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이 왜 한국 문인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지를 느낀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바리공주 설화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 바리공주는 예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죽은 이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굿에 등장하는 무속신의 원조 격이다. '바리'를 '버린다'의 뜻으로 해석하여 무가의 내용대로 '버린 공주'로 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바리'를 발의 연철음(連綴音)으로 본다면 '발'은 우리말에서 광명 또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생산적인 뜻이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광명의 공주' '생명의 공주' '소생의 공주' 라는 뜻이다. 그리고 접미사 '데기'는 주로 부녀자를 낮춰 가리키며 '부엌데기' '소박데기'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
처음 제목을 보고 나는 이 책이 우리네 설화를 다룬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바리가 겪는 이야기는 설화도 고전도 아닌 현재다. 한반도는 물론 만주와 지구 반대편의 영국에까지, 바리의 먼 걸음만큼이나 고단하고 어두운 세계가 펼쳐져 있다. 남북한 분단과 이념 대립은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루 한 끼만을 그것도 풀죽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을 죽이려 들고 바리의 부모와 형제자매들도 이의 희생양이 되어 그녀와 멀어진다. 타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불법체류라는 멍에를 쓰고 불안한 삶을 사는 탈북민 바리는 결국 밀항선에 오르고, 빚과 함께 타국에 놓인다. 바리는 그 곳에서 - 꿈 속에서 그녀를 인도했던 커다란 장승과 닮은 - 무슬림 알리를 만나고 딸 홀리야 순이를 낳는다. 그 뒤 파키스탄의 종교 분쟁에 휘말린 동생을 찾으러 떠난 알리와 혼자 남은 바리. 만주에서 그녀를 보살펴주었던 샹 언니는 창녀가 되어 바리에게 돈을 빌리러 온다. 샹에게 잠시 맡긴 홀리야는 바리가 세탁을 하러 간 사이 돈을 훔쳐 달아난 샹으로 인해 죽게 되고, 이에 바리는 깨어나지 않을 듯한 깊은 꿈에 빠진다.
작가는 현실과 초현실을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친절한 줄바꾸기도 따옴표도 하나 없다. 바리는 사람들의 발을 마사지하며 그들이 안고 있는 고통으로 이입한다. 그 사람들의 고통에는 가족의 분열과 사랑하는 이의 배신과 그/그녀들의 가난과 외로움에서 비롯된다. 발을 주무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바리. 딸을 잏은 뒤 슬픔과 절망의 깊은 꿈 속에서 그녀는 피바다 위의 배에 타 있고 곁을 지나는 회색과 검정색의 수많은 배들엔 그녀가 증오했던 사람들이 악마의 형상을 하고서 타 있다. 아버지를 끌고 갔던 당원들과 언니들을 잡아가 인신매매했던 업자들, 밀항선에서 여자들을 강간하던 사내들과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샹까지도. 몽환 속에서 그녀에게 던져진 과제는 바로 용서다.
알리가 돌아오고 압둘 할아버지가 바리에게 말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이다. 우리가 약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저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거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타오르는 분노의 불꽃을 경고하나니 가장 불행한 자들만이 그곳에 이르리라.
황석영 - 바리데기
황석영이 왜 한국 문인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지를 느낀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바리공주 설화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 바리공주는 예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죽은 이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굿에 등장하는 무속신의 원조 격이다. '바리'를 '버린다'의 뜻으로 해석하여 무가의 내용대로 '버린 공주'로 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바리'를 발의 연철음(連綴音)으로 본다면 '발'은 우리말에서 광명 또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생산적인 뜻이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광명의 공주' '생명의 공주' '소생의 공주' 라는 뜻이다. 그리고 접미사 '데기'는 주로 부녀자를 낮춰 가리키며 '부엌데기' '소박데기'와 같이 쓰이는 말이다. -
처음 제목을 보고 나는 이 책이 우리네 설화를 다룬 이야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바리가 겪는 이야기는 설화도 고전도 아닌 현재다. 한반도는 물론 만주와 지구 반대편의 영국에까지, 바리의 먼 걸음만큼이나 고단하고 어두운 세계가 펼쳐져 있다. 남북한 분단과 이념 대립은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루 한 끼만을 그것도 풀죽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을 죽이려 들고 바리의 부모와 형제자매들도 이의 희생양이 되어 그녀와 멀어진다. 타국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불법체류라는 멍에를 쓰고 불안한 삶을 사는 탈북민 바리는 결국 밀항선에 오르고, 빚과 함께 타국에 놓인다. 바리는 그 곳에서 - 꿈 속에서 그녀를 인도했던 커다란 장승과 닮은 - 무슬림 알리를 만나고 딸 홀리야 순이를 낳는다. 그 뒤 파키스탄의 종교 분쟁에 휘말린 동생을 찾으러 떠난 알리와 혼자 남은 바리. 만주에서 그녀를 보살펴주었던 샹 언니는 창녀가 되어 바리에게 돈을 빌리러 온다. 샹에게 잠시 맡긴 홀리야는 바리가 세탁을 하러 간 사이 돈을 훔쳐 달아난 샹으로 인해 죽게 되고, 이에 바리는 깨어나지 않을 듯한 깊은 꿈에 빠진다.
작가는 현실과 초현실을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친절한 줄바꾸기도 따옴표도 하나 없다. 바리는 사람들의 발을 마사지하며 그들이 안고 있는 고통으로 이입한다. 그 사람들의 고통에는 가족의 분열과 사랑하는 이의 배신과 그/그녀들의 가난과 외로움에서 비롯된다. 발을 주무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바리. 딸을 잏은 뒤 슬픔과 절망의 깊은 꿈 속에서 그녀는 피바다 위의 배에 타 있고 곁을 지나는 회색과 검정색의 수많은 배들엔 그녀가 증오했던 사람들이 악마의 형상을 하고서 타 있다. 아버지를 끌고 갔던 당원들과 언니들을 잡아가 인신매매했던 업자들, 밀항선에서 여자들을 강간하던 사내들과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샹까지도. 몽환 속에서 그녀에게 던져진 과제는 바로 용서다.
알리가 돌아오고 압둘 할아버지가 바리에게 말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이다. 우리가 약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저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거다. 주께서 이르시기를, 타오르는 분노의 불꽃을 경고하나니 가장 불행한 자들만이 그곳에 이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