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랑’ 울진 보부상 길 탐방
시월은 산양이 사랑을 나누는 달. 일행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큰 소리를 삼갔고 앞서가는 숲 해설사도 핸드마이크는 아예 들고 오지도 않았다. 산양은 이 계절에 사랑을 하고 오월쯤에 새끼를 낳는다고 했다. 200만년 전 화석에 등장하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한반도에서는 휴전선 부근이나 설악산 일대, 그리고 이곳 울진 금강소나무숲에서 겨우 살아내고 있는 천연기념물이다. 우리는 그들의 편안한 사랑을 위해 조심조심 걸었다.
‘문학사랑’이 소설가 김주영, 화가 이인 최석운 한생곤 등 문화예술인 10여명과 함께 ‘보부상 DNA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보부상 길 복원을 희망하며 지난 15∼18일까지 경북 울진으로 떠난 여정이었다. 동해의 건어물이나 미역, 소금 같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십이령 고개를 넘어 내륙 봉화 장까지 넘어가서 대마나 담배, 콩 같은 것으로 바꿔오던 그 보부상들의 산길을 걸어본 길이었다.
◇보부상길 복원 프로젝트에 나선 ‘문학사랑’ 일행이 경북 울진 금강소나무숲을 지나 보부상들이 걸었던 옛길을 걷고 있다.첫째 날은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소광리까지 이어지는 13.5㎞에 이르는 ‘금강소나무 숲길’을 걷는 여정이었다. 이 길은 보부상들이 다녔던 길이자, 문화재를 보수할 때 실하게 쓰이는 금강소나무가 도열한 길과 겹친다. 일행은 열두 고갯길 중 첫 번째 높은 재인 ‘바릿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내려가다가 ‘조령 성황사’를 만났다. 오가는 보부상들의 죽은 신위를 모셔놓거나 보부상단의 이름을 새겨 넣고 촛불을 켜 그들의 명복을 비는 사당이었다.
성황사 아래로 다시 한참을 걸어가니 오솔길에 이곳 현령이었던 이의 ‘불망비’가 서 있다. 소설가 김주영씨는 “이런 비석이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오가는 길에 세워놓는 법인데, 바로 이 길이 이즈음의 36번 국도를 대신하는 내륙으로 이어지는 가장 번잡한 길이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다시 내려가니 옛 보부상들이 잠을 자던 봉놋방 구들이 나오고, 화전민들이 쓰던 무쇠솥도 풀밭에 버려져 있었다.
◇보부상 ‘접장’을 기리기 위해 보부상들이 세운 ‘울진내성행상불망비’ 앞에 선 소설가 김주영씨. 그는 “좁고 외로운 그들의 길에 서면 수많은 애환과 이야기들이 절로 흘러나온다”고 말했다.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전9권)에는 발품으로 생계를 꾸렸던 보부상들이 중심에 등장한다. 김씨는 보부상들이 다녔던 길을 전국에 걸쳐 안 가본 곳이 없지만, 이곳 울진∼봉화 간 보부상길은 처음 답사한다고 했다. 보부상길 복원을 소망하는 그는 “이야기가 있고 운치가 있고 풍경이 있고 바람이 있고 애환이 있는 이런 길을 자동차 길과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라며 “이런 옛길은 걷지 않고 보고만 있어도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끝낸 뒤 ‘객주’ 10권을 이어서 쓸 예정이라고 밝혔고, 이 마지막 권에는 소설의 주인공 천봉삼과 월이가 이곳 울진 십이령 보부상길을 넘어가는 장면을 삽입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울진군에서는 지난 7월20일 금강소나무숲길을 개장하고, 하루에 80명 이상은 받지 않는 예약탐방제를 실시해 3200명이 다녀갔다.
숲해설사 이규봉(44)씨는 “우리는 산양들이 놀랄까봐 핸드마이크를 절대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날 만난 해설사 박영웅(68)씨는 실제로 어린 시절 보부상들과 함께 십이령을 넘기도 했는데 그들이 불렀던 서글픈 가락의 노래를 기억 속에서 불러내 “가노 가노 언제 가노/ 미역 소금 건어물 지고 춘양 장을 언제나 가노”로 이어지는 보부상 노래를 고갯마루에서 불렀다.
보부상의 DNA를 탐사하러 떠난 길의 여정 마지막 날에는 울진군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서 열린 경상북도 주최 ‘산의 날’ 행사에 참석했고, 그 자리에서 안도현 시인이 보내온 ‘금강송을 노래함’이란 시를 함께 듣기도 했다. 안 시인은 “보이지 않는 소나무 몸속의 무늬가/ 만백성의 삶의 향기가 되어 퍼지는 때,/ 우리 울진 금강송 숲에서/ 한 마리 짐승이 되어 크렁크렁 울자”고 썼다. 멀리 금강소나무숲 절벽 위에서 인간들의 길을 고즈넉이 내려다보고 있을 산양들의 눈빛이 뒤통수에서 뜨거웠다.
울진=조용호 선임기자
입력 2010.10.18 (월) 17:11, 수정 2010.10.19 (화) 00:27
이야기’가 흐르는 풍경과 애환이 있는 길
이야기’가 흐르는 풍경과 애환이 있는 길
<세계일보>
‘문학사랑’ 울진 보부상 길 탐방 시월은 산양이 사랑을 나누는 달. 일행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큰 소리를 삼갔고 앞서가는 숲 해설사도 핸드마이크는 아예 들고 오지도 않았다. 산양은 이 계절에 사랑을 하고 오월쯤에 새끼를 낳는다고 했다. 200만년 전 화석에 등장하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한반도에서는 휴전선 부근이나 설악산 일대, 그리고 이곳 울진 금강소나무숲에서 겨우 살아내고 있는 천연기념물이다. 우리는 그들의 편안한 사랑을 위해 조심조심 걸었다.‘문학사랑’이 소설가 김주영, 화가 이인 최석운 한생곤 등 문화예술인 10여명과 함께 ‘보부상 DNA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보부상 길 복원을 희망하며 지난 15∼18일까지 경북 울진으로 떠난 여정이었다. 동해의 건어물이나 미역, 소금 같은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십이령 고개를 넘어 내륙 봉화 장까지 넘어가서 대마나 담배, 콩 같은 것으로 바꿔오던 그 보부상들의 산길을 걸어본 길이었다.
성황사 아래로 다시 한참을 걸어가니 오솔길에 이곳 현령이었던 이의 ‘불망비’가 서 있다. 소설가 김주영씨는 “이런 비석이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오가는 길에 세워놓는 법인데, 바로 이 길이 이즈음의 36번 국도를 대신하는 내륙으로 이어지는 가장 번잡한 길이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다시 내려가니 옛 보부상들이 잠을 자던 봉놋방 구들이 나오고, 화전민들이 쓰던 무쇠솥도 풀밭에 버려져 있었다.
울진군에서는 지난 7월20일 금강소나무숲길을 개장하고, 하루에 80명 이상은 받지 않는 예약탐방제를 실시해 3200명이 다녀갔다.
숲해설사 이규봉(44)씨는 “우리는 산양들이 놀랄까봐 핸드마이크를 절대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날 만난 해설사 박영웅(68)씨는 실제로 어린 시절 보부상들과 함께 십이령을 넘기도 했는데 그들이 불렀던 서글픈 가락의 노래를 기억 속에서 불러내 “가노 가노 언제 가노/ 미역 소금 건어물 지고 춘양 장을 언제나 가노”로 이어지는 보부상 노래를 고갯마루에서 불렀다.
보부상의 DNA를 탐사하러 떠난 길의 여정 마지막 날에는 울진군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서 열린 경상북도 주최 ‘산의 날’ 행사에 참석했고, 그 자리에서 안도현 시인이 보내온 ‘금강송을 노래함’이란 시를 함께 듣기도 했다. 안 시인은 “보이지 않는 소나무 몸속의 무늬가/ 만백성의 삶의 향기가 되어 퍼지는 때,/ 우리 울진 금강송 숲에서/ 한 마리 짐승이 되어 크렁크렁 울자”고 썼다. 멀리 금강소나무숲 절벽 위에서 인간들의 길을 고즈넉이 내려다보고 있을 산양들의 눈빛이 뒤통수에서 뜨거웠다.
울진=조용호 선임기자 입력 2010.10.18 (월) 17:11, 수정 2010.10.19 (화) 00:27
* 사진/ 김주영 선생님과 거제도의 동백섬 지심도에서.
지심도는 윤후명 소설가의 소설 '팔색조-새의 초상' 배경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