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가 드디어 ‘아시아야구의 왕’에 등극했다.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은 11월 19일 광저우 아오티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대만을 9대 3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만과 일본 사회인 야구팀에 차례로 지며 동메달에 그쳤던 치욕을 단번에 갚은 셈이었다. 한국이 ‘아시아의 왕’에 오르게까지 숨은 주역들을 살펴봤다.
사심 없이 대표팀 선수를 선발한 KBO 경기위원들
KBO 경기위원회는 사심 없이 대표팀 선수를 선발했다. 덕분에 대표팀 선수단은 그 어느 때보다 잡음없이 자부심을 느끼며 뛸 수 있었다(사진=삼성)
감독은 ‘헤드 코치(Head coach)’다. 스포츠 종목 대부분에서 그렇게 불린다. 축구, 농구, 배구 등 구기종목에선 예외가 없다. 있다면 야구다. 야구에선 감독을 ‘매니저(Manager)’라고 부른다.
야구 감독이 경기 지휘뿐 아니라 선수단 운영까지 총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중 감독의 비중은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크지 않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경기 중 벤치의 작전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보다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역대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는 ‘헤드 코치’에 가까웠다. 선수 선발부터 상대팀 전력분석, 경기 중 선수들의 세세한 플레이까지 벤치의 지도, 감독 아래 이뤄졌다. 순작용도 많았지만, 역작용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선 어땠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는 대표팀 감독의 비중이 어느 국제대회보다 작았던 대회였다. 이유가 있었다. ‘도하 참패’를 경험한 야구계는 이후 대표팀 선수선발권한을 감독에게 일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도하 아시아경기대회는 대표팀 감독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줬다. 대표팀 선발이 좋은 예였다. 당시 김재박 대표팀 감독은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뽑아야 한다”는 야구계의 일관된 조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추신수를 선발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추신수 미발탁의 이유로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선수”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 선수 가운데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선수가 태극마크를 단 게 처음이었다. 게다가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100경기 이상을 소화한 베테랑이었다.
김 감독의 논리에 설득력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김 감독은 추신수를 제외했고, 결과는 타이완과 일본 사회인야구 대표팀에 차례로 패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자마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산하에 기술위원회(위원장 김인식)를 신설해 이곳에서 대표팀 자원을 꾸준히 관리하고, 선발하도록 했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선수 대부분은 기술위의 회의를 통해 뽑혔다.
물론 최종결정권자는 이번에도 조 감독이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이라도 기술위가 뽑은 선수 가운데 불만족스러운 선수가 있거나 꼭 뽑고 싶은 선수가 있으면 합리적인 이유를 대도록 했다. 조 감독은 기술위의 선발 원칙을 존중하는 뜻에서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표팀 최종선발명단이 발표됐을 때 ‘누구누구는 기량이 떨어진대도 감독의 소속팀 선수라 뽑혔다’라는 소리가 일절 없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정하고 철저한 검증 절차로 선수들을 뽑은 까닭인지 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드림팀’이란 찬사를 받았다. 선수들도 다른 어느 대회보다 자부심을 느끼고 경기에 임했다.
‘도하 참사’ 이후 기술위를 신설한 KBO의 혜안과 사심 없이 공정한 선수선발에 애쓴 김인식 위원장 이하 기술위원들이야말로 광저우 금메달의 숨은 공로자라 할 수 있다.
철저한 전력분석이 통했던 광저우 AG
조범현 대표팀 감독(사진 왼쪽)은 KBO 전력분석들의 치밀한 전력분석집을 토대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한국의 전력분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상대국 전력분석도 감독의 ‘감(感)’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도하 때는 김재박 감독이 직접 타이완으로 날아가 주요 선수들을 점검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분석 자료집은 보이지 않았다. 아예 일본 사회인야구 대표팀은 관찰 조자 하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은 “우리가 프로팀도 아니고 사회인야구 대표팀에게 질 리가 있느냐”며 모든 초점을 타이완에만 맞췄고, 당일 경기의 흐름에 따라 작전을 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돌아온 결과는 줄 이은 패배였다. ‘도하 참사’의 원인을 심층 분석한 까닭일까.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를 준비하는 한국의 자세는 과거와는 달랐다. 대표팀 감독에게 상대팀 전력분석을 맡기지 않았다.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이 총괄했다.
김 위원장은 일찌감치 전력분석팀을 조직해 일본, 타이완으로 류지훤, 최동원 두 전력분석원을 파견했다. 여기다 베이징 올림픽과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표팀 전력분석을 맡았던 베테랑 유남호 씨를 가세시켜 전력분석의 질을 높였다.
한국 전력분석팀은 상대팀 주요선수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작은 버릇까지 파악해 100페이지가 넘는 전력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코칭스태프는 대회를 준비했고, 실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은메달을 딴 타이완 코칭스태프는 “한국이 이미 우리 전력을 100% 파악하고 나왔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경기장 안과 밖에서 한국에 졌다”고 털어놨다.
중국 대표팀의 관계자도 한국 전력분석팀을 보고서 “야구가 단순히 그라운드 안에서만 열심히 한다고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란 걸 절감했다”며 “앞으로 중국야구도 전력분석에 신경을 쓸 예정”이라고 말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저우 아오티구장에 태극기가 오르기까지 많은 야구인이 노력을 거듭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뿐만아니라 그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모든 야구인에게 찬사를 보낸다.
광저우 야구 금메다라 숨은 주역!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금메달이 확정된 뒤 마운드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사진=삼성)
한국야구가 드디어 ‘아시아야구의 왕’에 등극했다.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은 11월 19일 광저우 아오티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대만을 9대 3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대만과 일본 사회인 야구팀에 차례로 지며 동메달에 그쳤던 치욕을 단번에 갚은 셈이었다. 한국이 ‘아시아의 왕’에 오르게까지 숨은 주역들을 살펴봤다.
사심 없이 대표팀 선수를 선발한 KBO 경기위원들
KBO 경기위원회는 사심 없이 대표팀 선수를 선발했다. 덕분에 대표팀 선수단은 그 어느 때보다 잡음없이 자부심을 느끼며 뛸 수 있었다(사진=삼성)
감독은 ‘헤드 코치(Head coach)’다. 스포츠 종목 대부분에서 그렇게 불린다. 축구, 농구, 배구 등 구기종목에선 예외가 없다. 있다면 야구다. 야구에선 감독을 ‘매니저(Manager)’라고 부른다.
야구 감독이 경기 지휘뿐 아니라 선수단 운영까지 총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 중 감독의 비중은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크지 않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경기 중 벤치의 작전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보다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역대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는 ‘헤드 코치’에 가까웠다. 선수 선발부터 상대팀 전력분석, 경기 중 선수들의 세세한 플레이까지 벤치의 지도, 감독 아래 이뤄졌다. 순작용도 많았지만, 역작용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선 어땠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는 대표팀 감독의 비중이 어느 국제대회보다 작았던 대회였다. 이유가 있었다. ‘도하 참패’를 경험한 야구계는 이후 대표팀 선수선발권한을 감독에게 일임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도하 아시아경기대회는 대표팀 감독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줬다. 대표팀 선발이 좋은 예였다. 당시 김재박 대표팀 감독은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뽑아야 한다”는 야구계의 일관된 조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추신수를 선발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추신수 미발탁의 이유로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선수”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당시 대표팀 선수 가운데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거의 모든 선수가 태극마크를 단 게 처음이었다. 게다가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2002년부터 2006년까지 100경기 이상을 소화한 베테랑이었다.
김 감독의 논리에 설득력이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김 감독은 추신수를 제외했고, 결과는 타이완과 일본 사회인야구 대표팀에 차례로 패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도하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자마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산하에 기술위원회(위원장 김인식)를 신설해 이곳에서 대표팀 자원을 꾸준히 관리하고, 선발하도록 했다.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선수 대부분은 기술위의 회의를 통해 뽑혔다.
물론 최종결정권자는 이번에도 조 감독이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이라도 기술위가 뽑은 선수 가운데 불만족스러운 선수가 있거나 꼭 뽑고 싶은 선수가 있으면 합리적인 이유를 대도록 했다. 조 감독은 기술위의 선발 원칙을 존중하는 뜻에서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표팀 최종선발명단이 발표됐을 때 ‘누구누구는 기량이 떨어진대도 감독의 소속팀 선수라 뽑혔다’라는 소리가 일절 없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공정하고 철저한 검증 절차로 선수들을 뽑은 까닭인지 아시아경기대회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드림팀’이란 찬사를 받았다. 선수들도 다른 어느 대회보다 자부심을 느끼고 경기에 임했다.
‘도하 참사’ 이후 기술위를 신설한 KBO의 혜안과 사심 없이 공정한 선수선발에 애쓴 김인식 위원장 이하 기술위원들이야말로 광저우 금메달의 숨은 공로자라 할 수 있다.
철저한 전력분석이 통했던 광저우 AG
조범현 대표팀 감독(사진 왼쪽)은 KBO 전력분석들의 치밀한 전력분석집을 토대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한국의 전력분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상대국 전력분석도 감독의 ‘감(感)’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도하 때는 김재박 감독이 직접 타이완으로 날아가 주요 선수들을 점검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전력분석 자료집은 보이지 않았다. 아예 일본 사회인야구 대표팀은 관찰 조자 하지 않았다. 당시 대표팀은 “우리가 프로팀도 아니고 사회인야구 대표팀에게 질 리가 있느냐”며 모든 초점을 타이완에만 맞췄고, 당일 경기의 흐름에 따라 작전을 냈다.
그러나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돌아온 결과는 줄 이은 패배였다. ‘도하 참사’의 원인을 심층 분석한 까닭일까.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를 준비하는 한국의 자세는 과거와는 달랐다. 대표팀 감독에게 상대팀 전력분석을 맡기지 않았다.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이 총괄했다.
김 위원장은 일찌감치 전력분석팀을 조직해 일본, 타이완으로 류지훤, 최동원 두 전력분석원을 파견했다. 여기다 베이징 올림픽과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대표팀 전력분석을 맡았던 베테랑 유남호 씨를 가세시켜 전력분석의 질을 높였다.
한국 전력분석팀은 상대팀 주요선수들의 기록뿐만 아니라 작은 버릇까지 파악해 100페이지가 넘는 전력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코칭스태프는 대회를 준비했고, 실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은메달을 딴 타이완 코칭스태프는 “한국이 이미 우리 전력을 100% 파악하고 나왔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경기장 안과 밖에서 한국에 졌다”고 털어놨다.
중국 대표팀의 관계자도 한국 전력분석팀을 보고서 “야구가 단순히 그라운드 안에서만 열심히 한다고 이기는 스포츠가 아니란 걸 절감했다”며 “앞으로 중국야구도 전력분석에 신경을 쓸 예정”이라고 말한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광저우 아오티구장에 태극기가 오르기까지 많은 야구인이 노력을 거듭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뿐만아니라 그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모든 야구인에게 찬사를 보낸다.
출처 : http://www.samsungblogs.com/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