 자꾸만 질려갔습니다.

정말 둘 중 하나는 이상한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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