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화 보기 : 루마니아 여행기 (1) 여행을 결심하다.루마니아 여행기 (2) 여행을 준비하다!루마니아 여행기 (3) 루마니아 가는 길루마니아 여행기 (4) 부카레스트에서의 첫 날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루마니아 여행기 (6) 안드레아를 만나다 ---------------------------------------------------------- 이제부터는 승완이의 보호에서 벗어나 현지인들과 모든걸 함께 하게 된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기에 무거운 가방은 가벼운 발걸음을 붙잡지는 못 했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 일단 식사부터 해볼까? 생각해보니 아직 제대로 즐겨운 루마니아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아침 식사조차 레알 한국식인 밥에 김치찌개였지 않았는가!! 사실 루마니아 음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녁만큼은 제대로 루마니아식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바가지만 안 쓰면 되겠지.. 하지만 승완이가 말했듯 주변에는 정말 이렇다할 식당이 없었다. 내 생각에는 기차역 주변이라서 먹을 곳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전부 케밥이나 햄버거, 피자 조각을 파는 패스트푸드 점들뿐... KFC와 맥도널드도 있었지만 그걸 먹으러 여기 온 것도 아니고.. 멀리 나갔다가는 기차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주변만 맴돌았다. 그런 나를 유심히 보고 있던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내게 다가온다.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나를 보며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다. 아마도 담배를 원하는 것 같길래 첫날 도착해서 산 담배를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손짓을 하고는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저들이 집시일까 생각했다. 결국 마음에 식당은 찾지는 못 했지만 빵집은 많이 있길래, 내일 아침 식사로 삼을 빵을 두 개 구입했다. 1개에 1레이 (약 400원) 너털걸음으로 다시 Gara de Nord 기차 역에 돌아왔는데.. 식당 발견! 바로 기차역 안에 있던 레스토랑이었다. 파랑새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 다음날 아침 기차에서 먹으려고 구입한 빵. 2개 2레이 (약 800원)한 치의 생크림도 허용하지 않은 그냥 순도 100%의 '빵'이었다.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메뉴판을 정독하긴 했지만 대체 뭘 시켜야할지 몰랐다. 루마니아어를 모르기도 했지만 음식 문화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메뉴판에는 피자, 스파게티, 오물렛 등이 보이긴 했지만 이건 너무 평범하잖아! 그렇다고 아무거나 가리키며 '이거 주세요!' 라고 하기에는 덜컥 겁이 좀 났다. 결국 '햄 오믈렛이랑 맥주 한 병 주세요.' 라는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주문을 했다. 루마니아까지 와서 이런거 먹는게, 결국 맥도널드 가는거랑 뭐가 다른거야! 한심한 내 자신을 말끔히 씻고자 일단 맥주부터 벌컥 벌컥 들이켰다. 레스토랑 TV에서는 일본도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걸 유심히 보고 있던 한 노인분이 우연히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TV와 나를 번걸아 가리키면서 칼질 하는 사무라이 흉내를 내셨다. 내가 일본인이든 아니든 그냥 동양인이라는게 신기하셨던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일본이나 우리나 비슷한 삶을 사는 '동양인'으로 보이겠지. 빵과 함께 곁들여 먹은 햄 오믈렛.맛은 있었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소심한 선택은 안 하리라! 식당 안은 나와 같은 여행자들이 잠시 쉬었다 가기 좋았다. 한참 소심한 선택에 몸부림 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남녀가 들어온다. 그들은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가게 안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가 웃으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어머어머.. 그렇지만 나는 아무 여자에게나 쉽게 웃음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그렇지만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건네는데, 으악 루마니아어다!! 그녀의 웃음에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하자 이내 그녀는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다. 아.. 당신까지 이러기입니까.. 그래도 첫날 사두었던 담배를 이런 순간에 요긴하게 써먹게 되는 것 같다. 당연한 듯 요구하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니 기분 나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난 너희의 담배셔틀이 아니야...(웹툰 - 마음의 소리)
맥주 한 병을 더 마시고 이제 기차를 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햄 오믈렛에 맥주 2병을 먹은 가격은 14레이 (약 5,600원)정도였다. 한국이었다면 맥주 2병 가격만 해도 족히 8천원 정도는 했을텐데!! 신나는 마음으로 플랫폼으로 가서 내가 타야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곳곳에 역무원들이 있어서 표를 보여주면 내가 타야할 곳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플랫폼마다 기차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표지판이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바이아 마레로 향하는 기차를 찾을 수 있었다. 624km를 달려나갈 바이아 마레행 기차 양 쪽으로 3개씩, 총 6개의 침대가 놓여있는 침대칸.각각 방으로 나눠져있고 난방도 잘 되어있어서 쾌적한 편이었다.출발 후에는 침대 시트도 나눠주어서 청결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필이면 내 자리는 3층이었다. 너무 좁아!! 아마도 독일계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낯선 + 외국인 + 남자라는 3단 콤보로 이뤄진 내가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3층의 내 자리가 너무 좁아서 2층 침대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아주머니가 더욱 불안해 하실 것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일단 자리를 잡고는 바이아 마레에서 만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이아 마레 근처에 사는 안드레아 빌트 (Andrea Bilt)라는 32살의 여성. 떨리는 마음으로 승완이가 빌려준 휴대폰을 전화를 걸었다. 용석 : 아, 안드레아? 저 한국에서 온 용석이에요. 안드레아 : (반갑게) 용석! 잘 도착했어요? 내일 아침에 오죠? 용석 : 네. 지금 부카레스트에서 기차 탔어요. 안드레아 : 정확히 몇시 쯤 도착해요? 내가 마중 나갈게요? 용석 : 앗, 안 그래도 돼요! 어떻게 가야하는지만 알려주세요. 안드레아 :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그 때 밖에 있거든요. 용석 : 그래요? 그럼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 10시 20분에 도착해요. 안드레아 : 그럼 제가 아침 10시에 나가있을게요. 용석 : (더욱 미안해하며) 그럴 필요 없어요, 천천히 나와요! 안드레아 : ㅋㅋㅋ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할게요. 용석 : 고마워요, 안드레아. 내일 만나요! 비록 그녀의 거센 억양과 빠른 말 때문에 대화가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역으로 마중나온다는 안드레아의 친절함은 충분히 느껴졌다. 루마니아에 오기 전에 9일에 바이아 마레에 간다고 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한게 무색할 만큼 너무 일이 쉽게 풀렸다. 안드레아와 통화하던 사이에 기차는 제 시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마니아에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유머 사진이 한 장 있다.
일본에서는 기차가 10초 연착되는게 충격!루마니아는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는 충격!!!우크라이나에서는 기차가 도착한게 충격!!!!!!짐바브웨에서는 기차라는게 충격!!!!!!!!!!!!!!!!!!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 한 내 잘못이겠지만, 그래도 기차를 타기 전까지는 위 사진처럼 일정치 못 한 운행으로 행여나 기차를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 했었지만 - 그것 역시 기우였다. 보름동안 모든 열차는 제 시간에 출발하고 제 시간에 도착했었다. 저녁 8시 15분 정확하게 출발한 기차 속에서 책이라도 볼까 했지만 좁은 3층 칸에서는 책을 꺼내들긴 커녕 몸을 뒤척거리기조차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던 나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행 앞에서 모든 긴장이 풀려버린 탓도 있었겠지만..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었고 기차는 바이아 마레에 다다르고 있었다. 침대 칸이 있는 쿠셋은 이렇게 칸칸이 방으로 나눠져 있다. 화장실에는 심지어 샤워 시설까지 갖춰져있다! 좁은 침대에서 지새운 지난 밤이었지만 너무나 상쾌한 아침이었다. 반갑게 아래 침대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한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먼저 일어나 계셨던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신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까치집 머리에 퉁퉁 부은 나를 보고 있을 걸지도... 여행의 필수품 물티슈로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복도로 나갔다. 차창 밖으로 끊임 없이 펼쳐지는 시골의 풍경은 확실히 도시와 달랐다. 때마침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승무원이 인사를 건네주었다. 승무원 : 잘 잤어요? 용석 : 네, 좋은 아침이에요. 바이아 마레는 언제 도착해요? 승무원 : 정확히 10시 19분에 도착할 거에요. 용석 : 거기가 마지막 역인가요? 승무원 : 네, 바이아 마레가 마지막 역이에요. 뚱뚱한 체구에 멋지게 콧수염을 기른 승무원은 능숙한 영어로 답해주었다. 도착 시간도 알았겠다, 더구나 마지막 역이라니 못 내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안내 방송도 안 나오고 안내판도 없어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었지만, 도착 시간을 잘 알아두고 수시로 승무원에게 물어보면 걱정따윈 필요 없었다! 역시 모든 걱정의 근원은 자신으로부터!! 다시 방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사이 어느새 열차는 제 시간에 맞춰 바이아 마레에 도착했다. 아까 복도에서 대화를 나눈 승무원은 친절히 내 방으로 와서 도착했다고 말해주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모습들에 '감사합니다' 라는 뜻을 지닌 '물추메스크'가 절로 입에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여행지에서 그 말이 얼마나 빨리 입에 붙느냐는 곧 그 나라의 친절함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닐까? 624km를 내달리며 14시간만에 도착한 바이아 마레 (Baia Mare) 바이아 마레는 과연 부카레스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도시의 모습에서 흔히 느껴지는 부산함과 번잡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맑은 공기가 정말로 이 곳이 마라무레슈의 한 도시임을 말해주었다.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안개낀 하늘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들은 어제 부카레스트에서 경험한 것들이 결코 루마니아를 대표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감격에 젖어 바이아 마레 역사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그 웃음이 내게로 번져나간다. 안드레아 : (악수를 청하며) 어디로 모실까요? 용석 : (반갑게 소리치며) 안드레아!!! 안드레아 : 어서와요, 용석. 만나서 반가워요. 환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는 나를 어린애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게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가니 웬 남자가 서 있다. 다니엘 : 반가워요, 용석. 난 다니엘이라고 해요. 용석 : 안녕하세요, 다니엘! 안드레아 : 제 친구에요. 내가 좀 피곤해서 여기까지 대신 운전해줬어요. 용석 : (급사과) 미안해요.. 나 때문에 쉬지도 못 하고.. 안드레아 : 괜찮아요, 만나서 반갑기만 한걸요? 다니엘 : 안드레아가 피곤하니까 제가 온거잖아요 ㅋㅋ 신경 쓰지 마요! 너무나 친절한 그들과 감격스러운 첫 대면을 마치고 우리는 차에 올랐다. 안드레아는 바이아 마레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바이아 스프리에에서 일하고, 집은 치우즈 바이아라고 한다, 바이아 마레에서는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안드레아 : 루마니아 오니까 어때요? 용석 : 너무 좋아요 .특히 나는 마라무레슈에 꼭 오고 싶었거든요!! 다니엘 : 여기 자연 경관이 정말 죽여주죠. 용석 : 맞아요, 나도 마라무레슈 사진들 보면서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안드레아 : 여기에는 며칠 정도 있을 거에요? 용석 : 처음에 연락했듯이 3일 있을 계획이에요. 안드레아 : 대충 여행 코스는 짰어요? 용석 : 첫날은 안드레아가 사는 동네인 치비우 바이바 구경 좀 하고 둘째날은 안드레아랑 같이 출근해서 바이아 스프리에를 가려고요. 그리고 마지막 날은 바이아 마레에 갈 생각이에요. 다니엘 : 바이아 마레 다음에는 어디에 가려고요? 용석 : '시게투 마르마찌에'에 가려고요. 안드레아 : 멋진 계획이네요. 그럼 오늘은 치비우 바이아? 용석 : 네. 근데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책에도 안 나와있던데, 괜찮죠? 다니엘 : 눈이 많이 와서 멋질 거에요! 얼마 전까지 정말 추웠거든요.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치비우 바이아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이아 마레의 모습에는 3일 뒤를 기약하며! 피곤한 안드레아를 위해 대신 운전을 해준 다니엘! 루마니아 전통 세탁기구지금은 겨울이라 작동하지 않지만,여름에는 물레방아처럼 물이 흐르면서 통 안에 소용돌이가 생긴다.그 곳에 세탁물을 넣어서 빨래를 한다고 한다. 치비우 바이아 마을 입구에 사는 다니엘은 오늘 저녁에 놀러올테니 그 때 다시 보자며 인사를 하며 먼저 내렸다. 운전대를 건네 받은 안드레아는 웃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정말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끊임 없이 말을 걸어주며 중간에는 전통 세탁기구도 보여주었다. 용석 : 근데 안드레아, 다니엘은 남자친구예요? 안드레아 : ㅋㅋㅋㅋ 아니에요, 다니엘은 결혼도 했어요. 나중에 부인이랑 같이 올거에요. 용석 : 그렇구나. 같이 있을 때 물어봤으면 내가 실수 할 뻔 했네요 ㅋㅋ 안드레아 : 괜찮아요, 그는 좋은 친구니까요. 물론 그의 부인도요.. 용석 : 그런 것 같아요. 그나저나 안드레아, 괜찮아요? 많이 피곤해 보여요. 안드레아 : 걱정 말아요. 이제 다 왔어요. 그렇지만 집에 도착하면 좀 자고 싶어요. 사실 어제 거의 한 숨도 못 잤거든요. 용석 : (더욱 미안해하며) 그래요! 난 신경 쓰지 말고 도착하거든 바로 자요. 나는 그냥 안드레아 집 근처 산책하면 되니까요, 나 신경쓰지 말아요. 안드레아 : 미안해요, 용석. 주말이니까 여기 저기 놀러 가고 싶었는데.. 나로써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인데 안드레아는 더욱 잘해주지 못 해서 계속 미안하다고 하였다. 산 속에 덩그라니 놓인 집 한채가 안드레아의 집 이 곳이 내가 3일 동안 묵을 방. 화장실도 편하게 쓰라고 하였다. 그녀의 룸메이트 이멀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어코 점심까지 차려준 안드레아 치즈와 버섯, 계란으로 맛을 낸 오물렛이었다.같은 오물렛이어도 Gara de Nord 식당에서 먹은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양파와 올리브, 파프리카로 맛을 낸 샐러드가 곁들이니 최고! 안드레아가 베푸는 호의는 어느 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 나는 그녀에게 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자라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면서, 자기도 점심은 먹어야 한다며 멋진 식사를 대접했다. 안드레아 : 근데 용석, 유럽은 처음이에요? 용석 : 네. 왜요? 안드레아 : 아, 그럼 내가 조언 하나만 할게요. 용석 : (움찔) 뭐.. 뭔데요? 안드레아 : 영어 공부를 좀 더 해보는게 어때요? 나는 용석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용석 : (ㅠㅠㅠ) 미안해요, 안드레아.. 내가 너무 준비 없이 여기에 왔죠? 안드레아 : 괜찮아요, 미안할 일은 아니에요. 단지 나는 용석과 더 친해지고 싶은데, 아쉬워서 그런 거에요. 하긴 안드레아와의 대화가 내가 쓴 글처럼 저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전까지는 기본적인 회화만 했으면 됐지만 이제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내가 그들이 궁금하듯, 그들 역시 내가 궁금했을 텐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새롭게 정립되는 미-중 관계를 통하여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할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때때로는 이런 심도 깊은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냥 그렇다는 거죠.. 식사를 마치고 점심 12시가 다 되어서야 안드레아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오후 5시쯤 돌아오겠다고 말을 하고는 동네 구경에 나섰다. 부디 그때까지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푹 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비우 바이아는 정말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녀가 그곳에 산다는 것을 알고 여행 전에 구글 맵스에서도 찾아봤지만 그냥 산 중턱에 있는 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치우즈 바이아의 위엄...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이 곳에서 보내는 것이 괜찮을지 확신이 없었다. 관광지만 좇아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무리 볼거리는 없어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길 바랬었다. 도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으로 치우즈 바이아를 구경을 결정! 이곳은 정말로 너무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일요일 점심이라 그런지 모두들 집에 있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남의 닭들과 놀기도 했다. 역시 치킨이 있으면 외롭지 않아!! 응끼악! 그렇게 닭장 앞에서 닭들과 놀고 있는데,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들어온다. 가족들이 다 함께 외출을 했던 모양인지 젊은 부부와 어린 꼬마들이 타고 있다. 웃으며 손을 흔들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지금 남의 집 마당에 있다는 것을... 운전을 하고 있던 아저씨가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 오는데, 어색한 마음에 나는 계속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나의 인사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는 루마니아어로 열심히 말을 했지만 어찌됐든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았다. 두 손을 포개서 얼굴 옆에 갖다대는 모습이 어디서 자느냐고 묻는 것 같길래, '안드레아! 안드레아 빌트!' 라고 말했더니 그는 '아! 닥터 안드레아!' 라고 대답했다. 안드레아가 의사였나? 그러고보니 아직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자기 집 마당에서 놀고 있던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계속 내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멀리서는 엄마와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 나는 대충 웃으며 자리를 마무리 짓고 그 아이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멀리서 아이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려서부터 이런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지천이 놀이터였겠지. 워낙 조그마한 마을이기 때문인지 경계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곳곳에 쌓인 볏짚과 그 속에서 묻어나는 삶의 모습
얼마 전까지 많은 눈이 내렸는데 근래 날씨가 많이 풀린 모양이다. 사방은 온통 하얗지만 여기 저기서 쌓인 눈이 녹는 소리가 들릴 정도! 덕분에 길은 질퍽 질퍽해지고 첫날부터 말썽이던 내 부츠는 흠뻑 젖었다. 이럴 때 방수 기능이라도 펼쳐보였다면 모든 걸 용서해줄 수 있는데.. 차라리 이런 원조 어그라도 신었으면 방수는 됐을텐데!! ㅠㅠ 어차피 신발은 돌이킬 수 없을만큼 물에 젖어버렸으니, 이왕 이렇게 되버린 거 진자리 마른 자리 가리지 말고 마구 마구 걷자! 그렇게 생각하고 어디를 갈까 두리번 거리다가 마을 뒤에 작은 산이 보였다. 그래,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으니 이참에 루마니아 산을 정복하는게 좋겠다! 눈이 녹아 흐르는 바람에 여기가 길인지 계곡인지.. 그래도 더더욱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걸으니태초부터 루마니아가 지니고 있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곰이 나올 것 같아서 불안하기는 했지만나는 웅녀의 자손이니까 괜찮을거라 생각했다. 너..너무 웅녀를 믿으면 곤란할까?(웹툰 - 나비효과) 적당히 산에 올라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정말로 마음이 뻥 뚫렸다. 2011년 새해 첫날 불암산에서 일출을 보았는데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는 걸 뭐하러 루마니아에까지 와서 느끼냐고 묻는다면 여행이란 '내가 있는 곳과의 다른점'만을 찾는 과정은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서로 다른 점만 찾다보면 자꾸 비교하게 되고 어느새 우열을 가리게 된다 물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다른나라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닐까? 무엇이든, '다르기' 이전에 '같음'을 발견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없다면 차이는 차별이 되어버리가 쉽상일 것이다. 차별은 곧 우열을 방조하고 경쟁을 부축인다, 모두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멀리는 루마니아 사람들, 가깝게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두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 그 행복이라는 것도 역시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식당에서 만난 어르신도, 승무원도, 안드레아도, 그리고 마당에서 만난 아저씨도 모두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사람'으로 봐주었기에 모두 친절했던게 아닐까? 진정한 마음은 차이를 두지 않고 '함께'일 때 우러난다. 산에서 내려와 좀 더 마을 구경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먼저 인사를 건네면 환하게 웃으며 악수까지 청하는 어르신들도 있고 학교가 끝나고 친구와 서둘러 집에 가는 꼬마 아이들은 수줍어 했었다. 그리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조심스레 걸어가던 한 아가씨는 웃어주었다. 서서히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계획했던 5시가 다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안드레아는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아서 조용히 또 조심히 들어왔다. 일단 흠뻑 젖은 신발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다행히 내 방에 라지에이터가 있는 것이 생각나서 밤새 말려두기로 했다.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고 쉬고 있는데 곧 이어 안드레아가 일어났다. 용석 : 안드레아, 잘 잤어요? 안드레아 : (하품을 하며) 응~ 잘 잤어요. 어땠어요? 볼 거 좀 있었어요? 용석 : 그냥 여기 저기 걸어다니고, 저기 뒷산도 한번 올라가봤어요. 근데 길이 젖어서 (부츠를 가리키며) 저렇게 신발이 다 젖었어요. 안드레아 : 저런.. 그래도 밤새 거기 두면 아마 다 마를 거에요. 혹시 내일까지 안 마르면 내 신발 빌려줄게요, 걱정 마요. 용석 : ㅋㅋ 과연 안드레아 신발이 나한테 맞을까요? 안드레아 : ㅋㅋㅋㅋㅋ 그렇게 안드레아랑 웃고 떠드는데 다니엘과 그의 부인 마리아가 왔다. 푸근한 인상의 마리아는 반갑게 인사하며 볼에 입술을 맞추어주었다. 안드레아도 친구들을 맞이하고는 바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먼 땅에서 온 나까지 포함해서 친구들의 저녁을 차리는 안드레아 우선 에피타어저로 간단히 만든 요리양파, 마늘, 브로콜리 등을 넣어 만든 것을 식빵에 발라 먹는다.샐러드 대신 파프리카를 함께 먹으면 한층 더 개운한 맛이 난다. 보기에는 이래도 꽤 맛있었다. 여기에 식빵을 몇 조각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메모장에 요리 이름을 '에그플란트' 라고 적어놨는데 한국에 와서 아무리 검색해도 어그 부츠만 나오는게 아무래도 잘 못 알아온 것 같다.(그놈의 어그부츠는 끝까지 말썽이다..) 그리고 이건 토마토 소스로 맛을 낸 파스타. 고소한 맛의 치즈까지 들어있어서 더욱 맛있었다! 친구들은 손님인 나에게 많이 먹으라며 듬뿍 주었다. 술이 빠질 수 없지 ㅋㅋ 안드레아 : (식사를 앞두고) 용석, 식사하기 전에 모두에게 인사 해줄래요? 용석 : (깜놀) 인사요? 어떤 인사요? 안드레아 : 그냥 다같이 밥 먹기 전에 간단하게 한 마디만 해줘요. 순간 나는 외국 영화에서나 보았던 장면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만찬을 앞두고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하고 기도하는 장면. 일단 나는 크리스챤도 아니고, 그런 기도를 영어로는 더더욱 할줄 모르는데.. 내가 너무 당황한 모습을 보자 마리아는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마리아 : 너무 놀라지마요. 그냥 '포프타 부나' 라고 말하면 되요. 용석 : '포프타 부나 (Pofta Buna)'? 다니엘 : '맛있게 드세요' 라는 뜻이에요 ㅎㅎ 용석 : 아! 그렇구나. 다시 한 번.. 뭐라고 한다고요? 마리아 : 포프타 부나 용석 : 오케이! 알았어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일동 엄숙... 용석 : 포프타 부나 (맛있게 드세요)! 일동 : 물추메스크 (감사합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 중에 루마니아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마리아 : 용석, 근데 왜 하필 루마니아에 온 거에요? 용석 : 마리아는 혹시 콘스탄틴 게오르규 알아요? 마리아 : 콘스탄틴 게오르규...? 그게 누구에요? 용석 : 루마니아 작가인데,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썼거든요. 다니엘 : 소설 제목이 어떻게 되는데요? 용석 : "25시" 혹시 들어본 적 있어요? 일동 : (서로 수근거리다가) 잘 모르겠네요 ㅋㅋㅋ 여행을 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를 몰랐다. 소설 '25시'는 영화화까지 된 유명한 작품일뿐만 아니라 그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는데 정작 루마니아인이 모르다니! 사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게오르규에 관한 유적지가 있을까 했는데 쉽사리 찾아지지 않았다, 출생 지역도 겨우 알아낼 수 있었던 정도.. 잘은 모르겠지만 루마니아 공산주의화에 반대하며 프랑스로 망명해서 아직 루마니아 문단계 내에서는 조명받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반공의 영향으로 월북작가들이 아직 재평가 받지 못 하듯.. 게오르규는 특히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한국찬가>이라는 책까지 썼을 정도다.사진은 한국에 왔을 당시 이어령 교수와 함께 동양그룹 이양구 회장을 만나는 사진(사진 속 맨 오른쪽) 그렇게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밤 9시. 그 사이 다니엘은 회사에 일이 생겨서 마리아를 두고 먼저 돌아갔다. 마리아 역시 더 늦어지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친구 외에 처음으로 루마니아 친구를 사귄 나는 마리아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 챙겨온 복주머니를 건넸다. 어린 아이처럼 마리아는 깜짝 놀라며 너무나도 기뻐해주었다. 마리아 : (들뜬 얼굴로) 한국말로 이걸 뭐라고 불러요? 용석 : '복주머니' 라고 불러요. 행운을 부르는 주머니에요. 마리아 : 너무 고마워요! 언제나 기억하고 있을 게요. 안드레아 : 다니엘이 먼저 가서 마리아를 데려다줘야 할거 같아요. 같이 나갈래요? 아니면 집에서 쉬고 있을래요? 용석 : 나도 나가고 싶은데 아직 신발이 덜 말랐을 것 같아요. 안드레아 : 아, 그렇겠네요! 그럼 집에서 쉬고 있어요. 한 30분 정도면 돌아올 거에요. 마리아 : 용석,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용석 : 나도 반가웠어요, 마리아! 그렇게 루마니아 친구들하고만 함께한 시간을 마치고 안드레아는 잠시 마리아를 데려다주기 위해 나갔다. 그동안 나는 샤워라도 하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30분이면 오겠다던 안드레아가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점심에 다니엘이 내린 곳에 간 거라면 정말로 30분이면 될텐데, 한 시간.. 두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안드레아가 돌아 오지 않는다. 심지어 전화까지 받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고 답문이 없다. 9시가 지나서 나간 안드레아가 밤 11시가 넘도록 오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혹시 어두운 산길에서 사고라도 난걸까... 불길하고 불안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루마니아 여행기 (6) 안드레아를 만나다
루마니아 여행기 (1) 여행을 결심하다.루마니아 여행기 (2) 여행을 준비하다!루마니아 여행기 (3) 루마니아 가는 길루마니아 여행기 (4) 부카레스트에서의 첫 날루마니아 여행기 (5) 부카레스트 관광루마니아 여행기 (6) 안드레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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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승완이의 보호에서 벗어나 현지인들과 모든걸 함께 하게 된다.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더 컸기에 무거운 가방은 가벼운 발걸음을 붙잡지는 못 했다.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으니 일단 식사부터 해볼까?
생각해보니 아직 제대로 즐겨운 루마니아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오늘 아침 식사조차 레알 한국식인 밥에 김치찌개였지 않았는가!! 사실 루마니아 음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녁만큼은 제대로 루마니아식으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완이가 말했듯 주변에는 정말 이렇다할 식당이 없었다. 내 생각에는 기차역 주변이라서 먹을 곳이 많을 줄 알았는데 전부 케밥이나 햄버거, 피자 조각을 파는 패스트푸드 점들뿐... KFC와 맥도널드도 있었지만 그걸 먹으러 여기 온 것도 아니고.. 멀리 나갔다가는 기차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주변만 맴돌았다.
그런 나를 유심히 보고 있던 허름한 차림의 한 남자가 내게 다가온다.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나를 보며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다. 아마도 담배를 원하는 것 같길래 첫날 도착해서 산 담배를 건네주었다. 고맙다는 손짓을 하고는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저들이 집시일까 생각했다.
결국 마음에 식당은 찾지는 못 했지만 빵집은 많이 있길래, 내일 아침 식사로 삼을 빵을 두 개 구입했다. 1개에 1레이 (약 400원) 너털걸음으로 다시 Gara de Nord 기차 역에 돌아왔는데.. 식당 발견! 바로 기차역 안에 있던 레스토랑이었다. 파랑새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메뉴판을 정독하긴 했지만 대체 뭘 시켜야할지 몰랐다. 루마니아어를 모르기도 했지만 음식 문화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문제였다. 메뉴판에는 피자, 스파게티, 오물렛 등이 보이긴 했지만 이건 너무 평범하잖아! 그렇다고 아무거나 가리키며 '이거 주세요!' 라고 하기에는 덜컥 겁이 좀 났다. 결국 '햄 오믈렛이랑 맥주 한 병 주세요.' 라는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주문을 했다. 루마니아까지 와서 이런거 먹는게, 결국 맥도널드 가는거랑 뭐가 다른거야!
한심한 내 자신을 말끔히 씻고자 일단 맥주부터 벌컥 벌컥 들이켰다. 레스토랑 TV에서는 일본도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걸 유심히 보고 있던 한 노인분이 우연히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TV와 나를 번걸아 가리키면서 칼질 하는 사무라이 흉내를 내셨다. 내가 일본인이든 아니든 그냥 동양인이라는게 신기하셨던 모양이다. 그들에게는 일본이나 우리나 비슷한 삶을 사는 '동양인'으로 보이겠지.
한참 소심한 선택에 몸부림 치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남녀가 들어온다. 그들은 주인과 잘 아는 사이인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가게 안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가 웃으면서 나에게로 다가온다. 어머어머.. 그렇지만 나는 아무 여자에게나 쉽게 웃음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 하지만 내 여자에게는 따뜻하겠지
그렇지만 웃는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건네는데, 으악 루마니아어다!! 그녀의 웃음에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꾸하자 이내 그녀는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한다. 아.. 당신까지 이러기입니까.. 그래도 첫날 사두었던 담배를 이런 순간에 요긴하게 써먹게 되는 것 같다. 당연한 듯 요구하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으니 기분 나쁠 이유도 없었다.
맥주 한 병을 더 마시고 이제 기차를 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햄 오믈렛에 맥주 2병을 먹은 가격은 14레이 (약 5,600원)정도였다. 한국이었다면 맥주 2병 가격만 해도 족히 8천원 정도는 했을텐데!! 신나는 마음으로 플랫폼으로 가서 내가 타야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곳곳에 역무원들이 있어서 표를 보여주면 내가 타야할 곳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플랫폼마다 기차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표지판이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바이아 마레로 향하는 기차를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독일계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는데, 낯선 + 외국인 + 남자라는 3단 콤보로 이뤄진 내가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3층의 내 자리가 너무 좁아서 2층 침대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아주머니가 더욱 불안해 하실 것 같아서 관두기로 했다.
일단 자리를 잡고는 바이아 마레에서 만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이아 마레 근처에 사는 안드레아 빌트 (Andrea Bilt)라는 32살의 여성. 떨리는 마음으로 승완이가 빌려준 휴대폰을 전화를 걸었다.
용석 : 아, 안드레아? 저 한국에서 온 용석이에요. 안드레아 : (반갑게) 용석! 잘 도착했어요? 내일 아침에 오죠? 용석 : 네. 지금 부카레스트에서 기차 탔어요. 안드레아 : 정확히 몇시 쯤 도착해요? 내가 마중 나갈게요? 용석 : 앗, 안 그래도 돼요! 어떻게 가야하는지만 알려주세요. 안드레아 :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그 때 밖에 있거든요. 용석 : 그래요? 그럼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 10시 20분에 도착해요. 안드레아 : 그럼 제가 아침 10시에 나가있을게요. 용석 : (더욱 미안해하며) 그럴 필요 없어요, 천천히 나와요! 안드레아 : ㅋㅋㅋ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할게요. 용석 : 고마워요, 안드레아. 내일 만나요!
비록 그녀의 거센 억양과 빠른 말 때문에 대화가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역으로 마중나온다는 안드레아의 친절함은 충분히 느껴졌다. 루마니아에 오기 전에 9일에 바이아 마레에 간다고 메일을 보내긴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한게 무색할 만큼 너무 일이 쉽게 풀렸다. 안드레아와 통화하던 사이에 기차는 제 시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마니아에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유머 사진이 한 장 있다.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이지 못 한 내 잘못이겠지만, 그래도 기차를 타기 전까지는 위 사진처럼 일정치 못 한 운행으로 행여나 기차를 놓치면 어떡하나 걱정 했었지만 - 그것 역시 기우였다. 보름동안 모든 열차는 제 시간에 출발하고 제 시간에 도착했었다.
저녁 8시 15분 정확하게 출발한 기차 속에서 책이라도 볼까 했지만 좁은 3층 칸에서는 책을 꺼내들긴 커녕 몸을 뒤척거리기조차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던 나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행 앞에서 모든 긴장이 풀려버린 탓도 있었겠지만..
좁은 침대에서 지새운 지난 밤이었지만 너무나 상쾌한 아침이었다. 반갑게 아래 침대에서 함께 아침을 맞이한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먼저 일어나 계셨던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신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까치집 머리에 퉁퉁 부은 나를 보고 있을 걸지도...
여행의 필수품 물티슈로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복도로 나갔다. 차창 밖으로 끊임 없이 펼쳐지는 시골의 풍경은 확실히 도시와 달랐다. 때마침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승무원이 인사를 건네주었다.
승무원 : 잘 잤어요? 용석 : 네, 좋은 아침이에요. 바이아 마레는 언제 도착해요? 승무원 : 정확히 10시 19분에 도착할 거에요. 용석 : 거기가 마지막 역인가요? 승무원 : 네, 바이아 마레가 마지막 역이에요.
뚱뚱한 체구에 멋지게 콧수염을 기른 승무원은 능숙한 영어로 답해주었다. 도착 시간도 알았겠다, 더구나 마지막 역이라니 못 내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안내 방송도 안 나오고 안내판도 없어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었지만, 도착 시간을 잘 알아두고 수시로 승무원에게 물어보면 걱정따윈 필요 없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 사이 어느새 열차는 제 시간에 맞춰 바이아 마레에 도착했다. 아까 복도에서 대화를 나눈 승무원은 친절히 내 방으로 와서 도착했다고 말해주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모습들에 '감사합니다' 라는 뜻을 지닌 '물추메스크'가 절로 입에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여행지에서 그 말이 얼마나 빨리 입에 붙느냐는 곧 그 나라의 친절함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닐까?
바이아 마레는 과연 부카레스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도시의 모습에서 흔히 느껴지는 부산함과 번잡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맑은 공기가 정말로 이 곳이 마라무레슈의 한 도시임을 말해주었다. 높은 건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안개낀 하늘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들은 어제 부카레스트에서 경험한 것들이 결코 루마니아를 대표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감격에 젖어 바이아 마레 역사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온다. 그 웃음이 내게로 번져나간다. 안드레아 : (악수를 청하며) 어디로 모실까요? 용석 : (반갑게 소리치며) 안드레아!!! 안드레아 : 어서와요, 용석. 만나서 반가워요.
환하게 웃는 그녀의 미소는 나를 어린애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게 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차가 있는 곳으로 가니 웬 남자가 서 있다.
다니엘 : 반가워요, 용석. 난 다니엘이라고 해요. 용석 : 안녕하세요, 다니엘! 안드레아 : 제 친구에요. 내가 좀 피곤해서 여기까지 대신 운전해줬어요. 용석 : (급사과) 미안해요.. 나 때문에 쉬지도 못 하고.. 안드레아 : 괜찮아요, 만나서 반갑기만 한걸요? 다니엘 : 안드레아가 피곤하니까 제가 온거잖아요 ㅋㅋ 신경 쓰지 마요!
너무나 친절한 그들과 감격스러운 첫 대면을 마치고 우리는 차에 올랐다. 안드레아는 바이아 마레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바이아 스프리에에서 일하고, 집은 치우즈 바이아라고 한다, 바이아 마레에서는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안드레아 : 루마니아 오니까 어때요? 용석 : 너무 좋아요 .특히 나는 마라무레슈에 꼭 오고 싶었거든요!! 다니엘 : 여기 자연 경관이 정말 죽여주죠. 용석 : 맞아요, 나도 마라무레슈 사진들 보면서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안드레아 : 여기에는 며칠 정도 있을 거에요? 용석 : 처음에 연락했듯이 3일 있을 계획이에요. 안드레아 : 대충 여행 코스는 짰어요? 용석 : 첫날은 안드레아가 사는 동네인 치비우 바이바 구경 좀 하고 둘째날은 안드레아랑 같이 출근해서 바이아 스프리에를 가려고요. 그리고 마지막 날은 바이아 마레에 갈 생각이에요. 다니엘 : 바이아 마레 다음에는 어디에 가려고요? 용석 : '시게투 마르마찌에'에 가려고요. 안드레아 : 멋진 계획이네요. 그럼 오늘은 치비우 바이아? 용석 : 네. 근데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책에도 안 나와있던데, 괜찮죠? 다니엘 : 눈이 많이 와서 멋질 거에요! 얼마 전까지 정말 추웠거든요.
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치비우 바이아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바이아 마레의 모습에는 3일 뒤를 기약하며!
치비우 바이아 마을 입구에 사는 다니엘은 오늘 저녁에 놀러올테니 그 때 다시 보자며 인사를 하며 먼저 내렸다. 운전대를 건네 받은 안드레아는 웃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정말 피곤해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끊임 없이 말을 걸어주며 중간에는 전통 세탁기구도 보여주었다.
용석 : 근데 안드레아, 다니엘은 남자친구예요? 안드레아 : ㅋㅋㅋㅋ 아니에요, 다니엘은 결혼도 했어요. 나중에 부인이랑 같이 올거에요. 용석 : 그렇구나. 같이 있을 때 물어봤으면 내가 실수 할 뻔 했네요 ㅋㅋ 안드레아 : 괜찮아요, 그는 좋은 친구니까요. 물론 그의 부인도요.. 용석 : 그런 것 같아요. 그나저나 안드레아, 괜찮아요? 많이 피곤해 보여요. 안드레아 : 걱정 말아요. 이제 다 왔어요. 그렇지만 집에 도착하면 좀 자고 싶어요. 사실 어제 거의 한 숨도 못 잤거든요. 용석 : (더욱 미안해하며) 그래요! 난 신경 쓰지 말고 도착하거든 바로 자요. 나는 그냥 안드레아 집 근처 산책하면 되니까요, 나 신경쓰지 말아요. 안드레아 : 미안해요, 용석. 주말이니까 여기 저기 놀러 가고 싶었는데..
나로써는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인데 안드레아는 더욱 잘해주지 못 해서 계속 미안하다고 하였다.
안드레아가 베푸는 호의는 어느 것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 나는 그녀에게 나 신경 쓰지 말고 얼른 자라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면서, 자기도 점심은 먹어야 한다며 멋진 식사를 대접했다.
안드레아 : 근데 용석, 유럽은 처음이에요? 용석 : 네. 왜요? 안드레아 : 아, 그럼 내가 조언 하나만 할게요. 용석 : (움찔) 뭐.. 뭔데요? 안드레아 : 영어 공부를 좀 더 해보는게 어때요? 나는 용석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용석 : (ㅠㅠㅠ) 미안해요, 안드레아.. 내가 너무 준비 없이 여기에 왔죠? 안드레아 : 괜찮아요, 미안할 일은 아니에요. 단지 나는 용석과 더 친해지고 싶은데, 아쉬워서 그런 거에요.
하긴 안드레아와의 대화가 내가 쓴 글처럼 저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전까지는 기본적인 회화만 했으면 됐지만 이제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내가 그들이 궁금하듯, 그들 역시 내가 궁금했을 텐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새롭게 정립되는 미-중 관계를 통하여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할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때때로는 이런 심도 깊은 이야기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식사를 마치고 점심 12시가 다 되어서야 안드레아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오후 5시쯤 돌아오겠다고 말을 하고는 동네 구경에 나섰다. 부디 그때까지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푹 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비우 바이아는 정말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녀가 그곳에 산다는 것을 알고 여행 전에 구글 맵스에서도 찾아봤지만 그냥 산 중턱에 있는 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를 이 곳에서 보내는 것이 괜찮을지 확신이 없었다. 관광지만 좇아다닐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무리 볼거리는 없어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길 바랬었다. 도시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상관 없겠다는 생각으로 치우즈 바이아를 구경을 결정!
그렇게 닭장 앞에서 닭들과 놀고 있는데,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들어온다. 가족들이 다 함께 외출을 했던 모양인지 젊은 부부와 어린 꼬마들이 타고 있다. 웃으며 손을 흔들던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지금 남의 집 마당에 있다는 것을... 운전을 하고 있던 아저씨가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 오는데, 어색한 마음에 나는 계속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나의 인사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는 루마니아어로 열심히 말을 했지만 어찌됐든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았다. 두 손을 포개서 얼굴 옆에 갖다대는 모습이 어디서 자느냐고 묻는 것 같길래, '안드레아! 안드레아 빌트!' 라고 말했더니 그는 '아! 닥터 안드레아!' 라고 대답했다. 안드레아가 의사였나? 그러고보니 아직 그녀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자기 집 마당에서 놀고 있던 것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계속 내게 말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멀리서는 엄마와 아이들이 보고 있었다. 나는 대충 웃으며 자리를 마무리 짓고 그 아이들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멀리서 아이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까지 많은 눈이 내렸는데 근래 날씨가 많이 풀린 모양이다. 사방은 온통 하얗지만 여기 저기서 쌓인 눈이 녹는 소리가 들릴 정도! 덕분에 길은 질퍽 질퍽해지고 첫날부터 말썽이던 내 부츠는 흠뻑 젖었다. 이럴 때 방수 기능이라도 펼쳐보였다면 모든 걸 용서해줄 수 있는데..
어차피 신발은 돌이킬 수 없을만큼 물에 젖어버렸으니, 이왕 이렇게 되버린 거 진자리 마른 자리 가리지 말고 마구 마구 걷자! 그렇게 생각하고 어디를 갈까 두리번 거리다가 마을 뒤에 작은 산이 보였다. 그래,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으니 이참에 루마니아 산을 정복하는게 좋겠다!
적당히 산에 올라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정말로 마음이 뻥 뚫렸다. 2011년 새해 첫날 불암산에서 일출을 보았는데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는 걸 뭐하러 루마니아에까지 와서 느끼냐고 묻는다면 여행이란 '내가 있는 곳과의 다른점'만을 찾는 과정은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서로 다른 점만 찾다보면 자꾸 비교하게 되고 어느새 우열을 가리게 된다 물론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다른나라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닐까?
무엇이든, '다르기' 이전에 '같음'을 발견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없다면 차이는 차별이 되어버리가 쉽상일 것이다. 차별은 곧 우열을 방조하고 경쟁을 부축인다, 모두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멀리는 루마니아 사람들, 가깝게는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두 살아가고 있다. 모두가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 그 행복이라는 것도 역시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식당에서 만난 어르신도, 승무원도, 안드레아도, 그리고 마당에서 만난 아저씨도 모두 나를 '다른 사람'이 아닌 '같은 사람'으로 봐주었기에 모두 친절했던게 아닐까?
산에서 내려와 좀 더 마을 구경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먼저 인사를 건네면 환하게 웃으며 악수까지 청하는 어르신들도 있고 학교가 끝나고 친구와 서둘러 집에 가는 꼬마 아이들은 수줍어 했었다. 그리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조심스레 걸어가던 한 아가씨는 웃어주었다.
서서히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계획했던 5시가 다 되어서 집에 돌아왔다. 안드레아는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아서 조용히 또 조심히 들어왔다. 일단 흠뻑 젖은 신발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을 하다가, 다행히 내 방에 라지에이터가 있는 것이 생각나서 밤새 말려두기로 했다.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있고 쉬고 있는데 곧 이어 안드레아가 일어났다.
용석 : 안드레아, 잘 잤어요? 안드레아 : (하품을 하며) 응~ 잘 잤어요. 어땠어요? 볼 거 좀 있었어요? 용석 : 그냥 여기 저기 걸어다니고, 저기 뒷산도 한번 올라가봤어요. 근데 길이 젖어서 (부츠를 가리키며) 저렇게 신발이 다 젖었어요. 안드레아 : 저런.. 그래도 밤새 거기 두면 아마 다 마를 거에요. 혹시 내일까지 안 마르면 내 신발 빌려줄게요, 걱정 마요. 용석 : ㅋㅋ 과연 안드레아 신발이 나한테 맞을까요? 안드레아 : ㅋㅋㅋㅋㅋ
그렇게 안드레아랑 웃고 떠드는데 다니엘과 그의 부인 마리아가 왔다. 푸근한 인상의 마리아는 반갑게 인사하며 볼에 입술을 맞추어주었다. 안드레아도 친구들을 맞이하고는 바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안드레아 : (식사를 앞두고) 용석, 식사하기 전에 모두에게 인사 해줄래요? 용석 : (깜놀) 인사요? 어떤 인사요? 안드레아 : 그냥 다같이 밥 먹기 전에 간단하게 한 마디만 해줘요.
순간 나는 외국 영화에서나 보았던 장면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만찬을 앞두고 '하느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하고 기도하는 장면. 일단 나는 크리스챤도 아니고, 그런 기도를 영어로는 더더욱 할줄 모르는데.. 내가 너무 당황한 모습을 보자 마리아는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마리아 : 너무 놀라지마요. 그냥 '포프타 부나' 라고 말하면 되요. 용석 : '포프타 부나 (Pofta Buna)'? 다니엘 : '맛있게 드세요' 라는 뜻이에요 ㅎㅎ 용석 : 아! 그렇구나. 다시 한 번.. 뭐라고 한다고요? 마리아 : 포프타 부나 용석 : 오케이! 알았어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일동 엄숙...
용석 : 포프타 부나 (맛있게 드세요)! 일동 : 물추메스크 (감사합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 중에 루마니아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마리아 : 용석, 근데 왜 하필 루마니아에 온 거에요? 용석 : 마리아는 혹시 콘스탄틴 게오르규 알아요? 마리아 : 콘스탄틴 게오르규...? 그게 누구에요? 용석 : 루마니아 작가인데,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썼거든요. 다니엘 : 소설 제목이 어떻게 되는데요? 용석 : "25시" 혹시 들어본 적 있어요? 일동 : (서로 수근거리다가) 잘 모르겠네요 ㅋㅋㅋ
여행을 하면서 만난 대부분의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를 몰랐다. 소설 '25시'는 영화화까지 된 유명한 작품일뿐만 아니라 그는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는데 정작 루마니아인이 모르다니!
사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게오르규에 관한 유적지가 있을까 했는데 쉽사리 찾아지지 않았다, 출생 지역도 겨우 알아낼 수 있었던 정도.. 잘은 모르겠지만 루마니아 공산주의화에 반대하며 프랑스로 망명해서 아직 루마니아 문단계 내에서는 조명받지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반공의 영향으로 월북작가들이 아직 재평가 받지 못 하듯..
그렇게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밤 9시. 그 사이 다니엘은 회사에 일이 생겨서 마리아를 두고 먼저 돌아갔다. 마리아 역시 더 늦어지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친구 외에 처음으로 루마니아 친구를 사귄 나는 마리아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 챙겨온 복주머니를 건넸다. 어린 아이처럼 마리아는 깜짝 놀라며 너무나도 기뻐해주었다.
마리아 : (들뜬 얼굴로) 한국말로 이걸 뭐라고 불러요? 용석 : '복주머니' 라고 불러요. 행운을 부르는 주머니에요. 마리아 : 너무 고마워요! 언제나 기억하고 있을 게요.
안드레아 : 다니엘이 먼저 가서 마리아를 데려다줘야 할거 같아요. 같이 나갈래요? 아니면 집에서 쉬고 있을래요? 용석 : 나도 나가고 싶은데 아직 신발이 덜 말랐을 것 같아요. 안드레아 : 아, 그렇겠네요! 그럼 집에서 쉬고 있어요. 한 30분 정도면 돌아올 거에요. 마리아 : 용석, 만나서 너무 반가웠어요! 용석 : 나도 반가웠어요, 마리아!
그렇게 루마니아 친구들하고만 함께한 시간을 마치고 안드레아는 잠시 마리아를 데려다주기 위해 나갔다. 그동안 나는 샤워라도 하고 오늘 하루를 정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30분이면 오겠다던 안드레아가 1시간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 점심에 다니엘이 내린 곳에 간 거라면 정말로 30분이면 될텐데, 한 시간.. 두시간.. 아무리 기다려도 안드레아가 돌아 오지 않는다.
심지어 전화까지 받지 않는다. 문자를 보내고 답문이 없다. 9시가 지나서 나간 안드레아가 밤 11시가 넘도록 오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혹시 어두운 산길에서 사고라도 난걸까... 불길하고 불안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