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도 출근을 하면서 평소처럼 어머니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저 다녀올게요!"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벌써 나가냐? 조심해서 댕겨오그라 잉!" 하셨는데 오늘은 어머니께서 대답 대신 사진 속의 빙긋이 웃는 얼굴로 대 답을 대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출근하는 발길을 서두르면서 문득 40여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요? 아침끼니가 없어서 그냥 굶고서 학교를 가려는 저에게 어 머니께서는 옆집에서 이미 쉬어버려 먹을 수 없는 밥을 한 그릇 얻어오셔서 그 밥을 냉수에 깨끗이 씻은 다음 저에게 "이거라도 먹고 학교에 가거라!" 하셨습니다.
배고픈 시절 저는 이미 쉬어버린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그리고 학교에서 식중독으로 배가 아파 견디지를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온 방안을 구르다가 보따리 행상을 하셨던 어머니께서 뒤늦게 집으로 돌아오셔서 된장을 물에 타서 저에게 먹이시며 "너희들을 잘 먹이지 못한 이 에미가 잘못이다!" 하시며 제가 잠이 들 때까지 저의 배를 문질러 주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을 다니던 시절 바지의 무릎이 다 헤어져 바지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들에게 어 머니께서는 옆집의 형 헌 바지를 얻어다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지 길이가 너무 길었던 헌 바지를 저는 그만 가위로 싹둑 잘못 자르는 바람에 바 지가 종아리가 보일 정도로 짧은 바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바지를 입고 다니는 저를 어머니께서는 그저 가여운 눈으로 보시며 "너희들의 옷을 잘 입힐 수 없는 에미가 잘못이 다!" 하시며 경솔한 저를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공사판을 전전하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공무원이 되겠다며 시험 공부를 한다고 방안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고 그리고 시험을 치르고 낙방을 하여 실의 차있 던 저에게 어머니께서는 "너희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이 에미가 잘못이다!" 하시며 자식의 무능함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집배원 시험에 합격을 하고 발령을 받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큰아이를 낳았을 때 어머니께서는 그날따라 눈보라가 치고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왕복 3㎞의 거리에 사시 는 이름짓는 분을 찾아가셔서 종구(鍾球)라는 큰손자의 이름을 지어오셨습니다. "어머니 그러다 눈길에 넘어져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하는 자식의 핀잔에 "내가 손 지를 받었는디 그까짓 눈이 문제냐?" 하시며 마치 이 세상에서 당신 혼자서 손자를 보신 것 처럼 기뻐하셨습니다.
둘째 종철이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달리기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자 "우리 집안에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 집안에 경사 났다!" 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리고 큰애 종구가 상근 예비역 훈련을 마치고 군복을 입고 집에 들어오자 어머니께서는 "우메 우리 종구가 벌써 군인이 되얏어?" 하시며 큰아이의 손을 잡고 무척이나 대견해 하셨 었지요!
어머니께서는 저희들의 행복이 바로 당신의 행복이었고 저희들의 기쁨이 당신의 기쁨이었고 저희들의 즐거움이 당신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일에도 결코 단 한번도 저희들 에게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는 강인한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병원의 중 환 자실에 입원을 하셨을 때도 "내가 집이 갈 때 아줌마들한테 밥 사주고 가께 잉!" 하시며 병 원의 간호사 님들께 여유를 부리실 줄 아는 어머니께서도 숨을 거두시기 하루 전 어머니의 눈가에 가느다란 눈물이 흐르는 것을 이 자식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깊은 잠에 빠지신 것처럼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못 먹이고 못 입히고 못 가르치신 것이 한이 되셨던 어머니! 그러나 단 한번도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리고 언제나 조그만 일에도 기쁨 을 감추시지 않으셨던 나의 어머니!
오늘도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의 방문을 열겠지요! 그리고 "어머니 다녀왔습 니다!" 하면 어머니께서는 "우메! 인자사 오냐! 나는 아까 밥 묵었다 어서 가서 밥 묵어라 그라고 따땃한 방에서 푹 쉬어라! 고생했다!" 하시겠지요? 비록 이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어도 어머니의 따스한 미소가 언제나 저의 마음속에는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머니 전상서
어머니 전상서
오늘 아침에도 출근을 하면서 평소처럼 어머니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저 다녀올게요!"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벌써 나가냐? 조심해서
댕겨오그라 잉!" 하셨는데 오늘은 어머니께서 대답 대신 사진 속의 빙긋이 웃는 얼굴로 대
답을 대신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출근하는 발길을 서두르면서 문득 40여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요? 아침끼니가 없어서 그냥 굶고서 학교를 가려는 저에게 어
머니께서는 옆집에서 이미 쉬어버려 먹을 수 없는 밥을 한 그릇 얻어오셔서 그 밥을 냉수에
깨끗이 씻은 다음 저에게 "이거라도 먹고 학교에 가거라!" 하셨습니다.
배고픈 시절 저는 이미 쉬어버린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그리고 학교에서 식중독으로 배가
아파 견디지를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온 방안을 구르다가 보따리 행상을 하셨던 어머니께서
뒤늦게 집으로 돌아오셔서 된장을 물에 타서 저에게 먹이시며 "너희들을 잘 먹이지 못한 이
에미가 잘못이다!" 하시며 제가 잠이 들 때까지 저의 배를 문질러 주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을 다니던 시절 바지의 무릎이 다 헤어져 바지를 사달라고 조르던 아들에게 어
머니께서는 옆집의 형 헌 바지를 얻어다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바지 길이가 너무 길었던 헌 바지를 저는 그만 가위로 싹둑 잘못 자르는 바람에 바
지가 종아리가 보일 정도로 짧은 바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바지를 입고 다니는 저를
어머니께서는 그저 가여운 눈으로 보시며 "너희들의 옷을 잘 입힐 수 없는 에미가 잘못이
다!" 하시며 경솔한 저를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하고 공사판을 전전하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공무원이 되겠다며 시험
공부를 한다고 방안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고 그리고 시험을 치르고 낙방을 하여 실의 차있
던 저에게 어머니께서는 "너희들을 잘 가르치지 못한 이 에미가 잘못이다!" 하시며 자식의
무능함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제가 집배원 시험에 합격을 하고 발령을 받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큰아이를 낳았을
때 어머니께서는 그날따라 눈보라가 치고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왕복 3㎞의 거리에 사시
는 이름짓는 분을 찾아가셔서 종구(鍾球)라는 큰손자의 이름을 지어오셨습니다.
"어머니 그러다 눈길에 넘어져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하는 자식의 핀잔에 "내가 손
지를 받었는디 그까짓 눈이 문제냐?" 하시며 마치 이 세상에서 당신 혼자서 손자를 보신 것
처럼 기뻐하셨습니다.
둘째 종철이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달리기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하자 "우리 집안에 달리기
잘하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 집안에 경사 났다!" 며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리고 큰애 종구가 상근 예비역 훈련을 마치고 군복을 입고 집에 들어오자 어머니께서는
"우메 우리 종구가 벌써 군인이 되얏어?" 하시며 큰아이의 손을 잡고 무척이나 대견해 하셨
었지요!
어머니께서는 저희들의 행복이 바로 당신의 행복이었고 저희들의 기쁨이 당신의 기쁨이었고
저희들의 즐거움이 당신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일에도 결코 단 한번도 저희들
에게 눈물을 보이신 적이 없는 강인한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병원의 중 환
자실에 입원을 하셨을 때도 "내가 집이 갈 때 아줌마들한테 밥 사주고 가께 잉!" 하시며 병
원의 간호사 님들께 여유를 부리실 줄 아는 어머니께서도 숨을 거두시기 하루 전 어머니의
눈가에 가느다란 눈물이 흐르는 것을 이 자식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깊은 잠에 빠지신 것처럼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평생을 자식들에게 못 먹이고 못 입히고 못 가르치신 것이 한이 되셨던 어머니! 그러나 단
한번도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던 어머니! 그리고 언제나 조그만 일에도 기쁨
을 감추시지 않으셨던 나의 어머니!
오늘도 퇴근을 하여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의 방문을 열겠지요! 그리고 "어머니 다녀왔습
니다!" 하면 어머니께서는 "우메! 인자사 오냐! 나는 아까 밥 묵었다 어서 가서 밥 묵어라
그라고 따땃한 방에서 푹 쉬어라! 고생했다!" 하시겠지요? 비록 이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어도 어머니의 따스한 미소가 언제나 저의 마음속에는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