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0.5초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답은 해야지. 저사람이 편해질 수 있는 대답을 해야지. 그런데 마음을 들켜버리는 표정과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고개는 왼쪽으로 45도 내리고 바닥을 쳐다보며 힘겹게 입을 떼었다.
“오빠가 마지막 하자며.”
아마, 내가 조금만 덜 긴장하고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긴장의 수준 정도 때문이 아니라 이제 나는 열 몇살의 소녀가 아니니까 이제 나는 서른 살의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모든 마음을 다 들키면서도 동시에 덤덤한 반응을 한 거겠지.
“우리는 어쩔 수 없잖아. 마지막 해야지.”
‘그래, 어쩔 수 없잖아. 근데 정말 어쩔 수 없는거야? 그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핑계에 불과한 것 아니야?’
오후 5시 25분. 만난지 45분 째,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하고 만난 것인데도, 그래도 그를 보고 그와 함께 눈 맞추고 웃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살짝 설레는 긴장감과 들뜨는 마음이었는데 만나고 45분이 되자 ‘마지막’이라는 단어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9일째, 4시 40분 약속시간 10분 지난 후,
통유리로 된 2층의 커피숍 Justin이 20미터 앞에 보인다. 오늘은 일부러 회색 티셔츠에 빨간 가디건, 청바지에 부츠를 신었다. 나와의 약속일까 아니면 그에게 내 단호한 의지를 보이려고 한걸까. 화장도 기초적인 것만 했다. 남색 코트에 갈색의 머플러. 특별할 것 없는 의상. 그래도 살짝 파우더를 꺼내서 얼굴 상태를 확인한다. 그래, 이정도면 됐어. 오빠를 위해서 일부러 이쁘게 차려입지 않았으니까 됐어.
두꺼운 카페 통유리문을 열자, 그의 모습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있다. 나를 발견한걸까. 웃는듯 아닌듯 모르겠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음이 쩌릿하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지 않는구나. 나는 애써 열심히 웃어 보이고 그에게 다가간다.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내 모습이 오늘은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안경 안 끼고 나왔네.”
“오늘은 좀 차갑게 보여야할 것 같아서.”
인상을 부드럽게 보이려고 도수를 넣지 않은 검정색 뿔테안경을 낀다고 얘기했었는데, 오늘은 나를 만나기 때문에 일부러 안경을 끼지 않았다고 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오빠도 나처럼 오늘을 위해서 일부러 신경쓴거구나. 나와 비슷한 이유로. 차갑게,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런 것도 통하는건가 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너무나 그동안 누군과의 통하는 느낌에 굶주려 있었던 걸까.
“모임이 있었는데, 그냥 나왔어. 사람들은 지금 술 마시고 있어.”
“나는 오빠가 연락 안할 줄 알았어. 만나자고 안할 줄 알았어.”
“어떻게 그러니, 어제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나한테 오빠 이미지가 그래. 나한테 이미지가 이래서 어떡하냐.”
“그건 상관없어.”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모임이었을 것 같은데 일부러 나왔다고 한다. 또 속으론 까르르 웃음이 난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 이렇게 와주었구나.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를 위해서 나와준거구나. 나를 위해서. 그래도 바로 마음이 또 싸르르 아파온다. 나한테 그런 이미지인게 상관없다고? 거짓말.
오빠의 표정은 알듯 모를 듯 하다. 처음 본 날, 함께 이야기할 때는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고 깔깔거리며 오빠를 놀렸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오늘의 오빠 표정은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못 읽겠다. 사실은 오빠는 여전히 얼굴에 다 드러났던 것인데, 나에 대한 무덤덤한 감정, 부담스러운 감정이 다 드러났던 건데 내가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읽히지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걸까. 살짝 슬퍼진다.
“어제 친구랑 술 마셨어. 그때 오빠랑 전화하고 이야기했던 거야.”
“술 마신줄은 알았어.”
“어제 많이 취했을 때 전화통화한거 였어.”
“진짜? 그럼 오늘 안 만나도 됐을 뻔했네.”
“그런게 어딨어. 문자에는 다 남아 있거든?”
나쁘다. 그럼 그저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나왔다는 거야? 나는 오빠가 내일 보자고 해서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혹시나 오빠가 연락하지 않을까봐 혼자 기다리지 않는 척 스스로 숨기는 바보 같은 짓을 해가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나쁜 놈이다. 내가 나빴어. 미안해.”
“나는 내가 지금 화내야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
“...”
“솔직히 너가 싱글이고 솔로였으면 내가 진짜 잘못한거고 나쁜건데, 지금 니 상황은 내가 더 화낼 수도 있는 상황이야.”
“나도 알아. 그래서 화가 안나는 건지도 몰라.”
“우리 같이 그런거잖아.”
“난 아니지. 오빠가 꼬셨잖아.”
“내가 꼬셨다고? 별로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은 그랬지. 그치만 몸으로 엄청 들이댔잖아.”
“그런가.”
그래도 내 마음은 찢어져. 상처받았어. 난 오빠가 좋아졌단 말이야. 사람을 이렇게 만든게 누군데. 그래. 미안하다. 내가 너무 관심 받는 것에 굶주려 있었나보다. 그래서 그냥 세상 사람들 다하는 하룻밤 잠자리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날 나를 꼬시기 위해서 보여줬던 그 행동들에 마음이 왕창 흔들렸나보다.
“그래, 내가 하룻밤은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를 하겠어. 그런데 두 번째 날은 뭐야? 첫날 그러고 나서 나도 정리하려고 했어. 그런데 오빠가 다음날 만나자고 했지. 그래서 무슨 소리 하나 들어보기나 하자 싶어서 만났어. (사실은 보고 싶었어.) 그런데 두 번째 날도 오빠 나한테 그랬잖아.”
“미안하다. 내가 진짜. 얘기했잖아. 니가 도화살이 있는거 같다구.”
뭐가 미안하다는거야. 도대체 뭘까. 두 번째로 나를 불러내서 또 나에게 온갖 관심 있는 남자처럼 군건 무슨 의미인거야. 왜 그랬어, 나한테. 이렇게 약해져있고 누군가의 사랑에 목말라 있어서 누가 다가오기만을 바라고 있던 나에게. 그래. 오빠는 내가 그런 상황인지 몰랐을테니까.
“여자친구랑은 얼마나 됬어?”
“이년.”
“여자친구 있는데 나한테 왜 그랬어?”
“너가 신랑이랑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도 여자친구랑 말 못할 그런게 있는 거야.”
“그렇구나.”
“그냥 내가 솔직히 이야기할까. 우리 진짜 오늘 마지막이지?”
“그래, 얘기해봐.”
“나 사실은 여자친구 없어. 거짓말 한거야. 그래야 니가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아서.”
“정말?......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무너졌다. 갑자기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를 떼어내기 위해서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예상은 했었지만 그게 사실일 줄이야. 눈앞에 멍해졌다. 여자 친구가 없었다구. 그러면 정말 내가 싫었다는 거잖아. 나를 벌레 떼어내듯이 떼어내려고 그랬다는 거잖아. 그것도 가장 간편한 방식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들켰나보다. 갑자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왜그러느냐고. 해야할말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몇 초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혼란스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오빠에게 그렇게 특별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내 번역기는 오빠의 말을 해석했고 그것이 그 잠깐 나를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마비시켰다. 그대로 느끼기에는 너무나 아픈 사실이니까. 말을 더듬거리면서 힘겹게 이었다.
“나는...너무 당황스럽네. 내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빠를 만나서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거구. 그런데 내가 너무 외롭고 힘든 상황이라 내 경계를 지키지 못했구. 그래서 이렇게 되버렸는데, 오빠는 나를 떼어내려고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을 했다구...”
“왜 그렇게 생각해. 그런게 아니라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한거야. 너 여자친구 후보에 올려놨었어. 그런데 내가 6년 만에 시험에 붙은거잖아. 그래서 잘 고르고 싶었어. 너랑 사귀어볼까, 만나볼까 생각도 했었어. 난 그냥 재고 있었던 거야.”
거짓말. 재고 있었는데 왜 끝내려고해. 왜 떼어내려고해. 이 생각도 잠시, 나는 내가 그의 여자친구 후보였다는 말에 겨우 마음을 추스렸다. 나 왜 이렇게 약해빠졌니,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 몸과 마음의 촉수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쪽으로 계속해서 말들을 짜 맞추고 있다.
“니가 남편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그냥 스릴 있게 만나볼 생각도 했어. 그런데 남자친구랑 남편은 다른거잖아. 그건 범죄야. 그래서 우리는 안되.”
“범죄라고? 하하하.”
“근데 너 결혼하고 바람핀거 내가 처음이야? 진짜? 아니지?”
“진짜 처음이야. 난 작년까지는 바람피면 절대 안되는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작년에 내가 너무 힘들었어.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힘든데 바람피면 왜 안되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제 바람 피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거 뿐이야.”
“남편한테는 안미안해?”
“안 미안해. 첫날 그러고나서 솔직히 복수했다는 생각에 통쾌했어.”
“왜? 남편도 바람피웠어?”
“아니. 그런건 아니고. 아니 그건 내가 알 수 가 없지. 그냥 나를 너무나 아프게했으니까.”
“그래도 사랑했으니까 결혼했을거 아니야. 진짜 안미안해?”
“흠...그거 알아? 많이 사랑할 수록 더 많이 미운거. 그래 처음엔 많이 사랑했지. 그렇지만 내가 얘기했잖아. 복수한 것 같았다고.”
like befere sunrise ... 1
Like before sunrise.
만난지 9일째 @cafe Justin
“마지막이니?”
그가 물었다. 마지막. 마지막이니? 어제 문자로도 나에게 물어 보았지.
마지막이니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0.5초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대답은 해야지. 저사람이 편해질 수 있는 대답을 해야지. 그런데 마음을 들켜버리는 표정과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고개는 왼쪽으로 45도 내리고 바닥을 쳐다보며 힘겹게 입을 떼었다.
“오빠가 마지막 하자며.”
아마, 내가 조금만 덜 긴장하고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아니 긴장의 수준 정도 때문이 아니라 이제 나는 열 몇살의 소녀가 아니니까 이제 나는 서른 살의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모든 마음을 다 들키면서도 동시에 덤덤한 반응을 한 거겠지.
“우리는 어쩔 수 없잖아. 마지막 해야지.”
‘그래, 어쩔 수 없잖아. 근데 정말 어쩔 수 없는거야? 그저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핑계에 불과한 것 아니야?’
오후 5시 25분. 만난지 45분 째,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하고 만난 것인데도, 그래도 그를 보고 그와 함께 눈 맞추고 웃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살짝 설레는 긴장감과 들뜨는 마음이었는데 만나고 45분이 되자 ‘마지막’이라는 단어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져버렸다.
9일째, 4시 40분 약속시간 10분 지난 후,
통유리로 된 2층의 커피숍 Justin이 20미터 앞에 보인다. 오늘은 일부러 회색 티셔츠에 빨간 가디건, 청바지에 부츠를 신었다. 나와의 약속일까 아니면 그에게 내 단호한 의지를 보이려고 한걸까. 화장도 기초적인 것만 했다. 남색 코트에 갈색의 머플러. 특별할 것 없는 의상. 그래도 살짝 파우더를 꺼내서 얼굴 상태를 확인한다. 그래, 이정도면 됐어. 오빠를 위해서 일부러 이쁘게 차려입지 않았으니까 됐어.
두꺼운 카페 통유리문을 열자, 그의 모습이 보인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있다. 나를 발견한걸까. 웃는듯 아닌듯 모르겠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마음이 쩌릿하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지 않는구나. 나는 애써 열심히 웃어 보이고 그에게 다가간다. 나에게 실망하지 않을까, 내 모습이 오늘은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안경 안 끼고 나왔네.”
“오늘은 좀 차갑게 보여야할 것 같아서.”
인상을 부드럽게 보이려고 도수를 넣지 않은 검정색 뿔테안경을 낀다고 얘기했었는데, 오늘은 나를 만나기 때문에 일부러 안경을 끼지 않았다고 했다. 속으로 웃음이 났다. 오빠도 나처럼 오늘을 위해서 일부러 신경쓴거구나. 나와 비슷한 이유로. 차갑게,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런 것도 통하는건가 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너무나 그동안 누군과의 통하는 느낌에 굶주려 있었던 걸까.
“모임이 있었는데, 그냥 나왔어. 사람들은 지금 술 마시고 있어.”
“나는 오빠가 연락 안할 줄 알았어. 만나자고 안할 줄 알았어.”
“어떻게 그러니, 어제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나한테 오빠 이미지가 그래. 나한테 이미지가 이래서 어떡하냐.”
“그건 상관없어.”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모임이었을 것 같은데 일부러 나왔다고 한다. 또 속으론 까르르 웃음이 난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 이렇게 와주었구나.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를 위해서 나와준거구나. 나를 위해서. 그래도 바로 마음이 또 싸르르 아파온다. 나한테 그런 이미지인게 상관없다고? 거짓말.
오빠의 표정은 알듯 모를 듯 하다. 처음 본 날, 함께 이야기할 때는 표정이 얼굴에 다 드러난다고 깔깔거리며 오빠를 놀렸었는데 아니었나보다. 오늘의 오빠 표정은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못 읽겠다. 사실은 오빠는 여전히 얼굴에 다 드러났던 것인데, 나에 대한 무덤덤한 감정, 부담스러운 감정이 다 드러났던 건데 내가 그저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읽히지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걸까. 살짝 슬퍼진다.
“어제 친구랑 술 마셨어. 그때 오빠랑 전화하고 이야기했던 거야.”
“술 마신줄은 알았어.”
“어제 많이 취했을 때 전화통화한거 였어.”
“진짜? 그럼 오늘 안 만나도 됐을 뻔했네.”
“그런게 어딨어. 문자에는 다 남아 있거든?”
나쁘다. 그럼 그저 나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나왔다는 거야? 나는 오빠가 내일 보자고 해서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혹시나 오빠가 연락하지 않을까봐 혼자 기다리지 않는 척 스스로 숨기는 바보 같은 짓을 해가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나쁜 놈이다. 내가 나빴어. 미안해.”
“나는 내가 지금 화내야하는 상황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
“...”
“솔직히 너가 싱글이고 솔로였으면 내가 진짜 잘못한거고 나쁜건데, 지금 니 상황은 내가 더 화낼 수도 있는 상황이야.”
“나도 알아. 그래서 화가 안나는 건지도 몰라.”
“우리 같이 그런거잖아.”
“난 아니지. 오빠가 꼬셨잖아.”
“내가 꼬셨다고? 별로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은 그랬지. 그치만 몸으로 엄청 들이댔잖아.”
“그런가.”
그래도 내 마음은 찢어져. 상처받았어. 난 오빠가 좋아졌단 말이야. 사람을 이렇게 만든게 누군데. 그래. 미안하다. 내가 너무 관심 받는 것에 굶주려 있었나보다. 그래서 그냥 세상 사람들 다하는 하룻밤 잠자리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날 나를 꼬시기 위해서 보여줬던 그 행동들에 마음이 왕창 흔들렸나보다.
“그래, 내가 하룻밤은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를 하겠어. 그런데 두 번째 날은 뭐야? 첫날 그러고 나서 나도 정리하려고 했어. 그런데 오빠가 다음날 만나자고 했지. 그래서 무슨 소리 하나 들어보기나 하자 싶어서 만났어. (사실은 보고 싶었어.) 그런데 두 번째 날도 오빠 나한테 그랬잖아.”
“미안하다. 내가 진짜. 얘기했잖아. 니가 도화살이 있는거 같다구.”
뭐가 미안하다는거야. 도대체 뭘까. 두 번째로 나를 불러내서 또 나에게 온갖 관심 있는 남자처럼 군건 무슨 의미인거야. 왜 그랬어, 나한테. 이렇게 약해져있고 누군가의 사랑에 목말라 있어서 누가 다가오기만을 바라고 있던 나에게. 그래. 오빠는 내가 그런 상황인지 몰랐을테니까.
“여자친구랑은 얼마나 됬어?”
“이년.”
“여자친구 있는데 나한테 왜 그랬어?”
“너가 신랑이랑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나도 여자친구랑 말 못할 그런게 있는 거야.”
“그렇구나.”
“그냥 내가 솔직히 이야기할까. 우리 진짜 오늘 마지막이지?”
“그래, 얘기해봐.”
“나 사실은 여자친구 없어. 거짓말 한거야. 그래야 니가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아서.”
“정말?......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무너졌다. 갑자기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를 떼어내기 위해서 거짓말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예상은 했었지만 그게 사실일 줄이야. 눈앞에 멍해졌다. 여자 친구가 없었다구. 그러면 정말 내가 싫었다는 거잖아. 나를 벌레 떼어내듯이 떼어내려고 그랬다는 거잖아. 그것도 가장 간편한 방식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들켰나보다. 갑자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왜그러느냐고. 해야할말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몇 초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 혼란스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오빠에게 그렇게 특별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내 번역기는 오빠의 말을 해석했고 그것이 그 잠깐 나를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게 마비시켰다. 그대로 느끼기에는 너무나 아픈 사실이니까. 말을 더듬거리면서 힘겹게 이었다.
“나는...너무 당황스럽네. 내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오빠를 만나서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거구. 그런데 내가 너무 외롭고 힘든 상황이라 내 경계를 지키지 못했구. 그래서 이렇게 되버렸는데, 오빠는 나를 떼어내려고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을 했다구...”
“왜 그렇게 생각해. 그런게 아니라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한거야. 너 여자친구 후보에 올려놨었어. 그런데 내가 6년 만에 시험에 붙은거잖아. 그래서 잘 고르고 싶었어. 너랑 사귀어볼까, 만나볼까 생각도 했었어. 난 그냥 재고 있었던 거야.”
거짓말. 재고 있었는데 왜 끝내려고해. 왜 떼어내려고해. 이 생각도 잠시, 나는 내가 그의 여자친구 후보였다는 말에 겨우 마음을 추스렸다. 나 왜 이렇게 약해빠졌니,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온 몸과 마음의 촉수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나에게 좋은 쪽으로 계속해서 말들을 짜 맞추고 있다.
“니가 남편이 아니라 남자친구가 있었다면, 그냥 스릴 있게 만나볼 생각도 했어. 그런데 남자친구랑 남편은 다른거잖아. 그건 범죄야. 그래서 우리는 안되.”
“범죄라고? 하하하.”
“근데 너 결혼하고 바람핀거 내가 처음이야? 진짜? 아니지?”
“진짜 처음이야. 난 작년까지는 바람피면 절대 안되는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작년에 내가 너무 힘들었어.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힘든데 바람피면 왜 안되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제 바람 피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거 뿐이야.”
“남편한테는 안미안해?”
“안 미안해. 첫날 그러고나서 솔직히 복수했다는 생각에 통쾌했어.”
“왜? 남편도 바람피웠어?”
“아니. 그런건 아니고. 아니 그건 내가 알 수 가 없지. 그냥 나를 너무나 아프게했으니까.”
“그래도 사랑했으니까 결혼했을거 아니야. 진짜 안미안해?”
“흠...그거 알아? 많이 사랑할 수록 더 많이 미운거. 그래 처음엔 많이 사랑했지. 그렇지만 내가 얘기했잖아. 복수한 것 같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