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한복/추위와 한복

hanolduol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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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한복(韓服)

추위를 막는 방한용(防寒用)으로는 대개 모피(毛皮)가 쓰여졌다. 모피(毛皮)를 일상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채집경제(採集經濟)인 수렵이나 목축(牧畜)에 의존해야 했다. 농경생활(農耕生活)로 들어가서는 방한용의 모피, 예를 들어 가죽 두루마기 같은 것은 특별한 지방이나 높은 지체에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갖추기 힘든 값비싼 것이었다. 또 온돌, 즉 캉을 갖고 있어 온돌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어, 온돌이 우리 의복(衣服)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온돌에 다리를 접고 앉는 생활에 맞게 아랫 바지가 넓게 되었으며 내복을 입지 않았던 것도 온돌의 영향이다.

우리의 방한의(防寒衣)로서 고식적인 방법으로는 북쪽 지방의 갓옷(皮衣)이 있었고 갓두루마기, 갓저고리 등이 있었다. 일제시대까지도 여자의 갓저고리는 흔한 겨울 옷의 하나였다. 이것은 보통 저고리보다 큰 저고리 안에 양털과 같은 동물의 털의 조각을 모아 바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갓옷은 목축이나 수렵생활에서 벗어난 후에는 중국에의 조공품이나 왕실에의 진상품으로 대기에 급급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온돌 생활을 하게 되어 마래기, 조바위, 풍차, 휘항, 남바위, 목도리, 토수 등을 일상복(日常服) 위에 보충하는 것으로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었다. 또 솜을 넣어 솜두루마기, 솜저고리, 솜바지 등을 만들어 입었고 누비옷도 발달하였다.

남복(男服)에서 대님을 하고 버선에 솜을 두니 일차적인 방한(防寒)은 되는 셈이다. 거기에 다시 조바위, 풍차 등이 있고, 마래기라고 하는 소모자(小帽子)가 있어 머리 부분에 대한 방한(防寒)을 하고 그것으로 추위에 견디어냈을 것이다. 저고리 위에 조끼, 마고자 등을 겹쳐 입어 자유로이 추위에 대응했고, 외출시(外出時)에는 두루마기를 입었다. 우리 나라의 추위가 요즈음 북극 지방이나 카나다, 시베리아 북부 지방같이 밍크, 담비 등의 코트나 가죽 등의 고가(高價)한 모피(毛皮)를 두르지 않아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농경 생활에 들어와 모피(毛皮) 대신 양잠의 보급으로 명주(明紬)를 생산하여 방한복의 재료로 널리 사용하였다. 명주는 겨울 옷의 주류(主流)를 이루고 거기서 나온 참솜(眞綿)은 무명이 들어오기 전의 솜으로 애용하였다. 신라 시대 상류 사회에서는 오늘의 나사(羅紗)에 해당되는 모직물도 애용한 것 같으나 그것은 일부 상류층의 일이다. 조선시대 초기에 일반적으로 무명(木綿)과 솜이 널리 이용된 일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저고리, 바지, 두루마기 등에 솜을 두는 간편한 방법이 이루어져 한반도의 추운 겨울도 쉽게 견딜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복(女服)에 있어서 장옷(長衣), 쓰개치마 등은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유교적 내외(內外)의 예절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나 부녀자의 외출용(外出用) 복장으로 방한(防寒)의 기능도 크다. 장옷은 조선시대 풍속도(風俗圖)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초록 길에 자주 깃을 달고 소매 끝에는 흰 거들지가 있는 것이며, 어떤 것은 몹시 커서 서양(西洋)의 만또처럼 보인다. 전체 모양은 두루마기와 비슷하며, 양깃 끝에 자주 고름이 달려 있어 머리에 쓸 때 고름을 손으로 잡아서 턱밑에서 여민다.

장옷이 두루마기 모양인데 대하여, 쓰개치마는 치마 모양의 내외용(內外用) 쓰개이다. 우리 의생활(衣生活)의 전통양식(傳統樣式)의 특성에서 가장 첫째로 꼽히는 것은 복식(服飾)의 포피성(包被性)이 철저한 것이다. 신체의 노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여러 벌을 끼여 입는 것이다. 이 특성은 전통양식의 북방계(北方系)의 고유 양식에 남아 있는 일면으로 방한(防寒)에 알맞은 특성이나 더위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용어설명
(마래기) 중국에서온 모자의 한 가지, 청나라 때 관리들이 쓰던 모자.
(조바위) 추울 때 여자가 쓰는 방한모(防寒帽)의 일종.
(풍차) 풍차(風遮)는 토끼, 여우, 수달피, 곰 같은 것의 모피(毛皮)로 지은 방한용(防寒用) 두건(頭巾). 앞은 이마까지 오고, 옆은 귀를 덮게 되어 있으며, 뒤로 보면 삼각형이다. 남자용은 이 위에 관, 갓을 쓰며, 여자용은 여러 가지 차체를 하였음.
(휘항) 휘양이라고도 하며 머리에 쓰는 방한구(防寒具)의 한 가지. 남바위처럼 생겼으나 뒤가 훨씬 길고 제물로 목덜미와 뺨까지 싸게 되었음.
(남바위) 남바위도 추울 때 머리에 쓰는 방한구, 풍뎅이와 비슷하나 둘레에 털가죽을 붙임.
(투수) 토수(吐手)는 토시라고도 하며 저고리 소매 밑에 낀다.



더위와 한복(韓服)

삼복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한국의 여름 의료(衣料)는 베(麻)와 모시(苧麻)이다. 베와 모시는 통풍(通風)이 잘 되는 가장 여름 더위에 적합한 옷감으로 현대화학 섬유에 비할 수 없다.
한복의 가장 한복다운 특성은 양복처럼 꼭 몸에 맞게 만들지 않고 몸과 옷 사이에 통풍 공간을 두는 여유있는 구조이다. 더욱이 여름 옷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털이나 비단같은 동물성 섬유가 피부에 잘 붙는데 비해, 면이나 베·모시 등의 식물성 섬유는 몸에 붙지 않고 까슬까슬 유리되기 때문에 한층 통풍 공간을 만들어 선선한 옷감이 된다.

또 통풍을 위해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일제 시대 때까지도 여름에 등걸이를 사용하였다. 등걸이란 등나무 줄기나 갓을 만드는 말미(馬尾)로 구멍이 많은 조끼를 걸치고 그 위에 베나 모시 저고리를 입었었다. 겨울의 솜토수 대신 여름에는 등토수 또는 마미토수를 저고리 소매 속에 끼워 소매 속으로 들어갈 바람 구멍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 더위를 견디기 위해 여름 복장은 간략해져 저고리에 고름을 없앤 적삼을 입는다. 적삼을 무명이나 베, 모시로 만들면 훨씬 시원한 여름 옷이 된다. 바지도 정장(正裝)이 아닐 때는 대님을 묶지 않는 간단한 방법으로 더위를 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