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화 보기 : 루마니아 여행기 (1) 여행을 결심하다.루마니아 여행기 (2) 여행을 준비하다!루마니아 여행기 (3) 루마니아 가는 길루마니아 여행기 (4) 부카레스트에서의 첫 날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 ---------------------------------------------------------- 루마니아에서 맞이하는 첫번째 아침.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부지런한 내 몸은 아침 7시에 나를 깨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풍경은 분명 한국 어딘가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공기와 아무렇게나 쌓인 눈에 반짝거리는 햇볕은 날 들뜨게 했다. 아직 승완이는 곤히 자고 있으니, 일단 오늘 무얼 해야할지 계획을 세워야겠다. 대략적인 오늘의 일정은 부카레스트 시내 관광. 그리고 저녁 8시 마라무레슈로 출발. 부카레스트에서 마라무레슈의 주도 바이아 마레까지는 기차로 약 14시간이 걸린다. 과연 기차에서 14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밤기차를 탈 수 밖에 없는 상황. 도시간 이동은 기차로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오기 전 미리 준비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루마니아 열차 사이트 http://www.cfr.ro/ 에서 열차 시간표를 프린트한 것. 구체적인 날짜까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어느 도시에서 어느 도시로 넘어갈지는 정했기에 그 도시 이동간에 열차가 몇 시에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도록 미리 인쇄해서 가져왔다. 미리미리 준비하는게 아무리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아침에 나가서 저녁 8시에 다시 기차역이자 이 곳인 Gara de Nord로 오면 되겠다. 그럼 부카레스트 시내는 어딜 어딜 돌아다녀볼까? 그제야 가이드북을 뒤적거렸다. 사실 어제 승완이와 대화를 하면서도 느낀 사실이지만 여긴 볼 게 많지는 않다. 한 나라의 수도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리고 국제 공항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행자로써는 거칠 수 밖에 없는 곳이긴 하지만 오히려 볼거리가 풍부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부카레스트에는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났던 혁명광장과 차우세스크가 만든 궁전 정도? 물론 그 외에도 여러 박물관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 둘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고 대략적인 동선을 짜고 있는데 승완이가 일어났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그에게는 모처럼의 주말이기 때문에 일찍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손님을 대접해야한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더 자도 되는데. 루마니아에서의 첫 아침은 김치찌개 ㅋㅋㅋ 사실 나는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고 (맛 없는걸 불평 없이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상관 없고 며칠동안 빵이나 면만 먹어도 잘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승완이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루 중 한 끼는 꼭 쌀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인 교회에서 얻어온 반찬들로 집에서는 이렇게 늘 한식을 먹는다고 한다. 김치찌개와 오징어포, 김,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소세지까지, 아주 푸짐한 아침이었다. 승완 : 아참, 너 다른 지역에서 만날 카우치서핑 친구들 연락처는 알아? 용석 : 응,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다 알아왔지. 승완 : 연락은 어떻게 하려고? 용석 : 어제 산 공중전화 카드도 있으니까 그거로 연락하지, 뭐 승완 : 그러지 말고, 나 휴대폰 두 개인데 하나 빌려줄게. 그거 써. 모..모라고요? 루마니아의 휴대폰은 선불식이다. 단말기를 구입하고 요금을 충전해서 쓰는 식. 또한 다른 통신사끼리 전화를 할 경우 요금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기 때문에 차라리 통신사 별로 휴대폰을 갖고 같은 통신사의 전화로만 전화거는게 낫다고 한다. 승완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Orange 휴대폰은 잘 안 쓴다고 하면서 이걸 쓰라고 했다. 게다가 이건 무슨 운명인지 몰라도 내가 연락해야할 친구들은 모두 Orange폰을 쓴다. 5유로(약 7,500원)만 충전하면 Orange끼리 전화를 걸때는 400분 무료, 문자 400개 무료란다. 그 외의 번호로도 걸 수 있긴 하지만 코인이 빨리 떨어지니까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덥썩 친절을 받아도 되는 건지 너무 당황스럽긴 했지만 승완이는 괜찮다며 폰을 건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나면 선물을 하라며 루마니어로 쓰여진 우리나라 역사책도 줬다. 어쩜 이렇게 여행 처음부터 일이 왜 이리 잘 풀리는 건지! 이 행운이 여행의 끝까지 계속 되길! 승완이가 건넨 휴대폰과 루마니아어로 쓰인 한국의 역사 아침밥을 먹으며 오늘의 계획에 대해 승완이와 얘기를 해보았다. 승완이도 부카레스트는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적극 동의하였고, 마라무레슈 바이아 마레로 갈 때 쿠셋 티켓도 하나 사라고 하였다. 용석 : 쿠셋? 그게 뭐야? 승완 : 쉽게 말하면 침대칸이야. 방 안에 침대가 4개, 6개 있어. 용석 : 그러면 그냥 내 자리는 한 좌석이 아니라 한 침대인거야? 승완 : 응, 어차피 자면서 갈 거면 그게 나을 거야. 네가 탈려는 열차가 A등급 열차인데 이건 쿠셋이 있거든. 용석 : 요금은 많이 비싸려나? 승완 : 나도 예전에 여기서 클루즈 나포카 갈때 한번 타봤는데 좀 비싸. 그래도 일반석에 앉으면 사람들 계속 왔다갔다 거리고 피곤할거야. 단순히 잘 곳과 휴대폰뿐만 아니라 이런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내가 루마니아의 첫 날에 승완이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과 같았다. 승완이는 아침 11시에 약속이 있으니 그때 같이 나가고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승완이의 신발. 놀랍게도 내가 한국에서 신는 것과 같다!이 녀석 왜 이리 멋진가 했더니, 멋진 취향을 지니고 있었군 ㅋㅋ 루마니아의 수도 부카레스트의 시내.오래된 건물 때문인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하다. 이것이 부카레스트에서 바이아 마레까지 가는 기차표.두 장인 까닭은 한 장은 기차표, 또 한 장은 쿠셋 티켓.기차표는 41레이(약 16,000원)지만 쿠켓은 무려 79레이! (약 32,000원)돌이켜보니 내가 루마니아에서 쓴 돈 중에 가장 큰 돈이었다. 승완이네 집이 기차역 근처이니 일단 바로 기차역에서 기차표부터 샀다. 오늘 8시에 기차가 있다는걸 알고 갔기에 아무 문제 없이 티켓을 살 수 있었고, 매표소에서 '바이아 마레!'를 외치니까 컴퓨터 모니터로 시간표를 보여주기도 했다. 굳이 영어 한 마디, 루마니아어 한 마디 안 써도 표를 살 수 있었으나 뭔가 아쉬운 기분.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굳이 저렇게 하지 않다고 능숙하게 표를 살 수 있게 될까? 우선 제일 먼저 혁명 광장에 가보기로 했다. 이 곳에 있으면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 그 곳은 지하철 Universitatii역 근처였다. 그리고 차우세스크 궁전도 그곳에서 멀지 않다. 그럼 그냥 지하철 타고 그 곳으로 간다음에 천천히 구경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부카레스트의 지하철 표. 현재 4호선까지 개통 됐다.내가 처음 있던 곳은 1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Gara de Nord (좌측 상단)2호선 Universitatii역(정중앙)으로 가려면 한 번 갈아타야했다. 부카레스트 지하철 티켓. 왕복 3레이 (약 1,200원).잃어버리면 역시 곤란해진다... 지하철 내부. 스크린도어 없는거 빼고는 우리나라랑 똑같다. 지하철 내부. 마치 서울의 새벽 첫차와 같은 한산함. 아무런 문제 없이 Universitatii역 도착. 지하철 이용객은 거의 젊은 사람들이었기에 영어로 간단하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는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 여전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슬슬 담담해진다. 나를 힐끗 힐끗 쳐다보길래 같이 지긋히 쳐다봐주면 그쪽이 먼저 수줍어 고개를 숙인다. 남자든 여자든 말이라도 먼저 한 마디 건네주면 나는 환하게 웃어줄 수도 있는데.. 훗.. 날 보는 눈빛이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역에서 나와서 Orange 매장에 가서 휴대폰 코인을 충전해야했다. 승완이 말로는 시내에 나가면 널린게 휴대폰 매장이니 쉽게 할 수 있을 거고, 더구나 내가 도착한 Universitatii은 시내 중심지였기 때문에 더욱 많을 거라 했다. 천천히 시내 구경을 하면서 가게가 보이면 충전을 하기로 하고 일단 혁명광장으로! Gara de Nord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Universitatii오래된 회색 건물이 주는 이미지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난 그것이 결코 우울함으로만 대변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려한 문양을 감상할 수 있다. 비록 많이 허물어지기도 하고 흉칙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사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루마니아의 유산일 뿐이다. 정신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혁명 광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내 눈앞에 나타난 Orange 휴대폰 매장! 나는 주저 없이 들어가 5유로를 내고 휴대폰을 충전했다. 중간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휴대폰 충전 완료! 신나는 마음으로 승완이에게 전화를 거니까 승완 : 야, 네가 걸면 전화비 많이 나오니까 끊어 -_- 아.. 아무튼 '나 충전 잘 했어요, 데헷' 이란 사실은 알린거 같다. 루마니아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스마트폰의 열풍이 불고 있었다.삼성의 갤럭시 S는 이 곳에서도 팔리고 있었다. 쓰는 사람은 못 봤다.아이폰 유저도 딱 한 명 봤을 뿐이다. 아직 우리나라만큼은 아닌 듯. 혁명 광장은 진짜 그야말로 광장이었다. 지금은 공영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 곳에 오면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독재자 차우세스크를 향해 소리치던 민중들의 뜨거운 함성이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감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이 곳이 주차장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루마니아 혁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공부하지 않은채 이 곳에 왔다. 세상을 뒤흔드는 뜨거운 역사의 순간은 언제나 대중들의 분노를 기반으로 삼는다지만, 그 분노는 단순히 누군가의 선동만으로, 누군가의 죽음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핏줄 속에 은연중에 흐르고 있던 감정들이 발화점에 닿는 순간 터진다. 그런 공감대를 지니지 못 한 동양의 젊은이가 이 곳을 바라보는 심정은 미지근할 수 밖에..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이 시대에 대해서, 이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보기라 다짐하며 천천히 혁명 광장을 맴돌았다. 그래도 무언가 내 발길에 채여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얼마간 광장을 돌아다니며 추모탑, 조형물등을 가슴에 조금씩 새겨나가니 느껴지기도 하였다.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가 아닌, 사회의 한 사람으로써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모두 같을 거라고. 1989년 독재자 차우세스크를 몰아낸 혁명이 이 곳에서 불타올랐다. 혁명과는 무관하지만 카를 1세 동상이 운치있게 서있다. Rebirth Memorial (재탄생의 기념비)1989년 12월 혁명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비 혁명당시 무차별 발포로 인해 1,000여명의 시민들이 숨을 거두었다. 조금씩 뜨거워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 하고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한 모든 이들을 위해, 투쟁! 루마니아 혁명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다. 광장을 기웃거리니 근처에는 교회가 보이기도 했고 산책 나온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저녁 7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이제 차우세스크 궁전뿐이니 조금은 한적하게 여행하기로 하면서 편하지 않은 발을 위해서 천천히 걷기로 했다. 엄마랑 같이 산책 나온 멋쟁이 강아지집 없고 굶주린 유기견들도 많고 이렇게 호사하는 강아지들도 많다. 그래도 사랑 받는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이런 멋있는 교회들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참 걷고 있는데 멀리서 음악 소리가 쿵짝 쿵짝 들려온다. 어디서 연주회라도 열리는건가? 아니면 그냥 가게 음악소리? 마침 음악 소리가 나는 쪽에는 하천이 흐르는 공원이 있다고 하니 그 곳 구경이나 할겸 음악 소리를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하천은 꽁꽁 얼어서 아이들의 자연 놀이터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음악 소리의 정체는 바로 이 스케이트장! 생각해보니 오늘은 토요일! 이런 축제가 있을 법도 하였다.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젊은 남녀들도 모두 나와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스케이트장 옆에는 작은 노점상들이 놀러 나온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 잡았다. 흥겨운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웃음 소리, 그리고 어린 아이의 칭얼거림. 축제의 모습은 아주 오래전 부터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즐거움 그 자체. 멀리서 지켜보는 나도 신이나서 넋을 놓고 사람들을 바라보보고 있었다. 근데 나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은 다들 손에 무언가를 하나 들고 있다. 플라스틱 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차를 한 잔씩 들고 있었다. 둥굴레차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갛고 진해보였지만, 아니 그 이전에 일단 루마니아 사람들이 둥굴레 차를 마실리는 없잖아? 호기심을 억누를 이유는 없었다! 당장 나는 매점으로 달려갔다. 멀리서부터 내가 달려오던 모습을 지켜보던 가게 주인이 먼저 말을 건넨다. 주인 : (손을 흔들며) 니하오! 용석 : 헐.. 그게 아닌데요? 주인 : 아, 그래? 그럼.. 곤니치와! 용석 : 아니에요, 난 한국 사람이에요. 주인 : 아, 한국! 어디서 왔어요? 북쪽? 남쪽? 용석 : 남쪽에서 왔어요. 수드 꼬레. 주인 : 반가워요, 웰컴 투 루마니아! 뭐 드릴까요? 용석 : (저 멀리를 가리키며) 사람들이 먹고 있는 저 차가 뭐에요? 주인 : 저건 차가 아니에요. Vin Fiert라는 와인이에요. 용석 : 와인이라고요? 뜨거워 보이는데요? 주인 : 데운 와인이에요. 겨울에 먹기에 최고지요! 넉살 좋은 주인은 나에게 빈 피에르트 (Vin Fiert) 한 잔을 권했고 안 그래도 먹을 생각이었지만 술이니까 꼭 먹어야겠다 싶어서 한 잔 구입! 뜨거워서인지 향이 굉장히 진했고 그만큼 술도 쉽게 오르는 듯 했다.한 겨울에 커피잔이 아닌 와인잔을 들고 거리를 다닐 수 있다!!가격은 5레이 (약 2,000원) 주인 :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를 뭐라고 해요? 용석 : 아, 좀 어려운데. "안녕하세요" 라고 해요 주인 : (따라해보지도 않고 바로 포기한다) 어렵네요... 잠시 테이블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와인 한 잔. 역시 나는 술이 좀 들어가야지 마음이 안정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아무리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셔도 일상을 망치지만 않으면 중독이 아니라는데, 계획만 잘 지키면 알콜중독자 신세를 면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이런 게임을 즐겨도 규칙만 기억한다면 알콜중독이 아니야! 와인 한 잔을 마시니까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인지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건지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밥을 먹고 나온지 이제 고작 두시간 정도!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라서 배가 고팠던 것 같기도 하다) 푸짐하게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니까 근처 노점상에서 군것질 거리나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활 잡화들을 파는 노점상들도 많이 있었다. 구운 옥수수를 5레이 (약 2,000원) 주고 구입!한국의 것과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똑같았다... 벤치에 앉아서 스케이트장의 청춘남녀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자리에서 엄마와 함께 앉아있는 어린 꼬마아이가 나를 멀뚱 멀뚱 쳐다본다. 내가 웃으면서 '부너 지와(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베시시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준다. 이것이 내가 루마니아인에게 처음 받은 인사였다! 그것도 아주 진심이 가득한 인사. 이제 슬슬 차우세스크 궁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가는 길을 확인했다. 가장 빠른 길은 다시 지하철을 타는 것이지만 걸어가기에도 별로 멀지 않고 시내 구경도 할겸 그리고 중간에 있는 내셔널 히스토리 박물관도 들릴 겸해서 그냥 걸어서 차우세스크 궁전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발은 조금씩 아파오지만.. 사실 하루종일 발이 편하지 않아서 어떤 걸음걸이로 걷는 것이 가장 발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이런 저런 포즈로 걸어다녀봤는데 되레 그게 발을 피곤하게 만든 모양인지 쉽게 걸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뚜렷한 목적지를 세우고 나니까 조금 나아진 기분! 내가 발이 아픈 건 어쩌면 내 마음 가짐과 관련된 걸지도 모르겠다. 하긴 아무리 아파도 택배만 오면 다들 저렇게 되지... 먼저 가기로 한 곳은 내셔널 히스토리 뮤지엄 (National History Museum) 루마니아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갔는데 2세기 로마의 황제 Trajan's column (트라야누스의 기둥)가 주된 전시품. 그 기둥은 로마에 대항한 타키안 전쟁의 내용을 기둥에 조각한 것인데, 높이가 무려 35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파트 약 13층 높이쯤 된다. 사실 잘 못 알고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미리 가이드북 내용만 확인했어도!)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압도당하고 말았다. 커다란 기둥을 조각 조각 떼어내어 자세하게 관람할 수 있게 해두었고 조각의 내용도 다키안 전쟁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에 비록 내가 모르는 역사의 한 단면이지만 그래도 그 생동감은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그 거대한 스케일은 박물관 건물에서부터 느껴졌다. 입장료도 8레이 (약 3,200원)이나 하길래 - 술보다도 비싸!! 큰 건물만큼 볼거리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전시관은 작은 편이었다. 그래도 트라야누스 기둥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고, 그 뿐만 아니라 각종 공예품들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즐거웠다. 다만 기대했던 루마니아 역사의 흐름을 보지 못 해서 아쉬울 뿐이었다. 밖에서 봤을 때 너무나 커서 한 샷에 담을 수 없던 박물관이전까지는 우체국으로 사용되었고 최근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박물관 티켓.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어서 내부를 찍을 수는 없었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직원에게 차우세스크 궁전 가는 법을 물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친절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루마니아어로 말씀하신다!! 나는 당황하며 '저 루마니아어 못 해요 ㅠㅠ' 라고 말을 했지만 아주머니는 아랑곳 하지 않고 루마니아어로 설명을 하신다. 그리고는 나를 아예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신다. 그 아주머니의 말씀은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아주머니 : (큰 길을 가리키며) 이 길로 쭉 가세요!!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그러면 두갈래 길이 나와요 (그중 첫번째 손가락을 접는다) 그 중에 두번째 길로 가요 용석 : (아주머니가 곱게 펼친 가운데 손가락을 보며) '뭐야, 왜 욕하는거야..' 아주머니 : (다시 앞을 가리키며) 그 길로 쭉 가다가 (왼쪽을 가리킨다) 왼쪽으로 가세요!! (내 눈을 가리키며) 그러면 보일거에요! 용석 : (움찔거리며) '뭐야.. 이제 왜 눈까지 찌르려고 하는거야..' 물론 이 아주머니가 내게 욕을 하고 눈을 찌르려고 할리 없었을 것이다. 웃으면서 영어 한 마디 쓰시지 않고 당당하게 길을 설명하시는 모습이 그 어떤 사람보다 친절하게 보였다. 아마도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박물관에서 일을 하다보면 나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셨을 것이다.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아주머니의 선택은 온 정성을 다해서 설명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 아닌가? 정말로 나에게 욕을 한건가?? 웃으며 말하면 모두 깜빡 속습니다...
설명을 들은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추메스크(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박물관을 나와서 차우세스크 궁전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안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내가 잘 가는지 멀리서 지켜보며 계속해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아무래도 나에게 욕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한 위엄에 빛깔까지 더해진다면 오히려 위엄을 잃을 것이다. 이 곳에서도 이런 가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귀여운 옷이 잔뜩! 분명히 그리 멀지 않았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 그러고보니 어제도 5시가 되니까 어두워졌지기 시작했지. 조금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부랴부랴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무언가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멀리서도 엄청 잘 보이는 차우세스크 궁전.그래서 아주머니가 내 눈을 가리키며 '그럼 보일 거에요' 라고 한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작아보이지만 사실 앞에 있는 담과 건물간에는 거리가 꽤 된다.그럼에도 저렇게 커 보인다는 것은 실제로는 정말 어머아머하게 크다는 것! 차우세스크 궁전에 대해서라면 여행 전에도 익히 들은 것이 있다. 김일성과 호형호제하던 차우세스크는 평양을 다녀온 뒤 그곳에 있는 김일성 궁을 보고 엄청난 감명을 받고 돌아왔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궁전을 짓겠다며 무리한 토건을 시작했다. 차우세스크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도 분명 독재자이기 이전에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다. 특히 루마니아의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내려놓을 줄 모르는 욕심이 그를 독재자로 만들었고 그 결과 국민들의 분노가 그를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아무리 국민의 지지를 받고 지도자로써 정치인으로써 뽑혔다 하여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고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토건 공사를 하고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자는 결국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너무 늦게 온 바람에 들어가보지는 못 했다.
아쉬운 마음에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이 곳을 계속 맴돌았다. 어느새 저녁 6시. 승완이네 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밥을 먹을까 하다가 승완이랑 같이 먹을까 싶어서 관두고 나의 영원한 안식처 술집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맥주 마시면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싶었다. 일단 마시더라도 지하철역 근처에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역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또 사람은 왜 이리 없는지, 한산하고 어두운 거리를 혼자 걸으니까 사실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발도 안 편해서 잘 걷지도 못 하겠고.. 하지만 몇 분 걷다보니 이 거리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나인 것 같았다. 그나마 관광객이 조금 오가는 곳이긴 하겠지만은 그래도 이런 시간에 외국인 하나가 술집을 찾는 매의 눈빛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니 루마니아인들에게는 내가 얼마나 무서워 보였을까.. 내가 나빴어.. 면목 없습니다... 빨리 집에 갈게요....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 승완이에게 전화가 왔다. 승완 : 구경 잘 하고 있어? 용석 : 응, 방금 차우세스크 궁전 갔다 오는 길이야. 넌 어디야? 승완 : 난 집이야, 나도 방금 왔어. 용석 : 아, 정말? 그럼 나도 지금 들어갈까? 승완 : 그래, 그럼. 지하철 타고 오는 법은 알지? 용석 : 응, 이제 루마니아 지하철에서 앵벌이도 할 수 있어! 승완 : ㅋㅋㅋㅋ 얼른 와 아쉽게도 맥주 한 잔 하기로 한 계획은 취소하고 승완이네로. 시간도 여유 있으니 같이 저녁이나 먹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도착하니 이 녀석은 이미 시리얼에 우유를 말고 있었다.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고 싶었다고 말하니 극구 사양한다. 사실 근처에는 식당이라고는 패스트푸드점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승완이가 그런 음식을 좋아할리도 없었다만.. 그럼 나 배고픈 건 어떡하라고요.. 흐규흐규.. 유난히 치맥이 그리웠다... 그럼 나는 약간 일찍 집을 나와서 역 근처에서 뭐라도 먹기로 하고 근 하루동안 정말 나에게 너무나 큰 호의를 베푼 승완이와 잠시 이별. 종종 궁금한 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앞으로 2주동안 멋진 여행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나누고 돌아오기! 그리고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다채로운 문화를 즐기고 오기!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여행을 다녀오기! 이제 나는, 나를 루마니아로 가게끔 내 심장을 뒤흔든 마라무레슈의 작은 마을 바이아 마레로 떠납니다!
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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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부지런한 내 몸은 아침 7시에 나를 깨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풍경은 분명 한국 어딘가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공기와 아무렇게나 쌓인 눈에 반짝거리는 햇볕은 날 들뜨게 했다.
아직 승완이는 곤히 자고 있으니, 일단 오늘 무얼 해야할지 계획을 세워야겠다. 대략적인 오늘의 일정은 부카레스트 시내 관광. 그리고 저녁 8시 마라무레슈로 출발. 부카레스트에서 마라무레슈의 주도 바이아 마레까지는 기차로 약 14시간이 걸린다. 과연 기차에서 14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밤기차를 탈 수 밖에 없는 상황.
도시간 이동은 기차로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오기 전 미리 준비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루마니아 열차 사이트 http://www.cfr.ro/ 에서 열차 시간표를 프린트한 것. 구체적인 날짜까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어느 도시에서 어느 도시로 넘어갈지는 정했기에 그 도시 이동간에 열차가 몇 시에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도록 미리 인쇄해서 가져왔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 8시에 다시 기차역이자 이 곳인 Gara de Nord로 오면 되겠다. 그럼 부카레스트 시내는 어딜 어딜 돌아다녀볼까? 그제야 가이드북을 뒤적거렸다. 사실 어제 승완이와 대화를 하면서도 느낀 사실이지만 여긴 볼 게 많지는 않다. 한 나라의 수도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리고 국제 공항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행자로써는 거칠 수 밖에 없는 곳이긴 하지만 오히려 볼거리가 풍부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부카레스트에는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1989년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났던 혁명광장과 차우세스크가 만든 궁전 정도? 물론 그 외에도 여러 박물관들이 있기는 하지만 저 둘만 해도 충분할 것 같다. 이런 저런 계획을 세우고 대략적인 동선을 짜고 있는데 승완이가 일어났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그에게는 모처럼의 주말이기 때문에 일찍 깨우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손님을 대접해야한다는 생각에 일찍 일어난 모양이다. 더 자도 되는데.
사실 나는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고 (맛 없는걸 불평 없이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상관 없고 며칠동안 빵이나 면만 먹어도 잘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승완이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하루 중 한 끼는 꼭 쌀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인 교회에서 얻어온 반찬들로 집에서는 이렇게 늘 한식을 먹는다고 한다. 김치찌개와 오징어포, 김,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소세지까지, 아주 푸짐한 아침이었다.
승완 : 아참, 너 다른 지역에서 만날 카우치서핑 친구들 연락처는 알아? 용석 : 응,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다 알아왔지. 승완 : 연락은 어떻게 하려고? 용석 : 어제 산 공중전화 카드도 있으니까 그거로 연락하지, 뭐 승완 : 그러지 말고, 나 휴대폰 두 개인데 하나 빌려줄게. 그거 써.
루마니아의 휴대폰은 선불식이다. 단말기를 구입하고 요금을 충전해서 쓰는 식. 또한 다른 통신사끼리 전화를 할 경우 요금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기 때문에 차라리 통신사 별로 휴대폰을 갖고 같은 통신사의 전화로만 전화거는게 낫다고 한다. 승완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Orange 휴대폰은 잘 안 쓴다고 하면서 이걸 쓰라고 했다. 게다가 이건 무슨 운명인지 몰라도 내가 연락해야할 친구들은 모두 Orange폰을 쓴다. 5유로(약 7,500원)만 충전하면 Orange끼리 전화를 걸때는 400분 무료, 문자 400개 무료란다. 그 외의 번호로도 걸 수 있긴 하지만 코인이 빨리 떨어지니까 조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덥썩 친절을 받아도 되는 건지 너무 당황스럽긴 했지만 승완이는 괜찮다며 폰을 건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나면 선물을 하라며 루마니어로 쓰여진 우리나라 역사책도 줬다. 어쩜 이렇게 여행 처음부터 일이 왜 이리 잘 풀리는 건지! 이 행운이 여행의 끝까지 계속 되길!
아침밥을 먹으며 오늘의 계획에 대해 승완이와 얘기를 해보았다. 승완이도 부카레스트는 볼 것이 없다는 생각에 적극 동의하였고, 마라무레슈 바이아 마레로 갈 때 쿠셋 티켓도 하나 사라고 하였다. 용석 : 쿠셋? 그게 뭐야? 승완 : 쉽게 말하면 침대칸이야. 방 안에 침대가 4개, 6개 있어. 용석 : 그러면 그냥 내 자리는 한 좌석이 아니라 한 침대인거야? 승완 : 응, 어차피 자면서 갈 거면 그게 나을 거야. 네가 탈려는 열차가 A등급 열차인데 이건 쿠셋이 있거든. 용석 : 요금은 많이 비싸려나? 승완 : 나도 예전에 여기서 클루즈 나포카 갈때 한번 타봤는데 좀 비싸. 그래도 일반석에 앉으면 사람들 계속 왔다갔다 거리고 피곤할거야.
단순히 잘 곳과 휴대폰뿐만 아니라 이런 정보까지 얻을 수 있었으니 내가 루마니아의 첫 날에 승완이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과 같았다. 승완이는 아침 11시에 약속이 있으니 그때 같이 나가고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승완이네 집이 기차역 근처이니 일단 바로 기차역에서 기차표부터 샀다. 오늘 8시에 기차가 있다는걸 알고 갔기에 아무 문제 없이 티켓을 살 수 있었고, 매표소에서 '바이아 마레!'를 외치니까 컴퓨터 모니터로 시간표를 보여주기도 했다. 굳이 영어 한 마디, 루마니아어 한 마디 안 써도 표를 살 수 있었으나 뭔가 아쉬운 기분.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굳이 저렇게 하지 않다고 능숙하게 표를 살 수 있게 될까?
우선 제일 먼저 혁명 광장에 가보기로 했다. 이 곳에 있으면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 그 곳은 지하철 Universitatii역 근처였다. 그리고 차우세스크 궁전도 그곳에서 멀지 않다. 그럼 그냥 지하철 타고 그 곳으로 간다음에 천천히 구경하면 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무런 문제 없이 Universitatii역 도착. 지하철 이용객은 거의 젊은 사람들이었기에 영어로 간단하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는 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겠지! 여전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슬슬 담담해진다. 나를 힐끗 힐끗 쳐다보길래 같이 지긋히 쳐다봐주면 그쪽이 먼저 수줍어 고개를 숙인다. 남자든 여자든 말이라도 먼저 한 마디 건네주면 나는 환하게 웃어줄 수도 있는데.. 훗..
우선 역에서 나와서 Orange 매장에 가서 휴대폰 코인을 충전해야했다. 승완이 말로는 시내에 나가면 널린게 휴대폰 매장이니 쉽게 할 수 있을 거고, 더구나 내가 도착한 Universitatii은 시내 중심지였기 때문에 더욱 많을 거라 했다. 천천히 시내 구경을 하면서 가게가 보이면 충전을 하기로 하고 일단 혁명광장으로!
정신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혁명 광장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내 눈앞에 나타난 Orange 휴대폰 매장! 나는 주저 없이 들어가 5유로를 내고 휴대폰을 충전했다. 중간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휴대폰 충전 완료! 신나는 마음으로 승완이에게 전화를 거니까
승완 : 야, 네가 걸면 전화비 많이 나오니까 끊어 -_-
아.. 아무튼 '나 충전 잘 했어요, 데헷' 이란 사실은 알린거 같다.
혁명 광장은 진짜 그야말로 광장이었다. 지금은 공영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이 곳에 오면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독재자 차우세스크를 향해 소리치던 민중들의 뜨거운 함성이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감격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이 곳이 주차장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였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루마니아 혁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공부하지 않은채 이 곳에 왔다. 세상을 뒤흔드는 뜨거운 역사의 순간은 언제나 대중들의 분노를 기반으로 삼는다지만, 그 분노는 단순히 누군가의 선동만으로, 누군가의 죽음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핏줄 속에 은연중에 흐르고 있던 감정들이 발화점에 닿는 순간 터진다. 그런 공감대를 지니지 못 한 동양의 젊은이가 이 곳을 바라보는 심정은 미지근할 수 밖에..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이 시대에 대해서, 이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보기라 다짐하며 천천히 혁명 광장을 맴돌았다. 그래도 무언가 내 발길에 채여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얼마간 광장을 돌아다니며 추모탑, 조형물등을 가슴에 조금씩 새겨나가니 느껴지기도 하였다. 시대의 한 사람으로써가 아닌, 사회의 한 사람으로써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건 모두 같을 거라고.
루마니아 혁명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은 위키피디아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다. 광장을 기웃거리니 근처에는 교회가 보이기도 했고 산책 나온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었다. 저녁 7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이제 차우세스크 궁전뿐이니 조금은 한적하게 여행하기로 하면서 편하지 않은 발을 위해서 천천히 걷기로 했다.
한참 걷고 있는데 멀리서 음악 소리가 쿵짝 쿵짝 들려온다. 어디서 연주회라도 열리는건가? 아니면 그냥 가게 음악소리? 마침 음악 소리가 나는 쪽에는 하천이 흐르는 공원이 있다고 하니 그 곳 구경이나 할겸 음악 소리를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토요일! 이런 축제가 있을 법도 하였다.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젊은 남녀들도 모두 나와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스케이트장 옆에는 작은 노점상들이 놀러 나온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 잡았다.
흥겨운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웃음 소리, 그리고 어린 아이의 칭얼거림. 축제의 모습은 아주 오래전 부터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즐거움 그 자체. 멀리서 지켜보는 나도 신이나서 넋을 놓고 사람들을 바라보보고 있었다.
근데 나처럼 쳐다보는 사람들은 다들 손에 무언가를 하나 들고 있다. 플라스틱 컵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빨간 차를 한 잔씩 들고 있었다. 둥굴레차라고 하기에는 너무 빨갛고 진해보였지만, 아니 그 이전에 일단 루마니아 사람들이 둥굴레 차를 마실리는 없잖아?
호기심을 억누를 이유는 없었다! 당장 나는 매점으로 달려갔다. 멀리서부터 내가 달려오던 모습을 지켜보던 가게 주인이 먼저 말을 건넨다.
주인 : (손을 흔들며) 니하오! 용석 : 헐.. 그게 아닌데요? 주인 : 아, 그래? 그럼.. 곤니치와! 용석 : 아니에요, 난 한국 사람이에요. 주인 : 아, 한국! 어디서 왔어요? 북쪽? 남쪽? 용석 : 남쪽에서 왔어요. 수드 꼬레. 주인 : 반가워요, 웰컴 투 루마니아! 뭐 드릴까요? 용석 : (저 멀리를 가리키며) 사람들이 먹고 있는 저 차가 뭐에요? 주인 : 저건 차가 아니에요. Vin Fiert라는 와인이에요. 용석 : 와인이라고요? 뜨거워 보이는데요? 주인 : 데운 와인이에요. 겨울에 먹기에 최고지요!
넉살 좋은 주인은 나에게 빈 피에르트 (Vin Fiert) 한 잔을 권했고 안 그래도 먹을 생각이었지만 술이니까 꼭 먹어야겠다 싶어서 한 잔 구입!
주인 :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를 뭐라고 해요? 용석 : 아, 좀 어려운데. "안녕하세요" 라고 해요 주인 : (따라해보지도 않고 바로 포기한다) 어렵네요...
잠시 테이블에 앉아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와인 한 잔. 역시 나는 술이 좀 들어가야지 마음이 안정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아무리 술을 좋아하고 자주 마셔도 일상을 망치지만 않으면 중독이 아니라는데, 계획만 잘 지키면 알콜중독자 신세를 면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와인 한 잔을 마시니까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것인지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 건지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밥을 먹고 나온지 이제 고작 두시간 정도!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라서 배가 고팠던 것 같기도 하다) 푸짐하게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니까 근처 노점상에서 군것질 거리나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벤치에 앉아서 스케이트장의 청춘남녀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건너편 자리에서 엄마와 함께 앉아있는 어린 꼬마아이가 나를 멀뚱 멀뚱 쳐다본다. 내가 웃으면서 '부너 지와(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베시시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준다. 이것이 내가 루마니아인에게 처음 받은 인사였다! 그것도 아주 진심이 가득한 인사.
이제 슬슬 차우세스크 궁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가는 길을 확인했다. 가장 빠른 길은 다시 지하철을 타는 것이지만 걸어가기에도 별로 멀지 않고 시내 구경도 할겸 그리고 중간에 있는 내셔널 히스토리 박물관도 들릴 겸해서 그냥 걸어서 차우세스크 궁전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발은 조금씩 아파오지만..
사실 하루종일 발이 편하지 않아서 어떤 걸음걸이로 걷는 것이 가장 발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이런 저런 포즈로 걸어다녀봤는데 되레 그게 발을 피곤하게 만든 모양인지 쉽게 걸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시 뚜렷한 목적지를 세우고 나니까 조금 나아진 기분! 내가 발이 아픈 건 어쩌면 내 마음 가짐과 관련된 걸지도 모르겠다.
먼저 가기로 한 곳은 내셔널 히스토리 뮤지엄 (National History Museum) 루마니아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갔는데 2세기 로마의 황제 Trajan's column (트라야누스의 기둥)가 주된 전시품. 그 기둥은 로마에 대항한 타키안 전쟁의 내용을 기둥에 조각한 것인데, 높이가 무려 35미터나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파트 약 13층 높이쯤 된다. 사실 잘 못 알고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미리 가이드북 내용만 확인했어도!)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압도당하고 말았다. 커다란 기둥을 조각 조각 떼어내어 자세하게 관람할 수 있게 해두었고 조각의 내용도 다키안 전쟁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에 비록 내가 모르는 역사의 한 단면이지만 그래도 그 생동감은 느낄 수 있었다.
참고로 그 거대한 스케일은 박물관 건물에서부터 느껴졌다. 입장료도 8레이 (약 3,200원)이나 하길래 - 술보다도 비싸!! 큰 건물만큼 볼거리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전시관은 작은 편이었다. 그래도 트라야누스 기둥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고, 그 뿐만 아니라 각종 공예품들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즐거웠다. 다만 기대했던 루마니아 역사의 흐름을 보지 못 해서 아쉬울 뿐이었다.
박물관을 나서면서 직원에게 차우세스크 궁전 가는 법을 물었다. 그곳에서 일하시는 친절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루마니아어로 말씀하신다!! 나는 당황하며 '저 루마니아어 못 해요 ㅠㅠ' 라고 말을 했지만 아주머니는 아랑곳 하지 않고 루마니아어로 설명을 하신다. 그리고는 나를 아예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신다. 그 아주머니의 말씀은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아주머니 : (큰 길을 가리키며) 이 길로 쭉 가세요!! (손가락 두 개를 펼치며) 그러면 두갈래 길이 나와요 (그중 첫번째 손가락을 접는다) 그 중에 두번째 길로 가요 용석 : (아주머니가 곱게 펼친 가운데 손가락을 보며) '뭐야, 왜 욕하는거야..' 아주머니 : (다시 앞을 가리키며) 그 길로 쭉 가다가 (왼쪽을 가리킨다) 왼쪽으로 가세요!! (내 눈을 가리키며) 그러면 보일거에요! 용석 : (움찔거리며) '뭐야.. 이제 왜 눈까지 찌르려고 하는거야..'
물론 이 아주머니가 내게 욕을 하고 눈을 찌르려고 할리 없었을 것이다. 웃으면서 영어 한 마디 쓰시지 않고 당당하게 길을 설명하시는 모습이 그 어떤 사람보다 친절하게 보였다. 아마도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박물관에서 일을 하다보면 나같은 사람을 많이 만나셨을 것이다.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아주머니의 선택은 온 정성을 다해서 설명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 아닌가? 정말로 나에게 욕을 한건가??
설명을 들은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추메스크(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박물관을 나와서 차우세스크 궁전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안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내가 잘 가는지 멀리서 지켜보며 계속해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아무래도 나에게 욕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히 그리 멀지 않았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반. 그러고보니 어제도 5시가 되니까 어두워졌지기 시작했지. 조금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부랴부랴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무언가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차우세스크 궁전에 대해서라면 여행 전에도 익히 들은 것이 있다. 김일성과 호형호제하던 차우세스크는 평양을 다녀온 뒤 그곳에 있는 김일성 궁을 보고 엄청난 감명을 받고 돌아왔다. 그래서 자신도 그런 궁전을 짓겠다며 무리한 토건을 시작했다.
차우세스크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도 분명 독재자이기 이전에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다. 특히 루마니아의 정체성을 되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내려놓을 줄 모르는 욕심이 그를 독재자로 만들었고 그 결과 국민들의 분노가 그를 처참한 죽음으로 내몰았다.
아무리 국민의 지지를 받고 지도자로써 정치인으로써 뽑혔다 하여도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고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토건 공사를 하고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자는 결국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도 잘 알고 있다.
어느새 저녁 6시. 승완이네 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았다. 밥을 먹을까 하다가 승완이랑 같이 먹을까 싶어서 관두고 나의 영원한 안식처 술집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맥주 마시면서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 싶었다.
일단 마시더라도 지하철역 근처에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역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또 사람은 왜 이리 없는지, 한산하고 어두운 거리를 혼자 걸으니까 사실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발도 안 편해서 잘 걷지도 못 하겠고..
하지만 몇 분 걷다보니 이 거리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나인 것 같았다. 그나마 관광객이 조금 오가는 곳이긴 하겠지만은 그래도 이런 시간에 외국인 하나가 술집을 찾는 매의 눈빛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니 루마니아인들에게는 내가 얼마나 무서워 보였을까.. 내가 나빴어..
지하철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 승완이에게 전화가 왔다.
승완 : 구경 잘 하고 있어? 용석 : 응, 방금 차우세스크 궁전 갔다 오는 길이야. 넌 어디야? 승완 : 난 집이야, 나도 방금 왔어. 용석 : 아, 정말? 그럼 나도 지금 들어갈까? 승완 : 그래, 그럼. 지하철 타고 오는 법은 알지? 용석 : 응, 이제 루마니아 지하철에서 앵벌이도 할 수 있어! 승완 : ㅋㅋㅋㅋ 얼른 와
아쉽게도 맥주 한 잔 하기로 한 계획은 취소하고 승완이네로. 시간도 여유 있으니 같이 저녁이나 먹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도착하니 이 녀석은 이미 시리얼에 우유를 말고 있었다.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고 싶었다고 말하니 극구 사양한다.
사실 근처에는 식당이라고는 패스트푸드점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승완이가 그런 음식을 좋아할리도 없었다만.. 그럼 나 배고픈 건 어떡하라고요.. 흐규흐규..
그럼 나는 약간 일찍 집을 나와서 역 근처에서 뭐라도 먹기로 하고 근 하루동안 정말 나에게 너무나 큰 호의를 베푼 승완이와 잠시 이별. 종종 궁금한 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앞으로 2주동안 멋진 여행을 하고 돌아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나누고 돌아오기! 그리고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다채로운 문화를 즐기고 오기!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여행을 다녀오기!
이제 나는, 나를 루마니아로 가게끔 내 심장을 뒤흔든 마라무레슈의 작은 마을 바이아 마레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