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

김동호2011.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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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Daum에서 펌):

수인번호 2537번 애나. 7년 째 수감 중, 어머니의 부고로 3일 간의 휴가가 허락된다. 장례식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 행 버스, 쫓기듯 차에 탄 훈이 차비를 빌린다. 사랑이 필요한 여자들에게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그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다.

 

“나랑 만나서 즐겁지 않은 손님은 처음이니까, 할인해 줄게요. 오늘 하루.”

훈은 돈을 갚고 찾아가겠다며 억지로 시계를 채워주지만 애나는 무뚝뚝하게 돌아선다. 7년 만에 만난 가족도 시애틀의 거리도, 자기만 빼 놓고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 같아 낯설기만 한 애나. 돌아가 버릴까? 발길을 돌린 터미널에서 훈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장난처럼 시작된 둘의 하루. 시애틀을 잘 아는 척 안내하는 훈과 함께, 애나는 처음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2537번, 지금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름도 몰랐던 애나와 훈. 호기심이던 훈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표정 없던 애나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를 때쯤, 누군가 훈을 찾아 오고 애나가 돌아가야 할 시간도 다가오는데...

 

review :

 이만희 감독의 1966년작 <만추>를 리메이크한, 김태용 감독, 현빈, 탕웨이 출연의 2010년판 <만추>를 CGV영등포 스타리움관에서 관람했다.

 

 2006년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1,300여만 명으로 한국영화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하고, 거의 모든 국내 영화제 시상식의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던 해이다. 그런데, 당시 몇몇 영화제에서 골리앗 같은 <괴물>과 경쟁해 (대종상 작품상을 비롯해) 몇 개의 상을 가져간 다윗 같은 작품이 있었으니 그 영화가 바로 <만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의 전작 <가족의 탄생>이었다. 기자들은 <가족의 탄생>이 <괴물>을 제치고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최대 이변’이라고 써내곤 했지만 나는 <가족의 탄생>이 <괴물>의 흥행결과에 밀려 너무 저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괴물>의 봉준호 감독은 계속해서 영화제 수상이 이어지고 있을 즈음에 한 영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종상에서는 과소평가받은 <가족의 탄생>이 수상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나는 대종상 시상식 생방송 시청 중 작품상 수상작으로 <가족의 탄생>이 호명될 때 봉준호 감독이 ‘좋아, 됐어!’하는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소위 ‘시가폐인’이라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빈의 신작 영화라는 점 때문에 이 작품을 보려 하겠지만, 나에겐 김태용 감독이 연출하고 탕웨이가 출연했다는 점이 더 끌렸다.

 

 CGV에서 영화를 예매하려고 보니까 이 작품을 용산 아이맥스관과 영등포 스타리움관에서도 상영하고 있었다. ‘장쾌한 액션이 불을 뿜는 블록버스터도 아닌데 그렇게 스케일 큰 극장에서 상영할 필요가 있나?’하고 의아해하면서 ‘한번 보지 뭐.’하고 스타리움관으로 예매했다. 덕분에 <만추>는 세계최대 스크린이라는 스타리움관에서 내가 처음 관람한 영화가 되었고, 왜 이 작품을 그렇게 큰 극장에서 상영을 하는지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화면종횡비 2.35 대 1의 시네마스코프로 촬영된 <만추>가 스크린에 투사될 때 1.85 대 1 규격에 맞춰진 일반 극장이라면 위아래에 블랙바가 생기고 보여지는 영상이 약간 작아지면서 풀 쇼트로 잡은 풍경들이 답답해 보일 수 있다. 그렇다고 작은 화면을 크게 보이도록 확대하려 한다면 영상의 양쪽 부분을 조금 잘라내야만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래서 양쪽으로 스크린이 길게 뻗은 스타리움관은 <만추>를 보기에 최적의 선택이었다.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대사와 행동 뿐 아니라 시애틀의 풍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여기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영화보실 분들은 관람 후 읽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

 

 

 넓은 스크린으로 보여지는 시애틀 시내 풍경은 시원시원하고, 몇몇 장면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시애틀을 시종일관 덮고 있는 안개는 제3의 주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안개는 애나(탕웨이 분)가 훈(현빈 분)을 만나 시애틀에 진입할 때부터 등장한다. 후반부, 안개가 너무 심해 타고 있던 버스가 정차했을 때 애나와 훈은 안개 낀 풍경들을 뒤로 하고 격정적인 키스를 나눈다. 안개가 모두 걷힌 후 훈이 갑작스레 떠나게 되었음을 애나가 알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만추>에서의 ‘안개’ 표현은 흡사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에서의 ‘안개’의 쓰임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시애틀의 명산물도 안개인가.

 

 <만추>는 구조적인 면에서는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이 연상된다. 한국 남자와 중국 여자의 로맨스이며,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났다 헤어지는 단 며칠 동안의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여성 캐릭터가 차마 상대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있다는 점이 유사하다. 영화가 영상미에 방점을 찍는다는 것, 심지어 성애장면에서 처음에는 여성 쪽에서 거부를 하는 것도 똑같다. 그러나 이보다 <만추>의 문제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일관성의 부족이다. 장면들 하나하나로 따지만 그닥 흠잡을 데가 없지만 그것들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는 뭔가 어색한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범퍼카 씬은 탕웨이가 중심을 제대로 잡지 않았다면 훨씬 더 손발이 오글거렸을 듯 하고, 대사 립싱크 놀이 후에 이어지는 판타지 장면은 아이디어가 좋았지만 너무 길어서 결정적으로 작품의 균일성을 해치고 말았다. 이어지는 다음 시퀀스에서 갑자기 두 사람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장면도 난데없어 보인다. 장례식장에서 훈과 왕징이 주먹다짐을 할 때 저 사람이 내 포크를 썼다고 훈이 둘러대는 장면도 안이하다.

 

 그러나 <만추>는 이런 결점들을 상쇄할 매력들도 안고 있는 작품이다.

 <만추>는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이 절제되는 대신 이미지와 사운드가 말을 하는 영화이다. 애나가 모처럼 쇼핑을 해 새 옷을 입고 나섰을 때, 헌 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으로 교도소에서 위치확인 전화를 받은 애나가 새삼스레 수감자 신분임을 깨달을 때 스크린 왼쪽에는 세로로 ‘One Way ↑’의 일방통행 표지판이 보인다. 벗어날 수 없는 애나의 절망적 운명은 그렇게 화면으로 말해진다.

(교통 기호는 영화의 미장센을 구성할 때 때때로 유용하게 쓰인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에서는 초반부 오대수(최민식 분)가 납치되는 장면에서 도로 위의 직진 금지 표시(-×→)가 부감 촬영으로 비춰졌었다. 그때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오대수의 앞날을 나타내는 것. <만추>와는 정반대의 기호로 정반대의 의미를 표현했다.)

 

 공사로 휴점 중인 놀이공원 근처에서 애나와 훈이 범퍼카를 타던 중 갑자기 빗장을 걷어내는 인부들이 등장하는데, 훈에게 굳게 닫혀있는 듯 했던 애나의 마음이 열리는 징후로 나는 해석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애나는 훈과 보조를 맞추며 코믹한 립싱크 대사 놀이를 하고, 이후 이어지는 장면에서 자신의 과거를 중국어로 고백한다.

 

 

 

 <만추>를 보면 탕웨이가 홀로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그녀가 스크린의 중심에 있는 법이 없다.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약간씩 치우쳐 있어서 어딘가 빈듯한 느낌을 준다. 안타까운 살인 사건으로 7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애나의 쓸쓸함이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이런 인물 피사체의 ‘치우침’은 후반부 훈과 함께인 장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위태롭고 불안한 훈과 애나의 사랑은, 그래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장면에서도 공허함을 아로새긴다.

 

 스타리움관의 16채널 음향 효과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모텔에서 애나가 훈을 거부하고 난 후 두 사람이 옷을 챙겨입을 때 들려오는 빗소리의 느낌이 또렷했다. 결말에서도 화면은 커피숍에 앉아 있는 애나를 비추고 있고, 어디선가 의자가 삐걱대는 소리, 발자국 소리만이 명징하게 들린다. 사운드 효과로 훈의 등장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잠시 후 이어지는 정적으로 훈의 부재를 나타내었다.

 

 그 외에 훈과 애나가 다른 승객들과 함께 오리버스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는 버스기사가 ‘어차피 다시 안 볼 사람들이니 버스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라’고 승객들에게 말한다. 훈과 애나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충고’였다.

 

 현빈은 연기를 못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탕웨이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만추>는 확실히 탕웨이의 영화다. 극의 중심은 탕웨이가 연기하는 애나에게 가 있고, 그녀는 노련하게 극을 이끌어간다. <만추>에서 그녀는 화장기가 거의 없는 얼굴에 파산된 삶을 사는 자의 어두운 무표정을 담아 넣는다. 몇몇 장면에서 ‘딱 적당하다고 할 만큼만’ 미소 짓는 부분도 좋았고, 장례식장에서 훈과 왕징의 싸움을 말리던 중에 옛사랑이었던 왕징(김준성 분 - 김씨라 한국배우라고 착각할 수 있으나 중국배우임)에게 따지고 오열하는 장면도 만족스러웠다. 극 초반부 왕징이 처음으로 등장하면서 우연히 재회했을 때 미세하게 떨리는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연기는 백미였다. 후반부에 사라진 훈을 찾아 휴게소 이곳저곳을 헤매는 롱테이크 씬에서 집중력도 빼놓을 수 없다. <색, 계>에서도 그랬지만 탕웨이는 실로 탁월한 연기자다.

 

 

 하나 고백하자면, <색, 계>에서보다 더 뛰어나다싶은 그녀의 미모 때문에 영화를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 종종 방해가 됐다. 화면 가득 차 있는 탕웨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멍때리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 것. 화면 가득 차 있던 탕웨이의 얼굴은 나에겐 블록버스터의 액션 장면 못지않은 스펙터클이었다.

 

 영화 중 한 장면. 중국어라고는 ‘하오(좋다)’와 ‘화이(좋지 않다)’ 밖에 모르는 훈을 앞에 두고 애나는 자신의 내밀한 과거를, 이제껏 훈과 대화할 때 사용했던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털어놓는다. 훈은 애나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지만, 알아듣는 것처럼 ‘하오’, ‘화이’하고 대답한다. 그 무엇을 기대하기 힘든 삶을 사는 애나에겐 이런 ‘불통(不通)의 소통(疏通)’이라도 간절했을 것이다.

 

 결말.

 훈은 오지 않는다.

 훈이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와 비슷하게,

 애나는 마치 그가 와있기라도 한 것처럼 오랜만이다, 라고 말한다.

 

 때로는 이런 거짓 소통이 진실해 보이기도 한다.

 삶의 더께로 인한 외로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 임계치를 넘어섰을 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