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진화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삶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삶이 유한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가질수록 삶에 대한 불안감은 커진다. 내가 이룰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온다. 또한 그러한 압박감이 옳은 걸까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러면서도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자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진정한 실력과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괴롭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괴로운 것은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며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신을 믿는것과 내가 지탱하는 '인간적' '적자생존' , '인도적' '약육강식'의 법칙을 믿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신을 믿는 것 또한 의지할 대상을 찾는 것 뿐이며, 그것이 신이 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슴아프지만 진화론을 믿는 것은 내 인생의 필연이다. 다만 그러한 적자생존의 법칙은 내가 우월하고 남이 열등하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아니라, 비열하고 악독한 육식동물들을 제거하고, 내가 진정한 강자가 되어, 약한 동물들을 이끌어주는 법칙이다. 나는 그러한 법칙을 지지하며, 그것은 인간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동물세계에서도 알고보면 적용되는 당연한 순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도 정치적인 측면에서 진보적인 정당과 보수적인 정당의 교합점을 찾는것이 한국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성장은 필요하나, 어줍잖은 진화론적 우월성만 가지고 천박하게 나라의 운명을 재단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러한 시스템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실제로 실패한다. 우두머리가 난삽하면 그 짐승무리는 타락한다. 반대 세력, 반대 무리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인간주의적인 질서가 없이는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기독교와 불교가 추구하는 삶의 지탱수단인 종교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인도적 적자생존법칙'은 하등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전자를 따르면, 신이라는 이름에 집착하여 편향되어 버리지만, 후자에 집착하면 현실을 인정하며, 성장을 추구하며, 동시에 분배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히틀러식 천박한 적자생존법칙과는 차원이 다른 인도적, 적자생존법칙이다.
고지식한 창조론자들은 원칙론에 휩싸여서 진정한 원칙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비난하는 아종은, 실제로 지극히 자연적인 형태의 원칙이며, 그 원칙은 그 원칙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도적으로 절제하면 절대로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론적 우월론에 휩싸여 얼마나 많은 기근과, 재난, 전쟁에 시달렸는가.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미치는 영향은, 정확히는 그 해악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며, 인류의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인간적' '인도적' '적자생존법칙'을 주창한다.
난 진화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삶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삶이 유한함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 가질수록 삶에 대한 불안감은 커진다. 내가 이룰수 있는 것들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온다. 또한 그러한 압박감이 옳은 걸까도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그러면서도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자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진정한 실력과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괴롭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괴로운 것은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며 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신을 믿는것과 내가 지탱하는 '인간적' '적자생존' , '인도적' '약육강식'의 법칙을 믿는 것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신을 믿는 것 또한 의지할 대상을 찾는 것 뿐이며, 그것이 신이 신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슴아프지만 진화론을 믿는 것은 내 인생의 필연이다. 다만 그러한 적자생존의 법칙은 내가 우월하고 남이 열등하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아니라, 비열하고 악독한 육식동물들을 제거하고, 내가 진정한 강자가 되어, 약한 동물들을 이끌어주는 법칙이다. 나는 그러한 법칙을 지지하며, 그것은 인간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동물세계에서도 알고보면 적용되는 당연한 순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도 정치적인 측면에서 진보적인 정당과 보수적인 정당의 교합점을 찾는것이 한국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성장은 필요하나, 어줍잖은 진화론적 우월성만 가지고 천박하게 나라의 운명을 재단할 수는 없다. 이미 그러한 시스템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실제로 실패한다. 우두머리가 난삽하면 그 짐승무리는 타락한다. 반대 세력, 반대 무리들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한 인간주의적인 질서가 없이는 우리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기독교와 불교가 추구하는 삶의 지탱수단인 종교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인도적 적자생존법칙'은 하등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전자를 따르면, 신이라는 이름에 집착하여 편향되어 버리지만, 후자에 집착하면 현실을 인정하며, 성장을 추구하며, 동시에 분배를 추구하는,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히틀러식 천박한 적자생존법칙과는 차원이 다른 인도적, 적자생존법칙이다.
고지식한 창조론자들은 원칙론에 휩싸여서 진정한 원칙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비난하는 아종은, 실제로 지극히 자연적인 형태의 원칙이며, 그 원칙은 그 원칙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도적으로 절제하면 절대로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창조론적 우월론에 휩싸여 얼마나 많은 기근과, 재난, 전쟁에 시달렸는가.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미치는 영향은, 정확히는 그 해악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하며, 인류의 행복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