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탄생은 동두천 깡패가 한눈에 반하여 스물네살 아무것도 모르던 여자를 감금하여 강간하는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어릴적 제 기억의 어머니는 악바리같이 열심히며 언제나 제게 웃어주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분 덕에 아버지의 의 환경은 점차 나아졌고 몇억이란 돈을 벌어드려 겉으로 보기엔 꽤나 부잣집딸로써 그분들의 기대치에 맞게 어딜가던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눈을 떠보니 전 8살이었습니다.
모든 악의 근원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160cm 도 안되는 작은 체구의 어머니가 1m는 되어보이는 굵고 긴 식탁다리에 이곳저곳을 맞아 온 방에 뿌려진 피를 보며 저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 날 어머니가 머리에 금이 가실정도로 맞기 전에 저와 어머니는 방학숙제때문에 잠깐 집을 비웠고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시던 아버지는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의처증이라는 병을 앓고 계셨고 강한 집착은 더이상 사랑이 아닌 폭력과 외도로 빗나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제 옆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밥을 할줄도 그렇다고 라면을 끓일줄도 몰랐던 저는 밥을 동냥하러 다녀야만 했고 어찌해서 얻은 밥을 동생과 나눠먹기보단 동생을 먹여야만 했습니다. 남동생은 이 집에 하나있는 남자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를 이어야 한다며 유독 아끼시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서요.
어느날밤 저에게 찾아온건 그 누구도 아닌 어머니였고 동생을 두고 저는 혼자 서울로 가야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안나온다는것을 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몇개월동안 그렇게 힘들던 저는 낯선 한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렸고 곰팡이가 핀 좁고 습한 지하방에서 살아야한다는걸 알았습니다. 상관은 없었어요. 괜찮았습니다 모든게 평생 죄송스러울 엄마만 옆에 계시다면 말이죠.
그렇게 몇년이 흐른 후에 새벽에 급히 온 연락에 엄마는 절 급히 깨우셨고 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눈물은 커녕 동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던 제가 지금은 너무 한이됩니다.
동생을 데려오고 몇주가 흐른 뒤 부터 새아버지가 이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마다 제 방에 들어와 가슴이며 허벅지며 여기저기를 훝던 새아버지가 하는 행동이 무서웠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 강도는 점점 세졌습니다. 참았습니다. 이걸 알면 슬퍼할 제 가족들이, 항상 저로써 시작되어 모든걸 끝을 맺게 되는 저희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부터 났습니다. 더러운 몸을 몇십번씩 씻어도 문틈에서 다 지켜보는걸 알고있는 저라서 조용히 세탁기 뒤로가 씻으며 입을 막아도 새나오는 울음에 견딜 수가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그 분은 좋은 아버지로 계셨기 때문에 저는 참았습니다. 그렇게 8년중 6년을 버텼습니다.
그러던 중학교 3학년 학기초, 술이 만취되신채로 귀가하신 그 아저씨는 방에 들어와 문을 잠궜고 저는 이젠 안되겠다 싶어서 반항을 했지만 목수일을 하는 남자힘엔 도저히 당해낼수가 없었고 결국 전 그날 잊고싶은 기억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입만 다물면 엄마에게도 말 안하고 넘어가겠다 너가 원해서 하는거라며 울고있는 제가 옷을 벗지 않자 옷을 찢어버렸고 그렇게 모든게 끝나고 엄마가 왔을땐 그 아저씨는 같이 방에 들어가 듣고싶지 않은 엄마의 신음소리와 침대가 움직이는 소리에 저는 소리없이 꺽꺽대며 울기만 해야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씻고싶은 기억은 계속됬고 말하기 싫은 증거까지 남아버려(다 벗은 제 몸 사진을 찍어 핸드폰에 저장했거든요)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던 저는 가출을 시도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이혼을 해 따로 살고 있지만 밤마다 예민해지는 신경에 잠을 이룰 수 없을때가 더 많아 불면증과 몸이 더럽다는 생각에 자주하던 구토가 정신병인진도 모른채 2년을 살아오다 작년에야 알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초등학교1학년이었던 저는 지금 열일곱 입니다.
어머니의 재혼 후 6년간 저는 더러웠습니다.
제 탄생은 동두천 깡패가 한눈에 반하여 스물네살 아무것도 모르던 여자를 감금하여 강간하는것으로 부터 시작됩니다.
어릴적 제 기억의 어머니는 악바리같이 열심히며 언제나 제게 웃어주시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그런분 덕에 아버지의 의 환경은 점차 나아졌고 몇억이란 돈을 벌어드려 겉으로 보기엔 꽤나 부잣집딸로써 그분들의 기대치에 맞게 어딜가던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고 눈을 떠보니 전 8살이었습니다.
모든 악의 근원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160cm 도 안되는 작은 체구의 어머니가 1m는 되어보이는 굵고 긴 식탁다리에 이곳저곳을 맞아 온 방에 뿌려진 피를 보며 저는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그 날 어머니가 머리에 금이 가실정도로 맞기 전에 저와 어머니는 방학숙제때문에 잠깐 집을 비웠고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시던 아버지는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의처증이라는 병을 앓고 계셨고 강한 집착은 더이상 사랑이 아닌 폭력과 외도로 빗나가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제 옆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밥을 할줄도 그렇다고 라면을 끓일줄도 몰랐던 저는 밥을 동냥하러 다녀야만 했고 어찌해서 얻은 밥을 동생과 나눠먹기보단 동생을 먹여야만 했습니다. 남동생은 이 집에 하나있는 남자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를 이어야 한다며 유독 아끼시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서요.
어느날밤 저에게 찾아온건 그 누구도 아닌 어머니였고 동생을 두고 저는 혼자 서울로 가야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안나온다는것을 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몇개월동안 그렇게 힘들던 저는 낯선 한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렸고 곰팡이가 핀 좁고 습한 지하방에서 살아야한다는걸 알았습니다. 상관은 없었어요. 괜찮았습니다 모든게 평생 죄송스러울 엄마만 옆에 계시다면 말이죠.
그렇게 몇년이 흐른 후에 새벽에 급히 온 연락에 엄마는 절 급히 깨우셨고 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눈물은 커녕 동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던 제가 지금은 너무 한이됩니다.
동생을 데려오고 몇주가 흐른 뒤 부터 새아버지가 이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마다 제 방에 들어와 가슴이며 허벅지며 여기저기를 훝던 새아버지가 하는 행동이 무서웠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고 그 강도는 점점 세졌습니다. 참았습니다. 이걸 알면 슬퍼할 제 가족들이, 항상 저로써 시작되어 모든걸 끝을 맺게 되는 저희 어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부터 났습니다. 더러운 몸을 몇십번씩 씻어도 문틈에서 다 지켜보는걸 알고있는 저라서 조용히 세탁기 뒤로가 씻으며 입을 막아도 새나오는 울음에 견딜 수가 없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그 분은 좋은 아버지로 계셨기 때문에 저는 참았습니다. 그렇게 8년중 6년을 버텼습니다.
그러던 중학교 3학년 학기초, 술이 만취되신채로 귀가하신 그 아저씨는 방에 들어와 문을 잠궜고 저는 이젠 안되겠다 싶어서 반항을 했지만 목수일을 하는 남자힘엔 도저히 당해낼수가 없었고 결국 전 그날 잊고싶은 기억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입만 다물면 엄마에게도 말 안하고 넘어가겠다 너가 원해서 하는거라며 울고있는 제가 옷을 벗지 않자 옷을 찢어버렸고 그렇게 모든게 끝나고 엄마가 왔을땐 그 아저씨는 같이 방에 들어가 듣고싶지 않은 엄마의 신음소리와 침대가 움직이는 소리에 저는 소리없이 꺽꺽대며 울기만 해야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씻고싶은 기억은 계속됬고 말하기 싫은 증거까지 남아버려(다 벗은 제 몸 사진을 찍어 핸드폰에 저장했거든요)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던 저는 가출을 시도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이혼을 해 따로 살고 있지만 밤마다 예민해지는 신경에 잠을 이룰 수 없을때가 더 많아 불면증과 몸이 더럽다는 생각에 자주하던 구토가 정신병인진도 모른채 2년을 살아오다 작년에야 알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초등학교1학년이었던 저는 지금 열일곱 입니다.
그저 넋두리에요....저 말곤 이제 더이상 이런 피해를 받는분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