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펌] 녹음실

에효;;2011.02.15
조회318

더이상의 논쟁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올립니다

 

http://eodus467.blog.me/40121404614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

 

덜컹.

 

부스문을 여는소리가 차갑게 고막을 파고들었다. 열쇠를 돌려 빼낸 뒤 입고있던 자켓의

주머니에 깊숙히 쑤셔넣은 뒤, 가슴에 손을 올리고 크게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들고들어왔던 손전등을 터치해 누른 뒤 왼쪽 손바닥으로 불빛을 가린 채 한참을 있었다.

엔지니어실에 있는 철로 된 낡은 서랍장을 살짝비추어 첫번째 열쇠를 돌렸지만 실패다.

약 열개정도의 열쇠가 무수히 달려있어 어떤게 서랍장의 열쇠인지 몰랐던 탓이다.

실패했던 열쇠 하나를 손으로 띠어내고, 다음 열쇠를 구멍에 끼워넣었다.

 

젠장.. 또 실패다.

 

 

 

끼익..

 

그때였다, 내가 잠궈두지 않은 문은 낮은마찰음을 내며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들고있던 손전등을 끄고 조용히 몸을 부스의 벽으로 밀착시켰다.

'아차!'하는 생각과 동시에 내 눈에 발견된 건 아까 손으로 띠어냈던 두개의 열쇠.

지금 들어온 '그'가 혹시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맞다면, 그는 따로 떨어져있는 두개의

열쇠를 보고 이 녹음실의 불을 전부 켜 죽기살기로 날 찾으려들 것이 분명하다.

 

손을 뻗어 열쇠가까이에 가져다대려고 하는데, 그 순간.

터벅,터벅. 그의 발소리가 저음을 유지한 채 손전등의 빛을 따라 이곳으로 오고있다.

 

 

 

 

' 아.. 여기까지 오면 안되는데.. 제발.. 제발.. '

 

 

 

 

그의 발걸음은 내가 숨어있던 키보드책상 앞에서 멈췄다. 순간적으로 한번에 들어마신

호흡이 곤란해져 내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극도의 불안감과 함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손전등은 내 주위를 맴돌며 크게 원을 그렸고, 내 옷깃이 불빛에 보일락말락한다.

 

한참을 손전등으로 살피던 그는 다행이도 내가 있던 곳까지 불빛을 비춰보지 않았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 남자는 나를 등진 채로만 좁은 시야로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숨을 참고 있던 난 더이상 견디지 못할만큼 호흡이 가빠져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난 점점 불안한 마음이 엄슴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열이 났지만 꽤나 인내심을 내 참고있는 중이다.

 

 

 

 

" 어라..?이 열쇠가 왜 여기있지? "

 

 

 

 

그는 갑자기 허리를 숙여 내가 아까 흘려놓았던 열쇠한개를 집어들었다.

아니, 흘렸다기보단 잘못해서 던져놓은 열쇠를 지금 그가 발견한 것이다.

 

 

 

 

.

 

.

 

.

 

.

 

.

 

 

 

 

" 후.... "

 

 

 

 

그가 발걸음을 돌려 저만치 걸어나가고 있다는 걸 느낀 후 약 몇분간을 그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갔다는 걸 예상한 난 그제서야 한숨을 내 쉰 뒤 숨을 고랐다. 이마에 맺힌

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나는 왼손으로 땀방울을 스윽, 닦은 채 다시 열쇠를 집어들었다.

 

이제 확률은 1/8.. 그가 다시한번 눈치채기 전에 빠른방법으로 이 서랍장을 열어봐야한다.

달칵,달칵.. 마치 꼭 짠것처럼 열쇠는 쉽사리 맞아 돌아가지 않았고, 나는 점점 마음이

급해져 뒤쪽으로 갈수록 열쇠를 감정적으로 돌리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세개의 열쇠만이

남을때까지 서랍장의 문은 굳게 닫힌채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때였다, 갑자기 녹음실 내부가 환하게 불빛이 켜지더니 이내 부스안에도 노란색의

조명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들켰나보다.

 

일단 이곳에서 도망치기 위해 부스의 문쪽으로 바짝 몸을 붙여 최대한 유리에 비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행동을 취했다. 꽉닫힌 부스안에서는 밖에서나는 소리가 털끝하나 들리지

않았고 나는 그제서야 내 몸에 베여오는 긴장감이 어느새 부르르 떨고있다는 걸 느꼈다.

조용히 문고리를 잡았고, 이 문고리를 잡으며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교차하기 시작한다.

 

그래, 내가 마지막으로 결정한 방법은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것이였다.

그 후에 어떻게 되던 안되던, 그건 그때가서 결정할 일이고 일단은 그의 손에 잡히지 않는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이자 최소한의 방법임을 잘 알고있기에 잡았던 문고리를 슬며시

아래로 돌리며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이 곳을 빠져나가는게 최대의 관문일줄 알았던 난,

생각보다 쉽게 열리는 문에 마음속으로 작은 탄성을 뱉으며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봤다.

 

.................... 그다, 그가 무언가를 찾고있다.

 

 

 

 

" 뭐야! "

 

 

 

 

다리가 후들거려 뛰려고 마음먹기까지 또한 너무나 많이 걸렸지만 일단 작정하고 뛰기

시작했더니 줄곧 앞으로 몸이 따라가주기 시작한다.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익숙하지 않은 이곳 복도를 따라 몇바퀴를 돌고나니 진이 빠져 숨이 찼다.

 

그리고 더 이상 날 ?i는 그의 목소리 또한 따라오지 않았고, 난 그제서야 한숨을 돌린 채

두 무릎을 잡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린 탓에 온몸이 흠뻑 젖어 머리에서는

땀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엄습해온 불안감에 몸을 한쪽 벽면으로

밀착시켰다.

 

 

또각.. 또각,

 

어디에서부턴가 어둠속으로부터 남자 구두굽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찢어질듯한 공포심에 나는 벽을 더듬어 잡히는대로 문고리를 잡았고, 그 소리가

가까워지기 바로 직전, 화장실로 보이는 듯한 이곳에 몸을 숨긴 채 문고리를 조심스레

채웠다. 그가 설마 내가 여기로 숨어들었을꺼란 상상은 하지 않겠지?

 

 

 

 

화장실은 세면대쪽의 형광등을 빼고 모두 켜지지 않았다.

세면대를 기점으로 양쪽으로 각각 네개의 칸이 있고, 이젠 남은 형광등 하나마저도

깜박거리며 얼마있음 꺼질기세를 보였다. 세면대에 손을 얹어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은 소름이 돋아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호기심반, 오기반으로 시작한 이 게임에서 나는 곧 패자가 될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 젠장.. "

 

 

 

 

낮게 읊조리는 내 탁한음성은 화장실의 싸늘한 내부를 채워나갔고, 그 말은 곧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듯 벽에 부?H혀 다시 내 귀를 파고들어왔다.

 

진짜 최악의 상황이군.

 

 

 

 

 

 

 

 

 

 

 

 

 

 

 

 

 

 

 

 

 

 

 

 

 

쿵쿵쿵..!

 

문쪽이다! 문쪽에서부터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순간 심장이 멎는듯한 느낌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서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차. 그제서야 생각이났다, 내가 아까 화장실문을 잠궜었나?

그렇다면 저 남자는 당연히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문고리도 만져보지 않은 채

이 문은 굳게 잠겨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저런 행동을 취하는 것일까?

 

나는 손으로 내 몸을 끌어 왼쪽 화장실 맨 끝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모두 지탱해가기엔 내 손의 힘은 그리 세지 못했고, 곧 손톱에서부터 빨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손끝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유달리 힘이 약한 왼손의 검지손톱은 이미

빠져 흐물흐물하게 변해있었지만 난 그 고통과 아픔보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

 

 

 

 

 

쿵쿵.. 쿵쿵쿵쿵... 쿵쿵..!

 

문은 내가 앞으로 몸을 이끌어갈수록 더욱 세차게 두드려졌다. 그 두려움을 아는가?

어두운 곳의 적막함을 깨는 세찬 문소리.. 게다가 이미 ?i기고 있는 나의 심리상태.

극도로 도달한 흥분은 멈출줄 모르고 나아갔다. 겨우 도착한 네번째 칸에 몸을 넣어

쭈그리고 앉은 뒤, 문고리를 걸어잠궜다. 그가.. 제발 이곳까지 오지 않길 바란다.

 

 

내가 문고리를 걸어잠그자마자 깜박거리던 조명이 빛을 잃고 꺼져버렸다.

이젠 그 남았던 한줄기의 빛마저도 없는 상황, 그가 이 곳을 들어온다면 나에게는

좀 전보다 더욱더 비참한 최악의 상태가 닥쳐오게되는 것이다. 예를들어.. 죽음.

불빛이 사라지자 거셌던 발길질이 언제그랬냐는 듯 갑작스레 들려오지 않는다.

 

한평남짓되는 화장실의 좁은공간에서 내 몸은 마치 비맞은 생쥐처럼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고 내 손과 발에선 타일에 긁혀 난 상처들로부터 피가 멈출줄은 모른 채 흐르고있다.

 

 

 

 

" 하아... "

 

 

 

 

겁에질린 얼굴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길 바란지 얼마나됐을까, 주위는 조용하다.

그가 자기성에 못이겨 열리지 않는 문을 내버려둔 채 그냥 간걸까?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곧게 서있지 않은 다리를 정리하며 난간을 잡았다.

 

빨리 이곳에서 탈출해야한다.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고, 주머니엔 켜지지 않은 핸드폰이 자리잡고 있다.

배터리를 잃어버려 쓸모없게 된 내 핸드폰은 아무리 END를 눌러도 켜지지 않는다.

 

 

 

 

" 신발.. "

 

 

 

 

! ! ! ! ! ! ! ! ! !

 

잠깐, 무언가의 소리가 밖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누군가가 내 머리맡에서 날 지켜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뭐...지?

 

 

 

 

" .. 화장실로 이어져있는 네 땀.. 맨 끝칸으로 이어져있는 네 피..

  그리고 거기서 죽음에 두려워하고 있는..... 너. "

 

" 아악! "

 

 

 

 

내 머리채가 한손에 누군가에게 들려졌다. 목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애써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어느순간부터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

 

.

 

.

 

.

 

.

 

 

내가 본 마지막은 발밑으로 깨진 거울조각을 통해 본 내 윗모습.

 

화장실 천장에 고개를 내밀어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그가 거울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으며 단숨에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 모습. 그게 내 인생 내가 본 마지막 모습.

 

그리고 내가 들은 마지막 음성.. 꺼져있던 핸드폰의 벨소리.

 

 

 

 

 

 

 

 

 

 

 

 

 

 

 

 

 

 

 

 

 

 

 

 

 

 

 

 

 

 

 

 

 

 

 

 

 

 

 

 

 

 

 

 

 

 

 

 

 

 

 

 

 

 

 

 

 

 

 

 

 

 

" 저기, 앨범녹음작업을 좀 부탁하려고하는데요. "

" 성별이 어떻게 되시죠? "

" 남잔데, 그게 꼭 필요한가요? "

" 저희 녹음실은 여자분은 받지 않습니다. "

 

 

 

 

재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그럴만한 이유가 뭐가 있느냐며 뻔뻔스레 행동했다.

그는 대답대신 녹음여부에대한 결정만을 물었고, 재중은 알았다며 전화를 끊는다.

 

 

 

김재중, 나이 22. 직업 가수

 

- 한때 많은 인기를 누렸던 한 그룹의 아이돌 가수였지만, 현재 솔로로 데뷔를 준비중이다.

 

재중은 항상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분량의 추리소설을 가져다놓고 읽는 취미를 가지고있다.

뭐든 집중력이 뛰어나고 깊게 파고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요즘들어 그 소설들이 모두

현실이 될꺼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에 사로잡혀 가끔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정적인 성격탓에 되던것도 안풀릴때가 많으며 몸으로 직접 겪는 것을 좋아한다.

 

 

 

재중은 전화를 끊은 뒤 전화기를 쳐다보며 방금전 자신과 통화했던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다

이내 비웃어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껄렁껄렁한 느낌의 그는 어딘가모르게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작게 흥얼버리며 제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 김준수? 말투하난 영 싸가지가 없어. "

 

.

 

.

 

.

 

 

" 김준수.. 김준수라.. "

 

 

 

 

 

 

 

 

 

 

 

 

 

 

 

 

 

 

 

 

 

 

 

 

 

 

 

 

 

 

 

" 네가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이 뭔지 알아? "

" .. 쿨럭... 전.. 전..아.. 아무것도..쿨럭.. "

" 그래, 바로 그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너라는 것 때문이야. "

 

 

 

 

부스 안, 나는 그에게 내 목덜미를 잡혀 그의 손에 강하게 결박당한 채 벽에 기대었다.

그는 평소 운동을 즐겨하던 사람이었기때문에 예상대로 팔힘이 무척이나 강했고,

나는 그런 그의 손을 저지하지 못한 채 막혀오는 숨을 그대로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내 손은 부들부들 떨려오고 곧 온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며 숨을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됐을 때, 그가 갑자기 결박했던 손을 풀러 내 한쪽 어깨를 밀어부쳤다.

 

 

 

 

" 그래도.. 봤다는 건 확실하지? 부인할 수 없잖아? "

" 이러지.. 이러지 마세요..! "

 

 

 

 

나는 최대한 숨을 고르며 정확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다.

대체 나는 내가 본 그 무엇이, 이 남자에게 어떻게 잘못된건지 모르지만 그는 내가

나는 알고 있다며 계속해서 나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뒷주머리로 손을 가져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더욱 급박해졌지만, 어깨를 누르고 있는

그의 힘과 그 기세에 억눌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 다리가 풀려버린 내 병신같은 몸 탓에

겨우 열 수 있던 입의 저항뿐, 그에게 더이상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 악...! "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배를 향해 정확히 날카로운 칼날을 꽃았다.

내가 비명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지자, 다시한번 칼날을 높이 들었다.

 

 

 

 

" 하지마.. 하지.. !! "

 

 

 

 

심장쪽에 무언가 차가운 이물질이 들어와 박히는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 차가운 물체는 깊숙히 내 심장으로 곤두박칠 친 뒤 배 아래까지 내동댕이 쳐졌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고 그는 마지막으로 내가 정신을 놓기전..

두손으로 칼을 들어 내 머리에 사정없이 내리찍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내 정신력은 얼마나 끈질긴건지 아무래도 쉽게 정신을 놓지 못하고 있다.

머리 위에서부터 흐르는 피 사이로 무언가 미지근한 물체들이 함께 흘러내렸고,

그것들은 내 눈을 덮으며 내 코.. 내 입술을 지나 이미 찢어져버린 내 뱃가죽위로

자리를 옮겨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정도의 화려한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 이정도면.. 됐나? "

 

 

 

 

그는 마지막으로 칼을 저 높이 치켜들었다. 자신의 온몸을 모두 그 칼끝에 맡긴 듯

칼날이 퍼렇게 선 그 칼은 매우 무겁고 둔탁하게만 느껴졌다. 한동안 고통이 물밀 듯

몰려오던 느낌이 그렇게 내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미칠것만 같았는데, 그의 마지막

배려에 나는 한줄기 잡고있던 실줄기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잡히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지. 마지막 내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은 죽음과 동시에 내 몸의 죽지않은

모든 세포들을 소름에 끼치게 만들었다.

 

 

 

 

" 잘했어.. "

 

 

 

 

그렇게 머리속이 아무렇게나 파헤쳐진 내 목이 댕강, 잘려버리고 말았다.

 

 

 

 

 

 

 

 

 

 

 

 

 

 

 

 

 

 

 

 

 

 

 

 

 

 

 

 

 

 

 

 

 

 

 

 

 

 

 

 

 

 

" 어서오세요. "

 

 

 

 

재중이 들어선 곳은 강남의 어느 한적한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녹음실이였다.

전 날, 김준수와의 통화에 바짝 긴장하고 있던 그는 시시껄렁한 발걸음으로

녹음실에 들어섰다. 그의 매니저는 재중이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뒤를 따랐고, 출입문 앞에서 재중과 매니저는 한 사람을 만났다.

 

 

 

 

" 매니저분은 밖에서 기다리도록 하세요. "

" 무슨소리죠? "

" ....... 의뢰하신 분만 들어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

 

 

 

 

매니저는 계속해서 출입문을 지키고 있는 한 남자에게 반박을 하며 따졌지만,

그는 확고하게도 재중을 뺀 매니저를 들여보내줄 수 없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의뢰라.. 의뢰라고 하기엔 너무 웃긴 녹음실 문의는 처음부터가 색달랐다.

남자만을 받는다는 말도 그렇고, 혼자 들어올 수 있다는 이 사람의 말도 그렇고..

한참동안 말다툼을 하던 매니저와는 달리 재중은 씁쓸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무표정을 지키고 섰다. 그때, 매니저가 재중에게로  걸어와 그냥 가자는 말을 건넸다.

 

 

 

 

" 야, 그냥 가자. 뭐 이런데가 다 있어? "

" 형, 그냥 혼자 들어갔다 올게요. "

" 뭐? 야, 무슨 말이야. 내가 처음부터 여기 이상하다고 했잖아! "

" 아니야 형, 그냥 나 여기서 꼭 녹음하고 싶어. 갔다올게. "

" 야, 김재중. "

" 설마.. 내가 죽어돌아오지는 않겠지. "

 

 

 

 

재중은 매니저에게 정말 괜찮다며 그 남자의 뒤로 다가가 섰다.

매니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재중을 바라봤고, 재중이 씨익 웃었다.

매니저에게 기다리다 지루하면 먼저 가라는 말을 하곤 그 남자의 뒤를 따랐다.

그런 재중을 잡지 못한 채 발걸음을 무겁게 돌린 매니저는 혼자 중얼거린다.

 

 

 

 

" 죽어돌아오지는 않겠다라니.. "

 

 

 

 

 

 

 

 

 

 

 

 

 

 

 

 

 

 

 

 

 

 

 

 

 

 

 

 

 

 

 

 

 

 

 

 

 

 

 

 

 

 

남자를 따라간 재중은 어느 철문앞에서 걷던 다리를 멈춰세웠고, 그는 멀쭉하니

대충 인사를 해버리곤 어디론가 가버렸다. 재중은 그자리에 가만히 서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 앞에 있는 문의 벽면을 여기저기 만져보기 시작했다.

 

 

 

 

" 소설에서 보면 대충 여기정도에는 뭔가가 있던데.. "

 

 

 

 

끼이익,

 

그때였다.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재중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재중은 얼떨결에 열린 문에 자신도 모르게 한쪽 손으로 머리를 슬쩍 긁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하고

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직도 자신의 행동이 민망했던지 얼굴이 빨개질때로

빨개진 재중은 조용히 철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 김재중씨? "

" 네, 김재중입니다. "

 

 

 

 

젊은 두 남자가 부스 앞 테이블에 앉아 대충 재중을 맞는가 싶더니 이내,

처음 문을 열어주었던 그 남자가 커피 두잔을 타 와 재중과 그 남자의 앞에

내려놓았다. 옷을 입은거나 목젓이 있는걸로 봐서는 남잔데.. 생긴건 여자마냥 곱다.

재중은 계속 두리번거리며 의문의 여자를 찾기위해 주의를 기울였지만

재중이 찾는 그 여자는 옷자락도 보이지 않고 이 곳에는 이 두명의 남자만이 있다.

 

재중이 녹음실을 찾은 이유는 특별히 따로 있다면 따로 있다.

얼마전 연예관련 TV프로그램을 시청하던 도중, 재중의 매니저가 재중을 급히

부르며 찾길래 뛰어나갔더니 이 녹음실에 관한 얘기를 해주며 놀란표정을 지었었다.

그게 머리속에 밖혀 지워지지 않던 재중은, 결국 이 녹음실까지 직접 오게 됐고

지금 재중이 예상했던 분위기 및 상황에 현실이 매치되지 않아 놀랄수밖에 없었다.

 

사실 재중이 이 녹음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건 자신이 속해있던 그룹이 해체된지

얼마되지 않아서의 이야기다. 매니저형이 흥분을 가라앉히 듯 했던 녹음실의

얘기는 자신을 놀라게 할만큼 강한 호기심으로 이끌었고 그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요즘 가수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떠돌고 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녹음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였다. 요즘 가수들에게 인기있는

엔지니어가 있는데, 그 엔지니어가 일하고 있는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게되면

앨범대박은 물론, 어쩌면 사랑까지도 쟁취할 수 있게된다는 뜬소문들이였다.

녹음실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는 참 예쁘게 생겼는데, 그 사람에게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가수고뭐고 연예인이라는 직업까지 망각한 채 혼신을 다하는 가수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리고서는 나중에 꼭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였다.

 

 

재중은 그런 녹음실에 관해 충분히 관심을 갖았고, 오히려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자기가 말하려는 녹음실 이야기는 그냥 호기심으로 듣고 호기심으로 끝내라는

매니저의 당부에 재중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놓고 불안하다고 따라온 매니저의

만류에도 그는 끝끝내 혼자 이곳으로 왔다.

 

 

 

 

" 녹음은 일주일간 계속되는데, 버티실 수 있겠어요? "

" 물론이죠. 숙식은 이곳에서 모두 해결해야하나요? "

" 아, 그건 걱정하지마세요. 워낙 의뢰를 해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가수 한분한분을

  모셔다놓고 한달이상을 지체할 수가 없기때문에 거의 잠도 안자고 일주일안에

  녹음을 모두 마치고 가셔야해요. 자신이 없다면 그냥 가셔도 좋구요. "

 

 

 

 

그는 확고하게도 자신이 없으면 그만가보라며 재중을 향해 씨익, 웃었다.

재중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며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 아, 근데 여기서 일하시는 분은 두분이 전부이신가요? "

" 네, 정윤호입니다. 녹음작업을 총괄 담당하고 있구요. "

" 아.. 그럼 저분은.. "

" 김준수라고해요. "

 

 

 

 

찾았다! 목소리의 주인공. 그였다, 김준수라는 사람은 여자가 아닌 남자였던 것이다.

재중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그 고운 여자의 얼굴을 쓱, 쳐다보고 다시 윤호의

눈을 주시하여 쳐다봤다. 믿을 수 없다는 그의 표정.. 김준수가 여자였다니..

목소리가 매우 미성이라 언뜻 들었을땐 남자라고 짐작할 수 없었고, 생김새도

목소리만큼이나 매우 예쁘고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모든 남자들이 이렇게 착해보이는

'김준수'에게 빠져버렸다는 얘기가 되는걸까? 재중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선 부스안으로 들어가버렸고, 재중은 그들이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가 대충 서서 구경을 한 뒤 침대 모서리부근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였다.

 

재중이 이곳에 온 까닭은 단 한가지로 모든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재중은 원래부터 추리소설을 읽으며 추리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이 녹음실에 관한 소문이 뜬소문이 아닐꺼라는 추측하에 호기심을 갖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의 진상을 밝히겠다는 말도안되는 상상에 사로잡혀 이곳까지 오게됐고,

그는 이곳까지 오면서 자신이 가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가수가 아니라면 녹음실 근처에는 발도 못붙였을테니까.

 

아 참, 하나 더 있지. 남자라는 사실. 그는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에도 만족했다.

이 녹음실은 남자들만 받는다는 특이한 단점을 한가지 더 안고있었으닌깐.

 

 

 

 

" 아참, 재중씨? "

 

 

 

 

그녀, 아니 그였다. 김준수.

 

 

 

 

" 네? "

" 여기서 작업하는 동안은 핸드폰을 꺼주셨으면 좋겠는데.. 가끔 방해가 되거든요. "

" 아, 그럴게요. 근데 일주일안에 녹음을 다 할 수나 있나요? "

" 글쎄, 지금 검토중이에요. 이번주안에 녹음을 꼭 해야겠다는 분이 또 생겨서요.. "

 

 

 

 

그는 말 끝을 흐리며 간단히 목례를 하곤 방문을 닫았다.

 

 

 

 

이 녹음실의 구조를 살펴본 바, 특이한 점을 한가지 발견했다.

녹음실은 복도의 가장 끝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녹음실까지 가는 길에는 단 하나의

방이나 통로가 연결되있지 않다는 것이였고, 녹음실과 출입문 정 중앙에 사람이 없어

휑한 화장실이 보였다. 그리고나서 온통 하얀 벽면을 지나 녹음실이였는데,

녹음실은 네모반듯한 미로형식으로 되어있다. 가운데에 네모난 부스가 있고

그 가장자리로 좁은 길이 트여있는데, 문과 연결된 곳은 꽤 큰 공간을 확보하고 있어

쇼파와 엔지니어실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쓸 방이 있는거고..

 

왠지 이 녹음실 안에 내가 생각했던 무언가의 추리가 딱 들어맞을것만 같은 느낌이다.

 

 

 

 

 

 

 

 

 

 

 

 

 

 

 

 

 

 

 

 

 

 

 

 

 

 

 

 

" 여보세요? "

"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녹음때문에 전화했던.. "

" 아, 내일 정오까지 녹음실 앞으로 오세요. "

" 그럼 내일 뵙죠. "

 

 

 

 

준수는 경쾌하게 전화를 끊고서 윤호의 곁으로 다가갔다.

 

 

 

 

" 내일, 사람이 한 명 더 올 것 같아. "

" 그래? 조심해야겠네- "

" 응.. 오늘 아무데도 안가지? "

" 응, 왜. 불안해? "

" 아니.. "

 

 

 

 

준수는 윤호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품에 자신의 고개를 파묻었다.

윤호는 그런 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준수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했다.

 

 

 

 

" 우리, 잘 해보자. "

 

 

 

 

 

 

 

 

 

 

 

 

 

 

 

 

 

 

 

 

 

 

 

 

 

 

 

 

 

 

 

 

 

 

 

재중은 얼른 수첩한개를 꺼내들어 맨 첫장에 이렇게 적었다.

 

- 정윤호와 김준수, 둘의 사이가 미묘하다.

 

 

 

 

 

 

 

 

 

 

 

 

 

 

 

 

 

 

 

 

 

 

 

 

 

 

 

 

 

 

 

 

잠에서 깬 몽롱한 상태로 좁은 침대위를 허우적거리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하고 든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온몸에 돋는 소름에 나는 이불을 바짝

끌어안고 침대의 벽쪽으로 몸을 붙였지만, 비명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남자의 비명소리.. 꽤 고음을 가진 한 남자의 비명소리. 몸을 웅크리고 귀를 기울였다.

 

 

 

 

" 그만해.. 그만하란말이야! "

 

 

 

 

나는 곧 그 비명소리의 주체가, 지금 내가 있는 이 벽을 넘어 바로 옆이란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머지않은 곳에서 무언의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이불 속 내 발 밑에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느낌은 내 발을

타고 올라와 종아리.. 그리고 허벅지를 지나 가슴까지 올라왔다.

 

 

 

 

" 허억....... 악...!!! "

 

 

 

 

뭔지모를 까맣고 말랑말랑한 물체가 내 몸을 흐물흐물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내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려오고 있고, 이제 그 물체는 한마리가 아닌 여러마리가

되어 내 몸을 탐색하듯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다. 으아악.. 으아아아악!! ................

가까스로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눌렀고, 나는 그때 거의 기절하다시피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 방의 네모난 전면에 꿈틀대고 있는 수많은 지렁이들을 보았기때문에. 지렁이들은

모두 나에게로 기어오듯 꿈틀대는 것만 같았고, 나는 점점 내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단지 이 물체뿐만이 아닌 누군가의 비명소리.

내가 지금 내 상황에 신경쓰고 있을때 쯤, 나는 비명소리가 어디서부턴가 끝이 났다는 걸 알았다.

 

녹음실의 바닥은 모두 방음재로 되어있어 누가 내 방의 앞까지 왔다고해도

또각거리는 높은 구두굽의 소리나 스치듯한 슬리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방안의 스위치를 내렸고, 꿈틀거리는 그 물체들이 침대매트

사이를 파고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막은 채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내 예상대로라면 그가 이곳까지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일이

벌어져버릴지도 모른다. 분명 이건 내 목숨을 담보로한 하나의 게임이다.

 

 

 

 

철컥.

 

드디어 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밑에 깔려있는 물체들이 꾸물거려 미칠껏만같았지만 문을 연 '그'가

누군지 확인하기 이전에는 불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죽은듯이 누워있을 수 밖에 없다.

문을 연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미동도차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라곤 내 목과 귀주위를 괴롭히는 물체들의 움직임..

그 중 한마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가 계속 의식되어

자연스러운 척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아.. 온몸이 그 이상한 느낌에 미칠 것만 같은데.

 

 

 

 

" 넌.. 못들은거지? "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챘다.

그는 내가 제발 듣지 않기를 바란다는 듯한 말투로 내가 혼잣말을 시도해왔다.

 

 

 

 

" 그래, 그럼 너 못들은걸로한다? "

' 못들은걸로한다..?아.. 나 지금 미치겠어, J. "

" 이게 무슨냄새지? "

' ... 온몸이 이상한 느낌으로 뒤범벅됐어. 죽을것만같아. '

" ............. 잘자라. "

 

 

 

 

지렁이가 배 위를 간질간질 괴롭히며 내가 더이상 참지못해 막 소리를 지르려고하자,

그가 그냥 나가버렸다. 동시에 난 이불을 걷어차고 손으로 내 배위를 쓸기 시작했다.

 

 

 

 

" 미친새끼.. 미친새끼.. 미친새끼.. "

 

 

 

 

딱 세번, 난 지금 내 몸에 있는 이 물체들의 행방보다 묘연히 사라진 그가 원망스럽다.

 

 

 

 

 

 

 

 

 

 

 

 

 

 

 

 

 

 

 

 

 

 

 

 

 

 

 

 

 

 

 

 

 

 

 

 

 

" 목소리가 참 좋네요, A.ka의 보컬이셨죠? "

" 네, 칭찬 고마워요. "

 

 

 

 

준수는 부스 안에서 재중의 목소리를 편집하던 도중 커피 한잔을 건네며 재중의 옆으로 왔다.

 

 

 

 

" 사실, 부분부분 편집하면서 실력없는 가수들이 많다는 걸 가끔 느껴요.

  슬픈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들의 표정이 애절하지 않다거나..

  보통 신인들은 기계음에 많이 의지하려고 하는 편인데, 꽤 당황스럽죠? "

 

" 아.. 요즘 가수들이 노래 하나만으로 먹고사나요? 다 그런거죠. "

" 그러게요, 참 매력적이에요 재중씨. "

 

 

 

 

준수는 재중을향해 싱긋 웃으며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준수의 어감을 조금 이상하게 느낀 재중은 커피잔을 입에 댔다.

처음엔 준수의 소문을 듣고 그가 매우 싸가지없고 차갑기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를 여자로 착각했던 걸 생각하면 재중은 지금의 준수의 모습 또한 착각이란 생각이 들었다.

 

준수가 다시 엔지니어실로 들어가자 재중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 준수씨가 더 매력적이에요.. "

 

 

 

.

 

.

 

.

 

.

 

.

 

 

 

 

" 뭐라고 하신거에요? "

" 아! 윤호씨.. 아무것도 아니에요. "

 

 

 

 

빤히 준수를 쳐다보며 넋이 빠져있던 재중에게 윤호가 물어왔다.

 

 

 

 

" 근데, 누구.. "

" 아, 인사하세요. "

 

 

 

 

윤호의 뒤에는 꽤 훤칠한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를 가진 한 남자가 뻘쭘히 서 있었다.

재중은 먼저 그 남자에게 관심을 보였고, 윤호는 옆으로 자리를 내주며 인사를 시켰다.

윤호가 꽤 큰 키에 좋은 몸매라고 생각했던 재중은 그 남자가 윤호의 옆에서자

그 남자도 더 없이 좋은키에 좋은 몸매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였다.

 

 

 

 

" 안녕하세요, 심창민이라고 합니다. "

" 아.. 가수..? "

" 이번에 데뷔할 신인이에요. 김재중선배님이시죠? A.ka의.. "

" 아아, 그래요. "

 

 

 

 

재중은 언뜻 그의 얼굴을 캐치하며 순식간에 머릿속에 그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183cm, 마른체형 긴 다리 꽤 부드러운 어깨선. 그리고 곱상한 외모..

 

 

 

 

" 재중씨 녹음은 오늘 여기까지할게요. 신인이라 시간이 오래걸릴 것 같아서요. "

" 아, 그러죠.. "

 

 

 

 

재중은 일어서며 그의 모습을 훑고 계속해서 훑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며 탁자위에 올려져있던 검은 뿔테안경을 꺼내썼다.

그가 무언가에 집중할때 주로 쓰는 안경은, 추리소설을 읽을 때 무심코 꺼내쓰는

안경이기도 했다. 특별히 눈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야 집중이 된다나 뭐라나.

 

해야할게 정해져있는것도 아니고, 감기탓에 노래연습도 하기 불편한 재중은

반쯤 접혀있는 읽던 소설책을 꺼내들어 무릎위에 얹었다.

 

 

 

 

" 아, 맞다. "

 

 

 

 

재중은 뿔테안경을 미간을 따라 한번 쓰윽, 올리고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의 펜은 망설임없이 두번째 장을 장식해나가기 시작한다.

 

- 심창민, 신인가수. 큰 키에 마른 체구 , …… , ……, …… .

 

이곳을 파헤치기 위해 들어온 이상, 이 곳의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 대하여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정말 작정했던 것이다.

 

재중은 아까 일을 떠올리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마터면 이곳까지 오게된 것을 망각할 뻔 했으닌깐.

재중은 수첩의 세번째장을 펴 생각나는대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 김준수.. 사랑.. 그리고 죽음..

 

이 곳에 오기전부터 재중은 '김준수'란 존재에 관해 꽤나 관심이 많았었다.

대체 그가 어떻게 생긴 인물이길래 모든 가수들이 녹음보다 그에게 더 열중했으며,

가수란 직업을 포기할만큼 그가 얼마나 가치있는 인물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한 사실은 남자만이 허용되는 이 녹음실에 그에게 사랑에

빠진 남자들을 보고 재중은 김준수가 여자임이 확실하다고 단정지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남자대남자, 즉 모두가 게이였던 것이다.

 

 

 

 

똑똑,

노크소리에 재중은 안경을 한번 치켜세우며 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 죄, 죄송합니다. "

" 아니에요. "

 

 

 

 

창민이었다. 창민은 품 속 한아름 무언가를 들고선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 저기.. 선배님이신데 말 편하게 놓으세요. "

" 아, 그럴까? 근데 그 짐들은 다 뭐야? "

" 윤호씨가 이쪽으로 가면 제가 쓸 방이 있다길래 가던중이였는데,

  여긴 줄 알고 열어봤어요. 중요한 일 하고있으셨다면 죄송해요.. "

 

 

 

 

뭐야, 그러면서 노크는 왜해?

 

재중은 어린 창민에게 살짝 웃어주며 다시 책속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창민이 재중의 방을 지나 들어간 곳은 복도를 두번이나 꺽어 들어간 곳이였다.

들어갈수록 쾌쾌한 냄새가 진동을 해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지만 곧 자신이

신인이란걸 깨닫곤 견디자는 생각에 그냥 바로 보이는 문을 열어제꼈다.

 

 

 

 

" 쿨럭.. "

 

 

 

 

문을 열자 꽤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지 먼지가 매쾌히 창민의 코끝을 자극시켰다.

창민은 대충 테이블 위에 짐을 올려두고 먼저 핸드폰을 꺼내들어 어디론가

전화하기 시작했다.

 

 

 

 

" 형, 응 나야 창민이. 여기.. 나말고 또 다른 사람 있는데?

  김재중이라고.. A.Ka 보컬.. 알지? 언제 올꺼야? 아.. 알았어. "

 

 

 

 

전화를 끊은 창민은 창문하나 없는 이 방이 매우 답답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 창민씨. "

" 아, 준수씨.. "

" 지금 바로 녹음 들어갈게요. 시간이 많이 없거든요,

  방은 제가 치울테니까 얼른나오세요. "

 

 

 

 

준수는 문사이로 고개를 쏙 내밀고 창민을 보며 웃었다.

창민도 준수의 웃음에 따라 멋쩍게 웃으며 그를 따라 나갔다.

 

 

 

 

" 아, 근데.. 이 방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네요? "

 

 

 

 

앞서걷던 준수의 등뒤로 바짝 따라붙은 창민이 먼저 말을 꺼냈다.

 

 

 

 

" 창문이 있으면 꽤 성가시거든요. "

" 네..? "

" 연습은 많이 하셨어요? "

 

 

 

 

준수는 자연스럽게 말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갔다.

 

........ 이 곳, 뭔가가 이상하다.

 

 

 

 

 

 

 

 

 

 

 

 

 

 

 

 

 

 

 

 

 

 

 

 

 

 

 

 

 

 

 

 

 

 

" 창민씨 목소리 어때요? "

 

 

 

 

커피나 한잔 하자며 재중을 끌고나온 준수는 자연스럽게 재중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대며

물어왔다. 재중은 살짝 닿는 준수의 피부가 따뜻하게 느껴져 촉감이 매우 좋다고 여겼다.

창민은 부스 안에서 자신의 노래연습에 열중하고 있었고, 그 목소리를 한참이나 감상하던

준수는 선배인 내게 창민의 목소리가 어떠냐며 물어왔을 뿐인데 재중은 심장이 덜컹했다.

사람들은 이런 준수에게 매력을 느낀걸까? 재중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준수가 남자란

사실을 다시한번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창민의 모습을 주시했다.

 

 

 

 

" 고음이 굉장히 깨끗하네요. "

" 그렇죠? 저도 많은 가수들 목소리를 편집하고 녹음해봤지만, 이렇게 괜찮은 목소리는

  재중씨 이후로 처음인걸요. 봐봐요, 고음부분이 자연스럽게 처리되잖아요. "

 

 

 

 

이 사람, 엔지니어 주제에 노래에 관해서는 거의 수준급이다 싶을 정도로 창민의

목소리에 대해 정확히 집어내며 재중에게 이야기한다. 재중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 준수씨.. 노래하면 참 예쁠 목소리일 것 같아요. "

" .. 사실, 저도 노래하는 걸 좋아해요.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만.. "

" 무슨 사연이라도 있나보죠? 목소리가 꽤 미성인데.. "

" .. 그냥, 전 이제 노래를 부르지 못해요. 그게 이유에요. "

" 왜.. "

 

 

 

마침 창민이 부스 문을 열고 나와 물을 찾으며 재중과 준수의 옆에 앉았고,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끊기며 잠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창민은 난로위에 올려져있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마치 운동을 하고 나온 사람처럼 많은

땀을 흘리는 창민은 자신이 원래 몸에 열이많아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발산하면 땀이

비오듯 내린다는 말을 하며 웃어버렸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참 특이하지..

 

그리고 창민은 재중에게 자신이 예전부터 A.ka의 열혈팬이였다며 한번쯤 꼭

보고싶었다며 계속해서 영광이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셋은 이상하게도 엉켜있다.

재중을 바라보는 창민, 그리고 준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재중으로.

 

 

 

 

" 땀도 많이 나는데.. 방에 바깥하고 연결된 창문이 없어서 큰일이에요. "

" 겨울인데 땀난다고 겨울바람 맞으면 감기걸려요. 목관리도 해야죠. "

 

 

 

 

준수는 창민이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말을 잘라먹었다.

 

갑자기 피곤함을 느낀 재중은 그만 방에 들어가보겠다며 일어났다.

 

 

 

 

" 들어가게요? 이따가 한분이 더 오기로 했는데.. "

" 또요? "

" 네, 그래도 재중씨 녹음에는 차질 없게 할꺼닌깐 너무 걱정마세요. "

" 그래도.. "

 

 

 

 

혼자 조용히 신곡을 녹음하고 싶었던 재중은 자꾸 늘어나는 사람수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생글생글 웃는 준수 얼굴에 뭐라고 사납게 쏘아대지도 못한 채

자기도 모르게 알았다며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뭐라그럴까, 그 남자에게선 왠지 모를

묘한 분위기가 감싸고 있다고 해야하나? 재중의 머릿속에 박혀서 지워지지 않으니까.

재중은 방으로 돌아와 수첩을 꺼내들었다. 아.. 뭘 써야할지 막막한 그는 네번째 장을

넘기며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적어내려가고 있다.

 

- 김준수.. 그의 목소리는 예쁘다. 그리고..

 

 

 

 

 

 

 

 

 

 

 

 

 

 

 

 

 

 

 

 

 

 

 

 

 

 

 

 

 

 

 

 

 

 

 

 

 

 

 

 

 

 

 

" 저기.. 선배님! "

" .. 응? "

 

 

 

 

재중은 그새 잠이 들었나보다, 창민의 부름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는 손에 쥐고 있던

수첩을 바닥에 그대로 떨어뜨렸다. 창민은 재중방의 문을 살짝 열고서 그 틈에 얼굴을

밀어넣고 재중을 조용히 불렀을뿐인데 예민한 재중이 금새 잠을 깨어버린 것이다.

떨어진 수첩을 본 재중은 얼른 집어들어 추리소설 책 한 가운데에 끼워버리곤 서랍장

밑으로 책을 밀어넣어버렸다. 스탠드와 형광등을 끄고 창민을 따라나온 재중은 아직도

비몽사몽한 눈치다. 축 늘어져 터벅터벅 걷는데, 이상하게 힘이없다.

 

 

 

 

" 아, 근데 왜 나오라고 한거야? "

" 새로 녹음하실분이 왔거든요. 그냥 인사겸해서요.. "

" 그래? 신인이야? "

" 아뇨, 2집 준비.. 어! 저기 계세요. "

 

 

 

 

재중은 실눈을 뜨며 겨우겨우 녹음실 로비로 걸어나갔고, 엔지니어실 앞에는 준수와

윤호, 그리고 한남자가 서있다. 재중은 그 남자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눈을 두어번

쓱쓱 비비더니 " 어?! " 하고 놀라며 그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박유천! "

" 김재중이냐?! "

 

 

 

 

재중이 먼저 유천을 알아보고 달려가 그를 와락 안자 그제서야 그 남자도 재중을

알아차린 듯 재중의 어깨를 꽉 쥐며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나머지 세명은 뒷편에

서서 둘이 아는 사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그들을 지켜보고있었고, 둘은 꽤나 오랫만에

만나는 사이인지 계속해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마냥 웃었다.

 

 

 

 

" 어떻게된거야? "

" 어떻게되긴, 니자식때문에 이렇게 된거지. "

 

 

 

 

흥분을 가라앉힌 둘은 쇼파위에 나란히 앉았고, 테이블을 둘러싸 나머지 세명도

그들을 쳐다보며 자리에 앉았다. 재중과 유천은 원래부터 한 기획사에서 연습하던

연습생으로 만났다. 그리고 곧 기획사측에서는 유천을 중심으로 한 그룹을 데뷔

시키기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고, 막판에 데뷔하기 몇달을 앞에두고 기획사

사장은 그 그룹의 멤버인 유천을 빼고 재중을 보컬로 교체시켜버렸다. 때문에,

데뷔에 실패한 유천은 다른 기획사에측에서 사가기로 결정이 됐고, 실패의 뼈저린

아픔을 겪은 유천은 그 기획사로 가 최고의 대우를 받으며 솔로로 데뷔했다.

그렇게 만들어졌던 재중이 속한 그룹이 A.ka이고, 유천은 '믹키'라는 이름으로

솔로데뷔를 화려하게 마쳤다. 그리고 그 둘은 지금 이곳에서 가수대 가수라는

명목으로 서로를 만났고, 노래를 꽤나 잘하던 유천을 좋아했던 재중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곤 반가워했던 것이다.

 

재중때문이라며 빈정대던 유천의 말에는 분명 무언가의 가시가 박혀있었지만,

재중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마냥 유천을 반갑게 받아들이기만했다.

 

 

 

 

" 나 아직 한맺힌거 많으니까 너무 살갑게 굴지마 이자식아. "

" 야~잊어버려, 지금 너도 성공했는데 뭐가 문제야. 응? "

 

 

 

 

유천은 끝까지 재중에게 빈정대는 투로 얘기했지만 말투와 다르게 입가에 맺힌

작은 조소에 재중은 그저 반갑다며 자꾸만 그에게 말을 걸었다.

 

 

 

 

' 너랑 나는 자꾸만 이렇게 부딪혀버리고 마는구나.. '

 

 

 

 

 

 

 

 

 

 

 

 

 

 

 

 

 

 

 

 

 

 

 

 

 

 

 

 

 

 

 

 

 

 

유천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섭섭한 나머지 방으로 들어온 재중은 무의식적으로

서랍장 아래에 손을 넣어 자신이 아까 넣어둔 추리소설책을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책이 손에 잡히자 재중은 얼른 꺼내들었고, 읽던 부분까지 표지해둔걸 찾아 그 다음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라? 아까 여기에 수첩을 껴 두었던 것 같은데.. 재중은

몸을 숙여 보이지 않는 수첩을 찾았고, 금새 서랍장 밑에 떨어져있는 수첩을 찾아냈다.

 

 

 

 

" 어디까지 읽었더라.. 아 맞아, 제임스가 죽음의 소굴로 들어간데까지 읽었지.. "

 

 

 

 

재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음부분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어 썰렁한

이 방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외롭게 느껴지는지 가까스로 참아내느라 혼날 뻔 한 그는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핸드폰을 꺼달라고 했던 건 준수의 부탁이였지만, 아무리

추리소설의 광이라는 재중도 하루내내 부스를 들락거리며 피곤에 쩔어있는데 앉아서

무료하게 소설만을 읽기에는 하루가 너무나 길고, 그리고 생각해보니 핸드폰을 꼭

꺼두어야 할 이유도 없단 생각이 들어 S. 버튼을 눌러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1번을 꾸욱,

눌러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결을 시도했지만 핸드폰은 터지지 않았다.

아래까지 쭈욱, 내려가있는 핸드폰 추파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았고 금새 짜증이난

재중은 다시 수첩을 꺼내들어 짜증스런 말투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

 

 

- 이곳은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끄나마나 상관없잖아, 그렇다면 지금 이곳은 밀실이란말인가?

 

 

 

 

 

덜컥,

 

재중이 한참 핸드폰을 가지고 투덜거리고 있을때쯤,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 누구... "

" 선배님, 저에요. "

" 아.. 무슨일이야 ? "

" 술한잔하러. "

 

 

 

 

재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민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박유천.

손에는 검은봉다리가 들려있었고, 유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무래도

박유천이 말한 술이 분명한 것 같다. 재중은 아까와는 조금 다르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박유천이 무언가 자신에게 맺혔던 것을 풀었다는 생각에 냉큼 미소를 지었다.

 

 

 

 

" 너무 좋아하지마, 그냥 니가 여기 들어온 이유를 알고 싶은 것 뿐이닌깐. "

 

 

 

 

......?! 재중은 순간 유천의 말에 놀랐고, 유천은 픽 웃으며 탁자위에 술잔을 꺼냈다.

 

 

 

 

" 자, 잠깐. 나가서 술 잔 좀 가지고 들어올게. "

" 그럴래? "

 

 

 

 

재중은 말까지 버벅버리며 술잔을 가져오겠다고 말한 뒤 문을 열고 나왔다.

순간 자신의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당황한 재중은, 대체 유천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에게 그런말을 했는지 궁금했지만 물을 수 없는 입장이라 난처하기만 하다.

 

 

 

 

" 아악..! "

 

 

 

 

잠깐이였다. 복도를 걷던 재중은 자신도 모르게 싸이드쪽으로 걸어가고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발 한쪽이 어느 부분에서 확 빠질 듯 아래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놀라 빠르게 자신의 한쪽 발을 들었고, 발이 한번 들어갔다 나오자 그 바닥은

움푹 패인 것처럼 들어가 괜히 재중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

 

 

 

 

" 아.. 뭐야.. "

 

 

 

 

안그래도 놀란 가슴을 쓸어안은 재중에게 이건 또 뭐냐는 듯 찾아온 이상한 일은

그냥 무심코 넘기기에 적절했고, 재중은 아무생각 없이 다시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 순간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 빨리와, 빨리 시작하고 끝내야 자고 내일 녹음을 하지. "

" 응, 그, 그래.. "

 

 

 

 

유천은 넋이 나간채 걸어들어오고 있는 재중에게 재촉하며 재중이 들고 들어오던

술잔을 집어들고 술을 한잔씩 따르기 시작했다. 재중은 많이 변한 유천의 모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며 죄책감을 느꼈다.

 

 

 

 

' 나만 아니였다면.. 아니, 그냥 우리 둘다 같은 그룹에서 함께 생활했으면 '

 

 

 

 

하지만 그건 재중의 권한이 아니였다. 사장도 이상하게 예뻐하던 유천을 그 날 아침으로

버린 것이 뭔가 수상쩍긴 했지만. 어쨌든 재중은 A.ka로, 유천은 '믹키'로 인기몰이를

각자 톡톡히 해냈기에 더 이상 문제될 건 없었다.

 

 

 

 

술자리가 점점 고조되었지만, 셋은 긴장감속에 전혀 취하지 않은채 그저 약간의 몽롱함만을 느꼈다.

 

 

 

 

" 김재중, "

" 그래.. "

 

 

 

 

유천은 그제서야 입을 열며 재중의 이름을 한 번 부르더니 고개를 들어 똑바로 응시했다.

 

 

 

 

" 여기 들어온 이유가 뭐야? 단순히 녹음만하러 온건 아닐테고..? "

" 어떻게 알았냐.. 치.. 그래, 우린 뭐든 함께 했으닌깐 이렇게 변해도 넌 내 맘을 알아.. "

" 쓸데없는소리 집어치우고, 그래. 나는 그냥 한번 모험삼아 들어와봤어. 넌 뭐냐? "

" 나..? 나..... 나는... 프흡.. 그냥.. 한번 파헤쳐보고 싶었어, 그냥 한번.. "

"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이유에 대해서? 아님 김준수에 대해서? "

" 그냥.. 그것도 그렇고.. 그것도 그렇고.. 둘 다.. "

" 미친새끼, 벌써 눈 알에 그새끼가 찬거냐. "

 

 

 

 

유천은 전과는 너무나도 다른게 내게 아무렇지도 않은 욕설을 내뱉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창민은 정신차리는데 더 정신을 쏟아부어 머리가 아팠던지 이내 쓰러져 자기 시작했고,

재중만이 유천과 남아 알아들을 수 없는 대화를 계속해나가기 시작했지만 둘도 곧

밀려드는 알콜 기운에 못이겨 잠에 들어버렸다. 지금의 대화를 모두 망각해버린 채.

 

 

 

 

 

 

 

 

 

 

 

 

 

 

 

 

 

 

 

 

 

 

 

 

 

 

 

 

 

 

 

 

 

 

 

 

 

 

 

 

 

 

 

" 하아.. "

 

 

 

 

그의 입술에 내 혀를 강제로 집어넣어 괴롭히자 그는 곧 못이긴 척 내 혀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의 목덜미와 귓가를 오가며 내 혀 끝으로 그의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시켰고,

그는 내가 흥분되기에 충족할만한 색스런 신음으로 나를 만족시켰다.

 

 

 

 

" 하앗.. 그만.. 그만.. "

" 내가.. 장난하는 것 처럼 보여? "

 

 

 

 

그의 얇은 남방을 거의 뜯다시피 풀어버린 난 탄탄하지만 여린 그의 가슴을 찾아

순식간에 그를 탐했고, 그는 침대시트를 꽉 쥐어잡은 채 내 혀 끝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그는 내가 하기 좋게 다리를 살짝 벌렸고, 더 이상 참지 못한

난 급하게 그의 바지 버클을 풀어내렸다. 매끈하게 빠진 다리 사이로 내 얼굴을 묻어

그의 은밀한 곳을 찾자 그는 참지못하고 신음을 마음껏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 선배.. 선배.. 일어나봐요.. "

 

 

 

 

오후 늦게 눈을 뜬 창민은 겨우 일어나 옆에 누워있는 재중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유천은 어딜간건지 보이지 않았고, 재중은 한참이나 꾸물적대다가 겨우 눈을 떴다.

어제 술자리를 한걸로 분명 기억하는데, 방안은 기억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깨끗했고

문을 열고 나가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는게 먼저 보였다. 이상하다..

 

 

 

 

" 이제 일어났냐? "

" 으응.. 어떻게 된거야? "

" 뭐가? "

" 어제... "

" 조용하고 가서 씻고 나와. "

 

 

 

 

재중이 유천에게 어제의 상황을 되묻고 싶어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강하게 저지하며 오히려 재중의 입을 막았다. 어차피 이 쪽 복도에는

아무도 오지 않을뿐더러 복도 벽을 타고 쭉 방음이 되어있기 때문에

조심할꺼까지야 없는데 유천은 더러 재중을 긴장시키며 녹음실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유천의 뒷모습..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

재중에겐 최근 몇년동안이나 듣지 못했던 유천의 음성이 어디선가 들었던 것 마냥 익숙하다.

 

 

 

 

 

 

 

 

 

 

 

 

 

 

 

 

 

 

 

 

 

 

 

 

 

 

 

 

" 준수씨, 차 드실래요? "

 

 

 

 

재중은 느즈막히 준비를 하고 나와 멋쩍은 듯 웃으며 준수에게 말을 건넸다.

준수는 꽤 피곤한 표정으로 헤드폰을 벗으며 재중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준수의 표정은 늘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곤 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늘 그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이렇게 힘든 표정으로,

' 나 그쪽한테 기대어도 되겠어요..? '란 말도안되는 황당한 표정까지.

그의 여린 어깨가 오늘따라 축 쳐져 보는 사람을 미치도록 만든다.

 

 

 

 

" 저도 차 한잔 주시겠어요? "

" ...... 뭘로 드릴까요. "

" 저랑 준수랑 둘다 커피요. "

 

 

 

 

준수와 자신의 것을 한꺼번에 주문하는 윤호는 언제 나타난건지 쇼파에 털썩 앉았다.

얼른가서 차를 타오라는 듯한 표정으로 재중을 쳐다보던 윤호가 픽, 하고 입꼬리를

올리자 괜스레 기분이 나빠질대로 나빠진 재중은 자신과 준수의 것을 먼저 타고

마지막으로 윤호의 커피를 탄 후에 침을 찍 뱉어버렸다. 뭔가 기분이 나빠, 정윤호란 사람.

자연스럽게 침을 뱉은 커피를 윤호의 쪽으로 돌려놓고 커피 세잔을 쟁반에 담아 가는데,

윤호가 일어나 재중의 쪽으로 놓아져있는 커피잔과 준수쪽으로 놓여있는 커피잔을 들었다.

 

 

 

 

" ..? "

" 그냥, 재중씨 커피가 맛있어보여서요. "

 

 

 

 

먹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난감해진 재중은 그대로 커피잔을 들고 정수기에 부어버렸다.

 

 

 

 

" 왜요? 안먹어요? "

" 네, 그냥요. "

 

 

 

 

자꾸 갑작스럽게 행동하는 윤호때문에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대체 그는 무슨 존재이길래 김준수에게 접근을 하려고 할때마다 이러는걸까.

매번 그는 김준수의 곁에 있었고, 재중은 그래서 그 주위를 맴돌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누군가가 재중에게 했던말이 떠올랐고, 재중은 그 자리에 멈춰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놓고 다시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들어갔다. 누구였더라..

 

 

"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이유에 대해서? 아님 김준수에 대해서? "

" 그냥.. 그것도 그렇고.. 그것도 그렇고.. 둘 다.. "

" 미친새끼, 벌써 눈 알에 그새끼가 찬거냐. "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재중의 머릿속을 꿰차는 듯한 말투로 얘기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중은 그게 누구인지 모르겠다, 아니 누구인지 알 필요도 없고

단지 지금 재중은 자신이 정말 김준수라는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필요했다. 박유천.... 박유천이 필요하다.

 

방으로 돌아온 재중은 자꾸 누군가가 자신을 의식한다는 생각에 문을 잠궈버렸다.

이 곳은 정말 녹음하는 일 빼고는 거의 할일이 없어 늘 심심하고 지루하고 답답하다.

서랍을 열어 수첩을 꺼낸 재중은 또 한장을 넘기며 이렇게 적는다,

 

' 이 곳에 온 뒤로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되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그리고 수첩을 닫기가 무섭게 다시 열어 한장을 적어내려간다.

 

' 나는.. 자꾸 다른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내 모습에 화가난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 그를 사랑해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

 

재중은 자신이 쓴 글을 쭉 지켜보며 그것이 더 화가난다는 듯 수첩을 벽으로 던져버렸다.

 

 

 

 

" 젠장... "

 

 

 

 

고개를 숙이고 한참이나 다른 생각을 하던 그는 익숙하게 오른손을 뻗어 추리소설을 찾았다.

근데.. 어라? 책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그는 서랍장 아래로 고개를 숙여 책을 찾았지만,

책이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다, 분명 어제 여기에다가 넣어놨는데.

 

 

 

 

" 에라, 모르겠다. "

 

 

 

 

재중은 그대로 누워버렸다. 어떻게해서든 녹음을 길게 끌고 뭔가 하나라도 캐내어야하는데,

일단 어색하게도 그게 되지 않고 있으니까. 꼭 노래를 해야하는 가수가 성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그는 눈을 감았고, 어제 먹은 술들이 전부 해독이 되지 않았는지

은근한 알콜기운에 금새 잠이들었다. 아주.. 깊게.

 

 

 

 

" 아.. 불끄고 자야되는데.. "

 

 

 

 

 

 

 

 

 

 

 

 

 

 

 

 

 

 

 

 

 

 

 

 

 

 

 

 

 

 

 

 

 

얼마나 지난걸까.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싶어 눈을 떳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혼자 이불 한개를 달랑 덮고 누워있던 난 서늘한 기운에 몸을 웅크렸다.

이상하다, 분명히 자기전에 방안에 불을 끄고 자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분명히 불은 꺼져있다. 누가 들어와서 불을 대신 꺼주기라도 한걸까? ....... 그러기엔..

 

방문은 확실히 잠겨져 있었는데 말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갑자기 주변기운이 서늘하게 느껴져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옆으로 손을뻗으면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챌것만 같은 공포감에 휩싸이자

급했던 화장실이 더욱 더 급해지기 시작했고, 분명 나가기 위해서는 스위치를

눌러야만했다. 근데 성급히 손이 나가지 않는게 어둠속에 보이는 누군가의 눈길을

의식해서일까. 그 눈빛은 책장 바로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손엔 시퍼런 칼끝이 바짝 선 채 내 심장을 두동강이 낼 시간을 기다리는 듯

그렇게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나는 점점 더 두려워져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도망을 가야할까, 아님 다시 눈을 감고 자는척을 해야할까..

어떤 걸 선택하는 결과는 나의 죽음이란 걸 직감했을때 나는 심한 호흡곤란을 느껴야만했다.

내 선택은 단 한가지 뿐이였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죽음을 택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서서히 나는 어둠에 눈이 익숙해져가고 있었고, 느낌만으로 느끼고 있던 '그'의 형체가

조금씩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짝 드리우는 달빛에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이젠 진짜 이곳을 빠져나가야한다.

 

 

 

 

" 어딜가? "

" .... 아... 아악!!! "

 

 

 

 

그의 기다렸다는 듯한 물음에 나는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내게 달려들거나 날 빠르게 제어하려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문열 틈을 가진 나는 빠르게 뛰어나왔고,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그는

여유롭게 날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 근데 말이지..... 그 방엔 창문이 없는데..?

 

복도를 따라 쭉 걷다가 녹음실에 불이 들어와있다는걸 눈치챘다.

온통 깜깜한 곳을 감으로만 찾아가는 나와 달리 나를 ?i아오는 그는 마치 이 곳에 대해

빠삭하다는 듯이 내가 헤메면 헤멜수록 나와 가까워졌고 ON에만 빨갛게 들어와있는

녹음실의 불에 나는 누군가가 나와같은 위험에 처할꺼라는 생각에 서둘러 녹음실

전체의 불을 키려고 했지만,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 내 발은 점점 더 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갈려는 찰라..

부스안에 불이 들어왔다.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도 없다.

 

 

 

 

" 도와줘.. 도와달란말이야!! "

 

 

 

 

다리가 후들거려 뛰려고 마음먹기까지 또한 너무나 많이 걸렸지만 일단 작정하고 뛰기

시작했더니 줄곧 앞으로 몸이 따라가주기 시작한다.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익숙하지 않은 이곳 복도를 따라 몇바퀴를 돌고나니 진이 빠져 숨이 찼다.

 

그리고 더 이상 날 ?i는 그의 목소리 또한 따라오지 않았고, 난 그제서야 한숨을 돌린 채

두 무릎을 잡고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린 탓에 온몸이 흠뻑 젖어 머리에서는

땀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고 갑자기 엄습해온 불안감에 몸을 한쪽 벽면으로

밀착시켰다.

 

 

또각.. 또각,

 

어디에서부턴가 어둠속으로부터 남자 구두굽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찢어질듯한 공포심에 나는 벽을 더듬어 잡히는대로 문고리를 잡았고, 그 소리가

가까워지기 바로 직전, 화장실로 보이는 듯한 이곳에 몸을 숨긴 채 문고리를 조심스레

채웠다. 그가 설마 내가 여기로 숨어들었을꺼란 상상은 하지 않겠지?

 

 

 

 

화장실은 세면대쪽의 형광등을 빼고 모두 켜지지 않았다.

세면대를 기점으로 양쪽으로 각각 네개의 칸이 있고, 이젠 남은 형광등 하나마저도

깜박거리며 얼마있음 꺼질기세를 보였다. 세면대에 손을 얹어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은 소름이 돋아 떨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호기심반, 오기반으로 시작한 이 게임에서 나는 곧 패자가 될거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 젠장.. "

 

 

 

 

낮게 읊조리는 내 탁한음성은 화장실의 싸늘한 내부를 채워나갔고, 그 말은 곧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듯 벽에 부?H혀 다시 내 귀를 파고들어왔다.

 

진짜 최악의 상황이군.

 

 

 

 

 

 

 

 

 

 

 

 

 

 

 

 

 

 

 

 

 

 

 

 

 

쿵쿵쿵..!

 

문쪽이다! 문쪽에서부터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순간 심장이 멎는듯한 느낌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서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차. 그제서야 생각이났다, 내가 아까 화장실문을 잠궜었나?

그렇다면 저 남자는 당연히 내가 이 곳에 있다는 것, 그리고 문고리도 만져보지 않은 채

이 문은 굳게 잠겨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저런 행동을 취하는 것일까?

 

나는 손으로 내 몸을 끌어 왼쪽 화장실 맨 끝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 몸을 모두 지탱해가기엔 내 손의 힘은 그리 세지 못했고, 곧 손톱에서부터 빨간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손끝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유달리 힘이 약한 왼손의 검지손톱은 이미

빠져 흐물흐물하게 변해있었지만 난 그 고통과 아픔보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

 

 

 

 

 

쿵쿵.. 쿵쿵쿵쿵... 쿵쿵..!

 

문은 내가 앞으로 몸을 이끌어갈수록 더욱 세차게 두드려졌다. 그 두려움을 아는가?

어두운 곳의 적막함을 깨는 세찬 문소리.. 게다가 이미 ?i기고 있는 나의 심리상태.

극도로 도달한 흥분은 멈출줄 모르고 나아갔다. 겨우 도착한 네번째 칸에 몸을 넣어

쭈그리고 앉은 뒤, 문고리를 걸어잠궜다. 그가.. 제발 이곳까지 오지 않길 바란다.

 

 

내가 문고리를 걸어잠그자마자 깜박거리던 조명이 빛을 잃고 꺼져버렸다.

이젠 그 남았던 한줄기의 빛마저도 없는 상황, 그가 이 곳을 들어온다면 나에게는

좀 전보다 더욱더 비참한 최악의 상태가 닥쳐오게되는 것이다. 예를들어.. 죽음.

불빛이 사라지자 거셌던 발길질이 언제그랬냐는 듯 갑작스레 들려오지 않는다.

 

한평남짓되는 화장실의 좁은공간에서 내 몸은 마치 비맞은 생쥐처럼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고 내 손과 발에선 타일에 긁혀 난 상처들로부터 피가 멈출줄은 모른 채 흐르고있다.

 

 

 

 

" 하아... "

 

 

 

 

겁에질린 얼굴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길 바란지 얼마나됐을까, 주위는 조용하다.

그가 자기성에 못이겨 열리지 않는 문을 내버려둔 채 그냥 간걸까?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곧게 서있지 않은 다리를 정리하며 난간을 잡았다.

 

빨리 이곳에서 탈출해야한다.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고, 주머니엔 켜지지 않은 핸드폰이 자리잡고 있다.

배터리를 잃어버려 쓸모없게 된 내 핸드폰은 아무리 END를 눌러도 켜지지 않는다.

 

 

 

 

" 신발.. "

 

 

 

 

! ! ! ! ! ! ! ! ! !

 

잠깐, 무언가의 소리가 밖으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누군가가 내 머리맡에서 날 지켜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뭐...지?

 

 

 

 

" .. 화장실로 이어져있는 네 땀.. 맨 끝칸으로 이어져있는 네 피..

  그리고 거기서 죽음에 두려워하고 있는..... 너. "

 

" 아악! "

 

 

 

 

내 머리채가 한손에 누군가에게 들려졌다. 목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애써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어느순간부터 내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

 

.

 

.

 

.

 

.

 

 

내가 본 마지막은 발밑으로 깨진 거울조각을 통해 본 내 윗모습.

 

화장실 천장에 고개를 내밀어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그가 거울로 나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으며 단숨에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 모습. 그게 내 인생 내가 본 마지막 모습.

 

그리고 내가 들은 마지막 음성.. 꺼져있던 핸드폰의 벨소리.

 

 

 

 

 

 

 

 

 

 

 

 

 

 

 

 

 

 

 

 

 

 

 

 

 

 

 

 

 

 

 

 

" 그녀석은 분명히 뭔가를 말하려고 했어.. "

" 그게.. 뭐죠? 전 더이상 이곳에 있고싶지 않아졌어요.. "

" 바보같은소리 말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여길 왔다는 네가 더 수상한데? "

" 형! 전 지금 두렵단말이에요. 두려워지고 있다구요.. 두려워요.. "

 

 

 

 

반박하듯 고개를 쳐들었던 창민은 금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그가 죽었다, 김재중이. 하룻밤 사이에 재중은 화장실에서 목이 댕강 잘려나간채로

발견이 됐고 남아있던 네명의 사람들은 당분간 이 일을 묻어두기로 결정했다.

이유인 즉, 두명의 녹음실 주인은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싫다는 거였고,

가수 '믹키', 즉 박유천은 이 일로 인해 자신이 무언가 연류되어 한차인 지금의 인기를

상실할 수 없다는 주장이였다. 팬들에게 실망을 시킬수도 없다며 그는 강하게 반대했고,

마지막으로 신인가수 심창민은 유천의 의견에 떠밀려 연류되고싶지 않고싶음을 밝혔다.

 

 

 

 

" 일단, 김재중이 쓰던 방을 뒤져보자. "

" 재중선배가 쓰던 방이요? 거긴 왜요? "

" 글쎄, 그 자식은 단순히 녹음만을 위해 들어온게 아니라닌깐. "

" 형.. 우리 하지마요, 우리 그냥 여기서 나가면 안되? "

" 병신.. 여긴 들어올 수 있어도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곳은 아니야. "

 

 

 

 

어린아이같이 유천의 옆에 매달려 무섭다고 난리치는 창민의 덕에 유천은 괜한 힘을 뺐다.

심창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이곳에 들어온걸까?

 

이 곳엔 마음대로 들어올 순 있어도 나가는건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잠든 시간, 오늘따라 유난히 삐그덕 거리는 복도때문에 인상을 잔뜩 쓴 채

유천과 창민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김재중의 죽음에 대한 해결이 그 둘에게는 마치

또 하나의 숙제처럼 다가왔고, 창민은 끼고싶지 않다고 했지만 바로 전 날 재중의

죽음에 먹을대로 먹은 겁에 질려 할 수 없이 유천을 돕기로 약속하고 조용히 따라나왔다.

글쎄, 왜 창민이 자꾸 모르는 척을 하는건지 유천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행동이 제발

'모른다' 가 아닌, '몰랐으면 좋겠다' 이길 바랬다. 이 곳은 단순히 '모른다' 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곳임을 창민이 모른다는 건.. 유천에게 하나의 빙산처럼 느껴졌다.

 

삐그덕..

 

재중이 쓰던 방의 문을 열자 녹슨 쇳소리가 귓가에 거슬리 듯 쩌렁쩌렁 울려왔다.

창민은 '젠장..'이라며 낮게 읊조린 뒤 소리가 나지 않게 다시 문을 닫았다.

불을 키자 끽 해야 두평 남짓한 작은 방에 책상과 서랍장, 그리고 재중의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게 다였다. 창민은 이 방에 있는 것 조차 악운이 미친다는 듯한

표정으로 불만가득한 얼굴을 하고선 문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유천은 그런

창민의 표정을 한번 쓱 살펴본 뒤 옅게 웃음을 지었다.

 

 

 

 

" 그렇게 가만히 서있다가는 죽는다..? "

" ... 네, 네?...!! "

" 그렇게 가만히 서있다가는... 죽는다고. "

 

 

 

 

유천의 비웃는듯한 말투가 떨어지자 창민은 양손을 꽉 쥐고서 고개를 한쪽으로 숙였다.

유천의 말이 틀린말은 아니다, 분명 이곳은 바로 어제 살인이 일어난 음산한 곳이니까.

아.. 그러고보니 생각날 듯 말 듯 하다. 이 곳에 녹음을 하러 왔던 사람들은 모두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뉴스에서의 보도를.. 그렇지만 창민은 그것이 오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곳에 이곳에 들어왔던 모든 사람들이 행방불명이 되었다면, 그 녹음실이 좋다는

말도 안되는 소문은 대체 어떻게 퍼졌다는것인가? 게다가 그 녹음실에서 녹음 한 많은

가수들이 앨범에 성공했다는 사실들 또한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이건 분명 거짓이다.

 

유천은 굳어있는 창민을 세워두고 계속해서 방의 이곳 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뒤 그는 이불 한켠에 말려있던 수첩 한개를 찾아 꺼내들었다. 뭘까..?

 

 

 

 

" 정윤호와 김준수.. 둘의 관계가 미묘하다.. 라..... 뭘 뜻하는거지? "

 

 

 

 

유천이 무언가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창민은 고개를 들어 유천쪽을 바라봤다.

유천은 한장한장을 넘기며 수첩에 쓰여있는 글들을 읽어내려갔고, 창민은 조용히 유천의

곁으로 다가갔다. 분명.. 재중선배가 썼던 글임이 틀림없다. 몇장의 종이를 다 넘기고

다시 겉표지로 돌아왔을때, 표지엔 까만 글씨로 'JJ'라는 그만의 명칭이 써있다.

 

 

 

 

" 둘은 단순한 비지니스 관계에 있는 사람들 뿐이잖아요. 게다가.. 둘은 남자에요. "

" 심창민, 이거 새겨들어. 이 곳은 절대로 네 의지에 의해 나갈 수 없어. "

 

 

 

 

수첩을 자신의 주머니 안쪽에 넣은 유천은 살짝 고개를 돌려 창민에게 쏘아붙였다.

창민은 그런 자신의 행동이 지금 이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녹음실에서 녹음하던 도중, 어느 날 밤 한 인기가수가 죽었다.. 그렇다면 보통,

나머지 사람들은 부산을 떨며 사람이 죽었다고 경찰에 알리고 서둘러 이 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정상 아닌가? 박유천은 도대체 무슨 생각과 무슨 정신머리로

이따위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만들면서까지 자신을 유린시키는 건지 모르겠단 표정으로

그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냥 거의 자포자기 했다는 마음을 먹어버렸다는게 정석일까.

 

도대체 뭐가 문제고, 뭐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거야 박유천.

 

 

 

 

" 저기.. 형, 저 책.. "

" 어디? "

 

 

 

 

이왕 이렇게 된거, 유천이 뜻이야 어떻든 그도 사람인데 살아야겠단 생각으로 이러는게 아닐까?

창민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자신의 마음을 추스린 후 유천과 함께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방도 좁은데다가 단기간 안에 녹음을 하러 온 재중은 그다지 많은 짐을 동반하지 않았나보다.

금새 한권의 책을 찾은 창민은 유천의 어깨를 슬쩍 치며 턱으로 책쪽을 가르켰고, 유천은 놀라며

책을 주워들었다. 보아하니 겉표지는 까만색에 가면 그림이 그려져있는걸로 봐서 분명 미스테리에

관한 책이 맞다. 아래 작은 글씨로 추리소설이라는 책의 분류가 찍혀있었고, 책은 꽤나 두꺼웠다.

유천은 책을 한번 쓱 넘겨보곤 덮더니 허리춤에 있던 담배곽을 집어들어 담배 한개피를 물었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옆에 있던 창민이 쿨럭쿨럭거리더니 금새 한소리 하기 시작한다.

 

 

 

 

" 쿨럭.. 저기.. 형! 연기때매.. 쿨럭.. "

" 창문열면되잖아. "

" ... 창문이 없잖아요 여긴. "

" 뭐? "

 

 

 

 

창민의 고통스런 말투에 유천은 서둘러 담배를 비벼껐고, 주머니에 넣었던 수첩을 꺼내들었다.

 

 

 

 

" 이상하다.. "

" 뭐가요? "

 

 

 

 

유천은 수첩을 넘기며 다시한번 이 방안을 살펴보았고, 시선을 수첩에 고정시켰다.

 

 

 

 

 

" 분명 여기에.. '창문으로 넘어온 빛'이라는 문구가 있어. "

" 여긴 분명.................. 창문이 없는걸요. "

 

 

 

 

 

 

 

 

 

 

 

 

 

 

 

 

 

 

 

 

 

 

 

 

 

 

 

 

 

 

제 방으로 돌아온 유천과 창민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더 또렷해지는 느낌에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처음엔 무조건 이 곳이 무섭다는 생각에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던 창민도, 재중의 일기와도 같은

수첩의 짤막한 문단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재중의 방에서 찾았던 그 추리책도 몇번이나

뒤적여보며 이 일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처음부터 그것을 캐내기 위해 들어왔다는

유천은 재중이 써놓은 수첩에 몇번이나 줄을 치며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소설책을 들추어

보고 다시 수첩에 무언가를 쓰고 책을 들추어보고.. 를 반복했다. 아직까지 창민은 유천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란

생각이 정확히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박유천 그를 믿는 것.

 

왜 김재중은 창문이 없는 방에 창문이 있다고 서술해 놓았을까?

대체 수첩과 소설책의 상관관계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 그와의 관계는 대체 무엇일까.

그는 어떤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고, 어떻게 의문사를 당했으며 그가 죽음을 당한 이유는 뭘까.

 

도대체 어느하나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았기에 둘은 더욱더 머리가 복잡해져만 왔다.

 

 

 

 

똑똑,

 

 

 

 

" 네- "

 

 

 

 

유천은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수첩과 책을 한쪽으로 숨겼다.

그리곤 이성을 찾은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 노크소리에 대답했고, 문은 조용히 열렸다.

 

 

 

 

" 김준수..씨? "

" 녹음때문에 잠시 들렸어요. 진정되지 않아하실 것 같아서.. 녹음 날짜를 하루정도 미룰까요? "

" 전 상관없어요. 창민이가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잘 달래서 모레쯤부터 녹음 시작할게요. "

" 그러실래요? 아... 그리구, 조심하세요. 이젠 저희도 어떻게 될 지 모르겠어요. "

" 그럼요, 조심해야죠. 조심하세요. "

" ... 그럼.. "

 

 

 

 

준수는 유천과 창민을 똑바로 응시하며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곤 뒤돌아가버렸다.

 

 

 

 

" 내 자신 하나조차 지키지 못할정도로 무방비하진 않은데 말이지. "

" 형, 저 둘은 이번일과 아무관계 없는거죠? "

" ........... 저 둘을 조심해. "

" 어떻게 저렇게 착한 사람이..... "

" 그걸 조심하란말이야. "

" 네? "

 

 

 

 

창민은 유천의 말뜻이 확실히 이해되지 않아 다시 한번 되물으려고 했지만,

책을 골똘히 살피는 그의 집중력에 더이상 말을 걸지 않고 수첩을 꺼내읽었다.

 

몇시간째 밥도 먹지않고 생각하는 유천 덕분에 진이 빠질대로 빠진 창민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처음 이 녹음실의 규칙대로 창민의 핸드폰도 배터리와 분리된 채 주머니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금새 그의 핸드폰은 시작음을 울리며 대기화면상태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 꺼져버렸다.

 

 

 

 

" 어라..? "

 

 

 

 

창민은 다시 배터리를 분리시켰다가 꽃아 켜봤지만, 여전히 핸드폰은 자기 맘대로 방전되어버렸다.

배터리가 다 되었나 싶어 집에서부터 가져온 충전기를 꺼내들었지만, 이 방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꽉 막힌 무언가의 밀실처럼 온통 하얗고 너무나도 네모 반듯하기만 했다. 즉, 충전기를 꽃을 만한

곳은 물론이고 창문을 비롯해서 흔한 옷걸이조차 없다. 그냥 이 곳은 잠만 잘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문득 창민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음까지 철저히 된 이곳에 갇히게 된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

 

창문도 없다.. 핸드폰도 안터진다.. 방음이 되어 아무것도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거의 절망에 가까운 조건들이다. 만약... 만약에 이 곳에 갇히는 일이 생기면 죽음. 그뿐이다.

 

 

 

 

" 핸드폰 킬 생각하지마, 여긴 어차피 철저하게 방음되어 있는 곳이라 안터져. "

 

 

 

 

책에 집중하고 있던 유천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창민을 봤는지 한마디 불쑥 내뱉었다.

 

 

 

 

' 형... 전 이곳의 모든것을 파악하고 있는 형이 더 이상한걸요. '

 

 

 

 

 

 

 

 

 

 

 

 

 

 

 

 

 

 

 

 

 

 

 

 

 

 

 

 

 

 

" 창민씨 목소리 어때요? "

 

 

 

 

이틀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고, 그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처럼 다시 녹음을 시작했다.

2인용 쇼파에 나란히 앉아있던 준수는 유천의 귓가를 향해 옅은 숨소리를 내뱉으며 물어왔다.

유천은 순간 움찔해 준수쪽을 쳐다봤고, 순식간에 자기답지 않게 붉어진 얼굴을 만지며 웃었다.

멋쩍은 유천의 웃음에 준수는 살짝 휜 눈으로 눈웃음을 쳤고, 유천은 계속해서 창민의 노래하는

모습을 주시했다. 왠지.. 김준수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기란 부담스럽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 고음이 굉장히 깨끗하네요. "

" 그렇죠? 저도 많은 가수들 목소리를 편집하고 녹음해봤지만, 이렇게 괜찮은 목소리는

  믹키씨 이후로 처음인걸요. 봐봐요, 고음부분이 자연스럽게 처리되잖아요. "

 

 

 

 

준수는 살짝 웃으며 유천 쪽으로 바짝 몸을 붙였고, 유천은 어색한 웃음을 시종일관 유지했다.

이사람, 뭔가 음악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말투로 유천을 대했고, 그에 당황한건지

아니면 그냥 '김준수'라는 사람에 대해 반응을 한건지 모르는 떨림으로 한참이나 그를 대했다.

창민의 녹음은 끝날줄 모르고 오랫동안 계속해서 진행됐고, 때마침 정윤호가 문을 열어제꼈다.

윤호가 들어오자 준수는 빠싹 붙이고 있던 자신의 몸을 유천으로부터 급하게 떨어뜨렸다.

 

 

 

 

' 뭐야 이사람.. '

 

 

 

 

윤호의 한쪽 와이셔츠 소매에 있는 핏자국을 발견한 유천은 한참동안이나 그를 유심히 살펴봤다.

그러고보니.. 윤호는 연신 준수의 등어리를 쓸어내리며 다정스럽게 그를 쳐다봤고, 김준수 역시

그의 다정함에 대답하듯 사랑스러운 웃음으로 그를 쳐다보며 그의 한쪽 다리에 손을 얹었다.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둘의 표정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같다.

 

정윤호와 김준수.. 둘의 관계가 미묘하다..

 

문득 재중이 적어놓고 간 수첩의 한 줄이 스치듯 머리속을 꿰어찼고, 유천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둘의 사이가 단순한 업무관계 이상이라면..?

왜 자꾸 박유천, 내가 싫어진다는 느낌이 드는거지? 둘은 절대로 사랑해서는 안되.

 

마침, 창민이 부스의 문을 열고 나왔다. 창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사색이 된 모습을 보고

유천이 먼저 달려가 무슨일이냐며 물었지만 창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멍했다.

 

 

 

 

" 무슨일이야?! 왜그러는데!! "

" ................... "

" 심창민!! "

" 형.... "

" 그래, 말해봐. "

" ..................... 저, 먼저 들어가서 쉴께요. "

 

 

 

 

창민의 어깨를 흔들어대던 유천의 손을 무시한 채 창민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 심창민! "

" ..................... "

" 아무래도 들어가봐야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

 

 

 

 

놀란 토끼눈을 뜬 채 뒤돌아 걸어가는 창민을 보던 준수는 다시 시점을 바꾸어 유천을 쳐다봤고,

유천은 오늘 녹음이 무리일거라는 눈치를 주고 창민을 뒤 따라 들어갔다. 창민이 성큼성큼

걸어간 복도는 오늘따라 유천에게 왜이렇게 길게만 느껴지는건지, 유천은 걷던 걸음을 조금

빨리해 뛰었고, 그때였다.

 

 

 

 

" 악..! "

 

 

 

 

정신없이 앞을 보고 달리던 유천은 무언가에 발이 빠지듯 복도 위로 넘어졌고, 그는 일어나

한쪽 모서리 부분의 물컹한 바닥에 발을 대고 한참을 밟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음때문이라며 변명된 이 곳의 바닥은 빨간 카펫으로 길게 깔려있어 그 촉감이 본래 부드럽고

맨들거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발이 빠질정도로 물렁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뿐더러

누군가 여기서 넘어진 적이 있는지 그 앞에 손자국 모양으로 얕게 파여있는 걸 발견했다.

아무래도 공사가 잘못된 탓이라고 여긴 유천은 한바탕 짜증을 내며 방 문 앞까지 갔고,

문고리를 돌리기 전 그는 잠시 여유를 부리며 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곳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창민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아까 너무 집중해서 들은 탓일까, 자꾸 귓가에서 맴도는 창민의 노랫소리가 이젠 귓청이

찢어질 듯 아파오며 하다못해 소음으로까지 파고들자 그는 고개를 한번 흔들고 문을 열었다.

넘어져서 다친건지 방바닥에 닿자 아려오는 무릎에 그가 아프다는 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창민은 한쪽 구석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 듯 그렇게 있다. 도대체 뭘까, 뭐가 그를

생각에 빠지게 한걸까. 그가 만약 무엇을 봤다면 분명 이곳을 빠져나가자고 보챘을텐데,

 

오늘 심창민이 이상하다.

 

 

 

 

" 무슨 일 있어? "

" .. 새삼스레 무슨일은. "

" 근데 표정이 왜그래, 아까 노래 잘 부르던데.. 김준수씨가 칭찬까지 하더라. "

" .............. ? "

" 아, 너 고음처리가 잘 된다고. "

" ................... 무슨.. 노래..? "

" 뭐야, 무슨소리야~ "

" 마이크.. 꺼져있었는데. "

 

 

 

 

 

 

 

 

 

 

 

 

 

 

 

 

 

 

 

 

 

 

 

 

 

 

 

 

 

 

 

 

 

 

 

 

 

 

 

 

 

 

 

 

 

 

 

 

 

 

 

 

 

 

 

 

 

" 마이크가.. 꺼져있다니..? "

" 그 곳으로 부터 이상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난 무서워 죽을것만 같았어요. "

" 무슨소리야?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해봐. "

 

 

 

 

시종일관 자신의 무릎에 고개를 묻고 고개를 들지 않던 창민은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을 꺼내며 고개를 들었다. 창민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

초점없는 상태로 유천을 바라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유천은 그런 창민의 행동에

당황한 듯 잠시 뒷걸음을 쳤지만, 이내 창민의 어깨를 흔들며 그의 대답을 요구했다.

 

 

 

 

" 처음 부스 안에 들어갔을때, 바깥쪽으로 형과 김준수가 어떤한 얘기를 나누고 있는게 보였어요.

  나는 김준수씨가 아직 녹음 준비가 되지않아 형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고,

  그냥 혼자서 노래 연습을 했어요. 근데 이상하게도 제 목소리 외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분명 마이크가 꺼져있던 걸 확인한 저로써는 제 목소리 이외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에 놀라서 노래를 멈췄고, 다른 이의 목소리는 곧.. 비명에 가까워졌어요. "

 

 

 

 

유천은 창민의 상황설명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좀 더 창민의 얘기에 주시했다.

창민은 꼭 누군가가 뒤에서 조정하는 듯한 말투와 눈빛으로 유천에게 이야기 했고,

유천은 지금 창민이 겪은 상황보다 그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창민의 모습이 더 무서워졌다.

 

 

 

 

" 그 목소리가 어디서부터 나온건지.. 알겠어? "

" ... 그 목소리.. 부스 안 키보드 옆에 있는 서랍장에서부터 새어나왔어요..내 목소릴 따라했다구요! "

" .. 진정해,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하구 여기 좀 누워있어. "

 

 

 

 

창민은 유천의 지시대로 방 한쪽 구석에 온몸을 웅크린 채 누웠다. 유천은 방 문을 잠근 후,

재중이 썼던 수첩을 꺼내들었다. 뭔가가 그의 수첩에 비밀이 있을꺼란 생각이 들었고,

맨 앞쪽과 뒷쪽만을 읽었던 자신이 무언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며 수첩의 중간부분을

펼쳤다. 예상대로 수첩이 반쯤 넘어자가 깨알같은 글씨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부분의

맨 앞쪽으로 찾은 유천은 처음부터 재중의 글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이 녹음실 안에 있다..

서랍장 안에서는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지만 난 모른척 노래를 한다..

어느 날 밤, 나는 그곳에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언제나 매혹적이고 비밀스럽다.. 그의 유혹을 당해낼수가 없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에 목숨을 빼앗긴다는 사실을 믿을수가 없다..

 

재중은 짤막한 문장으로 이어지지도 않는 문장을 띄어쓰기 조차 없이 쭉, 서술해 놓았다.

대체 이 곳에 며칠간을 먼저 머무르면서 재중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은걸까.

그는 긴 여운을 남긴 글들로 수첩의 중간부분을 마무리 지었고, 유천은 다시 수첩을 접었다.

창민은 아까 부스에서의 일이 아직도 머리속에 선명하게 기억되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그런 창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천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에 이것이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김재중,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최소한의 실마리정도는 얻지 않았을까..?

이곳이 피를 부르는 이유, 이곳이 가지고 있는 비밀, 그리고 이 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

유천은 당장 내일부터는 자신이 직접 부스에 들어가봐야겠다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스산한 공기가 목 부근을 스치며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잠이들었고, 그렇게 밤은 깊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다가 먼지를 잔뜩 마셨는지 목이 칼칼한 기운에 잠을 깬 창민이

방안에 불을 켰을 때, 시계는 이미 새벽4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창민은 물을 마시러 나가고

싶었지만,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녹음실 내부 로비까지 걸어나가야하고 일어나자마자 스치는

낮에 있던 일 때문에 쉽사리 발을 띨수가 없었다. 옆에 자고 있는 유천을 깨워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기에 유천은 잠든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너무 곤히 자고 있어 깨우기가 미안했다.

결국 혼자 나갈수가 없어 다시 잠에 들기 위해 누웠지만, 칼칼한 목은 점점 갈증으로 변해갔다.

 

 

 

 

" 저기.. 혀.. 형.. "

" 으음... "

 

 

 

 

피곤했던 탓일까. 평소 예민하기로 유명한 유천은 창민의 부름에도 알아듣지 못한 듯

몸을 돌려누워버렸다. 할 수 없이 창민은 방문을 열었고, 복도에 발을 딛자마자 환하게

불을 켰다. 그리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어나가는데 어디선가 새어오는

음성에 그는 그자리에 멈칫해버렸다.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은 더욱 커져만갔고 창민은 그게 바로 자신의

뒤쪽이란 걸 파악했다.

 

이제.. 창민이 가야할 길은 유천이 자고 있는 뒤가 아닌 바로 앞이다.

마치 아무소리도 듣지 않은 척, 그렇게 로비쪽으로 향해 걷던 창민은 조용히 문을 열고

그자리에 우두커니 멈춰버리고 말았다.

 

 

 

 

 

 

 

" 하아.. "

 

 

 

 

김준수의 입술에 정윤호가 혀를 강제로 집어넣어 괴롭히자 김준수는 곧 못이긴 척 혀를 받아들였다.

정윤호는 그의 목덜미와 귓가를 오가며 혀 끝으로 김준수의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시켰고,

김준수는 정윤호가 흥분되기에 충족할만한 색스런 신음으로 정윤호를 만족시키고 있었다.

 

 

 

 

" 하앗.. 그만.. 그만.. "

" 내가.. 장난하는 것 처럼 보여? "

 

 

 

 

그의 얇은 남방을 거의 뜯다시피 풀어버린 정윤호는 탄탄하지만 여린 김준수의 가슴을 찾아

순식간에 그를 탐했고, 김준수는 침대시트를 꽉 쥐어잡은 채 정윤호의 혀 끝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김준수는 정윤호가 하기 좋게 다리를 살짝 벌렸고, 더 이상 참지 못한

정윤호는 급하게 그의 바지 버클을 풀어내렸다. 매끈하게 빠진 다리 사이로 정윤호 얼굴을 묻어

그의 은밀한 곳을 찾자 그는 참지못하고 신음을 마음껏 흘리기 시작했다.

 

순간 창민은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눈치챘고, 아까부터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신음소린 뒤가 아닌 옆에서 들려왔던것이란 걸 깨달았지만 이미 그걸 깨달았기엔 늦어버렸다.

정윤호는 김준수를 막 대하듯 거칠게 애무했고, 정윤호와 김준수 또한 창민이 그자리에서 둘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는지 행위를 계속해나가고 있었다. 문을 닫고 빨리 방으로

돌아가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몸에서부터 오는 갈증은 이미 이성적인 판단으로 해결하기에는

늦은 듯 그자리에서 발이 띄어지지 않았음은 물론, 그냥 못본걸로 하겠다는 말조차 튀어나오지

않았다.

 

창민은 문을 닫고 조금 더 기다렸다 행위가 끝나면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문 뒤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그는 이상하게도 평소에는 잘 참던 갈증이 오늘따라

참을 수 없을만큼 심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둘의 관계에 놀랄참도 없던 건 오늘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정윤호와 김준수는 어떤 관계일까. 행위 도중 김준수는 정윤호에게 복종당하다시피 수치스런

신음소리와 멘트를 내뱉었고, 정윤호 또한 둘의 사이에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다는 듯 꽤

억압적인 말투로 그와의 행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창민은 자신이 밤눈에 밝아 저 모든

행위들을 봤다는 것에 스스로 화를내며 마른침을 조용하게 삼켰다.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오고,

얼마가 지난 후에 비로소 둘의 격한 신음소리와 마찰음을 잦아드는 듯 어느샌가 조용해졌다.

 

 

 

 

끼이익..

 

조심스럽게 다시 철문을 연 창민은 녹음실 로비의 스위치를 찾아켰고, 정윤호와 김준수의

흔적은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분명 창민은 그들이 나가는 발자국

소리조차 듣지 못했고, 김준수의 신음소리조차 멀어져가듯 사라져버렸기에 대체 어떻게

?? 건지 알수는 없었지만 목이 마르다는 신체 신호에 급해 쟁반위에 있던 주전자를 들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 켁켁... 이게 뭐야! "

 

 

 

 

창민은 주전자 채로 마시던 물을 내동댕이 치고 자신에 입안에 들어가 있던 무엇을 뱉었다.

입안에 무언가 통째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어 바로 헛기침을 해 뱉어낸 창민은 그자리에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눈알.. 그래, 사람의 눈알이다. 창민은 사람의 눈알이 든 물을

마시고있던 것이다.

 

 

 

 

" 젠장.. 신발.. "

 

 

 

 

그때였다, 창민이 열고 온 문이 끼익, 하는 마찰음을 내며 조용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 유천이ㅎ.... !!!!!!!!!!!!!!!!!!!! "

" 이쯤됐음, 게임 끝난거 아닌가? "

" ..................... 어떻게 된거야! "

" 축하한다, 심창민. 네가 마지막이야. "

" ........... !! "

 

 

 

 

창민은 무작정 앞으로 뛰었다. 부스 내부의 문을 세게 닫았지만 '쿵' 하는 마찰음이

들리지 않는걸로 보아 분명 그가 문이 닫히는 걸 저지하고 창민을 따라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창민이 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부스엔 불이 켜지고 따라서 ON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더이상 창민이 도망갈 길은 없다. 이 네평 남짓한 부스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수 밖에.

 

그는 점점 창민의 곁으로 다가와 주저앉은 창민의 눈 앞에 섰고, 창민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의 손엔 새로 산듯한 날카로운 식칼 한자루가 들려있었고 창민은 그 칼날을 주시했다.

 

 

 

 

" 네가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이 뭔지 알아? "

" .. 쿨럭... 전.. 전..아.. 아무것도..쿨럭.. "

" 그래, 바로 그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너라는 것 때문이야. "

 

 

 

 

부스 안, 창민은 그에게 목덜미를 잡혀 그의 손에 강하게 결박당한 채 벽에 기대었다.

그는 평소 운동을 즐겨하던 사람이었기때문에 예상대로 팔힘이 무척이나 강했고,

창민은 그런 그의 손을 저지하지 못한 채 막혀오는 숨을 그대로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창민의 손은 부들부들 떨려오고 곧 온몸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들며 숨을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됐을 때, 그가 갑자기 결박했던 손을 풀러 창민의 한쪽 어깨를 밀어부쳤다.

 

 

 

 

" 그래도.. 봤다는 건 확실하지? 부인할 수 없잖아? "

" 이러지.. 이러지 마세요..! "

 

 

 

 

창민은 최대한 숨을 고르며 정확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다.

대체 창민은는 자신이 본 그 무엇이, 이 남자에게 어떻게 잘못된건지 모르지만 그는

창민에게 너는 알고 있다며 계속해서 창민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뒷주머니로 손을 가져가는 것이 보인다. 창민은 더욱 급박해졌지만, 어깨를 누르고 있는

그의 힘과 그 기세에 억눌려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 다리가 풀려버린 병신같은 몸 탓에

겨우 열 수 있던 입의 저항뿐, 그에게 더이상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 악...! "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창민의 배를 향해 정확히 날카로운 칼날을 꽃았다.

창민이 비명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지자, 다시한번 칼날을 높이 들었다.

 

 

 

 

" 하지마.. 하지.. !! "

 

 

 

 

심장쪽에 무언가 차가운 이물질이 들어와 박히는 느낌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 차가운 물체는 깊숙히 내 심장으로 곤두박칠 친 뒤 배 아래까지 내동댕이 쳐졌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하고 그는 마지막으로 내가 정신을 놓기전..

두손으로 칼을 들어 내 머리에 사정없이 내리찍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내 정신력은 얼마나 끈질긴건지 아무래도 쉽게 정신을 놓지 못하고 있다.

머리 위에서부터 흐르는 피 사이로 무언가 미지근한 물체들이 함께 흘러내렸고,

그것들은 내 눈을 덮으며 내 코.. 내 입술을 지나 이미 찢어져버린 내 뱃가죽위로

자리를 옮겨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정도의 화려한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

 

 

 

 

" 이정도면.. 됐나? "

 

 

 

 

그는 마지막으로 칼을 저 높이 치켜들었다. 자신의 온몸을 모두 그 칼끝에 맡긴 듯

칼날이 퍼렇게 선 그 칼은 매우 무겁고 둔탁하게만 느껴졌다. 한동안 고통이 물밀 듯

몰려오던 느낌이 그렇게 내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미칠것만 같았는데, 그의 마지막

배려에 나는 한줄기 잡고있던 실줄기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잡히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지. 마지막 내 귓속을 파고드는 음성은 죽음과 동시에 내 몸의 죽지않은

모든 세포들을 소름에 끼치게 만들었다.

 

 

 

 

" 잘했어.. "

 

 

 

 

그렇게 머리속이 아무렇게나 파헤쳐진 창민의 목이 댕강, 잘려버리고 말았다.

 

 

 

 

 

 

 

 

 

 

 

 

 

 

 

 

 

 

 

 

 

 

 

 

 

 

 

 

 

 

 

 

 

" 어딜갔지? .. "

 

 

 

 

부시시한 눈으로 아침을 맞은 유천은 비워져있는 창민의 자리를 보며 하품을 했다.

평소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창민이라 일찍 일어나 씻으러 간 것 쯤으로 여긴

유천은 일어나자마자 숨겨놓았던 수첩을 꺼내들었다. 무심코 처음부터 맨 끝까지 한번

스르륵 지나치던 유천은 어느 한 부분에서 동작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 이건... "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쓰여져 있지 않던 부분에 빨간색의 글씨로 무언가가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 ............. 심창민! "

 

 

 

 

 

 

 

 

 

 

 

 

 

 

 

 

 

 

 

 

 

 

 

 

 

 

 

 

 

 

 

 

 

 

 

 

 

 

 

 

 

 

 

 

" 심창민!! "

 

 

 

 

뭔가 불길한 예감이 적중해 온 유천은 재빨리 일어나 문 앞의 신발을 확인했고,

창민의 신발은 예상대로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혼자가 되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천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녹음실 로비로 향해 달렸고, 문을 열었을 땐 청소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분주한 윤호와 준수를 만날 수 있었다. 유천이 문 소리가 크게 나도록

열었지만 둘은 그런 유천의 모습을 쓰윽, 한번 살펴보곤 다시 각자 할일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유천은 그런 둘의 모습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다 한쪽에 세워진 자루를 발견하곤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였다,

 

 

 

 

" 이봐, 박유천씨. 몸에 있는 그건 뭔가? "

 

 

 

 

유천은 갑자기 달라진 윤호의 말투에 당황하기에도 잠시,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을 쳐다봤다.

 

 

 

 

" 으아악..! "

" 냄새가 심하니 얼른 가서 씻고와. "

 

 

 

 

이제 그는 유천에게 능청스럽게 반말까지 해가며 유천의 존재를 간단히 무시하는 듯 했다.

유천은 그제서야 자신의 몸에 들러붙은 죽은 지렁이들이 득실거린다는 것을 알았고,

갑자기 코를 자극하는 쾌쾌한 냄새에 못이겨 일단은 화장실 쪽으로 달려갔다.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몸에서 떨어지는 지렁이 가죽이 역해 구토가 나올것만 같았다.

유천은 그렇게 자신의 알리바이를 만들 듯 화장실로 향했고, 그 뒤를 슬며시 따라오던

윤호는 고개를 내저으며 떨어진 지렁이들을 다 쓸어담았다.

 

화장실로 들어온 유천은 거울앞에 선 자신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렁이들이 눌려서 몸뚱아리가 터진건지 노란 액체가 사방에 가득 묻어있었고,

이제 그 냄새는 점점 역해서 머리가 띵해질정도였으닌깐.

 

아, 맞다. 그런데 심창민은 어디로 간거지?

 

세면대의 찬물을 세게 틀어놓고 머리를 댄 유천은 물이 한참이나 흐를때까지 그 안에 머리를

담구고 있었다. 머리카락 속에도 지렁이가 엉켜 있던 건지 맑은 물 안에 잠수를 하자 눈 앞에

지렁이의 잘려나간 몸뚱이가 하나둘 씩 자취를 비추기 시작했고, 비위가 약한 유천은 바로

물에서 머리를 빼 한참동안이나 참았던 숨을 고르게 쉬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걸 보니, 창민에게 아무일도 없었던걸까?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니 개운해짐을 느낀 유천은 곧장 샤워실로 들어가 몸에서 나는 냄새를

뺐고, 물가에 쓸려 내려가는 토막난 지렁이의 모습을 넋 나간 사람처럼 한참이나 쳐다봤다.

얼마나 지난걸까, 세찬 물줄기에 기운이 빠질대로 빠져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그는 샤워기를

껐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녹음실 쪽으로 나가려는데 문득 네번째 칸에 시선이 고정되는

이유는 뭘까.. 유천은 그대로 또 한참을 갸웃거리다가 없어진 창민의 행방이 궁금해 발걸음을

돌렸다. 제발 창민에게 아무일도 없어야할텐데..

 

 

 

 

" 박유천씨, 잘 잤어? "

 

 

 

 

녹음실에서 여전히 청소중인 윤호와 준수는 깨끗이 씻고 돌아오는 유천에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늦은 아침인사에 유천은 멋쩍은 표정으로 가볍게 목례했고, 방으로 돌아가려다 그 중 준수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 저기.. 준수씨. "

" 네? "

" 심창민.. 못보셨나요? "

" .................. "

 

 

 

 

무슨 일에서였는지 준수는 표정을 굳히며 그자리에 곧은 자세로 섰고, 유천은 일순간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준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돌리며 아까 보았던 자루가 있는 쪽으로 가만히 손가락질을 했고, 유천은

'설마'하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하며 다시 준수를 쳐다봤지만 준수의 표정은 무관했다.

 

윤호와 준수는 유천을 없는 사람마냥 취급하며 자신들 할일을 하기에 급급했고,

유천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헛웃음으로 대처하며 조용히 자루 앞으로 다가갔다.

자루는 뭐가 들어있는지 꽤 길고 높았으며, 유천의 허리부근까지 날씬하게 빠져있었다.

유천은 묶여져 있는 윗 부분의 매듭을 풀으려 손을 뻗었고, 그 때 유천이 잘못 들은건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피식-'하고 웃는 정윤호의 목소리가 꽤나 신경쓰였던 이유는 뭘까.

 

 

 

 

" 아, 맞다.. 으, 음식을 먹다가 그냥 나온 걸 까, 깜박했네.. "

" 잘 생각하셨어요 유천씨. "

" ........... 네? "

" 운명을 믿으세요? 운명이란게.. 사랑에만 존재한다고 믿으세요? "

" ... 저기 .. 무, 무슨소린지.. "

" 자기 운명에 복종할 줄 아는 것도 그의 한가지라고 했어요. "

 

 

 

 

더이상 준수의 계속되는 말을 들을수가 없던 유천은 급하다는 듯 뒷걸음질 쳐 방으로

들어갔다. 이 곳에 오기 전, 유천은 분명 이 곳에 무언가를 캐치하겠다는 맹목적으로

이 녹음실의 자료에 대해 샅샅히 뒤졌지만 이 녹음실의 이름이 알려진데에 비해 자료는

단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녹음실이라는게 일반일들 사이에서는 알려지기 힘든

특정장소이기도 하지만, 이 곳에서 살아나왔다는 가수들을 실제로 본 적이 없을 뿐더러

설사 그런 가수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은 좀처럼 녹음실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 곳은 처음부터 그런 곳이였다, 직접 경험해 볼 용기가 없기 이전엔 호기심조차

갖아볼 수 없는 그런 두려운 곳.

 

유천이 처음 이곳을 찾을때 먹었던 마음가짐은 지금과 확연히 다르게만 느껴졌고,

자신도 모르게 손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두려워져만 갔다.

 

김준수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꺼내며 자신에게 무언가를 암시하려고 하는 것 같았고,

정윤호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하루사이에 말투가 바뀌어 자신에게 명령하는 듯한 말투로

자신을 억압하려는 듯 했지만, 그에 대해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유천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그들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유천은 방문을 잠그고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꺼내기 시작했다.

분명.. 이 수첩에 무언가 단서가 있으리라..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지금 유천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유천 자신이 아닌 이 단하나의 수첩 뿐임이 더욱 짖궂게 느껴졌다.

 

 

 

 

- 나는 보지 않은 척 했다.. 나는 봐서도, 들어서도 안될 존재이기에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죽는 순간까지 그를 배신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척.. 죽음 앞에 떨었다.

 

 

 

 

수첩의 중간 부분이였다. 그리고 유천은 그자리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며 수첩을 내동댕이쳤다.

 

 

 

 

" 말도안되.. 이건.. 이건 꿈이야.. 아니라고!! "

 

 

 

 

쾅쾅쾅,

 

그리고 밖에서부터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유천은 이 모든게 실제로 피부에 와닿자 이제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기 시작했다. 저 문을 열면.. 이제 박유천, 박유천은 죽었구나.

 

그때였다, 정신이 바짝 들고 어젯 밤 몽롱했던 의식중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에서 깬 몽롱한 상태로 좁은 침대위를 허우적거리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하고 든다.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온몸에 돋는 소름에 나는 이불을 바짝

끌어안고 침대의 벽쪽으로 몸을 붙였지만, 비명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남자의 비명소리.. 꽤 고음을 가진 한 남자의 비명소리. 몸을 웅크리고 귀를 기울였다.

 

 

 

 

" 그만해.. 그만하란말이야! "

 

 

 

 

나는 곧 그 비명소리의 주체가, 지금 내가 있는 이 벽을 넘어 바로 옆이란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있는 머지않은 곳에서 무언의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이불 속 내 발 밑에서 무언가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느낌은 내 발을

타고 올라와 종아리.. 그리고 허벅지를 지나 가슴까지 올라왔다.

 

 

 

 

" 허억....... 악...!!! "

 

 

 

 

뭔지모를 까맣고 말랑말랑한 물체가 내 몸을 흐물흐물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내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려오고 있고, 이제 그 물체는 한마리가 아닌 여러마리가

되어 내 몸을 탐색하듯 구석구석으로 퍼지고 있다. 으아악.. 으아아아악!! ................

가까스로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눌렀고, 나는 그때 거의 기절하다시피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 방의 네모난 전면에 꿈틀대고 있는 수많은 지렁이들을 보았기때문에. 지렁이들은

모두 나에게로 기어오듯 꿈틀대는 것만 같았고, 나는 점점 내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단지 이 물체뿐만이 아닌 누군가의 비명소리.

내가 지금 내 상황에 신경쓰고 있을때 쯤, 나는 비명소리가 어디서부턴가 끝이 났다는 걸 알았다.

 

녹음실의 바닥은 모두 방음재로 되어있어 누가 내 방의 앞까지 왔다고해도

또각거리는 높은 구두굽의 소리나 스치듯한 슬리퍼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방안의 스위치를 내렸고, 꿈틀거리는 그 물체들이 침대매트

사이를 파고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막은 채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내 예상대로라면 그가 이곳까지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일이

벌어져버릴지도 모른다. 분명 이건 내 목숨을 담보로한 하나의 게임이다.

 

 

 

 

철컥.

 

드디어 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밑에 깔려있는 물체들이 꾸물거려 미칠껏만같았지만 문을 연 '그'가

누군지 확인하기 이전에는 불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죽은듯이 누워있을 수 밖에 없다.

문을 연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 이후로는 아무런 미동도차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이라곤 내 목과 귀주위를 괴롭히는 물체들의 움직임..

그 중 한마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가 계속 의식되어

자연스러운 척 움직일 수 조차 없다. 아.. 온몸이 그 이상한 느낌에 미칠 것만 같은데.

 

 

 

 

" 넌.. 못들은거지? "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챘다.

그는 내가 제발 듣지 않기를 바란다는 듯한 말투로 내가 혼잣말을 시도해왔다.

 

 

 

 

" 그래, 그럼 너 못들은걸로한다? "

' 못들은걸로한다..?아.. 나 지금 미치겠어, J. "

" 이게 무슨냄새지? "

' ... 온몸이 이상한 느낌으로 뒤범벅됐어. 죽을것만같아. '

" ............. 잘자라. "

 

 

 

 

지렁이가 배 위를 간질간질 괴롭히며 내가 더이상 참지못해 막 소리를 지르려고하자,

그가 그냥 나가버렸다. 동시에 난 이불을 걷어차고 손으로 내 배위를 쓸기 시작했다.

 

 

 

 

" 미친새끼.. 미친새끼.. 미친새끼.. "

 

 

 


 

 

 

 

 

 

 

 

 

 

 

 

 

 

 

 

 

 

 

 

 

 

 

 

 

 

 

 

 

 

 

여기까지 생각하자 유천은 자신이 분명 심창민의 죽음과 관련이 되었다는 생각에 미칠듯이

소름이 끼쳐왔다. 유천은 분명 스스로가 ' 나는 잠을 자고 있었다.. ' 라는 생각을 세뇌시켜

자기최면을 걸었던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서야 유천은 자신의 몸이 오늘 아침

이렇게 더럽혀져 있던 이유가 뭔지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어떻게 해석하지?

 

좁은 방 안에 갖혀있는 박유천과 밖에서 문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는 누군가..

그 누군가가 어제 유천의 방에 찾아왔던 '그'가 맞다면..

 

 

 

 

" J ..... "

 

 

 

 

 

 

 

 

 

 

 

 

 

 

 

 

 

그리고 어느순간 문을 두드리던 소리가 멈췄다.

 

 

 

 

 

 

 

 

 

 

 

 

 

 

 

 

 

 

 

 

 

 

 

 

 

 

 

 

 

 

 

 

 

 

 

 

 

 

 

 

 

 

 

 

 

 

 

 

 

겁에 질린 유천은 한동안 그 상태로 꿈쩍도 않고 방 안에 그렇게 처박혀 있어야만 했다.

이젠 그에게 환청까지 들리는건지 재중의 노랫소리와 창민이 자신을 애타게 찾고있는

두려움의 목소리가 주위를 빙빙돌며 유천을 괴롭혔고 유천은 그때서야 후회하고 있었다.

 

 

 

 

" 들어오지 않는거였어.. 그따위 호기심에.. 흡.. "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이 곳은 호기심조차 가져서는 안될 곳이란 걸 이제서야

깨달은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지만, 금새 이성을 되찾은 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쓱 닥아내고서 이 곳을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성공률은 0.1퍼센트조차

안되는 희박한 가능성.. 선택의 여지 없이 죽어야만 한다면 이 곳의 비밀이나 알아내고

죽는게 차라리 맘이라도 편하겠다고 이미 굳게 다짐한 그는 일어나 방안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죽은 사람이 된 재중과 창민의 짐을 하나씩 한쪽에 정리해두고

자신의 짐도 그 옆에 함께 정리해둔 유천은 서랍장 아래 소설책과 펜, 그리고 수첩만을

꺼내둔 채 앉아 마음을 다시잡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펜을 들어 수첩 한 구석에 이렇게

쓰기 시작했다.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말도 안되 제길..

 

 

 

 

툭.. 힘없이 떨어진 펜은 그대로 문 앞을 향해 굴러갔고, 유천은 아무생각 없이 문 앞으로

머리를 가져다대며 펜을 주워잡으려 했다. 그때, 문득 유천의 머릿속에 항상 말랑거리던

카펫트가 떠올랐다. 푹신한 소재로 되어있는 복도의 카페트는 마치 연예인들이 시상식때나

밟는 레드카펫처럼 색깔이 화려했고, 이 녹음실의 노란 조명과도 기가막히게 떨어지는 꽤

훌륭한 조화중의 하나였다. 어느 날, 창민은 문 앞에서 넘어졌다며 유천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 적이 있었는데 유천은 그 점을 늘 수상하게 여기고 있던 바이기도 했다.

 

지금 문을 열면 J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많은 생각이 교차했지만, 어차피 남은건 자신 혼자일뿐이고 설사 이 곳을 빠져나간대도

녹음실 부스와 로비를 지나쳐 긴 복도를 따라 뛰어야하기 때문에 사실상 꼭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한쪽으로 접은지도 오래된건 사실이다. 그래도 사람이 다닐 수 있을정도의 탄탄함이

유지되고 있던 그 곳이 창민의 의견에 따르자면 사람이 넘어질 정도의 틈이 움푹 패여있다는

점이 여간 의심스러울 수가 없다.

 

문을 열까.. 말까.. 나갈까.. 말까..

 

어쩌면 생각해볼 가치조차 없는 고민에 불과했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 유천이 이 곳에 왔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조를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고,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앉아있다가 문의 열쇠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J에게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며, 이 곳에 들어앉아 있다는 자체가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빠지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유천에게 닥친 이 상황은 유천 스스로에게 최대의 위기를 맞게했고, 시간은

그렇게 무의미하게만 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 유천씨, 문 좀 열어봐요. "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윤호다. 아까와는 또 다른 목소리로 그는 유천을 대했고, 그 목소리에

유천은 또 한번 갈등에 휩싸였다. 무슨 이유일까, 아까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던 그 모습

그대로일까, 아님 정말 다른 이유에서일까. 순간 그는 아까보다 훨씬 더 두려운 상황에 닥쳤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앞으로가 잠겨있는 문고리를 더욱 세게 쥐어잡았다.

 

 

 

 

" 유천씨, 문 좀 열어보라닌깐요. "

" .... 왜, 왜죠? "

"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

" .. 하.. 손님? 제가 이 곳에 들어온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순간 손님이란 말에 뛸 듯 기뻐진 그가 하마터면 잡고 있던 문고리를 돌릴뻔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에 유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천은 흐려지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고,

그에게 자신이 여기에 온 걸 아는 사람이 없다며 확고하게 대답해버렸다. 그러나 사실

유천은 문을 열어보고싶어 미칠 것만 같다. 그 누군가가 누구던간에 외부의 사람이기만을

바랄 뿐.. 그리고 이 곳에 녹음을 하러 들어온 또 다른 한명의 가수가 아니기만을 바랄 뿐.

 

 

 

 

" 박유천씨가 만나기를 거부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껀가요? "

" 유천씨! 접니다, 김형수. 문 좀 열어주세요! "

 

 

 

 

어라.. 이건 정말 그 아저씨 목소리잖아. 무슨 생각이 난건지 유천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망설임 없이 문을 활짝 열었고 유천의 눈 앞에는 정윤호와 그가 나란히 서 있다. 유천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지 듯 소름이 끼쳤고, 그는 영문을 모른

다는 듯 그렇게 유천을 바라보고 서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선 왠지모를 긴장감이 맴돌았다.

정윤호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둘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가볍게 목례하고 로비를 향해 나갔다.

유천은 다짜고짜 김형수라는 사람의 팔을 붙잡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횡설수설하며 말도 안되는 말을 어이없게 겨우겨우 이어가며..

 

김형수라는 사람도 무언가 답답하다는 듯 주머니에서 담배하나를 꺼내 물며 유천에게 한가치

를 쥐어줬다. 평소 목관리때문에 담배를 피지 않는 유천인 걸 알지만, 담배를 쥐어준 그나

그 담배를 받아 피우는 유천이나 둘은 분명 말하지 않는 곳에서부터 통하는 공포감을 그렇게

담배연기에 대신하고 있었다.

 

김형수. 그는 전 A.ka의 매니저로, 팀의 해체로 인해 재중의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으며

한 기획사에 있던 유천과는 당연히 알고지내는 사이였지만 유천이 A.ka에게 악의를 품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는 자신의 의견과 상관없이 유천을 높혀 부르며 가끔 안부를 묻곤 하던

사이였다. 게다가 이 곳에서 유천에게 어떤 호칭으로 대해야 할지 몰라 일단 존대말을 쓴

그는 다행이도 처음부터 깨름칙하다고 여겼던 이곳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재중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고, 한참뒤에 기다릴수가 없어 찾아왔지만 처음 재중과 함께 왔을때

마중나왔었던 엔지니어는 그가 이미 이 곳을 떠났다고 말했다. 매니저 김형수는 이 곳에 있는

가수 한명을 만나러왔다며 잠시 들러 혹여나 남아있는 재중의 짐이 있으면 가져가겠다며

겨우겨우 김준수를 설득시켜 들어왔던 것이였다. 물론 그걸 알리없는 정윤호는 그냥 '손님'

이라는 말에 박유천의 손님인가보다, 해서 김준수에게 눈치를 준 뒤 유천의 방까지 데려다줬고

유천은 그렇게 설상가상으로 김형수를 만나게 됐다.

 

 

 

 

" 형, 어떻게 들어온거에요? "

" 내가 여기 들어온 이유가 뭐겠냐, "

" 재중..이 찾으러..? "

" 이미 여기서 나갔다던데 왜 연락이 없는건지 모르겠다. "

 

 

 

 

김형수는 담배연기를 한모금 빨아들인 뒤 길게 내뿜었다. 그의 표정에는 답답한기색이 역력하다.

알고 있지만 믿고싶지 않다는 듯 재중의 거처를 은근슬쩍 물어보는 그의 행동에 유천 또한 답답해져

한쪽으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채 방 한쪽에 담배불을 지져 껐다. 어쨌든 유천은 이제 김형수와 함께

살아나갈 수 있다는 마음에 마음 한쪽이 그지없이 기뻤다. 이 곳은 이상하게도 가수들의 운명만을

달리했던 곳이기에 그는 김형수가 이 곳을 빠져나가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없어요, 재중.. "

" 너도 일단 나가자. "

 

 

 

 

유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형수는 뒷 말이 무슨말인지 알겠다는 듯 말을 잘라버렸다.

유천은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 일어섰고, 그도 이 곳이 어떤 곳인지 안다는 듯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일단'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속 뜻은 나가서 재중의 죽음에 대해

물어보겠다는 것과도 일치한다.

 

 

 

 

" 저기.. 형! 잠깐만. "

" ...? "

 

 

 

 

문을 열고 나온 유천은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고, 급하게 로비와 연결된 문을 향해 걸어가는

김형수를 조심스럽게 불러세웠다.

 

 

 

 

" 뭘 좀 알아볼게 있어.. "

 

 

 

 

말을 마친 유천은 김형수에게 문고리를 잡고 있어 달란 제스추어를 취했고, 유천의 연습생시절

함께 오랫동안 생활했던 탓인지 김형수는 그의 말을 한번에 잘 알아듣고 문고리를 잡았다.

유천은 천천히 걸어나와 한쪽으로 움푹파인 카펫의 모서리를 잡았고, 잡기와 동시에 그는 잠시

움찔했다. 손가락 아랫부분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와 더불어 따뜻

하게까지 느껴지는 끈적한 액체에 그는 김형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다시한번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 뭐하는거야. "

 

 

 

 

김형수가 낮게 유천을 향해 ?셉떱홱?. 그러나 유천은 손으로 잠깐이면 된다는 표시만을 한 채

계속해서 일을 진행했고 김형수는 숨을 죽인 채 유천의 행동에 주시했다.

 

유천은 마음을 먹은 듯 카펫트를 잡은 손에 힘을 줬고, 이제 그 카펫트를 끌어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 아래엔 대체 뭐가 있을까.. 한쪽 끝이 패인걸 모른다는 것은 분명 J, 너의 실수였어.

 

 

 

 

" 으악!! "

 

 

 

 

유천이 카펫을 들어올렸을 때 김형수는 차마 그 곳을 계속 쳐다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유천은 카펫을 잡지 않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자신의 소리를 저지했고, 들어낸 바닥엔...

죽은 시체들이 수북히 쌓여 서로 아무렇게나 뒤엉켜있다. 그리고 유천이 들어낸 가장 바깥쪽의

사이드에는 김재중과 심창민.. 둘의 시체가 서로를 의지한 채 따뜻한 피로 엉켜있다. 아직 죽은지

얼마 되지않는 심창민의 시체가 아무도 모르게 이 곳으로 조용히 옮겨졌음을 뜻한다.

 

박유천과 김형수.. 둘은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 유천아, 덮어두고 일단 나와. 나가서 신고하자. "

 

 

 

 

혹시라도 들킬까 김형수는 계속 낮은 목소리로 유천에게 신호를 보냈고, 유천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카펫의 끝자락을 놓아버렸다. 카펫은 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카펫의 마찰에 살짝 튀긴 그들의 핏물이 벽쪽에 그대로 묻어버렸다. 이대로.. J에게 들킨다면

김형수고 뭐고 박유천과 함께 죽어버릴지도 몰라.

 

 

 

 

 

 

 

 

 

 

 

 

 

 

 

 

 

 

 

 

 

 

 

 

 

 

 

 

 

 

 

 

떨리는 발걸음을 겨우 띠어내어 로비로 걸어왔을 때, 예상과는 다르게 로비엔 아무도 없었다.

유천과 김형수는 빠르게 발을 내딛어 녹음실의 문을 닫아버렸고, 문은 아무소리 없이 스르르

자취를 감추며 닫혀버렸다. 그들은 이제 이 곳을 쭉 따라 나가면 나가자마자 로 경찰에게 신고

해야겠단 말을 쉴새없이 자기 자신에게 입력시키며 점점 서로를 의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 유천아.. "

" ................ "

" 이 핏자국은.. 뭐지..? "

 

 

 

 

하얀 복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아직 마르지 않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 J, 그 자식의 짓이야. "

 

 

 

 

순간 유천은 자기도 모르는 영웅심리에 사로잡혀 그자리에 우뚝 서버리고 말았다.

 

 

 

 

" 죽여버리겠어.. "

 

 

 

 

 

 

 

 

 

 

 

 

 

 

 

 

 

 

 

 

 

 

 

 

 

 

 

 

 

 

 

 

 

 

 

 

" 박유천! 어딜간다는거야! "

" 이거 놔요, 왜 죽여야만 했는지 알고싶어요. "

" 박유천!! "

 

 

 

 

유천은 분위기 탓에 휩쓸려서인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다시 녹음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김형수는 그런 유천의 팔목을 잡고 가지말라는 소릴 되풀이했지만 유천은 모두가 죽은 이유

를 알아야겠다며 조금전보다 훨씬 힘있게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고, 김형수는 이제 이 모든

게 끝이라는 듯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그도 이제 박유천을 두고 혼자 이곳을 나가야하는지,

아님 어떻게 해서든 박유천을 데리고 함께 나가야하는지 서서히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박유천이 말하는 'J'가 노래하는 사람만을 죽이는 사람이라면, 왜 자꾸 가수들을 죽이는건지

대충 감이 잡히긴 했지만 둘 중 누가 범인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확률은 정확히 각각 50%.

 

 

 

 

" 박유천.. 젠장. "

 

 

 

 

김형수는 그자리에 서서 박유천의 이름을 낮게 ?셉떳? 뒤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죽음의 살인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녹음실 문을 열자마자 썩은 시체들의 냄새가 순식간에 코를 찔렀고 유천과 김형수는 지레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녹음실 내부는 앞전에도 말했듯 바깥과 이어지는 창문이 하나도 없어 환기는 전혀

되지 않았고, 불이 꺼진 내부는 온통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천은 갑자기 밀려오는 지

난밤의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온몸을 떨었고, 마주보고 있는 벽면에 위치한 스위치를 조심스럽게

더듬어 짚기 시작했다. 이 곳은 늘 J윤호와 김J수가 함께 있던 곳이라 그들이 없다는게 자신의 맞

아떨어지는 생각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자 미칠 듯 괴로워졌고, 그들이 이 곳에서 자신의 구출을 기

다리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곧 둘중의 한명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한다는 공식에 괴로워졌다.

 

스위치를 올리자 녹음실 전체에 불이 들어왔고, 다행이도 이곳에 잠복해있다거나 하는 사람은 없

었다. 아마도 유천과 김형수가 눈치채지 못했을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둘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부스 옆에서부터 이어져있는 복도의 문을 열었고, 여전히 복도 또한 바람이 쓸고 지나간 듯

조용하기만 했다. 마치 그 전에 이 곳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다니던 창민과 같은 느낌이랄까..

 

 

 

 

" 여기.. 지나갈꺼야? "

" 하.. 글쎄요.. "

 

 

 

 

이 곳을 밟으면 이 곳에서 죽어나간 많은 가수들의 시체를 자신의 발로 밟게되는 것임을 아는 둘은

차마 쉽게 결정해서 갈 일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둘의 행방을 찾기 위해 들어온 곳을 이대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갈등했고, 이 갈등은 처음부터 찾아들기 시작했다. 더군다

나 박유천은 어느순간부터 겉과 다른 갈등을 혼자서 해오고 있었던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박유천은 이 곳의 진실을 밝혀낸다기 보단 자신이 앓고 있는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이 곳으로

다시 들어온 것 일지도.

 

 

 

 

" 형, 들어가요. "

" 난 상관없어. "

" 나, 죽을때까지 자책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요.. "

 

 

 

 

그때였다, 둘은 들려오는 소리에 서로의 눈을 확인했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흐읏.. 이거.. 이것좀 치우고.. "

" 닥쳐! "

" 하아.. 하아.. "

" 감히 날 배신해? 난 네 시체라도 좋아. 이렇게 죽여버릴지도 모르거든.. "

 

 

 

 

처음, 재중이 쓰던 방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였다. 신음소리가 낮게 울려퍼짐과 동시에 그 소리에

누군가의 두려움이 가득하다는 것을 눈치챘고, 이 것은 분명 누군가가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닌

일방적인 섹스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게다가 무언가를 치우라는 소

리에 겁먹은 김형수는 더 이상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유천의 팔목을 잡은 채 계속해서 유천을

만류하고만 있다. 그 무엇이.. 꼭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만이라고는 할 수가 없잖아.

 

 

 

 

" 유천아, 그만하자. 이길 수 없는 게임이야. "

" 자신없으면 형 먼저 나가세요, 어차피 이건 형하고 상관없는 일이니까. "

" 너 죽고싶어서 환장했어? 지금 니가 가진게 뭐가 있다고 함부러 덤벼! "

" .. 형, 죽고싶어서 환장하지 않았으면 지금이라도 좋으니까 나가요. "

 

 

 

 

유천의 눈은 아까와 사뭇 다른 느낌이다. 무언에 홀린 듯.. 김형수는 복도까지 흘러나오는 역한

냄새에 오히려 머리가 다 아파올 지경이였지만 유천은 자기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한걸음씩 발을

디딛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만해도 범인이 누군지 알겠다며 혼자 확신하던 유천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거 좀 이상해요.. '란 말을 계속해서 내뱉았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형수는 더 이상 이 곳에 한시라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따위 영웅심리때문에, 그따위

말도 안되는 정의욕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한순간에 이곳에 바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형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 그는 아직 모르는게 있다. 그는 아직 사랑이란 걸 모르고 있으니까.

 

박유천이 한발짝씩 앞으로 나갈수록 김형수는 박유천과 멀어지고 있었다. 유천의 표정은 먼저

떠나버릴 것만 같은 김형수를 원망한다거나 하는 느낌을 자아내지는 않았다. 그는 정말로 혼자서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이미 녹음실 저 바깥에서부터 먹고 들어왔기 때문에. 김형수는 박유천의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제 박유천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자신을 생각하자니 마저 그를 위해 여기 남을수도 없었다.

 

 

 

 

" 미안하다, 박유천. 꼭 살아서 돌아와.. "

 

 

 

 

 

 

 

 

 

 

 

 

 

 

 

 

 

 

 

 

 

 

 

 

 

 

 

 

 

 

 

 

 

 

박유천은 멀어지는 김형수를 보며 살짝 웃어버렸다. 김형수는 아직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밖에 모른다.

비록 혼자만이였지만, 김준수에게 자신이 빠져버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듯 자신의 신세를

한참동안이나 혼자서 한탄하던 그는 김형수가 멀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좀 더 긴장된 표정으로 방 문

앞에 섰다. 이제 죽는다면 둘 다 죽는 것이고, 살아 남는다면 둘 다 살아남는 것이다. 둘다 죽는 다는

것은 박유천 자신과 정윤호를 뜻하는 것이고, 둘 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이것 또한 박유천 자신과 김준

수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 곳에 처음 와서 많은 추리를 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들어오는

사사로운 감정에 미칠 듯 괴로웠었다. 게다가, 둘의 관계를 미묘하게 생각하고 있던지라 함부러 김준수

에 대해 알거나 물어볼 수도 없었다. 어쩌면 죽음을 담보로한 박유천 자신의 소유욕일지도 모른다.

그, 머저리같은 소유욕.

 

사람은 살면서 김형수와 같은 이기적인 면이 필요할때가 많다. 남들은 다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에게 배려하고 베푸는 것 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없다고 하지만, 그것 모순에

불과하다. 사람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위안할때 행복해지는 것이고,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이 어쩌면

너무나 이기적이게도 행복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구나 한번쯤 뼈저리게 느껴봤을

만한 영화의 한장면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와 동시에 박유천은 문고리에 손을 얹었고, 이젠 더 이상 지체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느꼈다.

 

 

 

 

' 그래.. 이 문만 열어서 김준수만 데려오면 되는거야.. '

 

 

 

 

입술이 바짝 마르고 손에는 땀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문고리를 천천히 돌리자 곧 '철컥'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순간 김준수의 고통스럽던 신음소리가 멈춰버렸다. 그리고, 안에서부터 낮은톤의

목소리가 유천의 고막을 찢어버리듯 들려오기 시작했다.

 

 

 

 

" ...... 누구야, "

" 유, 윤호씨, 내가 나가볼게. "

" 병신같은새끼.. "

 

 

 

 

막상 그의 목소리를 듣자 유천의 온 몸은 얼어붙기 시작했고, 생각처럼 움직여지지도 않았던 건

사실이다. 정윤호와 반대로 꽤 하이톤인 김준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천은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에서 그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자신이 더욱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 뛰어! "

 

 

 

 

누군가가 날렵하게 잡아챈 손목에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뛰기 시작했고, 좀 전과는 다르게 너무나

물렁거리는 바닥에 구토증상까지 느껴져 현기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자신의 손목을 잡고 뛰는건 김준수였고, 뒤에서부터 정윤호의 목소리가 아찔하게만 들려왔다.

 

 

 

 

" 박유천! 돌아와! 박유천..!! "

 

 

 

 

김준수는 다짜고짜 유천의 손목을 잡고 화장실로 들어와 문을 잠궈버렸다. 당황한 유천은 준수의

손에서 자신의 손목을 빼고 준수의 손목을 도로 잡아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게했다.

 

심장이 쿵쾅거려 미칠지경이다.

 

 

 

 

" 유천씨.. 나 좋아해요? "

 

 

 

 

전부터 말하려고 했었지만 막상 이렇게 김준수의 입을 통해 듣자 부끄러워진 유천은 고개를 돌렸다.

평소 대범했던 그는 사랑앞에서 쑥쓰러웠던지 헛기침을 했고, 김준수는 뛰어오느라 헐떡대던 숨을

잠시 고른뒤 유천이 잡고 있던 자신의 손목을 자연스럽게 풀러 유천의 허리에 살짝 감았다. 그리고

유천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어 한참을 그렇게 안고있자 유천 또한 긴장이 풀려왔고, 자연스레

김준수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김준수는 고개를 들어 유천의 귓가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고

유천은 그런 준수의 자극적인 행동에 놀랐지만 한번쯤은 꼭 김준수와 이런 시간을 갖고 싶긴 했다.

그 상황이 지금이라는게 좀 빌어먹긴하지만. 아까 들은 준수의 신음소리가 생각난 유천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고, 김준수는 점점 자신의 입술을 귓가를 지나 유천의 입 주변으로 옮겼다.

 

 

 

 

" 키스.. 해줘요? "

 

 

 

 

유천은 아무대답하지 않았지만 김준수는 자신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유천의 입 안으로 자신의 혀를

비집어 들어왔다. 그는 생각보다 거칠게 키스했고, 유천이 숨 쉴 틈 조차 주지 않는 키스를 계속해서

해나가다가 곧 부드러운 키스로 유천을 달아오르게 하는 등 매우 능숙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박유천은 한참동안 김준수에게 매료되어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문득,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김준수와 함께 빠져나가 신고하면 일이야 어찌됐던 무언가를 들을 수는 있지

않을까.. 지칠줄 모르고 해오는 김준수의 키스에 이성을 찾은 유천은 순식간에 그의 혀를 빼냈다.

 

 

 

 

" 저기.. 뭐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 "

" ..... 물어보지 말아요. "

" 아니, 물어봐야겠어. "

" ........ 뭔데요 ..? "

" 그 날 밤 말이야.. 왜 내 방에 들어왔었어..? "

 

 

 

 

갑자기 김준수의 얼굴이 그날 밤 아무것도 보지 않았냐며 자는척하고 있는 자신에게 묻던 얼굴과

오버되며 보여졌고, 김준수는 아무말 없이 그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김준수의 손이 유천이

모르게 뒷주머니로 향했고, 박유천은 자신을 부담스러우리만큼 가까이에서 쳐다보는 김준수의

손을 가까스로 포착했다. 그래, 박유천의 생각은 딱 맞아떨어졌다, 범인은 J, 김준수였어.

 

문을 열고 도망가려고 했을 때, 김준수가 좀 전과 다른 힘으로 자신의 목을 억압해오기 시작했다.

 

 

 

 

" 어딜가..? "

" 켁.. 이, 이거.. 켁켁.... "

" 네 성대도 잘라줄게, 예쁘게.. "

 

 

 

 

순간 박유천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생각에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분명 김형수와 같이 봤던 시체무더기엔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목주변이 실날히 파여있단 것.

 

 

 

 

" 왜, 왜이러는거야! "

" 나도.. 나도 노래하고싶어.. 내 목소리 들려..? 내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

" 쿨럭.. 쿨럭.. 그, 그만.. "

" 그러니까.. 아까 정윤호가 불렀을 때 그를 믿지 그랬어. "

 

 

 

 

그리고 그때, 화장실 문 밖으로부터 자신이 의심했던 정윤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문열어 김준수!! 박유천! 김준수 조심해! 박유천!! 안에 있는거야? "

 

 

 

 

그렇지만 준수의 칼날은 유천의 목선을 따라 둥글게 상처를 내기 시작했고,

곧 박유천은 그의 칼에 목이 서서히 잘리며 머리가 잘려버렸다.

 

 

 

 

그렇게 그 모든 게임은 끝이났다..

 

 

 

 

 

 

 

 

 

 

 

 

 

 

 

 

 

 

 

 

 

 

 

 

 

 

 

 

 

 

 

 

 

 

 

 

 

 

 

 

 

" 형수씨, 여기 맞아요? "

" 네, 분명.. 여기였는데.. "

" 여기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공사때문에 이 건물 철거된지 10년이나 지났는데. "

 

 

 

 

어느 황폐한 공간에 어느 남자 한명과 경찰로 보인는 사람들이 열댓명이 서서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다.

 

 

 

 

" 이봐요, 장난치지 마십쇼, 안그래도 바빠죽겠는데.. "

 

 

 

 

 

 

 

 

 

 

 

 

 

 

 

 

 

 

 

 

 

 

 

 

 

 

 

 

 

 

 

 

 

 

 

 

 

 

 

 

 

 

 

 

 

" 미안하다, 박유천. 꼭 살아서 돌아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