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강(松花江)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다가 보면 속말말갈(粟末靺鞨)이 사는 땅이 나오고, 이를 지나쳐 오백 리쯤 가다보면 흑룡강(黑龍江)과 맞닿는다. 이곳에 이르면 송화강을 따라 빽빽이 들어서 있던 삼림이 사라지고 퇴적토가 쌓여 검은 색을 띠고 있는 평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흑수말갈(黑水靺鞨)의 본거지였다.
부여성주(扶餘城主) 제형(諸兄)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집순(執順) 두 명과 군졸 이십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흑수말갈의 경계에 들어섰다. 흑수말갈의 군마 삼백여기가 쏜살같이 달려와 을지문덕 일행을 에워쌌다. 흑수말갈의 전사들 가운데 수염이 덥수룩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내가 화등잔만한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너희들은 누군데 허락도 없이 우리 흑수부의 땅을 침범했느냐?”
이에 을지문덕이 나서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고구려에서 온 부여성주 을지문덕이다. 그대들의 부족장을 만나러 왔으니 안내하라.”
고구려 성주라는 말에 말갈족 전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처음에 을지문덕에게 말을 건넸던 두목인 듯한 사내가 앞장을 섰다. 을지문덕 일행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긴장된 상태로 한나절을 달린 끝에 마침내 부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부족장으로 보이는 인자하게 생긴 노인이 나서서 을지문덕 일행을 맞이했다.
“나는 이곳의 부족장인 평당명로(坪黨明露)요. 그래, 대고구려의 성주님께서 이 먼 곳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이곳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흑수말갈의 부락에는 가옥들이 수백 채가 모여 있는데, 하나같이 흙으로 벽을 두르고 그 위에 가죽을 둘러 지붕을 만든 집들이었다. 평당명로는 그 가운데서 을지문덕을 가장 넓어 보이는 집으로 데려갔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부락의 원로로 보이는 노인들이 방안 가득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할 말이 뭔지 들어봅시다.”
“흑수부의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일러 드리러 왔소.”
평당명로의 인자한 얼굴이 굳어졌다.
“어찌 고구려에서 우리의 생계를 신경 쓰는지 모르겠구려.”
“고구려와 말갈은 본디 한 겨레나 다름이 없소. 속말부(粟末部)나 백돌부(伯咄部) 등 다른 말갈 부족들은 이미 우리와 뜻을 함께하고 있소. 그로 인해 그들은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유독 흑수말갈만은 우리와 거리를 두려 하니 안타깝소.”
평당명로는 어느새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은 따뜻하나 실은 우리에게 복속하라는 뜻이 아니오? 다른 말갈 부족들이 고구려에 복속한 대가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소리는 내 진작 듣고 있었소. 그렇지만 우리는 남에게 얽매여서 잘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 계속 사냥이나 해서 먹고 사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하오.”
평당명로의 반응이 싸늘했지만 을지문덕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흑수말갈의 약점을 꼬집기 시작했다.
“이곳 흑수 주변은 기온이 낮아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목축에 적합한 초지가 있는 것도 아니오. 오직 수렵이나 어로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또한 날이 추워지면 어려워지게 되오. 그렇다면 결국 끼니를 이을 방법이라고는 이웃 부락을 약탈하는 것뿐이오. 하지만 흑수부 이외에 다른 부락들은 모두 고구려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쳐들어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는 명백하지 않소?”
흑수말갈의 부족장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을지문덕의 말이 옳았다.
평당명로는 한풀 꺾인 음성으로 물었다.
“성주께서 말하는 방법이라는 걸 들어보기나 합시다.”
을지문덕은 주위에 앉아 있는 흑수부의 원로들을 둘러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흑수부가 살 길은 교역뿐이오. 지금 흑수부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라면 사냥을 해서 얻은 짐승의 가죽과 숲 속을 주름잡고 다니는 돼지가 있소. 여우나 담비의 가죽은 가공만 잘 한다면 상품으로 비싸게 팔 수 있고, 이곳의 돼지는 지방이 적고 육질이 좋게 때문에 부여성으로 끌고 와 판다면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을 것이오. 이런 식으로 특산품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교역하여 이문을 남긴다면 흑수부의 백성들도 얼마 안 가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그에 필요한 기술은 고구려에서 지원해줄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소?”
을지문덕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원로들은 구미가 당기는지 심하게 술렁거렸다.
“지금껏 고구려는 우리를 소흘히 대했는데, 이제와서 친근한 척 하는 이유가 뭐요?”
우락부락하게 생긴 젊은이가 반열에서 나와 항의조로 말했다. 그는 부족장 평당명로의 아들인 평당사요(坪黨使尿)로 한눈에 보아도 말갈족의 전사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을지문덕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나라의 태왕(太王) 폐하(陛下)께서는 흑수부(黑水部)가 변방에서 자주 소요를 일으키는 이유가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소. 폐하께서는 그대들이 걱정스러워 나를 보내신 것이오. 물론 우리도 변방에서 소란을 일으킨 벌로 돌궐(突厥)처럼 그대들을 핍박할 수 있소. 하지만 그것은 패도(覇道)의 길로, 천하의 주인이신 고구려의 태왕 폐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오. 폐하의 배려를 생각해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바라오.”
을지문덕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 자리에 모인 흑수말갈의 원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당명로 역시 을지문덕의 설득에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속말말갈을 비롯한 이웃을 약탈하지 마시오. 대신 고구려와의 교역을 통해 곡식과 베, 철제품 등 생필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익을 얻으시오. 그대들이 약탈을 해서 얻는 이익보다 고구려와의 교역을 통해 얻는 이익이 더 클 것이오.”
“그대의 말처럼만 된다면 우리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허나 고구려도 틀림없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터, 말씀을 해보시오. 요즘 수국(隨國)과의 관계가 껄끄럽다고 하던데 혹시 우리에게 군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오?”
평당명로는 당장 일방적인 혜택을 받으면 훗날 더 큰 댓가를 지불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웠다.
을지문덕은 흑수말갈 부족장의 근심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복속이 아니라 협력입니다. 그저 양방이 서로 힘을 합쳐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제야 평당명로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우리도 고구려의 뜻에 따르겠소. 흑수부의 다른 추장들을 설득하는 일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
평당명로와 을지문덕간의 대화를 경청하던 원로들의 얼굴에도 만족감이 나타났다.
이튿날부터 을지문덕은 흑수부의 여러 부락을 일일이 돌며 고구려의 입장을 밝히고 번영을 약속했다. 여기에 함께 간 평당명로의 설득까지 더해지니 흑수말갈의 여러 부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렇게 두어 달쯤이 지나자, 흑수부의 모든 부락은 고구려의 편에 서게 되었다.
흑수부 일을 마무리지은 을지문덕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갈 땅을 떠나 부여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끝까지 외면하던 흑수부의 합류로 이제 모든 말갈족들이 고구려에 복속하게 되었다. 이로써 고구려의 북변은 안정을 되찾았고 더불어 든든한 후원세력을 얻게 되었다. 제1차 여수전쟁(麗隨戰爭)이 고구려의 승리로 끝나고 양국이 한동안 휴전(休戰) 상태에 놓이면서 평화가 찾아왔지만, 을지문덕은 결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서북방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돌궐(突厥)이었다. 이 당시 돌궐은 수국(隨國)과 힘을 겨룰 만큼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강성해진 수국으로 인해 남방으로의 진출이 어려워지자, 송화강 서북쪽에 있는 실위(室韋)로 눈길을 돌렸다. 이 당시 실위 사람들은 돌궐과 수국, 고구려 삼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실위의 부족들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했기에 돌궐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거란에 이어 실위를 복속시킨 돌궐의 지도자 목간가한(木杆可汗)은 실위의 각 부족에 토둔(吐屯)을 두고 이들을 통치했다. 실위 사람들은 굴욕감을 느꼈지만 돌궐의 강압에 못 이겨 받아들여야 했다.
을지문덕은 실위까지 제압한 돌궐이 고구려로 세력을 뻗쳐올까 우려했다. 돌궐은 양원태왕(陽原太王) 재위기인 551년에 고구려를 침범했던 전력(戰歷)이 있었다. 수국과 대립하고 있는 이때에 돌궐까지 가세한다면 고구려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을지문덕은 수국과 휴전을 하고 있는 동안 돌궐을 견제하기로 결심했다.
돌궐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양국 사이에 완충지대를 설정해 놓는 것이었다. 을지문덕은 그 역할을 실위가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실위를 해방시켜 고구려의 우방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을지문덕은 나라를 위해서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호위무사 삼십여 명만 거느린 채 실위 땅으로 말을 몰았다. 이때가 603년 가을 무렵이었다.
을지문덕은 먼저 부여성의 북쪽, 송화강 서쪽 건너편에 위치한 남실위(南室韋)의 오라호부(烏羅護部)를 찾았다. 그는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패기와 강단을 간직한 전사인 오라호부의 대추장 나단(羅檀)을 만났다.
“요즘 실위 땅에서 토둔의 횡포가 심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당하고만 계실 겁니까?”
이 당시 돌궐이 실위 땅에 설치한 토둔의 임무는 여러 부족들로부터 공납을 거두어들이는 일과 돌궐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부임한 돌궐인 토둔은 가한에게 바치는 공납 이외에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많은 재물을 수탈했다. 이렇게 토둔의 착취가 점차 극심해지자 각 부족들의 반감도 차츰 커져 갔다.
“내 안 그래도 끓어오르는 분기를 간신히 참고 있소이다.”
나단은 아직 혈기가 왕성하여 노기를 다스리기 어려운지 얼굴이 심하게 붉어졌다.
을지문덕은 나단의 속내를 간파하고 더욱 부추겼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입니까? 실위의 부족들이 힘을 합친다면 돌궐을 물리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실위의 부족들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우리 고구려도 물심양만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돌궐에 대한 나단의 적개심이 을지문덕의 부채질로 더욱 활활 타올랐다. 나단은 금방이라도 칼을 빼어들고 토둔에게 달려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단 옆에 있던 부족의 원로인 타보소초(打步素草)가 제지하고 나섰다. 그는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읹히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돌궐의 세력을 몰아내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부족들이 힘을 합해 도우리라는 확신이 없는 마당에 어찌 경솔하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나단은 원로인 타보소초의 말을 듣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 분한 마음으로 따지면 당장이라도 토둔의 목을 베고 싶지만 이 일은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오. 다른 부족장들이 이 일에 동의한다면, 내가 선봉에 서서 돌궐 놈들을 끝장내겠소.”
을지문덕은 원로의 방해로 나단이 거병(擧兵)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리 낙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오라호부의 힘만으로 실위 땅에서 돌궐 세력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나단에게 자신이 설득에 나설 것이니 실위의 부족장들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보름 후에 오소고(烏素固部)·이새몰부(移塞沒部)·새갈지부(塞曷支部)·화해부(和解部)·나례부(那禮部) 등 주변 부족의 추장들이 오라호부(烏羅護部)로 속속 모여들었다. 을지문덕은 회의 장소에 모여 앉은 추장들 앞에 나아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어떤 무리든지 다른 민족에게 간섭받으며 노예처럼 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나라의 시조이신 추모성왕(皺牟聖王)께서 나라를 건국하실 때만 해도 고구려는 비류수(沸流水) 가의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천하를 호령하는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성들의 용기와 화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위도 각 부족들끼리의 단합을 이루어 돌궐을 축출(逐出)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실위의 부족들은 대부분 수렵에 의존하고 있고 간간이 돼지와 소를 기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래서는 부족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돌궐의 토둔에게 착취를 당하니 당연히 부족민들이 굶주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돌궐 세력을 몰아내고 고구려와 교역을 한다면 수렵을 통해 얻은 짐승의 가죽과 사육한 돼지와 양을 실위에 필요한 철기와 식량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을지문덕의 말을 들은 실위의 추장들은 마침내 자신감을 얻었고 그 자리에서 돌궐을 몰아낼 항전을 봉기하기로 결의하였다.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돌궐을 이 땅에서 몰아냅시다. 천하 만방에 우리 실위의 힘을 보여줍시다.”
을지문덕의 설득으로 남실위의 부족들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을지문덕은 실위 추장들에게 약속한 대로 군사 조련과 병장기 공급을 지원하였다. 이에 감복한 실위의 부족들은 그를 칭송하고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이듬해, 나단이 이끄는 오라호부를 필두로 남실위의 부족들이 들고 일어나 그들의 땅에 뿌리 내리고 있던 토둔을 잡아 처형하고, 돌궐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남실위에서의 봉기는 북실위를 비롯한 주변 부족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그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따엥 자리 잡고 있던 토둔을 추방했다. 이로써 실위는 돌궐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고구려 병마대원수 을지문덕 전기』3. 폭군의 등장 (1)
● 유목민족을 고구려의 편으로 돌린 을지문덕의 외교전술(外交戰術)
송화강(松花江)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다가 보면 속말말갈(粟末靺鞨)이 사는 땅이 나오고, 이를 지나쳐 오백 리쯤 가다보면 흑룡강(黑龍江)과 맞닿는다. 이곳에 이르면 송화강을 따라 빽빽이 들어서 있던 삼림이 사라지고 퇴적토가 쌓여 검은 색을 띠고 있는 평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흑수말갈(黑水靺鞨)의 본거지였다.
부여성주(扶餘城主) 제형(諸兄) 을지문덕(乙支文德)은 집순(執順) 두 명과 군졸 이십여 명의 호위를 받으며 흑수말갈의 경계에 들어섰다. 흑수말갈의 군마 삼백여기가 쏜살같이 달려와 을지문덕 일행을 에워쌌다. 흑수말갈의 전사들 가운데 수염이 덥수룩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사내가 화등잔만한 눈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너희들은 누군데 허락도 없이 우리 흑수부의 땅을 침범했느냐?”
이에 을지문덕이 나서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고구려에서 온 부여성주 을지문덕이다. 그대들의 부족장을 만나러 왔으니 안내하라.”
고구려 성주라는 말에 말갈족 전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처음에 을지문덕에게 말을 건넸던 두목인 듯한 사내가 앞장을 섰다. 을지문덕 일행은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긴장된 상태로 한나절을 달린 끝에 마침내 부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부족장으로 보이는 인자하게 생긴 노인이 나서서 을지문덕 일행을 맞이했다.
“나는 이곳의 부족장인 평당명로(坪黨明露)요. 그래, 대고구려의 성주님께서 이 먼 곳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오?”
“이곳에서 드릴 말씀은 아니오.”
“그렇다면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흑수말갈의 부락에는 가옥들이 수백 채가 모여 있는데, 하나같이 흙으로 벽을 두르고 그 위에 가죽을 둘러 지붕을 만든 집들이었다. 평당명로는 그 가운데서 을지문덕을 가장 넓어 보이는 집으로 데려갔다.
방안으로 들어서니 부락의 원로로 보이는 노인들이 방안 가득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할 말이 뭔지 들어봅시다.”
“흑수부의 백성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일러 드리러 왔소.”
평당명로의 인자한 얼굴이 굳어졌다.
“어찌 고구려에서 우리의 생계를 신경 쓰는지 모르겠구려.”
“고구려와 말갈은 본디 한 겨레나 다름이 없소. 속말부(粟末部)나 백돌부(伯咄部) 등 다른 말갈 부족들은 이미 우리와 뜻을 함께하고 있소. 그로 인해 그들은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데, 유독 흑수말갈만은 우리와 거리를 두려 하니 안타깝소.”
평당명로는 어느새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은 따뜻하나 실은 우리에게 복속하라는 뜻이 아니오? 다른 말갈 부족들이 고구려에 복속한 대가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소리는 내 진작 듣고 있었소. 그렇지만 우리는 남에게 얽매여서 잘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 계속 사냥이나 해서 먹고 사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하오.”
평당명로의 반응이 싸늘했지만 을지문덕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흑수말갈의 약점을 꼬집기 시작했다.
“이곳 흑수 주변은 기온이 낮아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목축에 적합한 초지가 있는 것도 아니오. 오직 수렵이나 어로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 또한 날이 추워지면 어려워지게 되오. 그렇다면 결국 끼니를 이을 방법이라고는 이웃 부락을 약탈하는 것뿐이오. 하지만 흑수부 이외에 다른 부락들은 모두 고구려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쳐들어갔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지는 명백하지 않소?”
흑수말갈의 부족장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을지문덕의 말이 옳았다.
평당명로는 한풀 꺾인 음성으로 물었다.
“성주께서 말하는 방법이라는 걸 들어보기나 합시다.”
을지문덕은 주위에 앉아 있는 흑수부의 원로들을 둘러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흑수부가 살 길은 교역뿐이오. 지금 흑수부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라면 사냥을 해서 얻은 짐승의 가죽과 숲 속을 주름잡고 다니는 돼지가 있소. 여우나 담비의 가죽은 가공만 잘 한다면 상품으로 비싸게 팔 수 있고, 이곳의 돼지는 지방이 적고 육질이 좋게 때문에 부여성으로 끌고 와 판다면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을 것이오. 이런 식으로 특산품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교역하여 이문을 남긴다면 흑수부의 백성들도 얼마 안 가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그에 필요한 기술은 고구려에서 지원해줄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소?”
을지문덕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 자리에 모인 원로들은 구미가 당기는지 심하게 술렁거렸다.
“지금껏 고구려는 우리를 소흘히 대했는데, 이제와서 친근한 척 하는 이유가 뭐요?”
우락부락하게 생긴 젊은이가 반열에서 나와 항의조로 말했다. 그는 부족장 평당명로의 아들인 평당사요(坪黨使尿)로 한눈에 보아도 말갈족의 전사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을지문덕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나라의 태왕(太王) 폐하(陛下)께서는 흑수부(黑水部)가 변방에서 자주 소요를 일으키는 이유가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소. 폐하께서는 그대들이 걱정스러워 나를 보내신 것이오. 물론 우리도 변방에서 소란을 일으킨 벌로 돌궐(突厥)처럼 그대들을 핍박할 수 있소. 하지만 그것은 패도(覇道)의 길로, 천하의 주인이신 고구려의 태왕 폐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니오. 폐하의 배려를 생각해서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길 바라오.”
을지문덕의 이야기가 끝나자 그 자리에 모인 흑수말갈의 원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당명로 역시 을지문덕의 설득에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속말말갈을 비롯한 이웃을 약탈하지 마시오. 대신 고구려와의 교역을 통해 곡식과 베, 철제품 등 생필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익을 얻으시오. 그대들이 약탈을 해서 얻는 이익보다 고구려와의 교역을 통해 얻는 이익이 더 클 것이오.”
“그대의 말처럼만 된다면 우리에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허나 고구려도 틀림없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터, 말씀을 해보시오. 요즘 수국(隨國)과의 관계가 껄끄럽다고 하던데 혹시 우리에게 군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오?”
평당명로는 당장 일방적인 혜택을 받으면 훗날 더 큰 댓가를 지불하게 될까봐 걱정스러웠다.
을지문덕은 흑수말갈 부족장의 근심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복속이 아니라 협력입니다. 그저 양방이 서로 힘을 합쳐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제야 평당명로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반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소? 우리도 고구려의 뜻에 따르겠소. 흑수부의 다른 추장들을 설득하는 일은 나에게 맡겨 주시오.”
평당명로와 을지문덕간의 대화를 경청하던 원로들의 얼굴에도 만족감이 나타났다.
이튿날부터 을지문덕은 흑수부의 여러 부락을 일일이 돌며 고구려의 입장을 밝히고 번영을 약속했다. 여기에 함께 간 평당명로의 설득까지 더해지니 흑수말갈의 여러 부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이렇게 두어 달쯤이 지나자, 흑수부의 모든 부락은 고구려의 편에 서게 되었다.
흑수부 일을 마무리지은 을지문덕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갈 땅을 떠나 부여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끝까지 외면하던 흑수부의 합류로 이제 모든 말갈족들이 고구려에 복속하게 되었다. 이로써 고구려의 북변은 안정을 되찾았고 더불어 든든한 후원세력을 얻게 되었다. 제1차 여수전쟁(麗隨戰爭)이 고구려의 승리로 끝나고 양국이 한동안 휴전(休戰) 상태에 놓이면서 평화가 찾아왔지만, 을지문덕은 결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가 주목한 것은 서북방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던 돌궐(突厥)이었다. 이 당시 돌궐은 수국(隨國)과 힘을 겨룰 만큼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강성해진 수국으로 인해 남방으로의 진출이 어려워지자, 송화강 서북쪽에 있는 실위(室韋)로 눈길을 돌렸다. 이 당시 실위 사람들은 돌궐과 수국, 고구려 삼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실위의 부족들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했기에 돌궐의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거란에 이어 실위를 복속시킨 돌궐의 지도자 목간가한(木杆可汗)은 실위의 각 부족에 토둔(吐屯)을 두고 이들을 통치했다. 실위 사람들은 굴욕감을 느꼈지만 돌궐의 강압에 못 이겨 받아들여야 했다.
을지문덕은 실위까지 제압한 돌궐이 고구려로 세력을 뻗쳐올까 우려했다. 돌궐은 양원태왕(陽原太王) 재위기인 551년에 고구려를 침범했던 전력(戰歷)이 있었다. 수국과 대립하고 있는 이때에 돌궐까지 가세한다면 고구려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을지문덕은 수국과 휴전을 하고 있는 동안 돌궐을 견제하기로 결심했다.
돌궐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양국 사이에 완충지대를 설정해 놓는 것이었다. 을지문덕은 그 역할을 실위가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궐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실위를 해방시켜 고구려의 우방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을지문덕은 나라를 위해서 반드시 해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각오를 단단히 하고 호위무사 삼십여 명만 거느린 채 실위 땅으로 말을 몰았다. 이때가 603년 가을 무렵이었다.
을지문덕은 먼저 부여성의 북쪽, 송화강 서쪽 건너편에 위치한 남실위(南室韋)의 오라호부(烏羅護部)를 찾았다. 그는 이제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패기와 강단을 간직한 전사인 오라호부의 대추장 나단(羅檀)을 만났다.
“요즘 실위 땅에서 토둔의 횡포가 심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당하고만 계실 겁니까?”
이 당시 돌궐이 실위 땅에 설치한 토둔의 임무는 여러 부족들로부터 공납을 거두어들이는 일과 돌궐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지 감시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부임한 돌궐인 토둔은 가한에게 바치는 공납 이외에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많은 재물을 수탈했다. 이렇게 토둔의 착취가 점차 극심해지자 각 부족들의 반감도 차츰 커져 갔다.
“내 안 그래도 끓어오르는 분기를 간신히 참고 있소이다.”
나단은 아직 혈기가 왕성하여 노기를 다스리기 어려운지 얼굴이 심하게 붉어졌다.
을지문덕은 나단의 속내를 간파하고 더욱 부추겼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입니까? 실위의 부족들이 힘을 합친다면 돌궐을 물리치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실위의 부족들이 일어나기만 한다면 우리 고구려도 물심양만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돌궐에 대한 나단의 적개심이 을지문덕의 부채질로 더욱 활활 타올랐다. 나단은 금방이라도 칼을 빼어들고 토둔에게 달려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나단 옆에 있던 부족의 원로인 타보소초(打步素草)가 제지하고 나섰다. 그는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읹히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돌궐의 세력을 몰아내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부족들이 힘을 합해 도우리라는 확신이 없는 마당에 어찌 경솔하게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나단은 원로인 타보소초의 말을 듣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내 분한 마음으로 따지면 당장이라도 토둔의 목을 베고 싶지만 이 일은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오. 다른 부족장들이 이 일에 동의한다면, 내가 선봉에 서서 돌궐 놈들을 끝장내겠소.”
을지문덕은 원로의 방해로 나단이 거병(擧兵)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리 낙담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오라호부의 힘만으로 실위 땅에서 돌궐 세력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나단에게 자신이 설득에 나설 것이니 실위의 부족장들을 모아 달라고 부탁했다.
보름 후에 오소고(烏素固部)·이새몰부(移塞沒部)·새갈지부(塞曷支部)·화해부(和解部)·나례부(那禮部) 등 주변 부족의 추장들이 오라호부(烏羅護部)로 속속 모여들었다. 을지문덕은 회의 장소에 모여 앉은 추장들 앞에 나아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어떤 무리든지 다른 민족에게 간섭받으며 노예처럼 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 나라의 시조이신 추모성왕(皺牟聖王)께서 나라를 건국하실 때만 해도 고구려는 비류수(沸流水) 가의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천하를 호령하는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백성들의 용기와 화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위도 각 부족들끼리의 단합을 이루어 돌궐을 축출(逐出)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실위의 부족들은 대부분 수렵에 의존하고 있고 간간이 돼지와 소를 기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래서는 부족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더구나 돌궐의 토둔에게 착취를 당하니 당연히 부족민들이 굶주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돌궐 세력을 몰아내고 고구려와 교역을 한다면 수렵을 통해 얻은 짐승의 가죽과 사육한 돼지와 양을 실위에 필요한 철기와 식량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을지문덕의 말을 들은 실위의 추장들은 마침내 자신감을 얻었고 그 자리에서 돌궐을 몰아낼 항전을 봉기하기로 결의하였다.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돌궐을 이 땅에서 몰아냅시다. 천하 만방에 우리 실위의 힘을 보여줍시다.”
을지문덕의 설득으로 남실위의 부족들은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을지문덕은 실위 추장들에게 약속한 대로 군사 조련과 병장기 공급을 지원하였다. 이에 감복한 실위의 부족들은 그를 칭송하고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이듬해, 나단이 이끄는 오라호부를 필두로 남실위의 부족들이 들고 일어나 그들의 땅에 뿌리 내리고 있던 토둔을 잡아 처형하고, 돌궐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남실위에서의 봉기는 북실위를 비롯한 주변 부족들에게 자극을 주었고, 그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따엥 자리 잡고 있던 토둔을 추방했다. 이로써 실위는 돌궐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