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세상이요 국제무역시대다. 외교에 있어서, 경제 및 국제적인 회의와 거래에 있어서 영어라는 언어가 이미 세계 통용어가 된지 오래고 대략 55개국에서 모국어 또는 공용어로 사용되는 명실상부한 국제어이다. 이 땅에서도 수만명의 원어민이 들어와 있고 더 이상 머나먼 외국의 낯선 이방인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든지 오래고 개인 능력의 측정 수단이자 생존의 도구가 되었다. 더욱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면서 문자를 통해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류하는 산업시대에서 영상과 음성으로 입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지식 정보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영어 문법문제와 독해 문제로 개인의 영어 실력을 측정하였지만 이제는 그 측정 영역을 듣기와 말하기, 쓰기로 넓혀지고 있다. 이제 영어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고난도 단어를 사용하고 올바른 문법을 구사하여도 영어의 절반을 놓쳐버린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영어의 광풍 속에서 똑 같은 입과 혀를 가지고 예나 지금이나 의사전달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영어발음하나 가지고 쩔쩔매고 있다. 여전히 막걸리 잔에 와인만큼이나 우리의 현실은 문법 어휘에 비해 영어 발음은 한국적이다. 과연 언어의 습득시기를 놓쳐서일까? 과거에는 그들의 소리를 직접 귀로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오늘날 각종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오는 원어민의 말의 홍수에서 왜 우리는 영어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도 멀게만 느껴질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모국어의 습득과정은 백지 상태에서 부모의 말을 귀로 듣고 입으로 따라 흉내 냄으로써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이미 체화된 그 소리들을 기호화된 문자로 표기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운다. 학습자들 모두가 이와 같은 과정으로 이방의 언어를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확신을 갖고 장기간 영어에만 몰입할 토대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모국어인 한국어를 기반으로 영어 공부가 되어야만 하였고 그 과정에서 영어의 소리값을 한국어로 대응하여 외우게 하는 뿌리 깊은 학습방법으로 인해 이미 그들의 소리값은 배제되고 한국식 영어 발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나 뉴스의 스크립트를 눈으로 읽고 이해하라면 대개는 의미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을 소리로 들려주면 절망하고 만다. 이는 글자의 소릿값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발음관련 책들이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기본적인 단어의 자음과 모음의 설명만이 등장하고 대동소이 하다. 아무리 완벽한 영어 자음과 모음의 개별적 음가를 익히더라도 수많은 단어와 연결이 되지 않는 공염불이다. 인사말이나 안내 및 소개말 정도만 익힐 거라면 문제 될 것 없지만 고도의 지적업무나 복잡한 정보의 전달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영어 발음이 불규칙성
영어가 이 땅에 소개된 이후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는 ‘영어는 단어와 소리가 달라 반드시 발음기호를 보고 읽어야 한다.’이다. 영어의 글자와 영어발음은 상이한 것은 사실이다. 모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그들에게 조차 혼돈스런 언어를 외국어로 공부해야 하는 우리는 그 막연함을 말로 표현하기 힘이 들것이다. 영어는 1066년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 이후 약 250년간 프랑스어가 지식층과 지배층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초기 영어에 영향을 미쳐 글자와 소리의 차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언어가 영어로 편입되면서 영어 발음에 불규칙성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로 영어로 발음하는 소리는 40여개 정도이지만 이를 표기하는 방법은 400여가지나 된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영어 발음의 불규칙성을 예로 들며 ‘fish’을 극단적으로 ‘ghoti’로 표기할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rough의 gh [f], women의 o [i], station의 ti [ʃ]를 조합한 것이다. 이러한 불규칙성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철자왕 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보다 쉽게 쓰게 하자는 철자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접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영어의 이러한 불규칙성으로 인해 사전의 발음기호를 단어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외워야 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 학습의 초기에 만나게 되는 music, doctor, final 등과 같은 기초적인 단어는 발음기호 등을 통해 그 음가를 기억하고 유사하게 발음한다. 그러나 곧 입시 지옥 속에 매몰되어 편한 대로 exhibition, arena, forensic 등은 알파벳을 한국어 자음과 모음과 대응한 발음인 ‘이그지비션, 아레나, 포렌식’ 으로 발음하며 수많은 단어의 스펠링과 우리말 뜻을 암기하는데 집중하며 한국식 영어 발음의 대못을 박아 버린다. 게다가 opera, cosmos, academy, satan 등 한국어 음운체계로 단순하게 전환하여 읽고 말하는 외래어와 propane, butane, octane, helium 등과 같은 학술 용어는 강세 없는 한국식 발음으로 탈바꿈하고는 우리말이 된지 오래다. 첫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어릴 때 배운 동요는 평생을 간다. 이처럼 각인된 영어의 소리값과 인식의 오류는 평생 치유하기 힘이 들고 영어 학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요즘은 신문 등의 매체에서는 거의 언제나 ‘방청석’이라기 보다 ‘오디토리엄’이라는 한국식 발음으로 변환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추세이다. 이제 ‘오우삼, 주윤발’을 ‘우위썬, 마오쩌둥, 저우룬파’이라고 그들의 언어에서 발음 되는대로 표기하고 발음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가 되었다. 그래서 halloween은 과거에는 ‘할로윈’이었지만 최근에는 일관성 없이 ‘핼로윈’으로 표기하고 portal, browse, mortgage 등의 최근에 도입된 외래어는 ‘포털, 브라우즈, 모기지’로 유사하게 발음하지만 혼란을 부채질할 뿐 아직도 대부분은 강세와 이중모음을 무시한 한국식 영어를 고수하고 있다.
칵테일 파티 효과 (Cocktail Party Effect) 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시끌벅적한 곳에서는 자신이 듣고자 하는 소리 즉 자신과 관련된 소리, 이름, 관심 있는 소리를 더욱 또렷이 듣는다는 말이다. 즉 유입되는 정보를 구분하여 듣고자 하는 소리만 선택하여 주변의 복잡한 소음과 구분하여 듣는다는 것이다. 의사 전달자가 영어라는 매개체로 의사를 전달하면 듣는 사람은 그 소리를 해독하여 이해한다. 그러나 영어만의 고유한 음가를 인식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듣기를 기대하는 소리가 다르다면 이러한 선택적 지각 습성이 나타난다.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다른 소리를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정보를 왜곡하기조차 한다. 마치 사투리 억양처럼 오랜 시간 두뇌 속에 암시되고 선점되어 각인되어 있는 소리값은 한 아무리 각종 매체, 영화, 드라마, 전자사전, 컴퓨터 등에서 ‘아퍼라, 카즈머ㅅ, 어캐러미, 쎄이런’라고 하더라도 약모음과 이중모음을 무시한 ‘오페라, 코스모스, 아카데미’라고 편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발음하게 된다. 단어의 발음에서부터 꼬이니 문장이 발음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자신 없는 발음실력으로 그럭저럭 단어를 조합하는 독해실력(?)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다시 발음을 공부하면서 ‘푸로우테인, 뷰테인, 앜턴, 히~일리음’ 소리가 이 단어들이였어?’ 하며 부산떨고 있다.
방법이 있는가?
영어의 불규칙성에 대해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철자와 소릿값이 불규칙한 듯한 단어가 절대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인은 처음 보는 단어를 만나면 어떻게 읽을까? 그들이 읽는 방법은 알고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예외적인 단어가 존재하나 대다수의 단어는 어느 정도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그러한 규칙에 의해 낯선 단어를 읽어낸다. 이러한 간단한 규칙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일반적인 발음원리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단어 중 상당수가 영어를 처음 접할 때 만나는 do, does, father, mother, give, driven, women, move, have, many, lose, busy 등 아주 기초적인 단어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출발선상에서 만나는 몇 몇 단어로 인해 영어단어는 중국의 한자를 뜻과 음을 외우는 것처럼 영어 또한 모두 발음기호를 확인하고 별도로 외워야 한다는 선입견을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상당한 수준의 선생님들조차 이러한 간단한 규칙을 눈치재지 못하고 실수하곤 한다. 이러한 선입견은 평생 학습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자신감을 잃게 하고 있다.
이 땅의 학습자들은 어쩔 수 없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바탕으로 영어 스크립을 이해하고 배워야 할 운명이다. 구술 동화를 외우듯이 영어의 표현을 소리만으로 외울 수는 없다. 이제는 영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여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영어 단어와 문장을 그들처럼 읽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발음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이해하여야 한다. 영어모음을 우리말로 일대일 대응하여 만들어진 깊이 각인된 음가를 고치고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영어에만 존재하는 강세와 약모음, 그리고 이중모음의 존재의미를 이해하여야 한다. 머리로 인식하지 않으면 입과 혀는 반응하지 않는다. 아무리 흉내 내어도 한국식 발음으로 회귀한다. 이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그들이 낯선 단어를 읽고 말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들처럼 정확한 음가대로 읽을 수 있다면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다면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반드시 발음기호를 보고 익히는데 시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애매한 단어는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사실 gourmet, recipe, ballet, buffet, bouquet, ensemble, cliche, resume, depot, genre, facade, encore 등의 프랑스 등에서 수입된 단어는 가급적 원래의 음에 근접하게 발음하는 원칙에 의해 일반적인 발음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무작정 모든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확인하고 철자 따로 소릿값 따로 저장하고 기억하기에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비효율적이다. 일반적인 규칙에서 벗어나서 그들 또한 가끔 실수하곤 하는 것들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 소수의 예외적인 단어 때문에 90% 이상의 단어를 쉽게 발음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큰 손실이겠는가? 우리는 시험영어에 매몰되어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 집착증이 문제이다. 모든 사람이 성우급의 완벽한 발음을 추구하다보니 도중에 자신을 잃어버린다. 사실 영어 좀 하는 선생님들 또한 indict, ally 와 같은 예외적인 단어는 종종 실수를 하는 것이다. 동일한 단어라도 지역마다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러한 단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시험 영어의 영향으로 우리는 완벽을 추구한다. 출발선상의 이러한 완벽에 대한 강박증이 영어공부의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이제는 실수를 하더라도 외국인이니 뭐 어때 하는 배짱이 필요할 것이다. 출발부터 실수 없는 완벽을 추구한다면 이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발음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알고 배우자
왜 같은 단어인데 우리와 그들은 달리 발음하거나 소리가 다를까?
왜 이 땅에서만 영어가 어렵다고들 할까?
사전의 발음기호 없이 그들처럼 읽을 수 있다면?
글로벌 세상이요 국제무역시대다. 외교에 있어서, 경제 및 국제적인 회의와 거래에 있어서 영어라는 언어가 이미 세계 통용어가 된지 오래고 대략 55개국에서 모국어 또는 공용어로 사용되는 명실상부한 국제어이다. 이 땅에서도 수만명의 원어민이 들어와 있고 더 이상 머나먼 외국의 낯선 이방인의 언어가 아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녹아든지 오래고 개인 능력의 측정 수단이자 생존의 도구가 되었다. 더욱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면서 문자를 통해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류하는 산업시대에서 영상과 음성으로 입체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지식 정보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영어 문법문제와 독해 문제로 개인의 영어 실력을 측정하였지만 이제는 그 측정 영역을 듣기와 말하기, 쓰기로 넓혀지고 있다. 이제 영어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고난도 단어를 사용하고 올바른 문법을 구사하여도 영어의 절반을 놓쳐버린 것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영어의 광풍 속에서 똑 같은 입과 혀를 가지고 예나 지금이나 의사전달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영어발음하나 가지고 쩔쩔매고 있다. 여전히 막걸리 잔에 와인만큼이나 우리의 현실은 문법 어휘에 비해 영어 발음은 한국적이다. 과연 언어의 습득시기를 놓쳐서일까? 과거에는 그들의 소리를 직접 귀로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오늘날 각종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오는 원어민의 말의 홍수에서 왜 우리는 영어에 그토록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도 멀게만 느껴질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모국어의 습득과정은 백지 상태에서 부모의 말을 귀로 듣고 입으로 따라 흉내 냄으로써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이미 체화된 그 소리들을 기호화된 문자로 표기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운다. 학습자들 모두가 이와 같은 과정으로 이방의 언어를 배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확신을 갖고 장기간 영어에만 몰입할 토대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모국어인 한국어를 기반으로 영어 공부가 되어야만 하였고 그 과정에서 영어의 소리값을 한국어로 대응하여 외우게 하는 뿌리 깊은 학습방법으로 인해 이미 그들의 소리값은 배제되고 한국식 영어 발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나 뉴스의 스크립트를 눈으로 읽고 이해하라면 대개는 의미파악이 가능하다. 그러나 동일한 내용을 소리로 들려주면 절망하고 만다. 이는 글자의 소릿값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발음관련 책들이 등장하지만 하나같이 기본적인 단어의 자음과 모음의 설명만이 등장하고 대동소이 하다. 아무리 완벽한 영어 자음과 모음의 개별적 음가를 익히더라도 수많은 단어와 연결이 되지 않는 공염불이다. 인사말이나 안내 및 소개말 정도만 익힐 거라면 문제 될 것 없지만 고도의 지적업무나 복잡한 정보의 전달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영어 발음이 불규칙성
영어가 이 땅에 소개된 이후 변하지 않는 절대적 진리는 ‘영어는 단어와 소리가 달라 반드시 발음기호를 보고 읽어야 한다.’이다. 영어의 글자와 영어발음은 상이한 것은 사실이다. 모국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그들에게 조차 혼돈스런 언어를 외국어로 공부해야 하는 우리는 그 막연함을 말로 표현하기 힘이 들것이다. 영어는 1066년 노르만족의 영국 침략 이후 약 250년간 프랑스어가 지식층과 지배층의 언어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초기 영어에 영향을 미쳐 글자와 소리의 차이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언어가 영어로 편입되면서 영어 발음에 불규칙성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로 영어로 발음하는 소리는 40여개 정도이지만 이를 표기하는 방법은 400여가지나 된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영어 발음의 불규칙성을 예로 들며 ‘fish’을 극단적으로 ‘ghoti’로 표기할 수 있다고 할 정도이다. rough의 gh [f], women의 o [i], station의 ti [ʃ]를 조합한 것이다. 이러한 불규칙성으로 인해 미국에서는 ‘철자왕 대회’가 열리기도 하고 보다 쉽게 쓰게 하자는 철자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접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영어의 이러한 불규칙성으로 인해 사전의 발음기호를 단어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외워야 하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 학습의 초기에 만나게 되는 music, doctor, final 등과 같은 기초적인 단어는 발음기호 등을 통해 그 음가를 기억하고 유사하게 발음한다. 그러나 곧 입시 지옥 속에 매몰되어 편한 대로 exhibition, arena, forensic 등은 알파벳을 한국어 자음과 모음과 대응한 발음인 ‘이그지비션, 아레나, 포렌식’ 으로 발음하며 수많은 단어의 스펠링과 우리말 뜻을 암기하는데 집중하며 한국식 영어 발음의 대못을 박아 버린다. 게다가 opera, cosmos, academy, satan 등 한국어 음운체계로 단순하게 전환하여 읽고 말하는 외래어와 propane, butane, octane, helium 등과 같은 학술 용어는 강세 없는 한국식 발음으로 탈바꿈하고는 우리말이 된지 오래다. 첫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어릴 때 배운 동요는 평생을 간다. 이처럼 각인된 영어의 소리값과 인식의 오류는 평생 치유하기 힘이 들고 영어 학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요즘은 신문 등의 매체에서는 거의 언제나 ‘방청석’이라기 보다 ‘오디토리엄’이라는 한국식 발음으로 변환된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추세이다. 이제 ‘오우삼, 주윤발’을 ‘우위썬, 마오쩌둥, 저우룬파’이라고 그들의 언어에서 발음 되는대로 표기하고 발음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가 되었다. 그래서 halloween은 과거에는 ‘할로윈’이었지만 최근에는 일관성 없이 ‘핼로윈’으로 표기하고 portal, browse, mortgage 등의 최근에 도입된 외래어는 ‘포털, 브라우즈, 모기지’로 유사하게 발음하지만 혼란을 부채질할 뿐 아직도 대부분은 강세와 이중모음을 무시한 한국식 영어를 고수하고 있다.
칵테일 파티 효과 (Cocktail Party Effect) 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목소리를 높이는 시끌벅적한 곳에서는 자신이 듣고자 하는 소리 즉 자신과 관련된 소리, 이름, 관심 있는 소리를 더욱 또렷이 듣는다는 말이다. 즉 유입되는 정보를 구분하여 듣고자 하는 소리만 선택하여 주변의 복잡한 소음과 구분하여 듣는다는 것이다. 의사 전달자가 영어라는 매개체로 의사를 전달하면 듣는 사람은 그 소리를 해독하여 이해한다. 그러나 영어만의 고유한 음가를 인식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듣기를 기대하는 소리가 다르다면 이러한 선택적 지각 습성이 나타난다.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다른 소리를 익숙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정보를 왜곡하기조차 한다. 마치 사투리 억양처럼 오랜 시간 두뇌 속에 암시되고 선점되어 각인되어 있는 소리값은 한 아무리 각종 매체, 영화, 드라마, 전자사전, 컴퓨터 등에서 ‘아퍼라, 카즈머ㅅ, 어캐러미, 쎄이런’라고 하더라도 약모음과 이중모음을 무시한 ‘오페라, 코스모스, 아카데미’라고 편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발음하게 된다. 단어의 발음에서부터 꼬이니 문장이 발음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자신 없는 발음실력으로 그럭저럭 단어를 조합하는 독해실력(?)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다시 발음을 공부하면서 ‘푸로우테인, 뷰테인, 앜턴, 히~일리음’ 소리가 이 단어들이였어?’ 하며 부산떨고 있다.
방법이 있는가?
영어의 불규칙성에 대해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다. 철자와 소릿값이 불규칙한 듯한 단어가 절대 다수가 아니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인은 처음 보는 단어를 만나면 어떻게 읽을까? 그들이 읽는 방법은 알고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예외적인 단어가 존재하나 대다수의 단어는 어느 정도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그러한 규칙에 의해 낯선 단어를 읽어낸다. 이러한 간단한 규칙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은 일반적인 발음원리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단어 중 상당수가 영어를 처음 접할 때 만나는 do, does, father, mother, give, driven, women, move, have, many, lose, busy 등 아주 기초적인 단어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출발선상에서 만나는 몇 몇 단어로 인해 영어단어는 중국의 한자를 뜻과 음을 외우는 것처럼 영어 또한 모두 발음기호를 확인하고 별도로 외워야 한다는 선입견을 만들어 버렸다. 심지어 상당한 수준의 선생님들조차 이러한 간단한 규칙을 눈치재지 못하고 실수하곤 한다. 이러한 선입견은 평생 학습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자신감을 잃게 하고 있다.
이 땅의 학습자들은 어쩔 수 없이 모국어인 한국어를 바탕으로 영어 스크립을 이해하고 배워야 할 운명이다. 구술 동화를 외우듯이 영어의 표현을 소리만으로 외울 수는 없다. 이제는 영어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여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영어 단어와 문장을 그들처럼 읽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발음에 대한 기초적인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이해하여야 한다. 영어모음을 우리말로 일대일 대응하여 만들어진 깊이 각인된 음가를 고치고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영어에만 존재하는 강세와 약모음, 그리고 이중모음의 존재의미를 이해하여야 한다. 머리로 인식하지 않으면 입과 혀는 반응하지 않는다. 아무리 흉내 내어도 한국식 발음으로 회귀한다. 이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그들이 낯선 단어를 읽고 말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들처럼 정확한 음가대로 읽을 수 있다면 말할 수 있다. 말할 수 있다면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반드시 발음기호를 보고 익히는데 시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애매한 단어는 반드시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사실 gourmet, recipe, ballet, buffet, bouquet, ensemble, cliche, resume, depot, genre, facade, encore 등의 프랑스 등에서 수입된 단어는 가급적 원래의 음에 근접하게 발음하는 원칙에 의해 일반적인 발음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무작정 모든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확인하고 철자 따로 소릿값 따로 저장하고 기억하기에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비효율적이다. 일반적인 규칙에서 벗어나서 그들 또한 가끔 실수하곤 하는 것들은 나중으로 미루어도 된다. 소수의 예외적인 단어 때문에 90% 이상의 단어를 쉽게 발음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큰 손실이겠는가? 우리는 시험영어에 매몰되어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 집착증이 문제이다. 모든 사람이 성우급의 완벽한 발음을 추구하다보니 도중에 자신을 잃어버린다. 사실 영어 좀 하는 선생님들 또한 indict, ally 와 같은 예외적인 단어는 종종 실수를 하는 것이다. 동일한 단어라도 지역마다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러한 단어들은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다. 시험 영어의 영향으로 우리는 완벽을 추구한다. 출발선상의 이러한 완벽에 대한 강박증이 영어공부의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이제는 실수를 하더라도 외국인이니 뭐 어때 하는 배짱이 필요할 것이다. 출발부터 실수 없는 완벽을 추구한다면 이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곤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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