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또래의 아이들 부모님들과 달리, 저희 부모님 현재 연세는 50세 이상(54년 생, 57년 생)입니다. 바로 아래의 동생은 자격증 시험 보는 고2고 내년이면 중학교 들어갈 동생이 막내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정말 아이들이 손녀냐 물어볼까봐 조마조마 했을 정도로 나이 차가 심하죠. 남들 이야기 들어서야 손녀뻘이라 느낄 정도.
지인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하소연할 수가 없어요. 혼자 불쌍한 척 어른스러운 척 하고 싶지 않아서 우울한 이야기는 할 수 없고. 친척들도 힘들기에,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죠. 올해 고3, 정말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여고생이 답답함에 씁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나요? 단순히 인문계라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가끔 돕는 거 외에 알바 같은 일은 하지 않아서 이 상황을 어떻게 이길지 모르겠습니다. 인식하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실감하는 건 빠르고, 잘못된 출발점이 찍혀있는 부분은 찾을 수가 없네요. 다만 남들이 금방 끝날 고난의 시기라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가 없다고 압니다. 자랑스럽게 서울에서 1층에 가게, 2층에 집으로 살고 있던 우리 5명의 가족은 어쩌다 길을 달리 하게 되었나요? 서울에서 경기도로 내려왔을 때부터? 가게 앞에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아버지 말 따라 마 낀 무당을 만났을 때부터? 하지만 어머니가 사채를 빌려오던 때부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부터? 아니면 생략된 기간의 사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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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말 쯤 경기로 내려왔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그냥 바로 시험봐야했다는거? 빼고는 괜찮았어요. 그렇게 쭈욱 다른 사람들처럼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다양하게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분식점 비슷한 걸 내고, 학교는 가까운 데로 잘 가고, 둘째는 직업위주로 고등학교 가고. 나중에 가게 앞에서 공사를 하게 되는데이것이 현재까지 해서 2~3년 간이고,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덕분에 차가 반대방향으로 꺽는 길목이 막혀버려, 돌릴려면 상당히 먼 곳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시던 손님들이 줄어들어서 배달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익의 대부분은 배달이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분식점에 찾아오는 분들이 무척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웃기만 하거나 "아무것도 아냐" 혹은 "몰라도 돼"라고 하셨습니다. 평소와 같은 표정이고 어투이기에 뭔가 싶어하지 않죠. 그래도 편했어요. 왜냐면 위험성을 몰랐거든요. 그러다 작년이 끝나기 전인 10월? 11월? 아버지가 사고당하셨습니다. 상대쪽의 신호위반으로 배달 도중 몸이 붕 뜨셨죠. 그리고 병원에 3개월을 입원해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입원비를 대주지만 약값이나 타 병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내야하잖아요? 입원 중 아버지 시력이 많이 안좋아지시는 걸 발견하고 당뇨도 있으시니 동네의 큰 병원과 작은 병원, 서울 병원을 다니시게 되었죠.
이렇게 되면 아버지가 배달을 못하시니, 하루하루 버는 돈이 줄어들 수 밖에.. 결국 배달알바를 쓰기로 하십니다. 처음 분은 하루마다 5000원으로 받는다하고 하루 일하고 받자마자 다음 날 안오시고(정말 너무 하셔요, 아무리 그래도..) 오랜 기간을 두어 제대로 된 사람을 받았죠. 계약 내용은 잘 모르는데, 한달에 3번 쉴 수 있고 월급 100만? 200만? 이 분이 일하기는 열심히 일하지만, 가정문제로 중간중간 엄청 빠지셨어요. 게다가 장사도 초반에만 30만원 내외로 나오지, 중간 쯤 되서는 10만과 20만사이를 돌거나 10만 이하로 돈을 법니다. 결국 한달이 되었을 때는 월급문제로 여러 소란이 있었죠. "한 달도 안채우고 월급 전 날에 돈을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월급만 받고 가려는 게 아니냐?" 이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어졌으니 이런 말도 나오고 "이 추운 날 일을 했는데 그냥 가란 말이냐?"돈을 안주니 이런 말도 나오고... 사적으로는 어떻게 초등학생 앞에서도 부모님에게 막말을 하십니까. 결국 자살시도 사건으로 친척분들에게 돈을 빌려 알바생과는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말한 사채죠. 네. 사채. 어머니는 마음 고쳐먹고 살겠다 하셨지만 사채가 남아있습니다. 아버지가 입원 중에 도우러 나오지만 하루에 10만원도 벌까말까하는 수익금으로는 빚은 물론 은행, 집 월셋값도 어렵습니다. 여기에 보험회사 측은 짜게 주기로 악명이 자자해서 많이 받기도 힘들죠. "500밖에 안됀다" "그럼 환자만 살리고 남은 가족 다 죽여라" "우리가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도대체 얼마를 원하냐?" "우리가 살게만 해줘라. 2500이라도 해줘라." 받은 보험금 1200만은 어머니가 도시가스요금이니 은행빚을 다 갚으셔서 100만원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 가출하셨습니다. 집에 있는 막내에겐 어머니가 들리셔서 잠시 어디 다녀온다 하셨고, 아버지는 돈 찾으러 가신 줄 알았다합니다. 후 보험금에 100만원 남은 걸 아신 아버지는 "왜 은행을 먼저 갚아서 사채한테 쫓겨날 신세를 만들었나. 가출할거면 돈은 냅두고 가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셨고요. 이 중 10만원은 아버지 약값으로 빠져서 현재 90만원이 남아있는 상태. 마지막 통화는 월요일 날 오후 3시, 그 이후로는 핸드폰이 꺼져있어서 연락이 안됩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서야 아버지는 이런 적이 없다며 경찰에 전화하여 가출신고 하면서 119에서 위치 추적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역, 서울에서 살았지만 남대문 근처에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없는 상태에선, 배달만 하시던 아버지는 일을 못하십니다. 게다가 취직도 안되실 나이시고..... 자식들 어쩌냐고 틀니하여 세는 발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오죽하면 "먼 곳 갈래?" 게다가 금전 문제는 어머니가 다 관리하셨기에 어머니가 사채를 하셨다는 건 몰랐고요, 몇명에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게의 계약주도, 집 명의도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가게를 팔 수도 없네요. 집 명의 이름을 바꾸려하지만 집주인은 어머니가 있으셔야한다며 거부하십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려고 하는데, 집 명의를 아버지로 안하면 어머니에게 서류를 또 받아야하신다니 아버지의 명의로 바꿔야하거든요. 근데 이러면 돈도 못받고.. 그리고 아버지는 몸이 안좋으십니다. 당뇨 문제도 있고, 시력 문제도 있고, 허리도, 다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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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저희집은 완전 이산가족입니다. 어머니는 가출, 아버지는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모르시고, 둘째는 외갓집으로 간다고 짐을 쌌습니다. 외갓집도 살기 힘드니까 둘째를 받아준 게 어디냐 싶지만, 아버지는 너 혼자 사냐? 니 형제들은? 이러시며 티격태격... "적어도 내가 죽은 다음에 가는 게 낫지 않냐?" "그 때는 받아줄 지 모른다" 이런 식으로. 동생은, 나름 기초생활 수급을 받아도 3명을 직장도 없으신 아버지가 걱정되어 자기 몫 덜려고 외가 간다는 거지만..
만약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기시면 막내도 다른 외갓집에 보낼 생각도 했어요. 전 정말 공부 밖에 할 게 없는데, 공부도 못하고 대학을 장학금으로 갈 능력도 없으니까. 무능력한 저 자신이 원망스러워 친척이라도 남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네요.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지만 어린 나이에 살기 힘들다 생각듭니다. 모든 가격이 올라가서 가족끼리 짜증난다고 이야기한 게 며칠 전인 거 같은데 이렇게 막 흩어지는 기분이니까. 돈도 없고 공부할 능력도 없고 다른 능력도 못찾겠고.......... 성공해서 반드시 효도하겠다한 것도 엊그제 이야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도 되나 싶어요.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게 적어도 막내가 있으니까, 정말로 살고 싶어요. 근데 의욕이 없어지기만 할 정도로. 정말 연애나 공부문제로 자살한 학생들은 이해 안가고 자살한 실업자가 이해된다니. 그거 알아요? 돈도 돈 벌 길도 없게 되니까, 이해 안되는 사람들은 남에게만 상처주고 가는 거 같고 복을 남기고 가는 거 같다고 생각 되어 질투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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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원망하지 않아요. 나름 잘 하려는 모양인데, 다만 시기적으로 운이 나빠진 건 우리니까. 사채업자를 원망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도 갑자기 살기 어려워지니까 재촉하거든요 조상님도 원망하지 않아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잖아요. 제삿음식에 쓰인 돈이 얼마인데 왜 그거 먹기만 하고 우리 안도와주냐고 묻긴 하지만 원망하지 않도록 할께요.
엄마 엄마도 원망하지 않아요. 우리 여기까지 키워준 게 어디예요? 오히려 우리가 편히 살게하려다가 이렇게 된거니까 저희 스스로를 탓해야죠. 엄마가 컴퓨터를 해서 이 글을 볼 일이 없지만 정말 보고 싶어요. 일하시고 오신다고 힘든 목소리로 화요일날 전화해주셨으면서 왜 그 이후론 전화가 없나요? 문자라도 음성메시지라도 확인해줘요. 음성 메시지함은 꽉차서 연락받을 번호만 남기라네요. 서운합니다. 전화도 뭐도 안되니까 이젠 엄마 얼굴이랑 다른 사람 얼굴이랑 헷갈리네요.엄마가 즐겨보던 웃어라 동해야의 안나 아줌마 얼굴이랑 겹쳐지기도. 그리고 오늘 보니까 봄이네가 우리랑 겹쳐지기도 해요. 정말 사채업자가 그렇게 오려나ㅎ 둘째는 취업할 때까지 버텨준다면서 왜 지금 가출했냐며 배신감 느꼈데요. 그러니까 돌아와줘요. 우리는 엄마가 무슨 일하는 지도 모르고, 마지막 통화 목소리가 힘드시니까 상당히 걱정되잖아요. 공사장인가 걱정많이 됩니다. 엄마, 기초수급생활 때문에 가출신고증으로 엄마 주민등록번호 말소하게되었습니다. 돌아오면 다시 등록할 수 있다고, 오만원에 등록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아빠도 엄마 찾아 걱정이고, 막내는 아빠랑 내가 너무 우울하니까 위로하고, 둘째는 성공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공부를 해서든 회사라도 제대로 나와야겠어요. 생각 뿐일지 모르지만.
엄마
정말로 보고 싶어요. 어느 세 일주일이 다 되어가네요. 우리 모두 개학이 3월 2일인 거 아세요? 아시면서 왜 나가셨나요. 정말 엄마 걱정도 되는데 우리도 이제 어떻게 되어야할 지 모르겠네요. 전 상황 봐서 자퇴라도 해야할까 싶고, 핸드폰 정지시켜할 것도 같습니다. 정말로 엄마가 이걸 보면 좋을텐데, 문자도 못치시니까 무리겠죠. 남이 자신의 이야기 올린 걸 보면 신상 걱정 안하나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제가 그 짓을 했네요.
나 학교 보충 끝났어. 이제 개학날까지 쉬겠지.
알바를 하고 싶은데 할데도 없고 보건증 끊기도 민망하네. 게다가 일주일 후에 나온다더라.
그냥 먹고 싸고 자고만 해야하나? 나 공모전 같은데하려 했는데 기간이 짧으면 쓸 시간도 없고 기간이 길면 받을 시간도 없네. 게다가 돈에 눈 멀었다는 소리 들을까봐 생각 같은 나는 것도 없다.
아빠 어제 6000원 벌었다더라. 오늘은 말 안해준 거 보면 손님이 안왓나..
엄마가 없으니까 아빠는 만들어 놓은 거 찌는 것 밖에 못해.
그래서 더 고민되네.
있잖아, 엄마. 사연 쓰는 건, 여기저기에 묻다가 많이 해서 이젠 안슬프거든? 근데 엄마가 볼 일도 없는 편지를 쓰니까 울 거 같아. 엄마.. 나 정말 엄마 원망 안하는데, 가출한 거 원망 안하고, 사채 말 안한 거 원망 안하는데, 연락이 안되니까 원망스러운 거 있지.
엄마가 자살하려고 하기 전에 말했잖아.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엄마가 살던 것처럼 살지 않게하려 햇는데 그렇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그리고 연탄가스 막은 다음엔 새롭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정말로 미안해야 하는 건 못사는게 아냐.
엄마를 기억할 수 없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가족에게만은 연락 다시 해줘.
보살아줌마가 곗돈 먹고 도망갔냐고 했다더라. 엄마가 의지하는 듯 하던 그 아줌마가. 무당도 돈 밝히나요? 사람이니까? 어제 외삼촌이 걱정말라 전화해주셨고 오늘 엄마 친구 중 한 분이 오셔서 잠시 고난이라고 말씀해주시고 갔어. 그래서 힘내야할 것 같은데 난 힘들어. 능력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니까 힘들다고 생각되고 내가 있는 게 피해라 생각되서, 차라리 죽는 게 편할 거라 생각했어. 한강도 생각했고 수면제도 생각했고 화장실도 생각했다. 근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린 막내가 있으니 포기하게 되더라. 그러다 세상에 회피하려는 내가 정말로 겁쟁이라 느껴져. 그래서 노력은 하겠다고 한거야.
언제부터가 문제였는지 정말로 답답하네요. 그 마음만 풀어봅니다.
억울합니다.
엄마,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상황이예요?
아빠, 대체 무엇을 해주었는데 말 뿐이예요?
외가분들, 적어도 자신의 누이 걱정은 안됩니까?
친가쪽, 해준 것도 없고 뒷통수만 치더니 돕는 건 없네요?
모르는 분들, 빌린 건 우리지만 당신들만 사람이예요?
보험회사, 가정 파탄내냐구요?
억울하네요. 난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런 재수없는 상황인가요?
이것이 제가 그 사람들을 붙잡고 하고 싶은 말.
하지만 할 수도 없고 이해되니 더더욱 해서는 안돼는 말.
다만 걱정없는 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만 합니다.
인터넷 상에 올리고 싶지 않은 한 가족의 사연을,
정말로 죽고 싶다고 동생과 울던 맏언니, 이제 고3인 맏언니가
그 이야기만 풀어봅니다.
모든 걸 원하지 않고 누군가 알아주기만 한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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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또래의 아이들 부모님들과 달리, 저희 부모님 현재 연세는 50세 이상(54년 생, 57년 생)입니다. 바로 아래의 동생은 자격증 시험 보는 고2고 내년이면 중학교 들어갈 동생이 막내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정말 아이들이 손녀냐 물어볼까봐 조마조마 했을 정도로 나이 차가 심하죠. 남들 이야기 들어서야 손녀뻘이라 느낄 정도.
지인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하소연할 수가 없어요. 혼자 불쌍한 척 어른스러운 척 하고 싶지 않아서 우울한 이야기는 할 수 없고. 친척들도 힘들기에, 도와주지 않는다고 원망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죠.
올해 고3, 정말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여고생이 답답함에 씁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나요? 단순히 인문계라서가 아니라 부모님을 가끔 돕는 거 외에 알바 같은 일은 하지 않아서 이 상황을 어떻게 이길지 모르겠습니다.
인식하기에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실감하는 건 빠르고, 잘못된 출발점이 찍혀있는 부분은 찾을 수가 없네요. 다만 남들이 금방 끝날 고난의 시기라 하지만 그렇게 느낄 수가 없다고 압니다. 자랑스럽게 서울에서 1층에 가게, 2층에 집으로 살고 있던 우리 5명의 가족은 어쩌다 길을 달리 하게 되었나요?
서울에서 경기도로 내려왔을 때부터? 가게 앞에 공사가 시작되었을 때부터?아버지 말 따라 마 낀 무당을 만났을 때부터? 하지만 어머니가 사채를 빌려오던 때부터?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부터? 아니면 생략된 기간의 사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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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말 쯤 경기로 내려왔습니다. 나쁘지 않네요. 그냥 바로 시험봐야했다는거? 빼고는 괜찮았어요. 그렇게 쭈욱 다른 사람들처럼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다양하게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분식점 비슷한 걸 내고, 학교는 가까운 데로 잘 가고, 둘째는 직업위주로 고등학교 가고.
나중에 가게 앞에서 공사를 하게 되는데이것이 현재까지 해서 2~3년 간이고,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덕분에 차가 반대방향으로 꺽는 길목이 막혀버려, 돌릴려면 상당히 먼 곳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시던 손님들이 줄어들어서 배달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익의 대부분은 배달이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분식점에 찾아오는 분들이 무척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웃기만 하거나 "아무것도 아냐" 혹은 "몰라도 돼"라고 하셨습니다. 평소와 같은 표정이고 어투이기에 뭔가 싶어하지 않죠. 그래도 편했어요. 왜냐면 위험성을 몰랐거든요.
그러다 작년이 끝나기 전인 10월? 11월? 아버지가 사고당하셨습니다. 상대쪽의 신호위반으로 배달 도중 몸이 붕 뜨셨죠. 그리고 병원에 3개월을 입원해야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입원비를 대주지만 약값이나 타 병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내야하잖아요? 입원 중 아버지 시력이 많이 안좋아지시는 걸 발견하고 당뇨도 있으시니 동네의 큰 병원과 작은 병원, 서울 병원을 다니시게 되었죠.
이렇게 되면 아버지가 배달을 못하시니, 하루하루 버는 돈이 줄어들 수 밖에.. 결국 배달알바를 쓰기로 하십니다. 처음 분은 하루마다 5000원으로 받는다하고 하루 일하고 받자마자 다음 날 안오시고(정말 너무 하셔요, 아무리 그래도..) 오랜 기간을 두어 제대로 된 사람을 받았죠. 계약 내용은 잘 모르는데, 한달에 3번 쉴 수 있고 월급 100만? 200만? 이 분이 일하기는 열심히 일하지만, 가정문제로 중간중간 엄청 빠지셨어요. 게다가 장사도 초반에만 30만원 내외로 나오지, 중간 쯤 되서는 10만과 20만사이를 돌거나 10만 이하로 돈을 법니다. 결국 한달이 되었을 때는 월급문제로 여러 소란이 있었죠. "한 달도 안채우고 월급 전 날에 돈을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월급만 받고 가려는 게 아니냐?" 이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어졌으니 이런 말도 나오고 "이 추운 날 일을 했는데 그냥 가란 말이냐?"돈을 안주니 이런 말도 나오고... 사적으로는 어떻게 초등학생 앞에서도 부모님에게 막말을 하십니까. 결국 자살시도 사건으로 친척분들에게 돈을 빌려 알바생과는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앞서 말한 사채죠. 네. 사채. 어머니는 마음 고쳐먹고 살겠다 하셨지만 사채가 남아있습니다. 아버지가 입원 중에 도우러 나오지만 하루에 10만원도 벌까말까하는 수익금으로는 빚은 물론 은행, 집 월셋값도 어렵습니다. 여기에 보험회사 측은 짜게 주기로 악명이 자자해서 많이 받기도 힘들죠. "500밖에 안됀다" "그럼 환자만 살리고 남은 가족 다 죽여라" "우리가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 도대체 얼마를 원하냐?" "우리가 살게만 해줘라. 2500이라도 해줘라." 받은 보험금 1200만은 어머니가 도시가스요금이니 은행빚을 다 갚으셔서 100만원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 가출하셨습니다.
집에 있는 막내에겐 어머니가 들리셔서 잠시 어디 다녀온다 하셨고, 아버지는 돈 찾으러 가신 줄 알았다합니다. 후 보험금에 100만원 남은 걸 아신 아버지는 "왜 은행을 먼저 갚아서 사채한테 쫓겨날 신세를 만들었나. 가출할거면 돈은 냅두고 가야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셨고요. 이 중 10만원은 아버지 약값으로 빠져서 현재 90만원이 남아있는 상태.
마지막 통화는 월요일 날 오후 3시, 그 이후로는 핸드폰이 꺼져있어서 연락이 안됩니다. 다음 날 새벽 6시에서야 아버지는 이런 적이 없다며 경찰에 전화하여 가출신고 하면서 119에서 위치 추적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역, 서울에서 살았지만 남대문 근처에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모르고.
어머니가 없는 상태에선, 배달만 하시던 아버지는 일을 못하십니다. 게다가 취직도 안되실 나이시고..... 자식들 어쩌냐고 틀니하여 세는 발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오죽하면 "먼 곳 갈래?" 게다가 금전 문제는 어머니가 다 관리하셨기에 어머니가 사채를 하셨다는 건 몰랐고요, 몇명에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가게의 계약주도, 집 명의도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가게를 팔 수도 없네요. 집 명의 이름을 바꾸려하지만 집주인은 어머니가 있으셔야한다며 거부하십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려고 하는데, 집 명의를 아버지로 안하면 어머니에게 서류를 또 받아야하신다니 아버지의 명의로 바꿔야하거든요. 근데 이러면 돈도 못받고..
그리고 아버지는 몸이 안좋으십니다. 당뇨 문제도 있고, 시력 문제도 있고, 허리도, 다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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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저희집은 완전 이산가족입니다.
어머니는 가출, 아버지는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모르시고, 둘째는 외갓집으로 간다고 짐을 쌌습니다. 외갓집도 살기 힘드니까 둘째를 받아준 게 어디냐 싶지만, 아버지는 너 혼자 사냐? 니 형제들은? 이러시며 티격태격... "적어도 내가 죽은 다음에 가는 게 낫지 않냐?" "그 때는 받아줄 지 모른다" 이런 식으로. 동생은, 나름 기초생활 수급을 받아도 3명을 직장도 없으신 아버지가 걱정되어 자기 몫 덜려고 외가 간다는 거지만..
만약 아버지에게 문제가 생기시면 막내도 다른 외갓집에 보낼 생각도 했어요. 전 정말 공부 밖에 할 게 없는데, 공부도 못하고 대학을 장학금으로 갈 능력도 없으니까. 무능력한 저 자신이 원망스러워 친척이라도 남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네요.
제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지만 어린 나이에 살기 힘들다 생각듭니다. 모든 가격이 올라가서 가족끼리 짜증난다고 이야기한 게 며칠 전인 거 같은데 이렇게 막 흩어지는 기분이니까.
돈도 없고 공부할 능력도 없고 다른 능력도 못찾겠고.......... 성공해서 반드시 효도하겠다한 것도 엊그제 이야기,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도 되나 싶어요.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게 적어도 막내가 있으니까, 정말로 살고 싶어요. 근데 의욕이 없어지기만 할 정도로. 정말 연애나 공부문제로 자살한 학생들은 이해 안가고 자살한 실업자가 이해된다니. 그거 알아요? 돈도 돈 벌 길도 없게 되니까, 이해 안되는 사람들은 남에게만 상처주고 가는 거 같고 복을 남기고 가는 거 같다고 생각 되어 질투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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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를 원망하지 않아요. 나름 잘 하려는 모양인데, 다만 시기적으로 운이 나빠진 건 우리니까.
사채업자를 원망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도 갑자기 살기 어려워지니까 재촉하거든요
조상님도 원망하지 않아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잖아요. 제삿음식에 쓰인 돈이 얼마인데 왜 그거 먹기만 하고 우리 안도와주냐고 묻긴 하지만 원망하지 않도록 할께요.
엄마
엄마도 원망하지 않아요. 우리 여기까지 키워준 게 어디예요? 오히려 우리가 편히 살게하려다가 이렇게 된거니까 저희 스스로를 탓해야죠.
엄마가 컴퓨터를 해서 이 글을 볼 일이 없지만 정말 보고 싶어요.
일하시고 오신다고 힘든 목소리로 화요일날 전화해주셨으면서 왜 그 이후론 전화가 없나요? 문자라도 음성메시지라도 확인해줘요. 음성 메시지함은 꽉차서 연락받을 번호만 남기라네요.
서운합니다. 전화도 뭐도 안되니까 이젠 엄마 얼굴이랑 다른 사람 얼굴이랑 헷갈리네요.엄마가 즐겨보던 웃어라 동해야의 안나 아줌마 얼굴이랑 겹쳐지기도. 그리고 오늘 보니까 봄이네가 우리랑 겹쳐지기도 해요. 정말 사채업자가 그렇게 오려나ㅎ
둘째는 취업할 때까지 버텨준다면서 왜 지금 가출했냐며 배신감 느꼈데요. 그러니까 돌아와줘요.
우리는 엄마가 무슨 일하는 지도 모르고, 마지막 통화 목소리가 힘드시니까 상당히 걱정되잖아요. 공사장인가 걱정많이 됩니다.
엄마, 기초수급생활 때문에 가출신고증으로 엄마 주민등록번호 말소하게되었습니다.
돌아오면 다시 등록할 수 있다고, 오만원에 등록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아빠도 엄마 찾아 걱정이고, 막내는 아빠랑 내가 너무 우울하니까 위로하고, 둘째는 성공하겠다고 합니다. 저는 공부를 해서든 회사라도 제대로 나와야겠어요. 생각 뿐일지 모르지만.
엄마
정말로 보고 싶어요.
어느 세 일주일이 다 되어가네요.
우리 모두 개학이 3월 2일인 거 아세요? 아시면서 왜 나가셨나요.
정말 엄마 걱정도 되는데 우리도 이제 어떻게 되어야할 지 모르겠네요.
전 상황 봐서 자퇴라도 해야할까 싶고, 핸드폰 정지시켜할 것도 같습니다.
정말로 엄마가 이걸 보면 좋을텐데, 문자도 못치시니까 무리겠죠.
남이 자신의 이야기 올린 걸 보면 신상 걱정 안하나 싶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제가 그 짓을 했네요.
나 학교 보충 끝났어. 이제 개학날까지 쉬겠지.
알바를 하고 싶은데 할데도 없고 보건증 끊기도 민망하네. 게다가 일주일 후에 나온다더라.
그냥 먹고 싸고 자고만 해야하나?
나 공모전 같은데하려 했는데 기간이 짧으면 쓸 시간도 없고 기간이 길면 받을 시간도 없네. 게다가 돈에 눈 멀었다는 소리 들을까봐 생각 같은 나는 것도 없다.
아빠 어제 6000원 벌었다더라. 오늘은 말 안해준 거 보면 손님이 안왓나..
엄마가 없으니까 아빠는 만들어 놓은 거 찌는 것 밖에 못해.
그래서 더 고민되네.
있잖아, 엄마.
사연 쓰는 건, 여기저기에 묻다가 많이 해서 이젠 안슬프거든?
근데 엄마가 볼 일도 없는 편지를 쓰니까 울 거 같아.
엄마.. 나 정말 엄마 원망 안하는데, 가출한 거 원망 안하고, 사채 말 안한 거 원망 안하는데, 연락이 안되니까 원망스러운 거 있지.
엄마가 자살하려고 하기 전에 말했잖아.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엄마가 살던 것처럼 살지 않게하려 햇는데 그렇게 만들어 미안하다고.
그리고 연탄가스 막은 다음엔 새롭게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정말로 미안해야 하는 건 못사는게 아냐.
엄마를 기억할 수 없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가족에게만은 연락 다시 해줘.
보살아줌마가 곗돈 먹고 도망갔냐고 했다더라. 엄마가 의지하는 듯 하던 그 아줌마가. 무당도 돈 밝히나요? 사람이니까?
어제 외삼촌이 걱정말라 전화해주셨고 오늘 엄마 친구 중 한 분이 오셔서 잠시 고난이라고 말씀해주시고 갔어. 그래서 힘내야할 것 같은데 난 힘들어.
능력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니까 힘들다고 생각되고 내가 있는 게 피해라 생각되서, 차라리 죽는 게 편할 거라 생각했어. 한강도 생각했고 수면제도 생각했고 화장실도 생각했다. 근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린 막내가 있으니 포기하게 되더라. 그러다 세상에 회피하려는 내가 정말로 겁쟁이라 느껴져. 그래서 노력은 하겠다고 한거야.
제발, 5초라도, 아니 1초라도 좋으니까 전화를 해서 이름이라도 불러줘.
전화가 안되면 문자라도 확인해줘. 문자 못쓰니까 답장 못하려나...
핸드폰을 못 키는 상황인건, 아니지? 응?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은 문자를 안했네.
하루가 지났지만 자기 전에 보낼께.
엄마
정말 보고 싶고 사랑해.
난 가족들이 모두 함께 살면 좋겠고
둘째가 걱정해서 가는 거라도 집에 있음 좋겠다.
친구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가족끼리라도 뭉치자. 응?
마지막으로 엄마야
적어도, 모든 게 끝나게 된다면 그 전에 엄마 얼굴 보고 싶네.
이 아줌마 저 아줌마 하는 소리도 하고 싶고, 내거 니거도 하고 싶고.
그리고 보았을 때는 모두 무사히 만나면 좋겠다. 그치?
어쩌다보니 같은 말 엄청 반복했네.
잘자. 그리고 화이팅.
내일 일어났을 때 엄마가 있음 좋겠다.
사채 같은 것도 다 정리되고..
그냥 편하게 예전처럼 걱정 없이 살자.
정말 고마웠다.
앞으로는 내가 은혜를 베풀어야하니까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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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긴 글 읽어주신 분들 있다면 감사드려요. 사실 정신혼미한 상태에서 썼는지 말 반복되는 게 많고 엄마이야기할 땐 격해져서 뭘 썼는지 헷갈리네요.
넷상에 올리면 이 일에 언급된 사람들은 알거 같고, 신상털릴 거 같아서 고민했는데 말할 데가 없으니 익명으로라도 해야죠.. 정말 아이디는 만들어 놓고 쓰지 않았는데, 오늘 처음 쓰네요.
어차피 얼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은 상태에서 쓴거니까 도움은 바라지 않아요.
어떻게 해결해야할 지 조언이라도 해줘요... 지원해주는 곳이라도 궁금합니다ㅠ
정말 불우이웃 돕기에 도와주는 불우이웃이 누군지 궁금하네요. 엄청 불쌍한 사람들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글로 남기니까 기분이 좀 나아진 거 같아 괜히 쓴 거 같진 않아요.
저희 가족도 저희가족이지만 힘든 가족 많을테니까, 그분들도 힘내세요.
고진감래라는 말이 적용되면 좋겠습니다.
이걸 쓰기 시작한 게 별로 안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상당히 오래썼네요.
이만 갈께요.
모두 좋은 하루 되시고, 지금이라도 부모님에게 감사하다고 말해주세요.
전 엄마에게 투덜거리기만 햇는데, 지금 그 말은 전해지지 않을 거 같아요.
정말 어린 나이라서 인생 다 산 것처럼 인생 조언은 할 수 없는데, 지금은 저 말이 가장 맞다는 기분?
뒤늦은 감사는 전해지지 않아요.