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먼저 웃고 저의 어릴적 이야기 적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군이 제가 살았던 군입니다. 그리고 그 군중에서 가장 작은 면이 제가 살았던 면입니다. 그리고 그 면중에 가장 작은 마을이 제가 태어난 마을입니다. 지리산, 섬진강, 화엄사, 천은사, 피아골의 고장이죠. 지금 고향 안간지 오래 되었네요. 여름방학이면 아무집 수박이랑 참외랑 토마토 들고 섬진강에 오전에 나가서 저녁 해지면 들어왔는데.. 제가 여름철에 하는 일은... 소들을 강가에 풀어놓고... 집에 들어올때 한 20여마리 소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저의 일이었는데... 그중 제일 큰소만 묽어 두면 됩니다. 나무나 말뚝으로.. 그리고 저녁에 제일 나이 많은 소를 끌고 들어오면 모두 따라 왔습니다. 하여간 이 제일 큰소가 우리 아버님은 무서워 하는데.. 저는 만만했는지 자꾸 받으려고 해서... 조금 겁났습니다. 지금이야 소들을 섬진강 옆에 두지 못하게 합니다. 오염된다고.. 하여간 그렇게 열심히 소 키우면 아버님이... 고등학교 광주로 보내주고.. 대학교도 보내주기로 해서. 하여간 그렇게 열심히 키웠는데.. 소값이 폭락해서 망해버렸습니다. 아버님 농약마시고 죽고싶다.. 죽고싶다.. 하셨는데.. 사고로 돌아가시고.. 소들 모두 정리하고 고등학교를 광주로 갔습니다. 아버님 안계시니.. 정말 가난한 그런살림 이었구요. 소들 빚내서 키워서 망하니... 요즘 소키우는 사람들 쇠고기 수입문제 때문에 소값 떨어졌다라는 뉴스에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 그러네요. 누나는 공부를 잘해서.. 순천여고를 다녔는데.. 거기서도 최상위권인데.. 대학을 못 갔네요. 집안 형편이 그러니.. 누나는 어떻게든지 혼자 학비 책임지겠다고.. 대학 등록금만 해 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누나 앉고 울면서.. 지금 우리 집안 형편에.. 너를 도와 줄수 없다. 그때 누나 볼을 타고 흐르던 그 눈물... 지금도 가슴아프네요. 그때 어머니가 동생들 생각해서 너가 포기해라... 내가 고등학교만 다니지 않으면..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갈 수 있는 누나인데.. 저의 자취방비와 학비의 일부를.. 누나가 직장생활하면서.. 보태주었네요. 고마운 누나죠. 누나랑 동생은 제가 살던 군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이었구요. 반에서 어쩌다 1등하는 저를... 그나마 광주로 학교 보내준 것에 감사하며 살았네요... 고3시절에 반 1등, 2등하는 성적으로 대입이 아닌 입사시험을 보러 다녔네요. 한마디로 공돌이가 된거죠. 당당히 대기업 공채 시험 대졸 신입사원 모집에 고3인 제가 합격했죠. 그때 저의 동기들은 저보다 평균 10살 정도 많았습니다. 박사와 석사학위에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은 저보다 10살 많았죠. 지금 그 때 동기분들이 우리나라 현대 삼성 LG SK에 근무하고 있고 제일 잘 되신 분은 연구소 소장님까지 올라가셨네요. 하여가 회사 입사 합격을 했는데도 입사를 하려면 그때당시.. 신원보증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도 신원 보증을 안해주는 것입니다. 일단 신원 보증을 설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이 우리 면에서는 두사람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제가 직접 찾아 다녔네요. 그리고 제가 합격한 회사 이름 하나에.. 면장님이 그리고 친구 아버님이 보증을 서 주셨네요. 그리고 5년 신원 보증이 끝난날 제가 그 분들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했네요. 아버님이 살아 계셨거나... 소값이 폭락하지 않았으면.. 누나랑 동생이랑 명문대에 가서 잘 살았을텐데... 그래도 저는 우리 형제들 대단히 자랑스럽습니다. 누나 연봉 1억넘는 매형 만나서 잘 살고 있구요. 그리고 조카들도 공부 잘하구요. 그렇게 매형 자랑하던 누나가 저를 무시하데요. 그래서 직장생활하면서.. 공부해서 대학들어가고.. 기업체 도움으로 미국 유학도 가고.. 지금은 누나가 그 자랑하던 매형회사에 입사를 했고.. 제가 매형보다 더 먼저 팀장으로 승진해 버렸습니다. 하하하 매형보다 제가 14살이나 어린데.. 요즘 누나 배 아플까요? 아님 동생이 자랑 스러울까요? 동생도 잘살구요. 하여간 운이 없는듯해도 풀리는 사람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마녀 글에 어릴적 시골 생각이 나서 주저리 써보았습니다. 10년전 우리 어머님 핸드폰 사주었더니.. 나같은 늙은이가 이런게 왜 필요해 하더니.. 제가 요금 매달 내주고 있네요. 고생한 우리 어머니에게 제가 경기도에 대지 180평에 2층 양옥집을 사주었습니다. 우리 어머님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구요. 누나도 좋아하고... 저는 지금도 누나에게 늘 미안한 마음 가지고 살아요. 그래서 누나집에만 가면... 조카들에게 무슨 선물 해줄까 부터 생각하고 산답니다. 조카들이 누나 닮아서 공부 잘해요. 누나에게 제가 누나 대학시험 보라고.. 내가 보내줄테니깐.. 그렇게 말하면.. 40에 무슨 대학을 가냐고 하네요... 우리 누나 일찍 시집가서... 집에 피해 안주려고 나이 많은 남자랑 결혼한 것도 조금 미안하거든요. 누나 나이 40에 조카가 고2입니다. 우리누나에게 저는 뭐든지 미안해요. 비록 저역시 고생했지만... 내일 복날이네요. 부모님 삼계탕이라도 사줍시다. 그리고 힘내세요. 30대 여러분... 자주 못와서 죄송합니다.
저의 집은 지리산 산골동네였습니다.
하하하
먼저 웃고 저의 어릴적 이야기 적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군이
제가 살았던 군입니다.
그리고 그 군중에서 가장 작은 면이
제가 살았던 면입니다.
그리고 그 면중에 가장 작은 마을이
제가 태어난 마을입니다.
지리산, 섬진강, 화엄사, 천은사, 피아골의
고장이죠.
지금 고향 안간지 오래 되었네요.
여름방학이면 아무집 수박이랑 참외랑 토마토 들고
섬진강에 오전에 나가서 저녁 해지면 들어왔는데..
제가 여름철에 하는 일은...
소들을 강가에 풀어놓고...
집에 들어올때 한 20여마리 소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저의 일이었는데...
그중 제일 큰소만 묽어 두면 됩니다.
나무나 말뚝으로..
그리고 저녁에 제일 나이 많은 소를 끌고 들어오면
모두 따라 왔습니다.
하여간 이 제일 큰소가 우리 아버님은 무서워 하는데..
저는 만만했는지 자꾸 받으려고 해서...
조금 겁났습니다.
지금이야 소들을 섬진강 옆에 두지 못하게 합니다.
오염된다고..
하여간 그렇게 열심히 소 키우면 아버님이...
고등학교 광주로 보내주고..
대학교도 보내주기로 해서.
하여간 그렇게 열심히 키웠는데..
소값이 폭락해서 망해버렸습니다.
아버님 농약마시고 죽고싶다.. 죽고싶다..
하셨는데..
사고로 돌아가시고..
소들 모두 정리하고
고등학교를 광주로 갔습니다.
아버님 안계시니..
정말 가난한 그런살림 이었구요.
소들 빚내서 키워서
망하니...
요즘 소키우는 사람들 쇠고기 수입문제
때문에 소값 떨어졌다라는 뉴스에
지금도 가슴이 벌렁벌렁 그러네요.
누나는 공부를 잘해서..
순천여고를 다녔는데..
거기서도 최상위권인데..
대학을 못 갔네요.
집안 형편이 그러니..
누나는 어떻게든지 혼자 학비 책임지겠다고..
대학 등록금만 해 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누나 앉고 울면서..
지금 우리 집안 형편에..
너를 도와 줄수 없다.
그때 누나 볼을 타고 흐르던 그 눈물...
지금도 가슴아프네요.
그때 어머니가 동생들 생각해서
너가 포기해라...
내가 고등학교만 다니지 않으면..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갈 수 있는 누나인데..
저의 자취방비와 학비의 일부를..
누나가 직장생활하면서..
보태주었네요.
고마운 누나죠.
누나랑 동생은 제가 살던 군에서 전교 1등을 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이었구요.
반에서 어쩌다 1등하는 저를...
그나마 광주로 학교 보내준 것에 감사하며 살았네요...
고3시절에 반 1등, 2등하는 성적으로
대입이 아닌 입사시험을 보러 다녔네요.
한마디로 공돌이가 된거죠.
당당히 대기업 공채 시험 대졸 신입사원 모집에
고3인 제가 합격했죠.
그때 저의 동기들은 저보다 평균 10살 정도 많았습니다.
박사와 석사학위에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은 저보다 10살 많았죠.
지금 그 때 동기분들이 우리나라 현대 삼성 LG SK에 근무하고 있고
제일 잘 되신 분은 연구소 소장님까지 올라가셨네요.
하여가 회사 입사 합격을 했는데도
입사를 하려면 그때당시..
신원보증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도 신원 보증을 안해주는 것입니다.
일단 신원 보증을 설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이
우리 면에서는 두사람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제가 직접 찾아 다녔네요.
그리고 제가 합격한 회사 이름 하나에..
면장님이 그리고 친구 아버님이 보증을 서 주셨네요.
그리고 5년 신원 보증이 끝난날 제가 그 분들을
찾아가서 고맙다고 했네요.
아버님이 살아 계셨거나...
소값이 폭락하지 않았으면..
누나랑 동생이랑 명문대에 가서
잘 살았을텐데...
그래도 저는 우리 형제들 대단히 자랑스럽습니다.
누나 연봉 1억넘는 매형 만나서
잘 살고 있구요.
그리고 조카들도 공부 잘하구요.
그렇게 매형 자랑하던 누나가
저를 무시하데요.
그래서 직장생활하면서..
공부해서 대학들어가고..
기업체 도움으로 미국 유학도 가고..
지금은 누나가 그 자랑하던
매형회사에 입사를 했고..
제가 매형보다 더 먼저 팀장으로 승진해 버렸습니다.
하하하
매형보다 제가 14살이나 어린데..
요즘 누나 배 아플까요?
아님 동생이 자랑 스러울까요?
동생도 잘살구요.
하여간 운이 없는듯해도
풀리는 사람은 풀리는 것 같습니다.
마녀 글에 어릴적 시골 생각이 나서
주저리 써보았습니다.
10년전 우리 어머님 핸드폰 사주었더니..
나같은 늙은이가 이런게 왜 필요해 하더니..
제가 요금 매달 내주고 있네요.
고생한 우리 어머니에게
제가 경기도에 대지 180평에 2층 양옥집을
사주었습니다.
우리 어머님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구요.
누나도 좋아하고...
저는 지금도 누나에게 늘 미안한 마음 가지고 살아요.
그래서 누나집에만 가면...
조카들에게 무슨 선물 해줄까 부터 생각하고 산답니다.
조카들이 누나 닮아서 공부 잘해요.
누나에게 제가 누나 대학시험 보라고..
내가 보내줄테니깐..
그렇게 말하면..
40에 무슨 대학을 가냐고 하네요...
우리 누나 일찍 시집가서...
집에 피해 안주려고 나이 많은 남자랑 결혼한 것도
조금 미안하거든요.
누나 나이 40에 조카가 고2입니다.
우리누나에게 저는 뭐든지 미안해요.
비록 저역시 고생했지만...
내일 복날이네요.
부모님 삼계탕이라도 사줍시다.
그리고 힘내세요. 30대 여러분...
자주 못와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