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민의 불복종을 읽고 나서 정부와 우리 사회, 그리고 소로우의 불복종의 방식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작게 다스리는 정부’라고 했던 소로우의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일까? 소로우의 생각은 옳지만 전부 다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에서 소로우는 개인의 자유와 대립되는 정부와 법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나는 소로우의 법과 정부에 대한 필요 이상의 부정적인 생각이 아쉬웠다. 처음 소로우의 책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법과 정부는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법과 정부를 크게는 국가를 지키는 울타리고 작게는 우리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반드시 필요한 질서라고 생각한다. 법이 있기에 사회의 질서가 지켜지고 정부가 있기에 우리가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법과 정부에 불의와 횡포가 존재하긴 하지만 정부에 불의와 횡포가 있기에 나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법에 불의가 존재하기에 시민들이 정부의 불의와 횡포에 맞서 싸우고 정부와 맞섰던 투쟁의 결과 속에서 민주주의가 생겨나고 시민의 의식이 성장한 것이다. 사회를 바꾸었던 역동적인 힘! 나는 그것이 진정한 불복종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들 역시 자유를 위해 불의에 맞서고 권리를 쟁취해낸 불복종의 사례들이다.
그리고 나는 소로우의 불복종의 태도와 정부관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게 있다. 소로우는 가장 좋은 정부를 작게 다스리는 정부라고 하여 한 시민이 타인에게 해를 끼칠 때만 개입하고 다른 때는 개입하지 않는 정부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런 정부관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면 혼자서 살아가기엔 힘든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소로우의 생각은 복지를 부정한다. 우리는 더 좋은 국가와 이웃을 위해서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그 이유는 살아가기에 바빠 주변을 돌아보기 힘든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쳐도 그들의 도움은 체계적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소로우의 불복종의 태도는 소극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으면 잘못 됐다고 무조건 반항하지만 말고 그것을 고치려고 직접 노력해야 한다. 소로우도 자신의 저서인 시민의 불복종에서 종이로만 투표하지 말고 자신의 온몸을 던져 자신의 영향력 전부를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로우 자신도 자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 정부에 맞서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소로우는 인두세 납부가 잘못된 곳에 쓰이니까 납부를 거부하고 혼자서 숲에 들어가서 살고 사람들에게 시민의 불복종이란 화두만 던졌을 뿐이다.
문제가 있을 때 단지 문제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만하고 그 문제가 올바르지 않으니까 나는 따르지 않고 거부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시위를 통하거나 서명운동 등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바꾸어 나가는 게 올바른 행동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두발규제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만약 소로우의 생각대로라면 두발문제는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니까 두발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두발규정은 학교의 규칙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학교를 등교한다면 불량학생과 다를 게 무엇인가? 우리는 그때 서명운동을 통해 두발규정을 완화시켰다. 만약 두발규정은 잘못된 문제라고 친구들에게 주장만하고 두발규정을 지키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면 나는 불량학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서명운동을 통해 규제를 완화시켰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불복종의 방법엔 시위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불복종을 하면 그 사람은 범법자가 되지만 잘못된 문제를 사회의 관심으로 환기시켜 여러 사람과 함께 시위를 한다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민의 불복종을 읽고
시민의 불복종 서평
나는 시민의 불복종을 읽고 나서 정부와 우리 사회, 그리고 소로우의 불복종의 방식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작게 다스리는 정부’라고 했던 소로우의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일까? 소로우의 생각은 옳지만 전부 다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에서 소로우는 개인의 자유와 대립되는 정부와 법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나는 소로우의 법과 정부에 대한 필요 이상의 부정적인 생각이 아쉬웠다. 처음 소로우의 책을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법과 정부는 좋은 것이 아니다’라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법과 정부를 크게는 국가를 지키는 울타리고 작게는 우리 사회를 유지시켜주는 반드시 필요한 질서라고 생각한다. 법이 있기에 사회의 질서가 지켜지고 정부가 있기에 우리가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법과 정부에 불의와 횡포가 존재하긴 하지만 정부에 불의와 횡포가 있기에 나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법에 불의가 존재하기에 시민들이 정부의 불의와 횡포에 맞서 싸우고 정부와 맞섰던 투쟁의 결과 속에서 민주주의가 생겨나고 시민의 의식이 성장한 것이다. 사회를 바꾸었던 역동적인 힘! 나는 그것이 진정한 불복종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들 역시 자유를 위해 불의에 맞서고 권리를 쟁취해낸 불복종의 사례들이다.
그리고 나는 소로우의 불복종의 태도와 정부관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게 있다. 소로우는 가장 좋은 정부를 작게 다스리는 정부라고 하여 한 시민이 타인에게 해를 끼칠 때만 개입하고 다른 때는 개입하지 않는 정부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런 정부관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면 혼자서 살아가기엔 힘든 사람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소로우의 생각은 복지를 부정한다. 우리는 더 좋은 국가와 이웃을 위해서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그 이유는 살아가기에 바빠 주변을 돌아보기 힘든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쳐도 그들의 도움은 체계적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의 개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소로우의 불복종의 태도는 소극적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으면 잘못 됐다고 무조건 반항하지만 말고 그것을 고치려고 직접 노력해야 한다. 소로우도 자신의 저서인 시민의 불복종에서 종이로만 투표하지 말고 자신의 온몸을 던져 자신의 영향력 전부를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로우 자신도 자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 정부에 맞서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소로우는 인두세 납부가 잘못된 곳에 쓰이니까 납부를 거부하고 혼자서 숲에 들어가서 살고 사람들에게 시민의 불복종이란 화두만 던졌을 뿐이다.
문제가 있을 때 단지 문제가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만하고 그 문제가 올바르지 않으니까 나는 따르지 않고 거부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시위를 통하거나 서명운동 등을 통해서라도 문제를 바꾸어 나가는 게 올바른 행동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두발규제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만약 소로우의 생각대로라면 두발문제는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으니까 두발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두발규정은 학교의 규칙이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학교를 등교한다면 불량학생과 다를 게 무엇인가? 우리는 그때 서명운동을 통해 두발규정을 완화시켰다. 만약 두발규정은 잘못된 문제라고 친구들에게 주장만하고 두발규정을 지키지 않고 학교를 다녔다면 나는 불량학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 서명운동을 통해 규제를 완화시켰다. 나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불복종의 방법엔 시위가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불복종을 하면 그 사람은 범법자가 되지만 잘못된 문제를 사회의 관심으로 환기시켜 여러 사람과 함께 시위를 한다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