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눈- 안견의 몽유도원도

thee201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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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1447년 비단에 담채 38.7x106.5cm 일본 텐리 대학 중앙도서관

 

도원도는 중국 당나라  때부터 그려진 그림이지만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중국과 한국을 통틀어 가장 오래 된 도원도라 할 수 있습니다.   

도원도는 동양적 이상향의 상징이 할 수 있는데요 이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중국 진대의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을 읽고 마음속에 이상향을 그리다가 안견에게 꿈 이야기를 그려 줄 것을 부탁하고 그리게 한 그림입니다.

 "어젯밤 꿈속에 박팽년과 함께 어느 산 아래에 도착했네.아주 신기하게 생긴 산이었지.뒷동안 같이 낮은 산을 건너가 보니 갑자기 눈앞에 절벽처럼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지 않겠나.마치 바위가 저 벽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아무나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명령하는 것 같았네."

 

 

 

" 완강히 거부하는 듯한 바위틈을 벗어나 한참을 들어가니 깊은 골짜기가 나오고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지 않겠나.북쪽으로 더 올라가면 거기가 바로 복숭아밭이라기에 나는 말을 채찍질하여 울뚝불뚝한 산벼랑 사이를 달려 시냇물을 건너갔지.깎아지른 듯한 절벽 옆으로 경치가 얼마나 황홀하던지.." 

 "얼마쯤 달렸을까,갑자기 넓은 마을이 펼쳐지는데 온 천지에 복숭아꽃이 가득 피어 있는게 아닌가.바람벽처럼 치솟아 있는 산속에 구름과 안개는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고 그 사이로 붉은 노을처럼 핀 복숭아꽃을 상상해 보게그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보는 이전 그림들과 달리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보도록 그린 그림이였습니다.

그걸 모르고 그림을 보게 되면 그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순서를 알고 보면 자연스럽게 안내하는 산과 바위의 배치를 보며 다음 장면에 설레게 됩니다.

그림의 구도에서 보면 그림의 왼쪽 아래부터 꿈이 막 시작되어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평범했던 산 앞을 가로막는 바위산을 만나게 되고 그것이 복숭아 밭으로 들어가는 문이 됩니다. (첫번째 전체 그림을 참조하세요)

시험에 자주 등장하는 부감법,조감도가 여기서 나옵니다.^^

낮은 야산은 정면에서 본 시각으로 그렸고 복숭아꽃이 만발한 오른쪽은 부감법으로 그렸습니다.

부감법은 시점의 차이인데요,아주 높은 곳에서 그 지점을 내려다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저 한 폭의 그림으로만 보여짐이 아닌 그림과 동화되어 구비진 산길을 따라 걷기도하고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높은 산을 내려다 보기도 하는 이것이 바로 몽유도원도의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그림속에서 주제는 복숭아밭이였기에 시 점이 두개인 그림을 그려 주제를 강조한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나리자에도 처음 두개의 시점이 시도 되었답니다.

이렇게 시도하지 않던 기법과 화가의 깊은 의도로 만들어진 몽유도원도는 최고의 화가와 그림을 볼 줄 아는 최고의 안목가가 만난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을 비롯 22명의 세종시대의 대표 인물들의 글이 실렸는데 얼마나 당대에 걸작이였는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무릉도원을 그렸고 그 곳은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평화만이 복숭아꽃 처럼 피어있는 이상향이라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릉도원을 사랑한 까닭은 그 만큼 현실의 힘들고 괴로움을 잊고 싶었던것은 아니였을까요?

오늘 문득 이 그림이 떠올랐던 것은 아둥바둥 거리는 하나의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들,해결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이 문제들을 내려다 보고 계시는 그 시점이 그림처럼 느껴졌습니다.

평범하게만 보이던 산이 숲길을 따라 걷다보니 구비지고 냇물을 만나고 암담한 바위산을 만나기도 하고

바위산이 너무도 높아서 복숭아밭은 진짜 있는 것인지 보이지도 않고 ...

삶의 문제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저 높은 곳에서 아래로,  큰 그림으로 바라볼 때

비로써 한껏 취할만큼 아름다운 복숭아밭을 발견하는 것 처럼

큰 그림을 바라보며 바로 코앞의 시련을 두려워 하지 않고 길을 인도해주실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믿으며

우리의 이상향을 향하여 굳건히 우리의 갈길을 걸어가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