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게 어렵다구요? 제이야기 한번 해볼께요..

힘들다...2008.07.18
조회1,259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21살 남자로 이름은 익명으로 할께요...


우선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와 새어머니와 살게 되엇고..

3남매엿던 형제는 친형은 친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키우게 되었습니다. 법원에서 양육권문제로 모는 자식을 1명만 선택해야 된다더군요.

처음 몇달동안 "어머니" 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질 않더군요.

어떻게 친어머니를 두고 내가 새어머니를 보고 어머니라고 부를수 있겠습니까?

그건 어떤 자식이든간에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환경이 그렇게 만들더군요.

아무리 내가 보고싶고 그리워도 법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저는 친어머니와

살수가 없다는걸 깨닫고 그냥 운명을 받아 들이려고 햇습니다.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5학년시절 너무 활발햇고 잘 웃엇기에 남들은 그걸 몰랏습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까지도 졸업할때 아셧습니다. 그리고 중학교1학년

지옥과 같은 사춘기가 다가오고나서부터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렷죠.


우선 부모님에 대한 불신 환경에 대한 불만

첫째로 내가 왜 새어머니 밑에서 크면서 눈치를 봐야하며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크는거지?

다들 애들처럼 부모님에게 애교도 떨고 사랑받고 혼나기도 하면서 크고 싶엇습니다.

그런 생각이 제 마음에 깊게 자리잡으면서 새어머니와 아버지에대해 증오와 불신감만

커져갔어요.. 심지어 하루에

"밥먹었니?"

라는 대화가 없엇으면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앗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학교1학년이 되던해에 아버지와 새어머니는 아이를 가지셧습니다.


전 싫엇습니다. 또 다른 유대가 생기는게

그리고 그 아이가 불행할지 행복할지 모르겟지만 지금 상태로 봐서는

행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고 그런게 싫엇습니다.

그리고 성격도 점차 폐쇄적으로 변해가고 말도 없어졌습니다.

중학교1학년은 정말 활발하고 명랑하게 생활했습니다. 물론 속마음은 그렇지 못햇지만

담임선생님께서

생활기록부에 항상 활발하다 명랑하다 사교성이 좋다 라고 적어 주시곤 했죠.

그리고 2학년이 되던해에부터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된거죠..

친구들과 말도 하지 않앗고 마음을 닫고 살았습니다.

웃음이란 없어졌습니다... 얼굴에 표정도 없엇고 마음도 없이 살앗죠..

시간되면 학교가고 시간되면 밥먹고 시간되면 집에와서 자고..


그때부터 우을증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중학교2학년이 되던해에 아버지의 도박과 사업부재로

집안은 순식간에 폐허가 되더군요.

여기저기 빚쟁이들 그리고 새엄마의 매일되는 입에 담지 못할 욕들과

과거를 들추고 서로의 상처를 끄집어내어 싸웠습니다.


저는 한참 예민하고 사춘기시절 그런 부모의 불화가 제 마음속에 자리잡앗죠.

절때 저런식으로는 살지 않겟다. 부모로 인정하지 않겟다 .

동생들이 있어도 앞에서 싸우셧습니다.

그런게 너무싫었고 동생들에게 너무 미안햇습니다.

그리고 가정형편이 급속도록 악화되자 다니던 학원들 그리고 동생들학원은 모두 끊엇고

그런면에서 또 한차례 수축되고 끝없는 우울증과 싸우게 되었죠.

내가 왜이렇게 살아야 하나 ?

왜 내가 삐뚫어지고 사랑받지 못하고 커야 하지 ?

그런 생각이 들면서 친구들과도 멀리하고 사람자체를 기피 하게되었습니다.

감정회피 라고 생각햇지만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보거나

나를 알거나 나에대해 관심을 보이는것 자체가 싫엇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멍하니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앉아 멍하니 있는 시간이 거의 하루종일 이엿습니다.

새어머니는 어머니방에 저는 제방에 그리고 그때부터 공부에도 손을 놓앗고

먹는것 과도 거리를 두엇습니다. 아무것도 하기싫엇어요.. 그리고 자살충동까지 오게된거죠.

공부는 열심히 했습니다. 단지 할게없엇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싫엇습니다.

마음없이 차갑게 살앗다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이 되던해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까지의 거리가 2시간.. 버스를 이용햇는데 7시에 첫버스엿고 학교가면 9시가 넘엇습니죠.. 그래서 매일 밀대걸레 대로 맞앗습니다. 이유도 반항도 하지않앗습니다.

그냥 때리면 맞고 욕하면 들었습니다.

담임선생님 뒷통수를 보며 속으로 말햇죠..

당신이 내 환경과 처지를 얼마나 알고 그러는지 모르겟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고통의 수준이 아니라고 어린애처럼 어리광 부리는게 아니라고 그렇게 매일

되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을 맞아가며 다녔고 학교 운영비나 급식비또한 제대로 내지못해

방과후 조회시간에 매일 교무실에가서 손을 들고 서있는 신세가 되었죠.

뺨도 수도 없이 맞앗고 그때부터 친구들도 자연히 멀리 하더군요.

차라리 편햇습니다. 누가 다가와도 숨길필요 없엇고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맞아가며 1년을 다니고 학교를 졸업햇습니다.

1,2학년때 공부한게 있어서  학교는 인문계를 입학햇습니다.

하지만 그런건 문제가 아니엿죠.

통학문제 그리고 운영비문제 그리고 우을증과 자살충동 이런것들이 제머리속에

계속 맴돌앗습니다.  그리고 입학한지 몇달안되어 내가 계속학교를 다녀야 하는건가..

여러방면으로 생각해보앗습니다.


통학문제..매일되는 지각 가정형편으로 학교에서 내라는 교육비등등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도 다녀야 겠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결심하고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대화를 시도햇죠.

이러 이러한 사유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물론 우울증과 자살충동 이야기는 하지않앗죠.

그랫더니 다음날 그렇게 하라고 하셧습니다.

이건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생각일수도 그러한 마음가짐이 있어서 그랫던걸수도

있지만 아버지는 내심 그렇게 하라고 바라고 게셧던거 같습니다.

차비만해도 하루에 만원이상이 들엇고 4개월에 40만원씩되는 운영비와 급식비

도저히 우리 가정형편에 낼수 없는 돈이엿습니다.

그리고 나서 6개월 정도를 집에서 지냇는데 집은 더 없이 가난해졌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은 그냥 일상 생활이 되엇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어린 동생들의 받앗을 충격과 동생들의 앞으로 삶이 제발 나처럼 부정적이지 말앗으면

그 생각 뿐이엿습니다.

그리고 18살이 되던해부터 온갖일과 아르바이트를 하게되엇습니다.

요식업부터 배달 그리고 공장일 직원으로 들어갈 나이가 안되었기때문에

똑같은 일을해도 인금은 2배까지 차이가 나더군요. 그래도 머라고 불평할만큼

여유가 있지 않앗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주엇죠.

12시간 넘게 일을 하고 집에들어오면 아버지란사람은 집에 들어오지도 않앗고

한달에 집에 가져다 주는 수입은 단돈 만원도 없엇습니다.

물론 내가 커서 넓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앗습니다.

아버지 나름대로 사업에 실패하고 아버지도 힘든부분이 있었겟구나 하지만

그러한 방황도 가족이 있고 책임감있는 가장에 위치에선 짧게 끝내야 된다고 생각햇습니다.

너무 싫엇고 세상을 등지게 되었습니다. 모든것이 불행하게 생각되었고

웃음조차.. 왜웃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마주치는 고등학생들의 무리지어 교복입고 가는 것을 보면

부러웠습니다... 그땐 아직 어렷으니까

속으로 생각햇죠..

재내들 에게는 과연 문제가 없을까? 부모님은 둘다 친부모고 역활을 제대로 하기때문에

저렇게 웃고 즐길수 있겟지? 그렇게 생각해야 편햇습니다.

만약에 저들에게도 나같은 환경이 있다는건 생각 할수없었습니다.

그럼 제가 너무 초라해지기 때문이죠..

그리고 엄마가 아이의 손을잡고 챙겨주는것을 볼때.. 옷을 골라줄때..

교복을 맞추어 줄때 .. 맛있는걸 사줄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저자리에 설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엇습니다... 철이 없엇던 것일수도 있엇죠..



그냥 부러웠으니깐요.

저는 계속 일을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감정없이 살았죠..밤마다 배개를 적시며

눈물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20살이 되던해까지 아버지는 집에 가장에 임무를 제대로 하지않았어요..

밀려있는 전화세 전기세 월세 학교급식비 등등 제동생에게 가장 미안한 부분이엿습니다.

너무 싫엇습니다. 차라리 나가서 죽었으면 했던 생각까지 들었죠..

남들이 보면 그러겟죠.. 니가 어떻게 너를 나아준 부모에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

하지만 그건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입니다.

만일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면

나는 자책하고 반성할겁니다.

그리고 새어머니가 도저히 살지 못하겟다며 이혼을 신청하고 집을 나가버리셧죠.

아이들을 두고 말이죠 . 그때부터 새어머니는 서류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이상 우리의 새어머니가 아니셧죠..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나도 아니고 제바로 밑동생도 아닌 막내엿습니다.

이제 7살 그 어린게 벌써부터 그렇게 커가야 한다는게 너무 싫엇고 또 나같이 클

환경이 될가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챙겨주고

더 먹여주고 사달라고 하는건 더 사주고 싶고 엄마의 자리에 빈공간이 생기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부분은 있습니다.

엄마의 자리를 아무리 노력해도 채울수 없는 부분들 그럴때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지금 21살인데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못햇고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고

가족이라곤 오로지 동생들 2명뿐입니다.

아버지도 신용불량자에 집에 차압이 들어오는 상황에 어머니와 선이혼을 해둔상태이기 때문에 서류상

제밑으로 동생들 2명이 올라가 있는 상태입니다.

군대도 가야하고 학교도 졸업해야 하고 요즘 너무 생각이 많아서 머리가 아픕니다..

다른 또래애들처럼 웃고 활발 하게 지낼수 있는 방법도 찾아보았고 노력도 해봤지만..

여전히 그건 힘든 일이에요..

학교문제는 검정고시를 봐서 할수있겟지만.. 지금 가장큰 문제는 군대문제 입니다.

내가 만약에 군대를 가면 동생들은 어떻게 커나가야 할까요..

친척들은 연락안된지 10여년채 되었죠.

그렇게 많던 친척들 아버지의 사업이 잘될때는 그렇게도 자주 오더니

아버지가 8남매입니다. 큰아버지만해도 6분 삼촌이 1분 고모가 1분

아무도 도움의 손길이 없었죠.  세상에 나혼자 있는것 같고 동생들만 아니였다면

전 벌써 죽었을 겁니다.  세상 사는게 무의미하고 의지도 없고 더 열심히 살아보겟다

라는 생각도 없습니다. 일하고 돌아오면 밀려있는 빨래와 집안일..

그리고 한참먹을 나이에 제가 해줄수 없기때문에 맨날 똑같은 반차들

그러한게 너무 미안합니다. 얼마 전에 아버지를 만났고 몇일 집에 오셧는데

삐쩍말르고 피부도 푸석푸석 해지셧더군요. 순간 저는 모든걸 부정햇죠.

처음으로 아버지를 보고

"불쌍하다" 라고 느꼇습니다. 그렇게 싫고 증오하고 차라리 죽었으면 낫겟다 라는

사람을 보고 내가 불쌍하다라고 느낀이유를 모르겟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웠죠 .

평생 안보고 살아도 되겠다 라고 다짐햇는데 보자마자 그런생각이 들고

혼자 라면도 못끓이는 아버지를 보니 왜 가슴이 뭉클한건지 이해 할수가 없었어요.

순간 밖으로 뛰처나가서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그래도 유대라서 ..

부라는 사람이라서 영원히 끊을수 없다. 라고 단정지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증오햇던 사람이 없어지자나요..

나를 이렇게 만든사람을 용서할수가 없었어요...

요즘은 정말 하루하루가 힘들어요...

일이 힘든부분은 얼마든지 참을수있고 몸이 힘든건 참을수 있지만

사람들과의 대화를 할수가 없고.. 마음이 닫혀있기때문에 누가 다와가돠 퉁명스럽게

그리고 차갑게 대한다고 그렇게 살고있다고 나도 알고잇어요. 하지만 그게 고처지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돈을 벌고있는데 내가 왜 이나이에 돈을 벌어야 하나..

또래 아이들은 제 생활을 상상할수 없을거에요.

누구에게 어린양을 피워본적도 용돈을 달라고 한적도 그리고

사랑을 받은적도 없이 컸던 나에게 유일하게 힘이 되주는 동생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쪽 충청북도 지역에 사회적으로 후원이 되는  병원이 있는지 알고싶어요...

더이상 이렇게 살기엔 동생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저는 힘든 생활을 했지만 동생들에게

 

까지 끔찍한 고통을 주긴 싫습니다.  동생들이 어리광 피우는걸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