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곰돌이 푸우 인형탈을 쓰고 다닌 이야기....

이영진2011.01.18
조회1,604

 

 

 

 

 

0.

잠이 오지 않는

새벽녘...

 

비록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글 쓰는 쪽에 몸을 담고 있었던 적이 있긴 하지만-

지나온 기억들을 정리할 겸

혹시나 저와 인연이 닿았던 분들을

-지인들 말고-

찾아볼 수 있을까 하고

이야기가 길어질 듯하지만

끄적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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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약했던 시작

 

 

거의 2년 정도 되어 가는군요

곰돌이 푸우 인형탈을 쓰고 다닌지도...

 

대학 3학년까지 학업을 마치고

생일 미역국을 먹고 군입대를 했습니다

 

2년 후 무사히 전역을 했고

바로 복학을 못해서

1년 간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집이랑 가까웠던

에버랜드에서 구슬아이스크림 열심히 팔면서

 

가끔 심심하거나 손님이 뜸할 땐

로봇처럼 마네킹처럼 흉내를 내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2007년 10월 말부터 2009년 11월 말까지

저를 목격하신(?) 손님이 꽤 있으리라 봅니다만...^-^;

그때도 한창 일을 하고 있었을 때도 

절 기억해주셨던 손님분들이 있었지요.

사진을 찍었거나 이야기를 나누었거나 나중에 다시 봤을 때도

알아봐주셨던 분들...

여러 모로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서있는 노동에도

웃음을 나눌 수 있었기에...

사파리 매장과 정문 입구 근처를 비롯한

구슬아이스크림 매장에서

저를 보셨던 분들 찾아봅니다...-댓글주세요-

기억이 나실런지 모르겠지만...-

 

-위 사연과 앞으로의 사연과 연관되어 글을 게재했던

여동생의 글인 '우리 오빠는 프리허그하는 곰돌이 푸우입니다'가

톡에 오르기도 했지요-

 

그리고

다시 복학했을 때

너무 길어져버린 공백기 탓에

글을 쓰는 실습이 많은 전공수업에서

다시 글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남들과 다른

경험을 하건 체험을 하건 모험을 하건

뭔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인형탈을 구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방법을 도출하려다가

어찌하여 그런 결론이 내려졌는지

그당시 저로서도 황당했지만(?)

 

일단 2002년 월드컵이 막 시작될 무렵

명동에서 인형탈 알바를 하루 했었던 기억도 있었고

 

교수님 강의에서 들었던

페르소나 라는 단어

-잘 모르시면 검색해보세요 ^-^;-

 

삭막한 도시사람에게 주는 뜻하지 않은 즐거움??

 

정말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보았습니다

대여는 몇 번 해보는 거라면 일시적으로 좋긴 하겠지만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고

 

구입하는 건 초기 투자비용이 들더라도

여러 모로 언젠가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해서

가장 싼 곳을 찾아 다람쥐 인형탈을 주문제작했습니다

-롯데월드 너구리도 아닌 다람쥐도 아닌 어정쩡한 녀석이었던 ㅎ-

 

용인 집에서 인형탈을 들고

좌석버스를 타고 서울 학교로 통학을 하는데

 

강남역 종점...

버스 종점에서 하차하면서

처음 인형탈을 쓰고 등교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사람들이 왠지 나만 쳐다보는 거 같고

괜스레 창피했는지

분명 날 알아볼 수 없을 텐데도

다리가 어찌나 후덜거리는지 참...

처음 몇 걸음 떼기가 어려울 지경이었습니다

 

차츰 적응을 하고 난 뒤에

지하철 입구로 들어섰고 

태연하게  갈 길을 갔습니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

재밌게 쳐다보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다양한 반응에서

점점 내가 의도했던 걸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

사람들의 시선

단어들이 하나 둘씩 조합이 되며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체험을 바탕으로 한 희곡은

졸작이 되어버렸지만

귀중한 체험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안타깝게도

그 다람쥐탈 인형은  

학교 내에서 인적이 드문 곳에

강의받는 동안만

잠시 숨겨놓는다고 숨겨놓았는데

누군가의 손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금전적으로 아까운 마음도 있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일단 글을 쓸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하루 이틀 수소문해보다가

체념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상한 체험은

그걸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2. 다시 만난 인형탈

 

 

한 학기를 마치고

사정상 다시 1년 휴학을 한 후

알바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전에 했던 체험이 너무 짧게 끝난 것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다시 1년 여만에

인형탈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볼 만한 곰돌이 푸우 인형탈을...

 

그렇게

전에 주문했던 곳을 통해

인형탈을 받았습니다

그나마 이상하게 느낄 만큼 많이 조잡하진 않아서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ㅎ

 

근데 더이상 인형탈을 가지고

뭔가 해야 된다는 뚜렷한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뇌리속에 박힌

것은

 

프리허그

 

학교 내에서 잠깐이나마 작은 이슈였지만

무심하게 사람들을 지나쳤던 다람쥐 체험(?)보다

무언가 더 학생들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었는지...

어찌 되었건 프리허그를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된 것이었습니다

 

휴학 중이었지만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마침

새내기들이 막 들어오고

싱숭생숭한 봄바람 불어오는 시기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보이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스케치북에

'프리허그 안아드립니다'라고 써놓고

한 대학 건물 앞에 서있었습니다

 

처음엔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던지라

시간에 쫓기듯 그냥 지나쳐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잠시 쉬려고 앉아있던 저에게

먼저 다가왔던

한 여학생

 

왠지 모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잠시 멍때리고(?) 쉬고 있는데

먼저 다가와주다니...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거였는데...

프리허그 하겠다고 시작한 건 나였는데...

감동을 드리고자 했던 건 나였는데...

 

토닥토닥 서로의 등을 두들기고나서

그 학생의 힘내라는 말에

저는 기운을 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으로 나섰습니다

 

서너 시간 동안 서있으면서

다리는 아파왔지만

300명 정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프리허그를 하며

또다른 감동을 몸소 느꼈습니다

 

소소한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일에

뿌듯함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단 하루였지만 강렬한 추억을 남기고

 

복학하고 나서는

곰돌이 푸우 인형탈은

그냥 통학용 모자(?) 정도로 쭉 애용했고

가끔 바깥 나무벤치 낮잠을 잘 때

베개로 대체되기도 하면서

 

이상한 사람과 재미있는 사람 사이를 오가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마지막 학기 동안

나름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거나 누군가에게 찍혔고

학교 신문사에서 나와 인터뷰하고 신문에 실리기도 했고

안면이 없는 학생의 레포트 주제와 관련된 인터뷰 부탁을받기도 했습니다

 

소소하지만

보통 사람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겪으며...

졸업의 아쉬움을

곰돌이 푸우를 통한 웃음 전파로 달래며 

마무리짓게 되었습니다...

 

 

3. 부가된 새로운 의미

 

 

종강을 하고

마지막 겨울방학 동안

곰돌이 푸우 인형탈의 보조적인 의무를 부여되는

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성명학 공부였습니다

 

졸업을 하고 무얼 할 것인가

애초부터 글을 잘쓰는 천재도 아니었고

자격증이 있거나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 회사에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연말 즈음에

우연치 않게 보게된  방송에서

네임컨설팅이라는 알게 되었습니다

 

일명 이름풀이를 하거나 작명을 할 수 있는

성명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성명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부들의 부업으로서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하게 되면

돈을 벌 수 있으리라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젊은 사람들은 웬만해선 쉽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 거라 마음도 약간 있었습니다

그만큼 젊은 피(?)로서 뭔가 특별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거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교육설명회를 듣고

수강을 하고나니

역시나 대부분 평생직장으로 삼거나

적당히 재미삼아 하는 정도의

부모님 세대나 그 이상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 또래는 한 명정도?

 

어찌 되었건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하고

- 어떤 분은 무섭기까지 하다고 -

이름의 중요성을 배우고

이름에도 인생의 흐름을 풀이할 수 있는 기운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론을 알았으니 실습을 해야겠는데...

실습교육과정이 따로 있긴 했지만

일단 시작은 가족들과 가까운 친지, 지인들부터였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찾아나서기로 시작한 곳이

사주, 타로, 관상 등

가볍게 운명과 관련된 것에 관심이 많을 법한 

젊은이들이 많은 캠퍼스 찾아다녀보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맨 처음 찾아간 곳

역시 모교

 

졸업을 하고 다시 찾은 모교의

봄향기 가득한 캠퍼스는

예전처럼 활기차보였습니다

 

한 대학건물 중간지점 

쉴 수 있는 쇼파가 있는 곳에서 

곰돌이 푸우 인형탈은 모자에서 

무료로 이름풀이한다는 써놓은 스케치북 팻말에

받침대가 되었고

돌아갈때는 다시 모자가 되었습니다

 

모교에서 열흘 정도

그 이후로는 서울권 내 여러 대학과

집 근처 시내버스타고 갈 수 있는 주변 대학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실습을 해온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2500명 정도-

 

모자처럼 쓰고 다녔던

곰돌이 푸우 인형탈은  

정말 애지중지하는 모자처럼 되어버렸고

 

이젠 나갈 때 쓰고 가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한창 더울 7-8월이나

비 많이 올 때 말고는 

 

통학할 때나 이름풀이를 하러 갈 때

항상 쓰고 다녔으니

허전하다고 할만한 정도지요

 

인형탈의 시야가 좁아 발견 못해서 부딪힌 몇 분...

낯선 모습에 당황하며 울던 아기...

뜻하지 않는 만남에 살짝 놀라신 분들...

 

여러 모로 폐를 끼쳤던 경우도 많았지만

 

고생한다며 한 마디 해주시던 할아버지...

호탕하게 웃으며 말 걸어주신 할머니...

해맑게 웃으며 고사리같은 손으로 인사하던 꼬마들과

넉살좋게 사진같이 찍자고 했던 젊은분들...학생들...

 

비록 얼굴을 맞댄 채 스쳐간 인연은 아니었지만

곰돌이 푸우 인형탈을 쓰고 다니며 작은 목표로 삼았던

 

지루하거나 평범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잠깐이나마 미소 정도라도 지을 수 있었다면...

 

그걸로나마 진심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일단 목표는 사주카페같은 곳처럼

어느 커피숍 같은 곳에서

손님들에게 이름풀이 해드리고

작명 개명 상담해드리고 하는 거지만

 

취직하기 전까진 앞으로도

이곳저곳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곰돌이 푸우로 인사하고

자리잡으면 이름풀이를 해드리며

다닐 것 같습니다

 

스쳐가는 인연 속에 운명이 달라지듯

그 운명이 이어져 좋은 사람 만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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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꼼꼼하게 읽어보시고

곰돌이 푸우를 보았거나 사진을 찍으셨던 분들

이름풀이를 받았거나 했던 분들

댓글로 안부 좀 전해주이소~

 

그리고 진정

이름 때문에 고민이거나

자신의 인생 흐름이 알고 싶거나

애인과의 이름궁합이 궁금하거나

새로 태어날 아기의 좋은 이름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면

 

'방명록'으로 -비밀글이어야 하면 일촌도 받습니다-

글 남겨주세요 / 쪽지나 답글로 답변해드리겠습니다

- 직업이랑 (대학생이면 전공) 나이 정도

같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