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답답했던 편의점 알바생의 하루

하늘보기2008.07.11
조회318

인천의 어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스물 한 살의 휴학생입니다.

이런 게시판에 글을 써 본 적은 없지만 ..

어쩐지 너무 답답한 마음이 들어

새벽까지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혼자 속풀이차 .. 적어 내려가 봅니다.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보통은 심심하고 따분하고 시급도 짠데 뭣하러 하느냐 ..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을 보이십니다만

전 유동인구가 꽤나 많은 환승 역 바로 앞 편의점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시급도 괜찮은 편이고 심심하고 따분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좀 많이 소심하고 수줍음이 많은 탓에

낯선 사람을 보면 그저 웃어버리고 마는지라

이런 태도가 사람들은 친절함으로 느꼈나봅니다.

 

인근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점장님도 잘 해 주시고 잘 웃어줘서 고맙다며

항상 좋은 말씀 해주시니까 슬슬 저도 이게 적성인가보다 .. 하며 매일 매일 살다

거의 반 년을 채워가고 있더랬지요.

 

물론 편의점에서 일을 하면 악질적인 -_- 손님들이야 부지기수로 받기 일쑤지만

보통 그런 손님들의 불만이라는 게

왜 동네 구멍가게보다 비싸게 받느냐,

소주값이 어째서 1350원이냐,

굳이 바코드를 찍어야 하느냐,

나 먼저 해 줘라,

봉투값은 왜 받냐,

어제 다른 사람이 검사한 신분증을 왜 또 검사하냐,

... 라는 등등의 사소한 것들이라 대충 웃어 넘이고 얼버무려 넘기고 우물우물 넘기고

그렇게 지내 왔습니다.

그다지 용감무쌍하고 예민한 성격이 아닌지라

말싸움도 싫고 화 내 봐야 건강에만 안좋고 -_-; 어차피 바쁜데 일 만들 거 없고

해서 그저 아직 편의점에 대한 이해가 모자란가보다 ... 라고 넘겨버리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누적되고 나면 짜증이 덩어리로 몰려드는 모양입니다.

 

 

 

저희 편의점에서는 택배도 취급합니다.

그리고 어제, 한 삼십대 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께서 택배를 맡기고 가셨습니다.

 

기본적으로 택배는 배송 과정이 거칠기 때문에

깨지는 물건은 기본이고

기간이 얼마나 걸릴 지 몰라 상하는 물건은 절대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 손님께서는 상자에 아기 옷과 과일 몇 개를 넣어 오셔서는

택배를 부쳐 달라 하시더군요 ..

 

 

초반에 좀 많이 택배 실수를 했던지라 과일이 들어있다는 말에

과일은 상할 수 있기 때문에 택배가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

 

"참외 몇 개 들어있고 옷이 전부에요.

상하면 뭐,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 그냥 보내주세요."

 

 

그런 말, 들으면 안되는 건데

한동안 택배 불가 물품을 가져 오셔서 괜찮다며 그냥 보내달라시던 분들에게

차후 어떤 불만이나 문제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너무 담담히 말씀하시는 게 그저 옷 보내는 데 몇 개 넣었나보다 ...

하는 생각으로 송장을 입력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택배 회사에서 전산 오류가 생겼는지

편의점에서 등록한 게 회사 쪽에서는 접수가 되지 않았다더군요.

결국 택배는 어제 출발하지 못했고

두 시 까지 출근하는 제가 야간 교대 정산을 할 때까지도 어제 놓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 순순한 손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거지요.

 

 

갑자기 편의점 앞 역무원실 직원 분께서 편의점에 찾아와 강원도에서

택배 올 게 있다며 편의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셨답니다.

문득, 카운터 옆에 보이스 피싱 주의 -_- 공문이 보이길래 그건가 ...; 싶어서

점장님과 이야기 해 보시라고 점장님을 불러드렸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택배를 부치신 여자분이시더군요.

 

왜 어제 보낸 택배가 출발하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정황상, 바캉스를 가면서 물건이 많아 귀찮으니

물건은 택배로 보내고 몸만 간 모양입니다 ...

 

 

점장님께서 확인해보시고는 택배 회사 쪽에서의 전산 오류라는 걸 아시고

그 분께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드렸습니다.

편의점에서는 송장 번호를 입력하고 택배비를 계산하는 것으로

이미 택배에 대한 의무는 끝이 났으니까요.

 

택배 회사가 바빠 하루 이틀 늦어지나보다 생각하고 마셨다며,

이런 일은 처음인데 죄송하다고,

어떻게 보상해드리기를 바라느냐고

점장님께서는 정말 보는 제가 죄송할 정도로 친절하고 상냥하게

그 여자분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러면 보통 ...

아 그랬냐 ..... 택배가 오지 않아서 걱정이 됐다 ... 사실 짜증이 좀 났다 ....

그래도 내일은 가는거냐 ...... 라는 식의 퉁명스런 대답까지도 예상은 하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이 분은 상상 초월적인 폭언을 쏟아 부으시더군요.

 

 

"일을 그 따위로 해도 되는거에요? 아니, 그럴 거면서 택배비를 비싸게 6000원 씩이나

받아 쳐먹어? 하여튼, 당신들 인천 올라가서 두고 보자고. 가만히 안 놔둘거야.

과일 상하면 어쩔꺼야? 애 옷이 들어 있으니까 그러지! 그리고 언제 과일이

택배가 안된다고 그랬어? 난 기억 안나."

 

 

 

... 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_-

 

 

점장님껜 너무너무 죄송했지만,

제가 정말 화가 나는 건

분명히 '상하는 물건은 택배가 불가능하고, 운송은 하루나 이틀 정도 걸립니다.'라고

제대로 전달 해 드렸거든요.

 

택배는 일반 카운터 업무와는 별개이고

또 택배 실수를 워낙 많이 했던지라

절대 그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는 걸 자신했습니다.

 

또, 며칠 동안 없던 택배가 한 건 딱 들어왔던 날이라

시간대도, 택배를 받을 때의 상황도, 안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인지도

다 기억이 났거든요.

 

 

 

정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 한동안 몸이 떨리는 걸 주체하질 못했습니다.

 

물론 예상 외의 일이 벌어지면 짜증이 나긴 하겠지만,

그렇게 정중하게 자신을 낮춰 사과하는 사람에게

"가만히 안 놔둘 거야." 라니요 ......

 

 

 

차라리 저한테 직접 그렇게 막 대하셨으면

저도 기억하는 정황이 있으니 맞대응이라도 했을 텐데

아무 죄도 없는 점장님께서 그런 막말을 듣고 계시는 게 참

죄송스러웠고 화가 났습니다.

절 딸처럼 대해주시던 분이고, 제가 엄마처럼 느끼던 분이시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편의점 따위''에서 손님에게 ''봉사''해야 하는 니들이

어디 일을 그따위로 하느냐는 식의 막말을 퍼붓는 건

인간적인 도리를 지나친 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마구 답답해졌습니다.

 

 

쌍욕도 들어봤고

집어던지는 물건에도 맞아 봤고

깨뜨린 병, 어질러진 물건 정리 해 본 적도 많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비인간적인 모욕을 듣는 건

정말 참기 힘듭니다.

 

 

 

비단 그 택배 손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어린 여자애들은

무시해도 되고

욕해도 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해도 되는건지 ..

 

 

체인 사업은 .. 본사의 하달 지시를 듣지 않으면 문 닫아야 하는거 아닙니까 ..

제가 물건 값을 비싸게 받고 싶어 그런 것도 아니고

제가 물건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지 않아 그런 것도 아니니까

최대한 예의 갖추어

손님께 인사도 드리고

친절하게 웃어도 드리고 하는 건데요 .

 

 

 

편의점에서 일해도 ... 사람입니다.

편의점 알바생들이 무뚝뚝하고 불친절해서 그렇게 막대하신다고들 하는 분들 계시지만

맹세컨데 저는 단 한 번도 처음 만난 손님에게

웃어주면 웃어줬지 불친절하거나 무뚝뚝하게 대한 적 없습니다..

 

 

제발 담배 살 때 신분증 검사한다고 욕하지 마시고

(바코드 역추적 걸리면 영업 정지가 2개월이에요 .... 걸린 곳도 있구요 ..)

물건 비싸다고 카운터 위에 올려 놓고 그냥 가버리지 마시고

봉투 값 받는다고 돈 집어 던지고 가지 마시고

이유 없이 술 드시고 오셔서 편의점 다 도둑놈의 새끼들이라며 욕하고

물건 던지지 마세요 ...

 

 

한 분 씩 그런 손님들 겪고 나면

저는 몇 시간 동안 다른 손님들에게 안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게 됩니다..

 

 

 

안 좋은 생각 하다보면 끝이 없긴 하기에 늘 좋게 넘겨보려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이 있는 날이면 회의가 듭니다.

그래서 더 참지 못하고

이런 시간에 이렇게 길게 누가 읽을 지 모르는;

혼자만의 글을 적어 봅니다.

 

그래도 누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