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호야 2010.12.08
조회163

 사람들은 배려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작은 배려가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힘든 일상속에서도 우리가 미소지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무관심한 어른들이 간혹 있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들마저도

각 스포츠나 문화마다 예절이 다른 경우가 있듯이,

분야에 따라서는 때에 따라서는,

(몰라서) 본의가 아니게 민폐를 끼칠 수도 있다.


 출근시간에 다른 사람의 차 앞에 이중주차를 해두고도

 전화번호조차 남기지 않거나,

 심지어는 전화연락을 받지 않는 상황은


 더구나 상습적으로 그래서

 마을사람들끼리 그 차량이나 차주를 어느 정도 아는 정도까지 된다면...

 스포츠나 문화의 개념으로도 잘 이해가 안되는 ‘본의아닌 민폐’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상식 이하’의 상황이라 판단되면서 상쾌한 아침부터 짜증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배려를 잠시 다른데 두고 계시는 분들 중에는

 필자보다 어린 사람도 있지만, 필자보다 꽤 연배가 있으신 분들도 있기에

 함부로 항의 조차하기 어렵다.

 그 분들의 직장에서의 생활이나 다른 생활들은 모르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지만,

 50m내외에 언덕길에 주차 가능한 공간이 있는데도 그것이 귀찮아 2중주차를 반복하고

 심지어는 연락조차 받지 않아 다른 사람의 출근시간까지 위협하는 사람들을 대할때면

 전화기를 눌러대는 손길에서는 짜증이 담기지가 않을 수가 없고

 그들을 ‘배려를 모르는 나쁜 사람’이라고

 함부로 평가하고자 하는 충동이

 자꾸 일어나는 것이다.


  배려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본적인 마인드에 대해서

 상식적인 수준과는 심하게 다르게끔 습관이 들어버린

 어른들을 우리는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들을 감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나 입장이 못 되고,

 심지어는 연배가 더 높은 경우도 있기에 그들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하지 못 하고,

괜한 스트레스 받기 싫으니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어른들의 잘못은 서로의 나이를 막론하고 서로 교정해주기가 힘들다.

 나중에는 법에 호소하기도 하고 말이다.

 충고를 한다고 한들 고쳐질 가능성도 아이에 비해서는 적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어른들은 ‘관심’을 갖거나, 괜히 ‘충고’하면,

 상대방이 나에게 반감부터 먼저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기고,

 ‘나만 이미지 나빠지고 나만 스트레스 받고 상처받는 것 아닌가?’

라는 피해의식까지도 갖게 되는 것 같다.


 필자가 하는 일이 ‘학생들을 감히 가르치는 일’이다 보니,

 여기서도 학교교육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겉보기에는 정말 난장판인 듯 보이는

 아이들의 세상은 오히려 희망적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고통을 줄수도 있는 잘못된 습관들이

아직은 굳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학생들끼리는 잘못을 하면 서로 원색적이긴 하나 진심어린 꾸중을 하기도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의 행동을 교정하기도 하고,

(물론 그것이 심해지면 마음에 상처, 왕따문제, 싸움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그래도 진정성이라는 것이 아직 학생들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인지

 어른들보다 곧잘 화해하기도 하면서 점차 자아를 형성해 간다.


 또 이러한 과정에서 역시 아직은 부족한 어른에 불과하지만 학생들의 생활에 생활지도자로서 교사가 조심스럽게나마 개입하게 되는데,

 본인보다는 인생경험이 많기에 감히 행하는 선생님의 충고에는

서운해하기보다는 오히려 감사해하는 어른스러운 아이들도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어떠한가?

 각자마다 나름의 많은 경험과 연륜이 있는 어른들은 서로 감히 함부로 충고할 수 없으며,

 그러다보니 다소 가식적이거나 피상적일수도 있고,

 정말 친한 친구가 아님에도 나에게 심한 충고를 하기라도 하면,

 감사한 것이 순서인데도 먼저 서운해하기도 하며, 그러다보니 또 좀처럼 서로 충고를 않게 되는 그런 곳이다.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정말 연배가 무색할만큼 배려가 넘치는 사람들...

 선생님들 중에도, 심지어는 아이들중에서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이 되고 습관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필자는 그래서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른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많은 만큼,

 순수한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배워야할 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소모적인 경쟁, 편법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거뜬히 견뎌낼 수 있도록...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수많은 지식을 가르치고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온라인교육으로도 어느정도 가능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학교교육은 그보다는 친구를 배려하는 따뜻한 성품을 기르고,

 서로 토론하며 채택되는 다양한 아이디어들과


 일단 채택된 아이디어들에 대해서는 힘을 합하여 협동하여

 시너지를 경험하며 보람을 느끼는 등

  서로 어울리며 협동의 경험을 쌓게 되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린 시절, 학생 시절의 가정과 학교는

 학생들이 타인의 고통이나 상처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배려를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수도 있으니까.


 학생들은 잘못을 하면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반성할 줄 알지만,

 필자를 비롯한 어른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이 있을 수 있고, 거기에는 오해도 있을 수 있겠으나,

 체벌이 전면 금지된 후에 학생이 교사에게 주먹질을 하는 경우가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 학생들이 이 험한 세상에서 기죽을까봐

'어른한테도 선생님한테도 지지말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교사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피상적인 생활지도를 하게끔 유도함으로써

 학생들이 심한 잘못을 해도 꾸중이라고는 제대로 들어보지 않으며 성장하게 되고,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 또 심한 잘못을 하거나,

 혹은 선생님한테 했던 주먹질을, 나중에는 오냐오냐하고 사랑으로 길러주셨던 자기 부모한테까지 하지 않으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어른한테 기죽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께까지도 결코 기죽지 않는 것이 어디 바람직한 것인가?'


 어른들의 세계는 정말 험악하고, 고집스러우며 무거운 책임감이 필요한 곳인데도, 사람들은 어른이 되고자 한다.

 심지어는 학생들에게도 아무리 경미한 체벌일지라도 모든 종류의 체벌전면금지, 학생인권조례 등을 급하게 도입함을 통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당신도 이미 어른이다, 얼른 어른이 되라! 책임이나 의무보다는 권리가 일단 우선이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제 ‘학생이니까 용서가 되고, 학생이니까 꾸중을 달게 들어야 했던 낭만의 시대’는 지나가 버린 것인가?


 체벌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필자는 체벌 반대론자이지만,

'팔굽혀펴기 5회 이하 실시'이런 것들까지 단순한 '벌'이 아닌 '체벌'로 규정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언론에 보도될만큼 상식이하의

극히 일부의 심한 체벌을 행하는 사람들을 들먹이면서,

모든 체벌을 전면 금지해야한다고 하기보다는,


심한 체벌을 일삼는 해당 교사가 간혹 있으니,

그들이 감히 그러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나

그들이 교단에 계속 서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

다만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소 자유롭고 고집스러워지는 것이지만,

 어른으로서 행해야 하는 수많은 의무와 사회적 책임들을 고스란히 짊어지는 일이며,

 잘못을 하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도 하는 등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이임에, 학생임에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일단 어른이 되고 나면 좀처럼 다시는 아이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것이 꼭 세월이 되었든, 성품이 되었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인드가 되었든 말이다.


 이러한 고민을 나이 30이 넘도록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 필자를 비롯한 많은 어른들이 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