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의 악당] 노력과 행운은 바로 이런 관계가 아닐까?

EAST-TIGER201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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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대학원 수업들로 하루를 보내는 월요일이었지만,

오늘은 특별 세미나가 있어서 몇몇 수업이 대체되어 약 2시간 정도 일찍 끝났다.

이미 전 주부터 예상했던 터라 남은 2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영화를 예매했다. 

늘 밤 8시 이후에 전철을 타서 잘 몰랐는데, 오후 6~7시의 전철은 정말 퇴근물결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전철을 탔고 주변 사람들은 내 몸을 압박했다.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났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냄새의 원인이 누구인지 모르니까.

 

구로CGV 1관에서 저녁 7시 영화로 보았는데, 역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황금 시간대이지만 이 영화는 지금 개봉 중반기를 보내고 있다.

더구나 홍보도 그렇게 잘 된 편이 아니라서 좋은 영화평에 비해 관객수가 적은 영화였다.

혼자 영화를 볼 때 좋은 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와 보고 싶은 영화를 걱정없이 미리 예매할 수 있고,

운이 좋게도 관객들이 별로 없다면 정말 편안하게 볼 수 있어서,

마치 극장의 주인이 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나는 이 좋은 점을 모두 누리면서 영화를 보았다.

 

 

"인생은 노후가 아름다워야 해"

 

문화재 밀수업으로 늘 수배 중인 창인은,

소설가라고 자신을 속이며 연주의 2층 방으로 세들어 간다.

연주는 남편과 함께 골동품점을 운영했지만,

남편은 의문의 사고로 죽었고 심각한 우울증을 가진 채 딸 성아와 단 둘이 산다.

창인은 자꾸 1층 연주의 집을 기웃거리며 틈만 나면 안으로 들어가 무엇인가 찾고,

연주는 창인의 능청스러움에 매력을 느끼지만 자신의 우울증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나 연주와 성아는 시간이 갈수록 창인이 뭔가 수상하다고 느낀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이런 말을 했단다. "자살보다는 섹스!""

 

"저 중학생인데요."

 

<백야행>이후 거의 1년 만에 스크린에서 본 한석규는 관록의 연기를 보여줬다.

이런 한석규의 연기가 최근에 주목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언론에서 그와 관련된 기사들도 보기 힘들다.

이대로 중년배우 취급 당하며 세월을 탓하기에는 아직 그는 월등히 건재하다. 

 

마찬가지로 <타짜>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본 김혜수는 늘 그대로다.

많은 사람들은 김혜수의 연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를 보면 어떤 배역이든 어색함이 느껴진다.

오히려 TV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연기가 더 리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김혜수 만큼 예전부터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는 배우도 드물다.

 

<의형제>와 <계몽영화>의 박혁권에게 단독 주연의 기회를 달라!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전우치>의 이용녀가 등장하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림자 살인>, <바람의 화원>, <전우치>, <부당거래>의 김기천의 능청 연기는 늘 유쾌하다.

 

<그들의 사는 세상>의 엄기준은 짧지만 제 몫을 다한 연기를 보여줬다.

 

딸 성아 역의 지우는 어린 강혜정의 재림이었다.

 

손재곤 감독의 영화는 처음 보았는데 저예산으로 괜찮은 연출력과 개성있는 영상을 보여줬다.

 

 

"무슨 글 쓰세요?"

 

"인터넷에 악플 써요."

 

큰 반전이 없어도 보는 내내 흥미로웠고,

묘한 긴장감과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였다.

영화보다는 연극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세트와 구조가 복잡하지 않아서,

배우들의 연기가 눈에 잘 들어왔다.

특히 감독의 개성 있는 시선들이 인상적이었다.

연주가 느끼는 우울증을 빠른 컷으로 표현한 것과,

종반부에 등장인물들이 원하는 소망들을 빠르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는 등,

단순하면서도 의미 있는 시선들로 감독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들을 정리했다.

 

아쉬운 점은 역시 마케팅 면에서 지원이 부실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흥행요소를 가지고 있는 영화지만,

매스컴에서 그다지 집중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 것 같아,

이대로 간판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는 중이다.

 

 

"살다보면 좋은 날이 와요."

 

"뭐 그냥 살아야죠."

 

영화를 다 본 후 문득 동화 한 편이 생각났다.

 

어느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하면서

"저 밭에 보물이 들어 있으니 열심히 파서 보물을 찾으면 돈 걱정 안 하고 살수 있다!"고 말하자,

세 형제는 보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열심히 팠으나 결국은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형제들이 열심히 팠더니 땅이 기름져 농사가 아주 잘 되어 돈 걱정안하고 살았다.

 

영화 내용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일까?

관객들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자신만의 해석을 내놓을 것이다.

...

"모든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은 역시 돈이야?" 

"맞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거지!"

"항상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해!"

...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의 물음에 대한 유쾌한 대답이다.

성서에도 적혀있는 재미있는 비유로,

자기 방에서 100만원권 수표를 한 장 숨겨져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가정해보자.

말한 그 누군가는 그 수표를 어디다 둔지도 모르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만 내 방과 혹은 이 집 어딘가에 100만원권 수표가 확실히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쩌겠는가?

당연히 내 방 뿐만 아니라 온 집 안을 뒤져서라도 찾을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알고 은근히 나와 경쟁하듯 찾으려 든다면,

불안감과 걱정으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리고 서로 찾아야 한다는 열정과 집착 때문에,

가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는다는 것도 모를 수 있다.

결국 수표를 찾는 시간이 길어지고 멈추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반대로 좀 더 편하게 수표가 집에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 사실을 나 혼자만 알고 있다면,

굳이 집 안 곳곳을 이잡듯이 찾지 않아도 된다.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처럼 빈대보다 초가삼간이 더 귀하고,

100만원권 수표보다 당신과 가족, 집 그리고 시간이 더 귀하다.

물론 누군가가 우연히 찾아버리기 전에 빨리 찾아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고 급하지 않다면 여유를 가지고 찾으면 된다.

무엇보다 아예 수표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산다면, 

나중에 수표를 찾게 될 때 엄청난 횡재처럼 느껴질 것이다.

 

위에서 말한 동화에서는 아쉽게도 원하던 보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기름진 땅이 되어서 형제들은 돈 걱정 없이 살았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해서 나중에 보물까지 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횡재 중의 횡재이다.

노력과 행운은 바로 이런 관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