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면 우리 가정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는 각 포털에서 이름 찍으면 프로필과 함께 아버지 관련 뉴스 기사들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이미 조선일보에서 발간했던 대한민국 파워엘리트 1,000명 이런 책에 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더 성공하여 권력 있는 기관의 장을 지냈습니다. 임원급으로만 20년을 지냈지요.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는 VIP 초대도 받고 그랬어요... 힘들다는 국회의원 공천도 여당, 야당에서 공천줄테니 출마해달라는 권유도 심심치 않게 받았었습니다. 당대표 비서가 집에 꿀 들고 찾아오고 그랬었죠..
저는 왼쪽 손목에 장애가 있습니다. 주먹을 쥐면 손목이 안쪽으로 굽혀지지 않습니다. 아버지한테 중학교 1학년 때 골프채로 얻어 맞는데 골프채가 얼굴로 날아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손으로 막았는데 그 때 손목을 다쳤습니다. 왜 맞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항상 맞을만한 뚜렷한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그냥 툭하면 맞았어요.. 좀 심하게... 갖은 욕설과 모욕은 항상 달고 살았죠.. '이 수건같은 세끼야... 이 드러운 세끼.. 이 쓰레기같은 새끼.. 넌 안돼.. 너깐 새끼는 안돼.. 안되는 새끼야.. 인간 말종 새끼..'
고등학교 때가 절정이었어요.. 공부 못한다고... 제 성적이 연고대 낮은과나 아니면 서강대, 한양대 갈 정도 밖에 점수가 안나왔어요.. 서울대 못가면 다 소용 없다고.. 틈만 나면 온갖 모욕과 함께 때립니다..
공부하다가.. 잠시 쉬려고 방에 누워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방 문이 열립니다.. 내가 누워 있은 걸 봅니다.. 그 순간 '아... 또 시작하는구나..' 밟히기 시작합니다.. 발로 밟히고 주먹으로 얻어 맞습니다.. 때리다 말고 마루로 나가셔서 골프연습채를 가지고 오십니다..절망입니다.. 이걸루 한대만 맞아도 비명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팠습니다.
고딩 때 학급반장이었습니다. 강남 8학군이었으니까 그리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닌데요... 반장이었던 어느날.. 아버지 퇴근 후 또 심하게 맞았습니다. 그날도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항상 똑같은 이유.. 공부 못한다는 거... 그래서 서울대 못간다는 거.. 이런 이유로 아버지 기분에 따라서 어떤 날은 맞고 어떤 날은 무사히 지나가고.. 그랬어요..
그 때가 한겨울이었습니다. 츄리닝 바지에 잠바도 못입구 양말두 못신고 구두 신고 입에서는 피 질질 흘리면서 쫒겨 났습니다. 너무 추웠어요.. 이리저리 헤매이다가 공사장에서 불 때는 걸 발견하고 거기서 계속 불을 때다가.. 지나가는 동네 재수하는 4살 위 형 우연히 만나서 그 집에서 잤어요..
다음날 학교 못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니 SBS에서 수퍼모델 1회 대회가 하고 이소라가 수퍼모델 1등으로 뽑혔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했습니다. 왜 들어왔냐고 또 때립니다.. 그냥 맞습니다.. 그냥 다 포기하구 울면서 맞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갔어요.. 반장놈이 무단으로 결석했다고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또 맞습니다.. 히히..선생님한테 맞는거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는 쉽습니다..
학교 다닐 때 싸움을 학교에서 제일 잘했어요.. 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주먹으로 발로 골프채로 맞구 지내는데... 학교에서 싸움 좀 한다는 애들 주먹 정도야 우스웠죠..
고딩 때 난 항상 긍정적인 아이였어요.. 집에서 얻어 맞아서 눈에 시퍼렇게 멍들어서 보기 흉해서 안대하고 가면 애들이 물어요.. 그러면 난 뻥치죠.. 길가다 다 동네 깡패 2명이랑 싸웠다구.. 제가 싸움을 워낙 잘했기 때문에 애들 다 믿어요... 싸움짱 학급반장.. 집에서는 병신 취급 당했지만 학교에서 애들은 다 날 좋아했어요...
고딩 2학년이 되자 더욱 폭력이 심해졌어요.. 못견딜만큼.. 그런데.. 막상 폭력보다 정말 정말 싫었던 건... 모욕감이었습니다.. '야이 인간 말종새끼야.. 수건같은 새끼야..' 이런말 들을 때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맞는 거는 자주 맞다보면 적응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모욕적인 무시는 힘들었어요.. 정말 다 포기하구 죽여버리구 나두 죽어버리구 싶다는 충동이 많이 들었어요..
쓰다보니 할 이야기는 너무 많구 내용은 길어지네요... 아직 빙산의 일각인데... 이젠 30대 중반.. 아버지는 70살이 거의 다 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때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건.. 자기 본인 외 가족들한테 베푸는 걸 모른다는 거... 긴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겠습니다.
아빠에게 맞고 다녀서 이상해졌나
남들이 보면 우리 가정은 전혀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는 각 포털에서 이름 찍으면 프로필과 함께 아버지 관련 뉴스 기사들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이미 조선일보에서 발간했던 대한민국 파워엘리트 1,000명 이런 책에 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더 성공하여 권력 있는 기관의 장을 지냈습니다. 임원급으로만 20년을 지냈지요.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에는 VIP 초대도 받고 그랬어요... 힘들다는 국회의원 공천도 여당, 야당에서 공천줄테니 출마해달라는 권유도 심심치 않게 받았었습니다. 당대표 비서가 집에 꿀 들고 찾아오고 그랬었죠..
저는 왼쪽 손목에 장애가 있습니다. 주먹을 쥐면 손목이 안쪽으로 굽혀지지 않습니다. 아버지한테 중학교 1학년 때 골프채로 얻어 맞는데 골프채가 얼굴로 날아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손으로 막았는데 그 때 손목을 다쳤습니다. 왜 맞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항상 맞을만한 뚜렷한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그냥 툭하면 맞았어요.. 좀 심하게... 갖은 욕설과 모욕은 항상 달고 살았죠.. '이 수건같은 세끼야... 이 드러운 세끼.. 이 쓰레기같은 새끼.. 넌 안돼.. 너깐 새끼는 안돼.. 안되는 새끼야.. 인간 말종 새끼..'
고등학교 때가 절정이었어요.. 공부 못한다고... 제 성적이 연고대 낮은과나 아니면 서강대, 한양대 갈 정도 밖에 점수가 안나왔어요.. 서울대 못가면 다 소용 없다고.. 틈만 나면 온갖 모욕과 함께 때립니다..
공부하다가.. 잠시 쉬려고 방에 누워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방 문이 열립니다.. 내가 누워 있은 걸 봅니다.. 그 순간 '아... 또 시작하는구나..' 밟히기 시작합니다.. 발로 밟히고 주먹으로 얻어 맞습니다.. 때리다 말고 마루로 나가셔서 골프연습채를 가지고 오십니다..절망입니다.. 이걸루 한대만 맞아도 비명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팠습니다.
고딩 때 학급반장이었습니다. 강남 8학군이었으니까 그리 공부를 못한 것도 아닌데요... 반장이었던 어느날.. 아버지 퇴근 후 또 심하게 맞았습니다. 그날도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항상 똑같은 이유.. 공부 못한다는 거... 그래서 서울대 못간다는 거.. 이런 이유로 아버지 기분에 따라서 어떤 날은 맞고 어떤 날은 무사히 지나가고.. 그랬어요..
그 때가 한겨울이었습니다. 츄리닝 바지에 잠바도 못입구 양말두 못신고 구두 신고 입에서는 피 질질 흘리면서 쫒겨 났습니다. 너무 추웠어요.. 이리저리 헤매이다가 공사장에서 불 때는 걸 발견하고 거기서 계속 불을 때다가.. 지나가는 동네 재수하는 4살 위 형 우연히 만나서 그 집에서 잤어요..
다음날 학교 못갔습니다.. 그리고 집에 오니 SBS에서 수퍼모델 1회 대회가 하고 이소라가 수퍼모델 1등으로 뽑혔습니다. 아버지가 퇴근했습니다. 왜 들어왔냐고 또 때립니다.. 그냥 맞습니다.. 그냥 다 포기하구 울면서 맞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갔어요.. 반장놈이 무단으로 결석했다고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또 맞습니다.. 히히..선생님한테 맞는거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정도는 쉽습니다..
학교 다닐 때 싸움을 학교에서 제일 잘했어요.. 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서 주먹으로 발로 골프채로 맞구 지내는데... 학교에서 싸움 좀 한다는 애들 주먹 정도야 우스웠죠..
고딩 때 난 항상 긍정적인 아이였어요.. 집에서 얻어 맞아서 눈에 시퍼렇게 멍들어서 보기 흉해서 안대하고 가면 애들이 물어요.. 그러면 난 뻥치죠.. 길가다 다 동네 깡패 2명이랑 싸웠다구.. 제가 싸움을 워낙 잘했기 때문에 애들 다 믿어요... 싸움짱 학급반장.. 집에서는 병신 취급 당했지만 학교에서 애들은 다 날 좋아했어요...
고딩 2학년이 되자 더욱 폭력이 심해졌어요.. 못견딜만큼.. 그런데.. 막상 폭력보다 정말 정말 싫었던 건... 모욕감이었습니다.. '야이 인간 말종새끼야.. 수건같은 새끼야..' 이런말 들을 때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맞는 거는 자주 맞다보면 적응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모욕적인 무시는 힘들었어요.. 정말 다 포기하구 죽여버리구 나두 죽어버리구 싶다는 충동이 많이 들었어요..
쓰다보니 할 이야기는 너무 많구 내용은 길어지네요... 아직 빙산의 일각인데... 이젠 30대 중반.. 아버지는 70살이 거의 다 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때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은 건.. 자기 본인 외 가족들한테 베푸는 걸 모른다는 거... 긴 이야기는 다음에 또 하겠습니다.
기냥... 오늘 아침따라 생각나는 과거들... 끄적거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