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전서 요약

종달새200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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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전서> The Old Testament

창세기, 제1-11장

창세기는 천지 창조의 이야기로 구약성경을 연다. 허공을 떠다니는 신령인 하나님은 6일에 걸쳐 어둠 속에 빛, 하늘, 땅, 식물, 동물이 생기라는 말을 하여 세계를 창조한다. 하루 일이 끝날 때마다 그는 “보기 좋다.”(1:4)는 말을 한다. 6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가진 존재를 만들겠다며 인간을 창조한다(1:26). 그는 흙으로 남자를 만들고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든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 두 사람을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 살게 하며, 창조된 세계를 최대한으로 번창시키고 향유하라고 한다. 그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지 못하게 한다.

동산에서 이브는 교활한 뱀을 만난다. 그는 그녀에게 금단의 과일을 먹으라고 유혹한다. 그것을 먹어도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이브는 아담에게도 과일을 먹게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즉시 수치심을 느끼고 후회한다. 동산을 거닐던 하나님은 그들이 금지 명령을 어긴 것을 알게 된다. 뱀을 저주하고 두 사람에게 벌을 준다. 이브는 고통스런 출산을 겪게 될 것이고, 아담은 식량을 얻기 위해 힘들게 땅을 갈아야 한다. 두 사람은 결국 에덴에서 추방된다.

세상으로 쫓겨난 아담과 이브는 카인과 아벨 두 아들을 낳는다. 농부인 카인은 어느 날, 곡식의 일부를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친다. 그런데 목자(牧者)인 아벨이 가축 중 제일 살찐 것을 제물로 바칠 때, 하나님이 더 기뻐하는 것을 알게 된다. 화가 난 카인은 그의 동생을 죽인다. 하나님은 카인을 그의 집에서 쫓아내 에덴의 동쪽 땅에서 방황하게 만든다. 아담과 이브는 셋째 아들 셋을 낳는다. 셋과 카인을 통해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10 세대가 지나며 인간들은 더욱 사악해진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한 세계를 탄식하기 시작하고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한다. 그러나 노아라는 남자는 결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호감을 샀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특별한 언약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는 노아에게 방주(方舟)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그것은 노아의 가족과 모든 생물을 한 쌍씩 실을 수 있을 만큼 커야한다. 노아는 그렇게 하고 그의 가족과 동물들은 방주로 들어간다. 40일 동안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지상은 1년 이상 물에 잠긴다. 드디어 물이 빠지자 하나님은 노아의 가족을 방주 밖으로 불러내고 노아와의 언약을 확인한다.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오자 지상은 축축하고 다시 푸르다. 하나님은 이 비옥한 땅에서 노아의 자손들이 번성하게 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호의를 유지하려면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한다. 즉, 인간은 피가 묻어있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다른 인간을 살해한 사람은 죽음을 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또다시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무지개를 약속의 표시로 삼는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노아는 벌거벗은 채로 텐트에 눕는다. 노아의 아들 중 하나인 함은 벌거벗은 아버지를 보고 그의 형제들, 셈과 야벳에게 말한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를 보지 않고 덮어준다. 노아는 함의 지각없는 행동에 대해 그의 자손들, 즉, 가나안인들을 저주한다. 그들은 함의 다른 형제들의 자손을 위해 봉사하게 될 거라고 한다. 세 형제의 자손들에 관한 자세한 계보가 밝혀진다. 많은 세대가 지나며 인간들은 또다시 타락하게 된다. 서쪽 바빌론으로 간 사람들은 그들의 위대한 힘을 과시하기 위해 하늘 나라까지 닿을 거대한 탑을 세운다. 그들의 오만한 태도에 분노한 하나님은 건축물을 파괴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언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사람들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영원히 여러 다른 민족으로 분리된다.

창세기, 제12-25장

셈의 자손들인 셈족의 9세대가 지나간다. 하나님은 아브람이라는 남자를 부른다. 그는 메소포타미아의 북부 도시 하란에서 아버지 테라와 아내 사래와 함께 살고 있다. 하나님은 아브람과 언약을 맺고 아브람의 자손들이 위대한 국가를 만들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아브람은 아내와 그의 조카 롯을 데리고 집을 떠나 남서쪽 가나안으로 이주하기로 한다. 그곳은 하나님이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이다. 아브람은 거기에 자리를 잡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표시로 곳곳에 여러 개의 제단을 세운다.

애굽에 잠시 머문 후, 아브람은 부자가 되어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그는 318명의 도움을 받아 동방에서 온 약탈자 한 군단을 물리친다. 그들은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을 습격한 적이 있다. 소돔의 왕은 아브람의 큰 업적을 인정한다. 사제 멜기세덱은 빵과 포도주를 선물로 주며 아브람을 축복한다. 아브람이 집에 돌아오자 하나님은 그의 언약에 관해 다시 말한다. 아브람의 자손들은 하늘에 별처럼 많아질 거라고 한다. 의식이 거행될 때, 하나님은 제물로 받친 동물의 조각들 사이로 타오르는 단지를 보낸다. 그의 약속이 깨지지 않을 것을 알리는 표시다.

사래는 임신을 못하지만 남편에게 후계자를 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녀 하갈을 아브람과 동침하도록 보낸다. 하갈의 오만한 태도에 대해 사래가 화를 내자 하녀는 두려워서 도망친다. 하나님은 하갈에게 말을 걸고 위로하며 “사람의 들노새”가 될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갈은 돌아와서 아브람의 첫째 아들 이스마엘을 낳는다.(16:12)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행동을 바르게 하라고 명하고 영구적인 언약에 한 가지 조건을 추가한다. 아브람과 그의 모든 자손들은 언약의 표시로 할례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래를 통해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 아들은 이삭이라 부르고 그를 통해 언약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많은 사람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브라함”으로 고치고 사래에게 “사라”라는 새 이름을 준다.

어느 날, 하나님은 세 남자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난다. 세 남자는 사라가 아들을 갖게 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90세인 사라는 웃기만 한다. 세 남자는 소돔과 고모라의 동쪽 도시들을 향해 간다. 극악한 죄와 타락 때문에 그 도시들을 멸망시키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 도시들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거기에 몇 명의 착한 사람만 발견되면 그들을 멸망시키지 말라고 하나님을 설득한다. 세 남자들은 소돔의 도시로 들어오자, 롯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밤이 되자 소돔의 남자들이 롯의 집을 둘러싼다. 세 명의 사자(使者)들을 강간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롯에게 가족들을 데리고 도시에서 피난하라고 지시하고, 떠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 벼락을 내릴 때, 롯의 아내는 집을 돌아보고 소금 기둥으로 변한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지역에서 계속 정치적 지위를 얻고 사라는 마침내 이삭을 낳는다. 사라의 요청으로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낸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시험한다. 그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죽이라고 한다. 아브라함은 조용히 순종하기로 결심한다. 이삭을 산으로 데려갈 때, 이삭은 어떤 동물을 제물로 삼을 것인지 묻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제물을 줄 거라고 대답한다. 이삭을 제단에 올려놓고 아브라함이 칼로 내려치려고 할 때, 주님의 천사가 그를 막는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큰 헌신에 감동하고 다시 한번 그의 언약을 확인한다.

사라가 죽는다. 아브라함은 우두머리 하인을 아시리아에 있는 친척들에게 보내 이삭의 아내가 될 처녀를 찾게 한다. 가나안인들의 영향의 받아 혈통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하인은 이삭에게 합당한 아내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은 하인을 레베카에게 인도하고 그는 그녀를 이삭에게 데려온다. 이삭은 레베카와 결혼하고 아브라함은 곧 죽는다.

창세기, 제25-50장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은 이삭의 아내 레베카에게 두 나라를 세울 두 명의 아들을 주겠다고 한다. 한 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부강할 것이다. 레베카가 분만할 때, 에서가 먼저 나오는데 털이 굉장히 많다. 곧이어 피부가 매끈한 야곱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다. 이삭의 두 아들은 자라나면서 점점 더 달라진다. 에서는 사냥꾼이고 성질이 급하다. 야곱은 말소리가 부드럽지고 영리하다. 어느 날, 에서는 오래 굶주린 상태로 집에 돌아와 먹을 것을 요구하며 죽 한 사발의 대가로 상속권을 야곱에게 준다.

그의 아버지처럼, 이삭은 가나안에서 성공한다. 가끔 판단 착오를 하지만 재산을 늘리고 지역 통치자들과 제휴하고 하나님에게 기념비를 계속 세운다. 세월이 흘러 늙고 눈이 멀었을 때, 이삭은 큰아들 에서에게 짐승을 잡아 특별한식사를 그들에게 축복을 주겠다고 한다. 에서가 집을 떠난 동안 레베카는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는 것을 돕는다. 특별한 식사를 준비하고 털이 난 팔과 에서의 옷으로 작은아들을 위장시킨다. 야곱이 이삭에게 식사를 제공하자 이삭은--에서의 옷 냄새를 맡고, 털이 난 몸을 만지며--야곱에게 축복을 준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물려주고 더 높은 지위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에서가 돌아와서 속은 것을 알지만 이미 늦었다. 이삭은 당황하지만 훔친 축복이라도 번복할 수 없다고 한다.

에서를 두려워하는 야곱은 도망친다. 북부 메소포타미아에 사는 라반 아저씨의 집으로 간다. 가는 길에 야곱은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의 꿈을 꾼다. 거기에는 천사들과 하나님이 살고 있다. 꿈에 하나님은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했던 것과 같은 언약을 야곱에게 약속한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 도착해서 그의 딸 라헬과 결혼하는 조건으로 그를 위해 일한다. 라반은 야곱을 속여 라헬과 결혼하기 전에 그녀의 언니 레아와 먼저 결혼시킨다. 두 아내는 야곱의 호감을 사기 위해 경쟁을 벌리고, 그들의 하녀들과 함께, 11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낳는다.

20년이 지난 후, 야곱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그때 그는 가족들과 함께 가축 그리고 라반이 수집한 우상들을 가지고 온다. 라반이 사막에서 도망치는 야곱의 가족을 추적할 때, 라헬은 아버지에게서 훔친 우상들을 치마 속에 감춘다. 가족과 재물을 되찾을 수 없게 된 라반은 야곱과 협상을 벌린다. 야곱은 평화로운 해결을 하나님에게 “증거”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운다(31:48). 집에 가까이 오자 야곱은 에소와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형을 달래기 위해 선물을 마련한다. 가족과 소유물들을 두 캠프에 나누고 야복 강에서 혼자 밤을 지낸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다. 남자로 변장한 하나님은 새벽이 될 때까지 야곱과 씨름을 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과 씨름하다”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야곱을 축복한다.

다음 날, 아곱은 에서를 만난다. 에서는 두 손을 벌려 동생을 환영한다. 야곱은 에서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세겜에서 다시 자리를 잡는다. 가나안인과 결혼한 에서는 에도밋이란 부족을 세웠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평화롭게 번창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 출신 남자에게 겁탈 당한다. 격분한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인의 가족들이 모두 할례를 하면 그 남자가 디나와 결혼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그 남자는 동의한다. 그의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할례 시술을 받았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을 공격하여 남자들을 모두 죽인다. 얼마 후, 이삭과 라헬은 죽는다.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막내아들 요셉을 시기한다. 야곱이 요셉에게 여러 색깔의 아름다운 외투를 주자 11명의 형들은 요셉을 노예상에게 팔고 그가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요셉은 애굽의 고관 보디발에게 팔린다. 그는 요셉을 총애하는데, 어느 날 보디발의 경박스런 아내가 요셉이 그녀와 동침을 요구했다고 고발한다. 보디발은 요셉을 투옥시키지만--언제나 하나님에게 충실한--요셉은 해몽가로서 유명해진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애굽의 파라오는 골치 아픈 두 가지 꿈에 시달리던 중, 요셉과 그의 능력에 관한 말을 듣는다. 파라오는 요셉을 부르고 그는 성공적으로 꿈을 해석한다. 요셉은 7년 후 커다란 기근이 애굽을 흔들 거라고 경고한다. 감동을 받은 파라오는 요셉을 고관으로 임명한다. 요셉은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식량을 비축하는 운동을 벌린다.

드디어 기근이 퍼진다. 애굽에서 곡식을 판다는 말을 듣고 요셉의 형제들은 식량을 구입하러 그곳으로 간다. 11명의 형들이 모습을 보였을 때, 요셉은 그들을 즉시 알아보지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요셉은 형들의 선의를 시험한다. 우선, 그들을 감옥에 넣은 다음, 새로운 막내아들 벤자민을 데려오도록 가나안으로 돌려보낸다. 그들은 벤자민과 함께 돌아온다. 요셉은 시험을 계속한다. 은제 컵을 벤자민의 가방에 몰래 넣고 나서 그가 그것을 훔쳤다며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벤자민 대신에 유다가 죽겠다고 나서자 감동한 요셉은 그의 정체를 밝힌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아버지 야곱을 데리고 애굽으로 오라고 한다. 야곱은 기뻐하며 70명의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사한다.

죽음이 가까워진 야곱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요셉과 그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전승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야곱이 두 아들을 축복할 때, 팔을 바꾸어 오른손을 어린 아들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놓는다. 요셉이 항의하자 야곱은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커질 거라고 한다. 얼마 후 야곱은 죽는다. 애굽인들의 도움을 받아 요셉은 아버지를 가나안 땅에 묻는다.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요셉의 자손들인 이스라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한다. 결국 요셉이 죽는다. 죽기 전에 그는 가족들에게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했던 땅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한다.

출애굽기 Exodus

출애굽기는 요셉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가 한때 봉사했던 파라오가 죽은 후 400년 정도가 지난 뒤에 시작된다. 애굽에 새로운 지도자들은--크게 증가한 야곱의 자손들에게 위협을 느끼고--이스라엘인들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친다. 그들을 노예로 만들고, 새로 태어난 모든 헤브루 아기들을 나일 강에 던져 죽이는 법령까지 발표한다. 헤브루 여인들은 이 법령에 저항한다. 한 여인은 갓난 아기를 파피루스 바구니에 담아 강물에 띄운다. 다행히 파라오의 딸이 그를 발견하고 모세라는 이름으로 키운다.

모세는 자신이 헤브루 혈통임을 알고 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 일꾼을 때리는 애굽인을 죽이고 시나이 근처 마을 미디안으로 도망친다. 거기에서 만난 예드로라는 사제의 딸과 결혼하고, 목동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걱정하는 하나님은 불타는 숲의 모습으로 모세에게 나타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우유와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갈 계획을 알린다(3:8). 그리고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모세를 애굽으로 돌아가게 한다. 처음에 모세는 겁을 내고 언변과 능력이 없다며 가기를 거부한다. 하나님은 기분이 상하지만 모세를 격려한다. 그에게 기적을 행하는 지팡이를 주고 동생 아론을 조수로 데리고 가라고 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자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대답한다(3:14).

모세와 아론은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인들을 규합하고 파라오를 만나 헤브루 백성의 석방을 요구한다. 모세는 지팡이를 뱀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러나 파라오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인들의 작업량을 늘린다. 하나님은 나일강을 핏물로 만들고, 개구리들이 애굽을 덮게 하고, 애굽에 먼지들을 각다귀로 변하게 하고, 파라오와 신하들의 집안에 파리가 들끓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애굽의 가축들을 병들게 하고, 사람과 동물의 몸에 종기가 나게 하고, 천둥, 우박 그리고 곡식, 가축, 사람을 죽게 하는 불을 보낸다. 하나님은 메뚜기 때를 보내 애굽을 “느낄 수 있는 어둠”으로 덮는다.(10:21) 이런 재난이 있기 전에,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의 석방을 요구한다. 재난을 보낸 후, 하나님은 그가 요구를 거부하도록 일부러 파라오의 “마음을 굳게 만든다”(4:21, 7:22). 마지막으로 열 번째 재난에서 애굽에 태어난 장남들을 모두 죽게 만든다. 이 재난이 있기 전, 모세는 헤브루 백성들에게 제물로 바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지시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보호하는 표시이다. 결국 파라오는 물러서고 60만 명의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키는데 그들은 애굽인의 재산을 약탈한다. 떠나면서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첫아이들을 하나님에게 바치고 마지막 재난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한 것을 유월절로 영원히 기념하라고 한다(12:14-43).

모세와 이스라엘인들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의 안내를 받아 바다가 있는 서쪽으로 향한다. 파라오가 그들을 추격한다. 이스라엘인들은 모세가 그들을 황야에게 죽게 하기 위해 데려왔다고 불평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백성들이 지나가도록 바다를 갈라놓는다. 파라오가 따라온다. 모세가 다시 바닷물을 닫자 애굽 군대는 익사한다. 기적을 목격한 백성들은 모세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위대한 전사로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들의 낙관은 오래 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식량과 물의 부족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식량을 보내준다. 날마다 메추라기와 만나라는 빵과 비슷한 음식을 공급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구한 계명만 지키면 이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얼마 후, 이스라엘인들은 싸움을 좋아하는 아말렉 사람들을 만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인들에게 그들을 물리칠 힘을 준다. 전투를 벌릴 때, 모세가 손을 쳐들면 이스라엘인들은 적을 몰아낼 수 있다.

애굽에서 탈출한지 3개월이 되었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인들은 시나이 산에 도착한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천둥과 번개 속에 산에 내려와 그들 앞에 나타난다. 모세는 산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은 10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석판을 모세에게 준다. 거기에는 경배, 제물, 사회적 정의, 개인의 재산 뿐 아니라 일반적, 윤리적 행위에 관한 계율이 적혀있다. 백성들이 이 규정을 준수하면 그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지키고 그들과 함께 가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땅을 가나안인들로부터 찾아주겠다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설명한다.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전한다. 백성들은 순종하기로 한다. 모세는 언약의 표시로 그들에게 피를 뿌린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더 많은 지시를 받기 위해 다시 산을 오른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인들 사이에 하나님이 머물 수 있는 언약의 궤라는 이동식 사원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하나님은 성스러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모세는 40일만에 산에서 내려온다. 아론과 이스라엘인들은 황금 송아지 우상을 세워놓고 술을 마시고 떠들며 우상을 숭배한다. 이것은 10계명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새로운 율법을 새겨서 준 석판을 깨뜨린다. 하나님은 백성을 멸망시킬 계획을 세운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노여움을 풀고 언약을 기억하라고 간청한다. 모세의 말을 듣고 화가 풀린 하나님은 “친구가 친구에게 말하듯” 경배를 위해 마련된 텐트에서 모세를 직접 만나기 시작한다(33:11). 하나님은 모세와 언약을 확인하고 그의 계명을 기록한 새로운 석판을 만든다. 그리고 동정적이고, 다정하고, 참을성 있는 하나님이 되겠다고 한다. 모세의 지시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은 언약에 대한 맹세를 새롭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설계에 따라 이동 신전을 만든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레위기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 캠프를 치고 머문다. 그 동안 하나님은 만남의 텐트에 나타나서 모세에게 유대인의 의식 율법에 관한 그의 규정을 받아쓰게 한다. 제물을 하나님에게 언제, 어떻게 바치는가를 지시하는 그 율법은 매우 자세하다. 하나님은 직접 지시를 내리고 그의 음성은 성구(聖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제로 임명된다. 의식을 행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제단을 불길로 덮는다. 사람들은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얼마 후 하나님은 또 불길을 보내 아론의 두 아들을 태운다. 그들이 제단으로 가는 올바른 준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러 형태의 금지된 성행위를 나열한다. 그리고 사람을 불결하게 만드는 음식과 신체적 상태를 이야기한다. 신체적 배설과 죽은 동물의 시체를 만질 때 불결해질 수 있다. 불결한 사람은 이스라엘 텐트를 떠나거나 신체적 정화, 대기 기간, 신앙적 희생을 겪어야 한다. 특히, 성적인 죄는 죽음으로 처벌할 수 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불경죄를 범한 사람을 죽이라고 한다. 모든 제약 중, 하나님은 피가 묻은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금지를 특히 강조한다. 이 금지를 어기면 이스라엘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서 추방될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은 이 율법들을 지키면 이스라엘에게 커다란 풍요와 성공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거역하면 하나님은 파괴와 기아를 주고 이스라엘을 “멸시할 것이다.”(26:30) 그러나 레위기에 있는 율법은 해마다 속죄의 날을 정해 놓고 그때 사제들은 모든 민족의 용서를 빌기 위해 제물을 바친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한,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고 그들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민수기가 시작될 때,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서 약속의 땅으로 여행할 준비를 한다. 하나님은 12 부족 중 하나인 레위족에게 아론의 사제 임무를 돕게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기물들을 보수하고 감시한다. 언약의 궤를 담은 이동 신전을 헌납한 후, 이스라엘인들은 시나이를 떠난다. 신전 위에 내린 구름의 이동이 그들을 인도한다. 사막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은 좋은 음식이 없다는 것에서 모세의 지도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관해 불평한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정탐하도록 가나안에 첩자들을 보낸다. 돌아온 두 명의 첩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가나안 백성들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몇몇 첩자들은 반란을 꾀한다. 가나인인들로부터 땅을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는 백성을 멸하려고 한다. 그러나 모세가 개입하여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을 설득한다. 하나님은 화를 풀지만 무거운 벌을 내린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현 세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거라고 한다. 모세는 백성을 홍해 쪽으로 인도하여 40년 동안 황야에서 방황한다.

세 사람이 모세의 지도력을 시샘하여 또 다른 반란이 생긴다. 하나님은 그들의 시샘에 대해 전 민족을 멸하려 한다. 그러나 모세는 죄진 사람들만 멸하라고 하나님을 설득한다. 모세는 그들이 거역했기 때문에 죽게 될 거라고 백성들에게 경고한다. 하나님은 땅을 벌려 그들을 삼키게 만든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이 사건에 대해 모세와 아론을 책망한다. 몹시 화가 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퍼지는 염병을 보내 수 천명을 죽인다. 아론은 군중들에게 달려가 이스라엘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사제의 향로를 흔들어 염병을 막는다.

이런 사건이 있은 후, 모세와 아론 자신들이 하나님에게 거역한다. 백성들은 물이 없는 것을 불평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이 나오도록 바위를 향해 명령하라고 지시한다. 모세는 화를 내며 지팡이로 바위를 친다. 바위는 물을 뿜어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이 경솔한 짓을 했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아론은 그후 곧 죽고 사제직은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넘어간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남서쪽 땅을 방황한다. 주변 민족들에게 안전한 통과를 요청하지만 그들로부터 환대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은 아모리인들을 정복하고 그들의 땅에 정착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모압의 왕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저주를 내리도록 유명한 마법사 바라암을 부른다. 하나님의 천사는 모압으로 가는 길에서 바라암을 가로막고 그의 당나귀를 놀라게 만든다. 바라암이 겁을 내는 동물을 때리자 당나귀는 놀랍게도 바라암을 꾸짖는 말을 한다. 주님은 천사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천사는 바라암에게 모압의 왕 앞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금한다. 모압에 도착한 바라암은 신비스런 4개의 신탁을 왕에게 전하며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모압의 멸망을 예언한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주변의 원주민들에게 동화된다. 현지 여자들과 관계하고 이교도 신 바알을 경배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역병을 보낸다. 사제 엘르아살의 아들이 한 이스라엘 남자와 그의 미디안인 애인을 죽이자 역병이 끝난다. 그는 그들을 모든 이스라엘인이 보는 앞에서 창으로 단번에 찔러 죽인다. 엘르아살의 아들의 무정한 행동은 하나님의 승인을 얻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미디안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한다. 40년 동안의 기다리는 기간이 끝나자, 하나님은 드디어 백성의 지도자로 모세를 계승하도록 여호수아를 임명한다.

신명기는 모세가 사막을 방황한 40년째 되는 해부터 시작한다. 요단강 동쪽에 주둔하면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는 지난 40년 동안의 사건들을 요약하고 젊은 이스라엘인들에게 하나님의 기적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기억하라고 격려한다. 그는 새로운 땅에서 다른 신들 즉,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금지하고 시나이 산에서 하나님이 준 10계명을 되풀이한다. 모세는 약속된 땅의 원주민들을 멸망시키도록 이스라엘인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준다. 그러면 가나안인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 것이다. 모세는 레위기에 있는 많은 사회적 법률과 행동 규범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이 7년마다 부채를 면제해주는 것과 같은 새로운 법률을 추가한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고, 고아, 과부, 억압당하는 자들을 보호하는 존재로 하나님을 묘사한다. 그 대신 이스라엘은 절대적인 헌신으로 강하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에 나오는 말들은 매우 중요하다. 모세는 이 말들을 깊이 생각하고 그들의 몸과 집의 문설주에 율법을 써놓으라고 이스라엘인들에게 지시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의 의로움이라고 모세는 주장한다.(6:25) 모세는 이스라엘이 결국 불순종하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이스라엘이 순종으로 되돌아올 때마다 하나님은 환영하고 풍요와 번영을 줄 거라고 한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모세는 불순종했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리고 하나님의 끝없는 동정심을 찬양하는 노래를 짓는다. 모세는 그 노래가 미래의 이스라엘인들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상기시켜줄 거라고 한다. 그는 율법서에 그 노래를 써놓고 그 책을 언약의 궤와 함께 둔다. 나중에 모세는 산에 오르고 하나님은 약속의 땅의 모습을 그에게 보여준다. 모세는 죽고 하나님이 그를 묻어준다. 저자는 그를 위대한 기적들을 행했고 하나님과 “직접” 만난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한 선지자라고 찬양한다.(34:10)

여호수아

모세가 죽은 후,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불러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된 땅을 차지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전쟁에서 승리를 보장하며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한, 이스라엘인들을 떠나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는 지역을 정탐하기 위해 두 명의 첩자를 요단강 건너로 보낸다. 그들이 여리고에 들어가자 라합이라는 창녀가 그들을 그녀의 집에 숨겨주고 첩자들의 존재에 관해 관리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라합은 첩자들에게 가나안인들은 이스라엘과 그의 기적적인 성공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며 그녀는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멸망시킬 때 그녀의 가족을 보호해달라고 간청한다. 첩자들은 라합을 보호할 것을 약속하고 여호수아에게 돌아와 적의 약한 상태를 알린다.

이스라엘인들은 요단강을 건넌다. 언약의 궤를 든 사제들이 앞장을 선다. 사제들이 물로 들어서자 강물의 흐름이 중지되고 이스라엘인들은 마른 땅으로 강을 건넌다. 반대편에 도착한 이스라엘인들은 강바닥에 있는 12개(이스라엘의 12 부족을 상징하는)의 돌로 제단을 만들어 기적을 기념한다. 백성들은 새로운 땅의 산물들을 먹기 시작한다.--그리하여 매일 공급되던 만나를 중지한다--그리고 이스라엘 남자들은 전투를 벌릴 준비를 하면서 할례 의식을 거행한다.

여리고에 접근할 때, 여호수아는 이상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하나님 군대의 사령관이지만 이스라엘의 친구도 적도 아니라고 한다. 여호수아는 그 남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지나간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여호수아는 언약의 궤를 든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6일 동안 여리고를 돌아다닌다. 7일째 되는 날 이스라엘인들은 도시를 일곱 번 행진한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모아 도시를 정복하고 라합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죽인다. 그들은 도시의 신앙 기물을 탈취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인들이 군호를 외치자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인들은 도시를 파괴하고 주민들을 죽인다.

여호수아의 명성이 널리 퍼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다음 도시, 아이 성을 빼앗는데 수모를 당한다. 하나님은 여리고에서 신앙 기물을 훔친 한 이스라엘인 아간의 불순종 때문에 재난을 겪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간을 돌로 쳐죽인 후, 여호수아가 정교한 매복 작전을 써서 아이 성에 대한 새로운 공격은 성공한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에게 제단을 세우며 경축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공약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한다.

이스라엘의 침략군들을 무서워하는 기브온 사람들은 변장을 하고 이스라엘 캠프로 간다. 그곳의 여행자들이라며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요청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에게 문의하지 않고 서둘러 그들과 조약을 맺는다. 나중에 기브온 사람들이 정복할 땅의 원주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인들은 그 도시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지의 다른 다섯 왕들이 이스라엘과 화평하기 위해 기브온을 공격한다. 이스라엘인들은 기브온을 구출하기 위해 와서 다섯 군대를 괴멸시킨다. 여호수아는 싸우는 동안 태양을 정지시키도록 하나님에게 요청한다. 하나님은 이 말을 듣고 태양을 정지시킨다.--하나님이 인간의 말에 순종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다.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도시들을 계속 멸망시킨다. 하나님이 요구한대로 모든 주민들을 죽인다. 약속된 땅의 많은 부분이 아직 정복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고, 12 부족이 그 땅을 나눈다. 하나님이 여러 해 동안 이스라엘에게 휴식을 준 후, 병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작별을 고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인들에게 강해지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준수하고, 모든 우상을 철폐하고, 원주민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에 충실할 거라고 여호수아를 안심시킨다. 여호수아는 마지못해 이 충성을 받아들이지만 이스라엘의 순종은 매우 어렵다고 걱정한다.

사사기 Judges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의 부족들은 가나안의 남부 지역을 계속 정복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지역에서 원주민들을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유하는데 남아있는 민족들이 방해가 될 거라고 한다. 여러 세대가 지난다. 젊은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선다. 가나안인들과 통혼하고 현지 신들을 섬긴다. 하나님은 젊은이들의 불순종으로 이스라엘을 버리겠다고 위협한다. 그러나 백성들을 위해 임시 지도자로 행세할 사사들, 즉, 통치자들을 선발한다.

이들 사사들의 생애를 통해, 네레이터는 이스라엘의 행위에는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악해진다. 하나님은 지도자를 보내 그들을 구제한다. 사사가 죽으면 백성들은 더욱 악한 짓을 한다.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의 신들을 계속 섬기고 모압족의 침략을 받을 때, 하나님은 에훗이라는 왼손잡이 남자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보낸다. 에훗은 모압 왕을 방문하고 하나님이 보낸 비밀 전갈을 바치겠다고 한다. 왕이 시종들을 물리치자 에훗은 오른쪽 허벅다리에 묶은 둔 칼을 빼내 살찐 왕을 찔러 죽인다. 에훗은 이스라엘 군을 이끌고 요단강 계곡을 점령한다.

이스라엘이 다시 사악해지고, 북쪽으로부터 막강한 군대의 침략을 받을 때, 데보라라는 선지자가 등장한다. 큰 나무 밑에서 이스라엘 부족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녀는 봉기를 주창한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인들은 왕의 전차 900대를 격퇴시키고 가나안의 장군 시세라를 물리친다. 시세라가 현지 여인의 집에 피신할 때, 집 주인 야엘은 시세라를 유혹하여 잠들게 하고 머리에 못을 박아 죽인다. 데보라는 승리를 긴 노래로 만든다. 하나님을 전사로 그녀 자신을 “이스라엘에 어머니”로 찬양한다.(5:7)

하나님은 다음 번 침략자, 미디안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겸손한 남자 기드온에게 임무를 맡긴다. 기드온은 바알 신에게 바치는 아버지의 제단을 부수고, 이스라엘인들은 싸우라는 그의 부름에 떼를 지어 모인다. 하나님은 전투에 적은 인원을 원한다. 기드온은 사람들에게 강물의 물을 마시게 한다. 손으로 물을 퍼서 마시는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낸다. 혀로 물을 핥아먹은 나머지 300명만 하나님의 군대로 선택된다. 밤에 적군을 정탐하면서 기드온은 한 미디안 병사가 친구에게 들려주는 꿈 이야기를 엿듣는다. 꿈에 작은 빵 덩어리가 커다란 미디안 텐트를 쓰러뜨렸다고 한다. 친구는 미디안이 이스라엘에게 패할 징조라고 해몽한다. 기드온과 몇 명의 부하들은 캠프를 둘러싸고--트럼펫과 깨어진 항아리 소리와 함께--요란한 군호를 외친다. 미디안인들은 돌아서서 서로를 죽인다. 이스라엘은 기드온을 왕으로 추대하지만 기드온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통치자를 만들 수 있다며, 거절한다.

바알 신에 대한 숭배가 널리 퍼지자 이스라엘은 피폐해진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3년 동안 폭정을 행한다. 한 여인이 아비멜렉의 머리에 맷돌을 던지자 그의 폭정은 끝난다. 동쪽에서 블레셋 그리고 서쪽에서 암몬족의 압력을 받자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서 돌아서고 하나님은 암몬족과 싸우도록 창녀의 아들 예브다를 새로운 사사를 선택한다. 예브다는 그가 승리할 경우 전투에서 돌아오는 날 그의 집에서 나오는 첫 번째 것을 하나님에게 제물로 바치겠다고 약속한다. 암몬족을 물리치고 예브다가 집에 돌아올 때, 그의 딸이 그를 환영하기 위해 춤을 추며 나온다. 예브다는 그의 약속을 한탄하지만 딸은 하나님에게 충실하라고 격려한다. 예브다는 처녀 딸을 죽인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계속 압박한다. 하나님의 천사가 아기가 없는 이스라엘인 부부에게 나타나서 다음 번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될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부부는 아들 삼손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사람인 나자리인으로 키운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고 축복한다. 어느 날, 삼손은 맨손으로 사자를 죽인다. 부모의 뜻을 어기고 그는 블레셋 여인을 아내로 선택한다. 결혼식 중에 그는 수수께끼로 블레셋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 답을 삼손의 아내가 그들에게 밝힌다. 진노한 삼손은 아내를 두고 집으로 간다. 그가 아내를 찾으러 왔을 때, 블레셋인들은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주었다. 삼손은 300마리의 여우를 잡아 꼬리에 횃불을 매단 후, 블레셋으로 보내 곡식들을 태운다. 블레셋인들이 삼손을 추격하자 이스라엘인들이 그의 손목을 묶어 적에게 넘겨준다. 하나님의 힘으로 삼손은 결박을 풀고 당나귀 턱뼈로 천 명의 블레셋 남자들을 죽인다. 다시, 삼손은 블레셋 여자 데리라와 사랑에 빠진다. 블레셋 관리들은 데리라에게 삼손의 힘의 비결을 알아내라고 한다. 세 번, 데리라는 삼손에게 힘의 근원을 묻는다. 삼손은 그때마다 거짓말을 하고, 그를 제압하려는 관헌들을 바보로 만든다. 얼마 후, 삼손은 사실을 말한다. 그의 긴 머리카락이 힘의 근원이라고 데리라에게 알려준다. 삼손이 잠들었을 때, 데리라는 그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관헌들이 그를 생포하고 눈알을 뺀다. 감옥에서 삼손의 머리카락은 다시 자란다. 블레셋인들의 종교 축제 때, 삼손은 그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끌려간다. 삼손은 그의 하인에게 경기장의 기둥으로 인도하라고 한다. 그리고--하나님에게 울부짖으며--삼손은 사원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블레셋의 통치자들을 죽인다.

사사가 없는 이스라엘은 더욱 타락한다. 어느 날, 한 남자와 그의 첩이 벤자민의 부족에서 밤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 와서 말을 건다. 벤자민 부족의 남자들이 그 남자에게 섹스를 요구하자 그는 그들에게 첩을 보낸다. 남자들은 밤새도록 그녀가 죽을 때까지 강간한다. 분노한 그 남자는 첩을 집으로 데려와서 12토막을 내어 이스라엘이 타락했다는 표시로 12 부족에게 한 토막씩 보낸다. 나머지 이스라엘 부족들은 벤자민의 부족을 타도하러 모인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단결한 부족들은 벤자민의 부족 25,000명 이상을 죽인다. 이스라엘은 멸망한 부족을 슬퍼하며 남은 벤자민 부족이 그 땅에서 재건하도록 도와준다.

사무엘상 The First Book of Samuel

이스라엘의 다음 사사, 사무엘은 전에 불임이었던 여인 한나에게 태어난다. 한나는 나지리인으로 길러지도록 이스라엘 제사장 엘리에게 사무엘을 준다. 이스라엘에 사제 제도는 일반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한다. 하나님은 엘리의 가족 밖에서 이스라엘의 사제를 선택하기로 하고 젊은 사무엘에게 전갈을 보내기 시작한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전체에 유명한 선지자가 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전갈을 전한다.

전투 중에 블레셋인들은 엘리의 아들들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종교적 제단이고 하나님의 표시인 언약의 궤를 빼앗는다. 이 소식을 알게 된 엘리는 쓰러져 죽는다. 궤는 이스라엘에 반환된다. 그것을 빼앗은 블레셋인들이 무서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기뻐할 때, 사무엘은 현지 이교도 신들을 물리치라고 설득한다. 하나님은 여러 해 동안 블레셋의 억압에 맞서도록 이스라엘을 도와준다.

이스라엘인들은 사무엘에게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 같아지도록 왕을 정해달라고 요구한다. 사무엘은 불쾌하지만 하나님은 그가 왕을 선택하는 것을 허락한다. 왕을 요청하는 백성들은 사무엘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했다는 것을 하나님은 주목한다.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전제군주제는 조세, 병력 징집, 폭정의 가능성과 같은 결함이 있다는 것을 경고하지만 백성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누가 왕이 될 것인지 말한다. 다음 날, 사울이라는 사람이 사무엘 앞에 나타나서 잃어버린 당나귀들에 관해 묻는다. 사무엘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그를 왕으로 만든다. 하나님은 사울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여러 가지 이상한 표시를 보낸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쯤 키가 큰 사울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기쁘게 한다. 그는 침략군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변방을 지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물러난 사무엘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한, 하나님은 왕을 요청한 그들을 벌하지 않을 거라고 격려한다.

많은 전투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곧 하나님을 거역한다. 그는 사제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행하고 급히 전투를 벌리려 한다. 후에 사무엘은 아말렉인들과 싸우러 사울을 보내며 그들을 전멸시키고 아무 것도 살려주지 말하고 지시한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 통치자와 가축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살려준다. 그들을 하나님의 제물로 바치고 싶었던 것이다. 사무엘은 사울을 꾸짖는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종교적 제물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른 사람을 선택할 거라고 사울에게 알린다. 사울은 용서를 빌며 사무엘에게 간청한다. 사울이 잡은 사무엘의 옷자락이 찢어진다.--그것은 사울의 왕국이 깨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사무엘이 말한다.

하나님은 예시의 가문에서 새로운 왕을 선택하도록 사무엘을 베들레헴 마을로 인도한다. 예시의 나이든 아들들은 모두 인상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가 아니라 마음씨로 판단하라고 사무엘에게 지시한다. 사무엘은 목동인 예시의 막내아들, 다윗을 왕으로 정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신통력을 준다.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능력을 빼앗고 “악령”의 형태로 정신병에 걸리게 한다.(16:14) 왕이 정신병을 앓고 있는 동안 다윗은 사울의 하프 연주자로서 궁중에 지위를 높이기 시작한다.

불레셋인들은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위협한다. 이번에는 그들의 새로운 영웅 골리앗--키가 9척이 넘는 거인이다--을 데려와서 이스라엘을 조롱한다. 사울과 이스라엘인들은 두려움에 떤다. 그러나 형들에게 음식을 전해주러 온 다윗은 거인과 싸우겠다고 한다. 왕의 갑옷을 거절하고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고 투석기로 쏜 한 개의 돌로 골리앗을 죽인다. 이스라엘인들은 퇴각하는 블레셋인들을 공격한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승리를 찬양하는 여인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돌아온다.

사울은 광적으로 다윗을 시기한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친구가 되고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많은 승리를 한다. 사울은 창으로 다윗을 죽이려 한 다음 다윗에게 매우 위험한 명령을 내린다. 100명의 블레셋 남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할례 표피를 가져오라고 한다. 다윗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성한다. 사울은 마지못해서 보상으로 그의 딸 미갈을 그와 결혼시킨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미갈과 요나단의 도움으로 다윗은 도망친다. 다윗은 불행하고 굶주린 이스라엘인들을 모아 군대를 만든다. 사울의 학정에서 도망친 사제가 그와 합세한다.

사울은 다윗을 추격하여 사막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다윗은 왕의 목숨을 두 번 살려준다. 사울이 동굴에서 소변을 보고 있을 때, 다윗은 몰래 그의 뒤로 가서 옷자락을 잘라낸다. 하나님의 “기름부움을 받은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24:6) 밤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왕의 텐트로 잠입하여 그가 자고 있는 동안 사울의 창을 훔친다. 다윗은 두 가지 일을 벌릴 때마다 사울에게 통보한다. 사울은 두 번 유감을 표시하고 다윗에게 자비를 빈다.

그러나 사울은 추격을 계속한다. 다윗은 블레셋인들에게서 도피처를 찾는다. 그들은 위대한 전사이며 이스라엘 왕의 적인 그에게 호의를 베푼다. 블레셋인들과 싸울 준비를 하면서 사울은 두려움에 시달리며 마녀와 상의한다. 영매(靈媒)에게 사무엘의 죽은 영혼을 불러내라고 한다. 사무엘의 영령은 화를 내며 사울과 그의 아들들은 블레셋인들과 싸우다 죽을 것이며 사울의 왕국은 망할 거라고 경고한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아말렉인들과 싸우러 간다. 다윗은 전투적인 아말렉 종족을 멸망시킨다. 한편, 사울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블레셋인들과 가망이 없는 전투를 벌리러 간다. 요나단을 포함해서 사울의 아들들은 죽는다. 사울은 부하에게 그를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사울은 자신의 칼 위로 몸을 던져 죽는다.

사무엘하 The Second Book of Samuel

사울이 블레셋인들에게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다윗은 사울과 친구 요나단의 죽음을 탄식하는 노래를 부른다. 다윗은 헤브론으로 간다. 거기서 그의 추종자들과 유다의 남부 부족은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으로 만든다. 한편 사울의 총사령관 아브넬은 북쪽 부족들의 지지를 받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만든다. 상충하는 두 정권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아브넬과 다윗의 장군 요압의 병사들 사이에 소규모 충돌이 이어진다.

아브넬이 궁녀와 동침했다고 이스보넷이 비난하자 아브넬은 다윗 진영으로 도망친다. 다윗은 아브넬을 환영한다. 아브넬은 다른 부족들에게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요압은 전에 그의 동생을 죽인 아브넬을 은밀히 찔러 죽인다. 다윗이 공개적으로 요압을 비난하고 아브넬을 애도하자 이스라엘은 다윗을 존경한다. 이스보셋의 부하 두 명이 그의 목을 베어 다윗에게 바친다. 다윗은 그들이 무고한 사람을 죽인 것에 놀라며 공개적으로 그들을 처형한다. 통일된 부족들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포한다.

다윗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 시를 정복한다. 그것은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는 가나안의 요새이다. 그는 거기에 궁전을 세우고 “다윗의 도시” 즉, “시온”이라고 부른다. 강성해진 다윗은 결정적인 승리를 얻어 블레셋의 위협을 진압한다. 이스라엘인 3만명의 도움을 얻어 다윗은 언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온다. 정교한 행렬이 이어지고 환호와 음악이 들릴 때, 다윗은 궤 앞에서 춤을 추고 껑충 뛴다. 그의 아내 미갈이 당황한다. 다윗은 그녀를 꾸짖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자신을 낮추겠다고 한다. 하나님은 다윗이 궤를 영구히 보존할 곳을 마련한 것에 기뻐하고 다윗의 선지자 나단에게 전갈을 밝힌다. 하나님은 외적의 압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겠다고 단언하고 다윗의 왕국은 영원히 지속될 거라고 한다. 요압의 도움을 받아 다윗은 주위에 나라들을 제압하고 이웃 왕국들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의 영토를 넓힌다.

어느 날, 다윗은 궁전의 지붕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을 본다. 그는 여인 밧세바를 불러 성교를 하고 그녀는 임신한다. 그의 무분별한 행동을 감출 수 없게 된 다윗은 여인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 보내 죽게 한다. 다윗은 밧사바와 결혼하지만 나단은 다윗의 잘못을 따진다. 나단은 부자가 가난뱅이의 양 한 마리를 훔치는 우화를 들려준다. 다윗은 그런 이기적인 행동에 분노한다. 나단은 그것이 다윗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나단은 하나님이 다윗의 집안에 재앙을 내릴 거라고 예언한다. 다윗은 잘못을 회개한다. 그러나 그의 단식과 기도에도 불구하고 밧사바의 아들은 출산 중에 죽는다. 후에 다윗과 밧사바는 다른 아들, 솔로몬을 얻는다.

다윗의 나이든 아들 암논은 그의 이복 여동생 타마르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강간한다. 다윗은 분노하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나 타마르의 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시골로 데려가서 다윗의 다른 아들들과 함께 암논을 살해한다. 압살롬은 3년 동안 먼 도시로 피신한다. 그러나 다윗은, 암논의 죽음을 애도한 후, 아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것을 허락한다.

압살롬은 음모를 꾸민다. 군대를 조직하고 온정과 친절을 과시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인심을 얻는다. 다윗의 최고 고문의 지원을 받아 압살롬은 헤브론으로 가고, 거기서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왕으로 추대한다. 이 사건을 알게 된 다윗은 부하들과 함께 도피한다. 시골 사람들은 그가 지나갈 때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사울의 친척 한 사람은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다윗의 불행을 기분 좋게 바라본다. 다윗은 부하들이 그를 처벌하는 것을 금지한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간다. 반항의 표시로 다윗의 궁녀들과 성교를 한다. 압살롬의 보좌관들은 즉시 다윗을 공격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다윗의 관리 한 사람이 압살롬을 지지하는 체하며 압살롬에게 기다리라고 설득한다. 시간을 번 다윗은 군대를 모아 에브라임 숲에서 압살롬의 추종자 2만명을 죽인다. 말을 타고 가다가 압살롬의 머리가 나무 가지에 걸린다. 요압은 압살롬을 부드럽게 대하라는 다윗의 지시를 무시하고 압살롬의 매달려 있는 몸에 세 개의 창을 찌른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통보를 받은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는다. “오 내 아들 압살롬, 오 압살롬, 내 아들, 내 아들!”(19:4)

다윗은 용서를 빌며 다가서는 압살롬의 모든 추종자들, 특히 압살롬의 사령관 아마사에게 자비를 베푼다. 이것을 본 다윗의 신하들은 실망한다. 다윗은 유다의 지도자들에게 전갈을 보낸다. 그 부족은 다윗이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것을 환영한다. 나머지 부족들--압살롬의 최고 지지자들--은 다윗이 그들에게 화낼 것을 두려워한다. 반란이 일어난다. 그러나 요압은 반란자들을 도시에 가두고 도시 주민들은 반란 지도자의 머리를 베어 바친다. 다윗이 아마사에게 자비를 베푼 것에 화가 난 요압은 어느 날 아마사에게 인사하는 체하며 칼로 찌른다.

다윗은 외교적 노력과 블레셋에 대한 군사적 승리로 왕권을 재건한다. 그는 하나님을 다정하고 친절한 구원자로서 찬양하는 노래를 짓는다.

열왕기 The First & Second Books of Kings

다윗은 늙고 병석에 눕는다. 그의 아들 아도니야가 다윗의 사령관 요압과 사제 아비아다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왕이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만들라고 선지자 나단에게 지시한다. 솔로몬을 지지하는 백성들은 궁전까지 거대한 행렬을 이룬다. 죽기 전에 다윗은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충실하라고 솔로몬에게 충고한다. 솔로몬은 요압, 아도니야, 그리고 남은 반대파들을 죽이고 왕권을 강화한다. 그는 파라오의 딸과 결혼하여 애굽과 동맹을 맺는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율법을 신중하게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꿈에 그에게 나타나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솔로몬은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고,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의 차이를 아는 지혜를 원한다. 솔로몬의 겸손한 요청에 감동을 받은 하나님은 그에게 부귀와 장수를 더 주겠다고 약속한다. 따라서 솔로몬은 매우 부유하게 살고 그의 제국은 애굽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른다. 그는 현명한 말과 과학적인 지식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재원이 풍부한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자신을 위한 궁전과 하나님에게 바치는 정교한 사원을 짓는다. 건축은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탈출한 지 꼭 480년이 지난 때에 시작된다. 솔로몬은 수천 명의 노동자들을 징집하고 자재는 이웃 나라에서 수입한다. 사원의 내부는 금으로 치장하고 커다란 천사들의 조각과 기둥들이 돋보인다. 솔로몬은 언약의 궤를 안치하고 모든 이스라엘인 헌납을 위해 모인다. 제단에서 동물들을 제물로 바친 후, 솔로몬은 사원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서 솔로몬과 이스라엘인들이 율법에 순종하는 한, 사원에 거주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원을 떠나고 사원과 국가를 파괴하겠다고 한다.

솔로몬은 많은 외국인 여자들과 결혼할 때까지 성공을 계속한다. 그의 아내들은 외국 신들에게 제단을 세우고 경배하도록 그에게 영향을 준다. 진노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의 왕국을 분열시키겠다고 한다. 하나님은 유다 하나만을 제외하고 모든 부족을 솔로몬의 왕국에서 떨어지게 할 것이다. 솔로몬이 다윗의 자손이므로 하나님은 유다 부족을 남게 한다. 그후 한 선지자가 12개로 조각이 난 외투를 입고 솔로몬의 신하 여로보암을 만난다. 선지자는 12개의 조각 중 10개를 여로보암에게 건네주며 하나님이 그를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서 선택된 부족들을 다스리게 했다고 설명한다.

솔로몬은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좌를 맡는다. 여로보암이 이끄는 백성들은 젊은 왕 앞에 가서 솔로몬 보다 더 백성들을 친절하게 대해 달라고 요청한다. 고집이 센 르호보암은 거절하고 백성들을 처벌하고 노예로 만들겠다고 위협한다. 이스라엘인들은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그들은 유다 부족을 저주하고, 그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르호보암의 술책을 피한다. 그들은 북쪽으로 향한다. 세겜에서 여로보암을 그들의 왕으로 추대한다. 이스라엘은 북쪽에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에 유다 왕국으로 갈라진다.

새롭게 갈라진 이스라엘 왕국과 예루살렘의 구 왕국을 구별하기 위해 여러보암은 북쪽 땅 전역에 황금 송아지들에게 바치는 제단과 사당을 세운다. 이스라엘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과거에 하나님에게 헌신했던 레위의 사제들도 그들을 섬긴다. 어느 날, 여로보암의 아들이 병들자 그의 아내는 선지자에게 가서 도움을 청한다. 선지자는 여러보암의 집안이 망하고 이스라엘은 결국 약속의 땅의 지배권을 잃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여러보암의 끔찍스런 행동 때문이다. 한 세대 후, 다른 이스라엘인이 무력으로 왕권을 빼앗을 때, 여로보암의 전 가족은 몰살당한다.

한편, 르호보암 왕도 유다에서 우상들에게 바치는 제단과 사당을 세운다. 이들 사당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매춘까지 허용된다. 북쪽과 남쪽의 두 왕국은 계속 서로 싸운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이 죽은 후, 네레이터는 각 왕국의 후대 왕들이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요약한다. 이스라엘의 북쪽 왕들은 거의 모두 아버지들의 행적을 확대하며 커다란 악을 범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남쪽 왕들 중 약간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누구도 유다에서 외국 신의 숭배를 금지시키지 못한다.

북쪽 이스라엘의 가장 사악한 왕 아합은 그의 아내 이세벨을 도움을 받아 북쪽 땅 전역에 바알 신의 숭배를 퍼뜨린다. 이에 대해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나와서 하나님이 그 땅에 큰 가뭄을 내릴 거라고 아합에게 알린다. 엘리야는 문명사회 외곽에서 은둔 생활을 한다. 라벤스는 엘리야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그는 그곳 사람들에게 기적을 행한다. 3년간의 가뭄 후에 이세벨 왕비는 그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이는 운동을 펼친다. 엘리야는 공개적으로 아합을 만나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아 바알에게 충성하는 것을 공언하도록 요구한다. 백성들은 응하지 않는다. 엘리야는 바알의 사제들에게 시합을 제의한다. 어떤 신이 동물의 제물에 기적적으로 불을 붙이는가를 보는 것이다. 열띤 기도를 하고 자신의 몸을 절단하지만 바알의 사제들은 제단에 불을 붙이지 못한다. 엘리야는 제단을 물 속에 세 번 담근다. 그리고 기도를 하자 하나님이 제단을 불타게 한다.

어느 날, 아합과 이세벨은 한 남자의 포도원을 훔친다. 그 남자의 이름을 욕되게 하자 사람들이 돌로 그를 쳐죽인다. 엘리야는 포도원이 있는 아합을 찾아가서 그가 살인적 행위를 했기 때문에 아합과 이세벨은 죽을 것이고 개들이 그들의 피를 핥을 것이라 한다. 얼마 후, 아합 왕은 유다의 왕과 협정을 맺는다. 둘은 통합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의 변경을 점령하고 있는 아라메안인들과 싸운다. 아합은 죽고 그의 전차에 피를 흘린다. 전투가 끝나고 전차를 청소할 때 개들이 그의 피를 핥는다.

얼마 후, 엘리야는 엘리사가 바라보는 동안 불타는 전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다. 엘리사는 선지자로서 엘리야의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의 왕들에게 불길한 예언을 하고 평민들에게 기적을 행한다. 엘리사는 불임인 여자가 임신하도록 도와주고 그녀의 어린 아들이 갑자기 죽자 그의 몸 위에 누워 생명을 돌려준다. 그는 적군의 눈을 멀게 하여 이스라엘 왕이 북쪽에서 온 아라미안의 침략군을 피하게 한다.

엘리사는 아합과 이세벨의 왕조를 끊는다. 은밀히 군 사령관 예후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왕권을 전복시킨다. 아합의 아들인 현재 왕과 유다의 왕이 서로를 방문하고 있을 때 예후는 도시를 습격한다. 도시의 남자들은 급속히 예후 편으로 귀순한다. 예후는 말에 탄 왕들을 압도하고 그들의 마법과 우상 숭배를 비난하며 하나의 화살로 그들을 쏜다. 시내로 들어가자 이세벨이 창문에서 예후에게 소리치며 유혹한다. 도시의 남자들이 그녀를 창문 밖으로 던지고 예후의 말이 그녀를 밟고 간다. 개들이 그녀의 시체를 먹으며 엘리야의 예언이 실현된다. 아합의 남은 가족들을 죽인 후, 예후는 바알의 모든 사제들을 모임에 초대하고 그들을 살해한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바알의 숭배를 뿌리 뽑지만 다른 신들의 숭배는 금지하지 않는다.

네레이터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연대기적 설명을 계속한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점점 더 나빠진다. 북쪽 이스라엘은 북동쪽에서 오는 앗시리아의 압력에 점점 영토를 잃는다. 앗시리아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북쪽 왕국을 완전히 침략하고 포로로 잡은 이스라엘인들을 앗시리아로 데려간다. 하나님의 존재는 이스라엘 백성을 떠난다. 중동에 흩어졌던 부족들이 약속된 땅에 거주하며 그들의 신들을 숭배한다.

몇 명의 유다 왕들은 남부 왕국에서 용감한 개혁을 시도한다. 두 명의 왕은 예루살렘에서 썩은 사원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르자 유다에 모든 제단과 우상을 파괴한다.--르호보암이 이 땅에 우상을 도입한 후 그런 정책은 처음이다.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의 도움으로 유다는 앗시리아의 무거운 경제적 군사적 위협을 모면한다. 마침내 유다의 왕 요시아는 전국적인 영적 부활 운동을 벌린다.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모세의 율법을 읽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재확인하고 수 백년 만에 처음으로 유월절을 경축한다. 종교 운동을 유다로 돌리려 했지만 요시아가 죽은 후 사악한 통치자들이 정권을 잡는다. 바빌론 왕은 이스라엘의 남쪽 왕국을 침략해서 예루살렘을 불태우고 사원을 파괴한다. 북쪽의 형제들처럼 유다의 백성들은 추방되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바빌론에 정착한다.

욥기 Job

욥은 우즈라는 땅에 사는 부유한 남자이다. 대가족을 거느리고 가축도 많다. 그는 “결백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언제나 조심스럽게 나쁜 짓을 피한다.(1:1) 어느 날 사탄(“마왕”)이 하늘 나라에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욥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사탄에게 자랑한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이 그에게 많은 축복을 주었기 때문에 착한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사탄은 하나님에게 도전한다. 만일 욥에게 벌을 준다면 그는 하나님을 외면하고 저주할 거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시험하기 위해 사탄이 욥을 괴롭히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사탄이 욥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금지한다.

하루 사이에 욥은 네 번의 전갈을 받는다. 그의 가축, 하인들, 10명의 아들이 약탈자들이나 천재지변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욥은 슬퍼하면서 옷을 찢고 삭발을 하지만 여전히 기도를 하며 하나님에게 감사한다. 사탄은 다시 하늘 나라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욥을 시험할 기회를 또 준다. 이번에 욥은 끔찍스러운 종기를 앓는다.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희망을 포기하고 죽으라고 한다. 그러나 욥은 거부하고 그의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애쓴다.

욥의 세 친구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그를 방문하여 그를 위로하는 뜻으로 7일 동안 조용히 욥의 옆에 앉는다. 7일째 되는 날 욥은 말을 한다. 네 사람은 각자 욥의 고난에 관해 길고 시적인 말로 대화를 나눈다.

욥은 생명과 죽음을 빛과 어둠으로 비유하며 그가 태어난 날을 저주한다. 그의 출생이 어둠 속에 싸이기를 바란다. 태어나지 않았기를 갈망한다. 빛, 즉, 생명은 그의 슬픔을 더해줄 뿐이라고 느낀다. 엘리바스가 응답한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을 위로했던 욥은 정말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욥의 고뇌는 그가 저지른 어떤 죄 때문이라고 엘리바스는 믿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보라고 한다. 빌닷와 소발도 동의한다. 욥은 하나님의 정의를 해치는 악을 범했고 보다 결백한 행동을 보이도록 애쓰라고 한다. 빌닷은 욥의 애들이 죽음을 자초했다고 생각한다. 소발은 욥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지금 받는 고통보다 더 큰 벌을 받아야된다고 한다.

욥은 이런 말에 응답을 하면서 점점 짜증을 내며 친구들에게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데없는 의원”이라고 한다.(13:4) 그의 결백을 밝히려고 애쓴 후, 욥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관계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하나님은 인간을 쉽게 바꿀 수 있고 그들의 행동을 용서할 수 있는데 어째서 사람들을 심판하는지 의아하게 여긴다.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의 정의를 충족시키고 구할 수 있는지도 욥에게 석연치 않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그의 길은 불가해하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인간은 그들의 말로 하나님을 설득할 수 없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욥은 자신의 경우를 효과적으로 하나님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욥은 그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어떤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들의 깊은 곳, 저승으로 보내기를 바란다.

욥의 친구들은 그가 그들의 지혜를 비웃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한다. 그들은 그의 의문들이 교활하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악한 것에서 좋은 것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유추와 은유를 사용한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욥은 자신감을 유지하고 그가 악을 행했다 하더라도 그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대답한다. 더구나, 그의 결백을 보증해주는 “증인”이나 하늘에 “구원자”가 있다고 믿는다.(16:19, 19:25) 얼마 후, 그 비난은 욥에게 너무 과한 것으로 밝혀진다. 그는 점점 냉소적이고,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사악한 사람들을 번성하게 만들고 그와 수많은 결백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하나님의 불의를 탄식한다. 욥은 하나님을 만나 불평하고 싶지만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지혜가 인간이 알 수 없는 곳에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피하여 지혜를 계속 추구하기로 결심한다.

다른 친구 엘리후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 든다. 젊은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변호하는데 너무 많이 노력했다고 한다. 엘리후가 욥에게 설명한다. 하나님은 영상과 육체적인 고통, 두 가지로 인간과 의사소통을 한다. 육체적인 고통은 당하는 자가 다시 회복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깨닫게 해주는 기회를 준다. 하나님이 임박한 죽음으로부터 그를 “대속(代贖)시킨”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33:24) 엘리후는 욥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가 사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욥이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 행위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하나님이 개입한다. 회오리바람에서 욥을 부르고 그에게 용감해지고 그의 질문에 대답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질문들은 수사적이다. 욥은 창조에 관해 아는 것이 없고 하나님만이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에 관해 많은 것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특히, 하마와 고래의 창조를 찬양한다. 압도된 욥은 하나님의 능력이 무궁하다는 것과 인간의 지식이 빈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대답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빈약하고 건전하지 못한 충고를 무책임하게 지껄인 엘리바스, 빌닷, 소발에게 화를 낸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중재하자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한다. 하나님은 욥의 건강을 회복시키고, 전에 비해 2배가 되는 재산을 주고, 새로운 애들과 매우 긴 생명을 준다.

전도서 Ecclesiastes

전도서의 네레이터는 자신을 “선생”이라고 부르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다. 자신은 이스라엘의 현재 왕이고 다윗 왕의 아들이라고 한다. 선생은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탄성으로 시작한다.(1:2) 그는 인생에 모든 것이 무궁하고 무의미하다고 탄식한다.--특히, 인간의 노역과 자연의 순환--이 세상에 진실로 새로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서 선생은 지혜를 식별해내는 불행한 임무를 맡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태양 아래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를” 보았기 때문이다.(1:14) 산문과 운문을 섞어서 선생은 지혜에 관한 그의 연구, 가설, 격언을 편집한다.

선생은 많은 세속적인 쾌락을 맛본다. 그는 술을 마시고, 부유해지고, 권력을 얻고, 토지를 사고, 성적 만족을 경험하고, 연예를 감상한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어떤 것도 그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선생은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좋다고 생각하지만 지혜를 얻는 것은 좌절감을 주고, 얻기 어려운 추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똑같이 죽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선생은 인간 활동의 일반적인 경향을 조사한다. 출생과 사랑처럼 인생에 좋은 것에는 각각 시간이 있듯이, 죽음과 증오처럼 반대되는 것에도 항상 시간이 있다는 것을 주목한다.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은 사악한 것과 정의 사이에 차이점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둘 사이를 구별한다. 인간의 노동은 경쟁, 시기심, 그리고 억압으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을 선생은 주목한다. 선생은 인간의 협동에 관한 미덕들을 찬양한다. 두, 세 명이 협동하는 것이 한 사람보다 유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음에 선생은 음식에 관한 욕심, 금전에 대한 사랑, 과도한 수다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에 관해 논한다. 선생은 그러한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는 일련의 교훈을 준다. 각 교훈은 긍정적인 경험에 관한 부정적인 경험을 찬양한다. 초상이 잔치보다 좋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든 것의 끝은 시작보다 좋다. 그는 사람들에게 너무 의롭지도 말고 사악하지도 말고 중용을 지키라고 한다.

선생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들이 똑같은 운명을 겪는 것에 당황한다.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순종하는 것과 불순종하는 것의 차이를 논하는 것을 따분하게 여긴다. 인생의 상반되는 것들 사이에 결과를 결정짓는 유일한 요인은 시간과 기회라고 궁극적인 결론을 내린다.

선생은 긍정적인 권고를 한다. 허무한 인생과 활동을 최대한으로 즐기라고 사람들을 격려한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기회를 잡으라고 한다. 조심은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즐겁게 살고 그들의 기질을 따르라고 촉구한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한다. 세상에 모든 것은 임시적일 뿐이며 인생은 결국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순환이다.(12:7) 선생은 현명한 말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한다. 지혜의 연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시편 Psalms

개요

성가는 종교적 시와 노래에 음악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시편에 어떤 성시들은 예배하러 모인 신도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된다. “승천의 노래”는 사원으로 가는 순례자들이 부른다. 어떤 것은 개인적인 기도문이고 어떤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을 회상하는 서정시이다. 현재 시편에는 150개의 시가 있다.

전통적으로 시편은 5권으로 나누어진다. 많은 시들은 저자를 알리는 제목으로 더욱 구분된다. 그러나 이 제목들은 대개 후대의 편집자들이 추가시킨 것들이다. 성시의 저자들은 대개 알려져 있지 않다. 성시의 주제가 다윗 왕조의 사건에서 이스라엘인들이 바빌론으로 추방되는 때까지이므로 시들은 기원 전 10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 사이에 지어졌을 것이다.

많은 성시들은 이스라엘의 역사, 특히 애굽에서 탈출하여 약속된 땅에 도착하는 이야기들을 열거한다. 시편 137편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포로가 된 초기 시절을 그린 아름다운 애가(哀歌)이다. 바빌론의 강둑에서 울면서 예루살렘, 즉, 시온을 동경하는 이스라엘인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바빌론인들이 그들을 위해 노래를 하라고 이스라엘인들에게 요청할 때, 이스라엘인들은 거절하고 하프를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는다. 시인은 이렇게 묻는다. “우리가 외국 땅에서 어떻게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137:4) 시는 바빌론인들에 대한 복수를 요구하며 끝난다. 시는 추방당한 이스라엘인들과 후에 성경을 읽은 사람들에게 유대인의 믿음을 찬양하는데 약속된 땅이 소중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시편의 형태

대다수의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시편 8편은 창조와 관련해서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찬양한다. 시인은 하나님이 창조를 위해 내린 명령들을 찬양한다. 우주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인간, 동물 마지막으로 바다로 내려온다. 천상에 있는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에 관심을 쓰고, 인간을 자신 다음으로 중요시하고, “그들의 발 밑에” 있는 다른 모든 창조물을 관리할 권위를 준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한다.(8:6) 시편 46편은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의 도시”, 즉, “시온”을 찬양한다. 시편 100편은 예루살렘에 장엄한 입성을 묘사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 121편에는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라고 한다. 이 시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원에 도착할 때 기대감과 동경심을 전하는 것이다.(121:1)

시편의 또 다른 범주는 한탄과 탄원이다. 저자의 육체적 고통과 적들로부터 구제를 요청하는 시들이다. 이 적들은 공격하는 다른 민족이나 공개적인 비난 같은 실제적인 것도 있고 스며드는 영적인 악을 비유하는 것도 있다. 시편 22편에서 시시한 악당들이 시인을 괴롭힌다. 그들은 굶주린 동물로서 처음에는 황소들, 다음에는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다음에는 개들로 그에게 다가온다. 악당들은 시인을 둘러싸고 그의 수척한 몸을 보고 웃으며 마침내 그의 옷을 벗긴다. 19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구조를 외친다. 하나님은 동물들로부터 그를 구한다. 하나님의 구조가 끝나자 탄식의 시는 감사의 시로 바뀐다. 시인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칭송을 알릴 것을 맹세한다.

탄원과 한탄은 다른 형태의 시편에 중요한 내용이다. 시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절망에서 하나님에 대한 더욱 깊은 믿음을 고백한다. 개인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주는 매우 개인적인 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 시들이 있다. 시인은 비탄의 시와 비슷한 은유를 사용해서 그의 영적인 절망을 비난한다. 시편 40편에 시인은 “황량한 구덩이”와 “더러운 수렁”에 빠지지만 하나님은 그를 “반석 위에” 놓는다.(40:2) 시인은 시편 23편에 어두운 계곡을 걷고, 32편에 몸이 상하고, 51편에 뼈가 부셔진다. 하나님은 “피난처”, “강한 요새”, “은신처” 역할을 하여 시인을 구한다.(31:2, 31:7)

지혜를 다루는 시편은 격언과 경구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도덕적 교훈을 준다. 예를 들어 시편 127편은 기묘한 격언으로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격려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127:1)

시적 형식과 스타일

시편의 시인들은 의미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병행법을 사용한다. 로마 시에서는 리듬과 운율이 강조하는 음절에 들어가지만, 시편의 시는 “짧은 시구”를 짝으로 병행시킨다. 짧은 시구들은 서로 “병행한다”. 두 번째 시구는 첫 번째 시구를 반복하거나 확대시킨다. 병행되는 시구들은 같은 단어들을 반복하기도 한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꺽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스시도다.“(29:5)

그러나, 대개의 경우, 병행 시구들은 의미를 반복한다. 시편 40장 8절에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그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나, 두 번째 행은 독자에게 새롭고 보다 뚜렷한 정보를 준다. 비유적 언어로, 하나님의 계명이 시인에게 너무 소중해서 그의 마음 속에 머문다고 한다. 시인의 적들은 무관심하고 일시적인 존재들로서, 야생 동물이나 다가오는 자연적 재난이다. 시편 91편은 시인의 적들을 사자와 뱀과 “무서운 역병”으로 묘사한다. 시편 1편에는 사악한 자들을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고 한다. 반면에 시인이나 주인공은 대개 길을 잃거나 잘못된 곳에 와 있는 사람이다. 시편 42편에는 시인은 자신을 흐르는 시냇물을 찾아다니는 사슴으로 묘사한다. 다른 시에서 시인은 위험한 길을 방황하거나 수렁에 빠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지리적인 용어로 표현된다. 그는 바위, 피난처, 그리고 요새이다. 그는 산에, 시온에, 예루살렘의 도시에 거한다. 어떤 때는 하나님 자신이 위치가 된다. 시편 32편에서는 “은신처”이며 시인을 위해 경계선을 긋는 사람이다.(16:6) 시편 23편에는 목자로서 방황하는 시인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식탁으로 초대한다. 땅과 결합된 보호 처로서 하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신앙적 은혜의 상징으로 구약 성경의 약속된 땅을 정교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아가(雅歌) The Songs of Solomon

아가는 젊은 여인과 그녀의 애인 사이에 긴 대화로 이루어진 서정시들이다. 제3자인 코라스는 가끔 연인들에게 말을 한다. 첫 번째 시는 젊은 처녀가 읊는다. 그녀는 애인의 곁으로 가서 키스를 받고 싶어한다. 그녀는 가족들이 포도원에 일하러 보냈기 때문에 피부가 검다고 한다. 그녀는 애인을 찾으러 가며 그를 떠도는 목자로 비유한다. 코러스는 양Ep를 따라 그의 텐트로 가라고 격려한다.

연인들은 침상에 함께 눕는다.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그녀를 어린 암말로 그녀의 눈을 비둘기의 눈으로 비유한다. 그는 푸르고 비옥한 환경을 묘사한다. 처녀는 자신을 장미와 백합이라 부르고 과일 나무인 남자의 그늘에 가리웠다고 한다. 그녀는 남자를 새싹이 돋는 봄에 그녀를 데리러 온 기운 찬 가젤 영양으로 비유한다. 처녀는 남자가 그녀의 백합 숲에서 그의 양떼를 기른다고 자랑한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너무 일찍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침대에 누운 처녀는 애인을 찾아 도시의 거리를 헤매고 그를 찾아 집으로 데려오는 꿈을 꾼다. 그녀는 화려한 결혼식을 상상하고 그 속에 행복한 신랑은 솔로몬 왕으로 나타난다. 남자는 처녀의 신체 각 부분을 동물과 소중한 물건으로 비유한다. 그는 그녀에게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그의 곁에 있으라고 한다. 그녀를 강렬하게 사모하는 남자는 그녀를 나무가 무성한 닫혀진 “정원”과 물이 솟는 샘으로 묘사한다.(4:12-14) 처녀는 그녀의 정원에 바람이 불게 하고 남자를 정원으로 초대한다. 남자는 정원에서 식사를 하고 친구들을 불러 두 사람을 축하하게 한다.

다른 꿈에서 처녀는 늦은 밤에 애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는 사라진다. 또다시 그녀는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리의 파수병이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건다. 그녀는 애인을 찾게 해달라고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요청한다. 코러스는 그녀에게 젊은 남자의 모습을 말해달라고 한다. 그녀는 그의 신체의 각 부분을 금은 보석과 동물로 비유한다.

두 사람은 정원에서 서로 만난다. 남자는 처녀의 신체의 각 부분을 계속 찬양한다. 그는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하고 그녀를 야자나무로 젖가슴을 야자로 비유한다. 처녀는 애인을 들판과 마을로 초대하고 꽃이 핀 포도원에서 그녀의 사랑을 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들의 공개적인 애정 표현에 관해 말을 하지 않도록 그가 그녀의 오빠이기를 바란다. 처녀는 과거의 순결을 회상하지만 그가 보기에 화평하게 그것을 잃은 것을 기뻐한다.(8:10) 솔로몬 왕은 많은 포도원을 가졌지만, 그는 처녀라는 하나의 포도원으로 행복하다고 남자는 말한다.

잠언 Proverbs

개요

잠언은 성경에 수집된 지혜 문헌 중 으뜸이 되는 책이다. 여기에는 전도서, 욥기, 시편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성경에 있는 지혜 문헌의 목적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가르치려는 것이다. 잠언은 31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에는 20에서 35개의 금언들이 있는데 각 금언은 2행으로 되어있다. 책의 대부분은 솔로몬 왕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글로 쓰여진 것은 기원전 8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수집된 것으로 여겨진다.

잠언은 종교적 도덕적 지혜를 주기 위해 두 가지 행위를 대조시키는 주는 간결한 말이다. 잠언에 어떤 금언들은 수수께끼처럼 불가사의해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해석해야 한다. 성경에 잠언들은 종교적이지만 신의 계시보다 구체적인 인간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은 신화나 민간 설화의 교훈처럼 무궁한 특성을 수반한다. 지혜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는 정의와 도덕적인 선의 분야에서 기술과 능력을 얻는 것이다.--기술자가 기술을 얻는 것과 같다. 사실상, 잠언에서는 지혜를 “체득”하거나 “구입”하라고 한다.(4:5, 23:23) 잠언에 금언들은 대개 현명해지려는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구조

잠언은 네 가지 주요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끝에 3개의 추가 부분, 즉, 부록으로 되어있다. 잠언의 첫 세 개는 “지혜”라는 의인이 말한다. 이 부분이 가장 대화적이고, 이야기적이고 주제적이다. 지혜는 1인칭으로 독자들을 “나의 아기”라며 지혜로운 삶의 다양한 화제를 가르쳐준다. 지혜의 목소리는 여러 가지 다른 형태를 취한다. 우선, 지혜는 자신을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경고하면서 도시의 거리에 서 있는 여자로 묘사한다. 그러나 지혜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도 한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지혜는 세상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파트너였다고 한다.

잠언의 다음 세 부분은 솔로몬의 격언과 현자들의 금언을 담는다. 솔로몬의 격언은 두 개의 긴 부분으로 되어있고 격언들은 주제에 따라 매우 산만하게 짜여졌다. 말하는 사람은 대개 왕의 말투와 권위를 보인다. 많은 격언들은 반대되는 대조 형식을 따른다. 두행 중 첫 행은 선하거나 현명한 행동을 다른 한 행은 악하거나 어리석은 것을 묘사한다. “현자들의 금언”은 하나의 작은 부분이고 덜 수사적이며, 보다 직접적인 명령이나 충고를 한다.

잠언에 마지막 세 부분에는 아굴과 르므엘 왕의 짧은 신탁과 좋은 아내를 고르는 방법에 관한 교훈이 들어있다. 아굴과 르므엘의 역사적 존재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신비스런 가르침은 잠언의 나머지 부분에 공통된 지혜 그리고 중용과 정의에 대한 주제를 계속 요구한다. 마지막 부분은 착하고 “유능한” 아내의 특성들을 찬양한다.(31:10) 그녀는 근면하고, 자립적이고, 강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순종한다.(31:30) 잠언은 그녀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을 불러 그녀를 찬양하게 하면서 끝난다.

주제

잠언은 주로 하나님의 정의는 피할 수 없다는 것과 분별력과 중용의 중요성을 다룬다. 사악한 행위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필연적으로 하늘의 징벌을 받게 된다고 솔로몬의 잠언은 주장한다. 다른 사람을 중상하는 사람은 혀를 잘리게 되고, 게으른 사람은 농사를 망치게 되고, 부당한 자만심은 개인의 파멸을 초래한다. 하나님의 정의를 향유할 수 있는 한 방법은 중용과 분별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잠언에 의하면, 온건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의 무절제를 피한다. 과도하게 마시고, 먹고, 자고, 떠들고, 화를 내지 않는다. 현명한 행동을 보이는 일관된 방법은 영리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는 것이다. 잠언은 미리 준비하는 사람, 특히, 나중의 사태에 대비하여 집안을 준비하는 사람을 찬양한다. 그러나, 지혜와 분별력의 가장 중요한 표시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존경심을 보이는 것이다.

잠언에서 여성을 중요시하는 것은 구약성서와 연관했을 때 특이하다. 대부분의 구약성서 이야기에서 여성은 남성의 부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잠언에서 여성은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지혜를 이용하여 그들의 힘과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장은 “좋은 아내”에게 물건을 파는 것에서 집안을 수리하는 일까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솔로몬은 “가정을 세우는 자는 여자”라고 한다.(14:1) 흥미롭게도, 잠언에서 젊은 남자들은 목적 없이 방황하며 바른 길을 찾지만 유혹에 제물이 된다. 여자로 의인화된 지혜는 도시의 거리에 굳건히 서서 예언자로서 전갈을 전한다. 여성적인 지혜를 하나님과 일치시키는 것은 과거 성경책에 나타간 하나님의 모습과 다르다. 잠언은 하나님을 여자나 성을 가진 존재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혜의 여성적인 목소리는 하나님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지혜는 말한다.“주님은 그의 역사(役事)를 시작할 때 나를 창조하셨다......그후 나는 동업자처럼 그의 옆에 있었다.”(8:22-30) 지혜는 또 말한다. “나를 찾는 자는 생명을 찾을 것이고, 주님의 총애를 얻을 것이다.”(8:35) 지혜는 생명의 근원이고, 창조에 협조자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이다. 지혜에게 여성의 특성을 부여하여, 남성과 함께, 여성은 세계 질서를 이루는데 중요하다는 것을 잠언은 암시한다.

작가와 작품에 관해

구약성서는 기독교 성경의 첫 번째 부분으로 분량이 많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경서 즉, 헤브루말 성서라고 하는 것이다. 구약성서는 한 작가가 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수 백년에 걸쳐 수많은 저자와 편집자가 쓰고, 다시 쓴 고대 문서들의 집합체이다. 여기에는 고대 이스라엘인, 즉, 헤브루 민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고, 법률과 그들의 종교에 관한 의식서들을 담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경배와 일상생활을 위해 토라 율법이 들어있다. 기독교인들은 구약성서도 신성하지만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없으면 종교적인 의미가 불완전하다고 여긴다. 회교도들은 대체로 구약성서의 종교적 의미는 거기에 나오는 몇몇 인물에게서 그들 종교의 뿌리를 찾는다. 일반적으로 구약성서는 서구문명의 오랜 사고방식과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 윤리, 정의, 세계의 본질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가치를 지닌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구약성서는 기원전 1세기경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개개의 책들은 훨씬 오래된 것으로 그 기원은 기원전 10세기와 11세기 또는 그 이전이다. 이 작품들은 인류의 기원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많은 사건들은 훨씬 전에 발생했고 역사적으로 밝힐 수 없다. 역사가들은 구약성서 시대를 대략 기원전 2000년에서 400년까지 1500년으로 잡고 있다.

구약성서의 배경은 고대 중동 지역으로 북서쪽(현대의 이라크) 메소포타미아에서 남서쪽 이집트의 나일 강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건은 고대 가나안의 땅, 즉,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다. 바다에서 서쪽으로 75마일에 이르는 동부 지중해 지역과 산악 지역에 이르는 요르단 강 계곡이다. 남쪽으로 거대한 이집트 제국과 북쪽과 동쪽으로 히타이트 제국 그리고 바빌로니아 제국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 지역은 기원전 2000년에 중요한 교역로였다. 대부분 유목 사회인 다양한 민족들이 평원에 흩어져 살았다. 그들은 요새화된 작은 도시를 형성했고, 여러 가지 신들을 숭배했고, 농사를 지었다. 거치른 황야는 한 민족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을 방지했지만,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가나안인”으로 불려졌고, 오늘날 헤브루어와 아랍어를 포함하여 공통된 셈어의 방언들을 사용했다.

성서 이야기 이외에 이스라엘인들의 초기 생활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사실상, 기원전 1200년 이전의 고대 문헌에는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 없다. 구약성서에서는 헤브루 민족(외부인들이 이스라엘인을 부르는 말)은 아브라함이라는 셈족 남자의 후손이며 그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가나안 땅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성서 이야기는 이스라엘인들이 여러 해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로서 고통을 당했고, 기적적으로 가나안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전쟁으로 땅과 민족을 정복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대 학자들은 이 이주가 기원전 13세기나 12세기에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가나안 지역의 도시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과격하고 신속한 정복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이스라엘인들은 점진적이고 평화적으로 정착했으며, 심지어 농민 봉기였다고 역사가들은 생각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인들의 영광은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거대한 통일 왕국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왕도를 세웠고, 거대한 신전을 건설했고, 이스라엘의 국경을 유프라테스 강까지 확장했다. 성서적 사건의 순서에 의하면,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은 기원전 10세기경에 존재했다. 그러한 이스라엘 제국이 역사적으로 존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스라엘 국가가 고대 중동의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이 두 개의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사악한 왕들 때문에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왕국들에게 망했다고 기술한다. 역사적 증거는 이런 사건들을 확인해준다. 이스라엘의 북부 지역은 기원전 722-720년에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함락되었다. “유다 왕국”이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남부 지역은 바빌로니아 왕 네브카드네자에게 정복당했다. 그는 기원전 589-586년에 유명한 도시 예루살렘과 그 신전을 파괴했다. 이스라엘 상류층의 많은 인구가 바빌로니아의 영토로 망명해서 다시 정착했다.

이스라엘인들의 망명 시기는 유대교가 조직적인 종교로 자리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외국 땅에서 유대인 사회가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신학적 그리고 문학적 발전을 촉진시켰다. 구약성서의 많은 부분, 특히 종교적 율법과 예언이 이 시기에 써졌거나 편집되었다. 망명 생활의 경험으로 구약성서 저자들은 하나님의 율법, 토라를 구체화시켰고, 고통과 운명의 반전과 같은 성서적 주제들을 강조하게 되었다. 기원전 539년, 바빌론이 페르시아 제국에게 멸망당했을 때, 페르시아의 키로스 왕은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아서는 에스라의 영도으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기록하는데, 기원전 460-400년 사이다. 굶주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재건했고 두 번째 신전을 세우면서 하나의 종교적 사회로서 자신들을 확인했고, 토라의 율법을 따랐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지리는 구약성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성서적 사건이 벌어진 지역은 윤리적 그리고 정치적 변화가 있던 곳이다. 구약성서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인들은 특별하고 영구적인 존재로 묘사한다. 헤브루 민족은 한 사람의 후손들이며, 땅에 대한 신권을 가지고 있으며, 유일신을 숭배하여 주위에 다른 민족들과 구별했다. 이 주장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이스라엘인들은 한 민족으로 존재했으며, 구약성서는 고대 중동의 역사적, 종교적, 문학적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문학 작품으로서 구약성서는 많은 문학 형태를 지닌다. 이야기와 시를 포함하고, 법률 재료이며 족보이기도 하다. 비평가들은 성서 이야기들을 분류하기 위해 서사시, 신화, 전설 같은 용어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문학적 특성의 예로서 영웅들, 대화, 상징들을 기술한다. 그런 개념들은 문학을 이해하는 현대적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구약성서의 저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약성서는 문학과 이야기에 대한 서구문명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문학적 용어로 성서 이야기들을 기술하는 것은 성서를 문학으로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주석: 이 글은 영어로 된 것을 제가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