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병마대원수 을지문덕 전기』3. 폭군의 등장 ⑵

대모달201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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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말말갈의 배신 행위를 응징하다

 

을지문덕이 말갈(靺鞨)과 실위(失韋)로부터 신망을 얻어 북변을 안정시키자, 영양태왕(嬰陽太王)은 그 공로를 높이 사서 을지문덕에게 북부욕살(北部褥薩)의 직책을 내려 부여성주(扶餘城主) 벼슬과 겸직하게 했다. 이로써 을지문덕은 북변을 총괄하는 막중한 직위에 올랐다.

 

을지문덕이 부여성주로 재직하는 동안 북변의 백성들은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한 걱정 없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으며, 말갈·실위 등과의 교역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백성들의 생활은 몰라보게 윤택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을지문덕이 부중에서 정사(政事)를 처리하고 있는데, 성주부의 입구를 지키는 군졸이 달려와 아뢰었다.

 

“대북진(大北鎭)에서 왔다는 상인이 성주님을 뵙겠다고 합니다.”

 

대북진은 오늘날 시베리아 지역의 하바로브스크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서 들이도록 하라.”

 

을지문덕은 평소에 성주부의 문턱을 낮추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잠시 후, 하얀 백곰 가죽을 짊어진 종자의 뒤를 따라 여우 가죽으로 만든 옷을 차려 입은 풍채가 좋은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눈이 시원하게 크고 수염이 무성한 것이 호남아라는 인상을 풍겼다.

 

“어서 오시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어서 나를 찾아온 것이오?”

 

상인들이 성주를 찾은 것은 의례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을지문덕은 변방의 교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아무런 대가 없이 이들의 어려움을 돌봐주고 있었다.

 

“저는 대북진과 부여성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대북진에 갔다가 기회가 닿다 북쪽에 흑수와 바다가 만나는 곳인 북빙해(北氷海)까지 가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날씨가 매우 추워서 사람이 살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순록(馴鹿)을 키우는 무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순록은 마치 사슴처럼 생긴 동물인데, 사슴보다는 몸집과 뿔이 훨씬 큽니다. 저는 이 동물이 하도 기이하여 가지고 있던 고구려의 물품을 건네주고 순록 한 무리를 샀습니다. 그것들은 지금 성주부 밖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백곰 가죽은 그들이 우정의 표시로 저에게 선사한 것입니다. 소인은 이 진귀한 것들을 태왕 폐하께 바치려고 하는데, 연줄이 없어 이렇게 성주를 찾아뵌 것입니다.”

 

을지문덕은 종자가 들고 온 백곰 가죽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과연 털이 희고 매끄러운 것이 고구려 땅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이런 진귀한 물건을 구할 수 있다면 그곳까지 교역망을 넓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순록은 나도 예전에 흑수부를 방문했을 때 본적이 있소. 그러나 백곰은 처음이오. 그 가죽이 참으로 아름답구려. 폐하께서 보시면 좋아하시겠소. 그대의 충심이 그러한데 내 어찌 돕지 않을 수 있겠소? 사람을 하나 붙여 줄 테니 그와 함께 따라 평양성으로 가시오.”

 

상인은 큰절을 올려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다음날 을지문덕은 말객(末客) 효농(效濃)을 불러 서찰을 건네주며 지시했다.

 

“왕궁에 도착하거든 이 서찰을 폐하께 올리거라.”

 

효농은 명을 받들고 상인과 동행하여 평양으로 향했다.

 

근 한 달이 지나서야 평양성에 도착한 효농 일행은 왕궁으로 가서 태왕께 알현을 청했다. 영양태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들은 시종의 안내를 받아 편전으로 들어갔다.

 

“그래, 부여성에서 왔다고? 북부욕살은 무고한가?”

 

효농이 공손히 예를 갖추고 태왕에게 아뢰었다.

 

“예, 무탈하옵니다. 북부욕살이 폐하께 바치는 서찰이옵니다.”

 

시위가 나서서 효농에게서 편지를 받아 태왕에게 전했다.

 

서찰을 펼쳐 들여다보던 태왕이 상인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이 서찰에 따르면 네가 대북진보다 더 북쪽 지방인 북빙해에 다녀왔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태왕이 관심을 보이자, 상인은 금방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습니다. 정말 귀가 얼어붙어 떨어질 정도로 추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눈 덮인 땅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위로 사람과 털빛이 매력적인 순록이 어우러져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상인은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순록이 사는 부락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북빙해란 오늘날 시베리아 오호츠크해와 캄챠카반도 지방을 말한다.

 

“그처럼 아름다운 곳이라면 짐도 한 번 가보고 싶구나.”

 

태왕이 관심을 보이자, 상인은 재빨리 백곰의 가죽을 펼쳐 보였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순백의 미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연 호피에 비견할 만큼 돋보이는구나.”

 

태왕의 칭찬을 듣고 신이 난 상인은 밖에 서 있던 다른 종자에게 눈짓을 해서 편전 앞마당으로 순록을 끌고 들어오게 했다. 기이한 모습의 짐승이 들어오자, 군신들이 함께 탄복했다.

 

“사슴 같지만 사슴은 아니구려. 마치 신선이 타고 다닌다는 전설의 신록(神鹿) 같구려.”

 

영양태왕은 한참 순록을 들여다보다가 좌우에 시립해 있는 신하들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북부욕살 겸 부여성주 을지문덕은 서찰을 통해 대북진에 변민위로사(邊民慰勞使)를 파견하고, 흑수 하류에 살고 있는 부족민들과 교역을 권장함으로써 이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청했소. 짐도 그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오. 이로 인해 우리 고구려의 힘이 더욱 멀리까지 뻗치게 될 것이오.”

 

신하들 역시 금방 그곳의 진귀한 특산물을 구경했기에 그들과 교류하는 것이 이득이 되리라 여겼다. 그래서 모두 태왕의 뜻에 찬성하였다.

 

영양태왕은 상인에게 큰 상을 내리고 앞으로 북방 교역에 더욱 매진할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발위사자(拔位使者) 창평운(滄坪云)을 북방 변민위로사로 삼아 대북진으로 파견하였다.

 

창평운은 그곳에 부임한 이후, 북빙해까지 교류를 확대하였다. 이로써 고구려의 세력은 멀리 순록의 땅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렇듯 변방 부족들에 대한 사전 정지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졌다. 송화강 중하류 유역에 있는 속말말갈(粟末靺鞨)이 난데없이 흑수말갈(黑水靺鞨)을 공격하여 십여 곳의 부락을 불태우고 1천여명의 부녀자들을 포로로 잡아 갔던 것이다.

 

속말말갈은 송화강 강가의 산림지대에 살고 있던 말갈의 일종으로 그동안 고구려의 우방으로 충실하게 의무를 다해 왔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고구려는 든든한 후원자의 역할을 했다.

 

속말부는 고구려의 힘을 믿고 흑수부를 비롯한 이웃 부족들을 위협하여 가축들을 정기적으로 상납받았다. 그런데 흑수부가 고구려 편에 서면서 동등한 입장에서 보호를 받게 되자, 속말부에게 바쳤던 공물을 중단했다. 이에 격분한 속말부가 흑수부를 쳤던 것이다.

 

흑수부의 전갈이 당도하자 을지문덕은 서둘러 영양태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동시에 기총(旗總) 좌형도(左兄途)를 속말부에 보내 이 일에 대한 항의를 하도록 하였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흑수부를 약탈했는가? 이미 알다시피 저들은 우리의 충실한 속민이 되지를 않았느냐?”

 

평소에 고구려라면 쩔쩔매던 속말말갈족도 이번만큼은 강하게 반발했다. 속말부의 부족장 걸유서(乞由徐)를 대신해서 돌지계(突地稽)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대국도 알다시피 다른 부족들은 넓은 초원에 위치하여 가축들을 쉽게 키울 수 있소. 허나 우리는 척박한 숲에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구려를 등에 업고 주위를 협박해서 가축들을 빼앗는 것이오. 그런데 부여성주 을지문덕이 흑수부와 통교함으로써 우리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소. 우리도 살아야 하니 어쩌겠소? 어디 마음대로 해보시오.”

 

돌지계는 원래 동옥저(東沃沮) 땅이었던 동해안의 해주(海州) 출신으로 신라로 귀화하여 제1차 여수전쟁(麗隨戰爭) 때에는 신라군의 밀정으로 활동하면서 신라가 고구려 남부 땅을 잠식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제1차 여수전쟁이 고구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자 이에 위협을 느낀 신라는 602년에 군사를 간성으로 물렸다. 이때 돌지계도 같이 도망치려 했지만 신라 측으로서는 효용가치가 없어진 밀정을 더는 거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돌지계는 고구려나 신라 어느 쪽으로도 돌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후, 그는 혈혈단신으로 이리저리 떠돌다가 압록수를 넘어 송화강 유역까지 흘러들었다.

 

돌지계가 속말말갈족이 사는 땅에 도착해 보니 모든 것이 열악했다. 그들은 숲의 나무 위에 오두막을 만들고 싸리로 만든 화살로 멧돼지나 사냥하면서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 기술과 지식을 동원하여 말갈 사람들을 깨우쳤다. 그러자 부족장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딸을 내려 사위로 삼았다. 그리하여 돌지계는 금세 부족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송이버섯과 밤, 그리고 건어(乾魚) 등 그대들이 물품을 비싼 값에 구입하고 곡식과 베를 싸게 공급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흑수부도 한 식구가 되었으니 서로 다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좌형도는 좋은 말로 설득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우리가 잡은 포로들을 노비로 팔면 곡식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소. 그러니 가서 성주님께 전하시오. 우리도 이제는 자립하겠다고.”

 

좌형도는 돌지계가 고구려에 반기를 들 요량임을 간파했다. 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부여성으로 돌아왔다.

 

을지문덕은 이번 일을 절대 좌시할 수 없다고 여겼다. 고구려의 천하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리는 무력(武力)으로 응징함으로써 그동안의 유화책(宥和策)으로 인해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지 모를 변방의 부족들에게 경고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때마침 영양태왕도 전령을 보내 5천명의 기병으로 속말부를 정벌하라는 어명(御命)을 내렸다.

 

을지문덕은 부하 장수인 효농과 좌형도를 데리고 3천여명의 군사를 인솔하여 송화강의 중류에 있는 속말수(粟末水)로 행군하였다. 을지문덕은 화공(火攻)을 쓰면 숲에서 생활하는 말갈족에게 생활 터전이 없어진다는 우려에서 배를 타고 속말수를 따라 나아가 숲 속의 말갈 군사를 피하여 강가에 있는 마을을 점령하기로 하였다. 말갈족들이 살고 있는 숲에는 사람과 가축이 마실 물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을지문덕의 전략에 따라 고구려군은 제때에 속말수에 도착한 흑수부의 전사들과 함께 신속하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 인근의 큰 부락 대여섯개를 일시에 들이쳤다. 강변 마을에 대한 고구려군의 기습적인 공격은 숲에서 전투를 치르려던 돌지계의 작전을 무력화시켰다. 본거지를 잃은 속말말갈의 부족장 걸유서는 할 수 없이 부하들을 이끌고 을지문덕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빌었다.

 

한편 돌지계는 후환이 두려워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더불어 야음을 틈타 거란족이 모여 사는 요서의 송막을 향해 도망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