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인한 할머니의 갑작스런 억울한 죽음...

천국20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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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에 강아지, 닭모이에 농사까지 싹다 지으시고 건강에 아무런 문제도 없이 멀쩡하신

저희 할머니가 춘천의 k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밑에 글은 저희 삼촌의 글을 옮겨 놓은 것이며.

저희 집안의 억울한 이 일을 조금이나마 호소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의료소송 준비중이며 부검까지 해서 얼마후면 부검결과도 나옵니다..

 

 

의료소송이 바위에 계란치기라고는 하지만... 끝까지 맞써 싸울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의료사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일어나지를 않기를 바라며..

이글을 띄웁니다...

 

 

2010년 11월 12일~

넷째 동생이 k대병원에 모시고와서 x레이ct촬영후 탈장이란 진단을 받고 병원측에서 당월16일오후2시에 입원날자를 정해줘서 일단 가평동생네 집으로 가셨다가 14일 일요일 오후 6시30분쯤 춘천 우리집에 오셔서 저녁식사도 하시고 집에서 목욕도 하시고 시원하다 하시며 마늘도 까시고 아프다는 말씀은 예전대로 가슴을 누루면 띠끔띠끔한것 외엔 아무 문제가 없으셨다.

그렇게 1박2일을 우리집에서 계시다 15일밤9시부터 아무것도 안드시고 16일오후2시에 k병원에 입원을 하시여 다시 피검사 x레이ct등을 찍고 병원측 저녁식사를 죽으로 드셨다

전날 굶으셔서 그런지 기력이 없어보였지만 아프다는 말씀은 안하셨다.

 

 

2010년 11월 17일~

수술후 저녁에 내가 갔을때는 어머니께서 정신이랑 다 정상적이셨지만 수술후유증인지 많이 지치고 아프는 말씀을 하셨다. H담당의사가 마침회진을하여 물어보니 탈장이 아니라 장막이 얇아져서 장이 막과함께 약간 손가락 한매디 정도크기가 볼록나와서 밀어넣었다며 간단한 수술이라했다. 그리고 이틀후 퇴원을 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의사에게 어머니가 5일째 대변을 못보신다고 했다. 의사는 변비에대한 약을 처방한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17일밤을 보내고 18일은 병원에서 죽으로 식사가나와서 식사도 하시고 저녁에도 잘 주무시고 19일 오후2시경 점심식사후 퇴원을 하셨다.

우리집으로 오셔서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3가지를 저녁부터 드셨다.(식사후)19일 저녁에도 별문제 없이 잠도 잘주무시고 빨리 회복이 되는모습에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2010년 11월 20일~

오후 1시경 부터 아랫배를 만지시면서 아프다고 자꾸 인상도 찌푸리시며 주기적인 아픔을 호소하셨다.(약10분안팎) 늦은 오후가되면서 점점 아픈주기는 빨라지며 아픈강도가 더 세어지는 것을 알수 있었다. 변비가 심한 것으로 판단되어 관장약을 투여했다(누나. 집사람)관장후 대변은 토끼*정도 3개가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아픔은 여전했다. 자정이되면서 잠이들었는데 21일새벽2시30분경 어머니께서 큰소리로 고통을 호소하여 따뜻한물을 좀 드리고 강대병원 응급실로 04시10분경 전화를했다. 간호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금요일 퇴원한 환자인데 복통을 호소해서 그러니 지금 가면 안되겠냐고 물어보니 퇴원환자일 경우에는 아침에 담당의사에게 직접 찾아가 라고 하여 어머니의 아픈모습을 지켜보며 밤을 샐수밖에 없었다. 아침8시50분에 병원에 도착하여(2층) H담당의사를 찾았으나 수술이 잡혀있어서 지금 어머니 진료를 할 수가 없다고하여 휠체어에서 어머니는 고통을 감수할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고통으로 어머니가 힘이 없어지는을 알고 나는 다시 간호사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다른 의사가 와서 다시 피 검사와 ct촬영을 또 해야 된다하여 아래층으로 휠체어에 모시고 내려가 영상실로 갔다 이때가 오후1시가 좀 넘어서였다. ct를 마치고 다시 피검사를 한다고 하여 자리를 옮겨 피검사를 마친후 주사실로 가서야 침대에 누워 수액과 진통제를 투여하였다.CT와 진통제를 찍고 맞을때면 수납을 하고 오라고하여 정말 짜증나고 긴시간이었다. 어머니는 진통제투여 약10여분만에 고통이 줄어들었고 소변을 보시고 싶다하여 화장실에 모시고가서 소변보는것을 도와드렸다. 주사실에서 2시간정도를 소요하며 진통제는 두병째 투여하고 입원실이 없다고 하며 응급실로 가라고 하여 응급실 침대로 가서 누워서 계속 진통제를 투여하였다. 진통제가 떨어지면 바로 고통으로 이어졌다. 23일 5층일반 병실이 자리가 났다고 하여 올라가서 계속 수액과 진통제 그리고 항셍제라고 하는것을 포도당과 함께 4가지가 함께투여 했으나 계속해서 고통은심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병원의 늑장대처와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이병원은 아니다 란 판단이 되어 다른병원을 알아보고 의사에게 24일 상담했으나 H의사는 k병원도 건물을 신축하면서 최신의료기기를 도입하여 서울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을하며 어머니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며 다른병원으로 옮기는것을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의사말만 믿고 2일이더 지나갔다. 어머니께서는 이제 헛소리까지 하시며 난 이렇게 있으면 2틀만있으면 죽을꺼라고 손까락까지 2개를 펴서 보여주셨다.

 

 

2010년 11월 26일

10시경 어머니는 더 이상 참을수없는 고통이 지속되고 있었다. 얼굴에는 땀이 촉촉이 묻어나고 보기에도 심상치가 않았다. 형님과 누님이 밤9시쯤 와서 보다못해 간호사실에서 소리를 높혀 의사를 나오라고 호통을쳤다. 27일새벽02시10경 수술을 집도한다는 사람이 청색까운을 입은상태로 형님과누나에게 수술을 하는 이유와 수술후에 후유증등을 설명하고 싸인을 하라고 했다. 누나는 여직까지 방치하다. 이제 새벽에 수술을 하는이유와 고칠수있으면 하라고 싸인거부하고 형님은 할수없이 어머니에 고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나아지겠지란 생각으로 싸인을했다. 여기서 참으로 궁굼한것은 과연 의사들이 자다말고 새벽에 나와서 수술을 하겠다고 하는 이유를 알고싶다 밤에 우리가족들이 가만히 있었으면 과연 어땟을까 의사가 나오기전에 어머니를 중환자실로 가야된다고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침대를끌고 나가려했을때 우리가 붙잡았다 과연 중환자실로 어머니가 가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뻔하다 손과발을 묶어놓고 중환자실은 가족면회가 제한된 것을 이용하여 가족들에 성화를 피하는 수단이었을 것이다. 결국02시30분경 수술을 한다고 3층수술실로 내려갔다. 우리가족은 수술실앞 의자에서 장장 4시간여를 어머니가 나오시기만을 기다렸다 06시40분경 H담당의사가 손에는 피묻은 고무장갑에 마스크를 한 채 수술실문을 열고 가족을 불러 하는말 이제 수술이 끝났다 이런수술은 처음이다란 말을 했다 대장에 변이 꽉차면서 장이 늘어나 재생이 불가능하여 부푸른부위(30센티)를 절단하여 소장과 연결하여 수술을 했다고 했다. 이상한건 왜 처음수술을 하는것을 했으며, 수술을 시작할 때 집도한다는 의사는 보이지가 않았다. 아무튼 우리가족은 중환자실로 옮겨서 주변정리를 한 다음에 면회를 할수있다 하여 한시간이 지날때쯤 면회를 할 수가있다. 막상 4시간을 넘게 수술을 하고난 어머니는 의식도 없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호흡을 하는 모습이었다. 정말 난 느낌이 안좋았다. 혀는 말라서 까맣게 타있었고 혈압, 심장박동등 정상이 아니었음을 알수있었다.

우리가족은 서로가 말이없이 한참을 중환자실에서 예감이나 한듯 조용했었다. 할수없이 집으로 각자 돌아가 다음날 면회시간을 기다렸다

 

 

2010년 11월 27일~

27일 밤10시쯤 다른 H인턴인지 하는 사람이 중환자실이라며 전화가 걸려와 어머니가 상태가 안좋으시다고 연락이와서 좀더 지켜보다. 상황이 더 안좋아지면 다시연락을 하겠다고 하였다. 다시 연락이 안오기를 기대하며 잠을 설치며 아침을 맞았다. 면회시간을 기다릴수가 없어 28일오전9시쯤 중환자실을 들어가보니 내가봐도 상태는 안좋아 지셨다. 의사들이 일요일이라 출근을 안해서 오늘이 고비임을 난 느낄수있었다. 인턴같이 보이는 H 혼자서 담당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점점 상태가 안좋아 지는지 수술을 했던 H담당의사가 나타났다 오후1시쯤이었다. 몸이많이부워 혈액이 통하지가 않아 인공혈액공급 장치와 인공심장박동을 조절하는 기계를 부착한다고 했다. 조금있다가 등산화를 신은 사복의 청년이왔다 신경외과의사 라고 했다. 다시 수술봉합을한 실밥을 뜯어서 배를 열어야 한다고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시술인것 같았다. 우리가족은 이제 방법이 없이 의사말만 들어야하는 수 밖엔 더 어떠한 방법이 없었다. 결국 몇시간에 걸처 수술실도 아닌 중환자실에서 진행이 되었다. 그후 어머니는 더 이상 별다른 기색없이 창자를 밖으로 들어낸채 눈으로 볼수없는 모습이되어 버렸다. 다음날29일 오전 인턴들이 어머니 심페소생술을 한다면 가슴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정말 병원을 다 뒤집어놓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꾹참고 있었다. 이젠 돌아가신 것이 확실한데 갈비뼈를 다 부러뜨리며 인턴둘이서 어머니 가슴을 교대로 눌러대고 있는것을 보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정말 어떤 자식이 가만히 있을수가 있을까. 한참있다 한인턴이 나와서 계속 할까요 하고 묻는다 참 기가막힌 노릇이다. 죽은 사람도 병원에선 그렇게 해야 도리인가보다. 사람을 죽여놓고 우리가족은 살려놓으란말 밖엔 아무말도 안했다. 결국 2010년11월29일 12시40분 사망했다고 한 인턴이 우리가족앞에서 말을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의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걸어서 첫날 병원엘 가셔서 엘리베이터도 아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진찰을 받으러 다니셨던 분이 19일만에 싸늘한 죽음으로 병원을 나오게 되었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탈장수술로 들어가셨따가

복막염에 패혈증 까지 오셔서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셨습니다...

정말 네티즌 님들이 보셔도 이건 잘못된 수술 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루빨리 부검결과가 나와서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고싶습니다.

긴글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