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글쓴분들하고는 정 반대네요 전 부모님께 지금 이순간도 감사합니다. 어릴적부터 남들이 해봤다 하는고생은 빠지지 않고 해보며 자랐고 어둡다 못해 잊고싶어도 잊을수없는 사는게 지옥같은 유년시절을 보냈고 새엄마다 라고 소개해준 아줌마만 얼마전까지 해서 6번째군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도둑질을한건지 돈은 어디서나서 고등학교는 보내주시더군요 이런집안이지만 가족의 정은 넘치고 화목.... ㅎㅎ 꿈조차 꿔본적 없었습니다. 나는 중학교까지 아버지는 '때리는사람' 으로 만 알았을정도니까요 이틀당 한번꼴로 맞았습니다. 심지어 바둑판을 던져 머리를 맞고 기절한적도있었습니다. 나이 고작 7살에... 나를 낳은 어미를 욕하는데 어리다곤하지만 사내가 어찌 참았겠습니까. 국민학교,중학교를 남에집에 살며 보냈고, 고등학교는 아버지와 보냈습니다. 중2때부터 용돈은 3천원씩 일주일마다 받았는데 채 2달을 못가더군요... 알아서 벌었습니다. 신문도 돌리고 배달도 하고 기름도 넣고 그렇게 고3 취업직전까지 알아서 용돈벌어먹었습니다. 뭐그래바야 한달에 10마넌정도가 고작이지만요. (엄청큰돈이죠그래도그당시는) 취업을했습니다. 적금을 넣어줄테니 돈을 다 달라더군요 차비만 받아가라고... 줬습니다. 썼더군요. 관심없습니다. 먹고떨어져주니 더 좋은걸지도요. 뉴스만 보면 무슨놈에 욕을 욕을 쉬지도않더군요. 거기나오는 짓거리중 살인빼고 강간빼고 안해본게 없는사람이 누가 누굴욕하는건지... 저는지금 혼자살고있습니다. 어릴때는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 에서 독립할떄는 아 왜요. 어쩌라구요... 나중에말해요 (뚝) 지금은 전화와도 대수롭지않게 무시합니다. 보나마나 징징댈테니까요 어릴때 입술이 찢어지게 깨물고 맹세했습니다. 내아비가 죽으면 들짐승이 뜯어먹게 놔두고 장례도안해주기로. 머리털이나고 단 한번도 가족의 따듯함은 느껴본적이없고. 사치라고생각했습니다. 연약한마음이라면 벌써 자살이나 안했겟냐만 다행히 아버진 절 거의 싸이코패스 수준으로 강인한 아들로 키우셨습니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지독하게 지었죠... 6살때 어머니는 도망가시고 9살부터 혼자 도시락을 싸 학교에갔으며 15살부터 돈을벌기시작했고 19살에독립을시작했으며 24에 혼자 알아서 군생활을 성실히 마쳤습니다. 25에 내알아서 직장을 구했고, 꾸준히 일하는 중입니다. 부모님은 뭘해주었냐고하면 낳아주시고 멕이고 입히고 재우고 학교보낸거말고 또뭐가있는지 한참을 고민해야할것같습니다. 평생에 딱한번 이복동생인 여동생과 성지곡동물원에간적이있네요. 제 여동생 이름은 조윤영 입니다. 허나 지금은 최윤영 이지요. 가능한진모르겠는데 성을바꾸었다고 '소문' 만 들었습니다. 그게 제가 중학교졸업후니까... 10년넘게못본거군요 ;; 여동생 졸업식에 꽃다발 갓다주는데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어렴풋한기억에서 살아나질않아서 아는척 진땀빼며했습니다... 그래도 손주가 무슨죄냐며 이뻐해쥐는데 죄송하고 창피하더군요. 기억조차못해드리고.. 쩝 설날 추석은 집에서 지냅니다. 빨간날은 애인과 놀러다니구요. 아버지의 잔혹스러움에서 벗어난 저는 제가 얼마나 강하게 자랐는지를 사회에 나와서 비로소 알수있었고 뿌듯했습니다. 나약한 정신머리로 이내 쳐지고 좌절하는사람보다는 적어도 제가 '독하다' 소리들을지라도 잘 사는사람으로 생각되어서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키워주셔서. 하지만 아직도 전 가족애 이런거 잘 모르겠네요. 병으로 돌아가셨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위로를 드립니다. 하지만 제시각에선 왠지... 힘내어 추스리시고 일어나야하실때인걸로 보입니다. 제가너무 지독하다고 하실까봐... 좀 걱정은 앞섭니다만. 산사람은 살아야죠. 힘내시길 바랍니다... 얼른 잊고 훌훌털고 일어나시길.
27살 인간 쓰레기입니다...
전 글쓴분들하고는 정 반대네요
전 부모님께 지금 이순간도 감사합니다.
어릴적부터 남들이 해봤다 하는고생은 빠지지 않고 해보며 자랐고
어둡다 못해 잊고싶어도 잊을수없는 사는게 지옥같은 유년시절을 보냈고
새엄마다 라고 소개해준 아줌마만 얼마전까지 해서 6번째군요.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 도둑질을한건지 돈은 어디서나서 고등학교는 보내주시더군요
이런집안이지만 가족의 정은 넘치고 화목.... ㅎㅎ 꿈조차 꿔본적 없었습니다.
나는 중학교까지 아버지는 '때리는사람' 으로 만 알았을정도니까요
이틀당 한번꼴로 맞았습니다. 심지어 바둑판을 던져 머리를 맞고 기절한적도있었습니다.
나이 고작 7살에... 나를 낳은 어미를 욕하는데 어리다곤하지만 사내가 어찌 참았겠습니까.
국민학교,중학교를 남에집에 살며 보냈고, 고등학교는 아버지와 보냈습니다.
중2때부터 용돈은 3천원씩 일주일마다 받았는데 채 2달을 못가더군요...
알아서 벌었습니다. 신문도 돌리고 배달도 하고 기름도 넣고 그렇게 고3 취업직전까지 알아서 용돈벌어먹었습니다. 뭐그래바야 한달에 10마넌정도가 고작이지만요. (엄청큰돈이죠그래도그당시는)
취업을했습니다. 적금을 넣어줄테니 돈을 다 달라더군요 차비만 받아가라고...
줬습니다. 썼더군요. 관심없습니다. 먹고떨어져주니 더 좋은걸지도요.
뉴스만 보면 무슨놈에 욕을 욕을 쉬지도않더군요.
거기나오는 짓거리중 살인빼고 강간빼고 안해본게 없는사람이 누가 누굴욕하는건지...
저는지금 혼자살고있습니다.
어릴때는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 에서 독립할떄는 아 왜요. 어쩌라구요... 나중에말해요 (뚝)
지금은 전화와도 대수롭지않게 무시합니다. 보나마나 징징댈테니까요
어릴때 입술이 찢어지게 깨물고 맹세했습니다.
내아비가 죽으면 들짐승이 뜯어먹게 놔두고 장례도안해주기로.
머리털이나고 단 한번도 가족의 따듯함은 느껴본적이없고. 사치라고생각했습니다.
연약한마음이라면 벌써 자살이나 안했겟냐만 다행히 아버진 절 거의 싸이코패스 수준으로
강인한 아들로 키우셨습니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지독하게 지었죠...
6살때 어머니는 도망가시고 9살부터 혼자 도시락을 싸 학교에갔으며 15살부터 돈을벌기시작했고
19살에독립을시작했으며 24에 혼자 알아서 군생활을 성실히 마쳤습니다.
25에 내알아서 직장을 구했고, 꾸준히 일하는 중입니다.
부모님은 뭘해주었냐고하면 낳아주시고 멕이고 입히고 재우고 학교보낸거말고 또뭐가있는지
한참을 고민해야할것같습니다. 평생에 딱한번 이복동생인 여동생과 성지곡동물원에간적이있네요.
제 여동생 이름은 조윤영 입니다. 허나 지금은 최윤영 이지요. 가능한진모르겠는데
성을바꾸었다고 '소문' 만 들었습니다. 그게 제가 중학교졸업후니까... 10년넘게못본거군요 ;;
여동생 졸업식에 꽃다발 갓다주는데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어렴풋한기억에서 살아나질않아서
아는척 진땀빼며했습니다... 그래도 손주가 무슨죄냐며 이뻐해쥐는데 죄송하고 창피하더군요.
기억조차못해드리고.. 쩝
설날 추석은 집에서 지냅니다. 빨간날은 애인과 놀러다니구요.
아버지의 잔혹스러움에서 벗어난 저는 제가 얼마나 강하게 자랐는지를 사회에 나와서
비로소 알수있었고 뿌듯했습니다. 나약한 정신머리로 이내 쳐지고 좌절하는사람보다는
적어도 제가 '독하다' 소리들을지라도 잘 사는사람으로 생각되어서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키워주셔서. 하지만 아직도 전 가족애 이런거 잘 모르겠네요.
병으로 돌아가셨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위로를 드립니다.
하지만 제시각에선 왠지... 힘내어 추스리시고 일어나야하실때인걸로 보입니다.
제가너무 지독하다고 하실까봐... 좀 걱정은 앞섭니다만.
산사람은 살아야죠. 힘내시길 바랍니다...
얼른 잊고 훌훌털고 일어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