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에 작고 낡은 ‘구멍가게’하나가 있었다.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임마누엘 슈퍼’. 처음 이사를 왔을 때부터 이곳은 내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형마트가 자리 잡고 있다. ‘임마누엘 슈퍼’는 밤이 돼서 문을 닫지만, 대형마트는 24시간 항상 불을 밝히고 있다.
‘임마누엘 슈퍼’에 들어가면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다. 좁은 공간 안에 물건들이 빽빽이 넘쳐나서 가게 바깥에도 가득 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동안 팔리지 않아 전혀 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물건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새 것의 빛이 살짝 바랜 채 누군가가 얼마동안 사용한 후 몰래 갖다 놓은 것만 같았다. ‘임마누엘 슈퍼’는 근처에 위치한 대형마트, 비교적 큰 가게들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 한다. 만약 경쟁을 한다면 가격은 물론이고 ‘속도’, ‘시간’에서 한참 뒤쳐질 터인데, 그러한 경쟁은 해보나 마나이다.
이처럼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본과 테크놀로지는 빠른 속도와 편리성을 뒷받침했다. 휴대폰과 인터넷 등이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에 속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멀지 않은 기다림에도 지쳐간다. 그것이 1~2분 차이일지라도 기다림의 시간은 짧아졌고 인내심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30분 내 배달, 빠른 등기, 퀵서비스 등 ‘속도마케팅’이 등장했다.
이러한 속도 경쟁을 나타내는 것으로 2월 14일 피자배달을 하러 가는 오토바이 차량이 버스에 충돌해 그 자리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사망하였다. 사실 속도 경쟁에 불이 붙은 지는 오래되었다. ‘도미노 피자’는 30분 내 배달 원칙을 광고에서 선전하고, 어느 체인지점에서나 빠른 배달을 보장해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퀵서비스’는 도심 속의 수많은 차량들 사이를 곡예운전 하면서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러한 시간과 속도의 관계는 모든 것을 빠름과 연결시켰으며, 오직 출발과 제 시간 안의 도착만이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제 속도가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의 시선뿐만 아니라 인식의 영역까지도 속도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속도가 편리성과 빠름의 가치만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
한국사회는 ‘속도’라는 차원에서 봤을 때,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를 ‘다이나믹 코리아’로 표현하고 언론에서 치켜세운다. 이로 인해 핸드폰, 컴퓨터와 같은 IT 첨단산업이 뒤처지지 않고 달려 나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점점 빨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부상자가 속출 하고 있다.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보기는커녕, 한 푼이라도 줄여야 할 비용이나 한번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취급하면서, 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치달려온 우리 사회의 책임 망각에서 비롯되었다.
정부는 노동인권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다 하지 않았고 노동운동은 연대의 정신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는 기차 위에서 조금이라도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빠름이나 편리성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노동인권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는 사실부터 인식하고, 기업은 ‘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으로는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기존의 경영 방침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진정 빠름과 느림의 조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현대 테크놀로지가 주는 속도와 편리성만 추구하는 삶이 인간을 점점 위험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일이다.
청년의 억울한 죽음. 30분 배달제, 무엇이 잘못된 걸까
30분 배달제,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내가 사는 동네에 작고 낡은 ‘구멍가게’하나가 있었다.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임마누엘 슈퍼’. 처음 이사를 왔을 때부터 이곳은 내게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형마트가 자리 잡고 있다. ‘임마누엘 슈퍼’는 밤이 돼서 문을 닫지만, 대형마트는 24시간 항상 불을 밝히고 있다.
‘임마누엘 슈퍼’에 들어가면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다. 좁은 공간 안에 물건들이 빽빽이 넘쳐나서 가게 바깥에도 가득 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몇 년 동안 팔리지 않아 전혀 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물건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새 것의 빛이 살짝 바랜 채 누군가가 얼마동안 사용한 후 몰래 갖다 놓은 것만 같았다. ‘임마누엘 슈퍼’는 근처에 위치한 대형마트, 비교적 큰 가게들과 경쟁상대가 되지 못 한다. 만약 경쟁을 한다면 가격은 물론이고 ‘속도’, ‘시간’에서 한참 뒤쳐질 터인데, 그러한 경쟁은 해보나 마나이다.
이처럼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본과 테크놀로지는 빠른 속도와 편리성을 뒷받침했다. 휴대폰과 인터넷 등이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에 속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멀지 않은 기다림에도 지쳐간다. 그것이 1~2분 차이일지라도 기다림의 시간은 짧아졌고 인내심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30분 내 배달, 빠른 등기, 퀵서비스 등 ‘속도마케팅’이 등장했다.
이러한 속도 경쟁을 나타내는 것으로 2월 14일 피자배달을 하러 가는 오토바이 차량이 버스에 충돌해 그 자리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사망하였다. 사실 속도 경쟁에 불이 붙은 지는 오래되었다. ‘도미노 피자’는 30분 내 배달 원칙을 광고에서 선전하고, 어느 체인지점에서나 빠른 배달을 보장해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퀵서비스’는 도심 속의 수많은 차량들 사이를 곡예운전 하면서 물건을 배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러한 시간과 속도의 관계는 모든 것을 빠름과 연결시켰으며, 오직 출발과 제 시간 안의 도착만이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제 속도가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의 시선뿐만 아니라 인식의 영역까지도 속도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속도가 편리성과 빠름의 가치만을 지향한다는 데 있다.
한국사회는 ‘속도’라는 차원에서 봤을 때,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를 ‘다이나믹 코리아’로 표현하고 언론에서 치켜세운다. 이로 인해 핸드폰, 컴퓨터와 같은 IT 첨단산업이 뒤처지지 않고 달려 나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점점 빨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부상자가 속출 하고 있다.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보기는커녕, 한 푼이라도 줄여야 할 비용이나 한번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취급하면서, 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치달려온 우리 사회의 책임 망각에서 비롯되었다.
정부는 노동인권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다 하지 않았고 노동운동은 연대의 정신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 하지 않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는 기차 위에서 조금이라도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빠름이나 편리성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노동인권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는 사실부터 인식하고, 기업은 ‘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으로는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기존의 경영 방침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진정 빠름과 느림의 조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현대 테크놀로지가 주는 속도와 편리성만 추구하는 삶이 인간을 점점 위험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일이다.
청년들의 힘을 모아 청년연합 36.5 (cafe.naver.com/youth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